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아벨리 -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현자
김상근 지음 / 21세기북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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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중세를 암흑의 시대라 말한다. 자유와 평등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인권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는 지독한 종교의 시대이기도 했다. 종교는 사실상 모든 권력의 중심이었다. 유럽 국가들은 저마다의 기득권을 수호하거나 생존을 위해 종교를 앞세웠고 항상 교황과의 거리를 지척에 두었다. 처세술에 능했던 역대 교황들이 이를 모를 리 없었기에 로마를 중심으로 한 이탈리아 공국들은 수시로 전쟁에 노출되어 있었다. 로마와 지척 간이었던 피렌체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15세기, 메디치가는 엄청난 부를 기반으로 이탈리아반도에 새로운 부활을 일으킨다. 르네상스는 억눌렸던 예술가들의 혼을 불살랐다. 레오나르도다빈치, 미켈란젤로 등 당대는 물론이고 인간사를 뛰어넘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탄생했다. 그리고 후일 온 세상을 들끓게 한 군주론의 저자 마키아벨리가 피렌체의 작은 마을에서 탄생한다. 뛰어난 예술가들과 마찬가지로 마키아벨리 또한 가난을 벗어나지 못했다. 덕분에 그는 어려서부터 생존에 대한 강한 집착을 드러내야했다. 당시 피렌체는 메디치가의 몰락과 함께 새로운 공화정이 출범하고 있었기에 마키아벨리는 그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마키아벨리는 유독 로마사를 비롯한 고전을 탐독했다. 한 시대를 빛낸 로마의 위인들의 흥망을 통해 변하지 않은 진리를 얻고자했다. 그를 가장 괴롭힌 질문은 왜 권력자들이 쉽게 무너지느냐는 것이었다. 권력은 대중과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대중정치를 이해하는 자만이 권력의 정점에 오를 수 있기에 대중을 잘 다루는 리더들은 쉽게 권력을 차지한다. 하지만 권력은 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마키아벨리는 포퓰리즘에 약한 대중의 이중적인 심리에서 그 원인을 찾는다. 그가 바라본 대중은 결코 현명하지도 예지를 갖춘 집단도 아니었다. 그는 메디치가의 몰락과 사보나롤라의 부침을 바라보면서 권력이란 대중을 다루는 방법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마키아벨리는 약관의 나이에 피렌체 2서기관으로 발탁된다. 더불어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당시 피렌체는 프랑스, 스페인, 독일등 강국에 둘러싸인 조그만 공국에 불과했다. 그는 소도시 피렌체를 보호하기위해 외교관으로서 최대한 역량을 발휘한다. 하지만 그가 바라본 피렌체는 항상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 속에 놓여있었다. 그는 자신이 꺼질 듯이 위태로운 피렌체의 불씨를 잠시나마 살려놓을 수 있는 재주밖에 없음을 한탄한다. 그 자신이 약자로서 느꼈던 왜소함을 조국 피렌체를 통해 다시 한 번 뼈저리게 느낀다. 이와 같은 그의 절치부심은 용병에 의존하는 당시의 군사정책을 비판하며 강자의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인문학을 탄생시킨다.

 

본 책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의 다른 관점을 시사한다. 기존의 군주론이 다소 어두운 이미지였다면 본 책은 마키아벨리의 회고록에 가깝다. 마키아벨리는 왜 군주론을 작성하지 않으면 안되었을까? 그는 군주론을 통해 무엇을 말하려고 했을까? 마키아벨리는 평생 약자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했다. 지독히 가난했던 그의 일상과 강국의 장단에 목숨을 내 놓아야하는 공국의 운명, 마키아벨리는 체사레나 율리우스와 같은 강하고 독선적인 군주를 선망했다. 공화정의 몰락 후 마키아벨리는 무려 15년간을 무위도식하며 지낸다. 그는 당시의 삶에 무척 회의적이었다. 밥벌이를 하지 못하는 가장으로서 그가 느꼈을 고통은 생존에 대한 갈망뿐이었다. 삶을 영위하기 위한 군주론의 탄생, 비록 우르비노의 사냥개보다 못한 선택을 받았지만 누가 마키아벨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군주론은 강자를 위한 책이 아니다. 마키아벨리 자신을 위한, 약자를 방어하기 위한 책이다. 왜 강해야하는가? 남보다 잘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치욕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강해야한다. 마키아벨리는 놀라운 진리를 가르쳐준다. 수천 년전의 로마시대의 정치나 15세기의 정치, 그리고 21세기 정치 역시 위정자들과 대중들 간의 관계는 전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역사는 같은 수레바퀴를 돌고 있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을 통해 과거의 패턴을 반복하는 권력의 속성을 정확히 짚어냈다. 칼은 누가 사용하느냐에 따라 무기가 될 수도 있지만 사람을 구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역시 받아들이는 자의 관점에 따라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을 것이다.

