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테크의 거짓말 - 속지 않고 당하지 않는 재테크의 원칙
홍사황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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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포털 사이트 일면을 장식하는 광고가 있다. 유독 팝업창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공통적인 특징이다. 광고는 대세인 스마트폰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다는 문구가 지배적이다. 앞서나간다는 느낌을 받는 스마트 폰, 누구나 소유하고픈 욕망을 일으키는 물건임엔 틀림없다. 그런데 기기를 공짜로 준다니 혹 하는 마음에 사이트로 눈길을 돌린다. 직접투자자들이라면 충분히 관심이 가는 마케팅이다.

그런데 과연 수십만 원을 호가하고 적지 않은 사용료가 부과되는 스마트 폰을 공짜로 주는 증권사는 손해가 없는 것일까? 이에 대한 해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금융기관의 주 수입원은 수수료다. 증권사 역시 마찬가지다. 국내 최저의 HTS 수수료는 0.015%다. 이에 비해 모바일 수수료는 0.1%로 시작한다. 증권사는 공짜폰을 주는 대신 위탁기간과 위탁금액, 최소한 거래횟수를 옵션으로 걸어놓는다. 증권사의 옵션을 계산해 보라. 그들은 절대로 손해보는 일은 시작도 하지 않는다. 주식과 채권, 펀드 역시 깡통계좌가 되어도 수익은 증권사만 독식한다. 우리들은 간과하는 부분은 금융기관의 속내다. 어떠한 금융기관도 이타적이지 않으며 당신의 주머니가 두둑해질 시간만을 기다리고 있다.

대한민국은 재테크 공화국이다. 어떠한 수단과 원칙이 존재하든 간에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은 철저하게 서민의 주머니를 노린다. 규칙은 까다로울수록 좋고 포장은 단순할수록 유리하다. 주식, 채권, 부동산, 환거래, 보험, 은행에 대해 우리들이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금융기관들은 일반인들에게 두려움과 불안을 심어주는데 익숙하다. 그리고 가끔씩 포기하기 힘든 대박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다. 재테크 역시 금융기관의 튼튼한 보호막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사상 유례 없었던 펀드열풍이 채 가시기도 전에 랩어카운트의 열풍이 몰아닥치고 주가2000이 오르내리니 너나 할 것 없이 다시 한 번 많은 개인들이 대박의 꿈을 꾸고 있다. 불안정한 장세지만 여전히 시장은 살아있는 분위기다. 증권사는 연례적으로 실전투자대회를 개최한다. 투자자들은 한정된 금액으로 단기간에 수천%에서 수만%까지의 수익률을 올리는데 이런 투자대회를 개최하는 증권사의 속내는 절대적으로 다른데 있다. 첫 번째는 대박에 대한 환상이고 두 번째는 누구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것이다. 문제는 모의투자에 대한 조건이 실전투자하고는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는 데서부터 비롯된다. 과연 직접투자로 수천%는 아니더라도 조금이라도 이익을 맛 본 개미들은 있는 것인가? 증권사는 수수료를 챙기기 위해 어떤 방법도 개의치 않을 것이다.

이 책 ‘재테크의 거짓말’은 우리들이 알고 있는 금융기관의 내막을 낱낱이 공개한다. 워낙 높은 수익률을 조장하는 증권사는 그렇다 치더라도 매일 다니는 은행은 어떠할까? 은행은 말 그대로 서민과는 전혀 거리가 먼 여신기관이다. 그들은 예대마진을 높이기 위해 어떠한 편법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의 관심사는 오직 수수료에 대한 환상이다. 효용성이 없다는 이유로 장시간을 기다려야하는 수고는 제하더라도 정부와 한국은행에 빌붙어 오직 이익만을 추구하는 그들의 행태를 곱게 볼 이유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한국인 불만족 순위 1위를 달리는 보험사 역시 마찬가지다. 보험은 좋은 기능이 있음에도 증권화, 금융화로 어정쩡한 상태로 변질되어 버렸다. 이 역시 미래를 담보로 한 고객의 이익을 그들 배를 채우는데 사용한 까닭이다. 보험사는 고객이 맡겨놓은 돈을 직접 대출받아도 고리의 수수료를 떼어간다. 또한 무분별한 설계사들의 난립으로 실질적인 서비스를 기대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엇보다도 증권사와 마찬가지고 내막을 알기 어려운 약관이 고객의 발목을 잡는다.

