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을 만드는 오페라 카수
배재철 지음 / 비전과리더십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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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스스로가 바라보는 세상을 통해 각자가 원하는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것이 종교적이든 철학적이든 적어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살고 있다는 데는 이의가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때론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는 인생을 만나기도 합니다. 정확히 상반되는 인생이 자신 앞에 놓인다면 혹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 인생을 만나게 된다면 당신은 어떻게 인생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영국의 유명한 TV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된 폴포츠와 수잔베가는 실패한 인생을 성공으로 만든 위대한 인물들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단순히 노래만을 잘해서 그들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을 했다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긴 힘들 것입니다. 그들은 평범함 속에 감추어진 자신의 재능을 거침없이 보여주었습니다. 관객들은 탄성을 질렀고 수많은 시청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들은 우리에게 가장 극적인 인생의 장면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세계적인 오페라가수에서 암선고를 받고 절망에 빠진 인생을 극복하신 배재철님 또한 우리의 가슴을 울리는 아름다운 예술혼을 가지고 계신 분입니다. 승승장구하던 세계최고의 테너에게 갑자기 찾아든 갑상선암은 사형선고나 다름없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일본인 친구 와지마의 도움으로 재기의 길을 걷게 됩니다.

뭐하나 부족한 게 없었던 시절, 손을 벌리면 모든 게 닿을 것 같은 시간들, 하지만 영원할 것 같은 시간들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아 가버린다면 우린 절망이라는 나락을 경험하게 됩니다. 상처를 입은 마음을 치유하는 길은 상처를 보듬어 주는 방법이 최고 일 것입니다. 와지마는 위대한 성악가의 아픈 마음과 상처받은 영혼을 치유하고 쓰러진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정열과 시간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의 간절한 노력은 배재철님의 영혼을 움직이고 그는 다시금 자신만의 무대에 설 수 있게 됩니다.

그는 장시간 노래를 부를 수가 없습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성대가 가슴을 미어지게 하지만 새로운 삶을 주신 하나님께서 자신이 가야할 길을 밝혀주실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노래가 지치고 상처받은 이들의 마음을 치유할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치는 그의 노래엔 아픔을 이겨낸 간절함이 있습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자신을 위해 노래하지 않습니다. 그가 부르는 노래는 고통과 시련을 이겨낸 모든 사람들을 위한 노래입니다. 배재철님은 오랜 생명력과 영원한 사랑으로 충만한 예술가로 거듭나길 원합니다.

배재철님은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대한 성악가가 되고 싶었던 그의 꿈은 1만번의 연습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가난했지만 노래만큼은 가난하지 않았던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연습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콩쿨대회 입상과 이탈리아 유학, 독일 오페라 공연등은 그가 선택한 인생에 대한 값진 보상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목소리는 저 멀리 일본에까지 울려 퍼집니다. 그의 음악을 들은 와지마는 한눈에 그에게 반하게 됩니다. 순수했던 음악가와 애호가의 만남은 그들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습니다. 한국인을 좋아하는 일본인, 진정한 예술은 가장 인간적일 것이라는 믿음이 결국 새로운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운 일들이 많습니다. 부족한 것 보다는 가진 것에 최선을 다하는 삶이 결국 자신이 원하는 인생을 만들어 가는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두 분의 우정 영원히 이어가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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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결사의 세계사
김희보 지음 / 가람기획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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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면허라는 이름으로 히트를 친 영화가 있다. 제임스 본드라는 가상의 인물을 내세워 세계적인 비밀 암살 집단의 실체를 알린 007이란 영화다. 너무 멋진 주인공은 세계 각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국가나 체제에 반항하는 정적을 제거하는 임무를 수행한다. 그들에겐 사법권을 능가하는 즉결처분권이 있다. 바로 살인면허다. 요즘 우리에게도 익숙한 드라마 아이리스 역시 마찬가지다. 이들의 공통된 특징은 세상을 이분법으로 본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추구하고자하는 것은 정의이고 상대는 사라져야할 정적이다. 한마디로 선과 악의 대결이다. 상대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서로는 사라져야할 대상일 뿐이다. 결국 권력만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역사를 바꾼 비밀조직의 실체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세계를 이끄는 리더들의 대다수가 프리메이슨 조직의 일원이고 그 배후에 유대인들이 있으며 수많은 역사적 사건들이 그들에 의해 조작되었다면 당신은 역사적 사실들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는 단순히 비밀조직에 국한된 역사적 스토리가 아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시작된 계획적인 세계패권의 음모일수도 있고 종교적인 통합을 바라는 비밀조직의 암투일 수도 있다.

