조직의 재발견 - 한국 자본주의와 기업이 빠진 조직의 덫, 개정판 우석훈 한국경제대안 2
우석훈 지음 / 개마고원 / 200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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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에 『샌드위치 위기론은 허구다』라는 제목으로 출간된 책의 개정판으로, 강력히 추천해드립니다. 재미도 있고, 이 분은 어떻게 이렇게 독창적인 생각을 많이 할 수 있을까 감탄스러울 정도로 저자의 통찰이 신선합니다. 경영학을 공부하신 분들이나 지금 회사에 다니고 계시는 분들, 정부조직에서 일하시는 분들께는 특히 더 추천해드리고 싶네요.

저자는 자본주의의 일반적 발전 단계라는 틀에서 한국 경제의 위기 징후를 두 가지로 짚어냅니다. 먼저, 신생 업체의 시장 진입장벽이 너무 높아졌습니다. 창조라고 부를 수 있을 정도의 큰 기술적 변화는 `기업의 탄생`과 맞물려 있는데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든답시고 규제를 다 풀어놓고 나니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져 역설적으로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는 속도는 줄어들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분야가 선두 3~4개 업체에 의해 독과점되어 버린 상황에서 기업가정신, 창업의 문화가 먼 나라의 일이 되고 만 것입니다. 바꿔 말해, 기업 생태계에서 생성-성장-사망의 정상적인 사이클이 더이상 작동하지 않습니다. 이는 `기업하기 좋은`이라는 말이 `기업 만들기 좋은`이라는 말과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또, 인력과 자본이 생산 부문이 아니라 금융(및 서비스) 부문 내지는 지하경제 부문으로 급속하게 흡수되고 있습니다. 지하경제야 앞으로 `활성화`시키시겠다고 하니 일단 접어두고, 어떤 선진국도 산업활동을 이렇게 전격적으로 포기하고 금융 부문만 기계적으로 특화하는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생산비용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임금이 높은 나라에 있는 대규모 공장들이 다 외국으로 이전할 것 같지만 국민소득이 4만 달러가 넘는 스위스 같은 곳의 대도시에도 수천명 이상을 고용하는 대규모 제조업 공장들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습니다. `내포적 발전`이라는 맥락에서 국민소득이 적어도 3만 달러에 이를 때까지는 각 산업 부문은 충분히 중요한 기능을 다 할 수 있고(그래야 경제의 잠재적 능력을 최대한 끄집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국민경제의 기반이 작동해야 금융과 서비스업도 서로 보완하는 기능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 경제는 실물 경제를 포기하면서 금융화, 또 그 반면으로서의 비정규직화(에티엔 발리바르 식으로 말하면 `자본의 추상화와 노동의 구체성`)만 가속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위험한 자본주의`의 입구에 서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한국 자본주의의 위기를 조직론적 관점에서 기업의 위기, 즉 포스트 포디즘 시대에 걸맞은 새로운 조직 모델을 찾지 못한 데서 오는 위기로 진단합니다. 한국에 있는 거의 모든 조직은 가족(세습형 소유구조)을 원형으로 하고 여기에 군대식 직제를 결합시킨 형태를 가지고 있는데, 이런 구조가 대기업이라는 틀을 통해 전 사회적으로 확산, 하다못해 학교재단이나 교회까지 그와 같은 모습으로 진화했습니다. 사회 전체가 거대한 병영과 비슷하게 된 셈입니다(세계은행은 한국 경제의 특징을 `동원경제`라고 규정한 바 있습니다). 그리고는 이러한 조직구조가 빠지게 되는 함정을 다양한 국면에서 다루고 있는데, 지나친 획일화를 통한 대형화로 인해 포스트 포디즘 시대 사람들의 감성에 적응하는 데 문제가 생긴 대형교회의 사례도 언급됩니다. 즉, 포디즘 시절의 고성장, 대형화를 특징으로 하는 대형교회는 중산층이 붕괴하는 상황에서-이는 역사적으로 극우파들이 등장하는 시점과도 대체로 일치하는데- 고급화하면 빈민층이 떨어져 나가고, 기존의 중산층 모델을 유지하면 상층부가 떨어져 나가는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고, `대량생산 대량소비` 체제가 깨어지자 진짜로 구매력을 갖춘 하이엔드 소비자들은 그 대체재인 점집으로 갈 가능성이 많아졌다고 합니다;;; (교회의 고급 간부들이 유명한 점집에서 마주쳤다는 식의 이야기는 과거의 일이 아니라 최근 들어 비로소 생겨나기 시작한 일이라고 저자는 지적합니다. 참고로, 저자에 따르면 중앙형 단일 교단인 불교는 집중형 의사결정시스템으로 도리어 시대 변화에 빨리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하고, 유럽에서는 공공 심리상담소가 교회와 경쟁한다고 합니다.)

