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르윈 O.S.T.
밥 딜런 (Bob Dylan) 외 노래 / 워너뮤직(WEA) / 2014년 1월
평점 :
품절


 

 

현대의 리듬 앤 블루스는 흑인 영가의 영향을 받았다. R&B 가수들이 구사하는 이른바 소몰이 창법은 노예로 팔려온 아프리카 인들의 흐느끼는 듯한 창법에서 유래했다. 리듬 앤 블루스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가진 슬픔의 정서를 대변한다면, 포크송에는 유럽 이주민들의 애환이 담겨있다. 포크 싱어들은 소박한 유럽의 옛 민요를 다시 엮어 밑바닥 삶의 서러움을 노래한다.

 

집을 떠나, 빈털터리로 방황하는 노동자의 마음을 담담하게 노래한 ‘Five hundred miles’, 주인공 르윈이 담배연기가 자욱한 카페, ‘가스등에서 부르는 'Hang me, oh hang me'는 오히려 슬픈 가사로 질척거리는 뒷골목의 인생들을 위로한다. "날 매달아주오. 난 죽어 사라지겠지. 목숨엔 미련 없어도 무덤 속에 누워 지낼 긴 세월이 서럽네."

 

하지만 포크는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었던 음악장르가 아니고, 모든 포크싱어들이 밥 딜런 처럼 성공가도를 달렸던 것도 아니다. 이 영화의 실제 모델인 데이브 반 롱크도 변변한 히트곡 없이 역사의 뒤안길에 묻힌 많은 가수 중 하나였다. 감독, 코엔 형제는 르윈이 신나는 팝 음악인 '플리즈 미스터 케네디'(Please Mr. Kennedy)의 녹음에 참여하지만, 푼돈을 받고 저작권을 포기하는 장면을 통해, 정통 포크 싱어와 대중적인 음악만을 원하는 시대의 불협화음을 담담하게 스케치한다.

 

반세기의 간극을 넘어, 코트 한 벌 없는 떠돌이의 음악이 재조명되고, 마음 깊은 곳의 울림을 이끌어내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아직 끝나지 않은 이곳의 꽃샘추위가 1960년대 뉴욕의 겨울 만큼이나 냉랭하기 때문에. 혹은, 삶의 바닥에 뿌리내리고 피어나는 예술혼이 우리 가슴속의 무엇인가를 뜨겁게 자극하기 때문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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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따 2014-03-16 1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유난히 영화만큼이나 따뜻한 리뷰글이라 느껴지는것은, 말미잘님의 글이 음악빨을 받은걸까요 아니면, 커피같은 중독성을 가진 이 음악이, 말미잘 글의 분위기빨을 받은것일까요? 듣고 또듣고 또듣고 또듣고. 마치 말미잘님 글을 읽고 또읽고 또읽고 또읽고 하는것 처럼.


뷰리풀말미잘 2014-03-16 21:45   좋아요 0 | URL
음악 좋죠? 약간 청승맞고 우울한게 민요 냄새도 남아있고. 저도 요즘 자주 이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습니다. 흥얼거리기 좋은 노래잖아요.

음악빨일겁니다. 앞으로는 페이퍼에 웬만하면 음악을 넣어야겠어요. ㅎㅎ

2014-09-02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2 09: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2 1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9-02 17: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 1

 

 

 


오래 전 유행했던 PC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마린’ 유닛을 업그레이드 하다보면 ‘스팀팩'(stimpack)이라는 주사기 모양의 버튼이 뜬다. 버튼을 누르면 유닛의 HP가 일부 줄어드는 대신 총기 연사속도가 두 배로 빨라진다. 철 모르는 꼬맹이들도 대충 느껴지는 분위기에서 ‘스팀팩’의 정체가 ‘마약’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마, 스팀팩의 모티프가 된 약물은 ‘페르피틴(pervitin)’일 것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전장에서 군인들의 능률 향상을 위해 '메스암페타민'을 원료로 하는 각성제를 개발했다. 이 약물의 힘을 빌어 롬멜의 7기갑사단은 72시간동안 수면 없는 강행군으로 프랑스 침공의 선봉에 설 수 있었다.
 
