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 생명의 지문 - 생명, 존재의 시원, 그리고 역사에 감춰진 피 이야기
라인하르트 프리들.셜리 미하엘라 소일 지음, 배명자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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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건강할 때와는 다른 일들을 경험하게 된다. 크고 작은 통증과 염증, 잦은 치료와 수술, 무엇보다 치료 전후 감정의 피폐까지 신체적 고통과 더불어 내면의 상처가 몸과 마음을 휘젓는다. 인간은 누구나 아프지 않고 평생을 살기를 갈망한다. 하지만 그런 삶은 소수에게만 허락된 축복이다. 대부분은 만성질병에 시달리거나 외상에 의한 치명적인 상처로 고통을 받는다. 질병은 삶의 질을 완전히 바꾸어 놓는다. 또한 자신이 선택한 인생의 방향과 목적에 다른 의미를 부여하기도 한다. 어쩌면 인생이란 예기치 않게 다가오는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은 아프기 전과 아픈 후의 삶으로 나누어지는 것 같다.

 

병원의 검사는 피로 시작해서 피로 끝난다. 인간 삶도 역시 피로 시작해 피로 끝난다. 피가 없으면 인간은 존재할 수 없고 삶의 의미도 지닐 수 없다. 피는 생존에 필연적인 물질이며 대체불가제다. 그런데 우린 놀라우리만치 피에 대해 무관심하다. 오히려 심한 강박이나 혐오적인 입장을 취한다. 피 한 방울이 지니는 의미는 무엇일까? 피는 어떻게 인간의 생존을 좌우해 왔을까? 인체의 궁금증은 피를 알아갈수록 더욱 신비하다. 우린 자신의 피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저자 라인하르트는 피를 생명의 지문이라 말하며 외과의사로 자신이 경험했던 피에 관한 다양한 스토리를 하미트라는 응급환자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하미트는 가슴에 칼을 꽂고 응급수술대에 누워있다. 마취의사를 비롯하여 다수의 의료진들이 호흡을 맞추며 하미트의 수술을 집도한다. 눈을 뗄 수 없을 정도의 세밀함과 긴장감이 뇌를 휘젓는다. 현대사회는 물질적 풍요에 비해 심장이상증후군 환자들이 무척 많이 늘어나고 있다. 과도한 식습관의 변화도 원인이겠지만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장에 압박을 가하는 가장 무서운 무기 중의 하나다. 심장은 피가 나가고 들어오는 말 그대로 생명의 분수와 같다. 심장 수술은 몸을 개복해야하기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이 뒤따른다. 또한 생존 여부도 극히 미지수다. 저자는 하미트의 수술을 통해 우리 몸에서 피가 순환하는 단계와 역할을 상세히 설명한다. 또한 우리가 알지 못했던 피의 기능을 강의하듯 풀어간다. 하미트는 우리주변에 얼마든지 가능한 환자들 중의 하나다. 단지 우리의 편견과 이해관계가 생각을 막고 있을 뿐 삶과 죽음의 경계선은 극히 불투명하다. 하지만 피에 관한 저자의 이야기는 놀라우리만치 상세하다.

 

피의 응고에 관한 스토리는 많은 이들에 유효할 것 같다. 피는 밖으로 나오는 순간 응고된다. 혈관 내에서는 혈전이라는 물질을 생성하여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혈액은 응고가 되어야만 지혈이 가능한데 응고가 되지 않으면 혈우병을 발생하기도 하고 다양한 장기 손상의 원인을 일으킨다. 반대로 혈액이 너무 쉽게 응고되면 말초신경의 부작용 및 심장압박으로 피의 순환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는 혈관을 따라 원칙대로 흐름을 유지해야만 제 기능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너무 간단한 말 같지만 피 순환에 관한 부작용은 신체에 엄청난 무리와 압박을 가하고 해결되지 않으면 급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신체만 정신적 스트레스를 주는 것일까? 우린 정신과 신체를 분리하는데 익숙하다. 하지만 신체는 결코 정신과 분리될 수 없으며 과도한 정신적 스트레스는 심장의 긴장을 유발한다. 공포 영화를 보거나 급박한 사건에 노출된다면 교감신경과 부교감 신경의 혼란으로 극심한 공포에 휩싸이게 된다. 특히 어린 시절의 폭력적 트라우마나 성인기 PTSD는 장기적이고 주기적으로 심장에 압박을 가하며 약물치료보다 트라우마의 재해석을 통한 심리적 안정감이 훨씬 좋은 치료법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외과의사 이전에 환자와의 교류와 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직접적으로 강조한다. 실질적으로 많은 환자들이 의사와의 교류를 가장 안정적인 치료법으로 선호한다.

