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21세기 시선으로 읽는 동양고전
박찬근 지음 / 청년정신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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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피를 잡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정보는 난무하지만 사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기술의 혼재가 어떤 시대를 이끌어올지 불안과 두려움이 팽배합니다. 그래서인지 자극적인 기사가 연일 쏟아져 나오고 검증받지 않은 뉴스들이 언론과 미디어를 뒤덮고 있습니다. 알고리즘에 지배당한 SNS는 상업주의로 변모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편견이 가득한 정보의 홍수 속에서 하루를 소비합니다. 삶은 방향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타인의 시선에 더욱 민감해지고 비교와 소비를 통해 자아를 충족합니다. 하지만 위기는 곧 다가옵니다. 의미와 목적을 잃어버린 시간은 공허와 무료함이 가득합니다. 나는 있지만 존재하진 않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고 무엇을 바꿔야하며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진솔한 성찰이 필요한 순간입니다.

 

大學(대학)은 내면수양을 통해 자신을 바로알고 사회개혁과 이상적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최고의 고전입니다. 三綱領(삼강령)은 대학의 핵심 덕목으로 삶의 방향을 제시하는 등대와 같습니다. 첫 번째 덕목은 明明德(명명덕)입니다. 명명덕은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순수하고 선한 본성을 지니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어지러운 세상사는 내면의 빛을 가로막고 본성을 흐리게 합니다. 명명덕은 본성을 가로막는 먼지를 닦고 본래의 빛을 밝히는 것을 말합니다. , 스스로 가치와 잠재력을 발휘하는 과정입니다.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귀를 기울이는 진솔하고 적극적인 자기수양입니다. 자기인식은 모든 일의 근원이자 시작입니다. 또한 정직한 자기확신은 성의와 더불어 대학이 논하는 핵심주제입니다.

 

삼강령의 두 번째는 덕목인 新民(신민)은 자신의 덕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과정입니다. 백성을 새롭게 한다는 신민은 오래된 습관이나 관습을 벗어나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것을 뜻합니다. 止於至善(지어지선)은 완전한 선에 도달하여 흔들림 없이 그곳에 머무르는 것을 말합니다. 평화와 공존, 사회적 가치의 중대성이 중심을 이루며 모든 이들이 서로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세상입니다. 또한 지어지선은 공동체의 가치판단을 의미합니다. 어떻게 살아야하는 가에 대한 주제와 목적을 찾는 과정입니다.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은 대학의 핵심주제이자 목표입니다. 삼강령의 주제는 현실에도 유효합니다. 무엇보다 명명덕은 흐트러지는 마음을 바로잡고 삶의 목표를 세워줍니다. 세상의 먼지에 가린 자신의 빛을 밝혀 타인을 이롭게 하며 완전한 선을 이루어 흔들림 없는 공존과 평온을 이루는 것입니다.

 

삼강령과 함께 八條目(팔조목)은 나에게서 세상으로 확장되는 지혜를 말합니다. 格物致知(격물치지)誠意正心(성의정심)修身齊家治國平天下(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여덟 단계는 시작과 끝의 연결을 통해 본말을 이해하며 지어지선의 궁극적 목표를 나타냅니다. 격물치지는 사물의 이치를 끝까지 궁구하여 앎을 지극히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인상적인 항목이 수신과 성의입니다. 誠意(성의)愼獨(신독)과 더불어 스스로를 속이거나 남에게 거짓된 태도를 보이지 않는 솔직하고 진솔한 생각과 행동을 뜻합니다. 스스로 있을 때 삼가라는 신독은 모든 이들에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그만 이익이나 욕심 때문에 어렵게 쌓아놓은 이미지를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이들을 볼 때마다 스스로 삼간다는 신독의 의미를 깊이 깨닫게 됩니다.

