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 - 기자·PD·아나운서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
김창석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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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글을 써야만 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백만가지가 넘는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이 책에서 “말은 뱉는 순간 공중에 사라져버리지만, 글은 새로운 생명력을 가진 기록이 된다.”(p.23)는 말이 마음에 와닿았다. 글의 생명력! 어쩌면 나는 그런 이유로 이 인스타에 책의 기록을 남기는 건지도 모르겠다.

의외로 나는 이 책에서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단어에 꽂혔다. 토론을 가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책읽어온게 맞나 싶을 정도로 일반화하고 교훈으로 끝맺는 사람들. 그런 스타일을 저자님도 ‘결별’하라고 충고하는 내용을 읽으며 더 푹 빠져서 읽었음을 고백한다. 뻔한 글, 식상한 줄거리, 교훈적 결말 나도 정말 싫어하지만 글쓰기 숙제할 때 가장 편하면서 빠른 지름길이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다.

나는 개인적으로 2장 ‘논술, 설득하는 글쓰기’ 중 ‘논증이 관건이다’가 가장 와닿았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설득력이 높은 논술을 쓰려면 논증을 잘해야 한다”(p.125)라고 주장하며 그 방법에 대해 본인만의 노하우를 아낌없이 풀어놓았다. 열두 가지 정도 되는데 난 그 중 “둘째, 논증할 명제를 나열하거나 병렬하지 않는다”(p.140)와 “셋째, 추상의 층위가 한 단계 높은 논거를 찾아 계단식 논증을 한다(p.142)”, “일곱째, 낡은 논제일수록 자신만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쓴다(p.162)” 그리고 “기타, 논증할 때 피할 것과 변증법적 사고의 중요성(p.181)”에 대해 자세히 읽었다. 이 부분에 대해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글까지 제시되어 있어 한겨레센터의 20년 글쓰기 선생님 이력은 이런데서 드러나는 구나 싶었다.
이후 퇴고하는 법이나 벤치마킹할 글을 추천해주는 부분도 정말 좋았다. 뭐니뭐니해도 ‘풍덩 빠지는 문체’에 대한 파트가 가장 눈에 들어왔다. 이 챕터에서도 좋은 문체의 소설가와 시인들을 추천해준다. 역시 여성 소설가로는 오정희씨가 일 번이다. 시인으로는 김혜순 씨가 일 등으로 써있다. 김행숙 시인님은 접해보지 않아 한번 도전해보려 한다.

이 책은 당연히 논술을 대비하는 수험생이나 언론고시 대비한 취업준비생이 읽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같이 서평같은 글쓰기에 관심있는 일반인에게도 많은 도움이 된다. 논술을 하기 위해서는 논증할 명제를 찾을 것, 구성에 신경쓸 것, 스테레오 타입이 아닌 자신만의 생각을 담을 것, 그리고 퇴고와 글을 잘 쓰는 명사들의 글을 관찰할 것. 내가 얻은 이 지식들을 이제 직접 써볼 차례다!(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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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는 도시 - 자동차에 빼앗긴 장소를 되찾는 도시설계 지침서
송민철 지음 / 효형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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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만나는 도시> 앞에는 ‘자동차에 빼앗긴 장소를 되찾는 도시설계 지침서’라고 써있다. 자동차 도로를 들어내는 커다란 손이 그려진 그림이 인상적이다.

유럽은 어느 나라든 구조가 비슷하다. 시청을 중심으로 앞에 광장이 있다. 보통 분수대가 있는 이 광장에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은 유명한 관광지이기도 하다. 궁전을 개조한 박물관이나 이름 있는 미술관이 근처에 있다. 차를 타려면 10분 정도 걸어야 한다. 좀 더 큰 도시의 경우 구시가지, 신시가지라는 이름을 붙인 거리들이 방사형으로 뻗어있다. 우리나라도 오늘날에야 시청 근처인 광화문 앞이 광장처럼 꾸며졌지만 바로 코앞에서 쌩쌩달리는 차가 다니는 풍경은 유럽과 달리 아직 위험해보인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야 왜 유럽의 도시들이 그런 모양새인지 이해했다. 그 나라에는 있고 우리나라에는 부족한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책, 바로 <사람을 만나는 도시>이다.