 

, 생명의 지문은 피와 생명에 관한 책이다. 1부는 피의 이야기를 통해 피의 순환역할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심장은 피 이야기의 중심이다. 신체의 혈액 순환을 최초, 최종적으로 관장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전쟁을 혐오한다. 피의 역사는 전쟁에 대한 강한 의구심과 삶과 죽음이라는 절명의 순간에 위치한 인간 존엄의 실상을 마주보게 한다. 또한 피로 얼룩진 중세시대를 회고하며 순수혈통이라는 어이없는 분리집단의 실체를 고발한다. 지금도 민족주의라는 정당성을 앞세운 국가들의 혈통주의는 피에 대한 복수심으로 가득함을 알 수 있다. 피는 생명이 본질이다. 결코 분리될 수도 파괴 될 수도 없다. 저자는 2부 생명을 통해 이를 상세히 기술한다. 피에 관한 저자의 이론은 놀랍고 디테일하다. 또한 이해하기 쉽게 쓰여 마치 소설을 읽는 것 같다. 존재의 시원이자 생명 그 자체인 피에 대한 이야기,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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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당신의 삶에 대해 니체가 물었다 - 하루 한 편, 니체의 지혜로 마음의 빛을 밝히다
강민규 지음 / 책과나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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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로운 시대다. 자기 가치를 증명한다면 많은 일들을 할 수 있다. 또한 과거에 비해 질병이나 위협으로부터 안정적이다. 하지만 풍요의 이면엔 알 수 없는 불안과 두려움이 싹트고 있다. 사회는 진화한다. 계곡을 흐르는 물과 같다. 목마른 사람에겐 생명수지만 넘치면 재앙을 가져온다. 혼돈은 질서를 원하고 질서는 변화를 가져온다. 정체성마저 모호하다. 나란 존재는 흔들리는 돛단배 같다.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넘실거리는 파도에 몸을 맡긴 불안한 존재. 수많은 이야기들이 난무하지만 오늘 하루를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자아는 자신이 마주한 거울이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성찰은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하는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된다. 니체는 자기 성찰이 강한 철학자다. 당시 모든 체제를 비판하며 자아 성찰과 인간 근원 문제에 가장 접근한 인물이다. 그의 수많은 어록중 네 운명을 사랑하라.’는 오랫동안 마음에 담겨있다. 현대인의 가슴을 무엇이 지배하든 운명은 자신에 주어진 과제이자 해결해야할 숙명이다. 어떤 운명을 살 것인가는 니체 철학의 핵심이다. 욕망과 결핍이 지배하는 세상, 니체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어떤 울림을 전해주고 있을까?

 

니체가 오늘 당신의 삶에 대해 묻는다면, 어떤 답을 할 수 있을까? 저자의 니체 사랑이 흠뻑 묻어나는 질문이다. 저자는 필사를 통해 니체의 생각과 사상을 자신에 접목시킨다. 그리고 스스로 빛나는 빛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주위를 환히 밝히는 별과 같은 빛, 별이 태어나기 위해서, 별을 찾기 위해서, 빛나기 위해서, 더 밝게 빛나기 위해서는 빛의 생성으로부터 성장 그리고 화려함을 이야기한다. 저자는 니체만의 독특한 철학을 자신만의 언어로 녹여낸다.