 

팔조목의 핵심은 修身(수신)입니다. 수신을 위해선 마음을 바로 하는 正心(정심)이 요구됩니다. 수신은 자기 자신을 올바르게 단련하고 완성하는 과정입니다. 말과 행동의 일치, 내면인식과 자기수양이 부족하면 개인은 물론 사회에도 큰 혼란을 가져옵니다. 수많은 정치인이 개인의 일탈로 몰락의 길을 걷습니다. 그들에게선 어떤 숭고함이나 용기, 타인에 대한 배려를 찾기 어렵습니다. 내면에 갇힌 빛은 여전히 먼지로 쌓여있고 신민과 지어지선은 허망한 말에 불과합니다. 수신은 자신을 다스리는 능력입니다. 자기수양이 부족한 이들이 리더가 된다면 제가는 물론이고 치국도 평탄치 않을 것입니다. 수천 년전의 고전인 대학의 일깨움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묵은 행동에 죽비를 내리고 있습니다.

 

고전은 변하지 않은 진리를 일깨웁니다. 본 책은 삼강령과 팔조목을 중심으로 자기수양의 길을 안내하며 리더십에 대한 원칙을 설명합니다. 무엇을 위해 전진하는가? 어떤 세상을 만들 것인가?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직시하라는 성찰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저자는 대학의 내용이 현실에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무엇보다 흔들리는 정체성을 바로 잡을 때 건강한 공동체가 형성되고 보다 나은 사회질서가 유지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우린 자신이 누구인지를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서경의 극명덕, 고시천차명명, 극명준덕은 본성의 회복과 자기성찰, 덕성실현의 궁극적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잠재력을 믿고 나만의 빛을 발휘하는 皆自明也(개자명야)를 이야기합니다. 내안의 빛, 내면에 존재하는 덕, 오직 자신만이 그 빛의 주인이며 스스로를 밝힐 수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을 잃어가는 시대,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대학을 통해 근본적인 지혜를 만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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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펜하우어 아포리즘 365 일력 (스프링) - 하루 한 번, 삶의 물음에 쇼펜하우어가 답하다
아르투어 쇼펜하우어 지음, 에이미 리 편역 / 센시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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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개의 위대한 힘이 있다. 서니토스, 크레이토스, 투추, 총명함, 도전정신, 그리고 운이다. 나는 그중 마지막 것이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한다.’ 1월이면 다양한 계획을 세우지만 뜻과는 다르게 풀리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계획의 대부분을 지식과 용기, 의지로만 작성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상은 대부분 운에 좌우됩니다. 모든 상황을 운에 맡길 수 없지만 스스로의 일을 하지 않는다면 운도 따라오지 않을 것입니다. 새해를 시작하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쇼펜하우어는 인생플랜을 통해 건강의 중요성을 가장 강조합니다. 그리고 할 바를 다한 다음 나머지는 운에 맡기라 말합니다. 삶은 루틴의 연속이고 어떤 루틴을 선택하느냐에 운명이 바뀝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를 선택하기 전에 먼저 성찰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쇼펜하우어는 합리적 계몽주의와 이성에 반기를 든 철학가로 염세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낙관주의에 숨긴 자유주의를 비판합니다. 인간은 스스로 자유롭지 않으며 맹목적인 의지에 흔들리는 수동적인 존재라는 것입니다. 쇼펜하우어의 철학은 자유에 대한 현대인들의 생각에도 큰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정보는 늘어났지만 갈수록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알고리즘은 편견을 더욱 강화하고 생각과 행동을 통제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실체에 대한 의심이 쌓여갑니다. 이성과 합리성, 자유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 요구됩니다. 우리 세대가 쇼펜하우어에 열광하는 이유는 그의 철학이 구체적이고 실체적인 삶의 모습을 투영하기 때문입니다.

