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를 뒤흔든 5가지 생체실험
김서형 지음 / 믹스커피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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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체실험을 대신한 동물실험. 인류는 이마저 대체할 첨단기술을 찾으려는 노력 중이다. “인간과 동물이 공유하는 질병은 2%미만이다. 게다가 동물실험에 이용된 동물의 99% 이상이 안락사에 처해진다.”(p.5)라는 부분은 처음 알게 되어 개인적으로 충격적이었다. 하지만 아직도 임상실험의 대상으로서 생체실험은 존재한다. 이 책에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적 배경을 분석하고 생체실험이 지니는 의미를 평가”(pp.5-6)한다.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은 긍정적인 영향과 논란을 분석하면서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성을 살펴보고 인류의 역사를 새로운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p.6)는 저자의 책 <세계사를 뒤흔든 5가지 생체실험>을 소개한다.

첫 번째 고대 파트에서는 의학에까지 영향을 뻗쳤구나 싶은 피타고라스로 시작한다. 이 부분을 읽으며 초등의대반이 성행중인 학원에서 시간이 남아돈다면 이 책의 파트 1을 추천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류에게 의학의 시작이 어떠했는지 미래의 의사들이 아는 것이 의미있겠다 싶은 고대의학 파트였다. 이집트, 아즈텍 문명에서 심장을 중요시 했다는 이야기나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실제로는 “1948년에 스위스 제네바에서 세계의사협회가 채택한 제네바 선언”(p.32)이었다는 이야기는 여기서 처음 읽었다. 그리고 “나는 나이, 질병, 장애. 인종, 성별, 국적, 정당, 성적 지향, 사회적 지위 등을 초월하여 오직 환자에 대한 나의 의무를 지키겠습니다.”(p.32)는 히포크라테스 선서 8번 내용이지만, 정작 그는 “오직 그리스인만이 의술을 베푸는 대상”(p.35)이라고 한다. 인종, 국적, 정당, 사회적 지위 이런 게 중요한 사람이었다는 것!!!!!!!!!!!!
두 번째 중세시대는 특히 교황과 사이가 좋진 않았지만 합리적이고 개방적이었던 프리드리히2세의 생체실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체실험 대상은 죄수들로 “배에 구멍을 뚫어, 죽는 순간에 인간의 영혼이 육체를 떠났는지를 확인하려 했다.”(p.125)라든지 인간 언어의 기원을 궁금해해서 어린아이를 대상으로도 실험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단테는 <신곡>에서 프리드리히 2세를 이단 지옥에 넣었다고!! 세번째 나치에 의한 실험은 우생학 관점에 따른 것으로 600만 명이라는 제노사이드를 다루고 있다. 네 번째 731부대는 우리나라가 당한 역사적 사건이기에 더 마음 아팠는데 열 받는 점은, 은밀하게 자행되어 생체실험 역사상 가장 잔인하게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대부분 마취 없이 행해져서 끔찍하고 고통스러운 생체실험”(p.188)인 부분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이 부분 읽으며 미간에 주름을 펼 수가 없었다 흑흑) 다섯 번째는 미국 1920년대의 KKK 이야기로 시작된다. 흑인을 대상으로 무료 건강관리를 해준다는 연방정부의 말을 듣고 속아 매독 실험체가 된 가난한 소작농들의 이야기다.

그러면서 저자는 이러한 생체실험과 동물실험의 시간을 지나 이제는 인공지능을 활용한 실험이 훨씬 더 정확해져 가고 있다는 희망을 ‘나오는 글’에서 써준다.(그제서야 주름 핌) 이 끔찍한 생체실험을 통한 인류의 의학 발전으로 150세 수명을 바라보고 있는 요즘이다. 죽는 것도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치매나 의식중태로 빠져버리면 나 역시 무수한 약물로 생명을 연장해야 하는 생체실험체가 된다고 생각하니 어서 빨리 연명치료거부 서약서를 써야겠다는 생각밖에 안든다.
한편으로는 다행히도 이런 실험 기록물들이 살아 남아 이렇게 책으로 보는, 바로 지금을 사는 우리가 과거에 이런 생체실험이 자행되었음을 목격할 수 있구나에 대해 생각해본다. 뭐니뭐니해도 “중요한 것은 과학을 넘어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태도다.”(p.80) 생체실험을 통해 모든 생명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새삼 깨닫게 되는 책, 제목은 조금은 섬뜩한 <세계사를 뒤흔든 5가지 생체실험>이었다.

