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 괴물이 사는 마음 - 과학으로 헤쳐 나가는 죄악의 세계
가이 레슈차이너 지음, 이한음 옮김 / 흐름출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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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이 없다면 다이아몬드가 가치를 지닐 수 있었을까? 분노가 없었다면 왕과 군주의 권력을 가로막을 수 있었을까? 탐식은 새로운 가치를 형성하며 현대사회 경제적 유용성의 중심이 되고 있다. 나태하다고 죄를 지은 것은 아니다. 단지 개인의 자유의지일 뿐이다. 분노, 탐식, 색욕, 질투, 나태, 탐욕, 교만, 단테의 신곡, 연옥을 통해 알려지게 된 일곱 가지의 죄악은 오랜 기간 부도덕한 생각과 행위의 토대로 여겨져 왔다. 신의 계율이 적혀있는 구약성서엔 죄악에 대한 신의 판단과 규칙, 처벌이 상세히 기록되어있다. 인류 최초의 죄인인 아담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하는가? 또한 가인은 질투와 시기로 형제를 죽인 최초의 인간이 아닌가?

 

어쩌면 죄라는 개념은 인간이 갖추어야할 필연적 조건인지도 모르겠다. 죄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 역사는 어떻게 진전되었을까? 죄는 인류에 어떤 의미를 부여해왔는가? 단지 표면적 죄악의 형태만을 강조한 채 판단과 처벌에 중심을 두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죄의 근거를 개인의 일탈이나 신의 분노로 표현해 왔다는 사실이 죄의 개념을 더욱 축소시킨다. 대죄라 일컫는 일곱 가지의 죄는 시간과 함께 다르게 해석되었고 지금은 죄라 불리기도 어려운 항목도 존재한다. 그렇다면 죄에 대한 인간의 생각과 행동이 당시의 지배관계나 이해관계에 따라 지나치게 구속되었던 것은 아닐까? 죄는 이원론적인 특성이 있다. 파괴적이지만 혜택도 주고 있다는 것이다. 뇌과학과 신경심리학은 죄에 대한 질문을 교체하고 있다. 죄가 아직까지 존속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뇌전증의 폭력성, 공격성의 관계는 상당기간 주변인들을 괴롭혀왔다. 갑자기 일어나는 발작을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하는지, 충격적이고 괴롭다. 하지만 뇌전증이 공격성을 보이는 사례는 드물다고 한다. 오히려 뇌전증 이후 정신착란과 같은 사후효과가 치명적이다. 발작은 대개 짧게 지나가지만 간혹 뇌의 전기회로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킨다. 전기폭풍은 뇌를 교란상태에 묶어두고 공격성, 정신증, 망상이나 환각등의 증상을 불러일으킨다. 그런데 정작 환자는 전혀 기억을 하지 못한다. 뇌 이상 때문에 분노가 일어나는 상황은 분명하다. 하지만 분노는 누구에게나 일어난다. 파괴적이고 부정적이지만 동기부여나 성취, 달성, 소유의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분노는 이원론적 감정이며 통제가능 여부에 따라 전혀 다른 상황을 연출한다.

 

