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너머의 세계 - 의식은 어디에서 생기고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에릭 호엘 지음, 윤혜영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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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은 어디에서 생기고 우리는 어떻게 자유로워지는가? 의식에 대한 연구는 인간의 문명, 혹은 문화와 결을 같이해 왔다. 고대문헌이 존재하기 전 인간의 의식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을까? 하지만 수렵 채집인들의 생활이 결코 무의식에만 의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신에 대한 외적인 경외심은 내적 감정을 유발하였으며 이는 절대적 존재를 통한 자아를 발견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부족 간의 갈등, 생존에 대한 본능적 욕구, 그리고 권력에 대한 본능등 인간을 존재케 하는 모든 조건들은 자신과 타자에 의한 의식의 이해와 통찰을 통해 문명을 형성해 왔을 것이다.

 

의식을 의식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징표다. 자아에 대한 인지는 경험을 숙성시키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생성한다. 정체성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은 세상의 한 부분으로 살아감을 뜻한다. 이는 타인에 대한 의식, 즉 상호연결성으로 발전하여 사회적 조건을 충족시키는 문화의 일부분이 된다. 언어는 이를 발현하는 대표적인 수단으로 발전하며 내재적 관점의 인간을 외재적 관점으로의 변환을 서둘러 가속화 시켰다. 현대 문명은 문화를 중심으로 내 외재적 관점을 통합적으로 운용한다. 하지만 외재적 관점에 비해 내재적 관점은 그리 큰 성장과 변화를 이끌지 못하고 있다.

 

이에 신경과학이 등장한다. 뉴런의 이해와 수상, 축색돌기, 미엘린의 화학 작용은 여전히 인간의 신비를 보장하는 특별한 메커니즘이다. 유전자 염기서열이 인간의 비밀을 송두리째 벗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궁금증과 모호한 과학적 가설만 난무한다. 하지만 수많은 가설들이 우리의 궁금증을 조금씩 해결하고 있다. 개인 간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뇌 자극 프로그램은 인공 지능 못지않게 인간 행동학의 결과를 어렵지 않게 예측한다. 하지만 오류 역시 만만치 않다. 그런데 신경과학의 최종적인 목표는 무엇일까? 인간 뇌의 완전한 해독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우린 의식에 관한 내재적 관점을 염기서열처럼 분석하기를 원하는 것일까? 뇌의 기능을 통해 의식에 도전하는 저자의 관점이 무척 인상적이다.

 

저자는 무엇을 생각하며 세계너머의 세계를 의식하게 되었을까? 현실적인 고민은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한다. 또한 현상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중세 암흑기는 의식의 뚜렷한 변화를 가져왔다. 당시를 지배했던 문화와 예술은 마치 숨겨있던 인간의 내적 갈등을 폭발적으로 승화시킨 외적결과물들이다. 결국 의식의 생존전략은 외재적 관점을 생성하고 인류의 문명을 창조해 왔다. 이는 현대사회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과학적 불안정성은 의식을 더욱 강화시키는 결과를 만들기도 한다. 또한 의식의 쇠퇴는 물질문명의 이기를 팽창시키기도 한다.

 

의식, 깨어있음, 인지과정, 무언가를 알아차림, 스스로에 대한 자각, 주관적인 관점, 경험의 세계, 특별하게 변하지 않는 편견이나 취향, 타인의 의식, 자아에 대한 성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에 답하는 과정, 의식에 대한 통찰은 수세기를 거치며 문학, 예술, 음악가와 구루들의 창조를 발현시켰다. 외재적 관점은 내재적 관점으로부터 시작된다. 수많은 가설과 탐험 그리고 연구가 바꾸어 놓은 물리적 과정은 보편적이 아니다. 내재적 과정 또한 일관적 일리 없다. 수렵채집인의 도구 사용은 외재적관점일까 내재적 관점일까? 내재적 관점이 존재하지 않으면 외재적 관점 역시 창조할 수 없다. 상호연결을 통한 도구의 사용이 생존에 대한 갈증을 해소한 것이다. 결국 의식은 살아가는 현상이다.

