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로피 2.0 - 이성의 칼 끝으로 최고의 나를 창조하라
한지훈 지음 / 행복에너지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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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상의 모든 물질엔 열이 있다. 열이 에너지의 한 형태라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에너지는 두 가지의 물리적 법칙이 적용되는데 에너지 총량은 보존된다는 열역학 제1법칙과 열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른다는 열역학 제2의 법칙이다. 이는 물리학을 배웠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물리적 법칙으로 에너지의 변화 방향 즉, 엔트로피를 설명하는데 필수적인 조건이다. 그런데 왜 갑자기 어려운 물리학적인 용어인 엔트로피가 튀어나왔을까?

 

엔트로피는 인간 역시 자연의 한 부분이라는 것을 증명한다. 엔트로피는 마치 케오스를 연상시킨다. 규칙보다는 불규칙적이고 통합보다는 분리, 가늠하기 어려운 분자의 이동은 인간의 무질서한 본능을 너무도 닮았다. 우린 스스로를 이성적이라 생각하지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은 쉽게 본능적이 된다. 엔트로피는 무질서다. 방향을 종잡을 수 없고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우린 엔트로피를 자각하지 못한다. 자신이 한 행동을 곧잘 후회하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엔트로피에 사로잡힌다. 그런데 우리가 행동을 변화시키는 엔트로피의 존재를 알게 된다면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지 않을까?

 

열심히 일하지만 변한 것이 없다. 자신은 최선을 다하지만 상대는 알아주지 않는다. 문득 너무도 당연시 되었던 환경들이 자신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우린 서로간의 무관심 속에서 상대의 허상만을 바라보며 스스로에 자위를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음은 항상 공허하고 허무하다. 도대체 자신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조차 헷갈릴 때가 많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생각은 꼬리를 물고 더욱 자극적이고 탐미적인 엔트로피적 요소를 찾아 헤맨다. 엔트로피는 스스로를 침몰시킨다. 자극은 더욱 강한 자극을 원하고 허무는 더욱 집요한 허무를 의지한다.

 

소탐대실이라는 말이 있다. 정작 중요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조그만 이익에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소탐대실은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고의 전환을 예리하게 짚어낸다. 목적이 불분명할수록 누구나 눈앞의 이익에 집착한다. 조그만 이익일지라도 그것이 자신을 이롭게 한다면 애당초 품었던 목적은 관심에서 멀어진다. 문제는 조그만 이익에 집착하다보면 작은 일에 쉽게 감정이입 되어 실패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이다. 자자는 이를 바이러스처럼 다가오는 사소한 고민이라 부르며 현실의 부정적이고 불편한 사실을 멀리할 것을 강조한다.

 

온갖 부정적 감정, 불편함, 심심함, 공허함, 불안과 긴장, 좌절, 열등감, 그리고 우릴 괴롭히는 수많은 고통들이 엔트로피적 상황이다. 엔트로피는 거부하기 어려운 자연적인 변화이므로 스스로의 인식 없이는 극복하기 어렵다. 저자는 이를 네거티브 엔트로피, 즉 네트로피라 정하고 무질서한 엔트로피적 환경에 질서를 부여한다. 네트로피는 마음의 질서다. 네트로피로 전환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자신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파악해야한다. 무엇 때문에 일을 하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인식해야한다.

 

놀아라자신의 돈을 쓰고 시간을 낭비하면서까지 놀이에 집중해서 즐거움을 찾아라. 놀이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휴식의 일부분일 뿐이다. 하지만 놀이의 진정한 목적이 자아 발견이라는 것을 깨닫는 다면 저자의 말대로 노는 사람은 대단한 인재가 될 가능성이 많다. 이를 위해 저자는 두 가지의 인생 업그레이드 계획을 추천하는데 하루30분 걷기와 지금껏 자신이 일해 왔던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강의를 하루 30분씩 듣기를 추천한다. 걷다보면 스스로에 질문을 하게 되고 삶의 방향에 대한 진지한 의문의 시간을 가지게 될 것이다. 열심히 일하고 있지만 바뀌는 것이 없다면,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지배하는 엔트로피와의 싸움에서 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를 해결할 네트로피 2.0 단단한 뇌에 태클을 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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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의 거짓말
이유리.임승수 지음 / 레드박스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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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나치 선전당원 괴벨스는 거짓말에 대한 유명한 격언을 남겼다. ‘대중은 거짓말을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괴벨스의 선전 문구는 가혹한 유럽의 처사에 불만을 품은 독일 국민들을 완벽하게 장악하는데 성공한다. 당시 유대인 학살을 주도했던 수많은 독일인들이 자신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어떠한 가책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던 이유도 괴벨스를 비롯한 나치당의 지속적인 거짓말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괴벨스는 누구보다 언론의 효용성을 알고 있었다. 독일을 통제한 나치가 언론을 사유화한 것도 당연한 귀결이었다. 전쟁과 관련된 모든 소식은 사전검열을 받아야했고 나치의 입맛에 맞게 조작되었다. 결국 독일국민들은 거짓말로 포장된 방송을 통해 자신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유대인들은 공공의 적이자 사라져야할 악이었다. 괴벨스는 그의 예언을 성실히 수행했다. 전쟁이 끝난 후 서방국가들은 독일의 잔인함에 놀랐고 소수의 광기가 어떻게 대중을 다루는지에 대해 두 번 놀랐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국가를 사칭한 권력가들의 거짓말이 비단 유럽을 초토화시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당만의 전유물이었을까?