 

사페레 오드, 용기내서 그대로 밀고 나가라는 라틴어입니다. 인생은 예측할 수 없는 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삶의 안정을 가장 우선적으로 선택합니다. 하지만 쇼펜하우어는 고즈넉하고 소란 없는 고독한 삶을 강조합니다. 두 가지 비운중 하나인 고독은 위대한 지성의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세상과 사건은 그저 존재하고 일어날 뿐이라는 철학과 동일합니다. 믿고 싶어 하는 것과 현존은 불편한 관계입니다. 바라는 것이 무엇이든 지금 이 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밀고 나가는 것, 그 실존 속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 쇼펜하우어가 전하는 살아있는 메시지입니다.

 

본 책은 쇼펜하우어 365일 일력으로 쇼펜하우어 작품 전체에서 발췌해 편역하여 현대에 맞게 재구성한 아포리즘입니다. 월별 주제를 새롭게 구성하여 쇼펜하우어의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인생에 대한 각자의 생각은 삶의 구성을 통해 해석됩니다.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 곧 자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이기 때문입니다. 비합리적 이성에 대한 비판은 자유롭게 날던 새를 새장에 가두는 것과 동일합니다. 그는 본능을 누르고 사는 삶은 죽음보다 비참하다고 강조합니다. 자유는 구속이 아니라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기쁨과 즐거움을 찾는 과정입니다. 우린 어떤 자유를 갈망하고 있습니까? 혹 틀에 갇힌 자유를 통해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새해가 되면 다양한 예측이 쏟아져 나옵니다. 저마다 그럴듯한 논리를 펼치며 주기주장을 앞세우는데 들어맞는 경우는 극히 드뭅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들의 예측을 눈여겨보고 자신의 운을 걸어봅니다. 세상의 이치를 안다는 것은 자만에 불과합니다. 쇼펜하우어는 세계와 우리의 눈 사이에 마야의 장막이 있다고 말합니다. 세계는 있다고도 없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세계는 꿈과 같고 모래 위 신기루와 같습니다. 무엇이 사실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자만은 자신을 속이고 타인을 속이는 것과 같습니다. 삶의 실체를 구성하는 것은 오직 이 순간뿐입니다. 누구보다 현실적인 쇼펜하우어를 왜 염세주의자라 비판했을까요? 오히려 구체적 사실을 통해 현실을 인지하는 것이 보다 나은 삶의 흔적을 구성하는 것은 아닐까요? 삶은 현존으로 만나며 순간의 축적으로 미래를 밀어갑니다. 하루 한번 삶의 물음에 진솔한 대답을 들려주는 쇼펜하우어 아포리즘 365 일력, 의미 있는 하루의 시작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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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질서 -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
뤼디거 달케 지음, 송소민 옮김 / 터닝페이지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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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저작으로 알려진 도덕경은 서기 전의 작품이다. 도덕경엔 단일성을 대표하는 도가 등장하는데 도는 신, 만다라, 니르바나, 태양등과 같은 다양한 이름으로 해석할 수 있다. 도는 세상의 중심이다. 변하지 않으며 어느 것 이상 이하도 아닌 존재 그 자체다. 이름이 없으니 천지의 처음이다. 고대세계 문헌들과 전통엔 도와 같은 단일성을 지닌 사상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기독교의 유일신은 단일성의 대표적 상징이다. 단일성은 감각으로 느낄 수 없으며 의식 속에서만 경험할 수 있다. 단일성은 모든 것의 중심이자 만물이 추구하는 절대적 질서다. 그런데 단일성이 깨지면 세계는 대립성을 띄게 된다. 대립성은 단일성의 반대 극이자 만물의 근원이다. 또한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으며 모든 것에 적용되는 강력한 질서이자 법칙이다.

 

질서는 인간 생존에 필수적인 조건이다. 질서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물론 문명도 존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질서는 모든 행동의 기준이 되며 생각을 통제한다. 질서는 안정을 가져다주고 평온함을 일깨운다. 하지만 때론 권력자의 창이 되기도 한다. 인류역사는 누가 질서를 정하느냐에 따라 다양한 지위와 계층이 등장했다. 철학의 실체적 뿌리도 결국 질서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에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나란 존재, 타인과의 관계, 공동체의 형성은 질서를 벗어날 수 없다. 질서는 사회변화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특히 인류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한 가장 강력한 질서는 종교였다. 그런데 우린 보이지 않는 질서를 이야기한다. 의식적으로 생각하기 전엔 이해하기 어려운 삶의 법칙이다.

