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인생에서 무엇을 놓치고 있는가
세종 지음, 이근오 엮음 / 모티브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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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명한 통치자는 역사와 민중의 틈바구니에서 자신의 역할을 아는 인물이었다. 조선시대 수많은 왕들이 통치권을 휘둘렀지만 세종만큼 백성을 위한 군주는 없었을 것이다. 그의 업적은 훈민정음과 측우기등 과학기구의 발명, 제도개선으로만 한정되지 않는다. 세종의 위대함은 나라의 근본을 사람에게서 찾았다는 것이다. 그는 능력보단 개인의 자질을 보았다. 한 번의 실수로 사람을 내치지 않았고 부족함이 보이면 기회를 열어주었다. 또한 일을 맡긴 신하를 신뢰했고 맡긴 일은 믿을 줄 알았다. 신하들은 당연히 최선을 다했고 세종의 말 한마디에 담긴 의미를 깊이 새겼을 것이다. 세종은 사람을 볼 줄 아는 왕이자 백성을 가장 깊이 인식한 군주였다.

 

세종은 백성이 율문()을 어디까지 알게 할건인가를 두고 허조와 논의를 한 적이 있다. 자신들도 잘 알지 못하는 율법을 어리석은 백성들이 깨우친다면 사대부 위상은 땅으로 떨어질 것이다. ‘신은 폐단이 일어날까 두렵습니다. 간악한 백성이 법을 알게 되면 죄의 크고 작음이 드러나 제 마음대로 농간을 부릴 것입니다.’ 허조의 의례적인 답변에 세종이 만족할리 없었다. 세종은 고의로 한 것과 몰라서 한 것이 같을 수 없다며 다시 논의하라고 명한다. 조선은 위계질서가 상당했던 사대부의 나라다. 현실에 반영하면 어떨까? 법에 가까운 사람은 법조인이지, 일반인들이 아니다. 법을 알아야 하는 것은 개인의 몫일뿐,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다. 덕분에 자신의 지위나 인맥을 이용한 법꾸라지들이 법을 오용하고 왜곡한다. 농간은 어리석은 백성이 아닌 간악한 지도자들이 부리지 않는가?

 

누구나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아무나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문제를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타당성을 입증하려 나름 논리를 주장한다. 하지만 믿을만하지 않다. 문제 속에 타인을 조정하려는 의도가 숨겨있기 때문이다. 시경의 빈풍, 칠월편은 농사일의 고됨과 배고픔, 추위와 궁핍함을 담아낸 작품이다. 세종은 본시를 읽고 변계량과 경연하며 기존과는 다른 시각을 이야기한다. 백성의 가난한 부분만 들추고 해결 방법을 말하지 않는다면, 시를 읽는 의미는 무엇인가? 백성의 고통을 모른 체하자는 것이 아니다. 고통이 있다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답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세종의 태도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지도자는 문제인식도 중요하지만 해결방법을 제시해야한다. 세상을 바꾸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언제나 해결방법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인간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인간은 자신을 변형할 수 있는 수많은 인격을 가지고 있다. 악인도 선인이 될 수 있고 선인도 악인이 될 수 있다. 문제는 악인이 선한 척 할 때 많은 이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세종은 이런 사람을 구분하기 위해 일은 먼저 맡겨보라 말한다. 사람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는 순간 본심이 드러난다. 호의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자리를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보면 그 사람의 본 모습이 드러나게 된다. 세종의 지혜는 놀랍기만 하다. 최근 한국사회 관료들의 모습을 보면 얼굴에 쓰인 진심이 엿보인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자리에 앉아있는지, 상사의 눈치를 보는지, 일에 매진하며 소신을 다하고 있는지. 겉은 공손하나 속으로 간사한 자를 가장 경계해야한다는 세종의 목소리가 묵직한 울림을 전달한다.

