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쓸모
로랑스 드빌레르 지음, 박효은 옮김 / FIKA(피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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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쓸모>
9명의 철학자의 얼굴이 그려진 표지의 이 책은 <철학의 쓸모>에 대해 적고 있다. 일단 우리나라에서 철학! 하면 나는 신해철이 떠오른다. 철학과 87학번이었다. 또 ‘인생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죽음이란, 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떠오르지만 대답은 오리무중이었던 중2병들(나를 포함한)이 떠오른다. 나 역시 사춘기 때 저 커다란 질문들이 파도처럼 밀려온 경험이 있다. 그때 내가 광화문 교보에 가서 샀던 책은 듀랜트의 <철학이야기>였다. 책 고르는 운은 따랐지만 번역서의 한계(라고 주장하고 싶은)에 따른 문해력 딸림으로 스피노자정도까지 읽다가 먼지에게 빌려줬다. 최근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나 바로 이 책 <철학의 쓸모>까지 내가 손놓았던 철학자들의 생각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철학 입문책들이 많다. 쉽게 읽힐 뿐더러 이 책의 저자는 철학의 쓸모를 고통으로부터 찾는다. 그는 “산다는 것은 그 자체로 치유가 필요한 질병”(p.14)이지만 “본래 철학은 의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p.13)그러므로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학처방전으로 철알못도 이해할 수 있는 철학을 제시한다.

‘너 자신을 알라’, ‘나답게 살아갈 용기’, ‘현실을 직시할 용기’, ‘소크라테스의 선문답’, ‘철학은 가혹하고 잔인하다’로 이어지는 사용설명서는 저자가 고통을 치유하는데 효과적이었던 내용이다. 나는 마지막에 철학이 이성과 모순이라는 치료제를 쓰기 때문에 철학은 가혹하고 잔인하다는 부분을 읽으며 팩트라면 거리낌없이 이야기하는 한국인들에게 오히려 더 잘맞는 부분 아닐까 싶기도 했다.

이 책은 육체의 고통, 영혼의 고통, 사회적 고통, 그 외의 흥미로운 고통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러면서 그동안 그에 대해 고뇌했던 다양한 철학자들만의 사유를 ‘철학의 치료법’으로 제시한다. 육체의 고통 중 ‘죽음’에서, “현재를 즐기라는, 아니 내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이 철학의 처방은 ‘언 발에 오줌 누기’식 처방일 뿐이다”(p.52)라는 문장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카르페 디엠”은 내게 불편한 문구였다. 그래서 그런지 이 부분을 읽으며 속이 다 시원했다. 그대신 저자는 “산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슬픔을 치유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p.55)라며 ‘마음을 환기할 것’을 처방해준다.