저자는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키워드를 다섯 가지 제시합니다. 첫째, 조직이 구성원들에게 장기적 (고용) 안정성을 주어 숙련도와 창조잠재력을 보존해야 합니다. 캐비아를 먹을 수 있는 일부만 조직 내부에 남기고 나머지는 전부 외부화하거나 비정규직으로 전환하는 방식의 `캐비아 자본주의`는 포스트 포디즘 이후 극도로 높아진 창조능력 경쟁에서 버텨나갈 수 없습니다(창조나 혁신은 많은 경우 정규직에게서 나오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늘리는 조직은 장기적으로 볼 때 `숙련도` 뿐 아니라 `창조 잠재력`이라는 면에서도 불리합니다). 둘째, 지금의 경제는 한 명의 천재가 만 명을 먹여 살리기는 커녕(그게 가능하다손 치더라도 정치경제적 구조와 사회문화적 조건의 뒷받침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저자의 견해입니다), (무기력하고, 한 달에 책 한 권을 제대로 안 읽고, 대신 술집에는 일주일에 두번씩 꼬박꼬박 가면서, 마케팅에 너무나 잘 속는) `엄마표 귀공자` 한 명을 먹여 살리기 위해 10만 명이 비정규직, 저임금, 경제 소외로 핍박받아야 하는 `귀공자 자본주의`인바, 업무 숙련도와 거의 상관이 없는 영어점수나 출신 학교 등 획일화된 선발기준에서 탈피해 일부러라도 조직 내의 ‘다양성’을 제고해야 한다고 합니다. 셋째, 마초들의 `주지육림 자본주의`를 넘어 여성들과 일하는 법을 배워야 하고, 넷째, 토호들의 ‘짝패 자본주의`를 타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폭 자본주의`를 탈피해 중소기업의 창조능력을 극대화하는 협동진화 모델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합니다.

두서없이 쓰느라 책의 진가를 잘 전달하지 못했네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깔끔하게 정리하기로 하고 일단 한번 읽어보시기를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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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2015-03-07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중앙일보 모바일] [삶의 향기] 한국이 영국 꼴 나지 않으려면 - http://mnews.joins.com/news/article/article.aspx?total_id=17297329
 
일상의 지리학 : 인간과 공간의 관계를 묻다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1
박승규 지음 / 책세상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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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좀의 지리학을 통한 지리학의 재영토화를 모색한다는 책인데, 특별한 내용은 없었습니다.


철학 동아리에 속해 이진경 님의 책들을 읽으며 철학 공부를 시작한 덕분에, 또 현대철학의 커리큘럼을 푸코로 시작해 들뢰즈 가타리로 마무리되게끔 짠 선배들 덕분에(그러다 보니 자연히 수유연구실의 책들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도 한 때 이런 식의 '탈근대' 조류, 그 중에서도 특히 니체, 들뢰즈에 꽂혔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점차 들뢰즈 가타리 류가 이른바 '차이'란 것에 선험적 절대성을 부여한 나머지 '차이(들간)의 차이'를 간과하고 결국엔 차이를 또다른 '동일자'로 둔갑시켜버리는 게 아닌가 하는 회의가 들었고, 이론의 (몰)역사성에 대한 고민도 했던 것 같습니다. 공부도 부족하고 그마저 읽은 지 오래 되고 해서 잘 기억은 나지 않네요. 음악 공부를 하다 보니 요즘 들어 다시 읽어보고픈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아무튼 저하고는 기질적으로도 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고로, 모더니즘/포스트모더니즘을 근대/탈근대 문제틀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담은 이정우,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하여」, 『가로지르기』(산해)의 일독을 추천해드립니다.