 

왕은 후대의 기록을 통해 자신의 치적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세종은 재임기간에도 관료와 백성들의 두터운 추앙을 받은 위인이었다. 본 책은 세종이 추구한 인재론을 중심으로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제시한 자기계발서다. 사람을 볼 줄 아는 방법, 마음을 얻는 법, 인재를 다루는 방법, 힘의 사용법 그리고 보다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조건들을 다루고 있다. 세상은 변했지만 인재상은 변하지 않았다. 인재를 보는 리더의 자격 또한 더욱 구체적이고 현실적이 되었다. 근무자흑이라는 말이 있다. 먹을 가까이하면 나 또한 검어진다는 뜻이다. 부정적인 말이 가득한 곳에 머물면 생각이 거칠어지고, 냉소적인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의심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인간은 주위를 닮아간다. 흐름은 서서히 자신을 잠식시키며 삶의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인간은 변하기보다 물드는 것이라는 세종의 격언은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인생엔 수많은 실수들이 뒤따른다. 실수를 인정하고 다시 일어서는 것, 완벽하기보다 조금씩 성장하는 것, 삶을 풍요롭게 하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세종대왕은 자신에 주어진 현실을 묵묵히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묻고, 듣고, 고치기를 반복했던 인간이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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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적 혼자의 시대
김수영 지음 / 다산초당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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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삶은 타인에 의해 규정됩니다. 인간이란 단어에 사람 사이란 뜻이 담긴 것은 인간존재의 실체적 의미를 나타냅니다. 함께 살고자 하는 욕구는 본능적입니다. 매슬로우는 생존, 안전, 사랑과 소속, 존경, 자아실현을 인간이 충족하고 싶은 5단계 욕구로 설정합니다. 자아실현을 제외한다면 대부분 공동체와의 연결에 집중되어있습니다. 사회적 연결이 생존과 정서적 안정의 최우선적 조건임을 표현한 것입니다. 비단 매슬로우의 욕구계층이론이 아니더라도 인간이 홀로 살기 어렵다는 것은 유전적 진화과정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가구의 변화가 예사롭지 않습니다. 1인 가구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핵가족화와 함께 탈가족화 시대가 시작된 것입니다. 2025, 1인 가구 1,000만 시대가 열렸습니다. 전체가구의 42%가 넘습니다. 1인 가구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적 현상으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1인가구는 왜 그토록 빠르게 확산되는 것일까요? 홀로서기를 선택한 이들의 삶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1인 가구는 증가속도에 비해 여전히 아웃사이더로 인식됩니다. 가분수형 사회구조가 핵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변화는 직장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인가구는 홀로서기를 선택한 이유로 자유를 손꼽습니다. ‘식구가 있으면 제약이 너무 많고 나의 자유로움이 사라지는 것 같다. 지금 상태가 편하다.’ 단순한 이야기 같지만 응답엔 복잡한 사회인식이 숨겨있습니다. 그들이 가족을 벗어난 이유가 단지 자유에 대한 갈망뿐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선택도 가능했을 것입니다. 급변하는 사회는 불안정성이 반복됩니다. 