신경학 의학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내담환자를 통해 분노를 비롯한 일곱 가지의 죄를 뇌과학과 신경심리학을 중심으로 풀어간다. 죄에 대한 관점이 무척 애매하다. 죄는 무엇을 양산하고 어떤 피해를 주고 있는가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죄가 발생되는 범위가 확증적으로 증명됨에 따라 죄의 가여부에 대한 판단도 무척 어렵다. 최근의 판례에도 뇌 기능 이상으로 인한 죄는 대부분 무죄나 감형이 나오기 때문에 뇌와 신경심리학의 연구가 그 어느 때보다 확장되고 세분화되고 있다. 분노에 대한 의학적 판단 역시 의사의 처방이나 개인의 내외적 손상여부, 신경기능의 이상, 유전자이상이나 돌연변이등과 같은 다양한 원인에 의해 다르게 해석된다. 특히 편도체와 전두엽 이상에 따른 뇌 기능의 악화는 분노의 직접적 원인임이 밝혀졌다. 가장 인상적인 결과가 어렸을 적 트라우마와 환경적 요인으로 인한 내재적 분노다. 이는 쉽게 해결되지 않고 무의식을 자극하여 지속적인 고통과 분노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사돈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란 오랜 속담이 있다. 시기와 질투는 인류의 탄생과 함께 시작된 가장 고전적인 대죄다. 저자는 질투를 더 나은 자질, 소유, 성취를 바라거나 누군가가 그것을 빼앗기는 것을 보고 싶은 욕망이라 정의한다. 상대의 자질을 바라는 욕망을 양성질투, 빼앗고 싶은 욕망을 악성질투라 한다. 질투보다 광적이 감정이 시샘이다. 시샘은 자신의 물건이나 사람을 빼앗아갈지 모른다는 위협을 느낄 때 강하게 일어난다. 우린 누구도 질투나 시샘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어쩌면 인생의 대부분 시간을 질투라는 감정을 통해 살아가고 있는 듯하다. 그런데 질투는 대부분 자신과 비슷한 위치를 통해 발생되며 극히 상대적이다. 질투도 분노와 같은 이원론적인 특징이 있다. 특히 신경, 생리학적으로 생존에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거나 번식을 위해 가장 중요한 진화적 체계로 인식되고 있다. 질투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데 저자는 낮은 자존감과 열등감이 질투와 시샘의 근본적 원인이라 설명한다.

 

뇌과학과 신경심리학은 인간의 생각과 행동스펙트럼을 광범위하게 넓혀놓았다. 도덕적 결함에 대한 죄의 토대를 생물학적 기능 장애로 확산시킨 것이다. 그렇다고 죄를 면책할 수는 없을 것이다. 본 책은 일곱 가지의 대죄를 선택하여 인간이 추종해온 다양한 감정과 행동에 담긴 변화과정을 추적한다. 저자의 임상관찰은 독자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준다. 현대사회는 그 어느 시기보다 자유의지가 강하게 반영되어 있다. 죄에 대한 책임 역시 스스로에 부여된 의무에 가깝다. 탐식은 자신의 건강 위험 신호를 나타내지만 진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의 생물학적 본능이다. 색욕 또한 아름다움을 비롯한 다양한 범주를 형성하며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곤 한다. 나태와 탐욕은 개인적 의지에 가깝다. 인간의 결함을 어디까지 인정해야 할까? 저자의 탁월한 관점은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일곱 가지 대죄를 선택한 이유는 죄에 대한 편협성을 꺼낸 것일까? 생물학적 고찰을 요구한 것일까? 인간 본성과 병리, 그리고 죄악사이의 경계는 어디쯤일까? 저자의 질문은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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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 삶과 죽음을 고뇌한 어느 철학자 황제의 가장 사적인 기록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지음, 그레고리 헤이스 해제, 정미화 옮김 / 오아시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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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삶의 철학을 어떻게 만들어 갈 것인가? 권력의 정점에 선 황제 역시 개인의 인생문제에 대해선 어려움이 많았던 것 같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로마 16대 황제이자 철학자인 그는 언제나 삶의 다각적인 문제에 직면해왔다. 끊임없는 전쟁과 내전, 권력다툼과 살인, 광적인 전염병은 그의 삶을 가로막으며 재해석을 요구해왔기 때문이다. 당시 로마의 황제들은 대부분 권력이라는 힘을 선택했지만 철학황제에겐 이 모든 상황이 내적인 갈등, 즉 철학과 신학의 문제로 인식되었다. 그는 권력이 어떻게 사용되느냐 보다는 자신이 처한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도적과 윤리문제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당시 철학은 삶의 교과서였다. 소요학파, 견유학파, 스토아학파와 같은 다수의 사상이 학문적 체계를 형성하며 수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를 탄생시켰다. 마르쿠스 역시 이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에게 있어 황제란 또 다른 삶에 대한 질문이었고 철학이었다. 마르쿠스는 어린 나이에 집정관에 오르며 명문가의 입지를 탄탄히 구축하게 된다. 명상록 제1권엔 마르쿠스가 어린 시절 자신에 영향을 주었던 다수의 지인들이 소개되어있다. 조부로부터 노예까지, 그들은 마르쿠스에게 관대함과 인내, 사랑, 절제, 연민, 배려를 보여주었고 이는 마르크스의 사상에 큰 밑거름이 되었다. 그는 언제나 실체적이고 구체적인 삶의 지혜가 필요했다.