전쟁이나 테러 등이 일어나면 세계 언론은 즉각 배후를 지목한다. 서로가 배후자라고 나서는 상황이 벌어지는가하면 실마리도 풀지 못한 채 미궁 속으로 빠져버리는 사건들이 존재한다. 대중은 의문을 더하지만 사건 주변은 온통 비밀투성이다. 비단 외국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근대사에서도 크고 작은 비밀 조직들이 정치에 간여해 역사를 뒤바꿔 놓은 사례가 부지기수다. 권력에 반대한 수많은 인사들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갔다. 시간은 우리를 망각 속에 가두어버리고 언론은 늦게나마 조작된 결론만을 되풀이 한다.

로스챠일드가의 경제음모는 경제위기가 팽배한 요즘 가장 자주 등장하는 주제들 중의 하나다. 유대인 가문인 로스챠일드가는 워털루 전쟁을 통해 재벌의 반열에 올라섰고 현재 그들이 차지하는 세계경제의 위상은 가늠하기가 어려울 정도다. 동아시아의 통화위기 역시 그들의 작품(?)이라는 해석이 다분하다. 실마리를 푼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다 보니 비밀조직이라는 배후의 실체가 보여주는 가공할만한 위력 앞에 세계는 한없이 초라해 보인다.

댄 브라운의 전기적인 소설 다빈치 코드를 모르시는 분은 없을 것 같다. 다빈치 코드는 일신주의 사상과 믿음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져야 했고 기독교 사상을 불신하는 사람들에게 종교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를 일으켰다. 다빈치코드는 시온수도회라는 비밀조직을 중심으로 사건을 전개한다. 사실적으로 종교만큼 비밀조직이 많은 집단도 없는 것 같다. 같은 뿌리를 지닌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구현하는 평화로운 세상은 그들만의 세상은 아닌 것 같은데 중세시대를 거쳐 그들이 벌려놓은 해악에 대해선 어떤 의문성도 제시하지 않는 것 같다. 그들이 자주 말하는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란 문구처럼 진정한 진리가 무엇인지 숨기고만 있지 말고 모든 것을 오픈한다면 훨씬 진리에 가까워 지지 않을까?

세계적 지도자들 역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수많은 비밀조직을 양성해왔고 핍박을 이기지 못한 농민이나 양민들 역시 권력에 대항하기 위해 또 다른 비밀조직을 만들어 왔다. 우리가 아는 조직이든 아니든 그들이 말하는 바는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고 민중을 구한다는 명분이 대세다. 이는 히틀러도 마찬가지였고 볼세비키 혁명의 주인공들이나 중국의 홍건적도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 권력에 대한 집착과 과대망상증이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어 버렸다는 것이다. 권력에 대한 인간의 탐욕을 어떻게 정의 할 수 있을까?

인류가 탄생한 이래 가장 성공적으로 수행한 일을 꼽으라면 무엇을 선택할 수 있을까? 언제나 역사적 회오리의 중심이 되는 종교의 탄생일까? 현생인류를 반석위에 올려놓은 과학의 발견일까? 아니면 모든 지적인 활동의 기초가 되는 철학적 사고의 탄생일까?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너무도 뚜렷하기에 한부분만 가지고 성공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류는 여러 공통분모들의 활약을 통해 서로 분리되고 통합되는 연속과정을 겪으면서 진화를 해왔다는 편이 훨씬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세계사도 바라보는 개개인의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역사관을 가질 수 있다. 영원한 비밀은 없다고 한다. 하지만 비밀에 연루된 상황들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세계사를 점령해온 비밀결사의 모든 것, 새로운 역사적 관점을 바라보는 것도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는 좋은 사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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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한 번영 - 현대 금융경제학이 빚어낸 희망과 절망
이찬근 지음 / 부키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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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를 안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좋은 일일까? 만약 모든 사람들이 내일을 안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까? 상상은 인간을 자유롭게 한다고 하지만 어떨 땐 스스로에게 올가미를 씌우는 기분이 들 때도 있다. 요즘 세계질서를 보는 느낌이 꼭 이런 기분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석학들, 세계적인 권위를 인정받는 정치, 경제학 박사들 그리고 굴지의 언론인들이 정치세력과 함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위기에 빠진 세계를 구하기 위해 아니 무너져 가는 미국을 구하기 위해, 그들은 다시 한 번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한 것이다. 서브프라임이란 말이 역사적 단어가 되어가고 있다. 80년대 동구권의 몰락과 90년대 동아시아의 위기와 마찬가지로 서브프라임 역시 현대사에 큰 획을 긋고 있는 중이다. 이제 위기의 원인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하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볼 수 있느냐는 경제학의 기본적인 명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하지만 출구전략은 자신들이 생각한 것만큼 쉽지 마는 않은 것 같다.