모더니즘이라는 말 자체가 근대 예술에 반해 등장한 현대 예술을 가리키는 말로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오히려 모더니즘을 더 발달(아니 더 정확히 말해 극단화)시킨 것이지 모더니즘과 대비되거나 배치되는 개념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포스트모더니즘을 축자적으로 번역하면 '후기 근대주의' 또는 '탈근대주의'가 될 수 있겠으나, 영미 비평의 맥락에서(특히 미국 비평가들에 의해) 쓰인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용어를 철학, 사회학, 역사학 등에서 마구 사용할 경우 의미론적 어긋남이 생긴다고 이정우 님은 지적합니다. 이는 영어라는 언어의 패권 내지는 미국의 문화제국주의를 반영하는 한 단면으로서, 정리하자면 포스트모더니즘은 1) 예술 분야에서 2) 20세기 초 모더니즘의 연장선상에서 3) 미국에서 발달한 사조인 데 반해, 탈근대 사상은 1) 사상 일반에서 2) 16세기 말 이후의 역사 전체에 관련해서 3) 세계사적인 범위에서 제기되는 사상이라는 것이 골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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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 대한 권리 - 도시의 주인은 누구인가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125
강현수 지음 / 책세상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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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책입니다.


책세상 문고의 우리시대 시리즈 가운데는 마중물 삼기 좋은 책들이 많이 있습니다. 칼 폴라니를 읽기 위한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칼 슈미트에 접근하기에 앞선 정태욱, 『정치와 법치』와 같은 책들이 그 예입니다(헌법 공부할 때 나오는 그 칼 슈미트ㅎㄷㄷ). 물론 가끔 실망스러운 것들도 있고, 각주를 분량에 대한 고려 없이 모조리 후주로 돌려버려 읽기에 불편한 면이 없지 않지만, 대체로 젊은 연구자들의 건강한 문제의식과 진지한 연구태도에 감복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책 말미에 더 읽어야 할 자료들 목록을 붙여 놓은 것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도시권' 공부를 위한 몸풀기용으로 읽은 이 책은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도시학자인 앙리 르페브르(그리고 그 후계자, 데이비드 하비)에 들어서는 좋은 입구입니다(많이 읽히는 『프랑스 혁명』을 쓴 조르쥬 르페브르와 다른 사람입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1968년에 출간한 르페브르의 책 『도시에 대한 권리』를 통해 처음으로 정식화되었는데, 당시의 68혁명에도 많은 공명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용산, 두리반, 촛불집회, 성미산 등 한국에서도 최근 도시 공간의 이용과 관련한 충돌이 많이 있었지요. 도시를 공간적 차원의 개념으로, 권리를 정치적 차원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데 익숙했던 우리들에게 이 책은, 도시를 정치적 개념으로, 권리를 공간적 개념으로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해 줍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국민국가 단위로만 사고되었던 ‘인권=시민권’의 새 지평을 모색해볼 수 있습니다.


브라질의 도시법, 몬트리올, 바르셀로나, 유럽연합 등지의 도시권 헌장, 유네스코와 유엔 해비타트의 도시 정책 프로젝트 등은 한국의 현실에도 참고할 바가 많다고 생각됩니다.


