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 - 정부와 여당, 기업, 정치가는 통계로 우리를 어떻게 속이고 있는가?
게르트 보스바흐 & 옌스 위르겐 코르프 지음, 강희진 옮김 / Gbrain(지브레인)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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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선거철이면 어김없이 상대후보자에 대한 비방이 시작된다. 비방의 순서도 상당히 계획적이고 전략적인데, 전략가들이 우선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은 상대후보자의 지지율을 낮추는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발표하는 지지율이 공정한 기관의 신뢰를 받고 있음을 강조한다. 상대는 즉시 지지율에 대한 의심을 제시하지만 대중은 이미 상황 파악이 끝난 상태다. 지지율은 마치 선거의 특별한 전략처럼 보인다. 그 내막에 대한 어떠한 추궁이나 조사도 없지만 마치 선거의 우선순위가 후보자의 공약이나 정책이 아니라 각본된 지지율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하지만 각 후보자들이 공표하는 지지율엔 엄청난 허점과 오류가 있다.

 

최소한 한번이상은 고령화에 대비한 개인연금 부족부분에 대한 보험사의 설계를 들어보았을 것이다. 영업사원들은 숫자놀음에 익숙하다. 마치 30년 후 고객의 모습을 눈앞에 있는 것처럼 그려준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들이 제시하는 년 수익률과 연금으로 받게 될 천문학적인 금액이다. 그들의 말을 따르면 노후문제는 완벽히 해결될 것만 같다. 하지만 그들은 통계와 숫자를 읽을 줄 알뿐 장기예측에 대한 확률은 거의 알지 못하고 있다. 또한 시간적 변수를 너무 쉽게 판단한다. 30년 전 어느 영업사원이 지금과 같은 방법으로 당신의 미래모습을 예견했다면 솔직히 웃음밖에 나오지 않을 것이다. 개인연금은 판매사에 대한 음양이론과 통계적 수치의 오류, 무엇보다 예상하기 어려운 시간적 변수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그들만의 통계놀음에 불과하다.

 

우린 숫자의 유혹 앞에 쉽게 허물어진다. 상대의 말과 글엔 날카로운 비판을 서슴지 않지만 유독 숫자 앞에선 고개를 끄덕인다. 숫자의 통계엔 어떤 매력이 있길래 그토록 쉽게 사람의 마음을 끌어당기는 것일까? 안타깝게도 숫자엔 우리들이 믿는 어떠한 매혹적인 답도 없다. 보기 좋고 이해하기 편한 통계숫자는 그야말로 거짓말을 진실로 포장하기위한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뿐이다. ‘통계 속 숫자의 거짓말’은 우리가 알던 숫자의 실체를 조목조목 비판한다. 숫자는 말이나 글과 달리 기억하기도 쉽지만 쉽게 바꿀 수 있다. 설령 잘못되더라도 통계적 계산에 대한 기준을 재편하면 그만이다. 특히 대부분의 언론보도에 등장하는 절대수치와 상대수치의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순위에 따른 필연적인 오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숫자의 거짓말을 가장 쉽게 파악할 수 있는 이론이 음양이론이다. 음양이론은 현상을 둘로 나누는 이분법을 경계하고 모든 상황을 고려해야하는 것을 의미한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는 것이다. 우린 대부분 장점이 부각된 포장에 관심을 갖지 이에 대한 이견을 고민하는 덴 익숙하지 않다. 좋은 현상이 있으면 좋지 않은 부분도 받아들여야 통계의 거짓말을 방어할 수 있다. 정책 관료자들이나 기업들은 음양이론의 대가들이다. 그들은 부정적이거나 단점이 될 만한 사항은 처음부터 전체비율에 포함시키지 않는다. 결국 그들이 만들고 배포한 통계자료는 그들의 입맛에 맞을 뿐이다.

