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 익스프레스 - 한 권으로 빠르게 끝내는
김영석(써에이스쇼) 지음, 김봉중 감수 / 빅피시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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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전환을 가져온 시점은 언제일까? 만약이란 단어가 통용된다면 어떤 시기를 교체하거나 바꾸고 싶을까? 오랫동안 민족이라는 정체성을 간직한다는 것은 그 민족이 지닌 간절한 집념의 표현일 것이다. 민족이라는 정체성, 안과 밖이라는 틀은 상상 이상으로 사회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어쩌면 인간의 본능 이랄 수 있는 범위에 대한 조건이 지리적 범주를 넘어 인류사 지류를 뒤흔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역사관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등 국가라는 범주에 속한 거의 모든 문명을 가늠하는 기준이다. 또한 그 어떤 국가나 민족이든 세계사라는 큰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세계사는 어떤 방향을 정하고 있지 않다. 어떤 시기에 어떤 사건이 일어나 커다란 물꼬를 트고 방향을 전환시킨 시간의 흐름이다. 세계사는 당면한 문제가 아닐 수 있기에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한국사회의 변환 점은 세계사와 맥락을 같이해왔다. 인간에 특화된 역사는 지구 생태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1000년을 넘기기 어려웠고 그 어떤 이념이나 종교도 생존의 논리를 벗어날 수 없었기에 세계사를 이해한다는 것은 문명인으로 존재하고자하는 인간의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그동안 세계사의 단편적인 사건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면 세계사 익스프레스는 고대, 중세, 근대, 현대를 중심으로 특정한 사건에 대한 특별한 과정과 역사적 진로를 바꾼 사건들을 진술하고 있다. 가볍지만 독특한 매력을 느낀다. 학창시절부터 배워왔지만 통합하기 어려웠던 관점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연도별 집중도가 뛰어나 그간 중구난망으로 흩어져있던 세계사적 관점들의 내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본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첫 번째는 기원전 4000년경 문명의 시작으로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 각 시대를 전환시킨 결정적인 사건들을 다룬다. 두 번째 파트는 20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로마를 중심으로 미국과 중국까지 세계를 움직인 패권국들의 문명사에 집중한다.

 

14세기 흑사병은 유럽인구의 절반을 앗아갔다. 하지만 어둠 뒤에는 빛이 있듯이 종교관에 파묻힌 중세의 장막이 인문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시대를 열어젖힐 줄 누가 알았겠는가? 단테의 신곡은 본 책에서 유일하게 소개하는 시대를 바꾼 서적이다. 정치적 망명 중 단테는 영적 여정을 위한 신곡을 발표하는데 이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문학과 예술이 번창한 특별한 계기를 마련하였다. 인간에 대한 성찰은 과거에도 있었지만 예술을 중심으로 한 르네상스는 근대화의 시작을 알리는 과학과 기술발전에도 엄청난 영향을 끼치게 된다.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은 카톨릭과 개신교라는 구신교의 분리를 만들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인간성에 대한 의미는 중세를 이끌었던 수많은 전쟁과 분쟁의 중심에 종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암시한다. 성경은 오늘날에도 수많은 이들에 영감을 주고 특별한 논쟁의 주제가 되고 있다. 만약 1904년 러일전쟁에서 러시아가 일본에 승리하였다면 조선의 역사는 어떻게 되었을까? 러일전쟁의 승리 후 일본은 세계대전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이전 일본의 정치, 경제 성장 배경을 주목해야한다. 1868년 미국에 대한 불만으로 단행한 메이지 유신은 부국강병을 위한 초석을 가져왔는데 특히 군대창설은 일본의 경제발전뿐만이 아니라 패권국에 대한 야욕을 노출시킨다. 그 후 조선의 운명은?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는 것은 삶을 통찰하는 혜안을 가져다준다. 역사는 반복되기에 우린 역사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기도 한다. 현대사회는 역사를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과거에는 불가능했던 사건들에 대한 집중도가 매우 높다. 실시간으로 지구반대편의 사건을 알 수 있고 정책자들의 계획을 미리 예측한다. 하지만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한 가지 안타까운 것은 끊이지 않는 전쟁이다. 이념과 민족, 종교, 신념과 가치로 일어나는 전쟁은 세계사의 모든 방향을 전환시켰다. 현대전은 과거 배고픔을 탈출하기 위한 전쟁이 아니다. 하지만 이면엔 자국의 이익이라는 변치 않는 전쟁의 속성이 숨겨있다. 세계경찰을 자인했던 미국의 변심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1972년 닉슨은 중국을 자본주의 체제로 끌어들이려 했지만 결국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미중간의 냉전은 과거 미소냉전을 떠올리게 한다. 세계사 역시 인간의 의지가 만들어 낸 결과물일 뿐이다. 그렇기에 세계사를 알아야 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세계사 익스프레스를 통해 역사를 바꾼 결정적인 순간들을 반추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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쫓겨난 권력자 - 무도한 시대, 무도한 권력자들의 최후
박천기 지음 / 디페랑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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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란 칭호는 왕정이 무너지는 근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 절대 권력의 상징이었던 왕정은 말 그대로 왕의 말과 행동이 곧 법이었다. 산업화시대가 시작되면서 유럽열강은 끝을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피지배민족과 국가를 파괴시켰다. 스페인,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그리고 신흥국 미국을 중심으로 한 패권국들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세계지리를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자유, 독립, 민주화는 허울 좋은 선전일 뿐이었다. 문제는 파괴적 분리와 분쟁이 지속적인 내란을 유발했고 씻을 수 없는 고통과 아픔을 주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떠난 땅은 수십 년 동안 분쟁과 내전을 겪으며 영혼마저 피폐시킬 정도로 잔인한 독재자를 출현시켰다.