이후, 약물의 제조 기술은 연합국으로 전파되었고, 일본의 ‘스미모토제약’은 이 약을 제조해 널리 보급했다. 이 약을 복용한 일본의 군수공장 직원들은 24시간 이상 야근하며 군수 물자를 찍어냈으며, 군인들은 밤 낮 없이 경계근무를 설 수 있었다.
 
이 약물의 상품명은 그리스어 필로포누스(Philoponus)에서 유래했다. 일본 사람들은 ‘노동을 사랑한다’라는 의미의 이 낱말을, 세련된 자신들의 발음체계를 활용하여 포장지에 적어 넣었다. ‘히로뽕’. 이 약물의 이름이다.
 

 
#. 2

 

 

 

 

 

 
 


 
 
 

 

 


메스암페타민-히로뽕은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하고 재흡수를 방해한다. 도파민은 기억력, 사고력, 정보, 행동을 조정하며 전두엽을 활성시키는 호르몬으로, 도파민이 필요 이상으로 분비되어 뇌 속을 헤집고 다니게 되면 사람은 흥분 상태에 빠지게 된다. 승리한 듯한 행복감과 무엇이든 이겨 낼 수 있을 것 같은 고양감, 터질 것 같은 활력, 도취된 공격성과 성적 충동이 평정심을 압도하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사고력과 집중력이 평소의 약 190%까지 향상되는데 가령, 복잡한 퍼즐문제를 풀때 시간을 절반으로 단축할 수 있으며, 정확도는 오히려 향상된다. 경험담에 따르면 이 약물이 유발하는 ‘사고 가속력’은 한번도 보지 못한 복잡한 기계의 설계도면을 그대로 머릿속에 집어넣어 능숙하게 기계를 해체하고 조립할 수 있게 만든단다.
 
이 약의 외부적, 내부적 부작용은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에 사실적으로 묘사된다. 환각, 강박적인 행위, 망상, 또 체중감소에 따른 건강 훼손, 심장마비 위험, 끊었을 시 강도 높은 우울감... 드라마 뿐 아니라 어떤 자료를 찾아봐도 이 약물에 손을 댄 사람의 말로는 행복하지 않았다. 
 
 
 
(매스암페타민 유저- 부작용의 결과)

 


#. 3 
 
갑자기 메스암페타민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웹 서핑을 하다 다음의 기사를 읽고 부터다. ‘강남엄마의 '공부 알약'' (http://media.daum.net/society/newsview?newsid=20140304052721211)
학생들의 공부 능률 향상을 위해 부모가 ADHD 치료제인 페니드 따위를 불법적으로 또는, 합법적으로(?) 구해 제공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나 ADHD는 말이 '장애'지 무슨 병명이 아니라 '기질'에 가깝다. 심지어는 확정적으로 진단하는 방법'조차 정착되어 있지 않다. 좀 정신 산만한 아이는 어딜 가나 한 둘은 있는 것을, 약으로 다룬다는 생각은 지독하게 어른들 을 위한 편의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어쨌거나 그 '치료제'의 구성 성분이 바로 ‘메칠페니데이트’(C14H19NO2). 메스암페타민(C10H15N)과 친척관계에 있는 성분이다.  

 

  


(메스암페타민, 메칠페니데이트의 분자식)
 
두 물질은 생긴 것만 비슷할 뿐 아니라 효과도 비슷하다. 다만, 메칠페니데이트는 메스암페타민처럼 도파민의 분비를 촉진시키지 않아 농도를 조절하기 용이할 뿐. 분비된 도파민의 재흡수를 억제해서 뇌내 도파민의 양을 늘리는 매커니즘은 마찬가지다. 의존성, 중독성 및 기타 부작용도 단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내용에는 별 차이가 없다. 이 약을 여러 알 모아서 한 번에 복용하거나, 혹 어둠의 방법으로 복용한다면 사실 이것은 마약성 처방약이 아니라 마약 그 자체다.   