 

선은 악이 있어야 존재한다. 선과악의 이원법은 인간사회를 구분 짓는 가장 강력한 질서중의 하나다. 그런데 선만이 존재한다고 인류는 영원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전통사상은 선을 강조하기 위한 악의 존재를 유독 강조한 작품들이 많다. 하지만 선과 악은 구분될 수 없다. 선속에 악이, 악속에 선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일성을 강조하는 종교도 숱하게 대립성에 빠져든다. 대립성은 인류에게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다. 대립성은 모든 곳에 적용된다. 태극문양은 백과 흑의 대립을 무척 아름답게 표현한 작품이다. 백은 흑과 함께 있을 때 가치와 의미가 나타난다. 이는 유전학의 발달로 알게 된 DNA의 구조에서도 나타나며 지구상의 모든 물질과 인간의 세포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남성과 여성은 어떤가? 중요한 것은 그동안 우리의 삶의 방식이 철저히 양극위주였다는 점이다. 한 쪽이 강하면 결국 다른 쪽이 새로운 힘을 얻게 될 것이다. 대립의 법칙은 인류역사를 지배해왔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계는 대립의 법칙 하에 질서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뿐이다. 그림자가 싫다고 빛을 피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대립의 법칙이 절대적이라면 공명의 법칙은 최근에야 알려진 법칙이다. 세기의 화제작 시크릿은 공명의 법칙을 화려하게 표현한 작품이다. 공명은 진동과 에너지로 설명할 수 있다. 모든 원자는 물질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에너지에 의한 진동으로 움직인다. 우리의 움직임 또한 예외가 아니다. 작은 아원자로부터 팽창하는 우주까지 공명은 우리의 한계를 넘어선 절대적 법칙이다. 공명의 대표적 감정이 공감이나 사랑이다. 사랑하는 사람들은 강한 공명을 느낀다. 둘은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 됨을 인식한다. 공명은 대립성의 인간을 단일성으로 이끄는 가장 강력한 법칙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 인류가 그토록 오랫동안 종교를 벗어나지 않았던 이유도 단일성에 대한 강한 믿음이었을 것이다. 종교만큼 대립과 공명의 법칙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공동체도 없다. 중요한 것은 모든 만물이 대립성을 띄지만 의도적으로 공명을 나타낼 수 있다는 사실이다.

 