삶의 방정식이 재편되고 기존의 상식이 급격히 무너집니다. 결혼비용, 주거비용, 양육비용과 같은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자 불확실성이 커져갔습니다. 직업의 안정성도 사라졌습니다. N포세대와 함께 고가의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한 영끌족이 탄생했습니다. 예측할 수 없는 사회, 불안정한 시대에 굳이 결혼하면서까지 큰 변동성을 떠 앉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유를 선택합니다. 1인 가구의 증가는 개인의 선택과 함께 사회적 변동성이 만들어낸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1인 가구에 특별한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 개인의 문제로 치부합니다. 하지만 그들은 우리의 가족이자 동료 그리고 친구들입니다. 같은 세계에서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이젠 그들이 원하는 삶의 방정식을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본 책은 Alone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개인화시대 1인 가구 생활양식을 연구해온 사회복지학과 교수의 6년간의 연구기록이 담긴 혼자의 시대 보고서입니다. 저자는 사회배제의 원인을 개인의 결함이나 선택이 아닌 사회적 조건의 산물임을 주장합니다. 1인 가구 또한 사회배제의 대상으로 인식되어왔습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1인가구의 86%가 현재의 삶에 만족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면엔 말 못하는 문제들도 많습니다. 집에 들어선 순간 복잡한 문제들과 직면하게 됩니다. 홀로 서기를 선택한 이들은 가장 힘들고 어려운 순간을 몸이 아프거나 위급할 때라고 말합니다. 한명이라도 옆에 있으면 119에 연락이라도 해줄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홀로 산다는 가장 큰 두려움이자 불안이었습니다. 두 번째는 식사 해결의 문제입니다. 불규칙하고 질 낮은 식사가 반복되면서 이른 나이에 건강 적신호가 켜집니다. 대사이상이 진행되고 만성질환에 취약해집니다. 염증이 반복되며 신체적 건강이 악화됩니다. 외로움이 지속되면서 우울증이 반복되는 정서적 건강마저 심상치 않습니다. 그럼에도 1인 가구는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가장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을 합니다. 사회구조는 물론 공공서비스도 가족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그런데 혼자 사는 사람들은 누구를 위해 일하는 것일까요? 핵가족의 라이프 스타일이 생산, 재생산이 중심이라면 1인가구는 자신이 최고의 가치이자 목적입니다. 이들에게 노동은 자기 자신을 만들어가는 활동이고 여가는 자신을 계발하고 회복시키는 시간입니다. 일 중심으로 사는 싱글 직장인들은 거주지, 교통편, 휴식공간을 직장과 가까운 곳에 선택합니다. , 가정의 양립이 없기에 직장에 곧 삶의 주거지이자 목적이 됩니다. 싱글 직장인들의 미래는 오직 자신의 계획과 실행에 달려있습니다. 그들은 인풋을 들인 만큼 아웃풋이 분명하길 원합니다. 불분명한 비합리적 선택을 배제하는 것입니다. 신자유주의적 경쟁과 성과체계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구조는 일과 직업에 매달리는 싱글족의 나르시시즘을 더욱 강화하고 있습니다. 일은 노동이라기보다 하나의 존재자체가 되고 있습니다. 대부분 인터뷰 참가자들은 일이 자신의 정체성이자 인생이며 삶의 형식이라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미셸푸코는 사회가 발전할수록 권력은 더욱 세련되게 개인의 삶을 규정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이 스스로 어떤 가치와 규범을 좋은 것이라 믿게 만드는 것입니다. 통치성이라 불리는 원리는 개인이 자유로운 선택을 하는 것 같지만 실은 사회가 바라는 방식으로 스스로를 관리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권력이라 강조합니다.

