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쫓겨난 권력자 - 무도한 시대, 무도한 권력자들의 최후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2월
평점 :

독재자란 칭호는 왕정이 무너지는 근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왕정은 말 그대로 왕의 말과 행동이 곧 법이었다. 산업화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열강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지배민족과 국가를 파괴시켰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신흥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국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세계지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자유, 독립, 민주화는 허울 좋은 선전일 뿐이었다. 문제는 파괴적 분리와 분쟁이 지속적인 내란을 유발했고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땅은 수십 년 동안 분쟁과 내전을 겪으며 영혼마저 피폐시킬 정도로 잔인한 독재자를 출현시켰다.
인간에 권력은 어떤 권능을 부여하는 것일까? 왕을 넘어 신으로 군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 끝을 알 수 없기에 두렵고 공포스럽다. 인류사를 통틀어 정치에 만족하던 시대는 없었다. 항상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역사이기에 권력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인간이 지닌 인간에 대한 판단, 앞뒤가 맞지 않고 편향적인 인지구조가 독재자를 키웠다. 독재자는 여과 없는 역사의 증거다. 정치적 불안이 경제를 일으킬 수 없으며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용할리 만무하다. 21세기의 권력지향은 여전히 세계사를 뒤흔들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러시아 망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또 다른 독재자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떠도는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이민문제는 세계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포용이 사라진 시대는 인간성은 의미를 잃는다. 한 가지 두려운 것은 누구도 또한 어떤 민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아픈 과거사를 갖고 있기에 더욱 처절하게 민족성을 강조하지만 잘못된 권력자의 선택은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할지도 모른다.
교활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온 몸이 짐승의 털로 뒤덮인 상상의 동물이다. 일부러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몸속을 파먹으며 결국 호랑이를 쓰러드리는 흉측한 괴물이다. 독재자는 민중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대중에 영합한 정치 이면엔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이 숨겨있다. 정책보단 이념을 강조하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신화에 종속된 노예가 된다. 교묘한 말로 대중을 속이고 결국 대중을 잡아먹고 만다. 찬양과 아첨에 능숙한 자들이 주위를 감싸며 오직 자신만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힌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히틀러와 스탈린을 능가한다는 유일무이한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 부두교 사제로 주술공화국을 만든 아이티의 뒤발리에가 이들이다.
권력에 대한 사랑은 귀천이나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권력은 권력자들의 내공에 의해 통제된다. 권력에 대한 의지나 의미, 생각이 부재한 이들에 권력은 무소불위의, 가공할만한, 치명적인 무기로 전락한다. 그들의 염원과는 달리 독재자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하다. 한때는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놓을 수 있다는 착각과 망상에 빠져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결국 도망자로 전락하거나 정적에 의한 축출 혹은 죽임을 당한다. 근대사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성장, 문화의 혼재, 역사의 소용돌이라는 수많은 난제가 등장하는 혼돈의 시대였다. 사상과 이념이 탄생했고 정당과 민족이 대립하며 무엇이든 수용했으나 배타적인 과정도 지속되었다.
쫓겨난 권력자는 근대사를 관통하는 치명적인 독재자를 소개한다. 내전과 내란의 중심이 되었던 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 분쟁지역의 독재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권력을 잡는 순간 괴물로 돌변해버렸다. 무엇을 위해 권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지워버렸다. 오직 자신의 탐욕을 위해 민족을 수탈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권력의 사유화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양산한다. 또한 권력 유지를 위해 특권층이 필요하다. 그들은 교묘한 말로 위장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주역의 혁명이란 말을 꺼내면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이 옳은가란 화두를 던진다. 맹자는 인의 파괴자가 역적이고 의의 파괴자은 흉악범이라 말한다. 역적이나 흉악범은 군주가 아니라 범부라는 것이다. 권력은 뜨겁다. 곁에 다가갈수록 화상을 입기 쉽다. 그럼에도 자신을 불태우고 주변마저 황폐화시킬 이유는 무엇일까? 고증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권력에 불붙은 이들에 던져지는 메시지는 항상 유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