 
 
#. 4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는 명제에 동의한다.
 
또한 '마약'으로 규정된 여러 약물들이 반드시 인간에게 해로움만 끼치는 것이 아니라고도 생각한다. 오랫동안 널리 진통제로 사용되는 모르핀도 아편의 일종이며,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담배와 알콜의 중독성과 의존성은 마리화나보다 강력하다. 체코의 정신의학자 스타니슬라프 그로프는 저서, '환각과 우연을 넘어서'에서 가장 강력한 환각제로 알려져 있는 LSD도 인간의 정신적 계발에 도움이 될 수 있음을 실천적 연구를 통해 밝힌다.
 
한 마디로, 나는 마약의 활용조차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의 범주 안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리버럴한 도덕률에서도 타인에게 마약을 강요하는 것은 비인간적인 행동이다. 미성년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 5
 

70년 전 일본군의 지휘관은 대 일본 제국의 승리와 덴노 헤이까의 영광을 위해 히로뽕을 보급했다. 약물에 도취된 병사들은 놀라운 집중력으로 걷고, 싸우고, 짜릿한 기분으로 총알을 적군의 머리에 박아 넣었을 것이다. 그 인간이 만든 공포와 절망의 마지막 장에서 일본 병사들은 지옥에서 온 야차의 역할을 담당했다. 두려움도 잊고, 국가를 위한 살인에 최선을 다 했던 병사 일부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학도병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70년이 지난 지금, 소리 없는 전장 속에서 또 다시 이 약을 삼키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국가의 승리 대신 미래의 두둑한 통장 잔고와 부모의 영광을 쟁취하기 위해 싸운다. 그들은 적고, 외우고, 짜릿한 기분을 느끼며 친구의 어깨를 밟아 더 높은 곳에 오르려 한다.
 
마르크스가 그랬던가. "역사는 두번 반복된다. 처음에는 비극으로, 두번째는 희극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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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4-03-06 0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파민이 과잉된 상태였나보다. 쓰고 나니까 배고프고 졸립다.

Mephistopheles 2014-03-06 1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부하는 학생들의 약물복용 사태는....꽤 오래되었잖아요.

잠 않오게 한다는 전설의 "타이밍"이라는 알약부터 시작해서...

스팀팩을 맞는 마린들의 효과음이 생각나네요..한숨인지 환희인지 모를

숨을 토해내는 듯한 효과음..

뷰리풀말미잘 2014-03-06 17:37   좋아요 0 | URL
오래 전 전선의 병사들이나 지금의 학생들이나 심리적으로 별 차이가 없는 모양입니다. 학구열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아요. 흐.. 메피님 언제 막걸리 한잔 해요. 비록 술은 잘 못먹지만. ㅎㅎ

Mephistopheles 2014-03-07 10:19   좋아요 0 | URL
울 동네 놀러오시면 맛있는 기네스 생맥를 선사해드리죠...ㅋㅋㅋ
(아니면 훅가는 아이리쉬카밤을 원샷으로...)

감은빛 2014-03-0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을 먹는다고 원하는 만큼 성적이 나온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뷰리풀말미잘 2014-03-06 17:45   좋아요 0 | URL
그렇게 되도록 학생들을 몰아세우는 사회의 문제가 아닐까요. 정말 살기 피곤한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ㅎㅎ

감은빛 2014-03-06 22:30   좋아요 0 | URL
그렇게 믿는 사람들이 바로 이 사회의 구성원이니까요.
사회의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바뀌어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 1

 