 

1인 가구를 위한 복지는 아주 미미합니다. 식품업계를 중심으로 1인 식단이 유행하지만 범위는 한정되어있습니다. 직업에 올인하는 1인 가구의 경제적 만족도는 어떨까요? 돈에 대한 입장은 주관적입니다. 전문직 1인가구는 외식비율이 높지만 살림이 부족합니다. 저소득 1인가구는 상호부조를 활용한 연결을 중요시합니다. 돈이 많다고 행복하지도 없다고 불행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가능성은 얼마든지 열려있습니다. 1인 가구의 생애는 몸이 아프면서 빠르게 식어갑니다. 가족이 없다는 것은 자신을 돌볼 사람이 존재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살림과 돌봄은 생존에 필수적 조건입니다. 어떤 대상이 좋은 상태에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된다는 살림은 애정과 같은 말입니다. 인생은 누구에게나 마무리가 따라옵니다. 1인 가구가 가장 두려운 것이 고독사입니다. 아무리 아파도 출근하는 이유로 자신을 돌봐줄 누군가 곁에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1인가구의 역설입니다.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는 타인이 있기 때문입니다. 1인가구의 선택은 개인의 의사라기 보단 사회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짙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대부분의 상황을 개인이 처리하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카스텐바움과 모이먼은 인간의 죽음을 죽어감-사망-사후에 이르는 일련의 사건으로 확장합니다. 죽음의 과정에 지인들과 사회시스템이 동참한다는 것입니다. 주변인은 추모일을 통해 망자를 기억합니다. 사회는 살아있을 때뿐만이 아니라 죽음도 연결되어 있습니다. 1인가구는 개인의 선택이기 전에 사회변동성에 밀려나간 우리의 가족들이 아닐까요? 1인가구를 위한 따뜻하고도 냉철한 보고서필연적 혼자의 시대홀로 서기가 필연은 아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하지만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는 사실이 불편하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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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질 팬데믹
비만대사통합의학회 지음 / 와이즈바디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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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건강상식이 오히려 병을 키우게 됩니다. 상식처럼 알려져 왔던 고탄수화물 식단이 대사시스템을 망가뜨리는 제2형 당뇨병의 원인으로 밝혀지면서 잘못된 건강습관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고탄수화물 식단은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20세기 중반 갑자기 발생한 심장병은 미전역을 공포로 몰아넣게 됩니다. 수많은 이들이 심장병으로 사망하자 미 정부는 해결책이 필요했습니다. 때에 맞춰 프레이밍햄 연구소는 총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사람이 심장병 발병 위험이 크다는 자료를 발표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았던 질병의 위협이 구체적이고 측정 가능한 숫자로 확인된 최초의 순간이었습니다. 대중은 불확실성을 제거할 확실한 답을 원했고 정부와 언론은 진실을 숨긴 채 지방을 많이 먹으면 혈관에 기름때가 끼어 막힌다 란 직관적이고 단순 명쾌한 메시지를 공표합니다. 프레이밍햄의 연구는 포화지방이 심장병의 주범이라는 식이-심장가설을 내세운 얀셀키스에 의해 크게 확장됩니다. 의학계와 언론은 환호했고 얀셀키스의 체리피킹은 고착화되어 향후 전 세계 식단과 영양정책을 결정짓는 강력한 신념으로 자리 잡게 됩니다.

 

지방에 대한 오해는 77년 맥거번보고서에 의해 정치적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당시 미국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곡물의 소비처가 필요했습니다. 또한 식품업계를 통해 다양한 가공식품이 등장하게 됩니다. 지방이 사라진 자리에 설탕, 과당, 시럽, 정제탄수화물등이 채워집니다. 향후 수십 년 동안 고탄수화물은 정부와, 식품업계, 제약계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영양교육의 절대적 기준이 됩니다. 그런데 고탄수화물이 식단을 지배하게 된 80년대 이후 미국을 비롯한 대부분 국가들에서 비만과 제2형 당뇨병 유병률이 수직으로 치솟았습니다. 결국 심장병을 일으킨다는 저지방의 오해가 무너지고 진짜 범인이 드러납니다. 설탕과 탄수화물의 거짓된 정보가 의학계를 중심으로 폭로된 것입니다. 의학계는 그동안 무시당했던 지방의 역할을 주목하게 됩니다. 몇몇 과학자들의 잘못된 판단과 정부와 언론의 무책임한 선동이 수많은 만성질환자들을 양산했고 천문학적인 사회적 비용을 부담시킨 것입니다. 잘못된 판단은 결국 모든 구성원들이 해결해야할 문제로 다가옵니다. 문제는 거짓된 정보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자리를 지킬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당질 팬데믹은 3부로 구성되어있습니다. 1부를 통해 우리가 믿어왔던 저지방 식단의 진실을 규명하고 건강상식이 주는 메시지와 진위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모델링을 점검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건강수명을 증가시키고 건강 식단으로 알려진 지중해식 식단입니다. 지중해식 음식하면 떠올리는 것이 파스파, , 쿠스쿠스와 같은 곡물 요리입니다. 하지만 과거의 지중해식 식단은 현대요리와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올리브 오일류의 건강한 지방, 제한된 탄수화물, 풍부한 채소와 콩류, 질 좋은 육류등 양은 적었지만 질은 최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설탕과 탄수화물이 배제되었습니다. 마트에 가면 저지방, 무지방이 적힌 수많은 유류제품을 볼 수 있습니다. 지방엔 비타민 A,D,E,K2와 같은 지용성비타민이 녹아있고 멋진 풍미를 맛 볼수 있습니다. 지방이 사라진 자리에 액상과당, 감미료, 화학첨가물이 첨가되었습니다. 또 하나의 잘못된 상식이 칼로리 계산법입니다. 칼로리는 다이어트에 절대적 기준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칼로리는 평등하다는 것은 거짓말로 판명되었고 우리 몸은 칼로리가 아닌 정교한 호르몬 시스템에 의해 조절되는 생화학공장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무지방, 칼로리, 탄수화물 식단은 여전히 식품업계의 최고 수익수단입니다.

