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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평점 :
이 책은 보자마자 이정모 관장님이 쓰셨다는 것만으로도 당장 읽고 싶은 책이었지만, 제목도 참, 사람 궁금하게 한다. <찬란한 멸종>이라니. 내가 아는 ‘찬란’과 ‘멸종’은 아무리 탈탈 털어생각해봐도 교집합 지점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자답게 프롤로그에서 제목에 대해, 시원하게 알려주고 시작한다.
“생명의 특징은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진화는 새로운 생명의 등장이죠.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멸종이라고 합니다.(pp.6-7)”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기 위해 퇴장할 때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찬란한 멸종’이라는 제목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조금 삐-뚤어질 수도 있겠는데? 사피엔스, 다음 생명체를 위해 다같이 멸종당하자고 이런 제목을 쓰셨을까? 그럴 리가. 기후변화로 찬란한 멸종을 당해왔던 자연사와 달리, ‘인류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위기이기 때문에 “우리만 변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잖아요.”(p.7)라고 심플하게 쓰고 계신다. 찬란하게 멸종당하고 새로운 생명체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지속하는 인류가 될 것인가, 선택하라는 책, <찬란한 멸종>을 소개한다.
이 책에는 프롤로그 다음에 지질 연대표와 지질시계가 한페이지씩 차지하고 있다. 각각의 시기에 살았던 생명체들의 시점으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 파트 ‘대멸종은 진행 중-기후 위기의 시간’의 처음은 2150년형 인공지능 시점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은 화성으로 테라포밍한 2150년 인공지능과 산호의 시점으로 계속되다가 마지막에는 지구의 시점으로 ‘친애하는 인류에게’ 남기는 궁서체 편지가 또 아주 기가 막히다. (이정모 관장님, 진짜 이 책 쓰시면서 넘 재밌었을 것 같다. 그런데 주제가 마냥 재밌어할 수 없는 내용이라 이렇게 설명하기도 참..)
두 번째 파트인 ‘공룡 멸종으로 탄생한 최고 포식자-사피엔스의 시간’의 시작은 일 만년 전 구석기인 아란의 시점이다. 이후 4만년전의 네안데르탈인, 만이천년전의 스밀로돈(거대한 고양이), 매머드 그리고 공룡이 직접 겪은 불구덩이 대재앙을 써내려갔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세 번째 파트, ‘진화와 공생의 장대한 시작-생명 탄생의 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힌트들을 숨겨놓은 장으로 읽혔다. 화산폭발에서도 살아남은 포스토수쿠스의 ‘변화와 혁신’(p.230)이 그랬다. 또 디메트로돈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대화도 이 시기를 쉽게 읽어낼 수 있어서 좋았고 ‘나의 추위는 당신들의 더위다’(p.267)에서는 메가네우라의 추위로 인한 죽음이 석탄이 되어 지금 우리의 더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어제(8.4 서울 36도), 오늘의 폭염을 몸소 느끼며 메가네우라의 죽음이 절로 떠올랐다. 이후 저자가 상어와 삼엽충, 미토콘드리아로도 변신을 꾀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맨 마지막 달과 바다와의 2인극이 정말 좋았다. 바다의 대사, “그들에게 시간을 좀 더 줬으면 좋겠어.”(p.345)라는 부분을 읽었을 때 난 울었다. 흑흑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역시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구 역시 이미 창백하지만 푸른 빛을 잃고 황망한 우주로 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일, 지금 당장의 이 위기는 지구와 태양계의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 얼굴에 침뱉은 일이다.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변해야 하죠.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만큼은 유지하고, 지구 기온을 낮추지는 못하더라도 기온 상승 추세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p.8)라고 말하고 있는 이정모 저자님의 <찬란한 멸종>이었다.
p.s 1. 나는 이 책이 ‘달의 은은한 빛과 바다의 파도소리’(p.345)가 되어 이 지구 위의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2. 지구 멸망 직전 화성으로 테라포밍한 인류의 마지막이 미생물을 챙겨가지 않아 썩지 않는다는 상상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난 이제 이분 SF소설을 기다리려 한다.
3. 공룡을 좋아하는 어린 인류들이 더 잘 읽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저자의 관장님 이력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4. 이 책을 읽으면, 절반 정도(우주 기원쪽은 빠져있으므로)의 빅히스토리를 한 번에, 그러나 묵직하게 꿰어 찬 느낌이다. 저자님만의 유머와 글솜씨 덕분에 쉽고 재밌게 읽혔다는 것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이런 주제의 책을 읽어낸 내 자신, 칭찬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