 

인간에 권력은 어떤 권능을 부여하는 것일까? 왕을 넘어 신으로 군림하고 싶은 인간의 욕망, 끝을 알 수 없기에 두렵고 공포스럽다. 인류사를 통틀어 정치에 만족하던 시대는 없었다. 항상 문제가 있었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 역사이기에 권력은 대부분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인간이 지닌 인간에 대한 판단, 앞뒤가 맞지 않고 편향적인 인지구조가 독재자를 키웠다. 독재자는 여과 없는 역사의 증거다. 정치적 불안이 경제를 일으킬 수 없으며 언론이 정상적으로 작용할리 만무하다. 21세기의 권력지향은 여전히 세계사를 뒤흔들고 있다.

 

시리아 내전은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의 러시아 망명으로 일단락되는 듯했으나 또 다른 독재자의 탄생을 예고하고 있다. 내전을 피해 지중해를 떠도는 시리아 난민들에 대한 이민문제는 세계가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포용이 사라진 시대는 인간성은 의미를 잃는다. 한 가지 두려운 것은 누구도 또한 어떤 민족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 역시 아픈 과거사를 갖고 있기에 더욱 처절하게 민족성을 강조하지만 잘못된 권력자의 선택은 뼈아픈 과거를 되풀이 할지도 모른다.

 

교활은 사람의 모양을 하고 있지만 온 몸이 짐승의 털로 뒤덮인 상상의 동물이다. 일부러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몸속을 파먹으며 결국 호랑이를 쓰러드리는 흉측한 괴물이다. 독재자는 민중의 탈을 쓰고 나타난다. 대중에 영합한 정치 이면엔 현실에 대한 강한 부정이 숨겨있다. 정책보단 이념을 강조하고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신화에 종속된 노예가 된다. 교묘한 말로 대중을 속이고 결국 대중을 잡아먹고 만다. 찬양과 아첨에 능숙한 자들이 주위를 감싸며 오직 자신만이 유일무이한 존재라는 허황된 망상에 사로잡힌다. 루마니아의 차우세스쿠, 히틀러와 스탈린을 능가한다는 유일무이한 캄보디아 독재자 폴 포트, 부두교 사제로 주술공화국을 만든 아이티의 뒤발리에가 이들이다.