 

본 책은 잘못된 건강상식의 폐해가 어떻게 건강을 무너뜨리고 있는지를 조명합니다. 핵심 주제는 인슐린저항성입니다. 췌장에서 생성되는 인슐린은 혈중 포도당을 관리합니다. 포도당이 든 음식을 섭취하면 췌장은 인슐린을 분비하여 혈당을 정상으로 낮추게 됩니다. 쓰고 남은 포도당은 단기적으로 간과 근육에 글리코겐 형태로 남고 장기적으로 지방으로 전환되어 체지방에 쌓이게 됩니다. 혈액에 포도당이 넘치면 인슐린은 지방 저장 스위치를 켜는 동시에 지방 연소 스위치를 꺼버립니다. 문제는 탄수화물이 높은 식사를 반복하면 높은 인슐린 수치가 유지되면서 몸은 지방 저장 모드에 머물게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탄수화물 과다로 인슐린이 과다 분비되고, 지방이 축적되며 에너지가 부족하다는 착각이 일어납니다. 상황이 지속되면 몸은 탄수화물을 갈망하게 되고 세포들은 인슐린 신호에 둔감해지게 됩니다. 혈당이 가득하지만 세포들이 인슐린의 말을 듣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이 시작됩니다. 고혈당, 고인슐린저항성이 나타납니다. 인슐린 저항성은 고혈압, 고지혈증, 지방간, 심혈관질환, 통풍, 암과 치매까지 모든 대사질환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원인은 설탕과 탄수화물의 과다섭취에 있습니다.

 