p.s 이 책 내용도 알차지만 그림도 알차다. 목차 다음인가 렘브란트가 그린 <니콜라스 튈프 박사의 해부학 강의>(1632년) 작품으로 시작해서 꽤 많은 회화를 볼 수 있다. 나는 특히 후반부의 구스타프 클림트 <생명의 나무>가 좋았다. 우주와 생명의 기원을 상징하는 그림이라는 생각을 그냥 추상적으로만 하며 보다가 막상 이 책과 연관지어 “생명이 공통 조상에서 분화되어 다양한 종이 나타나는 방식으로 진화한다고 생각”(p.220)하며 보니 새삼 새로운 그림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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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억을 만드는 스몰머니 투자법 - 초인 용쌤 유근용이 알려주는 소액 투자의 정석
유근용 지음 / 쌤앤파커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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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은 돈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다.”

티비에 국문학자가 나와 흥부의 아이들과 심청이를 비교하는 내용을 본 적이 있다. 흥부의 열두 아들들은 이름도 없지만, 심청이는 글의 주인공이면서 제목이다. 흥부가 매맞이해서 쌀을 벌어오면 아들들은 그저 먹기만 하지만, 심청이는 눈먼 심봉사가 저지르는 일들의 사고를 뒤처리하며 책임지기 때문에 야무진 딸래미가 될 수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프롤로그에서 1장으로 넘어가는 페이지에 적혀 있던 저 문장을 읽으며 이런 심청이가 떠올랐다. 자본주의사회에서 책임진다는 것, 그것은 돈에 우선순위를 매기는 일 아닌가.
이 책은 ‘돈은 자기 자신과의 지독한 싸움’이라고 말하는 유근용 저자가 쓴 글이다. 맥도날드 알바생이었는데 지금은 100억 자산가가 된 인물임을 암시하는 띠지를 둘렀으니 그 주인공일 것이다. 책 날개에 ‘문제아에서 독서 멘토로, 실천하는 삶을 거쳐 투자자이자 사업가로 거듭난 100억의 사나이’라는 수식어구와 함께 ‘라이프체인징’에 관련한 모임을 카페, 인스타, 유투브 등에서 운영중이라 한다. 인스타를 하다 보면 ‘미라클 모닝’이나 ‘100일 필사클럽’, ‘마인트컨트롤 독서모임’같은 많은 그룹들이 성행하고 있음을 목격한다. 하지만 내 근처 사람이 직접 체험하고 있는 경우는 드물어서 와닿지 않았는데 이 책의 저자가 딱 이런 게시글 한가운데 서있는 그런 인물로 보였음을 고백한다. 광고아냐? 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저자 스스로가 주식에는 자신없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문장을 읽으며 신뢰감이 생겼다.

이 책 1장에서는 어디서 많이 들어는 봤으나 ‘나중에 찾아봐야지’라고 생각만했던 금융쪽이나 투자쪽 용어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은행창구에서 흔히 보는 만기환급형 방카슈랑스 보험같은 정보는 물론, 연말정산에 있어서 13월의 보너스가 아니라 그만큼 소비를 많이 한 것이라는 지적도 새로웠다. ISA 계좌에 관한 설명 역시 많이 도움되었다. 뭐니뭐니해도 청년이라면 받을 수 있는 정부의 혜택에 대해서도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어 20대~30대 초반에게도 더 많이 도움받을 수 있는 책이다. 2장에서는 콘텐츠로 시드머니를 모으는 법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이쪽 광고를 엄청 본 것 같다. 대체 뭐하는 게시글인가 했는데 이런 무브먼트(?)에 관련된 거였구나, 이 책을 보며 알게 된다. 블로그나 유투브쪽의 채널 운영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적합하다. 꼭 운영때문이 아니더라도 “한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기록들이 나를 더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p.89)라는 부분도 좋았다. 역시 부자들은 마인드가 달랐다. 하지만 그 마인드는 그냥 생기지 않고 기록을 통해 다져지고 또 다져짐을 알 수 있는 장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리아킴이 이끌고 있는 원밀리언의 유투브는 구독자만 2,620만 명이지만 수익은 0원이라는 것도 이 책을 통해 알았다. 댄스를 보여주는 채널이다보니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 저작권자들에게 수익이 돌아간다고 한다!!!!! 3, 4부에서는 꼭 청년들이 아니어도 50만원 가지고도 투자를 할 수 있는 토지 지분 경매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려준다. 경매과정부터 써야하는 계약서양식이나 토지 지분과정에서 수익화되는 이야기까지 써있어 이쪽에 관심있는 사람이고 ‘라이프체인징’카페는 가입하기 좀 그렇다면 이 책을 잡으면 되겠다.