 

권력에 대한 사랑은 귀천이나 성별, 나이를 따지지 않는다. 권력은 권력자들의 내공에 의해 통제된다. 권력에 대한 의지나 의미, 생각이 부재한 이들에 권력은 무소불위의, 가공할만한, 치명적인 무기로 전락한다. 그들의 염원과는 달리 독재자의 말로는 대부분 비참하다. 한때는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놓을 수 있다는 착각과 망상에 빠져 부귀영화를 누렸지만 결국 도망자로 전락하거나 정적에 의한 축출 혹은 죽임을 당한다. 근대사는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성장, 문화의 혼재, 역사의 소용돌이라는 수많은 난제가 등장하는 혼돈의 시대였다. 사상과 이념이 탄생했고 정당과 민족이 대립하며 무엇이든 수용했으나 배타적인 과정도 지속되었다.

 

쫓겨난 권력자는 근대사를 관통하는 치명적인 독재자를 소개한다. 내전과 내란의 중심이 되었던 아메리카와 중앙아시아 분쟁지역의 독재자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평범한 사람들이었지만 권력을 잡는 순간 괴물로 돌변해버렸다. 무엇을 위해 권력이 필요한가에 대한 질문을 지워버렸다. 오직 자신의 탐욕을 위해 민족을 수탈하고 살인을 서슴지 않은 것이다. 권력의 사유화는 사회적 분열과 갈등을 양산한다. 또한 권력 유지를 위해 특권층이 필요하다. 그들은 교묘한 말로 위장하며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진다. 저자는 주역의 혁명이란 말을 꺼내면서 신하가 군주를 시해함이 옳은가란 화두를 던진다. 맹자는 인의 파괴자가 역적이고 의의 파괴자은 흉악범이라 말한다. 역적이나 흉악범은 군주가 아니라 범부라는 것이다. 권력은 뜨겁다. 곁에 다가갈수록 화상을 입기 쉽다. 그럼에도 자신을 불태우고 주변마저 황폐화시킬 이유는 무엇일까? 고증이 필요한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권력에 불붙은 이들에 던져지는 메시지는 항상 유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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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이야기 - 전염병 예방과 인류의 생존을 위한 멈추지 않는 도전들
문성실 지음 / 현암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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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타 생명체와의 구분을 시도해왔다. 인간에 좋은 것은 곁에 두고 좋지 않은 것은 제거하거나 박멸하는 단계를 형성해 온 것이다. 인류에 재앙을 가져다 준 전염병은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찌 보면 미생명체와의 끊임없는 전쟁이 인간생존의 역사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수세기를 거치면서 다소 누그러뜨리기는 했지만 여전히 바이러스와 박테리아는 인류 최대의 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수많은 과학자, 생물학자, 의학자들이 감염병에 대한 근원적인 뿌릴 뽑고자 고군분투한다. 감염이 누구에게는 선택적으로 통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백신은 거의 일상의 언어처럼 사용되고 있다. 백신에 대한 과도한 집착이나 불신이 팽배하지만 인류의 생존을 방어하는 것만큼은 진실이다. 인플루엔자가 창궐하는 이 시점에 백신에 대해 알아야하는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미생물에 관한 연구는 19세기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최초의 미생물관찰자 레이우엔혹에 이어 로버트 코흐는 세균학의 황금기를 가져왔다. 그는 박테리아를 연구하던 중 당시 많은 이들에 고통을 안겨주던 탄저병에 관심을 갖고 수많은 실험을 통해 막대모양의 탄저균을 발견한다. 그의 연구는 과학자들에 특별한 메시지를 전달하였고 한천을 발명한 헤세의 도움으로 결핵이 영양실조가 아닌 박테리아가 원인임을 밝혀낸다. 코흐는 세균의학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제시했는데 예방의학이 코흐가 남긴 업적이다.