이념, 사상주의가 우리 주변에서 사라진지 꽤 오래 된 것 같다. 자본주의란 말 역시 때에 따라 조금씩 해석을 달리 할 정도로 유연성(?)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팽배해지고 있는 듯하다. 세계화에 대한 비판론 역시 만만치 않지만 세계화로 인해 고성장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더욱 힘들다. 그럼 위기의 문제가 대다수의 석학들이 명제로 내건 인간의 탐욕과 그릇된 도덕관 때문이란 말인가? 많은 부분이 사실이지만 이것 역시 문제를 시원하게 풀어줄 답은 아니다.

우린 세계화란 말에 극히 상대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면 좋은 것이고 피해를 주면 아주 좋지 않은 것이란 편견이 무척 심하다. 특히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들에 대해선 놀라우리만치 관대하다. 솔직히 대한민국의 경제정책은 거의 틀림없이 미국정책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달러에 취약한 수출의존국가가 세계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80년대 이후 미국의 초호황을 이끌던 주요 산업은 제조업이나 서비스업이 아닌 금융업이 중심에 있었다. 탈산업화를 피치로 내건 미국의 패권전략은 남들이 따라 하기 힘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드는 것이었고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미국기업들은 본업을 버리고 무분별한 금융 정책을 팽창시켜 나갔다. 세계적인 기업 GM과 GE 역시 예외는 아니었고 전 세계는 아주 빠르게 미국 금융에 흡수되어 갔다.

미국은 초단기 금융상품이나 정크본드 혹은 대출상품을 이용한 파생상품에 중점을 두었다. 이미 높은 레버리지를 통해 수백 배의 자본을 확충한 투자은행들은 더 이상 기업의 들러리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들은 기업 인수 합병을 통해 막강한 권력을 보여주었고 세계화의 최전방에서 해지펀드를 통해 금융에 허술한 국가들을 마음대로 농락했다. 당하는 국가 입장에선 존망이 걸린 문제였지만 투자은행들은 금융자본에 대한 더욱 강한 확신을 가지는 계기를 만든 셈이었다. 하지만 한 세기가 지나기도 전에 그들은 절대적으로 신임했던 자신들이 만든 무기(금융자본)에 갇히고 말았다. 문제는 그들만 피해를 보는 것이 아니라 세계가 이미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누구에게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위기를 바라보는 중국의 입장은 어떨까? 이미 상상을 초월하는 강대국으로 성장한 중국이 향후 세계의 패권국이 될 거라는 생각은 지나친 상상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들 역시 문제가 만만치 않다. 중국은 미국수출에 의존하며 성장해온 국가다. 그들 역시 미국의 폐해에 자유로울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은 동아시아의 위기와 미국의 위기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는 것 같다. 특히 사회주의 특성이랄 수 있는 저임금구조는 향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기에 전 세계의 생산기지로서 중국의 위상은 크게 흔들림이 없을 것 같다.

불안한 번영은 서브프라임 이전 미국의 경제정책과 이후 세계정세를 낱낱이 파헤친 보고서에 가깝다. 특히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과 옹호론이 주를 이룬다. 진보와 보수에 관한 의견 또한 만만치 않다. 저자는 자유시장의 원리에 강한 점수를 준다. 이제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개인은 자신의 길을 찾아가라는 것이다. 개인의 자유를 위해 국가가 존재하듯이 국가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특히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빈부의 격차에 대한 해결법을 교육에서 찾고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계층의 양산은 새로운 이슈로 떠오른다. 결국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사람만이 미래를 풍요롭게 살 수 있으며 국가를 이끌 리더적인 자격이 부여된다는 결론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것은 부정에 있지 않다. 스스로에게 한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현실을 바라보고 있기에 시간은 한정 없이 흘러간다. 한동안 자주 쓰던 ‘무한경쟁’ 이란 단어가 떠오른다. 어떠한 선택이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지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지금 우리가 선택할 대상이 이미 우리의 손을 떠난 상태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바로 보는 힘 역시 자신의 의지에 달려 있음을 실감한다. 바뀌어가는 세계 우린 무엇을 진정으로 바라고 있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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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네르바의 생존경제학 - 경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패러다임
미네르바 박대성 지음 / 미르북스 / 200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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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유명세를 톡톡히 치른 미네르바 역시 위기 속의 기회를 잘 포착한 인물임엔 의심할 여지가 없다. 과정이야 어떻든 그의 탁월한 경제 해석능력이 현 정부의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는 것만으로도 대다수의 서민들과의 공통분모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배고픈 자는 서럽다. 가지지 못한 것도 죄가 되는 세상이니 가난을 세습한다는 것은 억울함을 넘어 치가 떨리는 울분이 섞여 있을 것이다. 누가 우리를 벼랑 끝에 세우려고 하는가? 이미 루저(?)로 증명된 자본주의 금융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적 책략을 알지 못하는 서민들로서는 정부정책을 객관적으로 비교 분석해주는 재야 경제학자가 필요하다. 그나마 우리들의 조그만 재산이라도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젠 생존전략을 다시 짜야하는 시점이다.