 

인간은 누구나 거짓말을 한다. 상대를 위한답시고 하는 선의의 거짓말도 결국은 자기변명에 불과한 경우가 많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건 개인이 행하는 거짓말이 국가의 거짓말보다는 훨씬 피해규모가 작다는 것이다. 거짓말에 익숙한 개인은 사회적 비난과 고통을 감수해야한다. 하지만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국가는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국가를 비난하는 것은 곧 자신을 부인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가에 대한 믿음은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다. 괴벨스의 대중선전학도 이러한 대중의 믿음을 기초로 한 것에 가깝다. 비록 그것이 거짓말일지라도 지속적이고 반복적이면 누구든 믿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국가의 횡포와 같지만 거대조직을 상대로 개인이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다. 하지만 국가는 자신의 거짓말이 상대에게 어떤 공포를 만들어내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또한 그들의 거짓말로 피폐된 삶의 일부를 보상받기위한 처절한 몸부림조차 쉽게 외면한다.

 

북한에 대한 생각은 개인마다 너무 뚜렷하고 선이 분명해 쉽게 다가서기 어렵다. 분단 이후세대가 전쟁의 참상을 알 리 없으며 전쟁이 남긴 상처를 이해할 수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러한 배경이 50년이 훌쩍 지난 현재에도 결코 변하지 않고 있다면 우린 사상이나 이념에 대해 지독한 세뇌를 당하고 있지는 않았던 것인지 의문을 해봐야한다. 그러한 의문들 중의 하나가 북파간첩에 대한 사실이다. 북파간첩이 공론화 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이다. 전란 후 50년간 남북은 끊임없이 간첩을 보냈지만 남측은 북파간첩의 존재를 항상 부정해 왔었다. 그런데 문제는 정부가 사후관리를 잘 못한 탓인지 특수임무 수행자들이 보상을 요구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피킷을 들고 데모하는 그들의 모습이 카메라에 잡혔고 언론에 부각되었다. 결국 정부는 수십 년간 베일에 싸였던 북파간첩의 사실을 인정하게 되었다. 특수임무수행자들은 목숨을 바쳤지만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들의 조국에 배신을 당한 것이다. 국가는 필요에 의해서만 국민을 이용하고 국가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삶마저 버릴 수 있는 것인가? 온갖 감언이설로 떠들어대는 그들의 애국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국가의 거짓말은 소수 조직원의 가슴에 피멍을 만들고 대중을 호도한다. 과거 군사독재정권 시절, 여론을 타파하기위한 수지김 간첩사건은 국가가 어떻게 한 개인의 죽음마저 철저하게 유린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기억된다. 사건은 오랜 기간 미궁에 묻혔고 살인자는 내로라하는 사업가로 변신했지만 국가의 거짓말은 상당기간 지속되었다. 본 책 ‘국가의 거짓말’은 근현대사를 통틀어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믿기 힘든 국가의 거짓말을 다루고 있다. 특히 최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대학등록금과 4대강, 그리고 부자 감세및 부동산 문제등 현 정권이 추진하는 정책을 거짓말로 규정하고 전면적으로 비판한다. 가장 눈에 띄는 주제가 ‘전쟁으로 돈을 버는 사람들’이다. 미개한 원주민을 교육시킨다는 미명아래 혼혈 아이들을 강탈해 노예로 부린 호주 백인들, 무려 40년 동안 매독생체 실험의 대상이 되었던 미국 흑인들, 명분 없는 이라크전쟁을 일으킨 미국 정부 등 전쟁은 패권국과 열강들을 위한 최고의 선물이었다.