신체는 포도당과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합니다. 포도당을 줄이고 지방을 에너지원으로 대체하는 것이 케톤체입니다. 지방을 연료로 사용하는 케톤대사는 느리고 안정적이며 오랫동안 지속되는 압도적인 에너지 효율을 공급합니다. 케톤은 체지방을 분해하여 연료로 사용합니다. 활성산소가 배출되지 않아 산화스트레스가 줄어들고 혈 뇌장벽을 통과하여 신경세포에도 좋은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또한 혈당 조절이 용이해지며 인슐린 수치를 안정화합니다. 케톤을 주력으로 포도당을 필요한 순간에 사용한다면 최적의 대사유용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본 책은 2부에서 케톤의 비밀과 뇌 세포의 형성, 노화속도를 늦추고 건강수명을 연장하는 지방이 신체에 미치는 탁월한 역할을 집중 조명합니다. 몸은 대사적용으로 활동합니다. 먹는 것이 곧 생존의 시작입니다. 식품세계는 수많은 이해관계로 얽혀있습니다. 어떤 것이 좋은지 판단조차 어렵습니다. 저자는 AI의 발달이 개인 의료화를 앞당길 것이라 말합니다. 불특정 다수에 의존했던 의학적 통계의 허점을 극복하고 개인 맞춤형 의료진단을 통해 보다 정확한 건강 패러다임이 기대됩니다. 본 책은 식품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시작으로 의료시스템과 산업의 이면을 직시하고 통합 의학적 관점을 제시합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최고의 투자는 곧 자신이 먹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당질 팬데믹은 그 시작을 함께할 수 있는 최적의 건강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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율라 비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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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료함을 이기기 위한 자극이 필요하다. 가장 쉽게 근접할 수 있는 방법이 소비다. 굳이 발걸음을 움직일 필요도 없다. 클릭 몇 번이면 화려한 메시지와 함께 온갖 물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화면에 빠지는 순간, 의지와는 무관한 아이쇼핑이 시작된다. 소비를 하는 것인지, 소비가 되는 것인지, 모호한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곧바로 무료함이 지루함으로 바뀐다. 소비의 환상이 고갈된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거지? 현대인의 일상은 소비를 중심으로 진행된다. 생존을 위한 소비로부터 자기실현의 욕구와 과시적 소비까지,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소비라는 거대한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애착이 가는 물건이 있다. 손때가 뭍은 오래된 물건들이다. 빛바랜 사진이나 앨범, 구겨진 박스에 담겨있는 음반, 그리고 구멍 난 책상이나 의자들이다. 이런 물건들은 버리지 못한다. 오랫동안 자신을 지켜준 친구와 같은 존재이자 자신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흔적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가 경험으로 바뀌는 위대한 순간들이다. 율라 비스는 가구점을 방문할 때마다 갈등에 휩싸인다. 원하지만 원하지 않는 수많은 물건들, 전체는 화려하지만 하나는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 비현실적실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그녀는 루이스 하이드의 소비에의 욕구는 일종의 욕정이다. 하지만 소비재는 이 욕정을 미끼로 쓸 뿐 그것을 충족시켜주지 않는다는 말을 인용하면서 소비의 덧없음을 강조한다. 그녀에게 소비는 내적 충만감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구체적이고 실체적 현상을 의미한다.

 

삶은 무엇으로 이루어져있는가? 자신을 규정하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이 돈으로 환원되는 세상이다. 덕분에 삶의 대부분을 소비로 전환할 수 있다. 마치 소비라는 판 위에 인간이 올려져있는 느낌이다. 소비를 위해 존재해야 가치를 느끼는 세상, 율리비스는 자신의 일상이 어떻게 소비와 연결되어있고 소비가 어떻게 개인과 가족을 구성하는지, 삶의 세밀한 과정을 통해 소비의식을 풀어낸다. 집을 구입하고 수리하며 이웃집과의 관계를 맺어갈 때 모든 이슈는 소비로 직행된다. 그 속에 숨겨있는 계층, 지위, 불평등, 정의와 같은 보이지 않는 공동체의 관념이 드러난다. 사실적으로 소비는 삶의 조건을 충족시키지만 또 다른 조건을 구속하는 자본주의의 첨병이다.

 

풍요는 가난을 잊게 만든다. 갤브레이스는 저서 풍요한 사회를 통해 인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시대에, 거의 모든 나라에서, 거의 모든 사람이 가난했다고 주장한다. 현대사회에서 가난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다. 하지만 인류는 최근 몇 십 년을 제외하고 거의 대부분 기근에 시달렸다. 당분이 가득한 음식을 보면 침을 흘리는 본능적 구조는 기근에 대비하고자했던 진화의 산물이다. 풍요의 만연은 무척 이례적이다. 그런데 풍요는 모든 이들에게 같은 경험을 공유하지 않는다. 어떤 이는 풍요가 당연한 줄 알고 있지만 대부분은 풍요 속에 잠긴 과거를 떠올린다. 가난으로 형성된 낡은 사상으로 접근한다면, 풍요가 당연하다는 자신의 생각을 오해하게 될 것이다.