 

 

"해당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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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코틀러의 굿워크 전략 - 세상과 소비자의 마음을 얻고, 함께 성장하라!
필립 코틀러 외 지음, 김정혜 옮김 / 와이즈베리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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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이익을 남기기 위해 존재한다. 이익은 어떤 형태로든 가능하나 되도록 이면 외형적이거나 금전적인 이익이면 더욱 좋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의 웹사이트를 살펴보면 공통된 단어를 하나 발견할 수 있다. 바로 ‘good' 이란 단어다. 기업에 웬 착하다란 단어를 접속시켰을까? 문득 한국기업들의 웹사이트를 펼쳐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포춘지가 선정한 500대 기업들의 공통점과 어떠한 관련성을 발견하기 어렵다. 그래서 존경받을 만한 기업하나 찾기 힘든 것일까?

 

미국, 유럽등 외부환경이 좋지 않은데 내부적 상황 또한 심상치 않다. 특히 중산층의 몰락과 인구고령화에 따른 소비감소는 더욱 치명적이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바라본 상생의 조건은 여전히 권위적이고 위압적이다. 동네상권을 장악하는 것도 부족해 내부사찰을 통해 권위적이고 독선적인 오너기업의 전형을 보여준다. 혹자의 말대로 한국의 재벌문화가 위기 극복의 힘이 되었을까? 어처구니가 없는 해석이지만 관점의 차이라 이해할 수밖에 없다. 무엇을 위한 기업인가? 누구를 위한 기업인가? 오직 주주의 배를 채워주면 면죄부가 부여되는가? 뿌리까지 자본주의라면 왜 위기 때마다 공적자금에 목을 매는가?

 

안타깝게도 한국기업은 무한정 되풀이되는 성장의 덫에 걸렸다. 문제는 소비의 하락이 지속적인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외부적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이제 기업은 과거의 패턴을 벗어나 소비자가 원하는 질문에 보다 진지한 답변을 해야 한다. 소비자들은 어떤 기업을 존경할까? 기업이 고민하는 문제가 매출이나 포지셔닝이라면 존경받는 기업은 뛰어난 마케팅을 보유한 셈이다. 보다 영특해진 소비자들은 소비를 통해 자아를 실현하려는 욕구를 분출한다. 기업이 생존해야할 명제는 더욱 분명해졌다. 이젠 어떤 기업도 사회적 문제를 등한시하고 살아나갈 수 없다. 기업은 더욱 분명해진 사회와의 연결성을 통해 성장의 활로를 찾아야 한다.

 

마케팅의 아버지라 불리는 필립 코틀러 교수의 굿워크 전략은 소통이다. 규모가 크다고 일방통행 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것이다. 코틀러 교수의 소비전략은 소비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데서 시작된다. 소비를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기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시기는 지났다. 이제 기업들은 극심한 경기침체와 낮은 소비수준을 대비해야하며 높아진 소비자들의 소비의식을 깨달아야한다. 기업들이 간과한 부분이 소비자의 감성이다. 코틀러 교수는 이제 기업의 착한일은 의무를 넘어 전략이라고 강조하며 기업의 사회참여 기반으로 6가지 사업을 제안한다.

 

공익 캠페인을 단순히 지원하는 것만으로 마무리할까? 충분한 계획과 마케팅 전략은 매출증가와 함께 고객의 참여를 유도해 소비를 증진시킬 수 있다. 치폴레멕시칸그릴, 펫츠마트등은 매장내 기금모집을 통해 기업재단을 설립하고 이를 통한 홍보활동을 연계한다. 공익 캠페인은 환경보호와 교육, 의료등 다방면에서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를 늘려주고 보다 긍정적인 피드백을 생산한다. 또한 제품이 판매될 때마다 일정금액을 기부하는 공익연계 마케팅은 기업과 비영리단체를 연결시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소비자들의 대리만족을 충족시킨다. 신발 1켤레를 사면 1켤레를 가난한 어린이에게 기부하는 탐스슈즈는 기업, 지역경제 그리고 소비자의 만족을 모두 충족시킨 대표적인 공익연계 마케팅의 성공사례다.