 

세상은 이야기로 구성된다. 언어를 통해 창조된 이야기는 역사를 구성하고 세상을 이해하는 밑거름이 된다. 이는 개인의 뇌 의식구조를 형성한다. 생각으로 이루어진 세상, 세상 속에 묻힌 인간의 생각과 미래의 연결, 의식의 발현은 자각과 형이상학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탐험이자 과학이 추구하는 현주소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기원전 1세기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통해 루크레티우스가 말한 모든 자연은 자립적이며 그들이 위치한 곳에서, 그들이 이동한 곳에서 두 가지 사물, 신체와 공간으로 구성된다.’ 저자가 표현하고자하는 내 외재적 관점의 시작이다. 뇌 신경과학을 통한 내재적 접근법에 대한 이해는 인과적 창발성을 확장시키고 의식세계의 독특함을 발현시킨다. 뇌 신경과학을 통한 의식의 진화과정과 이를 통한 외재적 상호작용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뚜렷한 족적을 남기는 또 다른 문화를 창조할 것이다.

 

-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리뷰를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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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 - 이 죽일 놈의 피로와 결별하는 법
에이미 샤 지음, 김잔디 옮김 / 북플레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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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곤하다. 돌이켜보면 같은 일상인데 왜 오늘은 이토록 피곤한 것일까? 찌는 듯한 더위도 피로에 일조한 것 같다. 우린 스스로가 원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일까? 주위를 둘러싼 물질문명의 풍요가 마음의 평안과 행복 그리고 위로를 견지해 주고 있는가? 어쩌면 인간은 스스로가 만든 거대한 울타리 안을 벗어나지 못한 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르다. 세상의 모든 것이 가속도가 붙은 것 같다. 덩달아 우리의 마음도 방향을 잃은 채 바쁘기만 하다. 오래 살게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건강을 걱정하게 되었고 잘 살게 되었다고 자랑하지만 마음의 풍요는 예전만 못하다. 그저 그런 삶이 지속적이고 일상적으로 흘러가는 세상이다.

 

그런데 피로의 원인은 무엇일까? 무엇 때문에 이토록 집중력이 떨어지고 잠에 취한 듯 몽롱한 시간이 지속되는 것일까? 분명 어제보다 나은 하루가 되기를 희망하는데 쉽지 않은 선택들이 계속된다. 즉각적인 질병치료에 집중하는 병원도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물질문명의 성장이 과학, 특히 인체신비의 탐구에 더욱 치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린 피로가 외부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한다. 하지만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에 대해선 놀라우리만치 아는 게 없다. 인간의 정신과 신체는 여전히 수렵 채집인의 습관에 묶여있다. 생존에 대한 투쟁-도피의 교감신경이 시도 때도 없이 신체를 긴장상태로 몰아넣고 긴장과 불안을 유발한다. 극도의 불안감과 두려움 혹은 감정적 충돌을 너무도 쉽게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몸의 긴장은 과거로부터 벗어나기 어려운 가장 치명적인 과제 일 것이다.

 

알레르기, 면역학 라이센스를 공부한 저자 역시 수년간 이러한 경험을 토대로 자신을 뒤흔든 피로의 정체를 해결하기 위해 다각적인 계획과 회복 프로그램, 특히 에너지를 고갈시킨 원인에 대한 연구를 지속해왔다. 산업화와 도시의 발달은 생활패턴을 분리하고 시간에 대한 효용성을 강조한 결과 수많은 부작용을 초래하고 있다. 특히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로 당뇨, 만성질환, 비만, , 치매, 지가면역 질환등 과거에는 흔치 않았던 질병들이 양산되며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간혹 20대 당뇨환자의 증가 소식이나 움직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모습들을 볼 때 이는 미래 인류의 암담한 사회상을 추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현재 이러한 질병들로 고통 받고 있는 대다수 서구 사회의 패턴에 익숙한 사람들이다.