사회적 고통 중에는 ‘노동’에 대한 파트가 있다. “우리는 자신만의 시간을 잘 보내기 위해 일을 하고 돈을 벌지만, 문제는 일이 우리의 시간을 온통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노동자의 비극이다.”(p.241)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저자는 “노동에서 인간을 소외시키는 온갖 성실함을 거부하고 불성실한 일꾼이 되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p.249)라는 처방을 내린다. 어차피 해야 할 노동이라면 너무 열심히 말고 불성실한 일꾼이 되라는 처방에 나는 무릎을 꿇었다. 의외로 이 부분을 읽으며 파리올림픽이 생각났다. 우리나라를 북한이라고 발음한 그 시나리오를 잘못 쓴 사람이나 아나운서를 떠올렸다. 아무리 백년만에 파리에서 다시 치르는 올림픽이라는 역사적 사건이래지만 그 누군가도 불성실한 일꾼을 자처한게 아닐까, 그런 면에서 확실히 프랑스가 철학적으로 선진국가인가! 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ㅋ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부분은 양심의 가책에 대한, 칸트의 정언명령 치료법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206쪽에 나와 있는데 “도덕은 우리의 모든 기질을 억누르고, 오만한 자기애를 무너뜨린다(...)악이 아닌 선을 선택할 자유가 없다면 도덕은 그저 제약에 불과하다. 또한 도덕이 없다면 우리는 자유의 힘과 그 힘이 미치는 범위, 그리고 그 영향력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갈 것이다.”(p.207) 나는 이 부분에 밑줄을 그었다. 칸트의 그 유명한 정언명령이 이렇게 멋있고 웅장한 뜻인지 몰랐다. 매너라는 것이 악이 아닌 선을 선택한 자유로부터 만들어진다는 것을 배운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도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은 적다. 오히려 우울증, 공황장애, ADHD, 트라우마같은 질병에 더 많이 시달린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현대인들에게 철학을 권유하는 책, <철학의 쓸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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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멸종 - 거꾸로 읽는 유쾌한 지구의 역사
이정모 지음 / 다산북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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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보자마자 이정모 관장님이 쓰셨다는 것만으로도 당장 읽고 싶은 책이었지만, 제목도 참, 사람 궁금하게 한다. <찬란한 멸종>이라니. 내가 아는 ‘찬란’과 ‘멸종’은 아무리 탈탈 털어생각해봐도 교집합 지점이 없다. 하지만 저자는 과학자답게 프롤로그에서 제목에 대해, 시원하게 알려주고 시작한다.
“생명의 특징은 진화한다는 것입니다. 진화는 새로운 생명의 등장이죠.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려면 누군가 그 자리를 비켜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멸종이라고 합니다.(pp.6-7)” 새로운 생명이 등장하기 위해 퇴장할 때를 아는 것, 이것이 바로 ‘찬란한 멸종’이라는 제목의 의미이다. 그렇다면 조금 삐-뚤어질 수도 있겠는데? 사피엔스, 다음 생명체를 위해 다같이 멸종당하자고 이런 제목을 쓰셨을까? 그럴 리가. 기후변화로 찬란한 멸종을 당해왔던 자연사와 달리, ‘인류 활동의 결과’로 만들어진 위기이기 때문에 “우리만 변하면 해결되는 간단한 문제잖아요.”(p.7)라고 심플하게 쓰고 계신다. 찬란하게 멸종당하고 새로운 생명체에게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아니면 지속하는 인류가 될 것인가, 선택하라는 책, <찬란한 멸종>을 소개한다.

이 책에는 프롤로그 다음에 지질 연대표와 지질시계가 한페이지씩 차지하고 있다. 각각의 시기에 살았던 생명체들의 시점으로 이야기한다. 첫 번째 파트 ‘대멸종은 진행 중-기후 위기의 시간’의 처음은 2150년형 인공지능 시점으로 시작한다. 그 다음은 화성으로 테라포밍한 2150년 인공지능과 산호의 시점으로 계속되다가 마지막에는 지구의 시점으로 ‘친애하는 인류에게’ 남기는 궁서체 편지가 또 아주 기가 막히다. (이정모 관장님, 진짜 이 책 쓰시면서 넘 재밌었을 것 같다. 그런데 주제가 마냥 재밌어할 수 없는 내용이라 이렇게 설명하기도 참..)

두 번째 파트인 ‘공룡 멸종으로 탄생한 최고 포식자-사피엔스의 시간’의 시작은 일 만년 전 구석기인 아란의 시점이다. 이후 4만년전의 네안데르탈인, 만이천년전의 스밀로돈(거대한 고양이), 매머드 그리고 공룡이 직접 겪은 불구덩이 대재앙을 써내려갔다.

개인적으로 마지막 세 번째 파트, ‘진화와 공생의 장대한 시작-생명 탄생의 시간’이 가장 인상적이었는데 마치 인류가 살아남을 수 있는 힌트들을 숨겨놓은 장으로 읽혔다. 화산폭발에서도 살아남은 포스토수쿠스의 ‘변화와 혁신’(p.230)이 그랬다. 또 디메트로돈 할아버지와 손자와의 대화도 이 시기를 쉽게 읽어낼 수 있어서 좋았고 ‘나의 추위는 당신들의 더위다’(p.267)에서는 메가네우라의 추위로 인한 죽음이 석탄이 되어 지금 우리의 더위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내용이었는데 어제(8.4 서울 36도), 오늘의 폭염을 몸소 느끼며 메가네우라의 죽음이 절로 떠올랐다. 이후 저자가 상어와 삼엽충, 미토콘드리아로도 변신을 꾀한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맨 마지막 달과 바다와의 2인극이 정말 좋았다. 바다의 대사, “그들에게 시간을 좀 더 줬으면 좋겠어.”(p.345)라는 부분을 읽었을 때 난 울었다. 흑흑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 역시 소멸을 향해 가고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지구 역시 이미 창백하지만 푸른 빛을 잃고 황망한 우주로 변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먼 미래의 일, 지금 당장의 이 위기는 지구와 태양계의 정해진 운명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스스로 얼굴에 침뱉은 일이다. 이 일에 대해 “우리가 변해야 하죠. 생태계의 종 다양성을 늘리지는 못하더라도 지금만큼은 유지하고, 지구 기온을 낮추지는 못하더라도 기온 상승 추세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입니다.”(p.8)라고 말하고 있는 이정모 저자님의 <찬란한 멸종>이었다.