 

루스티쿠스 덕분에 나는 성품을 수양하고 단련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당시 유행했던 수사학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학문의 본질에 다가서기위한 깨달음을 인식한 문장이다. 마르쿠스에게 배움은 삶의 현실적 문제였고 풀어야할 과제였다. 그는 삶의 다양성과 다름의 가치관을 인정해가며 철학의 기반을 구축해 갔다. ‘다른 사람의 잘못을 끊임없이 지적해서는 안 된다.’논의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내용이지만 마르쿠스는 자신에 직면했던 수많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알렉산드로스의 가르침을 쉼 없이 반복하며 되새겼을 것이다. 마르쿠스는 평생을 배움의 과정으로 여겼던 것 같다. 누구에게나 배울 준비가 되어있는지, 새삼 되새겨볼 문장들이다.

 

철학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분야가 신학이다. 명상록 제2권엔 신들에 의한 섭리가 자주 등장한다. 모든 것은 섭리에서 비롯된다. 마르쿠스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스토아 학파에 대한 지식이 필요하다. 제논에 의해 창시되고 크리시스포스에 정립되었으며 에픽테토스에 의해 확장된 스토아철학은 마르쿠스의 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학문이다. 스토아 학파는 세계는 합리적이고 일관된 방식으로 조직되어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고 있다. 세계는 로고스에 의해 통제되고 지배된다. 로고스는 자연, 섭리, 신과 같은 의미를 지녔으며 우주의 모든 사건은 로고스에 따라 결정된다. 즉 인과관계가 뚜렷한 결정론적 체계다.‘세계를 다스리는 힘이 무엇이며 너는 어떤 근원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깨달아야한다.’ 마르쿠스는 필연적인 삶에 대한 목적론이 존재하며 비이성적인 삶에 대한 고뇌를 명상록을 통해 전달한다.

 