현대사회 금융의 역할은 개인적인 효용성뿐만이 아니라 사회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재테크 전략은 고령화와 더불어 금융기관의 단골손님이다. 재정 관리를 본업으로 하고 있는 저자의 주장은 어떠한 것도 믿지 말라는 것이다. 재테크에 올인 할 시간에 자신에게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하란 충고를 덧붙인다. 그 역시 다양한 경험을 통해 금융기관의 허와 실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월 17만원으로 노후를 준비하고 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웃음으로만 넘기기에 너무도 가슴이 아프다. 자신의 현실을 직시해보자. 불안정한 국제정세에 우리가 기댈 곳은 정부의 사회복지밖에 없는 것인가? 이마저도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나 흔들거리는데 금융기관은 유례없는 서민 흔들기를 통해 이익만을 추구하고자 한다. ‘최고의 노후 준비는 은퇴하지 않는 것이다.’ 저자의 이 한마디는 우리의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말이다. 재테크는 환상일 뿐이다. 혹, 몇 번의 기회로 대박을 이루었다면 이젠 냉철하게 세상을 봐야한다. 그렇지도 못했다면 재테크 보다는 돈에 관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지금이 투자에 적기라는 소리에 귀를 닫고 눈앞에 펼쳐진 수익률에 시선을 멀리한다면 충분히 재테크의 거짓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금융기관에 가기 전 이 책 ‘재테크의 거짓말’ 일독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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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마침내 드러나는 위험한 진실
다니엘 돔샤이트-베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지식갤러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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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인사이드 위키리크스’ 폭로 전문 사이트의 내부를 폭로한다. 폭로에 관한한 예외조항을 인정하지 않는 위키리크스에 절체절명의 순간이 다가온 것인가? 익명을 자랑하는 위키리스크를 폭로한 사람은 다름 아닌 돔샤이트 베르크다. 그는 최근까지 줄리안 어산지와 위키리크스의 2인 체제를 운영해온 인물이다. 갑작스럽게 세상을 뒤집어 놓은 조직이라서 그런지 위키리크스를 떠났지만 돔샤이트 베르크 역시 뜨거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있다. 그는 현재 오픈리크스를 운영 중이다. 한때 젊음을 바쳐도 좋다고 생각했던 위키리크스를 떠난 그가 비슷한 사이트를 운영한다는 것이 뜻밖이다. 그는 떠나기 전 위키리크스에 대한 과도한 우려를 나타냈다. 하지만 그의 신랄한 비판과 진심어린 우려에 비해 줄리안과 위키리크스는 놀라울 정도로 세상의 주목을 받고 있다.

돔샤이트 베르크는 왜 위키리크스에 관한 글을 써야만 했을까? 읽는 내내 감출 수 없었던 불편함은 돔샤이트 역시 위키리크스의 권력일부를 차지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는 즉흥적이고 제멋대로인 줄리안에 비해 상당히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인물이었다. 돔샤이트는 노력한 대가를 원했고 위키리크스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싶었다. 힘든 일을 겪은 다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과정일 것이다. 하지만 왜 처음부터 줄리안과 정확하게 선을 긋지 않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몇 번의 폭로로 위키리크스의 인지도가 급격하게 늘어나자 돔샤이트는 머리 아프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오랫동안 간직해 온 위키리크스의 가능성에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돔샤이트와 줄리안의 관계가 급속히 나빠지게 된 시기가 이때쯤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는 그동안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줄리안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둘을 묶어 놓을만한 충분한 조건을 제시하고 있었다.