그렇다고 차를 없애버리자는 편향적인 책은 아니다. 이 책의 4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읽어보면 저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그려져있다. “가상의 지역에 3S(Secure, Separate, Serve)를 적용하는 도시설계 과정을 단계별로 소개”(p.117)한다. 그 예시로 대중교통을 확보해야 함을 강조하고 보행거리는 최대 10분 이내로 제한한다. 보행로와 차도는 겹치지 않도록 설계하기 위해 차도가 마을의 가장자리를 도는 평면적 분리 방식을 제안하기도 한다. 또 들어설 공공건물이나 상가, 마을 시설 입지에 대한 면밀한 검토를 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이라는 도시가 ‘고쳐쓰기’가 가능할 것 같다는 희망도 살포시 보았다.

이 책의 주제는 명확하다. “도시를 설계하는 일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만남을 일으키는 장소를 만들고, 지금처럼 자동차가 도시의 주인 행세를 하며 정작 중요한 ‘사람들의 만남’과 ‘소통’을 방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교통사고, 탄소 배출과 환경 오염 등 자동차로 인한 도시 문제가 완화되고, 더 나아가 지역 경제 활성화, 계층 간 융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p.7) 차도를 확보하느라 사람들이 편하게 걷지 못하고 주차자리를 만드느라 사람들이 만나는 공간을 확보하지 못하는 오늘날의 서울을 살고 있다. 반려동물들은 점점 많아지지만 아기와도 같은 보살핌이 필요할 정도로 이 도시에서 키운다는 것이 불가능한 미션처럼 보인다. 하지만 ‘사람을 만나는 도시’를 만들고자 하는 저자의 이야기를 들으며 차를 타지 않고도 생활이 가능한 마을의 모습과 여유롭게 반려동물을 키우고 이웃집 아이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꿈꿔본다. 이 일을 저자에게만 맡기지 않고 내가 살고 싶은 도시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하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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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한드라 김의 가면 증후군과 솔직한 고백
패트리샤 박 지음, 신혜연 옮김 / 서사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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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증후군(imposter syndrome)에 대해 작가는 "왠지 내가 그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그런 기분"(p.4)이라고 설명한다. 주인공은 아르헨티나와 한국 이민자의 자녀로 뉴욕 퀸스에서 태어났다. 남미도,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 태어났으니 찐 미국인인이지만 그녀의 넓적한 동양인 외모와 읽기 힘든 알레한드라라는 남미의 이름은 미국인이 아닌 '가짜가 된 듯한 느낌'으로 살게 한다.