에필로그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말한 복리의 마법에 대해 적고 있다.

“여덟 번째 세계 불가사의는 바로 복리다, 복리를 이해하는 사람은 돈을 벌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돈을 쓰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p.303) 인생을 복리로 살 순 없을 것인지에 대해 누구보다도 먼저 치열하게 고민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유근용씨만의 기록, <스몰머니 투자법>이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스무 살을 맞는 조카들에게 선물용으로 큰 인기였던 <세이노의 가르침>이 있었다. 만약 두 권을 선물할 의향이 있다면 난 한 권은 이 책을 추천하겠다. <세이노의 가르침> 후반부의 ‘은행저축은 목돈을 만들 때까지만 해라’, 이 챕터가 살짝 부실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다면, 주식은 영 맞지 않고 아무래도 부동산이 더 좋아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들에게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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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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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베트남 어머니와 한국 아버지 사이에서 파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난 재일이의 이야기다. 소설 속에서 재일이만 파란 피부인 건 아니고 돌연변이처럼 아주 소수의 아이들이 파란 피부를 가지고 태어나는 그런 세계를 그리고 있다. 처음에 읽을 때는 한국에서의 다문화 아이로서의 삶도 녹록치 않을텐데, 여기에 돌연변이 파란 피부까지 재일이에게 덧칠한 작가가 좀 너무했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얘를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시키는 게 아닌가! 이런 공간의 이동이 다음 이야기를 예측할 수 없는 흥미로 이끌었다. 물론 재일이의 삶은 전혀 재밌지 않다. 어느 장소든 구석에서 얼어있는 애 같았다. 그런데 눈이 있고 마음이 있어 다 보고 느끼는 그런 슬픈 얼어붙은 아이.

다 읽은 지금 이런 공간의 변화로 가장 눈에 들어온 것은 재일이 아버지이다. 그는 베트남 와이프를 두었으며 한국에서의 직업은 다문화노동자 관리직이었다. 미국으로 간 후 그 다문화노동자들이 하던 일을 직접 하게 된다. 그러니까 한국에서의 재일 아부지는 미국에서의 백인남성 노동자가 주로 하던 관리직 지위였으나 이민 온 후, colored, 멜라닌을 가진 다문화노동자 계급으로 격하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세계의 법칙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자기는 여전히 미국과 같은 편인, 동등한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재일이는 달랐다. 학교라는 미국 사회로 내던져진 재일이는, 삼촌과 해먼 교장선생님 그리고 셀마, 파란피부의 백인 친구 클로이를 통해 이런 세계를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졸업 후 이런 세계를 직관하며 파란 피부를 찾아 나서면서 소설은 끝난다. (너무 대놓고 스포했나? 하지만 중간중간 이 아이의 고립된 슬픔이 파랗게 묻어나는 표현은 직접 읽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아니 작가가 자꾸 얘를 뻑하면 찬 물에 담궈.. 가뜩이나 애 삶이 차가운데 ㅜㅜ 그래서 표지가 이런 그림일지도?)