 

가격은 가치와 상관이 없다.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얼마나 희소성이 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달라진다. 포케몬 카드는 아이들에게 가장 유용한 가치 표현 수단이 될 수 있다. 포케몬 카드는 가치가 없는 종이에 불과하다. 하지만 아이들이 모여 욕구를 발산할 때 가치가 변동된다. 어떤 아이는 반짝이는 카드를, 다른 아이는 자신이 가지지 않는 카드를, 어떤 카드는 강력하기 때문에 상대의 카드를 욕구한다. 좋은 거래는 수용자와 판매자의 만족이 공유될 때 이루어진다. 가치를 이해하는 것은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한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다. 아이들의 목적은 카드의 축적일 뿐이다. 자본주의를 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역시 자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소비는 인류의 삶을 극적으로 전환시켰다. 인간은 소비를 통해 만족을 느끼고 자기실현 욕구를 충족시켜왔다. 무엇보다 생존을 번영시키고 삶의 균형을 유지했다. 하지만 균형 있는 소비는 없다. 우리의 삶은 소비로 채워있다. 수년 동안 눈길한번 주지 않은 옷들이 옷장마다 가득하다. 집안 곳곳엔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에 먼지가 쌓여간다. 사용가치를 잃어버린 물건들은 주인을 닮아간다. 자본주의는 소비를 통해 연명한다. 소비가 곧 성장이고 발전이다. 세상은 무엇을 갖고 있는 지로 개인을 평가한다. 또한 대부분 사람들은 갖지 못한 것을 불안해한다. 소비는 안정과 불안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선을 걸쳐있다. 어떤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가? 잠시 소비를 내려놓고 소유에 대한 사유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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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 그리고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 - 소셜 로봇의 시대에 우리는 인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이브 헤롤드 지음, 김창규 옮김 / 현암사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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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은 인간에 어떤 마법을 보여줄 것인가? 인류는 20세기동안 SF소설과 공상과학영화를 통해 멀지않은 미래에 로봇이 일상화될 것이란 가상현실을 꿈꾸어왔다. 특히 아동기에 경험했던 장난감들을 통해 무한한 상상력을 키워왔다. 아이들은 손에 닿는 거의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인격화했다. 인형, 피규어등 수많은 장난감들에 이름을 붙이고 대화를 하며 감정을 이끌어왔다. 이는 인간만이 지닌 고유한 사회적 특징으로 생존진화와 함께 문명의 변영을 이끌어온 본능적 속성이다. 인격화는 애착이 가는 사물이나 생명체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한 특별한 메커니즘으로 작용해왔다. 거리도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아마도 이런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는 분야가 sns일 것이다. 소셜미디어는 부정적 인식과는 달리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sns는 관계의 깊이와는 상관이 없다. 하지만 근거리에서 눈빛을 바라보며 말을 경청하고 부드러운 답변을 통해 위로를 전달한다면 디지털 생명체는 인간에게 마법과 같은 관계를 만들어줄 것이다.

 

2000년대가 들어서면서 다양한 로봇이 등장해왔다. 로봇이 가장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분야는 단연 제조업이다. 그리고 물류, 서비스, 자율주행등 다양한 분야로 활용범위가 빠르게 확산되었다. 소셜로봇은 꽤 오래전에 실용화되었다. 소프트뱅크의 소셜로봇인 페퍼는 인간의 취향과 욕구를 더해 기분까지 기억하며 고유한 관계를 스스로 피드백 하는 진보를 거듭해왔다. 현재 페퍼는 인간의 감정을 읽고 기분까지 맞춰준다. 붙임성 있고 친근하기까지 하다. 이러한 기능을 지닌 소셜로봇은 인간과의 접촉가능성을 빠르게 현실화할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이 신체적 욕구를 넘어 심리적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생각은 무한한 가능성과 동시에 불안한 감정을 일으킨다. 이제 로봇은 거슬릴 수 없는 대세다. 어떤 방식으로 변화하고 진화할지는 전적으로 인간의 의지와 역량에 달려있다. 하지만 AGI가 현실화되고 정체성과 감정이 형성된다면 인간을 뛰어넘는 새로운 종이 탄생할 것이다. 유토피아가 될 것인가? 디스토피아가 될 것인가? 인류는 로봇을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 또한 로봇은 인간의 내면을 어떻게 이끌어 낼 것인가? 인류의 미래는 로봇과의 관계 설정을 통해 이루어질 가능성이 놓아지고 있다.