 

언론의 공정성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지만 언론이 공정하다고 생각하는 이는 드물다. 그들 역시 권력과 다름없는 생존에 대한 애착이 가장 강한 집단들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러한 언론에 노출된 정보들에 대한 신빙성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어른들의 말씀은 강자의 틈에서 살아남기 위한 약자의 논리일 뿐이다. 괴벨스의 논리대로 우린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언론의 거짓말을 진실이라 믿어왔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는 자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최고 권력기관인 국가가 이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국가의 거짓말은 너무도 당당하고 치밀해서 여간해선 거짓말이라 생각하기조차 쉽지 않다. 더욱 문제는 국가의 거짓말에 침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결국 그들 역시 거짓된 세상에 살기는 원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그들의 자식들에게 거짓된 세상을 물려주기도 바라지 않을 것이다. 두 저자가 펼쳐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 그 진실한 내막을 파헤쳐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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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치 Niche - 왜 사람들은 더 이상 주류를 좋아하지 않는가
제임스 하킨 지음, 고동홍 옮김 / 더숲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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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DP를 비롯한 모든 수치가 양호하다지만 실물경기는 여전히 바닥이다. 특히 국민들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사상최저를 기록하고 있다. 가파른 물가상승, 저임금구조의 사회구조, 엄청난 자영업자의 양산등 정부의 발표와는 달리 국민이 느끼는 체감경기는 그야말로 가파르게 떨어지고 있다. 아무리 시장자유주의 경제라고해도 국민경제의 책임은 정책을 담당하는 정부에 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년간 우후죽순처럼 펼쳐진 대형마트의 동네상권입점은 정부의 역할에 대해 심각한 고민을 하게 만든다.

 

정치권에서 가장 흔하게 하는 말이 ‘서민경제’다. 무엇이 서민경제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지만 현 정권에서 내세웠던 기업프렌들리는 확실히 한국 중산층을 무너뜨렸다. 부의 쏠림에 대한 서민들의 자괴감과 박탈감은 미래에 대한 희망마저 잃게 만든다. 중산층의 두께에 따라 내수가 살아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된다는 것은 이미 입증된 경제정책이다. 독재정권시절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모 인사가 그래도 당시엔 중산층이 늘어났다고 자화자찬하는 것을 들어보라. 참으로 어이가 없는 현실이다.

 

중산층의 몰락은 비단 사회구조뿐만이 아니라 경제정책에서도 수많은 문제점을 노출시키고 있다. 혹 준비를 하지 않아서 피해를 보는 것일까? 과거 자영업자들은 프랜차이즈 중간관리자로 바뀌었다. 자신의 역량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를 시도할 수 있었으나 이젠 모든 상황이 감시를 받고 시스템에 통제된다. 동네상권의 몰락은 가속화 될 것이다. 더불어 우리가 차지했던 가치 또한 우리의 선택이 아닌 타인의 선택에 의해 강요당할 것이다.

 

기업들은 과거 어느 시절보다 화려한 시기를 보내고 있다. 무한경쟁체제에 놓인 그들의 입장을 국가적 차원에서 철저히 보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니치’를 이러한 환경에 대한 마이너의 반란이라 생각하면 어떨까? 한때 세계 최고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녔던 거대기업들의 몰락은 그들이 선택했던 문어발식 확장에 종지부를 찍는 희대의 사건이었다. 누구도 갭의 몰락을 예측하지 않았고 울워스의 파산을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들은 모든 것을 가지려다 결국 자신이 설 땅마저 잃어버렸다. 저자는 이를 ‘틈새의 진화’라고 명명한다. 이젠 소수의 선택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니치는 틈새를 의미한다. 대중화를 추구하던 중산층의 몰락이 현실화 된 시점에서 소비자의 변화가 빠르게 자신들만의 세계로 이동하였다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변화는 거대기업이 추구해오던 치밀한 마케팅이 더 이상 효용성이 없음을 입증한다. 모두에게 행복을 주는 기업보다는 소수의 선택을 받는 것이 훨씬 효용성이 좋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스러운 것은 저자의 시대구분이 너무 뒤처진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최근 기업의 문어발식 확장구도는 과거 어느 때보다 활발하고 이들은 이미 틈새시장까지 장악할 정도로 세력을 뻗치고 있음을 간과하는 까닭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실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이버 공간을 주목한다. 사이버 공간은 알라딘의 마술사 지니의 요술램프 같은 곳이다. 그들은 다양하고 다변화된 상품으로 가장 쉽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하지만 최근엔 이마저도 빠르게 대기업에 잠식당하는 분위기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엔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의 출연이 뜸하다. 영화제작자들은 과연 그들에게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적인지에 대한 의문을 품기 시작한 것이다. 실례로 저예산 영화들의 성공은 영화인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그들이 이를 니치 버스터라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하지만 틈새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마법은 아닐 것이다. 가장 경계해야할 부분이 닭장에 갇힌 신세가 되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특이하고 진기한 것을 충족시키라 강조한다. 분명 과거 자영업 시대와는 구분되는 문구다. 니치는 ‘차별화’를 떠올린다. 결국 무한경쟁시대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차별화만이 특별한 전략이다. 니치는 이를 세분화하고 특화시킨 또 다른 전략의 일부분이다. 보편적이고 대중적인 마케팅을 헤지하기 위한 니치전략, 새롭게 떠오르는 경제, 문화의 아이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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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버드 정치경제학 - 하버드 케네디스쿨 및 경제학과 수업 지상중계
천진 지음, 이재훈 옮김 / 에쎄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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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경제학을 알지 못하면 자신의 재산도 지키기 어려운 시대가 올 것인가? 상당기간 지속되는 저금리덕분에 기업들은 하루가 다르게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하지만 개인들은 그야말로 침울한 시절을 맛보고 있다. 자본주의시대에 누구를 탓할 것인가? 처음부터 공정한 게임은 시작되지도 않았다. 이미 이러한 게임이 시작되었을 때 우린 현재와 같은 결과를 예견하고 있지 않았을까? 단지 자신의 경제적 성장이 이토록 쉽게 무너진다는 가정만 제외한다면 말이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상당기간 지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분배에 대한 기업들의 논지는 얼음처럼 차갑다. 그런데 우린 불편해져가는 시대적 상황에 태클을 걸 누군가를 필요로 한다. 그동안 학문적인 업적만으로 존경과 존엄을 인정받았던 경제학자들이다.