 

숫자보다 더욱 많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 그림이다. 선이나 막대 혹은 입체적으로 표현한 통계치는 그 어떤 자료보다 믿음을 준다. 그렇지만 그래프는 자세히 보면 알 수 없을 정도로 교묘하리만큼 우리의 눈과 정신을 속인다. 가장 흔하게 속이는 방법이 x 축의 년도를 축소하거나 y 축의 기준점을 확대시키는 것이다. 이는 그래프가 왜 마케터들에게 가장 중요한 사업적 요소인지를 적절하게 설명한다. 그래프는 가장 예민하고 민감한 사회적 자료를 통제하는데도 필연적으로 사용된다.

 

우린 과연 믿을 수 없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일까? 덕분에 믿음이나 신뢰라는 이름이 부각되고 있지만 이마저도 통계를 위한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마치 온 세상이 틀에 짜인 것만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통계는 대중을 위한 자료라기보다는 통제를 위한 수단이 되었다. 분모를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한 분자, 백분율이 지니는 무소불위의 힘, 표본 추출방식의 오류, 사회적 현상을 둘러싼 예측의 결과 및 한계, 마치 인간의 불편한 진실을 보는 것과 같은 통계 속의 거짓말들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 지를 대변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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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의 배반 -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안 보이는 것이다
존 캐서디 지음, 이경남 옮김 / 민음사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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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심리 개선으로 오를 것 같아 보이지 않았던 뉴욕증시가 3년 9개월 만에 13,000을 돌파했다. 유럽의 위기와 고유가가 여전히 발목을 잡고 있지만 분위기는 한층 업그레이드된듯하다. 하지만 미국이 다시 한 번 패권을 잡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조차 향후 미국의 경제정책에 대해선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보수와 진보간의 갈등, 인종문제등 여전히 풀리지 않은 정책들이 산재해있으며 금융 산업은 위기 전에 비해 더욱 굳건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세계경제는 유럽의 위기에 주목한다. 서브프라임 위기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는 가운데 또 한명의 학자가 위기의 본질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에 나선다.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밀턴 프리드먼, 아서래퍼, 키스 조지프 그리고 앨런 그리스펀과 이들의 주장을 절대화시켰던 로널드 레이건과 마거릿 대처, 이들은 시장자유주의, 시장방임주의를 주장했던 대표적인 학자들이자 정치인들이다. 1970년대 이후 이들의 경제사상은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전 세계경제의 바로미터가 되었다. 시장은 완벽히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는 가정 하에 자유시장이론은 시장의 초석이 되었다. 하지만 40년을 누려온 거대한 희망과 꿈은 거품이 빠지자 허망하게 사라져버렸다. 위기를 겪게 되자 누군가 책임질 사람이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발버둥 쳐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앨런 그린스펀은 국회 청문회에서 그의 이데올로기가 그토록 잘 맞아떨어질 줄 생각조차 못했다고 진술하며 위기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자신의 믿음에 결함이 발견되었다는 것을 여전히 인정하지 않았다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그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충격적이었다.

 

경제학자인 존 캐서디는 애덤스미스의 이론을 중심으로 펼쳐진 자유시장가들의 이론을 유토피아 경제학이라 명명 지으며 이들이 추구하고자했던 자유 시장은 처음부터 잘못된 가정 하에 출발했다고 비판한다. 철저한 시장위주의 경제정책 하에서 기업과 개인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법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 이들이 중심으로 삼았던 이론이 일반균형이론이다. 하지만 일반균형이론은 자유시장이 지니고 있는 독점적 시장지배와 대중의 사회적 욕구에 대해선 어떠한 의문도 제기하지 않았다. 위기는 그린스펀의 말대로 충격이 아니라 잘못된 경제정책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에 대한 사례로 위기 전 증후를 예로 들며 대부분의 사고는 상상력의 부족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 말한다.

