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해킹 - 사교육의 기술자들
문호진.단요 지음 / 창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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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한 페이지 넘기자마자 등장하는 에피그라프다.
“옛날의 시험은 인재를 얻으려는 방법이었지만, 오늘날의 시험은 그 반대다. 어릴 때부터 시험 보는 법만을 가르쳐서 몇해 내도록 그것만 생각하게 만들면 그 후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운좋게 시험에 붙으면 그 날부로 배운 바를 모두 잊는다. 평생의 정기를 시험에 소진했는데도 정작 그 사람을 쓸 곳이 사라지는 셈이다” 정말 충격적인 것은 이글이 1778년에 쓰인 박제가의 <북학의>의 한 부분이라는 것.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인재를 선발하는 방식이 요상한 것은 전통적이었구나! 하고 한 대 맞고 시작하는 책, <수능해킹>이다.

이 신묘한 제목의 책은 수능시험의 문제에 대해, 특히, 사교육의 지난 10년을 들여다보는 책이다. 수능시험의 문제에 대해서는 말해뭐해단계에 진입한지 오래됐다. 이 책에서는 “사교육계의 수능 해킹과 평가원의 타협적 개입이 맞물리면서 수능의 난이도는 기형적으로 상승했고,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폐단은 더욱 심각”(p.22)하다며 이 책은 그러한 왜곡을 성립시키는 구조를 밝히고 문제상황을 드러내고자 한다고 써있다. 이에 대한 논지는 네가지로,

a. 평가원의 타협적 개입으로 인해 수능이 비교육적이다 못해 반교육적인 시험이 되었다는 것
b. 사교육계의 수능 해킹이 만성화되면서 사교육 자체가 노동집약적 산업으로 바뀌었다는 것
c. 이러한 파행에서 공교육의 책임을 빼놓을 수 없다는 것
d. 사교육의 고도화가 전례없는 양극화와 불평등을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중 1장에서는 a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사교육의 수능해킹이 가져다 준 것은 “등급 커트라인 조절에만 목매는 평가원과 고도화된 사교육 시스템, 그리고 수험생들의 악전고투”(p.22)다. 뭐하나 틀린 말이 없다. 백번 지당하다. 그리고 이어지는 내용은 “평가원이 ‘쉬운 난이도’와 ‘높은 분별력’이라는 보조가 맞지 않는 두 날개”(p.32)를 단 딜레마에 대한 내용이다. 그 해법으로 난해한 주제와 개념어로 기선 제압을 시도한다. 수능시험을 잘 보는 방법은 두 가지다. “하나는 발상과 논리를 기르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고의 외주화”(p.57)(여기서는 유형에 익숙해져 문제풀이만을 반복하는 형태를 가리킨다)로 당연히 짧은 시간내에 문제를 풀어야 하는 학생들의 입장에서는 사고의 외주화에 기댈 수 밖에 없다. 이런 구조는 학생 개개인의 마음가짐을 떠나
“시험의 형식과 요구사항이 잘못된 인식을 유도하고 강제한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 잘못된 인식은 학습 태도에만 국한된 것이 아닙니다. 삶을 바라보는 관점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주지요.”(p.84)라고 비판한다. 이 책에 한 수학과 조교의 이야기가 나온다. 신입생들이 그렇게 문제풀이집을 찾는다고 한다. 학생 때 내내 문제풀이를 들여다보며 문제를 풀었으니 문제풀이가 없는 문제의 접근 자체를 힘들어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잘못이 없다. 그동안 해온 것대로 행동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대학교의 내용을 사교육으로 배울 수도 없고, 이게 대체 무슨 사단인 것인가.
이 책임은 평가원이나 교육부 같은 공무원 조직만 받을 것이 아니라, 정치권의 의지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첨예한 문제의식으로부터 나온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내 아이만 입시를 넘기면 끝이 아니라 우리나라라는 “공동체의 지속을 염려하는 태도가 필요”(p.102)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이 한국판 <공정하다는 착각>으로 느껴진다. 마이클 센델의 이 책 역시 서론을 미국의 2019년에 있었던 입시비리로 시작하는 것으로 기억한다. 몇몇 특권 계층이 입시브로커를 이용하여 자녀들을 아이비리그로 입학시킨 사건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입시브로커는 아니지만 그와 다를바 없는 사교육이 떡하니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그렇게 생각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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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과학 미스터리 1 - 뱀파이어의 비밀 : 피 국립과천과학관 어린이 과학 시리즈
이혜선 지음, 김완진 그림 / 상상아카데미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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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싹오싹 과학 미스터리 ① 뱀파이어의 비밀』