 

스트레스가 쌓인다. 부신에서 코르티솔이 분비된다. 우리 신체는 가끔 심각한 병목현상을 만난다. 만성 스트레스가 코르티솔 분비를 과다하게 늘리는 경우다. 호르몬은 복합적이고 즉각적이다. 호르몬 불균형은 신진대사, 식욕, 심박, 수면, 생식기능, 성장, 심지어는 체온에 이르기까지 우리 몸과 건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몸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우울한 기분과 복잡한 감정을 유발하고 신체 불균형을 초래하여 면역력을 약화시켜 통증과 염증을 수반한다. 시상하부, 놔하수체, 부신 그리고 갑상샘과 췌장으로 이어지는 내분비계 작용은 실질적으로 우리의 신체를 통제하고 조절한다.

 

그런데 이러한 호르몬과 밀접한 연관을 맺는 작용이 면역계 역할이다. 면역은 인간이 살기위한 최소한의 신체적 방어다. 또한 놀라울 정도로 정교하며 치명적이다. 이는 식습관이 바뀌고 있는 현대사회에 더욱 강하게 작용한다. 밀에 포함된 글루텐을 섭취하면 면역계 세포는 즉각적으로 외부의 침입에 대한 공격을 시작한다. 문제는 세포의 가차 없는 공격이 정상세포를 공격하는 경우다. 이는 다수의 자가 면역을 일으켜 신체에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킨다. 류머티즘, 치매, 알츠하이머, 폐질환등 쉽게 치유하기 어려운 질병들이 식습관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제 모든 호르몬 불균형이나 면역계 질환의 선택이 장으로 연결된다.

 

우린 미생물과 공생한다. 인간의 DNA 보다 훨씬 많은 유전자가 우리의 장 속을 활보한다. 인간이 미생물을 키우는 것인지 미생물이 인간의 생존을 유지하는 것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더욱 미생물에 대한 연구가 중요하다. 다행이도 최근의 과학은 뇌-장간의 연결이 신경세포의 역할 뿐만이 아니라 신체 전반적인 항상성을 위한 최고의 기능임을 밝혀내고 있다. 우린 무엇을 먹고 있는가에 우리의 신체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음을 간과한다. 특히 과당과 탄수화물에 치중한 현대인의 식습관은 장의 균형을 무너뜨리고 면역계를 자극하며 호르몬 불균형을 초래한다. 이는 초기에 발견하기 쉽지 않고 만성질환이나 치명적인 질병의 원인이 된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언제 먹을 것인가? 스트레스 줄이기, 운동, 보충제 등은 올바른 에너지를 얻기 위한 최소한의 선택이다. 저자는 이를 WTF계획이라 말하며 실질적인 자가 실천계획을 수립할 것을 권장한다. 특히 먹는 것과 더불어 수면의 질은 너무도 중요하다. 수면은 세포의 정산과 새로운 일상을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잠을 잘 못자면 뇌로부터 세포까지 모든 것이 흔들린다. 이는 피로의 직접적인 원인이자 몸 불균형의 시작이다. 우린 정신과 더불어 신체의 작용에 미숙하다. 왜 라는 질문이 시작되면 이미 많은 문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고스란히 자신에 남는다. 건강하게 산다는 것은 자신의 책임에 대한 최소한의 선택이다. 피로함을 너머선 에너지에 대한 근원적인 통찰을 만날 수 있는 나는 도대체 왜 피곤할까많은 이들에 필요한 내용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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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의 과학 - 세상을 움직이는 인간 행동의 법칙