운명이 존재할까? 공명의 법칙을 이해하면 운명은 반드시 존재해야한다. 운명은 스스로의 선택이 가능하다. 보이지 않는 질서는 의도를 벗어난 모든 현상에 관한 우주적 대답을 주제로 단일성과 대립, 공명의 법칙을 소개한다. 대립의 법칙을 통해 만물의 변화와 흐름,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철학적 주제를 어렵지 않게 해석할 수 있다. 공명은 우주의 질서를 떠오르게 한다. 나와 너의 관계, 공동체는 공명에 의해 연결되어있다. 또한 대립과 공명을 이해하기 위해 분석과 통찰을 통한 의식과 물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특히 공명의 법칙을 활용한 장 이론은 기존의 관점을 재해석할 수 있는 특별한 관점을 보여준다. 보이지 않는 질서는 운명의 법칙을 말한다. 우리의 삶은 보이지 않는 질서의 결과이며 운명의 작용방식을 이해한다면 얼마든지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 삶은 우연의 결과가 아니다. 어떤 운명이 알 수 없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현재를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다가오고 있다. 이 또한 운명의 작용일까? 깊은 철학적 주제와 과학적 논리가 돋보이는 보이지 않는 질서, 그 심오한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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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단한 삶은 보통의 날들로 이루어진다 - 리추얼이 만드는 일상의 회복력
펄 카츠 지음, 정영은 옮김 / 북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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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일상은 리추얼로 이루어져있다. 스타벅스에 들어가면 그 곳만의 규칙, 의례, 형식을 마주하게 된다. 몇 번 반복하면 쉽게 따라할 수 있지만 처음엔 다소 이질적이거나 이방인 같은 정서적 혼란을 느끼기도 한다. 틀은 공간을 지배한다. 대부분 인간들은 공간속에서 편안함을 느끼고 안정을 되찾는다, 이곳은 이래야한다 라는 의식은 우리의 감정에 위로를 가져다주고 새로운 시각으로 사물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선물한다. 리추얼은 수많은 공동체의 원형을 제공하며 자신이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을 확산시킨다. 우린 일생을 통해 다양한 리추얼을 만나지만 실체적으로 느끼는 감정엔 다소의 차이가 있다. 하지만 낯선 곳에서의 고립감은 리추얼을 무너뜨리고 긴장을 일으켜 정서적 혼란을 야기한다. 리추얼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놓고 있는가? 우린 리추얼을 통해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인식하고 이해하며 삶의 안정감을 찾는가? 리추얼이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세상을 이해하는데 리추얼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 어쩌면 우린 틀 안의 세상에서 가장 편안함을 추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단단한 삶을 만들기 위한 보통의 날을 기억하는 것은 삶의 가장 중요한 일부일 것이다.

 

삶에는 크고 작은 형식이 필요하다. 리추얼은 세상을 정돈해주기 때문이다. 리추얼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루틴을 비롯해 에티켓, 관습, 습관, 의례, 관례, 규칙, 지침, 의식등과 같은 개인적 의미를 담고 있는 정기적이고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일련의 행위를 말한다. 리추얼은 시공간의 적합성과 관계의 일관성, 질서유지를 위한 일정한 틀을 제공하며 공동체의 관계, 규칙, 행동을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건이 될 수 있다. 또한 가족 간의 상호작용과 일상적 생활, 개인적 의미의 습관이나 루틴을 포함한다. 특히 종교적 의식이나 전통 제례, 장례절차는 특별한 리추얼로 시대나 장소마다 다르게 진행되지만 리추얼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많은 이들이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이다. 또한 리추얼은 고정되지 않는다. 시대에 따라 의미를 달리하고 공간에 적용받으며 개인적 의미에 의해 특별한 의식을 더하기도 한다. 흔히 운동선수들이 시합 전 하는 반복적 행위들은 그들의 마음에 정서적 안정감을 주는 특별한 리추얼들이다.

 

그런데 틀에 갇힌 리추얼이 어떻게 자유를 제공할 수 있을까? 저자는 종교의식 속의 자유를 예로 들며 종교인들은 수많은 규칙 안에서 오히려 큰 권한을 느낀다고 말한다. 선택권이 박탈당했지만 삶에 대한 통제력을 더욱 강하게 느끼는 것이다. 사실적으로 기도할 때 많은 이들이 보다 큰 자유를 깨닫는다. 성전이라는 공간이 생각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주는 것이다. 자유가 구속되었다는 강한 느낌을 받는 감옥이나 군대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만든 리추얼을 통해 막막하고 무의미한 시간을 통제하고 심리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 만델라는 특별한 방법으로 자유의 틈새를 찾았다. 운동, 기도, 명상과 같은 자발적 일정표는 시간의 경계를 만들어주고 스스로에 대란 통제력을 느끼며 심리적 자유를 만들어준다.