 

미국위기와 함께 경제학자들의 위상은 땅에 꺼질 만큼 초라해졌다. 하지만 그들은 곧바로 뛰어난 정치적 입지와 인맥을 동원해 과거에 비해 월등해진 그들만의 성을 구축하는데 성공했다. 위기는 그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선물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영특함 못지않게 개인들의 사고 또한 유연해졌다. 이미 경제학은 수많은 논란의 중심에 있다. 수량화, 계측화, 인간의 의심 많고 불특정한 삶을 통계적으로 산출한다는 것이 애초부터 잘못되지는 않았을까? 그럼에도 경제학은 스스로 진화하는 것을 거부했다. 대중이 경제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무엇일까?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수식들이 인류의 삶에 어떤 발전을 가져다 줄 수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린 왜 경제학을 선취해야하는 것일까?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하버드 경제학을 통해 하버드 경제학 교수들의 강의와 그들이 추구하는 경제학적 이론을 디테일하게 서술한 천진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 연구원의 두 번째 저서다. 그가 전편을 통해 하버드 경제학 교수들의 원칙과 모델을 다루었다면 이번엔 외부적인 변수를 통해 본 하버드를 발견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특히 최근 급격하게 변화하는 유럽위기의 대응책으로 개방경제학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또한 외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미국의 불편한 의료체계와 정치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경제학에 대한 이해를 높인다. 이미 한국에서도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회 자본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며 문화경제학이란 새로운 학문의 시작과 함께 경제학이 나아가야할 방향이 바뀌고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사회 자본에 대한 하버드 교수들의 원칙론적인 강의는 경제학이 현재 어떤 모습을 띄고 있는 가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저자의 하버드 정치경제학은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가 하버드 내부에서 바라본 외부적인 상황과 이를 해결해나가는 하버드 교수들의 해법을 이해하는 것은 실질적인 경제학의 해법을 풀어나간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는 자신의 논지를 대중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이미 우린 언론을 통해 경제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를 목도하고 있지 않는가? 저자는 특별히 사회적 이슈에 대한 자신만의 의견을 제시한다. 그린스펀은 금융위기를 어떻게 반성하고 있을까? 기울어져가는 미국의 꿈을 재 실현시킬 획기적인 방법은 무엇일까? 그리고 과거와는 다른 가치관의 형성이 새롭게 변화하는 사회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 그는 데릭 복 전 하버드 총장의 행복론을 마지막으로 하버드에 대한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놓는다. 경제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무엇일까? 완벽한 삶이 존재하지 않듯이 완벽한 경제학은 있을 수 없다. 경제학이 인간의 행복추구권을 최고의 가치로 선택한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무섭도록 저돌적인 금융 위기 속에서 경제학 또한 새로운 산고를 겪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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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0일의 스캔들 - 창조적인 서비스를 만드는 0.1% 변화 전략
민병국 지음 / 황금부엉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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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적대는 병원, 아픈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데 놀라고 마치 관공서 같은 딱딱함에 두 번째 놀란다. 그나마 아이들을 상대하는 소아과는 덜하지만 조금만 이름 있는 병원들은 하나같이 위엄과 권위를 병원 문 앞에 세워놓은 것 같다. 좋은 인테리어와 훌륭한 시설들은 나무랄 데가 없지만 관념적이고 보수적인 분위기는 어쩔 수가 없나보다. 태어나서 병원에 가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가 아는 어느 가게보다 친숙해야할 병원이 이토록 멀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때문일까?