고대이래로 세상은 무한경쟁시대가 아닌 적이 없었다. 오히려 근대이후 정부의 역할이 커지면서 의존적인 시민정책이 주를 이루어 왔던 것 같다. 대한민국 역시 나라 없는 설움을 직접적으로 경험한 민족이니만큼 국가관은 어느 나라 못지않게 강할 것이다. 하지만 경제로 들어가면 무척 혼란스러운 관경이 연출된다. 시장경제라는 원칙이 거의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지리적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부동산 정책은 정말로 요지부동이다. 흔히 말하는 돈 있는 자는 콧방귀도 안 뀐다는 이야기다. 정부의 의지 또한 다각적인 이해관계에 따라 중구난방이 되기 일쑤다. 역시 최대 피해자는 가지지 못한 자들이다.

우린 이제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예전보다 훨씬 빠르고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지만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를 선택하기는 더욱 어려워진 것 같다. 저 출산과 고령화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거의 없는 상태다. 있다고 해도 대다수에게 돌아갈 혜택은 극히 적다. 갈수록 줄어드는 일자리는 어떤가? 거의 무방비 상태인 한국에서의 실업은 곧 극빈층으로 전락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개인에게 개벽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상위층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한다. 양극화 문제는 극심한 사교육비 격차와 강남을 중심으로 한 비이상적인 아파트 투기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한다. 있는 자들의 천국이 되어가는 것이다.

그나마 힘없는 서민들은 정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다. 포장만 멋들어지게 만든 빈 박스가 아니라 실질적인 삶을 지탱할 일자리가 필요하다. 정치적 놀음의 대상이 되는 것 그만하면 충분하지 않나?

미네르바는 전세가격 폭등으로 인한 주택가격 상승의 되풀이가 당분간은 지속 될 거라고 전망한다. 부동산 불패와 부동산 거품이라는 원론적인 논쟁이 되풀이 되지만 세계 유래 없는 전세 시스템은 대한민국의 부동산 거품 속에서 영원히 보글보글 끓고 있을 것 같다. 역시 환율의 고수답게 미국, 중국, 일본의 기축통화 대결을 주의 깊게 살핀다. 최근 중국이 발표한 위안화 절상에 따른 내수소비 회복이 향후 세계 경제구도의 판도를 변화시킬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문제는 일본이다. 약1200조 엔이라는 천문학적인 개인자금이 65세 이상 노인들에게 집중되어 있다고 하니 늙어가는 일본 경제의 모습을 이해하는 것은 조만간 한국에 닥쳐올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는데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세계화에 대한 찬반은 더 이상 문제의 중심이 아니다. 서브프라임 후 세계인들의 전략은 생존에 집중되어 있다. 며칠 전 관람한 재난영화 2012에선 10억 유로를 기부한 자들만이 방주에 타는 것을 허락받았다. 할리우드식 긴장감이 없었다면 돈 내고도 죽을 뻔 했지만 결국 거의 모든 사람들은 정확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사라져 갔다. 혼란이 두려워 모든 것을 숨기려는 권력자들의 노력(?)과 어떻게든 살아보려는 주인공의 극적인 인생관, 별로 다를 것 없는 우리들의 모습이지 않나 생각한다. 문제를 인식하는 태도부터 바꿔야 한다. 이제 그 주인공은 스스로에게 남겨진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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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하를 얻은 글재주 - 고대 중국 문인들의 선구자적 삶과 창작혼
류소천 지음, 박성희 옮김 / 북스넛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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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는 시조를 읊어보라거나 산문의 내용을 이야기하라면 숨이 턱 막힌다. 꽤 오래전에 손을 놔버린 한자를 20년 넘게 대한 적이 없으니 기억에 남아 있을리 만무하다. 하지만 학창시절 입이 닳도록 외우고 다녔던 이백이나 소동파의 시 몇 구절은 어렴풋이 생각이 난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한문은 학창시절 내내 나를 괴롭혔던 것 같다. 헌데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 다시금 고전문학을 찾고 있다. 수천 년이 흘렀지만 변하지 않는 천재들의 시와 문장이 변해 가는 내 마음속의 허물을 벗기고 있는 까닭이다.