 

춤추는 별을 잉태하려면 반드시 스스로의 내면에 혼돈을 지녀야 한다. 지식과 지혜를 얻기 위해선 고통이 뒤따른다. 또한 방황을 맞이해야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혼돈스러운 세상에 빛과 같은 글을 남긴 니체, 그의 아포리즘을 대할 때마다 모순 앞에선 현실에 자괴감을 느끼곤 한다.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생각의 파고가 높다. 무엇이 진실인지 가늠하기 어렵고 삶에 대한 의미 부여도 쉽지 않다. 어느 것 하나 뚜렷한 이정표가 보이지 않는데 우린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것일까? 시대의 혼란은 새로운 이념과 관념이 기지개를 켜는 시기다. 니체 역시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을 원망하지만 자신에 결코 타협하지 않는 삶을 살았다. 세상은 혼돈스럽다. 빛은 혼돈에 질서를 부여한다. 우리 자신이 빛이 되라는 니체의 말처럼 빛과 같은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처절한 자기철학을 꿈꾸어본다,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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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땅에서 말씀 찾기 - 베들레헴에서 욥바까지 인문 기행
권종렬 지음 / 샘솟는기쁨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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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수많은 교인들이 성지순례를 떠난다. 이스라엘, 스페인등 성인의 발자취나 신앙적 체취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성지는 교인들의 삶에 깊은 영향을 미친다. 상상 속의 기대가 현실로 다가오고 당시의 고난과 고통의 역사를 직접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글자를 떠난 성서의 이해는 성지를 찾고자 하는 이들의 가슴에 형언할 수 없는 감동과 경외심을 안겨준다. 성경에 대한 해석은 역사만큼 길고 다양하다. 안타까운 것은 저마다의 해석이 옳다는 믿음이다. 모든 것이 동일하고 일정하게 유지 될 수 없듯이 성경은 다양한 관점이 존재한다. 순례 길을 찾는 이의 가슴에도 저마다의 꿈과 희망이 있지 않을까? 예수님께서 걸어왔던 공생애의 길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무엇을 심어 주었을까?

 

이스라엘만큼 다사다난한 민족도 보기 힘들다. 강소국이라는 표현이 너무 어울린다. 이젠 미국마저 어찌할 수 없는 국가로 팔레스타인 지역을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고 있다. 분리된 종교관은 서구사회를 너무도 쉽게 쪼개놓았다. 종교이해가 그토록 깊은 민족들이라면 그들의 행동이 어떤 대가를 지불할 것인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 20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종교적 관념은 어떻게 변화해 왔을까? 선택된 민족의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왔는가? 무늬만 내세운 체 의무는 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해 오진 않았는가? 이 모든 결과는 예수님께서 보호하신 병자, 약자, 과부들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있다. 순례 길을 찾는 이유는 경외심과 감동도 중요하지만 가까운 이웃부터 돌보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한 가장 큰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사마리아 산지가 시작되는 벧엘, 북 이스라엘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우고 신당을 지었던 지역이다. 벧엘은 우상숭배와 더불어 야곱 이야기가 떠오른다. 왕이나 귀족 무덤에 사용되었던 돌베게는 야곱의 상징과도 같다. 돌베게를 배고 잠을 잔 야곱은 꿈에서 하나님을 만난다. 돌베게는 당시 꿈을 뜻하기도 하고 영원한 안식이라는 관용어로도 사용되었다고 한다. 돌베게에 담긴 안식은 혼란을 벗어나고 싶은 야곱의 간절한 소망을 의미한다. 성경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역사를 품는 것과 같다. 인류의 역사관이 느슨할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이란 역사관으로 세계사에 등장한다. 보잘 것 없고 핍박받는 민족, 노예와 같은 자기선택이 불가한 민족에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선물해 주었다.

