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노 휴먼스 랜드 (양장) ㅣ 소설Y
김정 지음 / 창비 / 2023년 7월
평점 :
“노 휴먼스 랜드의 야생화가 기후 위기를 완화하는데 크게 기여했다는 사실은 그레이 시티에 사는 사람들도 아는 상식이었다. 오클랜드 협약은 몬트리올 의정서 이후 가장 성공적인 국제 환경 협약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래서 현재 지구 전체 육지의 57퍼센트를 차지하는 노 휴먼스 랜드를 70, 80퍼센트까지 확장해야 한다고 성토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야 더 빨리 지구가 회복할 테니까.”(p.23)
이 발췌문이 이 SF 소설의 설정이다. 2023년 7월 현재 아무리 우리나라가 GDP 순위로 33위, 33,000달러이고 G7에 손꼽히는 나라이더라도 한국은 육지의 57퍼센트에 해당하는 노휴먼스랜드가 되어있다. (우리나라가 삼면이 바다이고 미국과 중국에 치이는 상황을 볼 때 충분히 가능하다 ㅜ)아마도 일론 머스크같이 잘 사는 사람들이, 이런 1차, 2차 연속된 세계 재난을 거치면서도 여전히 잘 살아가고 있을 ‘과거도시’, 그리고 오늘날의 녹색당, 기후운동가들로 보이는 ‘플래그리스’. (어제도 찰스 3세 초상화에 스프레이 테러한 기후운동가들 기사를 봤는데 이 분들의 후손같은 느낌)이런 설정은 SF지만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를 상상하게 만든다. 이런 점이 바로 <노 휴먼스 랜드>의 매력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새로운 법이 발효될 때마다 세계 곳곳에서 폭동과 테러가 일어났다. 특히 금우법을 비롯한 축산업 규제를 향한 여론의 반발이 거셌다. (..._) 한나는 그 즈음부터 집에서 직접 채소를 길러 먹기 시작했다며 그 종류를 읊었는데, 그중 내가 알아들은 건 옥수수와 감자뿐이다”(p.34)이 부분을 읽으며 서울과 가까우면서, 지대는 높아서 침수되지 않는, 그런 곳을 찾아 은퇴해야 슬이가 감자, 옥수수로라도 연명하려나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_-_..
할머니를 기억하는 미아, 정치인의 보여주기식으로 입양된 과거도시인 크리스, 이 시대에 금기시되는 아이를 위해 돈이 필요한 파커, 한나가 이 책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다. 한나는 읽으면서 그레타 툰베리를 인물화한 것 같았다. “한나의 마음속은 이전 세대의 어른들을 향한 적대감과 분노로 가득했다“(p.35) 이런 감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UNCDE(유엔기후재난기구)에서 활동한다는 점이 특히 더 그랬던 것 같다.
SF 소설은 작가가 설정해놓은 배경만 이해하면 반은 읽은 거라고 생각한다. 이 정도 설정 설명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얘기하면 스포가 된다!! 읍읍.. 요새 한국에서 SF가 쏟아지고 있긴 하지만 그동안 불모지였다. 나 역시 토종 SF 팬은 아니지만 SF를 좋아하는 한 명으로서 이런 소설들이 더 많이 나오길 기대한다.
말미에 미아가 서울에 갈 것을 결정한 것을 별에게 알리는 편지에서,
“나는 뭔가에 홀린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어. 마치 다음, 그다음 할 일이 정해져 있는 것만 같았어. 나에게는 이곳저곳 불려 다니면서 알게 된 좋은 어른들이 많았는데, 그들에게 내 계획을 알렸어. 불안한 사람들을 모을 거라고. 불안을 모아서 변화를 만들겠다고. 그래서 집을 떠나야 하는 사람, 가족과 헤어져야 하는 사람, 자신을 잃게 되는 사람을 최대한 줄여 보겠다고. 무언가를 더 원해서가 아니라, 무언가를 원하지 않아서 간절한 사람들을 모아 새로운 환경단체를 만들거라고”(pp. 310-311)
뜨거운 태양 아래 발작하듯 퍼붓는 비. 오늘의 날씨다. 이런 상황에서 5년 뒤의 지구모습은 예상하기 힘들다. 하지만 이 부분을 읽으며 불안을 행동으로 바꾸는 미아의 모습에서는 내일의 지구 모습이 그려진다. 미아가 할머니에게 받은 서울의 기억, 그리고 이제 그녀가 취할 진취적인 행동들. 그래서 얻어질 별이의 미래는 밝다. 해피엔딩이라 다행이다.
p.s 주인공의 할머니가 1999년생인 것을 보며 나는 이 1차 세계 재난 전에 죽겠구나 하는 다행감과 후대에 대한 미안함이 앞선 마음으로 읽었다. 현재 당면한 기후위기와 난민 문제의 근미래를 이 책에서 생생하게 보는 것 같은 마음은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