- 국립과천과학관 최고 과학자들이 들려주는 진짜 과학 이야기!
-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 동화가 무시무시한 공포물로 돌아왔다!
- 아이들이 좋아하는 뱀파이어 이야기로 과학 상식을 재미있게 배울 수 있는 학습동화

국립과천과학관의 커뮤니케이터인 이혜선 저자님이 쓴 이 책은, ‘과학으로 귀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여름이면 찾아오는 귀신 이야기의 실체를 과학으로 밝혀보자!’를 목표로 과학관의 여름방학 납량 특집 전시 프로그램을 바탕으로 기획되었다.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괴물의 미스터리를 풀며 과학 지식을 습득할 수 있게 구성”하여 아이들이 호기심과 흥미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책이다.

나는 아이들에게 좋은 정보가 있으면 공유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단톡방이 있다. 그 중 한 분이 공유해주신 영상은 결국 "과학은 연계가 되어 있다"는 장* 일타강사님과의 인터뷰였다. 한국의 과학 교육과정은 초등과학에서 과학의 기초를, 그리고 중학교에서는 원리를, 고등학교에서는 응용을 배우도록 되어 있는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어려워지는게 아니라  넓어진다고 표현하신게 인상적이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과학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걸까? 우리가 자연이라 칭하는 세계에서의 보편적인 법칙을 찾기 위한 기초를 추상적인 개념어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형이상학적인 단어들은 그저 자주 노출되어 익숙해지는 수 밖에 없다. 이왕이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방식의 노출이 기초를 다져야하는 초등학생에게 알맞다. 그러니 이 책은 호기심을 키워줘야 하는 초등학생에게 권해주면 좋은 책이다.

이 책에서는 뱀파이어라는 미스터리를 가지고 아이들의 흥미를 유발한다. 더운 날씨에 긴바지와 긴팔을 입은 전학생 차시후의 정체를 파헤치는 호기심 많은 친구들은 혈액에 대해서, 햇빛 알러지나 체온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평범한 일상생활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할 수 있게 쓰여있다.

“오싹오싹 과학 미스터리 시리즈는 국립과천과학관의 과학자들이 전설 속 괴물 ‘뱀파이어, 키메라, 좀비, 미라’를 소재로 쓴 어린이 과학 동화입니다. 어린이들의 과학 문해력을 높이기 위해 어린이들이 궁금해하고 알아야 할 과학 지식을 오싹한 공포 이야기 속에 녹여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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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사와 에이이치 일본 자본주의의 설계자 - 500개 기업 창업. 재벌이 되길 거부한 경영자. 일본이 선택한 시대정신
신현암 지음 / 흐름출판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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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7월부터 사용하게 될 일본의 1만엔 지폐의 얼굴이며, ‘주판을 든 무사’(p.7)라는 별명을 가진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이야기다. 저자가 시부사와 에이이치라는 인물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서는 ‘들어가며’에 써 있다.
“2006년 11월 중국중앙텔레비전CCTV에서 <대국굴기>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수천 년간 세계 문명을 선도하던 중국이 왜 1500년 전후로 몰락했는가. 반면 서양과 일본은 어떻게 정치, 과학, 상업, 문화를 발전시켜 강대국이 됐는가, 앞으로 중국은 어떻게 변화해야 하는가’를 9개 나라의 흥망성쇠로 살펴본”(p.5) 다큐를 방송한 것에 대해 신현암 저자는 주목한다.
나는 이 다큐의 목적 부분을 읽으며 <총, 균, 쇠> 프롤로그에 나왔던 얄리의 질문이 떠올랐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견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라고 물었던 얄리에게 대답하기 위해 쓰였다는 <총, 균, 쇠>. 중국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만큼 일본을 미워하지만, 얄리와 같은 질문을 통해 도약하려는 그들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확실히 대국스타일이라 한 나라로는 성에 안찼는지 아홉 나라(!!!)의 이야기를 담았다. 유투브에서도 볼 수 있다는 이 <대국굴기> 다큐멘터리의 “43분 정도의 일본 편에는 여러 명의 인물이 나오”(p.7)는데 그 중에 한 명이 시부사와 에이이치이다. “메이지 시대의 변혁기에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일본 자본주의를 토대부터 세운 인물”(p.7)인 시부사와 에이이치는 일본 근대와 현대를 이은 ‘논어와 주판’의 저자이다.