그녀는 현재 퀘이커 오츠 학교의 마지막 학년을 다니고 있다. 주변친구들은 레스토랑에 가서 아무렇지도 않게 14불이 넘는 스테이크를 주문해 먹지만 그녀는 머릿속으로 피나는 계산을 마친 후  6달러짜리 차를 겨우 시킨다. 우리나라로 치면 사회적배려자같은 느낌이랄까? 에일에게 김이라는 성을 물려준 아빠는 재즈를 좋아하는 노동자였으나 작년에 불의의 사고를 당해 현재 아르헨티나 출신의 1.5세대 엄마와 함께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아빠를 잃은 엄마와 이 퀸즈라는 곳에서의 탈출을 꿈꾸며 주인공 알레한드라(이후 에일)는 와이더 대학 입학을 위해 에세이를 쓰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한국인 DNA를 가졌지만 아르헨티나의 영혼을 가진 채 미국에 사는 여주의 아빠가 인상적이었다. 작가는 그가 좋아하는 재즈와 그가 가족을 위해 요리한 엠파나다로 아빠라는 인물을 보여준다. 재즈라는 장르는 불협화음을 기본으로 한다. 악보 그대로 치면 그건 재즈가 아니다. 동양인의 외모를 했지만 한국인이 아니라 아르헨티나 사람이었던 아빠, 하지만 남미사람에게도 중국인 취급을 받았던 그녀의 아버지는 재즈같은 속성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미국 사회에 이민을 와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는다. 에일은 아빠가 만들어주던 엠파나다라는 남미의 만두를 그리워한다. 소설 중간 이후 아빠의 여동생인 윤아이모가 아빠의 추모식을 열어 에일과 그녀의 어머니가 참석하게 되는데 이 엠파나다라는 만두를 한국인 커뮤니티 사람들이 지적하자 에일이 분노하는 장면이 있다. 따지고 보면 이 만두는 남미의 엠파나다도, 한국의 만두도 아닌 그녀의 아버지의 정체성을 가리키는 것이었고 지금 그녀 역시 자신의 가면들 사이에서 초대받지 못한 자의 운명을 온몸으로 체감중이었기에 더 그랬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내가 직접 만나보기 힘든 똑똑한 미국인 아이들(클레어, 로럴, 조시 벅 등)을 관찰할 기회를 얻었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고3인건데 수능시험을 위한 문제풀이를 주로 하는 한국의 교육과 달리 어떤 수업이든 생각과 글쓰기를 중시한다는 점이 와닿았다. 그래서 에일은 평범한 일상을 살면서도 끊임없이 정체성에 대한 자극을 받는 게 아닐까 싶었다. 특히나 학교 교육 자체도 다양성 존중을 강조하고 있어 이 주제에 대한 에세이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사실 이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도 현재 사회적 배려자라든가 지방에 있는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을 대상으로도 입학을 허가해주는 문제와도 연결되어 있어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읽히지 않기도 했다.

이 책, 굉장히 흥미롭게 잘 읽었다. 가독성도 좋아서 수능시험 하나에 올인하는, 우물안 개구리와도 같은 중고등학생들이 꼭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른인 나도 이 책을 읽으며 현재 세계는 다양성에 대한 이슈가 어느 단계에 이르렀는지 볼 수 있었다. 다문화 정체성에 대한 문제와 시각은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입문 단계이다. 그들은 어떤 가면 증후군을 쓰고 있는지, 또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생각해볼 수 있는 좋은 마중물이 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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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라 - 2024 제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작
김아인 지음 / 허블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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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4회는 <천 개의 파랑>이, 6회는 <라스트 젤리 샷>이 받았다.

에피네프라는 전염병이 창궐한다. 그래서 넷 중 한 명은 죽은 이후, 살아남은 미래인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사는, 지금이 AI의 시작인 시대라면 이 책 속 세상은 AE(Artificial Eden)가 진행중이다. AE, 이 기업은 인간의 뇌와 척수만으로 데이터화하여 갈 수 있는 세상을 창조했고, 현재 5억명이 조금 안되게 입주하여 유지, 보수하고 있다. 살아남은 이들 중 AE에 입사하면 에피네프 백신을 맞을 수 있다. 이 곳에서 죽은이들의 뇌와 척수를 제외한 “남은 신체인 ‘반송체’를 폐기하는 일‘(p.28)을 담당하는 웨이시안이 남주인공이다. 그는 이 전염병이 돌기 전 홍콩 염습소에서도 일했다. 그의 여자 친구 페이는 AE가 가짜천국임을 증명하려 파고드는 기자이다. 이 AE를 원하지 않던 페이가 강제입주 당했음을 알게 된 웨이시안은 육체를 동면시키는 방법의 로밍셀이라는 새 기술을 연구해낸 하라바야시 가스미와 함께 AE가 은폐하려는 일들을 밝히려 애쓰며 소설은 전개된다.

