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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사생활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23
주원규 지음 / 네오픽션 / 2024년 4월
평점 :
표지는 메디치 가문에서 본듯한 문장의 틀 속, 머랭쿠키를 머리로 달고 있는 초상화그림이다. 강렬하다. 달걀에 흰자만 나누어 설탕을 뿌려 만들어내는 과정을 생각해본다. 단순한 재료로 죽어라 거품을 내어 설탕을 뿌려 구운 머랭이 이 책에서 ‘제국’이라고 쓰인, 한국에서의 전형적인 족벌경영회사, 삼호의 운영방식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머리를 머랭으로 대체해서 그린 분 천재다 ㅋ.
작가분의 책 제목 중에 몇 개의 단어가 눈에 띈다. ‘서초동’, ‘강남’, ‘열외인종’, ‘반인간’, ‘특별관리대상자’다. 이 분이 주로 쓰시는 장르를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인지, 드라마, 영화 제작사에서 러브콜을 많이 받으실 것 같다. 그리고 현재 극본 집필 중이시다. 이 책 역시 그랬다. 구두를 만들며 자수성가를 이뤄 한국의 20대 기업에 선정된 삼호의 80대의 회장, 장대혁이 회의실에서 바지를 벗으며 시작한다. 첫 시작도 세다! 첫째아들이지만 경영학과 쪽 교수인 장명진, 아버지를 가장 많이 닮은 딸, 장명은, 맞고 자란 막내 장명우 삼남매가 서로 힘겨루기를 한다. 물론 회장님의 넷째 부인이면서 연예인인 오성은씨, 사위 김예훈, 그리고 회장님의 오른팔이었던 박현철 상무가 이 판에 끼어들며 이 소설이 진행된다. 그리고 결과는 반전에 반전이다.(절대 스포하지 않겠다!)
내가 씁쓸했던 부분은, (물론 이 시나리오를 쓴 작가님이 먼저 이런 부분에 대해 관찰하고 그쪽을 파헤치며 이런 픽션을 쓰시는 거겠지만) 아무리 자식들이 외국에서 박사를 따고, 하버드를 나오고 해도, 가족이 운영하는 시스템인 족벌경영체제의 결과는 이런 막장외에는 다른 결과가 없겠다는 부분이었다. 이런 부분이 장남 장명진과 둘째 딸 명은과의 대화에서 드러난다.
“(...) 아빠가 경영의 ‘경’자도 모르고 닥치는 대로 기업을 꾸려온 거, 오빠도 잘 알잖아.”(...)
“그말인즉슨, 그렇게 경영하는 게 대한민국에서는 먹힌다는 거잖아. 그게 중요한거 아니야?”
씁쓸하지만 분명히 옳은 진단이었다. 장명은은 자신도 모르게 짧은 한숨을 터뜨렸다.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통하는 사업, 그게 바로 족벌 기업이고, 1인 체제이고, 주술과 운과 인맥에 기반을 둔 사업이었다.(p.46)
“원칙같은 소리 하지마.”(...)
“대한민국에서 원칙과 상식대로 기업 하는 경우가 어디 있어? 아니,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야. 그 우습고 허약한 원칙을 고수하는 기업이 전 세계 어디에 있냐고.”(p.86)
이 책에서는 족벌경영 뿐만 아니라 초대회장이 경영을 승계하는 상황에서 이리떼(!)들에 의해 순식간에 인수분해되는 상황도 언급된다. 그래서 흥미롭기도 하지만 마냥 재밌네, 넘어갈 수만은 없다. 이 픽션을 보고 있을 나를 포함한, 노동자층의 독자들의 팔등에 소름이 돋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