 

최근 경제학은 다니얼 카너먼이 주창한 행동 경제학이 대세다. 행동경제학은 애덤스미스의 고전적인 경제학적 인간의 개념이 아닌 실제적인 인간의 행동을 연구하고 행동을 통해 어떤 결과가 발생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다. 오히려 이성적이기보다 감정적이다. 위기를 단순히 외부적인 요인으로만 치부한다면 경제학의 실체를 이끌고 있는 인간의 오류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저자는 이러한 행동경제학뿐만이 아니라 시장의 가설을 실패로 이끈 ‘시장 실패 경제학’ 또는 ‘현실 경제학’을 중심으로 죄수의 딜레마와 합리적 비합리성을 예로 든다. 특히 기업들이 어떻게 고객들을 희생시키고 이익을 추구하는지에 집중하며 대표적인 시장의 실패를 언급한다. 그는 여전히 권위적인 경제학자들이 유토피아 경제학에 묻혀있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실체적인 경제는 인센티브에 의해 좌우된다. 유토피아 경제학이 이론상으론 완벽하지만 인간의 속성을 완벽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것처럼 현실경제학 역시 문제 하나하나의 이해관계를 풀어나가야할 과제가 남게 된다. 경제학자들은 왜 문제를 어렵게 풀어가려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손도 위대하지만 대중들이 아는 경제학은 베일에 가린 채 권위를 앞세우는 권력과 다르지 않다. 시장의 논리란 결국 시장의 원칙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공포의 순간에 시장의 원리를 따르는 기업과 개인은 가장 힘없는 이들일 뿐이다. 시장은 이미 배반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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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 퍼즐 - 비즈니스 스쿨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은 무엇일까
제이 B. 바니 & 트리시 고먼 클리포드 지음, 홍지수 옮김 / 부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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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시카고로 가는 비행기 안, 저스틴은 자꾸만 속이 거북해지는 것을 느낀다. 난생 처음 컨설팅을 하러가는 중이다. 이미 켄을 비롯한 팀원들은 시카고에 도착해 HGS 컨설팅을 서두르고 있을 것이다. 저스틴은 과거의 일을 떠올린다. 몇 번의 이직이 그에게 새로운 도전을 일깨워주었고 그는 새로운 직업을 선택하기 위해 명문MBA를 이수했다. 좋은 조건의 투자은행이 아깝기는 했지만 저스틴은 컨설팅 업무를 선택했다. 자신이 필요로 하는 기업이 있다는 것만큼 경영학도로 느끼는 행복함이 있을까? 그런데 그의 거북함은 끝내 사라지지 않았다.

 

HGS 본사에 만난 팀원들은 겉으론 반기는듯했으나 저스틴은 못내 불편하기만 하다. 마치 이제 막 졸업한 신입사원에게 뭘 기대하겠냐는 모습들이다. 저스틴 역시 그들이 마음에 들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더욱이 경영진 회의가 끝나자 켄은 HGS 본사 경영진들의 권력구도에 대해 더욱 자세히 조사해볼 것을 요구한다. 저스틴은 상당히 혼란스럽다. 기업의 컨설팅과 권력구도가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단지 그들이 요구한 플라스티웨어의 활용방안만 컨설팅해주면 되지 않겠는가?

 

저스틴은 부사장과의 만남에서 치명적인 오류를 범한다. 그의 논지와 주장에 쉽게 빠져들어 컨설턴트로서의 중립을 잃어버린 것이다. 켄이 저스틴에게 화를 낸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저스틴은 자신이 배운 MBA과정을 줄기차게 외쳤지만 이곳에선 아무런 효과도 결과도 얻을 수 없었다. 그런데 더욱 불쾌한 것은 비벡을 비롯한 팀원들 모두 이러한 사실을 상세히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는 마음을 다잡고 켄의 말에 주목한다. 하지만 한편으론 자신이 이 일에 맞지 않는 것은 아닌가 고민에 빠진다. 그렇다고 일이 저스틴을 기다려줄리 없다.

 

저스틴의 상담 실력은 빠르게 성장한다. 특히 일의 초점이 누구이며 상대에 따라 어떤 대화를 이끌어나가야 하는지, 켄이 왜 권력구도에 주목하라고 하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저스틴은 반복되는 일상에서 이토록 시간이 빠르게 변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 컨설턴트로서의 하루는 그야말로 시간과의 전쟁이었다. 결국 저스틴을 비롯한 팀원들은 의견은 하나로 통합되었고 리비아는 멋진 연설로 HGS 사업파트너로서의 컨설팅을 마무리 짓는다.