인물도 흥미로웠지만, 일본에 대한 지식이 많은 저자님 덕분에 정말 호로록 읽혔다. 내가 이토 히로부미 같은 매우 유명한 사람 빼고는 잘 모르는 일본 무식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씀하시듯(강연하듯이?) 쓰여 있어 쉽게 읽을 수 있었다.

내가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기본적 마인드가 상인이기에 이윤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전략적으로 계획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물론 사업수단도 있는 사람이지만, 상업에 대한 자기 생각이 뚜렷했고, 성실한 사람을 인재로 생각하고 자본을 빌려주는 사람이었다. 뭐니뭐니해도 청부론(깨끗한 부자)을 주장하며 베푸는 스타일이었다. 그 바탕에는 논어의 가르침이 있었다.(사실 요부분에 이르렀을 때 중국이 왜 대국굴기 여섯 나라 중 일본을 넣었는지 이해함) 그의 저서 제목을 보자. ‘논어와 주판’이다. 주판으로 돈을 벌더라도 논어의 정신이 주판보다 앞에 있어야 한다. 그의 경영론이 이 책 제목에서 엿보인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왜 시부사와 에이이치가 만엔 권의 인물이 되었을까 생각해본다. 이 책에는 일본의 8대 재벌도 등장한다. 그 중 야스다 젠지로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야스다는 ‘막대한 부를 일구고도 부호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는 편지를 남긴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는다. 시부사와는 그에 대해 “경제계에 기여한 바가 크지만, 공자를 좀 더 공부했더라면, 더욱 큰사람이 되었을 것이다”(p.183)라고 썼다. 아베시절, 국가에서 그렇게 돈을 뿌려댔지만(물론 코로나도 한몫) 아직도 저성장으로 고통받는 일본관련 뉴스를 본다. 이때 구두쇠라는 야스다가 떠오른다. 은행도 못믿고 집 장판 밑에, 장롱에 숨겨둔다는 그들의 돈다발을 두 손 가득 쥐고, 침몰 중인 일본이 보인다. 국가주도 정책이나 올라갈 곳 없는 청년들 열정페이가 아닌, 고령화사회의 주된 자본가들의 생각이 바뀌길 바라는 현재 일본이 요구하는 시대정신이 느껴진다. 나는 궁금하다. 우리나라의 “전국! 노래자랑~”을 외치던 송해 할아버지를 닮은 시부사와 에이이치의 얼굴이 그려진 만엔이 과연 예전과 똑같이 그들의 집장판 밑이나 장롱에 들어가서 썩을지, 순환될지를.