왜 하필 블루 멜라닌일까? 라는 질문이 읽다보면 마구 생긴다. 나에게 블루란 이브 클랭의 IKB같은 의미인데 순수함 이런 것. 그런데 제목이 이상하다. 블루멜라닌을 가진 재일이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면 ‘블루 멜라닌’이어야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블루를 뺀 <멜라닌>이 제목이다. 여기에 작가의 의도가 살짝 엿보인다. 나 역시 재일아부지처럼 한국에서는 다문화아이들과 다르다고, 그래서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생각을 나도 모르게 가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백인들의 나라에 갔을 때 나 역시 멜라닌이 있어 이유없이 차별받고 격하되는 종족이라는 점을 상기하라는 뜻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한국사회라는 우물에 살고 있는 내가 굳이 이 인종주의라는 뜨거운 냄비속으로 작가에 의해 내던져진 이 소설이 파란 멜라닌처럼 낯선 것도 사실이다. 의외로 이런 숙제같은 생각은 이 책 속의 루크, 앤더슨 부인, 윈스턴 보안관 같은 백인그룹을 통해 해소되었다. “혹시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면 얘기해. 언제든, 뭐든.”이라고 말하며 친절해보이지만 경멸의 눈빛을 가진 백인 그룹. 셀마가 토머스 제퍼슨을 언급하며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이 백인그룹에 대한 각주처럼 읽히기도 했다. 토머스 제퍼슨은 미국역사속에서 독립선언문 작성에 참여하면서 저항할 수 있을 때까지 저항하라고 한 사람이지만, 알고보면 목화솜을 따야하는 노예가 필요했던 남부 출신에 역시 농장을 운영하고 있었고 노예를 몇 백명이나 데리고 있었던 사람이라는 것. 그런 위선이라고 해야 하나 이중적인 면이라고 해야 하나, 돈도 있고 어느 정도 사회적인 위치도 있어 약자를 도와주겠다는, 동정을 베풀겠다는 백인들이다. 나 역시 한국사회에서 다문화사람들을 앞에 둔 나의 눈빛이 수평적인지, 수직적인지 한번 되돌아보라는 그런 의미로 다가오는 인물들이다.

이 소설책을 잡은 내내 마이클 센델이 이야기하던 미국의 모습이 파란 멜라닌을 가진 재일이의 눈을 통해 읽혔다. 그래서 “세계는 무채색이었다.(p.201)”라고 자조했던 재일이의 소설 속 세계가 이 소설 밖에서는 재일이 덕분에 파랗게 물들어가길 응원한다.

p.s 맨 마지막에 ‘작가의 말’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독자’에게 감사하다는 멘트가 적혀 있다. 의외로 이 ‘정체를 알 수 없는’이라는 수식어가 colored 혹은 어떤 사회에서의 그룹에 속한 독자로 지정하지 않은, 순수한 의미의 형용사로 들렸음을 고백한다. 그래서인지 이 부분까지 읽었을 때 나도 모르게 파랗게 물들어 버렸다. 이제 내가 가져야 할 것은 재일이가 에필로그에서 보여주는 용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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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
율리 체 외 지음, KATH(권민지) 그림, 배명자 옮김 / 다산어린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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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학년 A반의 반장 마리에의 건강 샌드위치가 자꾸 도난당한다. 그녀의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준 겉포장지만 덩그러니 남은 채 말이다. 그러다 마리에의 가방에 손을 댄 콘라트의 사진이 찍히고 범인으로 몰리면서 A반 아이들은 ‘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라고 선언한다. 이런 줄거리를 가진 이 책은 독일인 율리 체와 엘리사 호벤 글을 쓰고, KATH라는 신기한 예명을 가진 권민지씨가 그렸다.(어쩐지 토르벤이 굉장히 힙하게 그려져있는데 홍대스타일(!!!) 이더니만. 일단 이 책은 질감이 무척 특이하다. 약간 벨벳 같은, 손에 잡으면 찰싹 붙는, 마치 ‘내 손 안의 샌드위치’ 요런 느낌의 책이다. 마리에의 어머니의 ‘슈퍼샌드위치, 슈퍼라이프’라고 써있는 겉 포장지 대신, 책 제목 <우리들의 재판을 시작하겠습니다>가 새겨져있는 표지다.(식빵도 일반 식빵 아니고 건강한 호밀 디테일 진심 짱)