 

병원 역시 영리사업이다. 엄청난 투자와 지적자본이 투여되는 사업이다 보니 그에 대한 보상심리 또한 강할 것이다. 하지만 병원은 사업이기 전에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한다. 그 무엇보다 생명의 기본권이 우선시되는 분야인 것이다. 때론 소수의 권익을 위해 지나친 무게감을 얹기도 하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자신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병원을 찾는다. 병원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의 생각과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일까?

 

누구나 번듯한 사람에게 신임이 가듯이 환자 역시 번듯한 건물을 선호한다. 아무리 뛰어난 의료진이 있더라도 낙후된 건물에 들어가기란 여간 껄끄러운 일이 아니다. 곧 흡수될 병원이라면 이러한 상황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중앙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로 재임하던 민병국 교수는 2005년 중앙대학교 용산병원장에 취임한다. 주위의 만류를 뿌리치고 선뜻 병원장을 수락한 민교수의 배짱은 누가 보더라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민교수는 자신의 일을 좋아했지만 새로운 일을 도전해 보고 싶었다. 비록 사라질 위기에 처했지만 최소한 있는 동안만큼은 기억에 남는 병원을 만들고 말겠다는 각오를 새롭게 한다.

 

첫 출근, 모든 상황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완강했고 보수적이었다. 그는 무엇보다 직원들의 굳어진 마음을 푸는 것이 우선순위라 여기고 병원의 개보수에 적극적으로 동참할 것을 권유했다. 하지만 과거에 얽매여 있는 직원들의 마음은 민교수의 의견을 사사건건 물고 늘어졌다. 결국 민교수의 선택은 자신이 직접 행동을 보여주는 방법밖에 없었다. 그는 병원 담장을 허물고 경비실을 없애는 것을 시작으로 병원과 관련된 모든 일에 간섭을 하기 시작했다. 일견에선 저러다 말겠지 라는 생각에 젖어 여전히 비호의적이었지만 그의 신념은 ‘나로부터 변화’ 였기에 주어진 일보다 찾아가는 길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었다.

 

나로부터의 변화는 빠르게 직원들의 마음을 파고 들어갔다. 병원은 예전과 같이 활기가 넘쳤고 방문하는 환자들 역시 달라진 분위기에 놀라는 눈치다. 하지만 민교수의 고민은 활력이 넘치는 병원을 넘어 환자들과 함께 가는 병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의 노력은 병원의 잡다한 업무를 없애고 모은 상황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만들었다. 병원의 문턱이 놓은 이유는 권위적인 의사의 말투와 이해하지 못하는 필기가 한몫을 차지한다. 물리적인 치료를 위해 찾아왔지만 정신적인 치료가 환자의 안정을 찾는데 훨씬 효과적이라는 뜻이다. 그는 병원의 모든 이정표를 단순하고 알기 쉽게 만들고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시도한다.

 

용산병원을 주도한 민교수의 변화들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환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다. 어느 병원인들 그렇게 말하지 않을까마는 정작 병원에 가면 환자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환자에 불과할 뿐이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그리운 이들인데 대부분의 의사나 간호사들은 너무 바쁜 나머지 환자들과의 대화조차 이루어지지 않는다. 비단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만 병원에 가는 것은 아니다. 민교수는 모든 것을 환자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고민했다. 결국 용산병원이 잘되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1500일의 스캔들’ 민교수가 용산병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겪었던 변화를 기록한 책이다. 그는 자신의 선택을 믿었기에 지금껏 시도하지 않은 변화의 가운데 뛰어들었다. 그의 변화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경험을 안겨주었다. 우린 인생이 확정적이라고 믿곤 한다. 자신의 경험이 우선적이라 여기고 변화를 싫어하는 이유도 불확실한 인생의 미래를 믿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서지고 파편만 남은 결과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변화는 누구에게나 두려움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를 선택하는 방법은 우리의 인생을 결정짓기도 한다. 큰 도움도 좋지만 사소한 배려와 조그만 공감이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수 있는지, 민교수의 0.1% 변화전략을 통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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