피터 H. 킴 지음, 강유리 옮김 / 심심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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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져있는 사회적 관계는 신뢰란 무엇인지에 대한 일상적인 답변을 제공해준다. 신뢰는 가시적이지만 복잡한 내면 특히 도덕적 자아와 공정성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우선적으로 우리가 매일 접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신뢰도를 눈여겨보자. 정치인들에 대한 대중의 신뢰도는 어떻게 바뀌고 생성될까? 정치인을 공인이라 불리는 이유는 일거수가 대중에 각인되어 그들의 판단과 결정이 판단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특히 공정성과 도덕성은 정치인들이 갖추어야할 필수 덕목이다. 우린 도덕성과 공정성이 무너진 정치인들이 얼마나 쉽게 도태되어 사라지는지 알고 있다. 인간은 신뢰라는 믿음위에 존재하며 신뢰가 무너진다면 어떤 사회와 어떤 세상이 도래할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신뢰는 언제 형성될까? 그리고 우린 왜 선의의 거짓말이란 표현까지 사용해가며 자신의 기만적인 신뢰를 사용하는 것일까? 수단이 목적이 되어가고 있는 사회에서 신뢰를 찾는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사회가 각자의 필요조건에서만 움직이는 것은 아니다. 사람을 채용하거나 사업을 하는 조건은 서로간의 신뢰가 우선적이며 이를 평가하는 기준은 생각하는 것보다 까다롭지 않다. 인간은 의외로 낯선 이에게 높은 수준의 신뢰를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특히 조건이 일정하다면 타인에 대한 의심보단 신뢰를 선호하는 경향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우린 누군가를 신뢰하는 것을 좋아한다. 이는 과거 인류의 생존과도 밀접한 연관을 맺는다. 타인과의 좋은 관계는 생존방식의 다변화를 만들어주고 현대사회의 긍정적인 관계는 보다 나은 선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린 거의 매순간 신뢰에 대한 의구심을 갖는다. 신뢰가 좋은 방향이라면서 왜 그토록 빠르게 신뢰가 무너지는 것일까? 혹 자신의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신뢰에 대한 신념이 잘못되거나 왜곡 편향되어있지는 않는 걸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서로를 신뢰하거나 불신하게 되고, 이런 결정의 바탕이 되는 신념은 왜 그렇게 틀릴 때가 많은 것일까? 우리의 신념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관계를 맺고 노력하고 세상을 탐색하는 방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특히 믿었던 사람이나 상황들에 대한 신뢰훼손은 아픈 상처를 남기고 신뢰 회복을 어렵게 만든다. 이는 순간적인 감정뿐만이 아니라 왜곡된 신념을 형성하여 평생 의심이라는 신뢰불감증을 낳기도 한다.