 

본 책은 다양한 리추얼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2부의 인간이 마주하는 생로병사를 통해 태어나면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리추얼이 우리의 삶에 어떤 방식으로 전개되는지를 디테일하게 설명한다. 인간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통해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가족마다 정해진 리추얼이 있다. 가족 간의 리추얼은 일관성과 통일성을 강조하고 구성원의 일원으로 정착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그런데 가족의 변화와 함께 리추얼도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특히 가족 간의 식사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많은 가족이 참여하는 식사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젠 혼밥이 대세이며 각자의 방에 들어가 새로운 문화를 탐닉한다. 이는 해마다 변하는 축제나 문화현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리추얼은 시대의 문화를 반영하고 삶의 모습을 해체하거나 새로운 방식으로 전환한다. 본 책을 통해 가장 의미 있게 다가온 부분이 죽음에 대한 태도다. 장례식은 산자에 대한 위로이자 위안의 표현이다. 상실을 슬픔으로 표현하는 것, 죽음을 삶으로 받아들이며 망자와의 이별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의례는 장례식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다. 시대에 따라 장례에 대한 의례가 바뀌었듯이 죽음에 대한 생각도 리추얼의 변화에 따라 다양하게 바뀌고 있다. 죽음 리추얼은 상실을 인정하고 성찰하며 애도함으로써 산 사람에게 심리적 자유를 가져다준다.

 

리추얼은 시대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한다. 결혼 풍속도 그 중 하나다. 핵가족화에 따른 결혼문화의 이탈, 과도한 디지털 문화의 확산, 불평등한 사회구조의 양산은 결혼풍속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미국 젊은 세대의 훅업문화는 관계 확산을 기피하며 리스크에 대한 정서적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데이트를 위해 사전 준비를 하던 과거와는 달리 즉흥적인 쾌락을 위한 만남은 불편한 감정노출과 예기치 않은 정신건강 문제의 원인이 되고 있다. 저자는 우리의 삶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우린 틀 안에서 자유롭다는 말을 심심치 않게 한다. 하지만 틀 안을 통해 자유를 꿈꾼다. 저자는 뇌 기능을 통해 인간이 특별한 활동을 하지 않을 때 가장 창의적이라고 말한다. 평범한 일상은 우리에게 가장 강한 의미를 전달한다. 리추얼이 삶에 끼치는 영향력과 리추얼 부재시 느끼는 정서적 혼란이 삶의 경계를 어떻게 구분 짓고 있는지, 단단한 삶을 위한 특별한 일상을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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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테크 자본주의
김창익 지음 / 다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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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을 통해 개인의 영리활동이 사회전체의 공익을 증진시킨다는 보이지 않는 손을 언급한다.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흐름에 모든 것을 맡겨야한다는 자유방임이론이다. 자유방임주의는 시장자본주의를 탄생시킨다. 그런데 시장이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보이지 않는 손은 악몽으로 변하게 된다. 이론적으론 특별한 문제가 없을 것 같은데 왜 시장은 그토록 자주 무너지는 것일까? 혹 개인의 욕망이 부족한 것일까? 기업의 목적이 흔들리는 것일까? 아니면 정부의 과도한 개입 때문일까? 어느 것도 확실한 정답은 아니다. 시장은 원래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곳이다. 쏠림이 강하고 집단 망상이 난무하는 곳이다. 더군다나 시장을 통제하고 조정하고 싶은 집단 간의 혈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현장이다.

 

80년대 레이건 미 대통령은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소득세감면, 정부규제완화, 정부 지출증가억제, 통화량 긴축을 중심으로 레이거노믹스를 발표한다. 자유시장경제학이라 불리는 레이건의 경제정책은 스테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한 초유의 발상으로 당시엔 상당한 논쟁의 중심이 되었다. 레이건주의는 단기간의 경기부양엔 성공했지만 과도한 부채증가로 또 다른 문제를 양산하게 되었다. 하지만 닉슨체제 이후 달러패권에 몰두하던 미행정부로선 달러의 영향력이라는 더할 나위없는 무기를 구축하게 되었다. 자유시장주의는 월가를 중심으로 빠르게 구축되었고 90년대 세계화의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며 미국의 패권정책의 가장 핵심적인 시스템을 유지하게 된다.