L의 전화를 받았다. 나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겠어. 한숨을 몰아쉬는 그의 목이 콱 메어있다.  나는 차마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L에게는 대학 1학년 때부터 만난 오래된 연인이 있었다. 지방의 대학교를 다니던 그들은 함께 공부를 해서 우리 학교로 편입을 해 왔다. ‘이비인후과’(otorhinolaryngology) 같은 단어를 외워야 통과할 수 있는 편입영어의 지난함과, 중퇴자가 생겨야 뚫리는 바늘구멍 TO를 감안한다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을 터였다. L은 대학을 졸업한 뒤 군대를 갔는데 여자 친구는 군소리 한번 없이 그를 기다려줬다. 전역을 한 L은 노량진으로 가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문제는 여기부터였다. 그놈의 공무원 시험이 생각처럼 쉽게 풀리지 않았던 것. 나이는 자꾸 먹고, 모아놓은 돈은 없는데, 오래 만난 여자 친구는 혼기가 차오고 있으니.. 그는 그럴수록 마음을 다잡고 수도승처럼 책상머리에만 붙어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점점 연락이 잦아드는 L 때문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했다. 어쩌다 데이트를 하는 날에도 L은 늘 무릎이 튀어나온 같은 츄리닝 바람이었고, 데이트 장소도 늘 거기가 거기였다.

 

이제 모텔엔 그만 가고 싶어. 라고 그녀가 말 했을 때. L은 그 말의 진위를 간파하지 못했다. 그리고 어느 날부터 그녀는 연락이 되지 않았다.

 

벌써 만난 게 몇 년인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던 L이 슬몃 걱정이 들었던 것은 1주일도 더 지난 시점. 하지만 그 때는 이미 전화도 메일도 불통이었다. 아차 싶어 집 앞에까지 찾아가 기다리는 L을 여자 친구는 다시 만나주지 않았고, 몇 달이 지난 후, 그는 그녀가 중국어 과외를 해 주던 어린 하사와 만나기 시작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 무렵부터 L은 잠을 이루지 못했고, 심장이 두근거려서 공부를 하다 말고 찬 공기를 마셔야 했다. 내게 수시로 전화를 해서 징징거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나는 그 때마다 상담을 권했지만 그는 매번 늘 그 문턱에서 다시 돌아왔었다. 상담과 처방은 그에게 그의 정신이 망가졌다는 것을 인정하는 일이었으니까. 가끔 만나서 족발로 신경을 돌려놓으면 잠시 멀쩡해지나 싶다가 접시가 비면 또 다시 슬픔에 가득한 눈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는 그제 그녀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듣고는 내게 문자를 보냈다. “미잘아, 나는 이제 신을 믿지 않기로 했다.”

 


#. 2

 

그래, 신이 있다면 연아가 금메달을 땄겠지.

 

BC2012년. 아니, 신은 죽은지 오래니까. BCE(Before Common Era)2012년이라고 하자. 여하튼, 호주에 살던 시절, 연인과 이별했다.

 

나는 늘 사막에 가고 싶었다. 비행기가 호주 대륙에 접어들었을 때 창밖으로 보인 그 어마무시한 황무지로. 저 멀리 보이는 인간의 마천루들은 그 황무지에 쌓아올린 레고 몇 조각처럼 하찮아 보였고, 그 압도적인 자연은 치명적으로 매력적이었다.

 

이별한 그 순간, 나는 ‘빗방울처럼 혼자’였고, 아무런 미래도, 삶도 없는 것 같아서, 사막에 가기에 딱 적절한 타이밍이었다. 주섬주섬 배낭을 싸 52도의 폭염이 쏟아지는 사막으로 나섰다. 길을 몰랐으나 별 상관은 없었다. 그 곳은 어디든 사막이었고, 끊임없이 걷고 싶은 생각만이 나를 지배했다. 

 

그러나 지금, 그 모든 일들은 일어났다가 기록에만 남은 일로 변했으며 지금 역사가들은 이 사건을 ‘제 3차 늘보의 난’으로 규정할 뿐이다. 

 

“그러니까, 이것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나는 말을 해 주었지만, 나도, 내게 전화를 한 그도 알고 있다. 말로는 슬픔이 덜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 3

 

'이별할 때면,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내면의 모든 감정이 일시에 솟구쳐 오른다. 평소와는 다른, 어둡고 혼돈스러운 내면으로 들어가 저 위에 열거된 것과 같은 부정적인 자기 모습과 만나게 된다. 바로 그것을 마주 볼 자신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아예 이별을 외면하고 지나가는 것이다.'