 

무엇이 신뢰를 결정하는가? 무척 어려운 주제다. 개인의 성향이나 관점이 다른 까닭에 서로에 대한 의심은 너무도 당연하지만 사회는 신뢰를 기반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신뢰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은 보기 드문 감정 접근법이다. 저자는 우리가 왜 이토록 신뢰에 서투른지 과정을 추적하고 신뢰의 정확한 의미와 이해 그리고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다. 그는 신뢰를 실망시키지 않는 믿음이라 말한다. 믿음은 자신의 신념과 타인의 신념간의 관계다. 신뢰를 결정짓는 특별한 요소로 역량과 도덕성을 말하는데 역량은 누군가에게 과제수행에 필요한 전문적인 기술과 대인관계능력이 있다는 믿음이고 도덕성은 누군가가 용납할만한 일련의 원칙을 지키리라는 믿음이다. 트럼프의 역량과 도덕성은 신뢰가 지닌 이중적인 형태를 직접적으로 표현한다. 대중은 그들을 대표하는 리더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면 즉 자신의 편견에 부합한 역량을 갖추고 있다면 도덕성의 파괴를 쉽게 용납한다.

 

우리사회는 신뢰할만한 사회인가? 안타깝게도 정부와 공기업들의 사회적 신뢰지수는 매년 수치를 갱신하며 아래로 추락중이다. 신뢰를 무너뜨리는데 가장 큰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정치인, 경제인 그리고 언론과 미디어 일 것이다. 이들의 역할은 사회적 신뢰를 구축하는데 큰 영향력을 미친다. 또한 사회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철학적 주제들은 인간 본연의 도덕적 주제를 쉽게 무너뜨리기도 한다. 이는 권력자의 불공정을 통해 대다수의 시민들이 느끼는 분노다. 인간은 스스로에게 완벽함을 부여하면서 타인에겐 가혹하리만치 엄격한 기준을 제시한다. 만약 타인에 대한 신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수세기를 이끌어왔던 종교와 철학적 고찰은 무슨 의미를 가질 것인가? 믿지 못하는 사회는 부정적인 감정보다 훨씬 파괴적인 사회를 만들 가능성이 높다. 타인에 대한 믿음으로부터 시작된 신뢰의 뿌리는 생존하기 위한 인류의 처절한 몸부림일지도 모른다. 신뢰에 대한 과학적 접근법은 사회를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주제들 중의 하나이자 세상을 이해하고자 노력하는 인류의 근원적인 모습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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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 실패할 걸 알면서도 왜 나는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
더글러스 켄릭.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 지음, 조성숙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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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경제학의 합리성이론, 행동경제학의 인간 오류에 관한 비합리적 과정, 진화심리학의 선택과 의사결정에 대한 진화론적 이론, 다양한 가설을 통한 심리학적 검증은 인간의 선택에 대한 궁극적인 질문, 왜 인간은 어리석은 선택을 지속적으로 반복하는가에 대한 보다 근사치에 가까운 해답을 제시한다. 인간의 역사는 불확실성과 불안정한 환경에 대한 도전의 역사로 기록된다. 특히 주관적인 판단이 주가 되는 경제학에서는 더더욱 통합적이고 변수가 적은 통계학이나 확률이론이 필요했을 것이다. 하지만 생물학과 마찬가지로 경제학 역시 진화의 일부분이라는 가설이 지배적이다. 특히 최근엔 경제학과 심리학의 이론과 인류학과 생물학의 이론이 통합되면서 탄생한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선택이 아무리 터무니없고 어리석은 선택처럼 보일지라도, 그 깊숙한 곳에는 인간이 어떤 식으로 선택을 내리는지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는 질문이 숨어있다고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의 선택 기준에 대한 가설이 미시적인 수준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노벨상 수상자 카너먼의 통계적 오류를 통한 비합리적인 인간의 선택을 강조해왔던 행동경제학의 목표는 선택의 결과에 치중하는 이론이다. 그래서 90가지가 넘는 오류를 발견했고 이는 수많은 경제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경제학적 주류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인간의 선택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겉모습이 아니라 인간의 생물학적 관계를 깊숙이 파고들어 수십만 년 전 인간의 선택을 좌우했던 진화적 과정이 더욱 중요한 논제가 되고 있다. ‘나는 왜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 공저 더글라스 켄릭과 블라다스 그리스케비시우스는 선택의 재발견이라는 주제로 진화심리학을 통한 인간 내면의 궁극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파헤친다.

 

내안에 내가 너무도 많아 라는 노래가사처럼 우리 내면엔 부분자아라 불리는 7가지의 subselves가 존재한다. 인간의 욕구단계를 5단계로 표현한 매슬로의 욕구보다 다양하다. 우린 누군가의 재채기나 기침소리를 듣는다면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찌푸리거나 입을 막는다. 이는 자기보호자아와 질병회피자아가 우선적으로 활성화된 결과이며 본능적으로 타인과의 경계를 만들어낸다. 이는 지극히 순전한 자기보호 기능이자 생존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과거 열악한 삶의 터전을 헤매야했던 인간의 선조들의 생활은 과도한 위험과 예측 불가능한 불확실성에 대한 확실한 자기방어 전략이 필요했으며 이는 진화론적으로 생존본능을 지각하는 부분자아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저자는 부분자아로 자기보호, 질병회피, 친애, 지위, 짝 획득, 짝 유지, 친족 보살핌등 7가지를 subselves로 선택하고 이를 진화론적으로 증명하는 인간의 심리적 기제를 보여준다. 인권운동가로만 알려진 마틴 루터 킹에 대한 두 자아상은 친애자아와 짝 획득자아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루터 킹의 이중적 자아는 위선적인 인간의 겉모습에 대한 비판보단 어떤 자아가 주도권을 쥐느냐에 의해 선택과 결정의 우선순위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인간 내면 다양성을 증명한다. 즉 우리의 부분자아는 하나의 상황에서 하나의 자아만이 주도권을 잡으며 현재의 부분자아가 바로 그 순간의 당신이다.