일본학과를 지망하는 학생들부터, 일본학과 대학생에게 추천한다. 또 일본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싫어하는 건 자유지만 알고 싫어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고보면 무시하기 힘든, 배울 점이 많은 사람들도 있는 나라다. 뭐니뭐니해도 매출만을 생각하는 모든 오너분들에게 추천한다. 그분들에게 논어를, 아니 이 책을 꼬옥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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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 천재들을 이끈 오펜하이머 리더십
박종규 지음 / 터닝페이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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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바라볼 것인가
박종규 저자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왜 오펜하이머를 선택했는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다른 천재들이나 전형적인 위인과는 다른 복잡하고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우리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인간적이고 입체적인 오펜하이머였기 때문에, 그에게 묘한 동질감과 위로를 느끼면서 빠져들 수 밖에 없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게다가 인간적인 결함과 수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당대 최고의 과학자들을 이끌어 인류 최초로 핵폭탄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끈 뛰어난 리더로서의 면모는 그에게 더 큰 매력을 느끼게 만든다.”(p.15)
모순덩어리 오펜하이머지만 13만명의 과학자들을 통섭해낸 그의 리더십을 보며 저자는 우리에게 리더는 과연 무엇을 바라봐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이 책의 주인공은 오펜하이머다. 물리학자지만, 미국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독일보다 빨리 원자폭탄을 만들어내야만 했던 맨해튼프로젝트를 이끈, 그의 리더십에 대한 이야기다.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라는 제목답게 오픈하이머의 서사대로 흘러가는 각 챕터마다 키워드가 주어져있다. 질투, 시기심, 자존감, 모순, 양면성, 입체적, 오만, 겸손, 감성지능 등 64개의 주어진 키워드를 곱씩으며 읽다보면 좋은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나의 모순과 타인의 모순을 먼저 인정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라는 메시지에 도달한다.

이 모순을 인정하는 모습에 도달하기까지 저자의 리더십에 관련한 지식이 총출동한다. 그리고 각종 리더를 위한 꿀팁들을 셀프체크할 수 있는 정보가 책 곳곳에 보물처럼 담겨있다. 이런 부분을 보다보면 오펜하이머보다 저자에게 더 궁금증이 생기기도 한다. 오펜하이머라는 인물보다도 그의 말과 행동들을 리더십과 연관지어 분석한 저자만의 렌즈가 내게는 더 좋아보인다. ‘그렇지, 책은 저자만의 이런 인사이트가 담겨있어야, 책이지’ 생각해본다. 책의 날개에 현재 뉴욕시립 대학교 스테튼아일랜드칼리지 경영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계신 박종규 저자 이력에 대해 다음과 같이 써있다.
“직장생활을 할 때부터 리더십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팀원과 팀장으로 일하면서 ‘리더십’이란 대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리더십을 발전시킬 수 있을지 알고자 하는 욕망이 커졌다. 결국 대학원에서 리더십을 전공하고 지금은 리더십을 가르치는 학자이자 리더십 전문가로 확동하고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좋은 리더가 되는 것을 “잘하지는 못했지만 관심은 있었으니, 학교에서 리더십을 전공하게 되었다”(p.336)라고 이야기한다. 리더로서의 열등감과 실패는 저자 자신의 모순을 발견하게 하고, 이 “모순을 인정하지 않고 무시하거나 숨기는 이들”(p.337)을 보며 성장이 멈춤을 보았다. 저자는 <무엇을 바라볼 것인가>라고 제목을 지었을 때, 대체 무엇이 무엇일까 궁금해본다. 나는 나의 모순성을 바라볼 수 있는 자인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대학에서 조끼리 발표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팀원을 이끌고 어떤 프로젝트를 해나갈 때, 일보다 인간관계가 더 힘든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내가 꼰대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한다. 모순을 인정하느냐 인정하지 않느냐가 꼰대를 판가름하는 아주 좋은 기준점처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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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게 살지 마라 무섭도록 현명하게 살아라 - 불완전한 인간을 위한 완전한 지혜
발타사르 그라시안 지음, 김종희 옮김 / 빅피시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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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에서 '유시민 작가가 코칭 받은 말실수 줄이는 법'을 쇼트로 본적이 있다. 그 멘토는 그에게 첫째로, ‘옳은 말인가’, 둘째는 ‘이게 꼭 필요한 말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친절한 말인가’를 생각하라고 했다고 한다. 옳은 말이더라도 하지 않아도 되는 말이라면 안해야 된다는 것. 여기까지만 해도 충조평판이 다 걸러지지만, 여기에 친절한 말인지를 생각해보고 그렇지 않다면 옳은 말이어도, 필요한 말이어도 하지 않는 게 말실수를 줄이는 법이라는 내용이었다. 와닿았다. 내가 하는 말은 맞고 네가 하는 말은 틀리다식의 화법을 사용하는 한국인에게(그 한국인 한 명 저입니다요) 꼭 필요한 조언이었다. 여기에 유시민작가도 밤에 이불킥하실만한 말실수를 하신 적이 많았나보다...라는 전직 국회의원의 인간적인 모습은 덤.