*인물
핫걸 마리에 반장과 그녀의 슈퍼걸-엘피, 클로에, 피나르, 아빠가 경찰관이어서일까 이 사건을 파헤치기 시작한 (마리에를 짝사랑중인) 토르벤, 말은 없지만 항상 ‘압도적 1등’인 미카, 나이든 선생님이라 시청각자료를 틀어주는 현대식 문물에 익숙하지 않아 시간을 허비하는 쉰델바르트-분제만 선생님, 관리인이 키우는 하르트무트 등등 다양한 인물들이 나온다. 슈퍼걸 세명은 <동물농장>에서 양들이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러면 미카 역시 ‘벤자민’(동물농장의 캐릭터)인가 싶은데 조지오웰의 당나귀보다 훨씬 중심을 잘 잡아주는, 그런 똑똑한 지성인으로 나온다. 사실 화려한 캐릭터는 마리에나 토르벤이 다 해먹었지만 이 소설은 미카 없이 재판까지 가지도 않았다에 한표! 또, 범인으로 몰려 절망스러워 보이는 콘라트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콘라트의 모습이 어쩐지 슬펐고, 거의 절망스러워 보였다. 그런 모습 때문에 미카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미카는 이런 상황을 표현할 적절한 단어를 알고 있었다. 부당함! 자신이 당하지 않은 일에 부당함을 느끼며 마음이 아플 수 있다니, 미카도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pp.43-44)”그렇다. 미카는 ‘부당함’에 꿈틀거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런 어록도 남긴다. “투표라니, 바보 같은 생각이야. 진실은 다수결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p.56), “우리에게 필요한 건 재판이야.”(p.60). 평소 잘난척 하는 ‘압도적 1등’이었다면 그의 말들이 이 반에 먹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카는 최근 2년보다 요새 이틀동안 말을 더 많이 했다는 문장처럼 이 책에는 써있지 않지만 그의 침묵과 겸손이 그의 말에 무게를 실어주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작가선생님의 요런 표현이 참 재밌었다.
“콘라트를 향한 분노는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는 도베르만 같다. 다른 아이들과 함께 콘라트를 따돌렸을 때 든 죄책감은 귀가 처지고 꼬리를 내린 시추이다. 그리고 토르벤 때문에 때때로 생기는 짜증은 고개를 빳빳이 들고 늘 눈을 굴리는, 거만한 달마티안이다.(p.72)

이 이야기가 끝나고 부록에는 형사재판절차에 관한 Q&A나 법개념에 대해 써있다. 증인은 진실을 말해야 하지만 ”피고인은 거짓말 혹은 지어낸 이야기를 하거나 아무 말을 하지 않아도 위증죄로 처벌되지 않는다“(p.121)라는 부분은 나도 처음 알았다!!

범인은 누구인가라는 소설적인 재미도 재미지만 아이들이 직접 재판을 하려는 이 자기주도적인 아이들이 가장 부러운 책이었다. 슬이 역시 너무 재미있게 읽었다 하여 ”넌 이 책 읽고 뭐를 느꼈니?“ 물으니 ”나는 읽는 내내 건강 샌드위치 말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먹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라는 먹는 것으로 끝났다는...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얘네는 6학년이고 슬이는 아직 5학년이다 ㅜㅜ. 일 년 내에 많이 성장하겠지 아멘.

p.s 어제 도서관가다가 비가 와서인지 회양목 밑에 버섯이 자랐길래 콘라트를 따라했더랬다. 그런데 그 옆에 뭐가 버글거려 자세히 보니 개미가 매미머리를 들구 흥분해서 들구가는데 마치 인간들이 투쁠 소고기 보고 신난 발걸음이랄까, 그런 걸 느꼈다!!!!! 매미머리에 눈이 그대로였다... 과연 자연을 사랑하는 거미를 살려주는 마리에를 보고 반한 콘라트는 이런 자연의 무시무시함에는 어떻게 대처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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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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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파랗게 보고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하게 하는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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