 

그런데 과연 기업의 사회적 참여가 코틀러교수의 제안대로 기업에 새로운 물꼬를 터주고 이익을 보존해줄 수 있을까? 이에 대한 사회적 책임 비지니스의 CSR(기업의 사회적 책임) 결과는 무척 고무적이다. CSR을 다하는 기업은 우선적으로 높은 매출을 올렸으며 시장점유율이 높아졌다. 이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높은 신뢰를 뒷받침한다. 또한 기업의 브랜드화가 눈에 띄게 강화되었고 기업의 이미지가 향상되었다. 가장 고려할만한 사항은 CSR에 참여한 직원들의 동기부여다. 직원들은 기업에 대한 이미지를 제고하며 스스로가 만족할만한 업무성과를 제출했고 높은 자긍심을 분출했다. 물론 매출이 오르고 이미지가 좋아지니 외부적인 효과는 부수적으로 따라올 것이다.

 

한국은 프랜차이즈 공화국이라 할 정도로 대기업 중심의 자영업이 독보적이다. 프랜차이즈는 사업형태가 획일적이고 일방적이라는 단점이 있다. 매출은 높일 수 있을지 모르나 사회적 참여와는 거리가 멀다. 잦은 이직률, 낮은 급여가 본사 이익을 우선시 할 수 없으며 공익 캠페인은 말 그대로 의무적인 패턴에 불과하다. 안타까운 것은 프랜차이즈 운영에 대한 묘미다. 보다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사회참여 기업으로서의 변화는 어떻겠는가? 굳이 말하지 않더라도 상생의 활로를 모색한다면 훨씬 좋은 이미지를 구축할 것이다. 기업이 사회를 벗어나 독립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사실 기업만큼 사회와 유기체적으로 연결된 조직도 없을 것이다. 기업은 어떤 상황을 통해 스스로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코틀러 교수의 6가지 사회참여 마케팅기법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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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사람 효과]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낯선 사람 효과 - 《80/20 법칙》리처드 코치의 새로운 시대 통찰
리처드 코치 & 그렉 록우드 지음, 박세연 옮김 / 흐름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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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최고의 기업 삼성전자의 최근 위상을 보고 있노라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불과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삼성전자가 세계최고의 기업 애플을 상대로 이처럼 대등한 관계를 유지하리라곤 누구도 예측하기 어려웠다. 최근 삼성전자의 비상은 과거 일본을 들끓게 했던 소니를 연상케 한다. 그런데 최근 소니의 파산소식이 들려온다. 무너지지 않을 것 같았던 일본 최대의 글로벌 기업에 무슨 문제가 발생한 것일까? 이는 과거와 달리 어떤 분야에서든 2등은 존재하기 어렵다는 새로운 학설을 뒷받침한다. 그런데 이러한 쏠림현상이 기업에만 적용되고 있는 것일까?

 

페이스북, 트위터, 구글, 애플, 세상을 뒤흔드는 글로벌 기업들이다. 이들은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수십 년에 걸쳐 이루었던 시장지배력을 순식간에 점령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또한 순수한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기업이라기보다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IT기업이다. 무엇보다 가장 큰 특징은 독창적인 자생력을 갖춘 기업이라는 점이다. 이들의 무대는 전 세계다. 국적이나 언어를 떠나 사실상 이들의 영향력이 미치지 않은 국가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이들이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후발기업들과의 격차다. 애플이 그토록 삼성전자를 따돌리려 한 이유가 무엇 때문이었을까? 한번 잡히면 되돌리기 어렵다는, 권력의 쏠림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서는 아닐까

 

외딴 시골 마을, 세상 그 어느 곳보다 지리적으로 밀착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의 삶은 단순하며 생존 지향적이고 대부분 삶의 방향이 일률적이다. 인간의 내면은 생각보다 훨씬 좁은 세상으로 연결되어있다. 가족과 자신,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몇 가닥의 연결, 우린 이를 강한 연결이라 부를 수 있으며 수천 년 동안 인간을 지배해온 특별한 관계로 기억한다. 문제는 강한 연결이 현대사회를 살아가는데 특별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마치 외부와의 교류를 차단한 채 새로운 변화를 꿈꾸는 메아리와 다를 바 없다.