명상록은 마르쿠스 생전 마지막 10년을 전후로 작성되었다고 한다. 169년부터 마르쿠스에겐 엄청난 시련이 다가왔다. 삶의 고난과 갈등 속에서 그는 자신을 직시하고 삶에 대한 본원적인 질문과 성찰에 다가갔다. 하지만 세상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혼란과 고통이 가중되었다. 그는 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자신을 반추하고 철학자로서 갖추어야 할 삶의 품위와 태도를 잃지 않기 위해 내면을 직시했다. 명상록은 삶에 대한 기록이자 그가 바라보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다. 놀라운 것은 그의 성찰이 2000년을 뛰어넘고 있다는 사실이다. 명상록엔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이 지속적으로 반복된다. 본성과 실체는 무엇이고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질문에 대한 해답이 곧 인류의 현재 모습일 것이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 누구도 변화의 물결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변화가 곧 현존이다. 삶과 죽음에 맞선 마르쿠스의 위대한 서사, 명상록, 그가 전하는 삶의 메시지를 가슴깊이 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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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선의 가족 상담소 - 얼굴 보면 속 터지고 돌아서면 생각나는 가족 관계 솔루션
이호선 지음 / 오아시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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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다 가족이 더 어려워요. 이 한마디에 가족에 대한 대부분 고민이 담겨 있는 것 같습니다. 가족은 가장 신뢰하고 친밀하지만 가장 어려운 관계입니다. 곁에 없으면 걱정되고 불안하지만 만나면 불편하고 때론 떨어져 있으면 합니다. 가족의 거리, 어느 정도 유지해야할까요? 가족의 구성 기준이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기성세대에게 가족은 책임과 의무를 지닌 관계였습니다. 부모, 자식은 엄격한 위계가 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일생을 보살피고 보살핌을 받아야 했습니다. 형제, 자매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명절엔 가족 수가 곧 집안의 힘이자 권력이었습니다. 하지만 사회구성의 변화와, 직업, 개인의 독립이 중요시 되면서 1인가구의 급증과 함께 가족에 대한 의미가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이제 가족을 책임과 의무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가족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인생에서 유일하게 위로받고 존중받을 수 있는 공동체가 가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족이란 틀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공격적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화나면 안보면 그만이지만 가족은 해결되지 않은 감정을 오랫동안 묵혀둡니다. 일상적인 일도 크게 부각되어 감정 상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무엇보다 말과 행동이 너무 쉽게 돌출되면서 서로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서로의 자존심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워낙 가까이 지내다보니 상대의 약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 아픈 상처를 쉽게 건드립니다. 하지만 갈등은 곧 후회와 자책감을 일으키고 수치심과 죄책감에 마음이 불편해집니다. 가족문제는 사건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각자의 위치와 이해관계 때문에 문제가 복잡해집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건보다 가족을 구성하고 있는 관계, 즉 가족의 구조를 파악해야합니다. 우리 가족은 어떤 분위기에서 살았는지, 누가 늘 참고 누가 늘 화를 내는지, 누가 결정하고 누가 따라갔는지, 구조를 이해하면 왜 자꾸 갈등이 반복되고 해결이 어려운지에 대한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본 책은 가족상담소를 통해 수많은 독자를 형성하고 있는 이호선님의 가족상담소입니다. 총 네 파트로 구분되어 가족과 부모, 자식, 그리고 부부관계의 문제를 직시하고 해결방법을 제시합니다. 첫 번째 주제는 가족입니다. 현대사회는 나라는 개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가족은 더 이상 의무와 책임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물론 여전히 세대가 통합되어 지내는 가족도 많지만 대부분 독립된 존재로 살아갑니다. 특히 개인의 독립과 평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시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가족 간에는 보이지 않는 친밀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친밀도는 곁에 있어서 좋지만 때론 의존적인 관계로 돌변해 아무런 대가도 지불하지 않은 채 집안에만 머물며 스스로를 부인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또한 거리감이 없다보니 의무적인 말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심지어는 공격적인 성향을 내보이기도 합니다. 관계가 틀어지더라도 언제든 화해가 가능하고 잘못이 반복되더라도 항상 수용해주는 관계라 여기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가족도 상처받습니다. 또한 용서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독립된 개체로서 스스로의 삶을 책임져야합니다.

 

저자는 가족과 나는 결국 남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고 충고합니다. 가족이라도 저마다의 삶의 경험이 다르기에 목표가 같을 수 없습니다. 또한 자신의 위치에 따라 생각이 달라집니다. 가족은 서로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만 자신에 체화된 정체성을 인식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역할을 다할 때 본래의 역할을 완수하게 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가족 간의 거리두기가 필요합니다. 나무를 보지 말고 숲을 봐야 합니다. 가족이란 숲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고 서로의 거리를 가늠하는 것입니다. 친밀하고 소중한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또한 가족이란 이유만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려야합니다. 특히 자식에 대한 애착이 너무 지나쳐 아이 스스로 일어설 수 있는 독립성을 가로 막을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아이에게 바라는 바가 많습니다. 저자는 옆집 총각 보듯 아이를 바라보라고 조언합니다. 인사만 잘해도 기특하고, 보기만 해도 듬직한 총각, 자녀에 대한 기대를 낮추는 것, 조금 차갑지만 기다려주는 것,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부모로서 충분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족은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한 나의 세계입니다. 아플 때 곁에 있어주고 기쁠 때 손잡고 웃어주며, 답답할 때 어깨 두드리며 위로해주는 가족, 하지만 분노가 일어나면 가장 먼저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합니다. 가족은 마음을 투영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나와 같은 마음이길 바라고 같은 생각, 행동이길 기대합니다. 인간은 공동체를 통해 자신을 인지하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가족은 그 첫 번째이자 마지막 공동체입니다. 부모와의 첫 만남, 자녀와의 첫 만남, 부부간의 첫 만남을 기억하십니까? 그들과의 첫 한마디는 우리 마음에 깊이 간직된 채 삶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습니다. 내 마음 위로받고 인정받고 싶다면 타인도 마찬가지입니다. 가족은 그 든든한 뿌리이자 줄기입니다. 하지만 때론 거리두기도 필요합니다. 오래된 숲일수록 진한 향이 퍼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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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소불행사회
홍선기 지음 / 모티브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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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리더의 그릇이 세상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확장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어떠한 것도 확정되지 않았지만 지방을 돌며 직접적으로 의견을 듣고 질문에 답하는 것만으로도 서민들에겐 큰 위로와 희망을 안겨줍니다. 삶은 고민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힘이 됩니다. 대한민국은 사실상 초고령화 시대에 돌입했습니다. 고민이 많아집니다. 생활비는 물론이고 의료와 복지에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덩달아 최저로 치닫는 출산율은 미래마저 암울하게 합니다. 생산이 줄어드니 경기침체가 반복되고 물가상승으로 소비도 약화되고 있습니다. 더군다나 천문학적인 자금이 부동산에 묶여있어 자금유동성도 원활하지 않습니다. 빈 부차는 더욱 심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쌓이는데 위기에 둔감한, 사실상 넋을 놓고 있는 실정입니다. 누구에게 폭탄이 떨어질지, 언제나 그랬듯이 위기는 서민들에게 가장 먼저 다가올 것입니다. 위기의 한국, 우린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하는 것일까요?