 

우린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하지만 곧잘 상황을 이해하고 회복하기도 한다. 빠른 선택과 느린 선택의 기준은 자아가 받아들이는 진화론적 의미와도 관계가 있지만 생후 5년 동안의 유아기적 환경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빠른 전략은 위험하고 예측 불가능한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전략이며 느린 전략은 위험이 없거나 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효과적이다. 하지만 빠른 전략은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왜 인간은 무분별하거나 과도한 자기 과시욕에 빠져 자산을 탕진하거나 생을 쉽게 마감하는가에 대한 선택 역시 지위 자아에 대한 근원적인 딜레마와 자기보호자아의 순기능이 역기능으로 작용을 할 때 일어난다. 둘은 상호 보완작용을 거치며 어떤 부분자아의 역할에 따라 선택의 기준이 달라진다.

 

그런데 왜 우린 하나의 자아라는 생각을 버리지 못하고 있을까? 그리고 지금의 선택이 내려지도록 뇌가 진화해온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인간의 결정은 진화적 목표에 도움이 되며 인간의 결정은 다양한 진화목표를 달성하도록 설계되어있다.’고 진화론적 의미를 덧붙인다. 인간 행동의 다면성 이해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자신도 스스로가 행한 선택과 의사결정의 과정을 이해하지 못할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를 현대사회인의 뼈 안에 신석기 시대의 뇌를 가진 인간이 존재한다 라고 비유한다. 여전히 선조들의 뇌를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 현대사회의 시스템은 무척 상대하기 어렵고 까다로운 주제다. 하지만 우린 곧잘 상황을 빠르게 습득한다. 이 또한 진화의 한 부분이라 생각한다. 진화심리학에 바탕을 둔 인간 행동에 대한 선택과 의사결정의 해답, 왜 우리가 그토록 똑같은 행동을 반복하는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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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최전선 -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 역사 그리고 마음에 대해
앤서니 그레일링 지음, 이송교 옮김 / 아이콤마(주)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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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칼 세이건은 우주에 떠도는 먼지 같은 지구의 모습을 창백한 푸른 점이라 묘사한다. 아름답다 기보단 처량하고 외로운 행성이다. 굴속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개미들의 모습을 본다면 이들이 훨씬 규칙적이고 물리적인 원칙에 입각한 자연을 따라가는 생명체라는 것을 느낄 것이다. 우주는 인간의 지적인 한계에 어리석음과 물음표를 던져준다. 인류는 조만간 알고 있던 모든 지식을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인간은 여전히 3차원에 갇혀있고 차원에 대한 의식을 무척 혼란스럽고 어려워하기 때문이다. 이는 뇌의 작동방식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뇌는 인간의 삶이나 세상에 대한 의지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단지 환경변화에 대한 생존과 번식을 중심으로 진화에 진심이다. 하지만 인간의 호기심과 창의성은 뇌의 본성과는 별도로 놀라운 발전을 가져왔다. 우주에서 바라본 창백한 푸른 점에 살아가는 인류는 우주의 진실에 가장 근접하고 있으며 그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지구상의 유일한 종이자 생명체로 진화하고 있는 중이다.

 