 

상위20%의 사람이 80%의 부를 차지한다. 부의 쏠림현상에 관한 리처드 코치의 80/20법칙은 99/1의 법칙으로 자리를 양보해야 할 듯싶다. 극소수의 개인이나 기업으로의 쏠림, 단순히 사회적 현상으로만 치부해야할까? 그렇기에 세상에 대한 반감이 너무 크다. 그렇다고 이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도 많지 않다. 코치는 이러한 현상을 낯선 사람 효과라 주장하며 세상의 룰이 바뀌었다고 강조한다. 코치의 이론은 최근 문제시되는 많은 사회적 의문점을 해결해준다. 특히 극소수 개인이나 기업으로의 부의 쏠림 현상이 일시적인 사회현상이 아니라 IT를 근간으로 하는 네트워크 효과의 일부임을 증명하고 일부 글로벌 기업들이 노력에 비해 엄청난 이익을 얻고 있다고 강조한다. 특히 세상을 변화시킬만한 사회적 변화가 없는 한 네트워크 효과는 상당기간 지속될 이며 이제 최소한의 자기방어를 위해서라도 약한 연결을 주목해야한다고 말한다.

 

낯선 사람 효과는 과거와 같이 자신의 재능만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는 가설을 증명한다. 특히 완벽한 창조는 존재하지 않으며 공간이동이나 변화를 통한 모방이 뜻하지 않은 변화를 가져올 수 있으며 개인들이 주목해야할 부분은 강한 연결을 통한 지배력강화가 아니라 약한 연결을 통한 서브구축과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존재감이 중요한 시대임을 강조한다. 그는 이러한 조직을 활성화하는 것이 서브의 역할이며 어떤 서브에서 활동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운명이 바뀔 수 있고 또한 이러한 서브를 전적으로 컨트롤하는 슈퍼커넥터와의 관계를 주목한다. 슈퍼커넥터는 약한 연결을 유지시켜주는 가장 중요한 연결고리로 자신과 조직의 성공을 책임질 수 있는 특별한 키워드가 될 것이다.

 

간혹 얼굴도 알지 못하는 이에게서 자신의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가? 혹 뜻하지 않은 사업구상을 전달받은 적이 있는가? 낯선 사람 효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부터 자신의 네트워크가 형성되는 과정이다. 특히 실시간 접속이 가능한 스마트 시대에 약한 연결이 주는 효과는 그 어떤 강한 연결보다 탁월하다. 하지만 약한 연결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항상 자신의 존재를 네트워크상에 오픈시켜 놓아야 한다. 또한 상대에게 어필할만한 자신의 존재감이 필요하다. 결국 스스로의 노력이 없이는 약한 연결을 통한 낯선 사람 효과도 그리 큰 효용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낯선 사람 효과는 빠르게 변화해가는 인구변화와 사회구조의 근간을 가장 쉽게 설명해 준다. 인맥의 중요성을 새삼 언질 할 필요가 있을까? 이젠 스쳐지나가는 이들도 인맥이 되는 세상이다. 외부와의 약한 연결을 통해 본 낯선 사람 효과, 당신의 주변엔 어떤 이들이 포진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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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09: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2013-2014 세계경제의 미래
해리 S. 덴트 & 로드니 존슨 지음, 권성희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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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움 자체다. 지금까지 쌓였던 경제학의 비효용성에 대한 의문이 한 번에 사라졌다. 역시 경제학도 관점의 차이가 중요하다. 세상이 변화하면 학문도 변해야하지만 유독 변하지 않고 고리타분한 수치놀음에 빠져있는 학문이 경제학이 아니었던가? 경제학은 스스로를 파괴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위기징후 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대중은 경제학에 너무 과분한 배려를 해주었다. 경제학은 가치를 잃기 전에 새로운 도전을 받아들여야한다. 대중의 법칙을 찾는다는 사회과학의 일부분으로 본래의 목적에 충실 한다면 이는 더욱 의미 있는 관점이 될 것이다.

