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태주의 풀꽃 인생수업
나태주 지음 / 니들북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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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이는 아침마다 마음의 여유를 찾는 한편의 시가 간절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는 경건함이 감사함과 고마움을 떠오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시는 마음을 씻고 몸을 가볍게 합니다. 시가 주는 여운과 울림은 삶의 자세를 일깨웁니다. 너 오늘 잘 살았니? 아픈 상처 보듬고 가여운 마음 달래며 내일도 잘 살기를 바라며 두손 모아 조용히 삶을 반추해봅니다. 매순간 쏟아지는 정보는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비하라 부추깁니다. 가여운 마음은 한없이 쪼그라들고 무엇이 자신에 중요한지 알지 못하며 소중한 자원을 낭비합니다. 허탈과 무관심, 이토록 힘든 이유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무엇보다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요?

 

나태주님의 시는 현재를 이야기합니다. 머나먼 미래나 과거가 아닌 눈앞에 펼쳐진, 자신과 마주한 시간과 공간과의 만남입니다. , 자세히 보아야하고 오래 보아야 그 진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빠른 발걸음으로 거친 숨결로 무언가를 바라본 적이 있습니까? 허영과 그림자만이 그 뒤를 따를 뿐 삶의 진실을 찾기 어렵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누군가에게 이런 시를 전달해 준적도 받은 적도 없지만 읽는 순간만이라도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또한 당신이 있음으로 자신이 존재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자존감을 일깨워 줍니다.

 

가만히 다가가 조용히 바라보면 지금껏 알던 세상과는 다른 세계를 만나게 됩니다. 풀꽃은 너무 흔하지만 우리에게 수많은 메시지를 보냅니다. 나를 자세히 바라보면 자연을 만날 수 있고 결국 자신도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우린 공감합니다. 자세히 보아야하는 이유는 풀꽃뿐만이 아닙니다. 자신의 내면도 자세히 그리고 오래 보아야 합니다. 조그만 돌부리에 걸려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어루만져야합니다. 의미는 자신에 주어진 삶의 과제입니다. 오랫동안 자신을 바라본 자만이 스스로를 만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삶은 풍요롭고 평온해지며 간결하고 담백한 시와 같은 인생이 펼쳐집니다.

 

나태주님의 풀꽃인생은 선생님이 EBS강연프로그램을 통해 나누었던 12편의 촬영분을 바탕으로 모든 세대에 따듯한 위로와 평온을 주는 시와 평화롭고 아름다운 그림으로 펼쳐있습니다. 선생님의 시는 쉽지만 가볍지 않고 짧지만 긴 여운을 남깁니다. 무엇보다 자신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납니다. 삶에 대한 자각과 타인에 대한 이해, 많은 이들이 무엇 때문에 방황하고 상처를 입는지 세대의 고민을 한 구절의 시로 대변합니다.

 

아침을 시작하면서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는 시를 읽었습니다. 오늘 하루 잘 살면 그것으로 만족하고 내일 또 잘하면 된다는 시의 내용이 가슴에 와 닿습니다.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없습니다. 시간이란 묘해서 우리를 지배하는 것 같지만 가끔은 우리가 시간을 이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최선을 다한 하루, 자신에 주어진 선물은 무엇일까요? 자신을 칭찬해주고 보듬어 껴안아 줄때, 푸근한 하루와 내일의 시간이 기대됩니다. 좋은 책은 곁에 두고 싶고 좋은 시는 마음에 담고 싶습니다. 인생은 알 수 없다는 것이 참 매력적입니다. 우린 그런 인생을 살아가며 희망과 사랑을 알게 됩니다. 따뜻한 시와 아름다운 그림이 마음을 채운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만날 수 있을까요? 풀꽃인생을 통해 소중한 경험을 체험하시길 바랍니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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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 우리의 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이유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 박세연 옮김 / 어크로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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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구소련이 무너진 이후 지금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감이 감지 적이 없다. 이념이 중심이었던 과거에 비해 현재는 권력쟁탈과 기득권 유지가 초점이다. 권력추구는 인간의 동물적 본능이다. 헌데 민주주의 권력은 너무 자주 오용되고 변질되어 왔다. 인간으로서 누려야할 최소한의 권리인 자유와 평등이란 단어가 민주주의를 가장 심하게 부정하는 단어가 되고 있다. 법은 사회 안정을 위해 개인의 자유를 제한한다. 하지만 법 앞에선 누구나 평등해야한다는 원칙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대표하는 원리가 아니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서로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해진다. 법의 원칙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지만 법위에 군림하려는 자들은 고도의 법 기술을 활용해 자신에 유리한 판결을 선택한다. 민주주의 주인이라는 국민의 자부심은 법 앞에 무너지고 있다.