 

호흡을 통해 두창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온 몸에 발진이 생기고 수포가 형성되며 고름이 가득찬다. 대부분 사망하나 고통을 이기고 살아나도 많은 흉터가 남는다. 신의징벌이라 일컬으며 수천년 동안 인류에 죽음의 저주를 안긴 천연두다. 천연두는 과거 이집트 문건에 나올 정도로 오래된 전염병이다. 그만큼 치료법이 없었고 수많은 이들에 죽음과 고통을 안겨주었다. 특별한 해결책이 없던 시절 에드워드 제너는 소젖을 짜는 여인들이 천연두에 감염되지 않는 것을 보고 우두법을 개발했다. 제너의 연구는 결국 천연두 백신의 대량생산 물꼬를 텄다. 1980년 인류는 천연두 종식을 선포했지만 천연두는 여전히 우리 주위에 잠복중이다. 특히 종식으로 인한 연구부재가 새로운 생물학무기를 양산하고 있다.

 

백신이란 용어에 파스퇴르를 빼놓을 수 없다. 많은 이들에 전파되진 않았지만 광견병은 오랜 기간 인류를 두렵게 하는 질병이었다. 잠복기간까지 길어 치료방법도 쉽지 않았다. 파스퇴르는 약독화라는 개념을 사용해 광견병에 걸린 어린아이를 살려내면서 새로운 치료방법을 개발해냈다. 면역글로불린과 바이러스 백신의 사용은 환자의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획기적인 방법이었고 백신에 대한 정의를 확립한다. 파스퇴르의 백신 개발방법은 향후 디프테리아, 페스트, 황별병, 홍역, 이하선염, 풍진, 수두등 수많은 감염병의 약독화 생백신 개발에 영향을 주었고 백신에 대한 새로운 차원을 만들었다.

 

병원엔 인플루엔자 환자들이 넘친다. 올 겨울이 유난히 추운 이유도 있지만 백신에 대한 홍보효과가 그리 좋지 않은 이유도 있다. 문제는 인플루엔자가 복잡해지고 지능화되어 갈수록 치료가 어려워지고 감염자에게 많은 고통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과거에 비해 눈에 띄게 사망자 소식이 늘어난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이종 간 교접이 가능하다. 동물간의 이동으로 다양한 변종이 만들어진다. 새로운 백신이나 치료법이 나오기 전에 수많은 사람을 감염시키는 이유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바이러스 염기서열을 분석해 인플루엔자의 모든 발현 가능성을 연구한다. 하지만 바이러스 역시 생존에 최선을 다한다. 숙주에 안착하기 위한 최고의 조합을 만들 것이다.

 

본 책은 백신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특히 mRNA를 이용한 코로나 백신의 개발은 백신사의 획을 그을 만한 업적으로 인식되고 있다. 하지만 그 배경엔 수익성의 논란으로 인한 폐기의 위협에도 포기하지 않고 수십 년 동안 백신개발에 연구한 과학자들의 헌신이 있었다. 백신은 다양한 전염병의 수만큼이나 많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워낙 시급한 일이기에 임상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 간혹 치명적인 실수가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백신을 포기할 수는 없다. 19세기 수천만 명을 사망시킨 페스트와 같은 바이러스가 인류에 전혀 다른 재앙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인류는 여전히 미생물과의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바이러스 또한 자가 생존에 최선을 다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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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시간 오후 4시
이주형 지음 / 모모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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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 갈수록 끝이 없을 것만 같은 시간도 언젠가는 종착지점에 이른다. 인생이 직선으로만 가지 않고 곡선으로 진행된다는 것을 아는 순간 세월의 무상함을 깨닫는다. 흐르는 강물처럼 유유히 살아왔지만 결국 거대한 바다로 집결한다. 특별할 것 없는 인생살이를 왜 이렇게 각박하게 살아가는지, 너와 나에 대한 구분과 특별함을 강조하는지, 자신을 대하는 것도 상대를 대하는 것도 복잡하고 힘들기만 하다. 우린 마음보다 빠르게 흘러가는 세상을 따라잡으려는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혀있다. 손에 쥔 것만이 인생이 아니다. 멈추면 보이는 것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의 오후는 특별한 시간이다. 삶을 특별하게 만드는 것은 오직 자신만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한국사회에 새로운 트렌드중 하나가 노화에 대한 애찬이다. 다행히 현재 나이듦에 속한 인구는 과거세대에 비해 풍족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현역으로 활동 중이고 다수는 저마다 삶에 대한 기대와 희망치를 올리고 있다. 덕분에 노인에 대한 가치도 재평가되고 있다. 그래서인지 늦은 나이란 없다는 말이 일상적인 언어가 되가는 것 같다. 하지만 과거 정체성에 갇힌 이들에게 세상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마치 여러 세대가 혼돈하는 시대다. 사회적으로 다양한 요구가 봇물 터지듯이 일어나지만 누군가의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누가 자신을 희생하려 하겠는가? 사회적 공감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기지만 서로 자신이 원하는 것만 소리치고 있다.