 

그동안 경제학은 금리와 통화량을 통해 얼마든지 거시경제를 조정할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위기 후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재정정책 역시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미국은 3차례의 양적완화를 통해 경기회복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소비는 제자리걸음이다. 오히려 몰락한 중산층들은 빚을 갚기 위해 저축을 늘린다. 금리 역시 사상 최저다. 금리를 떨어뜨리고 돈을 푼다는 것은 결국 소비를 확산시키기 위한 최후의 재정정책인데 시장은 아무런 반응이 없다. 미국이 처한 딜레마는 주류경제학으로선 도저히 작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이러한 시점에 HS덴트 연구소의 헤리덴트의 경제학적 분석이 관심을 끈다. 그는 경제의 큰 방향을 결정짓는 것은 사람들의 소비결정이라 주장한다. 즉 대중은 외부변화와는 무관하게 자신의 상황에 따라 소비를 하게 되며 돈을 푼다고 더 많은 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부족하다고 소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대중은 필요에 의해 소비를 한다. 그런데 미국 인구의 소비정점이 2005년을 중심으로 하락세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이는 전후 베이비붐세대의 은퇴와 맞물려 미국에 큰 위기를 가져왔다. 마찬가지로 빠르게 고령화 되어가는 중국 역시 조만간 경착륙을 경험할 것이라 예측한다.

 

덴트는 더욱 충격적인 예언(?)을 한다. 양적완화 덕분에 잠시 오른 다우지수가 50%이하로 폭락할 것이며 잠시 주춤하고 있는 부동산 역시 오르기 전 가격으로 떨어질 것이라 예측한다. 그는 현재 미국 경제의 상황을 네덜란드 튤립파동에 비견한다. 대공황과는 비교할 수 없는 디플레이션이 시작됐다는 것이다. 모든 자산 가치를 떨어뜨리는 디플레이션은 정부로서는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는 경우다. 값싼 인플레이션을 통해 부채를 탕감해온 정부의 재정은 만신창이가 될 것이며 서민들은 유례없는 고통에 휩싸일 것이다. 미국이 단순히 천문학적인 부채를 해결해야한다는 관점에서 재정정책을 풀려고 한다면 위기는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인구의 노쇠화에 따른 소비패턴의 변화를 이해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저자는 미국의 대안으로 손꼽히는 중국에 대해서도 일찍이 본적이 없는 경고를 퍼붓는다. 중국 부동산은 일인당 GDP대비 500%이상 폭등한 상황이며 지자체들의 무분별한 난립공사로 유령도시들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중국의 심각한 빈부의 격차는 중국 공산당에 위기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하다. 가파르게 성장한 중국 역시 소비의 정점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어 버블이 끝나는 시점이 멀지 않았다. 그렇다면 덴트가 바라보는 한국경제의 미래는 어떨까?

 

덴트는 2~3년 내 한국 코스피지수 역시 1000선이 무너지고 심각한 경제위기에 봉착할 것이라 주장한다. 연착륙이 진행되는 아파트 가격이 여전히 부담스러운 가운데 민간과 공기업부채 해결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며 이 역시 빠르게 소비의 결정 인구가 노쇠화 되어 새로운 위기가 조성될 것이라 예측한다. 특히 한국은 2000년대 이미 도시집중화가 완성되어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우며 중국과 미국 의존도가 너무 높아 두 국가의 몰락과 함께 심각한 디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예견한다. 새 정권이 출범하기도 전에 나온 절망적인 경제예측이라 심란하기만 하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이 있다. 분명한 변화가 관측되는데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는다면 소는 물론이고 외양간마저 잃을 것이다. 작금의 세계경제에 아군과 적군이 존재할까?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수단과 방법이 통용되는 세상이다. 최근 원화가치의 상승을 바라보는 한국경제 수장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유독 위기에 취약한 한국경제를 넘실거리는 파도위에 떠있는 조각배에 비유한다면 너무 심한 표현인가? 그 위에 타고 있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떠할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덴트의 예언(?)10년 후 한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의 위기극복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는 점이다. 다가오는 디플레이션 시대, 세계경제를 이끌어가는 주된 요인은 무엇이고 이를 통해 과연 어떤 변화가 다가올 것인가? 독특한 덴트의 관점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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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1 09: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 서울대 이정전 교수의 한국 경제에 대한 55가지 철학적 통찰
이정전 지음 / 토네이도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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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후 유독 눈길이 가는 기사가 하나 있다. 90%라는 엄청난 투표율을 기록한 50대에 관한 에피소드다. 언론들은 이구동성으로 베이비붐세대의 특별한 선거철학을 소개하며 한때 민주주의를 위해 헌신했던 그들이 왜 갑자기 보수로 돌아섰는가에 특별한 메시지를 전했다. 대한민국 50대는 변화보단 부동산 가격을 선택했다. 한편으론 공감이 가기도 하지만 씁쓸한 마음이 앞선다. 대한민국 부동산 거품을 일으킨 이들이 누군가? 자본주의 논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그들이 자본주의에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배고픈 자만이 배고픈 고통을 알 수 있다던데 그들이 배고픈 사회의 일원은 아닐 것이다. 부족분에 대한 욕망은 탐욕일 뿐이다. 한때 기득권 반대를 위해 젊음을 불살랐던 50대는 한국사회 새로운 기득권이 되고 있다.