 

미국인만 미국의 현실을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는 것일까?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수많은 국가들은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고 직접선거를 획득했다. 투표권은 개인이 국가의 일원이라는 자부심과 한 표를 통해 국정을 바꿀 수 있다는 자긍심을 내포한다. 또한 당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더라도 몇 년 후면 정권교체가 가능함을 시사한다. 하지만 21세기, 미국 민주주의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건국 초의 근엄함과 상호존중이 사라졌다. 1801년 연방당 대통령 존 애덤스는 날이 밝기도 전에 워싱턴을 떠났다. 당시 민주공화당으로의 정권이양은 대단히 중요한 사건이었다. 상대가 불법이라는 인식이 강했고 폭력적정치가 난무했던 시대에 그들은 미래를 선택했다. 애덤스는 정당하고 책임 있는 정치란 무엇인가를 후대에 보여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이제 막 탄생한 공화국을 혼란에 빠뜨리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200년이 지난 미국 민주주의는 본연의 자생력을 잃어가고 있다.

 

미국 선거제도는 선거인단이 중심이다. 이는 다수표를 획득하고도 선거인단 선택에 의해 결과가 뒤바뀌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최근 20년간 공화당이 전체 득표율에서 민주당보다 많았던 적은 1번이었다. 하지만 공화당은 3명의 대통령을 선출했고 여전히 현 투표제도를 전략적으로 활용한다. 종신제를 못 박은 대법관의 임기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오래된 성향을 유지하면서 수십 년간 사법기관을 통제하고 있다. 1965년 린드존슨에 의해 어렵게 만들어진 투표권법은 2013년 대법원에 의해 제한되었다. 당시 대법원은 50년 전 사회상황을 반영하기 어렵다는 구실을 내세웠다. 대법원의 판결이 사회변화를 수용할 수 있을까? 그들은 더욱 애매모호한 근거를 내세운다. 2021년에도 대법원은 투표권제한을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결국 트럼프2기의 출현은 소수 독점의 결과다. 그들은 자신들의 권위에 도전하지 말라는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정치적 이슈와 마찬가지로 민주주주의 원칙을 벗어나는 판결에 집중한다. 공정성을 잃어가는 시스템은 불투명한 미래를 암시한다. 민주주의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야 한다. 세상이 바뀌면 시스템 또한 바뀌기 마련이다. 하지만 미국 민주주의를 망치는 최대의 원인은 표면적 민주주의자들의 득세다.

 

왜곡된 선거제도를 통한 극단주의자들의 헌법유린과 반다수결주의의 파행, 그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란 가면을 쓰고 권력을 통제하고 있는가? 본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민주주의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판단이다. 왜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게 되었을까? 또한 소수가 추구하는 극단적인 정책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는가? 저자의 탁월한 분석과 해석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본능적인 생존전략에 한 표를 주고 싶다. 저자가 시종일관 강조하는 개인이 믿었던 정체성의 파괴와 두려움에 대한 반발이다. 표면적 민주주의자들 역시 정치에 대한 애착보단 자신의 정당성이나 집단의 당위성에 초점을 맞춘다. 그들에게 정치란 효용과 자기기반의 확대에 불과하다. 미국은 거대한 다민족 국가다. 복잡한 다양성이 미국을 이끌어온 힘이다. 그런데 소수 백인에 대한 정치적 책략이 미국 민주주의 발목을 잡고 있다. 미국민주주의는 거꾸로 가고 있다. 소수의 파행은 반다수결주의를 중심으로 다양성을 파괴한다. 건국 지도자들은 누구도 지금과 같은 민주주의를 예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화당은 왜 민주주의를 저버렸을까? 극단적 우파가 갑자기 민주주의의 중심에 서게 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호전적인 대통령의 출현으로 미국은 또 다른 시스템을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미국정치는 세계국가들에 적지 않은 파급을 가져온다.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적 복잡성이 증가할 것이다. 지키려는 자와 빼앗으려는 자의 경쟁은 과거와는 다른 정치행위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과정을 공정하게 만드는 시스템이 부재하다면 자유와 평등이라는 최소한의 원리가 사라질 것이다. 민주주의는 다수결이 원칙이다. 원칙을 벗어나면 다수의 피해자가 생길 것이며 예측할 수 없는 정치적 소용돌이가 일어날 것이다. 민주주의는 왜 다수의 선택을 존중해야하는가? 그리고 그 선택을 받아들여야하는가? 민주주의 위기가 시작된 것일까? 민주주의와 우리 삶의 방식을 이해하는 정치적 해법을 만날 수 있는 소수의 독재(Tyranny of the Minnority), 가장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민주주의를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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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올 초대륙 - 지구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판구조론 히스토리
로스 미첼 지음, 이현숙 옮김 / 흐름출판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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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온난화에 대한 이해관계가 첨예하다. 하지만 변해가는 기후변화를 부정할 사람은 없는 것 같다. 과거엔 일상이었던 계절의 변화가 심상치 않다. 특히 반세기만에 북극 방하가 사라지고 맨땅을 드러냈다는 기사는 지구 온난화에 대한 두려움마저 느끼게 한다. 수많은 가설들이 난무한다. 그 중엔 최근 인류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바이러스도 포함되어있다. 빙하엔 지구 역사에 묻혀있는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가능성이 인류를 덮칠지 모르지만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위기를 넘어 인류의 생존에까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그런데 인류역사엔 이런 과정이 숱하게 일어났다. 인류는 태양계와 우주의 변동성을 걱정하기 전에 지구내부 문제를 더욱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할 시점이다.