 

-P.33 좋은 이별-

 

소설가가 ‘심리’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을까. 사실, 철이 지나도 한 참 지난 프로이트와 리비도 얘기로 가득한 심리 에세이가 얼마나 ‘심리’적일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다.

 

내가 간과한 사실은 행간에 사람을 창조하고, 글로 인격을 부여하는 소설가들이야말로 인간 심리의 달인이라는 점이었다. 책을 다 읽고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던 이유는 김형경 작가가 프로이트 아니라 히틀러를 인용했더라도 이별한 자의 마음을 따듯하게 보듬어 줄 수 있는 혜안을 먼저 가졌기 때문이었다. 혹은, 자신의 책을 설명하는 그 너무도 낭랑한 목소리에 내가 설득 당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나는 ‘좋은 이별’을 사서 L에게 보내주었다. 그 책이 나보다 더 나은 상담자인 건 확실하니까.

 


 

 

 

 

 

 

 

 

 

 

 

 

 

#. 4

 

오늘 아침 S는 여자친구와 헤어졌다고 했다. 며칠 전에는 또 다른 L이. 그리고 또 얼마 전에는 루리가 남자친구와 헤어졌다. (게다가 그 남자친구는 내가 선별해 바친 조공이었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슬퍼하고 있다. 바야흐로, 상실의 시대인가 보다.

 

지금 그들이 헤어짐이라는 감정에 휘청대는 건 그것은 앞으로 가능한 모든 사랑을 일시에 포기해 버리는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앞으로 누릴 수 있는 사랑의 총량이 일거에 박탈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별은 독하다.

 

하지만 생각해 보건대, 우리는 차는 편이든 차이는 편이든 대체로 이별의 전조를 읽어오지 않았던가. 무릎이 튀어나온 츄리닝을 입고 매주 같은 모텔로 연인의 손목을 잡아끄는 남자에게 최소한, 그 순간 사랑은 그렇게까지 소중한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아닌 다른 남자를 생각하는 순간 사실 그녀는 새로운 사랑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는 그런 전조를 애써 외면하거나, 혹은 기대감이 사랑의 총량보다 크다고 판단할 때, 버리거나 버림받는 것이다. 그 순간 슬픔이란, 일상을 잃은 허전함에 불과하다. 상대방을 위해서가 아닌 오로지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감정인 것이다. 차마 말은 못했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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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5 23:4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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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10:4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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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19: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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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6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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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3-06 13: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4-03-06 17: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 1

 

한국에 극성스러운 기독교 노방전도가 있다면, 호주에는 유니세프 청년들이 있다. 어찌나 우악스러운지 길에 나다니기 무서울 정도다. 그 예쁘고 밝은 미소에 홀려 악수를 청하는 그들의 손을 무심코 잡았다면, 최소 15분은 가엾은 제 3세계 아이들의 우울한 현실과 찬란한 유니세프의 역사, 또 나의 호주머니 쌈짓돈이 얼마나 우아하고, 고결하며, 정의롭게 사용될 수 있는지에 대한 설교를 듣게 된다.

 

하지만 당시의 나는 그 비싼 호주 물가에 뒤채이며 의, , 주에 통신비, 교통비까지 합쳐 한 달 30만원도 안 되는 생활비로 연명하던 빈민계층. 세계 5위 수준의 평균소득을 올리는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의 질에 비추어 봤을 때, 나의 라이프 퀄리티는 그야말로 올리버 트위스트나 장발장의 전개부분과 별 다를 바가 없었다. 기부금을 주기는커녕 받아야 될 입장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매번 악수하는 손을 뿌리치는 것이 어찌나 미안하던지. 고민 끝에 취업으로 진로를 결정했을 때, 내가 제일 먼저 이력서를 넣었던 회사가 NGO단체 G사였다. 점쟁이 말 대로 내 올해 운수가 대통해서였는지, 그 업계의 삼성으로 불리는 그 회사의 입사 코스를 별 문제없이 밟아가고 있었지만, 이러저러한 이유로 최종 면접 시간을 맞출 수가 없었고, 나는 NGO 펀드 레이져가 될 기회를 영영 잃어버렸다.