*옳은 말이 진리이고 진리가 자유케 하리라고 생각한, 전형적인 한국인에 불과했던 나 역시, 주변 사람의 목소리보다는 어떤 이상적인 진리를 선망하고 거기에 의지하며 나이를 먹어온 것 같다. 그 진리의 형태는 다양하게 다가왔는데 목사님 말씀을 듣다가 갑자기 나타나기도 하고 책에서 대유행 키워드로 나타났다가 다른 유행어에 사그라들기도 했다. 드라마를 보다가 나오는 중요하지 않은 인물의 대사였을 때도 있었고 지하철을 대기하다가 언뜻 눈에 들어오는 어느 시민이 지은 시구절이기도 했다. 이 다양한 유형으로 나를 찾아오는 진리라고 믿고 싶은 이 개념의 무한복제와 변형을 3인칭시점으로 생각해보니 이것이 세상을 나보다 먼저 살아본 철학자들의 화두가 아닌가 싶다. 이 화두에 대해 오래 고민한 사람들의 기록이 철학일지니. 이 책은 철학자들 중에서도 손에 꼽히는 니체와 쇼펜하우어같은  염세주의 철학자를 일으켜 세운 철학자의 단 한권의 책 <사람을 얻는 지혜>에서 핵심문장만을 모은 버전이다. 바르게 사는 것이 옳은 것인양, 진리인양 살아온 나에게 그게 아니다라는 길을 보여준 책, 발타사르 그라시안의 <바르게 살지 마라 무섭도록 현명하게 살아라>이다.

“타인은 당신의 성격을 고쳐주지 않는다. (...) 좋은 사람인 척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로 환대받을 수 없다. (...) 타인은 아무도 당신의 나쁜 성격을 고쳐주지 않는다. 스스로 조율하고, 자제할 수밖에 없다. 항상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잘못된 말을 내뱉지 않도록 주의할 것. 잘못된 행동을 한 뒤에도 자신의 어리석음이 칭찬받고 있다고 착각하지 마라.”(pp.37~38)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초반에 이야기했던 유시민 작가가 코칭받은 말실수 줄이는 법 쇼트가 떠올랐다. 내 스스로가 옳은 말인지, 필요한 말인지, 친절한 말인지 스스로 조율하고 자제하며 잘못된 말을 내뱉지 않도록 주의하는 수밖에 없음을 17세기 스페인 사람인 발타사르 그라시안 역시 이야기하고 있다.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라. 자신의 운명을 알아야 한다. 행운을 최대한 활용하고 불운을 끊어내자.(...) 용감하고, 행운하는 사람은 행운을 끌어당기지만 나태하게 살아가는 사람은 행운이 피해 간다. 운이 안 좋아졌다고 느껴지면 갈 길을 바꿔 더 나쁜 상황을 피하자.”(p.155) 철학자이면서 예수회 신부로서 행운과 불운이라는 단어를 선택한 센스나 피할 수 있는 것은 피하라는 문장도 흥미로웠다. 한국 사람들이 가장 많이 듣는 명언은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인데 피할 수 있으면 피하는게 현명하다고 가르쳐주는 이 분, 묘하게 빠져든다.

나 역시 내 주변의 가까운 이들에게 충조평판 듣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다. 점점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일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과 이야기하는 나이대가 되어가는 요즘, 바르지 않더라도, 현명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은 사람이라면 꼭 필독요망.

p.s 요새 쇼펜하우어식으로 조언해주는 챗봇이 유행이라고 하던데 발타사르 그라시안식 챗봇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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