읽으면서 웨이시안의 직업이 눈에 들어왔다. 에피네프 이전에는 사람이 죽으면 육체와 함께 영혼도 사라졌다. 그리고 추모가 있었다. 전염병 이후의 세계에서는, 육체는 사라지나 뇌와 척수가 남아 영혼은 AE의 세계로 이전되므로 추모의 의미가 상실되었다. 영혼이 분리된 육체를 마지막으로 추모하는 사람이 웨이시안이라는 의미이다. 그 많은 시체를 처리하던 남주였기에 죽으면 거기서 끝을 맺어야 한다는 페이의 이야기에 함부로 대답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웨이시안의 성격이 애매모호한 이유다. 페이와 달리 웨이시안은 자신의 생각을 남에게 강요하려 하지 않는다. ”그런 건 모르는 거야. 네가 남들 인생을 정하지 마.“(p.206)라고 마지막 부분에 이야기하기도 한다.(이후는 스포라 말을 못하겠음 읍읍) 나는 궁금하다. 하라바야시와 웨이시안은 죽음앞에서 뇌와 척수만 남길 것인지, 육체는 동면시킬 것인지. 아니면 AE를 선택하지 않을지.

신으로 불렸으나 수명이 유한하고 또 자신이 생각하던 방향과 다르게 흘러간다는 이 프로젝트의 개발자 라만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의 애매함에 빠져들었다. AE가 능력있거나 특출난 이들을 강제입주 시키는 것만큼은 확실히 잘못되긴 했지만, 그거 빼고는 이 시스템의 옳고 그름에 대해 생각하기 쉽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하라바야시도, 웨이시안도 이 AE의 세계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 세계를 없애려는 황신부가 오히려 악의 축으로 보인다. 이 불확정성과 불안함이 이 소설의 아우라로 느껴진다. AE에서 빅데이터화되어가는 페이를 설득하기 위해 웨이시안을 보내는 전개라던가, 페이의 인격 데이터를 삭제하는 프로그램을 아네모네라는 꽃잎으로 표현하는 서정성은 덤.

이 작품이 독특한 것은 ’동아시아 SF‘-한국인 작가가 썼고 주인공은 홍콩출신의 웨이시안이며, AE의 주요 기술은 일본인 여성, 하라바야시 가스미가 연구해낸다는 점이다. 홍콩이 지금은 반환되어 사라진 나라라는 생각을 해본다. 육체와 영혼에 대해 뼛속 깊은 유전자가 새겨졌을 웨이시안이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만들어주는 설정이라고 상각한다. 그 밖에 ’에덴‘이라던가 ’스파이라‘와 같은 그리스어를 어원으로 하는 유럽인 중심의 세계, 그 이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점도 맘에 든다.

또 나는 개인적으로는 황신부 밑에서 일하지만 선한 사마리아인 폴이 인상적이었다.
”저는 그런 유일한 권위라는 게 사람보다 중요하다곤 생각하지 않습니다. 의도나 형태가 수억 명을 부조리한 죽음에서 벗어나게 해준 AE를 파괴할 이유가 된다고도 생각하지 않고요.“
AE와 종교, 두 개를 대척점에 위치시키며 이분법적 논리에 빠진 황신부를 구원할 폴을 응원한다. 폴이 벗어주는 외투를 입고 살아남은 웨이시안은 이후 더 용기있게 행동한다는 점에서도 마음에 진하게 남았다.

AI가 진행중인 오늘날을 생각해본다. 기후위기로 더 다양한 전염병이 우리를 찾아올 것이라는 기사를 읽는다. 이 불확실성의 시대에 태어난 작가들의 소설을 읽는다. 불안함 가운데에서도 소중한 것(페이의 소원)을 지켜내는 웨이시안을 만난다. <스파이라>를 덮으며 ”현실로 돌아가는 문을 열었다“(p.207) 나 역시 내일이면 어떤 새로운 기술이 펼쳐질지 모르는 불확실한 시대에 살고 있다. 작지만 소중한 것을 지켜낼 용기를 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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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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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신료 전쟁> :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를 탄생시킨 향신료 탐욕사, 최광용 지음