 

대한민국엔 어른이 필요하다. 하지만 존경과 공감의 대상이 되는 어른이 사라져버렸다. 이제 모든 이들은 어떤 목표를 두고 살아야하는지 불안과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각자도생이란 말이 심심치 않게 흘러나온다. 누굴 믿고 의지해야하는가? 더욱이 몸과 마음이 스러져가는 중년엔 더욱 많은 위기들이 찾아온다. 건강에 대한 염려. 자녀에 대한 걱정, 노후에 대한 불안, 무엇보다 잘 살고 있는가에 대한 불안이 마음을 짓누른다. 이럴 때 삶에 대한 기울기가 기울어진다. 현재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강박은 끊임없는 요구를 강요한다. 잘 살아야한다. 행복해야한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인생은 곡선이다. 어디로 갈지를 정하는 것은 여전히 자신의 몫이다.

 

소소한 일상을 바로 보는 것은 삶에 감사하는 태도다. 어떻게 살아야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해결책일지도 모른다. 숨 쉬는 것에 대한 감사는 아파본 자만이 느낄 수 있는 생명에 대한 감사다. 자신이 가진 것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는 다면 감사하지 않을 것이 하나도 없다. 현재를 살아간다는 것은 구체적이지만 단순하다. 알았던 세상을 제대로 바라보는 것이다. 지금껏 느꼈던 감정을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생시간, 오후4시는 작가의 소소한 마음이 지극히 드러나 있다. 진한 향기가 묻어나는 커피에 대한 사랑을 통해 삶에 대한 풍성한 향기를 느낄 수 있다. 마치 라일락꽃처럼 은은한 향기가 글을 통해 살아난다.

 

우린 자신을 통해 세상을 만난다. 세상이 우리에게 다가오는 것은 특정한 순간뿐이다. 어쩌면 인간의 생태가 자신이 원하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구성되어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이 만든 퍼즐을 맞추어가며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는 것은 결국 자신이 만들어가는 미래다. 누구에게나 황혼기가 있다. 빠른 성장이 있다면 느린 성숙이 있다. 저자의 말대로 하나를 추가하는 것이 성장이라면 성숙은 하나를 내려놓는 비움이다. 비워야 새로운 관계가 만들어진다. 자신을 만나는 것도 관계를 형성하는 것도 비움이 우선이다. 일상을 통해 만나는 수많은 생각들이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하듯이 지금 떠오르는 생각은 미래를 구성한다. 인생 오후시간은 그래서 더욱 반갑다. 또한 작가만의 소소한 인생이야기가 너무 아름답고 그립다. 힘들 때마다 곁에 두고 읽고 싶은 책이다. 누구에게나 삶에 대한 같은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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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오후에는 철학이 필요하다 - 키케로부터 노자까지, 25명의 철학자들이 들려주는 삶, 나이 듦, 죽음에 관한 이야기
오가와 히토시 지음, 조윤주 옮김 / 오아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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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관념에 당신의 노년을 맡기지 말라. 키케로의 노년론에 나오는 말이다. 노년에 대한 생각이 당신의 노년을 결정한다. 노년에 대한 세상의 시각이 당신을 변화시킨다. 우린 자유란 말에 익숙하지만 진정한 자유에 대한 근원적인 고찰에 서투르다. 변화를 꿈꾸지만 변화 앞에서 머뭇거리며 익숙한 생각과 행동을 반복한다. 노년이 그토록 힘들고 어려운 시기일까? 수많은 철학자들도 자신의 늙어감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했을 것이다. 무엇이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주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잊게 해줄까? 무엇보다 왜 변화하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한 성찰은 인생을 회고하는데 위대한 자산을 만들어 줄 것이다.