 

하나의 초대륙, 판게아 이론은 중학교 지리교과서에 등장할 정도로 대중화되어있다. 그런데 45억년 지구역사엔 판게아 이전 두 번의 초대륙이 존재했었다고 한다. 로드니아와 컬럼비아로 명명된 두 초대륙은 5억년을 주기로 지구의 판구조를 새롭게 형성했다. 현재 지구 대륙형태는 25천만 년 전 판게아의 분열로 시작되었다. 태평양판을 중심으로 불의고리라 일컫는 지역에선 수많은 자연재해 현상이 일어난다. 인간 입장에선 재해지만 대륙은 내부의 변동에 의한 끝없는 움직임의 결과다. 가벼운 화강암대륙이 솟아오르고 무거운 현무암으로 이루어진 해양분지가 맨틀로 섭입 되면서 대규모 폭발과 지각변동이 일어난다. 남극판과 유라시아판이 충돌하면서 히말라야 산맥이라는 세계의 지붕이 형성되었다. 동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 서부지역의 식물분포와 고대화석이 일치한다는 사실도 증명되었다. 판게아의 분열을 통한 대륙의 생명 이동현상을 느낄 수 있는 흔적들이다.

 

본서는 판구조론을 중심으로 지구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로드니아와 컬러비아를 거치면서 40역년전의 시상누대 시기를 만날 수 있는데 당시엔 대륙보다 대륙괴라는 두꺼운 암석층이 지구를 떠다녔다고 한다. 사상누대 시기의 생명체 탄생 기원이 흥미롭다. 암석에 묻힌 광물(영양분)과 태양의 작용으로 폭발적인 박테리아의 광합성이 일어난다. 다양한 생명체의 발현과 진화가 시작된 시점이다. 저자는 판게아 이론을 중심으로 기후변화, 생명체의 진화, 인류의 이동, 그리고 미래를 디테일하게 설명한다. 지질학의 발전이 인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저자의 논증만으로 충분히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저자는 2억년 후 지구는 다시 한 번 하나의 초대륙(아마시아)으로 합쳐질 것을 예상한다. 폐름기 말 판게아 생성은 대륙붕괴를 일으켜 생명체의 멸종을 가져왔다. 인류종 또한 어떤 결말을 맞이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물론 현재와 같은 속도로 과학기술이 발전한다면 또 다른 행성을 발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는 지속적인 변화를 그치지 않을 것이다.

 