 

이스라엘에서 말씀찾기는 성경의 역사를 현재와 이어주는 소중한 성서이야기로 가득하다. 성경을 읽다보면 수많은 지명을 만나게 되는데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님의 공생에 과정을 이해하는데 무척 중요하다. 본 책은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으로부터 시작한다. 베들레헴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10Km 떨어진 아랍마을이다. 당시 인구는 300명 정도로 추정되며 대부분 직업이 목동으로 예루살렘 부호들의 목축업자로 생계를 이어나갔다. 예수님은 구유에서 탄생하셨다. 구유는 우리가 알던 낭만적인 장소가 아니다. 가축들과 오염물질이 가득한 마구간이었다. 예수님 탄생엔 다양한 신화가 존재한다. 20세기 중반에 세워진 목자들의 들판교회는 동굴집이다. 추위를 피해 몸을 녹이던 목자들과 아브라함, 나사로, 예수님의 동굴무덤을 떠오르게 한다.

 

정치적 이해관계는 지역사람들에 뼈아픈 역사를 만들어 준다. 힘 있는 민족에 지독한 아픔과 고통을 당한 민족일수록 상대에 가차 없는 힘을 과시한다. 이스라엘 역사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하나님의 개입은 모든 것을 바꿔놓았다. 다를 것 없는 민족이 새로운 세계관을 얻은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신 유일한 분이다. 그분에게서 느끼는 감정은 인간으로선 이해할 수 없는 뜨거운 감동과 거룩함이다. 종교는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 예수님은 하나님께 순종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라 말씀하신다. 성지를 찾는 이유도 기적을 바라는 자신의 의지일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기적이다. 현존하고 실존하는 지금 순간이 기적이다. 모든 것을 당연시하는 세상에서 감사함이 존재할 리 없다. 일상을 찾아가고자 순례 길을 떠나는 목사님과의 만남에서 진정한 순례의 목적을 되새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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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데트의 노래
프란츠 베르펠 지음, 이효상.이선화 옮김 / 파람북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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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인파가 몰린다. 경건한 몸짓들이 행렬을 이루며 서둘러 자리를 찾는다. 눈웃음은 서로를 이해한다는 모종의 암시다. 모든 몸짓이 장엄한 음악 속에 묻히고 경건한 목소리에 잡다한 생각들이 흩어진다. 거룩한 종소리가 마음의 울림을 일깨운다. 시공간의 지배를 벗어나는 순간이다. 자신을 괴롭혔던 고통이 떠오른다. 우린 기적이 필요하다. 삶을 괴롭히는 고통을 벗어나는 기적을 원하고 있다. 그 끝에는 형언할 수 없는 영광과 일상을 뒤엎는 놀라운 평범함이 드러난다. 종교는 바라고자하는 실상이다. 인간 실존에 대한 극한 두려움과 불안이 종교의 근원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종교를 통해 성찰을 이야기한다.

 

베르나데트의 노래는 1858211일부터 716일까지 프랑스 남부 루르드 지방에서 벌어진 성모 마리아의 발현을 소설화한 작품이다. 소설은 베르나데트의 일상과 일상을 뒤엎는 여인과의 만남, 그리고 이를 받아들이는 세상 사람들의 관점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지금은 성모로 추앙받는 베르나데트 생가는 관람객으로 넘쳐난다. 또한 루르드시장의 바램대로 샘물은 기적을 일으키는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우린 종교적 형상에 익숙하다. 과거 이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전설로 회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린 한 소녀가 겪었던 고뇌와 고통 그리고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수많은 전개 앞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삶의 모순을 엿볼 수 있다.

 

왜 신은 가난하고 근본 없고 병약한 어린 소녀에게 현현했을까? 평범한 이들과는 달리 자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신의 섭리다. 신부, 경철서장, 검사, 공의, 교장, 그리고 부자들은 특별한 존재다. 그들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있는 지위와 경계선을 상징한다. 19세기 중반 프랑스는 혁명의 중심지였다. 체제를 유지하려는 황제권력과 산업혁명의 여파가 유럽을 뒤흔들고 있는 혼란의 시대였다. 권력은 새로운 질서를 요구했고 권력의 대척점에선 종교는 균형을 유지하기를 원했다. 이 혼란한 시기에 가장 가난한 소녀에게 성모 발현이 나타난 것이다.

