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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이화의 역사문화수업 1 - 발효 이야기
이이화 원작, 박남정 글, 백명식 그림 / 열림원어린이 / 2025년 3월
평점 :
인스타에 나오는 신기방기한 디저트에 꽂힌 슬이는 꾸덕한 그릭요거트쪽 쇼트가 나오면 나에게 와서 해달라고 조른다. 슈퍼푸드이자 슬로푸드로 각광받으며 디저트계의 인싸가 된 지중해식 요거트다. 반대로 외국에서는 된장, 고추장, 김치 같은 한국의 발효음식이 베이스가 된 한식이 핫하다. 6학년 슬이는 학교 국어시간에 우리나라의 전통음식을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논설문을 써보자는 수업을 듣고 왔다. 선생님께서 콩장이 우리나라 원조의 발효음식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고 이야기하길래 “내가 얘기했던 그 책에 그 이야기가 나온다규”라며 책을 권했다. 콩이 만주와 우리나라 지역이 원산지라고, 식초도 발효음식인거 아냐고, 석유에서도 식초를 뽑아낸다고 이 책에 있는 지식을 뽐내자 슬이는 호기심을 가지고 이 책을 펼친다.
이 책에는 우리나라 전통 발효음식 뿐 아니라 그와 관련된 풍속과 생활에 얽힌 이야기들이 함께 나온다. 콩장에 대해서는 중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왔다가 돌아가서 쓴 책들에 메주를 보고 성벽을 쌓는 돌처럼 만든다고 써놓은 부분도 재미있었고 술, 식초, 젓갈 등 세계의 인류문명 속에 스며들어있는 발효음식에 대한 이야기들이 흥미롭다. 나는 개인적으로 빨간 김치에 대해 궁금함이 있었다. 고추가 임진왜란 이후에 우리나라에 들어왔고 그래서 그 전에는 백김치를 먹던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란 이후로 빨간 김치를 먹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일본 사람들이 조선사람들을 독살하려고 고추를 유입했는데 독성을 이겨내고 빨간 김치를 주식으로 먹는 강한 민족이었다카더라는 이야기가 팩트인지 아닌지에 대해 사실을 확인할 길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보고나서야 아하! 하게 되었다. 이 책의 에피소드들은 중국과 우리나라의 고서에서 증명된 이야기들라 고증에 신뢰성이 간다.
“고추가 처음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때는 만초, 남만초, 번초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어. ‘만’이나 ‘번’은 모두 ‘남쪽 오랑캐’를 뜻하는 말이야.(...) 고추에 대한 기록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책은 이수광이라는 실학자가 쓴 <지봉유설>(1614년)이야. (...) ”남만초는 강한 독이 있는데 처음 왜국(일본)에서 들어왔다. 그래서 속된 말로 ‘왜 개자’라고 하였다. 때로 술집에서 그 맹렬한 맛을 이용하여 간혹 소주에 타서 팔았는데 이를 마신 자들 대부분이 죽었다.“ 고추에 독이 있다고 하고 고추를 먹고 죽은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니”(pp.94~96)
죽긴 죽었구나. 하지만 매워서 죽은건지 술을 많이 마셔 죽은건지는 객관적으로 따져봐야겠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것은 1592년 임진왜란 때이고, 고추가 널리 재배되어 김치에도 고춧가루가 쓰인 것은 그보다 훨씬 뒤인 18세기부터거든요. 배추도 18세기가 되어서야 중국으로부터 씨앗을 들여와 심기 시작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먹는 것과 같은 배추김치는 20세기에 들어서야 담그기 시작했답니다.”(p.153)
배추는 영어로 차이니즈 캐비지라고 하니 원산지가 중국일 것 같긴 했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처음 들어왔을 때는 고추의 맹렬한 맛 때문에 잘게 썰어 술안주로 먹거나 고추씨를 소주에 타서 먹는 정도였다고 이 책에 쓰여있다. 이 부분을 읽으며 불닭볶음면 챌린지처럼 주막에서 매운 걸 잘 먹는다고 허세 부리는 선비의 모습이 상상되었다. 덴마트에서는 불닭볶음면이 수입금지되기도 했으니 충분히 고추의 매운맛이 가진 위험성을 이해할 것만 같다.
2013년 김장에 이어 2024년 12월, 콩으로 된장과 간장을 만드는 장 담그기 문화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우리의 조상들이 만들어온 건강한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아이와 함께 하기 좋은 책이다. 이렇게 밥상머리에서 아이와 함께 이야기할 거리가 추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