‘인사이드 위키리크스’는 줄리안과의 결별 후 돔샤이트 베르크가 자전적으로 폭로한 위키리크스의 내부문서다. 줄리안과의 처음 만남부터 위키리크스의 운영과 관련된 세부적인 사항, 무엇보다도 자료를 입수하기까지의 과정이 세세하게 드러나 있다. 그는 시종일관 위키리크스를 떠난 것을 줄리안의 탓으로 돌린다. 자신의 명백한 의도와는 달리 줄리안은 처음부터 위키리크스를 자신을 우상화시키기 위한 사이트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최근 줄리안의 행적을 보면 돔샤이트의 주장은 충분히 일리가 있는 말이다. 줄리안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위키리크스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위키리크스를 통해 변화를 꿈꾸었던 두 천재의 운명은 안타깝게도 빗나갔지만 그들은 느슨한 세상에 누구보다 강한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엄청난 위험이 수반되었음에도 위키리크스가 단기간에 그토록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에 비밀이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들은 가감 없이 증명하였다. 인간은 누구나 비밀을 간직하고 있고 폭로하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만약 충분한 익명이 보장된다면 주위는 폭로로 넘쳐날 것이다. 이에 반한 비밀을 간직하고픈 기득권자들의 욕망 또한 위키리크스에겐 충분한 먹이가 되었다. 위키리크스는 잘 꾸며진 플랫폼으로 인간의 욕망을 거래한 것이다. 줄리안은 위키리크스가 지닌 엄청난 힘을 알았다. 하지만 누구나 고민하는 미래에 대한 비전은 제시하지 않았다. 이러한 그의 선택은 내분을 일으킬 원인을 제공했으며 돔샤이트는 단번에 줄리안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돔샤이트는 위키리크스를 줄리안의 사이트가 아니라 폭로전문사이트가 되기를 원했다. 또한 줄리안의 구속이 위키리크스에 어떠한 피해를 입힐지 상당한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위키리크스 내에서의 줄리안과 돔샤이트를 원했던 것이다. 어느 해보다 추었던 겨울을 뜨겁게 달구었던 줄리안 어산지에 관한 소식이 잠시 수그러든 분위기다. 향후 비평가들이 위키리크스와 줄리안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모르겠지만 2010년, 그들은 금기의 영역을 넘어선 최초의 조직으로 기억될 것이다. 물론 세계 어느 곳에서나 스파이나 폭로자들은 존재한다. 하지만 위키리크스는 최소한 어떠한 대가없이 비밀문서 전문을 폭로한 최초의 웹사이트로 기억될 것이다. 돔샤이트는 위키리크스에 모든 것을 걸어도 좋을 만한 가능성을 보았다. 하지만 그 역시 권력의 다툼이라는 유혹을 넘어서지 못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렸을 때 세상은 놀라움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쉽게 잊혀간다. 자극은 순간적이며 모순은 지속적으로 우리를 괴롭혀 왔기 때문이다. 우리들이 위키리크스를 주목하는 이유는 정치적인 문제만은 아니다. 앎의 과정을 통한 통로의 부재가 얼마나 자신을 얼마나 왜소하게 만들고 있는지 스스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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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고 장전하고 발사하라
제프리 J. 폭스 지음, 이현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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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우고 장전하고 발사하라. 상당히 자극적인 주제다. 하지만 비즈니스 세계를 이보다 더 정확하게 표현한 문구도 없을 성 싶다.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TV 드라마 ‘욕망의 덫’은 욕망으로 가득한 기업세계를 투영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우린 이러한 드라마를 통해 시대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흔히 말하는 재벌가문과 소유주들 간의 암투, 그들은 개인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권력과 자본을 아끼지 않는다. 결과는 충분히 예측가능하지만 개인적인 비극은 사절이다. 너무 진부한 스토리로 막을 내리기에 우리들이 아는 비즈니스는 환상으로 가득하지 않는가?

엄청난 실업률에 비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문은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언젠간 사막에 숨어있는 동굴을 찾아 ‘열려라 참깨’ 를 외쳐야 할 날을 기다려야 할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누구에게 있을까? 시대적 흐름을 간파하지 못한 개인의 책임인가? 시대적 흐름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어버린 세상의 책임인가? 어떠한 상황이 우리 앞에 펼쳐져있던 우리가 해야 할 명제는 너무도 단호하다. 살아가야한다는 것이다. 그것도 아주 행복하고 만족스럽게.