 

베르나데트는 솔직함과 정직함 그리고 강인함의 상징이다. 그녀는 어떤 중상모략에도 견딜 수 있는 자신감을 표출한다. 병약한 소녀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났던 것일까? 동굴 여인과의 만남은 그녀의 삶을 어떻게 바꾼 것일까? 토방에 6식구가 살고 있다. 근근이 끼니를 때우는 일상은 빵 한 조각에 가족의 소중함과 감사함을 느끼게 만든다. 무엇하나 풍족하지 않고 무엇 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 체념은 그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에겐 그들과 다를 것 없는 이웃들이 살아간다. 가난하지만 위계가 있고 시기와 질투가 있다. 베르나데트는 이들에겐 가장 낮은 곳에 위치한 쓸모없는 소녀였다.

 

베르나데트는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과 행복을 맛본다. 창백한 얼굴, 핏기가 사라진 관자놀이, 죽음을 앞둔 이의 모습과 같다. 여인과의 만남은 그녀에게 사랑과 순종을 심어주었다. 첫 만남 이후 전개되는 주변 인물들의 설정은 소설의 진미다. 학교 친구들의 시기와 질투, 부모의 근심에 대한 지각, 특히 이를 관리하려는 관료들의 움직임, 마치 세상을 다 아는 듯한 지방 유지들의 이해관계, 소녀와 여인과의 만남이 던진 파동은 루르드를 넘어 프랑스 전역에 확산된다. 베르나데트는 여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넘어간다. 저마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베르나데트를 소유화하려는 이기심은 권력의 이중적인 메시지와 동일하다. 그들에게 필요한 건 당위성에 대한 자기 확신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눈에 띄는 설정이 주임신부다. 거절하고 싶지만 기적을 받아들이는 그의 선택에서 우리가 원하는 종교관을 엿볼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고 자신만이 옳다는 관념은 기독교적 세계관을 유지해온 핵심이다. 타협은 불가하다. 하지만 이웃사랑은 어디 갔는가? 주임신부는 어린 소녀를 받아들인다. 가난하고 부족한 이들에 정성을 다한 신부는 기적은 어디에서든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우리 일상은 기적이다. 숨 쉬는 것도 기적이고 가족이 있는 것도 기적이다.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고마움과 감사함이 존재할리 없다. 베르나데트는 우리의 일상을 노래한다. 그리고 일상에 숨긴 기적을 깨닫길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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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잘 자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책 - 망가진 수면 패턴을 회복하는 8주 숙면 훈련
제이드 우 지음, 제효영 옮김 / 심심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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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들수록 잠에 대한 고민이 많아진다. 쉽게 잠들기 어렵고 겨우 침대에 누워도 조그만 소리에 깨어난다. 이런 상황이 며칠째 반복되고 피곤을 이기지 못할 때 마음의 강박이 일어난다. 아 이러다 잠자기 틀린 것 아닌가? 하루 8시간은 자야 된다는데, 건강에 대한 무한 걱정이 잠에 대한 염려와 불안함을 더욱 증폭시킨다. , 불면증은 아닐까? 즐기던 커피도 줄이고 운동도 해보지만 별다른 효과가 없다. 오히려 깨어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마음의 짐이 더욱 커진다. 잠은 걱정거리가 된 것 같다.

 

수면에 대한 보편적 원칙이 있다. 침실을 어둡게 할 것, 오후이후엔 카페인 섭취를 금할 것, 음식을 먹지 말고 과도한 운동을 삼갈 것, 잠들기 전 후 규칙적인 습관을 만들고 무엇보다 디지털기기를 사용하거나 백색화면에 노출되지 말 것 등이다. 뇌 호르몬 멜라토닌의 활성화는 수면 욕구에 가장 큰 역할을 한다. 멜라토닌은 수면 저금통으로 오후가 시작되면서 증가하는데 각성상태를 줄이고 생체신호를 바꾸어 개인에 필요한 생체리듬을 조절한다. 잠은 의식적으로 각성하는 신호가 아니라 몸이 필요로 하는 감각에 가깝다. , 수면욕구가 뇌에 가득하면 자연스럽게 잠을 청한다는 논리다.