 

하지만 반전은 어디든 있게 마련이다. 저스틴과 팀원들이 그토록 열정을 받친 기획안이 이미 실행중인 전략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결국 온 몸에 힘이 빠진 것을 느낀 저스틴은 담담하게 현실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또 하나의 반전은 새로운 컨설팅의 시작이다. 저스틴은 일주일 사이에 자신이 무엇을 했는지, 또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직접적으로 체험한 것이다.

 

What I didn't learn in Business school로 출간된 ‘전략퍼즐’은 말 그대로 학교에선 배울 수 없었던 전쟁터와 같은 기업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본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경영전략을 딱딱한 이론서가 아닌 소설로 작업했다는 것이다. 저스틴이라는 MBA학도를 내세워 그가 배운 수업과목이 기업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매 단원이 끝날 때마다 핵심 안을 내세우는 전략퍼즐이 이채롭다. 사실, 경영학에 관심이 없다면 그리 쉬운 책은 아니나 기업을 이해하는데 상당히 흥미롭게 다가온다. 특히 기업구도내의 파워게임의 향방이 기업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결론을 내려준다. 컨설팅은 어디에서 바라보느냐에 서로 다른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그런데 과연 기업내부에 가장 치밀하게 접근하면서 객관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을까? 무엇보다 학교에서 배운 것만으론 결코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는 교훈이 전략퍼즐의 핵심이다. 플라스티웨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컨설팅 그룹과 HGS회사간의 치밀한 파워게임, 전략퍼즐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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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김선희 지음 / 예담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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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태어나서 성장하며 일생을 이루기까지, 나,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나를 알기위해 부단히도 노력했던 선지자들의 철학적 견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나라는 존재의 의미에 대해선 최소한 몇 가지의 생각은 해보았을 것이다. 나는 육체적적인 허물을 벗어나는 순간 나라는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둘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나를 인정하는 것일까? 모두들 나에 대한 관심을 중심으로 세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살아가지만 정작 나는 알지 못한다. 어쩌면 나를 알지 못하기에 삶의 중심을 타인에 맞추는 것은 아닐까? 그럼으로써 최소한 나라는 존재를 타인과 동일시는 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살기위해서 태어난 것일까? 아니면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존재하는 것일까? 자신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인간은 스스로에게 높은 자존감을 부여한다. 인간이 모든 만물의 중심에 우뚝 설 수 있었던 이유도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의문을 끝없이 되풀이 해왔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은 스스로에게 의무를 부여한다. 생각하는 인간, 사유하는 인간, 그리고 도덕이나 윤리, 정의를 만들었다. 나라는 존재를 인정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끝없는 존재론적 이기심은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그 최종적인 선택은 무엇이 될까? 그런데 변수가 생겼다. 나를 아끼고 사랑할수록 외롭고 고독하다는 것이다. 최종적인 목적이 나의 행복이었는데 모두들 행복하지 않다고 말한다면 나라는 존재인식은 분명 어디서부턴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가진 것이 많아졌지만 나는 행복하지 않다.

 

사회는 수많은 다양함과 변수들이 우리 앞을 가로막는다. 자신이 원하는 일일지라도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특이 다양한 개인들이 어깨를 부딪치며 살아가는 조직에선 이러한 상황들이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최근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이혼, 삶의 욕구충족에 대한 갈망, 가족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 쉽게 빠져드는 중독성 강한 게임, 허망한 욕망, 우리 사회를 짓누르는 대부분의 유혹들이 ‘나’라는 강한 존재 의식에서부터 비롯된다. 진실한 나인지, 허상의 나인지, 불분명한 나는 항상 혼란과 지독한 이기심 속에서 갈등하고 갈망한다. 외로운 나. 그런 나를 위로해주고 배려하며 존중해줄 수 있는 보호막은 없는 것일까?