도시에 가려진 지구, 가끔 산속을 걸을 때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어디인지를 깨닫게 된다. 지구를 인식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후위기 덕분이다. 자생력을 지닌 지구의 움직임은 인류에게 커다란 위기감을 심어주고 있다. 인류의 바람과는 달리 지구는 인류를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인류는 여전히 지구를 필요로 한다. 매일 걷는 땅과 공기. 그리고 바람과 물이 일상적이지 않는 시간이 온다면 자구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지구의 내부역시 마찬가지다. 지구는 탄생이후 멈춘 적이 없다. 지구 내부의 또한 끝없는 반복을 되풀이하고 있다. 인류는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종의 재번영을 이룰 수 있을까? 대멸종시대는 지구변화의 두려움을 보여준다. 지구는 탄생이후 끊임없는 변화를 지속하고 있다. 자전축의 움직임이 자기장의 변화를 가져온다면 지구내부의 움직임은 마치 거대한 자생력을 지닌 생명체를 연상시킨다. 지구를 이해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 문제다. 그런데 우린 지구에 대해 너무 아는 것이 없다. 판게아를 중심으로 바라본 지구의 역사와 미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우리 지구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 것인가? 흥미진진한 지구의 역사를 만나본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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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꿈
앨런 라이트맨 지음, 권루시안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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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사람은 시간이 천천히 간다. 시간을 재 정의한 상대성이론은 일상의 관점을 벗어나면 물리적 법칙이란 인간의 필요에 의한 확률이론이란 결론을 얻게 된다. 우린 우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혹 있더라도 보이는 범위에 한정한다. 그것도 감각으로. 팽창이론을 포함하여 최근까지 알려진 이론들도 대부분 가설이 중심이고 아직 이를 증명할 도구나 지식도 부족하다. 우주를 이해하기위해선 과학적 상상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된 가설을 믿고 있다면, 우리는 어떤 미래를 맞이하게 될까? 시간 또한 인간에 필요한 개념이 아닐까? 지구상 그 어떤 생물체도 시간에 대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종은 없다. 우린 스스로 알고 있다는 시간에 대해 얼마나 확신하고 있는가?

 

시간은 상수다. 마치 본능적인 리듬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시간이 변수가 된다면 인간사회엔 어떤 반응이 일어날까? 시간은 모든 것을 흡수한다. 과거와 미래, 그리고 현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간이 진실이라고 말할 자신이 있을까? 시간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디로 흘러가는지, 혹 중간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알 수 없고 예측할 수 없다. 단지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을 중심으로 세상의 흐름을 받아들이는 것밖엔, 마치 바람이 어디서 시작되어 어디로 흘러가는지 알 수 없는 것처럼.

 

1905414, 시간은 원이다. 세계는 정확하게, 끝없이 되풀이 된다. 아침엔 모든 것이 새롭게 시작되고 밤이 되면 하루의 기억만이 남는다. 어제는 기억에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은 다음날, 또 다음날 전날 있었던 생각과 행동을 끝없이 되풀이한다. 되풀이되는 감각을 매일 느낀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죽음이 없는 시간 속에서 절망을 꿈꾸며 인식의 한계를 경험한 이들과 반복적인 삶은 마치 미로에 갇힌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간혹 과거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오른 이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실수를 괴로워하지만 시간이 원이라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다.

 

1905428, 시간은 끝없는 지배자다. 시간을 재는 기구를 벗어나기 어렵다. 온 세상이 시간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리고 어떤 시계든 우주를 가로지르는 광대한 뼈대가 시간의 법칙을 공평하게 적용한다. 시간은 신이 존재한다는 증거다. 세상 모든 것에 존재하면서 신성하지 않은 것이 없으므로 시간 또한 절대적이다. 혼란한 세상일에 몰두하며 스트레스 받을 일이 뭐가 있을까? 사람들을 의심할 수 있어도 시간은 의심할 수 없다. 우리가 아무리 발버둥 처도 시간은 유유히 자기 길을 걸어간다.

 

시간에 대해 이토록 다양하게 논제를 풀어가는 소설이 있을까? 디테일하진 않지만 가벼운 농담으로 받아들이기도 어렵다. 시간에 대한 개념은 일차원적이 아니라 다차원적이기 때문이다. 우린 누구나 시간에 대한 자신만의 시각이 존재한다. 또한 상대적인 시간관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시간이 다르게 계산되지 않는다. 일상적인 시간관념을 바꾸면 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다는 저자의 생각은 시간에 얽매인 삶의 방향을 재조정한다.

 

앨런 라이트먼은 인문 물리학자다 물리학이 주 전공이지만 MIT에서 인문학도 강의한다. 그의 최근작 초월하는 뇌, 우리에겐 다양한 우주가 필요하다를 통해 까다로운 물리학과 인문학이 이토록 아름답고 교묘하게 연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는 우주와 천체, 인간 영혼의 공통점을 무척 잘 찾아낸다. 저자의 초기작인 본서 또한 시간에 대한 인문학적인 고찰이 다양하고 섬세하게 펼쳐져있다. 아인슈타인은 저자가 가장 존경하는 과학자가 아닐까? 그는 꿈을 통해 자연세계를 지배하는 물리학법칙을 흡수한다. 꿈속엔 수많은 시간이 존재하고 어느 것 하나같은 것이 없다.