 

노년엔 포기라는 말이 적지 않게 사용된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심란해서, 무엇하나 제대로 하기 힘들어서, 쉽게 포기한다. 보부아르의 적극적으로 즐기는 삶의 방식은 노인에 대한 관념을 쉽게 무너뜨린다. 그는 노년이 젊은 시절의 패러디가 되지 않기 위해선 인생에 의미를 부여할 목표를 끊임없이 추구하라고 충고한다. 그의 방식은 노년에 저항하는 것이 아니라 노년에 저항하지 않는 방식이다. 노년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실제적인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이는 노년일지라도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말라는 그의 철학과 닿았으며 인생의 무한한 발자취를 남기고자 도전하는 삶의 욕망을 이야기한다.

 

나이듦은 무엇일까? 기존의 모든 것들이 사라진다는 개념은 한 인간의 정체성을 변환시킨다. 나이듦을 벗어날 순 없다. 또한 나이듦에 모든 것들에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다. 질병과 인간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무엇보다 나이듦은 죽음을 실질적으로 받아들이는 시기다. 죽음에 대한 생각은 무엇을 위해 인생을 살아왔느냐와 맞닿아있다. 장켈레비치의 죽음과의 대화는 죽음을 맞이하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한다. ‘얼버무림의 태도로 죽음을 맞이하라’. 그는 죽음을 결론지으려 하지 말고 얼버무리며 넘기라고 충고한다. 죽음을 이해할 수 있는가? 죽음은 회피의 대상이자 타인에게 미루는 행위다. 죽음을 만난다는 것은 삶의 마지막을 이해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에겐 죽음에 가려진 인간의 희망이 숨겨있다. 죽음과 어떻게 공존해야하는가가 남은 과제다.

 

메를로 퐁티의 양의적 실존방식은 몸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제시한다. 그에겐 몸은 세상과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세상에 대한 존재방식이다. 모든 감각은 몸을 통해 지각되고 마음이라는 의식으로 전달된다. 퐁티는 자신과 몸, 세상은 각각 독립되어있고 몸을 통해서만 통합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사실적으로 몸에 대해 그리 관심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몸의 적응과정을 고찰하는 것은 잘못된 방식을 수정하는 철학적 성찰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몸이 전달하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가? 몸을 관리하는 것은 나이듦의 첫 번째 조건이다.

 

나이듦에 가장 어려운 것이 타자와의 관계다. 자신만 고집하려는 생각이 더욱 짙어지기에 외로움과 고독이 자신을 가로막는다. 레비나스는 전체성과 무한이라는 주제로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타자란 절대적으로 다른 것이다. 타자는 나에 가산되지 않는다. 당신 또는 우리라고 말하는 공동체는 나의 복수형이 아니다.’ 전체성은 타자라는 존재를 인정하지 않고 자신에 포섭하는 행위다. 타자는 구속의 대상일 뿐이라는 것이 레비나스의 생각이다. 그는 타자에 대한 의미를 부각시킨다. 타자는 나의 복수형이 아니라 저마다 나름 무한의 존재들임을 인식하는 것이다. 시대를 관통하는 전체주의적 사고가 세상을 더욱 어렵고 힘들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레비나스이 철학이 세상을 관통한다.

 

본 책은 나이듦, 질병, 인간관계, 인생, 죽음이라는 다섯 가지의 주제를 중심으로 25인 철학자들의 생사관을 이야기한다. 중심 맥락은 삶과 노년과 죽음에 대한 철학적 고찰이다. 철학은 인생의 순간을 읽을 수 있는 혜안을 제시한다. 철학자들의 고민이 곧 삶의 고민이자 우리에게 주는 생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질병의 고통마저 삶의 철학으로 승화한 니체의 질병론은 어떻게 살아야 할것인가에 대한 적절한 해법을 제시한다. 인생의 오후엔 저마다의 특별한 철학이 필요하다. 예기치 않는 순간이 직접적으로 다가오고 이를 피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누구나 인생의 오후를 만난다. 이제 자신만의 철학을 고민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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