 

사랑은 인류의 가장 오래된 철학이다. 어떤 사랑을 하느냐는 사랑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느냐로 귀결될 것이다. 그만큼 사랑에 대한 고대 철학자들의 풍부한 지식과 경험은 현대인들이 처한 위기의 사랑을 구해내는데 특별한 효과를 발휘할 것이다. 플라톤은 사랑을 합일이자 완성으로 보았다. 두 개로 갈라진 원이 다시 원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플라톤의 사랑관념은 영혼의 반쪽, 소울메이트라는 낭만적인 이야기와는 달리 불완전한 구성을 지니고 있다. 에로스는 격정적이고 파괴적인 사랑의 힘이다. 그리고 충분히 충동적이며 충족에 대한 갈망을 요구한다. 에로스는 자아도취적이고 결여되고 부족한 자신의 사랑에 집착한다. 에로스가 만들어낸 사랑은 탐식과 탐미다. 모든 것을 흡수하고 내 안에 있을 때 완성될 수 있는 사랑, 결국 불완전한 둘이 만나 하나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는 종속되고 하나는 충족한다. 흡수된 사랑의 결말은 내안의 타자를 영원히 가두거나 그가 사라질 때까지 충족을 멈추지 않는 것뿐이다. 저자는 플라톤의 에로스적인 사랑을 인류가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사랑으로 인식하며 우리가 아는 사랑의 문제가 결국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가 찾는 철학자는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 개인이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한 철학자 ‘루소’다.

 

‘성형을 권장하는 사회’ 외모지상주의가 만들어낸 성형 이론은 나를 부정하는 가장 적극적인 사회현상이다. 나 이외의 나에 대해 사회와 타인의 평가를 기대하는 사회, 자신의 의지보단 외모가 경쟁이 되고 하나의 상품으로 인식되는 사회, 이러한 사회에서 나라는 존재는 한없이 나약하고 희미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고대소설 ‘박 씨 부인’의 박명을 예로 들며 이미 우리사회는 선조들로부터 외모를 중시하는 풍토를 가지고 있었다고 비판한다. 저자가 주목하는 인물은 프랑스 철학자 미셀 푸코다. 그녀는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작품을 통해 감옥과 같은 감시체제와 권력의 발생을 현대인들의 성형중독과 사회의 성형권장에 비유한다. 우리 사회엔 얼굴없는 시선들이 가득하다. 그들은 감시라는 권력을 통해 사회를 다루기 쉬운 방향으로 유도한다. 마치 모든 이들이 자신의 의지라 여기고 있지만 결국 주체를 인정하지 않은 채 떠다니는 조각배와 같다.

 