 

한편으로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박봉에, 그 지긋지긋한 봉사활동에서 해방 될 수 있었으니까. 그런데 이 마음 한 구석의 부채의식은 또 어떤 모순인지.

 

#. 2

 

L이 유니세프 토크콘서트의 클로징 멘트를 부탁했다. 행사가 끝날 때 사회자가 읽을 멘트를 써 달라고. 이틀 쯤 힘을 주니까 뭔가 묵직한 것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점심시간, 그 필링을 살려 휘갈겨 쌌다. 최근 한 달 간의 점심시간 중 가장 보람찬 점심시간이었다.

 

한 자루의 촛불로

많은 촛불에 불을 붙여도

처음 촛불의 빛은 약해지지 않는다.

탈무드의 격언입니다.

 

한 명, 한 명.

작은 불꽃으로

온 누리에 빛을 가득 채우는

토크콘서트.

 

이제 준비한 모든 순서는 끝났지만,

오늘 우리의 나눔은

들불처럼 번져

세상의 어두운 곳을 비출

밝고 큰 빛이 되기를

 

저는 믿고, 바라고, 멈추지 않겠습니다.

 

차별 없는 구호의 정신으로

유니세프가 함께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쪽 실무자가 퍽 좋아했다는 후문이다. 다행이다. 내 아주 사소한 기술이나마 기부할 수 있어서. 이기적인 내 인생, 눈 가리고 아웅하는 조그마한 위안이라도 얻을 수 있어서.

 

토크 콘서트에 오라는 초대를 받았지만, 가야 할지는 고민이다. 더 의욕 있고, 돈 많이 낼 사람의 자리를 뺏게 될 수 있으므로. 작년에는 김혜수가 왔다는 얘길 들으니까 좀 가고 싶기도 하고.

 

#. 3

 

정식 명칭은 “2013 직장인의 나눔과 기부 토크콘서트". 1026() 오후5, 분당선 선정릉역 삼성2문화센터 진행되며 자세한 안내와 사전등록은 여기에서. (http://goo.gl/dZsWBq) 유명상씨와 전미주씨의 사회로 수준 높은 국앙 앙상블, 오케스트라, 재즈 공연에 각계 유명인들의 토크콘서트가 예정되어 있다. 참가비는 만원이고 전액 유니세프에 기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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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0-25 09: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뷰리풀말미잘 2013-10-25 09:11   좋아요 0 | URL
예, 이번에 초청된 연주자들도 상당한 실력자들이래서 더 기대가 됩니다.

2013-10-25 09: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10-25 10: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http://seomin.khan.kr/190


마태우스를 국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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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ch 2013-04-02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거 기탁금 마련하려면 같이 댓글 달아드려야할 것 같은데요.
하지만 전 댓글에 영 젬병이니 미잘을 추천해야겠어요.

뷰리풀말미잘 2013-04-02 10:00   좋아요 0 | URL
아씨.. 배고파.. ㅠ

Arch 2013-04-03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미잘, 사진이 맘에 안 들어요.

뷰리풀말미잘 2013-04-03 14:25   좋아요 0 | URL
음.. 걔 중 제일 예쁘게 생긴걸 고른건데.. 어쩌지..? 어쩐다..?

정육식당 2013-05-06 16: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안녕하세요 뷰리풀말미잘님
오랜만이네요

서재 사진 여자가 머리가 아주 크네요. 생각이 많은 여자인가봐요. 몸이 말라서 더 크게 보이는걸까요?

오랜만에 왔는데 새 글이 별로 없어서 실망을 안고 돌아갑니다. 저를 실망시키지 말아주세요.

뷰리풀말미잘 2013-06-21 20:31   좋아요 0 | URL
죄송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