p.s 1. 나는 이 책이 ‘달의 은은한 빛과 바다의 파도소리’(p.345)가 되어 이 지구 위의 사람들에게 가 닿았으면 좋겠다.
2. 지구 멸망 직전 화성으로 테라포밍한 인류의 마지막이 미생물을 챙겨가지 않아 썩지 않는다는 상상 앞에서는 무릎을 꿇었다. 난 이제 이분 SF소설을 기다리려 한다.
3. 공룡을 좋아하는 어린 인류들이 더 잘 읽을지도 모르는 책이다. 저자의 관장님 이력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4. 이 책을 읽으면, 절반 정도(우주 기원쪽은 빠져있으므로)의 빅히스토리를 한 번에, 그러나 묵직하게 꿰어 찬 느낌이다. 저자님만의 유머와 글솜씨 덕분에 쉽고 재밌게 읽혔다는 것만 알아차리지 못한다면 이런 주제의 책을 읽어낸 내 자신, 칭찬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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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워크 저널 -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
카일라 샤힌 지음, 제효영 옮김 / 푸른숲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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섀도 워크 저널, 내 안에 숨겨진 무한한 가능성을 찾는 여정


*검은 천으로 감싼 촉감의 이 책 표지 위에는 THE SHADOW WORK JOURNAL이라는 글자와 가운데 빈 액자, 그리고 그 글씨의 그림자 버전으로 밑에 드리워져있다. 저자 카일라 샤힌의 가리키는 보물지도의 여정을 따라 이 책에 나의 글들을 가득 메우면 이 액자 틀 안에 어떤 그림이 그려질까? 그것은 순전히 나의 몫에 달려있다.

*카를 융은 “진정한 자기가 되기 위해서는 개인의 성장과 개성화(자기실현)의 과정이 필요하며, 이 과정에 그림자 탐구가 꼭 필요하다고 믿었다.”(p.17) 그러니까 ‘Shadow Work’이란, 그림자 작업이라고 번역할 수 있겠지만 여기서는 ‘그림자 탐구’를 의미한다. 총체적으로는 “자신의 그림자를 조건 없이 사랑”(p.24)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수지 작가님의 <그림자 놀이>라는 그림책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려보면 쉽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그 여자아이는 아이이고, 나는 어른이다 마음 먹으며 도전!!

21페이지에는 ‘생각의 덫’의 키워드가 적혀있다. 닻 내리기(맨 처음 내린 판단이 이후 모든 판단에 영향을 주는 것), 확증 편향(자기 생각과 일치하는 생각을 더 선호하는 것), 반발심(다른 사람의 요구와 반대로 하려는 반응), 매몰 비용의 오류, 더닝 크루거 효과, 역효과, 쇠퇴론, 액자효과, 부정 편향 이라는 이 9개의 키워드들이 개인적으로 많은 도움이 많이 되었다. 충조평판이 남으로부터 오는 덫이라면, 여기에 적힌 이것들은 나 스스로가 꼬아버린 풀리지 않는 덫이라는 생각이 들엇다. 특히 나의 마음 속에 청개구리 심리에 대해 상당히 의아한 점이 있었는데 ‘반발심’이란 덫으로 존재하고 있었구나, 그리고 심지어 이건 나에게만 덫이 아니라 남에게도 덫으로 작용한다는 것. (아니 그럼 반발심은 일반적인 건데 자꾸 요구하는 사람은 뭐지!!!!라는 생각과 함께...)