‘철학이 나를 위로한다.’ 는 사회를 짓누르는 다양한 문제들의 원인에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고찰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철학자들의 혜안을 제시한다. 저자 특유의 가슴을 후비는 문장은 나의 존재의미에 대한 신랄한 일깨움으로 가득하다. 나라는 존재의미에 대한 인식이 철학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또한 우리들이 삶의 과정을 통해 깊이 깨달아야하는 나는 누구인지 저자가 전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마음에 울려온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자신을 포기한다면 후회에 대한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의 몫이다. 우린 철학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획일적이고 일률적인 기계문명이 빠르게 우리의 사고를 접수하고 우리들에게 필요치 않은 수많은 과정과 결과들이 우리의 삶을 잠식한다. 그 어느 때보다 자신에 대한 의지와 발견이 필요한 때임에도 우리의 시선이 오직 한 곳만을 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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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 그들이 말하지 않는 소비의 진실
마틴 린드스트롬 지음, 박세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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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자의 행동을 추적, 분석하고, 이를 다시 분류하고 종합하고 그리고 그렇게 만든 정보를 가지고 소비자를 설득하고, 물건을 사도록 자극하는 전략을 수립하는 전 과정을 ‘데이터 마이닝’이라고 한다. 흔히 업계에선 ‘지식의 발견’ 혹은 ‘소비자의 이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보는 입장의 차이가 이토록 극명한데 놀라움을 감출 수 없다. 한마디로 데이터 마이닝은 당신을 스캔하는 것이다. 당신이 매일 사용하는 소비패턴뿐만이 아니라 삶의 모든 행동을 추적하는 시스템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토록 교묘한 상술을 사용하면서 정작 관련된 누구도 소비자들에 대한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이들은 교묘하게 꾸며진 ‘동의서’나 ‘카드’를 끌어 모으며 오직 ‘돈벌이’에만 몰입한다. 이미 우린 기업의 마케터들의 표적이 되었지만 이들의 사정거리를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다.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경고의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이는 가난한 이들의 하소연에 불과하다. 여전히 고가명품브랜드들은 없어서 못팔정도의 상종가를 달리고 있다. 그들의 마케팅을 비아냥거릴 이유가 전혀 없다. 오히려 경기침체기에 이들이 추종하는 탁월한(?) 마케팅 방법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대기업들의 문어발식 확장도 과소비를 부추기는 주요한 요인이다. 뭔가 다르다는 광고는 분명 보통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다. 설령 내용물이 형편없더라도 브랜드 이름이 새겨진 쇼핑백은 그의 품위마저 높인다. ‘브랜드’, 우린 브랜드라는 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살고 있다. 이젠 어디를 가든 브랜드에 둘러싸여 마치 세상이 이들에 의해 이루어진 것 같다는 착각을 하곤 한다. 자신의 주머니 사정이 어찌되었든 대책 없는 소비는 누군가에겐 피해를 주게 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몰이해가 정당한 소비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한없이 나약한 욕구와 욕망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기업들의 상술이 날로 진보해 가는데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문제는 자신의 선택이다. 하지만 선택이란 문제에 우리 아이들이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해보이진 않는다. 최상의 마케터로 세계를 누비며 자신의 진가를 발휘해온 마틴 린드스프롬은 그동안 자신이 겪었던 마케팅 시장의 희한한 거래와 교묘한 상술, 특히 급진전하는 과학기술을 이용한 소비자의 패턴분석방법을 그만의 방식대로 서술한다. 기업을 위해 소비자의 뇌를 분석했던 마케터가 도리어 마케터들의 속내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굳이 인간의 내면적인 속내를 들추어내지 않더라도 이미 우리의 상황이 마케터들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선언한다.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들은 무궁무진하게 넘친다. 최근 마케터들은 아직 신생아 티를 벗어나지 못한 유아들을 집중한다. 아이들이 처음 말을 땔 때 나오는 첫 마디가 ‘맥도날드라’니 할 말이 없지 않은가? 그들의 심오한(?) 마케팅은 임산부로부터 시작되어 태어의 뇌에 기억할만한 광고를 심어놓는다. 저자의 말대로 ‘믿거나 말거나’ 일 수 있지만 이미 태아교육은 상당부분 사실로 알려져 있다.

 

우리사회를 짓누르는 왕따의 현실 역시 이러한 소비패턴을 교묘히 따르고 있다. 브랜드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아이들의 자존감 놀이, 저자는 자존감이 나약할수록 외부적인 브랜드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한다. 속이 비어있기에 자신을 대체할 브랜드를 찾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이러한 브랜드들이 사회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과도한 소비도 문제지만 이를 역이용하는 상술은 더욱 치명적이다. ‘충분하다’ 는 말이 사라진지 오래다. 불편한 인간의 진실은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크다고 한다. 그래서 더욱 많이 그리고 더욱 집요하게 물건을 쌓아놓는다. 무엇이 자신에게 이로운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자신의 욕망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다. 마케터들은 이러한 인간의 습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저자는 결국 모든 것을 배제한 체 혼자 살기 전에는 브랜드를 거부할 수 없다고 말한다. 요지는 ‘어떻게’ 자신만의 브랜드로 선택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만족’에 대한 생각이 같을 수는 없지만 이를 인식하는 사회구성원들의 원칙이 존재한다면 소비 또한 최소한에서 멈추지 않을까? 하지만 성장이라는 화두아래 친 기업적인 정책을 펼치는 정부의 역할 또한 소비의 주원인으로 손꼽힌다.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자원은 미래의 가치를 담보로 하고 있다. 몰락에 대한 지름길을 알고 있다면 분명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 지속되는 방법일 것이다. 소비는 미덕이 아니다. 현명한 소비가 미덕이고 자신의 삶을 보장해줄 뿐이다. 소비에 관한 불편한 진실, 당신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지갑을 열고 있는가?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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