중국 역사연구가 류소천의 고대 문인에 대한 예우는 무척 각별하다. 그는 글재주를 통해 전국시대 굴원으로부터 남당의 이욱까지 약 1400년을 아우르는 9명의 시성과 시선을 고찰하고 있다. 이백과 두보를 제외한 7인은 같은 시대를 보내지 않았다. 사마천과 사마상여는 정 반대의 길을 걸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한 가지 공통점을 찾으라면 9인 모두 시나 문장에 목숨을 걸었던 인물들이다. 또 하나는 대부분 전쟁이나 내분과 같은 국란을 통해 자신의 숨겨진 재능을 만개했다는 점이다. 이렇듯 뚜렷한 공통점을 찾기 어려운 9인의 시인을 통해 류소천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

류소천은 전국시대 초나라의 굴원을 중국최초의 자유사상가란 칭호를 부여하며 대단히 높게 평가하고 있다. 무능한 군주 초회왕을 위해 충성을 다한 굴원은 권모술수가 난무하는 전국시대에 군계일학으로 손꼽힌다. 그는 원칙에 충실했고 권력에 타협하지 않았다. 결국 초의 멸망과 함께 멱라수에 몸을 던지지만 그가 남긴 위대한 사상과 문장은 중국인들의 가슴에 영원히 간직되어 있다. 류소천은 굴원에게서 문인이 지켜야할 이상과 원칙을 보았고 그의 글에서 살아 움직이는 예술을 만났다.

사마천의 사기는 중국인의 정체성을 발견할 수 있는 세계최고의 역사서라는 점에서 엄청난 가치를 부여한다. 권력의 뒤태에 혐오감을 느낀 그 역시 모함에 의해 치욕적인 궁형을 당하지만 세상에 대한 분노를 사기라는 걸작으로 승화시킨 위대한 인물이다. 사기는 민중이 중심을 이룬다. 개개인의 삶이 인정되지 않았던 봉건주의 사회에서 권력에 영합하기보다는 자신만의 언어를 지킨 것이다. 그 역시 글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경지를 보여준다.

류소천은 산업화로 인한 개인주의의 팽배가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자연과 하나 되는 몰아일체를 선택한 도연명의 삶을 제시한다. 동진시대의 잦은 전쟁과 내분 역시 가난한 그를 더욱 삶의 한 가운데로 몰아넣었는데 먹고 살길이 막막한 그는 걸식을 통해 끼니를 해결했다고 한다. 관료직도 잠시뿐 평생 뒤를 쫒는 가난은 그에게 세상과 맞서는 방법을 가르쳐 주었고 귀거래사는 그가 육신의 노예로 전락한 마음을 바로세우고 자연으로 돌아가겠다는 천성적인 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시다. 도연명은 본성을 따르는 삶의 태도와 인품으로 후대에 높이 평가받고 있다.

글재주에는 사마상여, 혜강, 이백, 두보, 백거이, 이욱등, 가히 전설적인 인물들이 등장한다. 류소천은 그들에게서 봉건주의를 탈피하고자 하는 자유의지와 자신의 세계를 만들고자했던 진정한 예술인의 관점을 견지한다. 글로써 입신양명할 수 있었던 시절 모든 문인들의 꿈은 글재주에 있었을 것이다. 천재인 이백도 노력파인 두보도 글로써 세상을 만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에게 권력은 너무도 멀게만 느껴졌다. 그들이 선택한 것은 자신의 길이었다. 그들은 수만리가 멀다하지 않고 광활한 중국 땅을 돌아다니며 권력이 아닌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예술은 길에서 만들어 진다고 한다. 또한 시련 없는 예술은 공허한 껍데기에 불과하다고 한다. 목숨과도 바꿀만한 예술작품이 흔하지 않는 시기에 이들이 주는 교훈이 무척 무겁게 다가온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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