*책의 앞부분(한 50쪽 정도)를 되새기며 2장부터는 글쓰기에 도전한다. 처음부터 완전한 문장이 아니라 빈칸 채우기 정도로 가볍게 워밍업정도이니 부담은 느끼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생각해볼 질문에 대한 답을 쓰는 부분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정해진 틀에 맞추려고 내 개성의 일부를 감출 때가 있는가? 어떤 경우에, 어디에서 그런지 생각해보자.“라는 질문은 X세대시절부터 서태지님이 그렇게 노래했는데도 세상이 변한 것이 아니, 내가 변한 것이 없구나를 느꼈다!

*직접 쓰다보면 내 글씨가 나의 정신상태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왜 인지 내가 리얼리즘 소설의 작가가 된 느낌도 있다. 화려한 일상을 게시하는 SNS의 반대선상의 글쓰기를 하다보니 찌질하고 치사한 소시민인 ‘나’라는 인물을 확인하는 반복적인 글쓰기아닌가 싶은 순간이 온다. 하지만 아무도 안 보여줄거고, 니들의 ‘내면의 아이’도 마찬가지잖아라는 뚝심으로 인내해보았다. 이후 시각화 명상을 돕는 영상도 볼 수 있고 ‘나의 숨은 그림자찾기’(p.205)는 나만 적는게 아니라 온 가족이 다 같이 적는것도 의미있겠다 싶은 부분이었다.

”인생에 기적을 일으킬 힘은 이미 내 안에 있다!“라는 띠지를 두른 이 책을 쓰며 나의 그림자를 탐구한 것을 한 장씩 채워질때마다 잡지에 싣는 느낌이다. 나의 그림자가 실체를 드러낼수록 마냥 불안하고 우울하고 외롭고 혼란스러웠던 안개가 조금씩 걷히는 느낌이다. 한편으로는 처음에는 매우 진중하게 글쓰기를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유치한 나를 마주하는 게 좀 ‘어이없기 시작했다. (어이없다는 표현이 매우 정확하다) 이후 나는 내면의 아이에게 다양한 이름을 붙여주었다. 예를 들자면 ”데렐라 너 인물 과물입 중?“ 요런식으로 나의 그림자꼬라지에게 친해서 할 수 있는 장난을 치는 수준이 되었다.(잘되고 있는 건지는 잘..)

*그리고 글쓰기란 정말 치유 효과가 있는 Work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렇다. 나도 내가 글쓰기 연습의 일환으로 시작한 이 인스타에 이렇게 많은 글을 올릴 거라고는 시작하기 전에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이 경험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지만 다들 글쓰기하면 손사레친다. 그런 사람에게 이 <섀도 워크 저널>을 추천한다. 그리고 다꾸에 진심인 친구들에게 추천해주고 싶다. 그것보다 훨씬 자신에게 도움이 많이 될, 불꾸(불렛 꾸미기)!!!! 어떠신지?
#새도워크저널#푸른숲#불렛저널#셀프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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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 - 인류의 삶을 뒤바꾼 공진화의 힘
피터 J. 리처슨.로버트 보이드 지음, 김준홍 옮김 / 을유문화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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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대학교수인 피터 J. 리처슨과 로버트 보이드 두 명의 저자가 2005년도에 집필한  <Not by Genes ALone>을 2009년 <유전자만이 아니다>라는 제목으로 김준홍 교수님이 번역하신 적이 있다. 이 책을  2024년 을유출판사에서 다시 한번 교정하여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재출판했다. 영어제목을 구글번역으로 돌려보면 ‘유전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라고 나온다. ‘유전자만이 아니다’라는 첫 제목 보다 ‘유전자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가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느껴진다. 이번 제목 <유전자는 혼자 진화하지 않는다>로 제목이 진화되었다.독자의 문해력에 따라 공진화한 제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친다. ㅋ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문화는 ‘중요하다’부터 시작해서 ‘존재한다’, ‘진화한다’, ‘적응이다’, ‘비적응이다’, ‘문화와 유전자는 공진화한다’, 그리고 7장 ‘모든 문화는 진화론의 시각에서만 이치에 맞다’로 맺는다. 이 책의 서문에서는 이 책을 읽기 위한 기초단계로 진화사회과학(진화론을 사용하여 인간의 행동과 심리를 연구하는 학문)의 세 학파를 알려준다. 인간의 보편적인 심리를 다루고 있는 ‘진화 심리학’과 인간행동의 다양성을 연구하는 ‘인간행동생태학’, 그리고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이다. 그렇다, 이 책의 두 저자는 세 번째 연구자들인 것이다.(번역가 역시 그렇다)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에서 ‘유전자’ 중심이라면 이 책 중 모든 챕터에 문화가 들어가는 것으로 보아 이 책은 유전자와 함께 진화하는 ‘문화’ 중심인 셈이다. 유전자 관련 책은 몇 권 읽었지만 공진화에 대한 이해도는 턱없이 부족했던 나는 지금까지 살아남은 생물들이라도 잘 보존해서 함께 살아가자는 생태학 관점의 최재천교수님의 이야기가 공진화론의 베이스일 꺼라는 오해아닌 오해를 한 셈이다. 하지만 유전자-문화 공진화론의 손꼽히는 고전이라는 최재천 교수님의 추천사 응원에 힘입어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워낙에 저출산문제 큰 나라라 그런지 이 이슈를 ‘부적응’으로 다룬 5장이 개인적으로 재미있었다. “역사상 가장 부유한 사람들이 출산을 제어한다는 것은 놀랄만한 부적응이다. 인간이 지구의 생태계에 해를 입히는 존재라는 관점에서는 그렇게 제어하는 것이 칭찬받을 행동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자연선택이 선호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p.252)