 

Hello Sleep은 우리가 알고 있던 수면에 대한 다른 이론을 전달하다. 우선적으로 대다수가 인정하는 잠에 대한 편견을 벗어나라고 말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잠에 대한 이론은 대부분 과학적 검증을 마친 보편적인 원칙이다. 하지만 잠은 개인의 생체 신호에 따라 상대적으로 작용한다. 늦잠에 익숙한 사람과 일찍 일어나는 사람의 생체리듬은 같을 수 없다. 수면 호르몬 역시 개인마다 다르게 분출한다. 인간은 수면을 통해 다양한 뇌 활동을 전개하는데 렘수면과 비렘수면은 성장과 기억보존등 인간의 생체리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다. 잠을 자지 않고서는 정상적인 활동이 어렵다.

 

그런데 언제부터 불면증이 생기기 시작한 것일까? 불면증은 삶의 질을 무한히 떨어뜨린다. 하지만 피곤하고 집중력이 저하되며 능력에 대한 의심이 든다고 모두 불면증을 앓는 것은 아니다. 불면증은 밤뿐만이 아니라 낮에도 각성상태를 지속하며 24시간동안 피곤하거나 신경이 곤두서있고 기분 변화가 심하다는 특징이 있다. 불면증은 선행, 촉진, 지속요인이 원인이 되는데 어렸을 적 트라우마나 불안을 증폭시키는 불씨, 그리고 불면증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 지속될 때 자신에 대한 압박으로 더욱 심화되는 경우가 있다. 저자는 불면증을 완화시키기 위해 사용하는 수면제와 수면기기에 다소 부정적인 견해다.

 

저자는 불면증을 해소하기 위한 처방책으로 불면인지행동치료법을 제시한다. 외형적인 도구를 사용한 임시방편보단 만성불면증을 일으키는 원인인 수면과의 관계를 악화시키는 행동과 사고방식을 해결하는데 중점을 둔 치료법이다. 저자는 수면에 대한 욕구를 자신과 동행하는 의식적인 관계로 설정한다. 이렇게 해야한다하는 생각이 수면에 강박을 주면 수면은 더욱 움츠려 들고 생체리듬은 고유의 선택을 잃어버린다. 어떤 조건이나 생각을 하지 않게 된다면 오히려 몸의 감각은 자연스럽게 무너진 생체시스템을 보완하려할 것이다. 환자는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는 매일의 수면 일기를 작성하면 된다. 수면일기는 자신의 생각과 실제 수면간의 관계를 이해하고 행동변화를 만들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잠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잘못된 것일까? 잠이 오면 무조건 자야하는 것일까? 한가로운 소리 한다고 할지 모르지만 인간에 수면이란 욕구가 주어진 건 우연이 아니다. 눈을 뜨고 있는 것만큼 수면도 중요하다. 초기인류의 생활상은 시간과는 별다른 관련이 없었다. 인간을 대상화 물질화하는 작업이 시작된 산업 혁명 이후 인간에겐 잠이란 필요치 않는 시간 낭비라는 관점이 지배적으로 자리한다. 현대사회는 각성을 존중시한다. 24시간 깨어있음을 마치 변화와 성장의 상징이라 여기는 것 같다. 그런데 지속가능할까? 우린 수면에 대한 잘못된 질문에 노출되어있다. 잠은 질문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의 대상이다. 생체리듬의 교란은 수많은 질병의 원인을 제공하고 불필요한 비용을 양산한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Hello Sleep는 탁월하다. 매일 잘 자는 것은 매일 각성하는 것 못지않게 삶의 질을 높여준다. 우리의 선택은 잠과의 친구 되기다. 항상 곁에서 자신을 응원해주고 보호해주는 든든한 친구, 그리고 Hello Sleep은 많은 가능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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