본 책의 원제는 The Frontiers of Knowledge. 지식의 최전선에 선 인류의 모습을 투영하며 인류가 지금까지 무엇을 알아냈고 무엇을 기대하는지에 대한 역사적 기원과 확장된 미래의 세계관을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 앤 서니 그레일링은 과학과 인문학이 어떻게 인간의 삶의 중심이 되어 왔고 문제를 해결할 중심이 되고 있는지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연구하는 NCH의 멤버다. NCH는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과학적 발견을 통해 새로운 지식을 전달하고 탐구하는 단체로 리처드 도킨스, 니얼 퍼거슨 등이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과학적 지식은 인류에게 가로막힌 벽을 뚫고 있다. 최근 10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성장한 뇌 과학은 인간의 마음과 영혼에 대한 오랜 기간의 의구심을 단번에 해소하며 영생이라는 개념을 뒤로 젖힌 채 불멸에 집중하는 인공지능을 연구 하고 있다. 이런 시점에 인간의 과학, 역사, 뇌의 역사와 기원을 알아보는 것은 무척 의미 있는 일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인류의 서사에 관한 스토리는 들뜬 마음과 약간의 흥분을 자아낸다. 이해하기 쉽지 않은 철학자들의 지식도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근원적인 질문으로부터 시작하여 과학적 가설과 관찰을 통한 우주의 물리학적 지식에까지 이르게 된다. 인간은 어디서부터 비롯되었을까? 호모계열의 한 부분으로 시작된 인간 종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에 80억명을 넘어서며 지구를 정복하고 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생명체는 인간의 의지에 멸종 여부가 결정된다. 사실상 지구의 주인은 인간이다. 그런데 무엇이 인간이란 돌연변이종에 이토록 과도한 생명력을 부여한 것일까? 지구의 역사 특히 인류의 역사는 최근 몇 십 년 사이에 엄청난 진전을 이루었다. 빠른 과학적 기술 덕분에 과거로의 여정은 보다 정확하고 빠르게 인류의 역사적 사건들을 벗겨내고 있다. 인간과 생명체간의 관계 그리고 존재의 의미와 가치등 미래의 영향력에 관해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는 과거의 역사로부터 시작된 인류의 역사적 기원이 무엇에 대한 근거와 어떻게 세상을 해석해왔는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식의 최전선은 과학, 역사, 그리고 뇌와 마음이란 주제로 인간의 과거 현재 미래를 풀어나간다. 세 가지의 담론은 인간의 정체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으며 최근 뜨거운 과학적 이슈가 탄생하는 중심이다. 그리고 이 모든 배경에는 과학적 발견과 기술의 진보가 존재한다. 최근의 기술 진보는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는 많은 자료들의 실체를 벗겨내고 있다. 특히 호모종에 관한 인류의 역사는 다가갈수록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난제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리고 인류의 이동, 경험에 의한 문명의 진화, 지배구조를 향한 갈등과 타협, 인간의 역사는 여전히 진행 중이며 크게 다르지 않은 사건이 지속중이다. 역사를 통해, 과학적 진보를 통해 인간은 새로운 자신의 모습을 자각하고 있다. 이는 최근 급격히 성장한 뇌과학이 중심이 되고 있다. 뇌혁명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인간을 창조할지도 모른다.

 

매일 책을 읽는다. 왜 읽는 것일까에 대한 답은 없다. 목적 없이 읽다보면 책이란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지식의 전달, 과거로부터의 회생, 미래의 예측, 지식에 대한 갈망등은 인간을 알고자 하는 본질이다. 인간 존재의 목적은 생존이다. 생존하기 위한 갈등과 타협은 역사의 주류다. 그리고 무엇을 하든 경험이 되고 지식이 되며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또 다른 지식과 경험이 된다. 인류의 역사는 끝없는 시간 속에서 지루하리만치 느리게 변화하여왔지만 어느 순간 폭발적인 전환이 인류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직립보행, 문자, 언어, 농경사회, 비록 이에 대한 반론들도 상당하지만 인류가 지구를 정복하고 새로운 인류의 탄생을 예고하는데 까진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식은 인간 최후의 보류다. 그리고 그 지식위에 새로운 지식이 쌓여 인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DNA의 무작위성은 돌연변이를 만들기도 하지만 우주에 대한 끊임없는 예측 오류를 예견하기도 한다. 우리가 지식을 쌓는 이유도 목적에 대한 답을 얻기보단 무의식적인 생존의 방향에 대한 지속적인 탐구일 것이다. 과학, 역사, 두뇌의 탐구는 근원적인 질문들에 답하며 끊임없이 인류를 자극할 것이다. 지식의 최전선은 뚫고나가야 하는 최전방의 교두보와 같다. 미래와 마주한 인류, 어떤 모습으로 미래를 이끌어 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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