르페브르의 도시 관련 저작은 우리말로 번역된 것이 없었는데, 반갑게도 (이제는 재작년이 된) 2011년, 양영란 님에 의해 『공간의 생산』(에코리브르)이 번역되어 나왔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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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의 저주 - 경제현상의 패러독스와 행동경제학
리처드 H. 세일러 지음, 최정규.하승아 옮김 / 이음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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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책이네요. 리처드 세일러가 1987년부터 1990년까지 『Journal of Economic Perspectives』에 "이상현상(Anomalies)"이라는 제목으로 13회에 걸쳐 게재한 논문들을 번역한 것입니다. '승자의 저주' 외에도 행동경제학의 다양한 이슈들을 풍부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케인즈의 '야성적 충동' 개념을 실마리 삼아 역시 행동경제학적 맥락에서 쓴 조지 애커로프, 로버트 쉴러, 『야성적 충동』(랜덤하우스코리아)이 유명한데, 그보다 오히려 더 엄밀하고 분석적이라고 느껴집니다. 단, 조금 어렵습니다.

참고로 케인즈는 무엇보다 『고용, 이자, 및 화폐의 일반이론』을 읽어 보셔야겠지만, 저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박만섭 교수님께서 대표저술한 공동 연구서 『케인즈의 경제학』(다산출판사)이 체계를 잡는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박만섭 교수님께서 공저한 『경제학 더 넓은 지평을 향하여』(이슈투데이)는 주류경제학에 대한 다양한 비판과 대안을 담고 있는데, 역시 강력 추천드립니다). 『일반이론』의 경우는 이주명 씨의 번역(필맥)보다 조순 교수님의 번역(비봉출판사)이 낫습니다(그래도 여전히 뜻이 통하지 않는 부분이 많아 원서로 읽으시는 게 나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도 많이 대조해가며 읽었습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애커로프 교수의 다른 책 중에는 『아이덴티티 경제학』(랜덤하우스코리아)이 번역되어 나와 있는데 아직 검토해보지 못했고, 로버트 쉴러 교수의 책은 『버블 경제학』(랜덤하우스코리아)이 『야성적 충동』보다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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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의 비극을 넘어 - 공유자원관리를 위한 제도의 진화
엘리너 오스트롬 지음, 윤홍근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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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작(출판은 1990년에 되었다)입니다. 노벨경제학상 선정위원회는 오스트롬 교수가 이 책을 통해 "공유자원은 제대로 관리될 수 없으며 완전히 사유화되거나 정부에 의해서 규제되어야 한다는 전통적인 견해에 도전", 수많은 사례들에 대한 경험적인 연구를 바탕으로 "사용자들이 자치적으로 관리하는 세계 도처의 공유 자원에서 나타나는 의사 결정과 규칙의 실행을 위한 정교한 제도들"을 발굴하여 소개하고 이론적으로 분석한 것을 가장 중요한 업적으로 꼽았습니다.

진화적 게임이론을 바탕으로 '이타성의 진화'를 고찰한 최정규, 『이타적 인간의 출현』(뿌리와 이파리) 과 같은 책들과 함께 읽으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과학적 지식은 이론의 한계에 대한 이해이며, 또한 이론이나 모델들이 적용될 수 있는 상황의 다양성에 대한 이해이다. 물리적인 구조들을 묘사하는 데 원과 정사각형, 삼각형처럼 완벽한 도형들만으로 충분하다는 신념은 요하네스 케플러가 이 고전적 사고의 틀을 깨고 화성의 궤도가 타원형이라는 점을 발견할 때까지(케플러 자신도 처음에는 이 발견을 쓰레기에 불과한 것으로 여겼지만) 천문학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었다.

고드윈과 셰퍼드는, 정책학자들이 경험 세계 속의 변수들이 이론적 모델과 부합되는지에 대한 진지한 고려 없이 공유의 딜레마 모델을 이용함으로써 `정사각형, 삼각형, 그리고 타원을 원형 패러다임에 몰아넣고` 있음을 지적했다. (...) 불행히도 학계, 이익 집단, 정부, 언론 등에 종사하는 분석가들은 여전히 공유자원의 문제를 이용자 자신들의 노력에 의해서는 최적의 결과를 이루지 못하며, 종종 파국에 이르기까지 하는 딜레마로 간주하고 있다.

분석가들의 도구상자에서 빠져 있는 것은 행위 주체들이 노력의 결실을 보존하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조직해 나가는 집합 행동 과정을 적절히 설명할 수 있는 특정화된 이론이다."

(58~5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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