“현대 인간 행동의 많은 부분은 유전자의 관점에서 볼 때 커다란 실수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p.253) 저출산이라는 문화의 부적응이 유전자 관점으로는 '커다란 실수'이고 이것이 나중에 어떻게 해석될지 궁금한 부분이다. 자연신학에 대한 부분도 눈길을 끌었다. “눈과 같이 매우 완벽한 기관이 존재한다는 것은 명백히 그것을 설계한 초자연적인 신이 존재한다는 주요한 증거였다.”(p.255)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다른 동물들 특히 문어의 눈 설계에 있어 조잡함은 오히려 “진화의 역사가 설계자의 손이 빚어낸 것이 아니라 눈이 먼, 점차적인 자연선택에 의해 개선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p.255)라며 진화론 쪽의 설명을 덧붙여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런 “적응주의적인 추론은 생물학자의 가장 강력한 도구 가운데 하나다.”(p.254)라고 인정하기도 한다.

 6장이 이 책의 핵심이다. 이 장은 우유는 처음부터 완전식품이 아니었음을 알려주며 시작한다. 사피엔스는 우유 속 당 성분인 락토오스를 소화하는데 필요한 효소가 부족하게 태어났다. 소를 가축화시키며 낙농업이 발전한 지역에서부터 진화되었기에 ‘성인의 락토오스 소화의 진화는 유전자-문화 공진화의 한 사례이다’(p.316)라고 한다.

결국 유전자만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 함께 진화한다는 주제에 관한 책이다. 나는 이 부분을 읽을 때 인간과 99%의 유전자가 동일한다는 침팬지같은 영장류와 다른 점이라고 설명해주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정한 모방을 할 수 있고, 누적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는 동물은 없다. 반면, 인간은 그렇지 않다. 거대한 진화적 구도에서 볼 때 인간의 사회적 학습 체계는 유전자와 함께 독립적인 승계 메커니즘으로 취급될 수 있다.(p.18)
“그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침팬지는 압도적으로 채집 식량에 의존하는 반면, 인간 식량 채취자는 추출 혹은 사냥으로 얻은 식량 자원으로부터 대부분의 열량을 얻는다.”(p.219) 이런 부분은 유전자로는 단 1% 다를 뿐이지만 함께 진화해온 문화의 차이가 이 영장류와 사피엔스와의 차이로 읽혔다.

2005년도 미국에서는 저출산에 대한 논의가 진화사회과학에서도 활발한 주제였구나를 새삼 느꼈다. 또 미국의 대학에서 이렇게 논문으로 책으로 서로의 의견이 왔다갔다하며 사회과학의 발전이 이루어지는 모습은 부러웠다. 우리나라 학회의 일반적인 모습과 비교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다. 뭔가 이런 진화론은 우리나라 젊은 층과 잘 어울리는 이론인데. 진화사회과학 분야에서 활발한 연구를 내놓을 우리의 MZ 학자들을 기대해본다.