경제학의 발전과정을 안 뒤로 상당한 고민을 해왔다. 자기계발이란 이론이 어떤 방식으로 우리에게 짐을 올려놓았는가에 대한 의미심장한 고민이다. 가장 흔한 주제가 ‘혼자만 잘살면 무슨 재민겨’ 라는 논리다. 경제학은 모든 가치를 효용성에 둔다. 즉, 생각도 행동도 이익에 있을 경우에만 실현가능한 주제가 되는 것이다. 우리가 안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들이 이곳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변화를 가지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문제다. 누구나 잘 날수는 없는 현실, 우리의 벅찬 현실을 누구에게 기댈 수 있을까?

‘생활의 달인’이란 프로그램이 있다. 그곳엔 대기업이나 총수들이 등장하진 않지만 누구나 닮고 싶어 하는 이웃집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이 등장한다.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건 TV에 나오고 싶은 소망이 이루어져서가 아니라 직업에 대한 자부심과 삶에 대한 자긍심이다. 아무리 쉬운 일도 10년을 하면 달인이 된다. 30년을 하면 경지에 오른다. 우리들에게 필요한 건 상대가 따라오지 못할 정도의 높은 스펙과 뛰어난 지적 능력, 그리고 무시 못 할 인맥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것들은 세상을 살아가는데 자신의 눈을 가릴 뿐이다. 가슴 벅찬 삶은 의외로 우리의 마음에 존재한다. 달인에게 물어보라. 그들은 아무리 사소한 일도 몸에 붙을 때까지 반복한 사람들이다.

자기계발서를 읽을 때마다 고민을 한다. 너무 같은 내용들이 반복되어 과연 저자는 어떻게 이런 많은 경험들을 이루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곁엔 항상 같은 주제, 내용들이 가득한 자기계발서가 놓여있다. ‘채우고 장전하고 발사하라.’ 이 책 역시 마찬가지다. 단편적인 주제와 거침없는 표현,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최소한 이대로만 한다면 변화는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수십 권의 책을 읽은 주식투자자가 원하는 이익을 얻었다는 증거를 본적이 없다. 한 가지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것, 자기계발서가 주는 최고의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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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
윌리엄 A. 서든 지음, 최은정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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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파괴하려는 외부적인 행동은 항상 불안과 두려움을 심어놓는다. 생존의 갈림길에서 인류조상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정착을 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 인류는 미래를 예측하기 시작했다. 비를 몰고온다는 기우제가 최근에서야 사라진 것을 보면 인류는 상당기간동안 미래의 불확실성에 가슴을 졸였을 것이다. 하지만 예측기술의 발전을 통해 어떻게 인류가 지구를 정복했는지 충분한 설명이 가능하다. 인류는 여전히 미래가 불투명하다. 오히려 뛰어난 과학발전이 가끔씩은 불안을 더욱 부추기고 있는 것 같다. 이 틈을 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전 방위적으로 지구에 문제가 있음을 알리고 불안감을 심어준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주장하는 예측들이 사실일까? 진위여부를 떠나 미래를 알고 싶은 사업은 세계에서 가장 큰 사업들 중의 하나로 초고속 성장을 하고 있다.

한때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신의 영역이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 즐비한 21세기 예측은 더 이상 신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예측분야도 광범위하게 넓어져 대다수의 국가와 기관에선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예측기법을 사용한다. 헌데 이러한 예측이 믿을 만 한 것인가? 라는 질문엔 어느 누구도 속 시원한 대답을 하지 못한다. ‘The Fortune Seller'는 미래를 담보로 욕망을 파는 사람과 단체를 소개(?)한다.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정치가들이고 경제학자들이다. 내막을 알지 못하는 우리들로서는 현상에 충실할 뿐이다. 헌데 그들의 예측이 자주 그리고 상당한 오차로 빗나간다면 분명 문제가 있다.