 

세계를 주름잡는 이들은 경제학자다. 정치가 앞선 미국 역시 경제전문가의 입김에 의해 새판을 짜야할 정도로 세계사회는 경제를 가장 시급한 과제로 다루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언제부터 시작되었고 끝은 있는지에 대해 누구도 쉽게 답을 내리지 않는다. 영원한 이념이나 이상이 있을 수 있을까? 경제전문가들은 마치 그들이 세상의 답을 알고 있는 것처럼 사고하고 행동한다. 그런데 과연 그들의 예언이 한번이라도 제대로 맞은 적이 있었던가? 수천 명의 경제학박사가 포진되어있는 미국경제가 서브프라임 위기를 예측하지 못했는데 이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후속조치에 대한 일반인의 믿음을 곤고히 하는 전략에 미래를 맡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경제학은 인간의 행복추구를 위해 만들어진 사회과학의 일부분이다. 자본주의가 발달함에 이를 통한 시장경제의 틈바구니에서 가장 효율적이고 가치 있는 교환수단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한다는 개념을 포함하고 있다. 맞다. 그들의 이론은 완벽하리만치 훌륭하다. 하지만 왜 자꾸 그들의 이론이 제멋대로 빗나가는 것일까? 거기엔 완전시장이라는 함정과 완벽하게 합리적인 인간의 사유라는 망상, 그리고 전혀 동일시될 수 없는 지불능력이 배제되어있다. 처음부터 경제학적 명제는 완벽한 사회구조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왔던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그들의 바람대로 이루어진 적이 없으니 그들이 신성시하는 효율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현실과 교과서는 완전히 다르다.

 

경제전문가들은 한국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을 빈부의 격차라 말한다. 실제로 정부에서도 이를 인식하고 해결하기위해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노력한 만큼 칭찬을 받는 일이 드물다. 이는 정책의 대부분이 실질적이라기보다 선심성 혹은 일회성에 불과한 땜방질이기 때문에 예산낭비만을 초래한 결과다. 대기업이 중심이 된 마트와 소시민이 살아가는 재래시장을 비교해보자. 어떤 전문가도 재래시장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전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변화된 사회적 환경을 무시한 결과다. 바뀐 사회적 시스템을 재조절하는 방법이외 다른 방도가 있겠는가? 문제는 모든 경제적 상황이 상대적이라는데 있다. 하나를 선택하면 10가지의 문제가 터지는데 이를 막을 방법이 전무하니 사회갈등이 빠르게 증폭되는 것이다.

 

우린 지금 행복한가? 소득2만 불 시대를 넘어 선진국 문턱에 들어선 지금, 한국사회는 진정한 행복의 길로 들어서고 있는가? 문제는 경제가 아니라 경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이다. 돈 만큼 상대적인 물건이 없지만 이를 절대적인 가치로 생각해 자신을 올인하는 사고와 행동이 우리의 모든 의식을 빼앗아 버렸다. 돈으로 해결되지 않는 것이 없다고? 그렇지 않다. 인간은 생계 이상의 물질을 축적하면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돈이 쌓인다고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더욱 큰 행복이 뒤따르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 배상은 가난한 이들의 성공신화에 가장 어울리는 단어다. 아마도 경제학은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것 같다. 효율에 대한 재발견이다.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능력이 아니라 행복을 충족시켜주는 능력으로 말이다. 경제에 대한 55가지의 뛰어난 철학적 통찰이 돋보이는 이정진 교수의 우리는 왜 행복해지지 않는가?’ 경제학적 이해관계를 넘어 세상을 바로볼 수 있는 특별한 책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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