#유전자는혼자진화하지않는다#김준홍#을유출판사#유전자#진화론#공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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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전지 인사이트 - 배터리 지식의 총집편
정용진 지음 / 원앤원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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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터리 지식의 총집편
<2차전지 인사이트>
흔들리는 전기차 패권, 누가 새로운 기회를 선점할 것인가?

이 책의 소감을 한줄로 요약하자면 ‘재벌집막내아들’이 삼성가와 한국의 발전사를 보여줬다면, 이 책은 2차전지를 둘러싼 전 세계강국들의 전쟁같은 사랑 싸움을 목격한 느낌이다.(특히 이 책의 1장, ‘전기사회의 서막, 2차전지의 미래’와 2장, ‘정치와 정책으로 맥락 읽기’) 4차산업에 들어선 오늘날, 태양력, 풍력처럼 흐르는 전기를 붙잡아둘 2차전지가 가장 큰 베이스산업이라는 사실은 자명하다. 전기자동차 뿐만 아니라 수많은 코드리스 제품들과 전기먹는 하마, AI산업, 그리고 AI의 몸체가 될 로봇과 드론 등 오늘날의 일상은 에너지를 충전해놓을 수 있는 2차전지의 발전이 관건인 세계다.

나도 왕년에 공모주로 LG에너지솔루션 주식을 한 주 받았더랬다. 다들 상장되자마자 팔던데 나는 이름이 맘에 들어 팔지않았다. 에너지 솔루션! 석유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이당시에는 동해바다에 석유이슈가 없던 상황) 에너지 솔루션을 해결해줄 종목이라는 부분이 참 맘에 들었다. 상장되고 더 살 마음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 물려있는 애들이 많아 개미중에서도 가장 작은 개미인 나는 한 주만을 가질 수 밖에 없었다. 작년인가 한참 최고가를 찍을 때도 난 팔지 않았고(이땐 게으름으로) 현재는 ‘주식투자란, 너처럼 하는 것이 아니다’를 보여주는 표어처럼 아직도 소듕하게 보유중이다. 이 책을 읽다보니 ‘아 이 종목이 그래서 그때 높아졌다가 지금은 낮아졌구나’를 (이제사!!!) 알수 있었다. 그래서 이 책 띠지에는 “2차전지 투자자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라는 문구를 미스코리아처럼 둘렀음을 알 수 있다.


3장 ‘2차전지 투자자를 위한 최소한의 지식’에서는 전기화학적 이해를 바탕으로 2차전지에 대해 접근한다. 화학도가 아니라면 용어가 좀 생소할 수도 있지만 2차전지에 재료가 한 두 개 들어가는게 아니므로 이 정도는 읽어줘야 4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어렵게 쓰지 않았다. 저자의 이력때문일 것이다. “현재 신한투자증권에서 자동차, 2차전지 섹션 애널리스트로 활동하고 있다”(책날개 저자 소개에서 발췌) 최소 이정도는 읽어줘야 4장 ‘2차전지 투자 매트릭스’에서 권하는 현재 2차전지에 뛰어든 기업들의 정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내가 소듕하게 생각하던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공시 매트릭스도 있어 눈여겨보았다.

이 책은 2024년 5월 소식까지 담고 있는 핫한 책이다. 그러니 AI의 단물이 다 빠져 씹던 껌처럼 느껴지는 투자자들에게 이 책을 ‘당장’ 권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1장부터 충격이었다. 전기자동차의 노동력은 내연기관을 쓰는 현재의 자동차 조립시 필요한 노동력의 10%만 필요하다는 부분과 우리나라에서 자동차 노동자들이 전체 노동자의 10%를 차지한다는 점을 읽으며 앞으로 우리나라 노조가 가야할길은 어디인가를 생각해보며 자동차산업이 정치적인 이유를 여기서 확실히 알게 되었다.
또한, 미중패권싸움이 결국에는 2차전지 싸움이란 것과 세계정치나 외교는 결국은 에너지때문이라는 것도. 석유파동 때와 마찬가지로 사피엔스는 달라진 것이 딱히 없다는 것도.
#2차전지인사이트#원앤원북스#정용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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