가장 최근에 빗나간 예측이 미국의 대혼란일 것이다. 누구도 예측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말하는 탐욕이 얼마나 눈과 귀를 가리는지를 증명해줄 뿐이다. 사회과학으로 시작한 경제학이 세상을 지배하기까지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현대 경제학자들은 거의 미래를 예측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인간 사이에 이루어지는 효용성이나 가치기준을 판단하는 것을 넘어 마치 금융의 연금술사처럼 행동한다. 문제는 그들이 주장하는 경제학이 풍파를 일으킬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책임은 전혀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경제학자들은 복잡한 수학공식을 사용하여 시뮬레이션을 만든다. 그리고 과거의 데이터를 투입하며 현재가치에 가장 근사한 가격이 나오면 새로운 이론을 정립시킨다. 헌데 놀랍게도 그들의 예측능력은 단순한 추측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간이 멀어지면 예측력은 더욱 떨어지고 심지어는 반대로 예측하기도 한다. 신빙성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이 이토록 예측에 집착하는 이유는 경제가 ‘복잡계’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계의 움직임이 비선형법칙에 의해 결정될 때 초기조건의 조그만 오차라도 영향력이 증폭되어 수초만 지나도 예측이 불가능한 카오스이론에 비해 복잡계는 하나의 기준원리에 영향을 받아 구성요소간에 질서가 형성되는 것을 말한다. 즉 복잡계는 어떠한 내부통제가 없이도 스스로 조직해간다는 이론이다.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이 대표적인 복잡계의 이론이다. 하지만 경제는 복잡계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는다. 경제학자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인간은 산업혁명시절과 같은 패턴대로 움직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인간이란 경제적 존재가 아닌 심리적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이라는 로버트 하일브로너의 말은 경제학자들이 깊이 새겨들어야할 문구다.

경제예측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는 곳이 증권시장이다. 경제학에 관한 미래예측들이 고스란히 정부와 재계에 투입된다면 자본주의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증권시장은 더욱 미래예측이 활성화 되고 있는 곳이다. 혹 최고학부를 자랑하는 월가의 CEO들이나 투자회사들이 별자리에 의존해 투자를 한다면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 놀랍게도 증권시장은 점쟁이들로 가득차 있다. 동전던지기와 제비뽑기가 뛰어난 실력을 갖춘 애널리스트의 실적과 비등한 수익률을 내는 것을 보면 증권에서 예측은 아무런 쓸모가 없음이 판명되었다.

욕망은 분명 많은 사람들에게 소비를 부추긴다. 특히 이러한 욕망을 부추기는데 미래의 불안과 불확실성만한 상품도 없다. 그들, 경제학자, 증권관계자, 기술자, 통계학자들은 본연의 임무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미래예측학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정말 그들이 원하는 대로 미래가 진행된다면 지구는 준비할 것이 너무도 많다. 하지만 어떠한 정치적 이해관계도 실마리를 쉽게 풀어놓지 못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과연 인류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인구에 대한 우울한 예측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혹독한 기근과 질병이 유럽의 패국을 막았듯이 인류의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은 단순한 바람일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에 뭔가를 걸고 싶은 사람의 마음은 항상 예측가를 필요로 하고 있다. ‘우리들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싸워야 한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는 때’ 가 아니라 우리가 ‘가야할 때’ 이기 때문이다.‘ - 마티아스 호르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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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번영, 미래를 알고 싶은 욕망을 파는 사람들>을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악의 번영 - 비판적 경제 입문서
다니엘 코엔 지음, 이성재.정세은 옮김 / 글항아리 / 201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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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경제학은 ‘악의 근원지’ 일까? 과연 자본주의는 더 이상의 효용성을 증명할 수 없는 것일까? 코엔 교수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악은 이미 번영일로의 길에 들어섰다. 아니 너무 번창해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을 자주 연출하고 있다. 사회과학의 일부로 시작한 경제학이 어떻게 세상을 지배하게 되었을까? 우린 왜 경제학의 이면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일까? 경제학은 인문학을 넘어 종교적 현상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뛰어난 철학가들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지속가능한 사회를 유지하기위해선 지금의 경제학만으론 분명한 한계가 보인다. 맹목적인 믿음 뒤에 따르는 고통은 충분히 예측이 가능한 변수다. 경제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서양화란 세계화를 의미하는 것인가? 놀랍게도 찬란한 문명들이 서양화란 그늘에 가려 무수한 짓밟힘을 당했다. 중국이 그랬고 인도가 그랬다. 하지만 21세기 세상의 쏠림은 아시아로 향하고 있다. 중국과 인도의 성장, 그리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비상은 분명 과거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하지만 우린 그들의 성장 뒤에 숨겨있는 어두운 이면을 보지 못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자전거 한 대씩을 사는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자동차 한 대씩을 보유하게 된다면 지구는 생존의 위기에 직면할 것이다. 많은 경제학자들이 우려하는 바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성장을 멈추게 할 어떠한 명분도 찾지 못하고 있다. 코엔은 사이버시대의 도래와 더불어 신흥강대국에서 뿜어대는 열기로 인해 노후된 서양화의 폐해가 우리를 뒤덮을 것이라 경고한다.