 

우린 로봇을 어떻게 인지하고 있는가? 서비스 보조의 역할에 만족하고 있는가? 아니면 다른 세상을 꿈꾸고 있는가? 로봇은 접근하기 어렵거나 위험성이 높은 곳에 직접 투여되어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공항, 병원, 은행과 같은 상호작용이 많은 곳에서 반복적이고 일률적인 작업을 실행한다. 하지만 단점도 뚜렷하다. 편향된 알고리즘에 의해 왜곡된 해석을 내놓는다. 특히 챗GPT를 중심으로 한 소셜봇의 급격한 성장은 인간의 감각과 감정에 직접적으로 접근하면서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진짜와 가짜의 구분이 어려워지고 정보의 진실성이 모호해지면서 판단과 선택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인간에 가장 근접하고 있는 소셜로봇은 어떨까? 인간처럼 말하고 언어를 처리하며 감정을 흉내 내는 로봇은 인간 정신에 새겨진 패턴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해석한다. 심지어 의식뿐만이 아니라 무의식까지 접근해 마음을 이끌어낸다. 이 모든 가능성은 인간이 지닌 인격화와 관련이 있다. 차가운 기계에 인간적인 속성을 부여한다는 것, 무엇보다 타자와 연결되고픈 간절한 욕구는 소셜로봇의 진화를 더욱 앞당길 것이다.

 

본 책은 로봇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실을 드러낸다. 로봇에 의존하고 로봇에 인정받아야하는 사회적 체계가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그 중심에 인간의 광범위한 욕구가 있다. 안정과 인정에 대한 욕구와 욕망, 신체적 불편함의 해결, 로봇은 인격을 부여해왔던 그 어떤 대상보다 실체적이고 구체적으로 욕구를 충족시킬 것이다. 하지만 만족할까? 외모의 불쾌함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로봇의 감성지능이 인간을 통제한다면 자신이 통제한다는 생각은 헛된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또한 자신보다 훨씬 뛰어난 지성으로 삶을 통제하거나 인간의 필요성에 대한 질문을 요구한다면 로봇은 인간에게 가장 커다란 두려움과 공포의 대상이 될 것이다. 하지만 현실과는 거리가 멀다. 로봇에 대한 추론은 미지의 영역이다. 지금당장 중요한 것은 실체적인 교감이다. 로봇시대엔 사랑의 기준이 바뀔 것인가? 로봇은 인간의 감정을 오해 없이 이해하고 해결해줄 수 있을까?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공동체의 가치와 의미, 문명과 문화를 어떻게 바꿔놓을 것인가? 저자는 다가올 로봇시대를 다가온 로봇시대로 추론하며 미래를 현실화한다.

 

로봇이 인류의 미래를 책임질 것임엔 거짓이 없다. 또한 인간의 감정에 접근하여 필요이상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하지만 삶은 예측을 빗나가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로봇을 이용하는 인간의 내재적 속성이다. 인간은 애타심 못지않게 파괴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 로봇에 전쟁에 투입되고 공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강제수단이 될 경우 사회는 새로운 신념을 구축할 것이다. 인간을 대상화하는 순간, 로봇은 살인기계로 전환될 것이다. 문제는 통제권이다. 누가 통제권을 가질 것인가? 통제권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지만 다른 문제도 있다. 소셜로봇이 어디까지 인간을 대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불편하고 불안정하다고 로봇에 의존하면 인간은 빠르게 자신의 가치를 상실할 것이다. 부정적이고 불편한 감정이 존재하는 이유는 생존에 필요하기 때문이다. 회복탄력성은 이런 감정을 통해 삶의 회복을 가능하게 만든다. 생각이 없는 로봇에 생각을 만들고 인간과의 교류를 형성에 대체물로서의 가치를 형성하는 것,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알아야한다. 인간을 위한 로봇이 될 것인가? 로봇을 위한 인간이 될 것인가? 로봇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다가오고 있다. 로봇에 대한 직접적이고 실체적인 공론화가 필요한 시기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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