 

본서는 시간이란 개념을 과학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아름답고 철학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다중우주 시간개념, 거꾸로 흐르는 시간, 멈추어버린 시간, 원안에서 계속 돌아가는 시간, 절대적 시간, 각 에피소드는 시간에 종속된 인간의 한계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은 우리 뇌다. 받아들일 수 있을까? 시간은 태어남과 동시에 인지해야하는 보편적 원리가 아닌가? 과학적 상상력은 굳은 사고에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다. 일순 어려워하는 뇌를 인지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아인슈타인의 시간과 꿈이 만난다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까? 어항에 갇힌 인간, 어항속의 물고기는 인간 밖의 하늘을 바라보며 어떤 상상을 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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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바나의 우리 사람 열린책들 세계문학 294
그레이엄 그린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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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반전은 뜻하지 않는 곳에서 일어난다. 자신과는 무관할 줄 알았던 세상이 갑자기 훅 들어온 순간 모든 것은 새로운 가치와 의미를 지니게 된다. 가끔은 비현실적 상상이 현실의 매개로 다가와 삶을 혼동시키기도 한다. 삶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선을 걷는다. 가끔 일상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작동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다. 누군가의 손짓이 일상에 침투한다면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을까? 혹 자신에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선뜻 제안에 응할 것인가? 스파이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단지 알기 어려울 뿐이다.

 

아바나에 거주했지만 여전히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워몰드, 그의 유일한 즐거움은 카톨릭 학교에 다니는 딸 밀리다. 이제 곧 밀리의 17번째 생일이 돌아온다. 평소와 다름없이 인근 바에서 닥터 하셀바허와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눈엔 근심이 가득하다. 그는 지금 부진한 사업으로 생계를 걱정하고 있다. 미래를 암울할지라도 워몰드는 밀리에게만큼은 최선을 다하고 싶다. 생일을 앞두고 비싼 말을 스스럼없이 구입하고 승마를 준비하는 딸을 볼 때 울화통이 치밀지만 아직까진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해주고 싶다.

 

그런 워몰드 앞에 건장한 영국인이 나타난다. 그는 워몰드의 일상을 거의 아는 것처럼 말하며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시 만난 이방인은 워몰드에게 아바나 스파이를 요구한다. 기분이 좋진 않았지만 일정한 급여를 준다는 말이 가슴에 꽂힌다. 그는 돈이 필요했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어디서부터, 누구를 대상으로 한다는 말인가? 이방인은 영국첩보기관 소속인 호손이다. 호손이 돌아간 후 바셀바허를 찾은 워몰드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야기한다. 바셀바허는 고민도 하지 않은 채 그들을 이용하라고 말한다. 속고 속이는 사람들 틈에서 누가 누구를 속이는지 어떻게 알 수 있냐는 것이다. 마음이 좋진 않았지만 워몰드는 자신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워몰드는 아바나에 거주하는 주요인물을 포섭하기 위한 작업을 시작한다. 그는 출장을 핑계로 쿠바 도시를 돌아다니며 작성한 보고서를 호손에게 보낸다. 영국기관은 워몰드의 보고서를 읽고 놀라움을 감추지 않는다. 지금 쿠바에선 예상하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워몰드의 보고에 따르면 산을 깍은 거대한 기지에서 무엇인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알 수 없는 기계에 무척 당황한다. 정확한 사실을 파악하기 위해 사진이 필요했다. 결국 워몰드에게 지시가 하달되었다. 때마침 워몰드를 찾아온 비어트리스는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을 보며 의심의 눈길을 보낸다. 하지만 사건은 이상한 방향을 전개되는데, 스토리는 반전을 내포하고 있다.

 

본서는 제2차 세계 대전중 실제로 M16에서 정보원으로 활동했던 그레이엄 그린의 1950년대 아바나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정치적 혼란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팽배한 시기에 그린은 풍자소설을 통해 현실정치를 비판하며 인간의 모순과 의심, 그 안에서 살아가는 일상적인 삶의 실체를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딸에 충실한 워몰드, 그의 상상은 현실을 만들어간다. 일순간 우리의 현실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나의 의지일까, 누군가의 전략일까? 그들도 또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자신의 선택을 강요받고 있지는 않을까?

그레이엄은 아바나의 우리사람이란 제목을 통해 이방인과 우리라는 경계선을 설정한다.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에 보이지 않는 경계가 있는 것은 아닐까? 침침한 어둠이 지나가면 햇빛에 부서지는 파도를 볼 수 있는 곳, 삶은 희망을 전제로 한다. 치밀한 플롯과 아름다운 배경이 돋보이는 아바나의 우리사람, 유머와 위트 그리고 해학이 가득한 책이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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