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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르트스트림의 덫 - 러시아는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나
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권지현 옮김 / 롤러코스터 / 2024년 11월
평점 :
노르트스트림의 덫
러시아는 어떻게 유럽을 장악하려 했나
마리옹 반 렌테르겜 지음
우리가 배워온 세계사의 대부분은 근대 이전의 유럽 역사다. 현대의 역사에서 중요했던 냉전시대이후 우리나라가 제3의 물결의 파도를 따라 선진국들을 벤치마킹하며 압축성장하는 동안 선진국이라 불리우던 유럽의 여러나라는 EU라는 유럽연합으로, 영국의 브렉시트라는 사건외에는 다소 정체된 지역으로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가 이번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라는 전쟁이 터졌다. 내 주변의 누군가는 우크라이나가 NATO에 가입하려 했기 때문이라고 하고, 누구는 가스관 때문이라며 표면적인 이유를 대주었다. 러시아가 유럽에 대해 가진, 아니, 푸틴이 유럽을 향한 야욕이 이렇게 음흉하리라고는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했음을 고백한다. 동독에서 KGB활동을 하던 푸틴이 바라본 유럽은 어떤 곳이었을까? 그는 이 노르트스트림이라는 가스관을 손에 쥐고 대체 어떤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르몽드 기자 출신의 마리옹 반 렌테르겜 저자를 통해 푸틴의 본 모습을 그려본다.
이 책의 저자, 마리옹 반 렌테르겜의 이전작은 <메르켈>이다. 아마도 주력분야는 독일정치로 보이는, 이 프랑스 기자는 이번 책 <노르트스트림의 덫>을 통해 독일 전 총리인 슈뢰더를 포함한 유럽연합의 각각의 정치인들을 폭로하고자 한다. 저자가 직접 ‘워싱턴, 키이우, 베를린, 파리, 바르샤바 등에서 정치인, 기업인, 군인, 전문가, 정보요원 등 수백 명을 인터뷰하여 방대한 자료로 엮’었다고 한다. 글 스타일이 슈테판 츠바이크와도 비슷하여, 그래서 흥미롭게 몰입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했다. 누군가 러시아의 현재를, 우크라이나와 전쟁을 내막을 궁금해한다면 자신있게 이 책을 추천하겠다.
개인적으로 내게 충격적이었던 것은, 푸틴이 노리기도 했지만 그 덫에 사로잡힌 독일정치인들과의 깊은 연루였다. 몇 년 전 독일에서 공부한 김누리 교수님의 책을 인상적으로 읽기도 해서인지, 대학조교 출신이라는 빌리 브란트와 같은 독일 정치인들에 대한 존경심이 있기도 했는데, 이 책에서는 그를 순진한 바보로 여긴다는 점이었다.(이런 부분에서는 저자의 프랑스인 특유의 어떤, 성격이 느껴졌다) 게다가 이 가스관이 탈원전을 향한 독일인들의 집착으로 인한 것이기도 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게 느껴졌다. 오히려 프랑스가 원전을 사용하기에 러시아의 천연가스 의존도가 낮아 독일보다는 죄의식을 덜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어이없었다. 한편으로는 장기집권하는 국가 원수가 만들어가는 나라와 5년 정도의 임기를 마치고 다른 당으로 정권이 바뀌는 민주주의 시스템과의 격차가 느껴지기도 했다. 시진핑도 장기집권을 하면서 일대일로라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하나씩 이루어나가고 있는 중인 것을 생각해보면 지금은 러시아와 중국이 잡은 손이 작아보일지 모르지만 그 둘이 점점 국경을 넓힌다면? 그리고 그 사이에 북한이 끼어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그저 바라만 보고 있을 수도 없을 것이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우리나라 네티즌으로부터 ‘불곰형님’이라고 친근하게 느낄 사람이 아니었다는 점과 19세기의 사실주의 문학으로 정점을 찍었던 러시아 지식인들이 꿈꾸던, 러시아 민중으로부터 온다고 믿었던 그 힘은 거짓말이었을까? 스탈린이라는 독재자도 그렇고 52년생인 푸틴이 올해 72세로 흔들림 없어 보이는 종신집권체제가 안타까울 뿐이다.
p.s 한 나라의 대표는 정말 영리해야 한다. 이 책 서문의 첫 장면은 메르켈의 집무실에서 보이는 러시아대사관을 그린다. 이 책에서 독일의 전 총리인 메르켈을 대놓고 욕하진 않지만 ‘아무런 대안이 없다’며 아무말도 하지 않았던 것에 대해 엄청 비아냥거리는게 느껴진다. 프랑스인으로서 러시아의 덫에 제발로 올라간 독일 욕먹이는 내용이라고 단정 짓기에는 놀려먹는 수준도 어나더레벨이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이런 수준에 도달하기에 아직 멀었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