로마의 몰락과 함께 중세 암흑기가 도래한다. 당시의 유럽은 전쟁과 기근 그리고 질병이 세상을 초토화시킨 시절이었다. 부족한 식량과 인구문제는 항상 유럽인들이 해결해야할 생존의 조건이었다. 그들이 외부로 눈을 돌린 것은 어쩌면 필연적인 선택이었을 것이다. 당시 중국은 아프리카까지 항해를 할 정도로 뛰어난 과학문명을 이루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화약을 만들었지만 폭탄을 제조할 줄 몰랐고 나침반을 만들었지만 항해엔 관심이 없었다. 몽고의 침략에 고민하던 황제의 결정은 결국 서양화를 부추긴 꼴이 되고 말았다. 이에 반해 12세기와 18세기 사이 어느 시점에 유럽에선 부가 부를 낳은 자기촉매과정이 탄생하게 된다. 흔히 말하는 계몽주의와 르네상스 그리고 산업혁명의 부흥이다.

코엔은 현대 경제학이 차지하는 비중을 세계사적 관점에서 추적한다. 특히 갈수록 첨예해지는 도덕적 논란과 근거가 없는 금융상품의 폐해를 예로 들며 앞으로 인류의 집단적인 자기파멸을 경고한다. 그 중심에 생태계의 파괴가 있다. 생태계는 그동안 인류를 괴롭혀온 문제와는 관점이 다른 문제다. 어떻게 되었든 모든 것은 지상이나 지하로 사라졌지만 근원적인 자원은 고찰의 대상이 아니다. 문제는 누구도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했지 전 인류적인 호소에 귀를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강대국일수록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그는 생산성 상승으로 가격이 낮아지는 만큼 ‘쉽게 쓰고 버리는 경제’가 세상을 휩쓸고 있다고 말한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의 오래된 논리가 지구를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류의 관심은 거의 없다해도 무방할 것이다.

‘악의 번영’은 상당히 많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무려 12장에 달하는 코엔의 해박한 지식은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충분히 담고 있으나 너무 많은 것을 한곳에 보여주려한다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의 총명함은 우리들이 알지 못했던 경제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꾸어 준다. 피하지 못할 두 가지의 종속변수가 항상 우리를 괴롭혀 왔다. 바로 인구와 토지문제다. 맬서스의 법칙이 더 이상 효용가치를 잃어버렸을 때 우린 새로운 세계에 대한 충분한 고찰을 가져야만 했다. 하지만 파티를 깰 어떠한 명분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위기는 항상 풍요 속에서 탄생한다. 세계사를 전환시킨 대부분의 전쟁은 번영과 평화 속에서 발생했다.

과연 전 지구적 커뮤니케이션은 존재하는가? 애덤스미스의 이론은 여전히 막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문제가 발생하면 역사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새로운 현상을 태동시킨다. 제3세계, 사이버세계는 인류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인가? 공존과 번영의 길목에서 과연 지구인들은 진정한 평화를 이룰 수 있을 것인가? 코엔교수의 뛰어난 경제학적 고찰과 서양화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고려해볼 시간이다. 패러다임은 자신이 보고 싶은 세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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