*요즘은 시내의 중심가만 나가봐도 세계 여러나라의 음식점들이 즐비하다. 이탈리안 피자집, 미국 햄버거집, 마라탕집, 베트남쌀국수, 태국음식점, 인도인이 운영하는 식료품가게 등등. 이 음식들이 우리나라에서 맛볼 수 있게 된 것은 아무래도 세계화의 추세를 따른 1990년대 이후부터일 것이다. 아직도 기억이 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구촌’, ‘세계화’라는 키워드를 섞어 그 특유의 억양으로 말하는 광경이. (이게 32년전이라니......) 그 당시의 순진한 나는 UN이 세계와 우주를 지키는 줄로만 알았다. 세계화가 무력에 의한 결과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나!!!! 어쨌든 이 <향신료 전쟁>은 정향, 육두구, 후추 시나몬 을 향한 유럽인의 이야기인 동시에 부제와 같이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가 덤으로 딸려오는 책이다. 어떻게 보면 네덜란드와 영국이 동인도회사를 운영하며 전쟁도 불사한 사업이야기일수도 있겠다. 향신료 뿐 아니라 튤립 종자도 이 회사에서 다룬 품목임을 떠올려본다. 대체 튤립이랑 후추가 뭐라고 이렇게까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엔비디아, 2차전지, 테마주에 어떻게든 투자해보려는 요즘 시대의 사람들과 그 당시의 사람들이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다.

1장 향신료를 찾아 대항해 시대가 열리다
2장 향신료 교역을 둘러싼 열강의 각축전
3장 북방 향로는 새로운 돌파구가 될 것인가
4장 네덜란드와 영국의 향신료 전쟁
5장 피로 물든 향신료 제도, 승자는 누구인가
6장 세계로 뻗어 나가는 향신료의 모험
부록 알면 알수록 더 향긋해지는 향신료 이야기

*인간 사냥꾼 식인종 부족이 있다는 세람섬을 읽을 때는 아무래도 뉴기니 근처이다보니 단백질 부족으로 인해 식인의 문화가 있을 수 밖에 없었다고 써있었던 <총, 균, 쇠>가 떠올랐다. 또 세부에 마젤란을 격파한 라푸라푸 동상이 세워져있다는 이야기는 새로웠다. 백인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제2차 영국-네덜란드 전쟁 중 런섬과 맨해튼섬을 맞바꾼 내용도 재미있었다. 마치 소련이 미국에 판 그린란드 이야기 같았다. 나는 6장이 가장 재미있었다. 아무래도 정향, 육두구에 생소해서였을 것이다. 우리나라 종자 소유권 이야기나 그 유명한 목화씨를 문익점이 가져오기 전에 이미 목화를 재배하는 곳이 있었다고 하는 내용, 또 향신료 도둑(심지어 젊을 때는 신학을 전공한!) 피에르 푸아브르, 그리고 세계 3대 향인 용연향, 사향, 침향이야기와 나에게도 익숙한 호랑이 연고 이야기까지. 향신료 보따리 장수가 풀어놓는 갖가지 향에 도취되며 이 책을 읽었다. 저자의 탐구정신에 감탄하며.

*뭔가 세계화, 제국주의, 주식회사가 뼛속까지 DNA에 새겨진 저 유럽인들만 그랬을까? 성종이 후추를 좋아해서 종자를 구하려 애썼다는 짧은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는 중국과 일본 옆이라 저 전쟁에 뛰어들지 못한건가, 먹는 것에 치중하는 모양새가 사대부 정신인 성리학에 맞지 않아서인가?

* 내일 마트가서 정향과 육두구 사올테다.(세계화로 좋은 점은 이런 편리함) 나의 생각이 이정도에 다다랐을 때 쯤에는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라는 호프 자런의 책이 떠올랐다. 따지고보면 이 모든 풍요의 시작이 더 맛있는 걸 먹겠다는, 이 향신료를 향한 욕망에서 비롯된 것만 같아서.

* 이 책을 읽으며 슈테판 츠바이크의 <광기와 우연의 역사> 책도 떠올랐다. 나에게는 최광용 저자가 나에게는 앞으로 최테판이다! 심용환 역사학자님은 띠지에 “우리의 지성과 마음을 풍성하게 살찌우는 좋은 책”이라고 추천해주셨으나 나는 이렇게 쓰고 싶다. “우리의 지성과 마음에 향과 풍미를 더하는 책”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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