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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의 국정 노트 - DJ 친필 메모로 읽는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
박찬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3월
평점 :
오늘(2025.4.10.) 몇 명의 정치인들이 오는 6월 3일에 있을 21대 대통령 선거에 나서겠다고 공식 선언하고 있다. “제가 만들 대한 대한민국은 이러저러합니다!”라고 외치며 동시에 괴물정권 탄생을 막겠다고 또 지난 3년간의 정부가 방치해 둔 경제성장을 이루어내겠다며 출마하는 실정이다. 이 뉴스를 보다 보니 대통령 후보들이 만들겠다는 나라 말고, 진정 내가 원하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궁금해진다. 좀 안싸웠으면 좋겠다. 정당들은 정책을 세울 때 서로 좋은 안건으로 정정당당하게 겨루고 국가가 위험할 땐 서로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그래서 고질적인 지역감정이나, 젠더와 세대로 잘게 파편화되고 고립된 국민들을 화해시켜주었으면 좋겠다. 쓰고보니 이상적이다. 유토피아가 따로 없다. 나 역시 구체화하기 힘든 막연한 나라를 상상하고 있었구나 싶다. 그러던 중 이 책, <김대중의 국정 노트>를 만났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원하는 나라로 실현해줄 대통령의 역량이 무엇인지 자명해진다.
부제로 ‘성공하는 대통령’의 조건을 단 이 책은 2000~2002년 청와대 출입 기자로서 김대중 대통령을 가까이 지켜본 박찬수 저자가 김대중 탄생 100주년인 2024년에 한겨레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한 권으로 엮은 것이다. 22년 만에 공개되는 국한문 혼용체로 쓰인 27권의 DJ 친필 메모를 사진으로도 볼 수 있는 책이다. 사실 국어보다 한문이 더 많아 이를 해석하는데 시간 꽤 보냈을 저자의 노고가 느껴짐과 동시에 꼼꼼하게 메모하고 이를 토대로 국정운영을 해나갔던 DJ 스타일이 인상적이다.
이 책을 다 읽으면 응답하라 시리즈처럼 그 시절의 일들이 어제인 것처럼 떠오른다. 대선 4수 만에 대통령이 되었으나 전 대통령 시절에 벌어졌던 IMF를 수습하는 DJ, 감옥에 있었던 시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을 정독하고 이후 손정의와 빌게이츠를 만나 초고속 인터넷을 보급한 일, 문화란 물처럼 흘러야 한다는 생각대로 일본 대중문화를 개방했으나 스크린 쿼터제는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그. 언론개혁,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생산적 복지, 정치적으로 화합을 위해 야당총재와의 여덟 번의 영수회담, 햇볕정책을 펴기 위한 남북정상회담 등이 그렇다. 그의 행보는 오늘날의 K-wave의 위상을 떨치는 문화강대국으로서의 면모와 IT강국의 발판이 되었다. 또 정치적으로는 야당과 화해하려 했고, 위로부터의 부정부패를 여, 야당 상관없이 제거하려 애썼고 통일까지는 아니어도 전쟁이라는 남북의 위험요소를 없애려 노력한 리더였다.
“진보와 보수는 지향과 가치가 다르지만, 국정 운영 방식과 목표에서 큰 차이가 나는 건 아니다. 정권이 바뀐다고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갑자기 새롭게 시작되는 정책은 없다. 이전 정권 정책을 모조리 부정만 할 게 아니라, 좋은 건 평가하고 부족한 부분은 메우면서 필요한 곳에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그래야 임기 중에 가시적 정책 성과를 낼 수 있다.(...) 5년 임기의 대부분을 전 정권 정책을 부정하고 시행착오만 거듭하며 보내는 대통령들이 한번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pp.33-34) 이 부분을 읽으며 정당의 존립을 위해 그들의 지침대로 꼭두각시처럼 행동할 정치인이 아닌, 잘한 것은 치하하고 모자란 것은 덧댈줄 아는 그런 대통령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소통방식도 인상깊었다. “DJ는 절대 자기 생각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외부 인사가) 의견을 말하면 수첩에 깨알 같은 글씨로 받아 적는다. 그러고는 배석한 수석이나 비서관에게 ‘이 의견을 어떻게 생각하나?’라고 묻곤 다시 나한테 물어본다. 그런 식으로 참석자들 얘기를 충분히 들은 뒤에 마지막에 자기 생각을 반드시 밝힌다.”(p.55) 이 부분은 나중에 김정일 위원장을 만날 때 빛을 발한다.
“전체 대화 중에 70%는 김 위원장이 말을 하고, 내가 30% 정도 이야기를 했을 거다. 내가 상대방 이야기를 경청하는 이유는 회담 성공률을 높이기 위한 전략적 판단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좋은 합의문이 나올 수 있었다”(p.283) 경청이 DJ의 특별한 정치전략이었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앞으로의 대통령은 국민의 목소리를 들을 줄 아는 사람이어야만 한다.
뭐니뭐니해도 자신을 몇 번을 죽음으로 몰아간 박정희기념관의 건립을 허락했다는 부분에서 DJ는 용서와 타협의 정치로 민주주의를 실현한 사람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지 않았을까? 박대통령이 이뤄낸 경제적 근대화를 부인하지 않고 인정한 DJ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가 바라는 대통령의 모습이 그려졌다. 훌륭한 학벌을 바탕으로 리더십있고 능력있는, 위인전에나 나올 법한 사람 말고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사람, 그리고 삼권분립과 의회 민주주의를 존중하며 국정 운영을 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배째라 야당으로 나온다 해도 포기하지 않고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연대할 의지가 있는 그런 사람말이다. 여기에 기후위기에 지혜롭게 대처할 수 있는 사람이면 더더욱 좋겠다.
다가오는 6월 3일, 당신의 선택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