 

IMF외환위기,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 위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언뜻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위기의 중심엔 월스트리트라 불리는 미국중심의 거대 금융자본이 숨어있다. 90년대 이후 월가는 금융기업의 이익을 위해 세계 금융시스템을 재편한다. 그들에게 부채는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었다. 미국은 더 이상 수출 국가를 지향하지 않았다. 보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국가들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고 수입을 극대화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었다. 수출국들은 벌어들인 달러로 국채와 같은 미국 금융자산을 구입했다. 현금과 다름없는 미국채는 최고의 상품이었다. 결국 달러는 월가로 다시 돌아왔다. 금융업을 대리하는 월가는 앉아서 돈을 쓸어 담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동아시아의 작은 국가들의 몰락은 너무 쉬운 돈벌이 수단이었다. 한국은 월가의 시스템에 철저히 이용당한 힘없는 국가였을 뿐이다.

 

글로벌 위기의 중심은 이미 너무 잘 알려져 있어 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당시 월가 CEO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벌었으나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았다. 이는 코로나 이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대응책에서도 마찬가지였다. FED는 과거를 무시하기라도 하듯 무차별적인 국채를 발행하며 겉으론 금리에 반응하는 듯 했지만 안으론 엄청난 자금을 직접 살포했다. 부채 증가는 달러의 위상과 직결되었다. 위기의 순간마다 달러가치는 더욱 폭등했다. 하지만 트럼프는 2기에 집권하자마자 반세계화, 반월가, 자국주의를 앞세웠다. 월가의 부채 전략이 미국 경제를 망가뜨리고 있다고 경고한 것이다. 시장자본주의에 극히 우호적이었던 트럼프의 생애를 바라본다면 정치적 이해관계를 통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트럼프 우회전략은 그를 대통령을 만들었고 반세계화는 월가의 시스템에 치명적인 타격을 예고하고 있다,

 

제조업을 다시 미국으로, 부채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트럼프의 시선은 그가 그토록 증오해왔던 빅테크기업을 향하고 있다. 트럼프와 머스크의 브로맨스, 트럼프는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면 즉시 적을 친구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이다. 또한 즉각적인 반대도 가능하다. 둘의 연합이 오래갈리 없지만 결국 미국이 맞닿은 위기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현상에 불과하다. 빅테크의 성장은 새로운 통제자의 출현을 암시한다. 시장자본주의의 부활이 새로운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월가와 빅테크 기업들 간의 자본 패권전쟁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 중심에 화폐 주도권이 놓여있다. 과도한 부채를 떠 앉고 있는 달러가 언제까지 통화의 정점을 이룰 수 있을까? 중국의 CDBC는 미국에 큰 위협으로 다가온다. 또한 빅테크 기업에 대한 EU의 통제는 쉽게 풀기 어려운 정치적 난제다.

 

빅테크 자본주의는 40년 동안 세계 금융시장을 장악해온 월가의 민낯을 폭로하고 빅테크 기업의 부상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디지털자본의 실체를 화폐전쟁이라는 시나리오를 통해 디테일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트럼프와 빅테크 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민영화 되어가는 코인의 위험성을 설명하며 스스로의 선택이 결국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 경고한다. 또한 미국의 자충수가 중국의 부상을 일으키고 있고 달러 패권의 향방에 대한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사실적으로 누가 화폐 패권을 장악할지 특별한 의미를 갖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빅테크 기술은 우리의 생각과 소비, 행동을 수시로 통제할 것이며 결국 자본주의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기술 공화국을 만들 것이다. 돈이 먼저일까? 인간이 먼저일까? 이제 화폐에 대한 우선적인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기술로 세상을 바꾸고 싶어 하는 빅테크 CEO들과 여전히 기득권을 거머쥐며 세상을 뒤흔들고 싶은 월가의 전쟁은 이제 시작되었다. 우린 어떤 세상을 원하고 있는가? 빅테크 자본주의는 세계 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투영함과 동시에 우리의 삶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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