 

중산층의 몰락은 위기를 가속화시킵니다. 이는 1990년대 일본의 사례를 통해 수차례 제시되어왔고 한국도 IMF를 겪으면서 중산층의 몰락과 함께 직업에 대한 의식변화가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생산과 노동을 통한 자본의 이동이 서비스와 금융으로 옮겨지면서 부의 재편이 빠르게 이루어진 이유입니다. 1985년 일본은 광란의 5년을 보내게 됩니다. 메이드 인 재팬 신화로 미국 땅에 깃발을 꽂은 일본경제는 플라자 합의와 함께 엔고 시대를 맞이합니다. 이후 일본사회는 전례 없는 투기열풍이 몰아치며 격동적인 버블시대를 열게 됩니다. 당시 도쿄땅값이 미국전체 땅값과 같았다고 합니다. 불과 몇 년 전 한국사회를 휩쓸었던 아파트 투기광풍이 연상됩니다. 닛케이지수도 3배가 올라 돈 벌기가 땅 짚고 헤엄치기보다 쉬었다고 합니다. 사회는 분리화, 파편화 개인화가 급속히 이루어졌고 프리터족의 급증과 출산율의 저하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1990년 닛케이지수가 붕괴되면서 30년의 장기침체의 서막이 열리게 됩니다.

 

이 시대를 관통했던 주요 이슈들 중의 하나가 오픈런입니다. 1988년 닌텐도 전용게임, 드래곤 퀘스트3를 구입하기 위해 전국에서 오픈런이 일어납니다. 오픈런은 저자가 본 책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는 각자도생, 즉 스스로 통제가능하고 즉각적인 만족에 흥분하는 개인들의 관심과 에너지를 이야기합니다. 사회가 제시했던 성공에 대한 비전이 무너질 때, 개인은 집단적 외면과 함께 문화적 도피처를 찾게 됩니다. 취업도 쉽지 않고 내 집 마련은 더욱 어렵습니다. 결혼은 엄두도 못하고 생존마저 걱정해야 됩니다. 소유 가능한 성공, 온전히 내 것이라는 소유감, 인정받고 싶은 안정감, 내가 통제하고 획득할 수 있다는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통제 가능한 쾌락의 도피처였습니다. 오픈런은 본 책의 주제인 최소불행사회와 맞닿아 있습니다.

 

최소불행사회, 위로는 힘드니 아래라도 붙잡고 더 이상 불행해지 않는 방법을 찾는 사회, 우리의 삶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주장 같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자료에 비해 우리의 심리는 최소불행사회로 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90년 버블 붕괴는 일본사회에 큰 충격을 가져옵니다. 그 중심에 노력해도 보상받지 못한다는 공정성의 배신이 있었습니다. 부동산 버블을 막기 위한 대출총량규제는 금융시스템의 붕괴와 함께 사회, 공공시스템의 연쇄붕괴를 가져왔습니다. 또한 도쿄지하철테러와 한신 대지진으로 인한 국가위기시스템의 무능이 노출되면서 사회는 급격하게 공허함과 무료함, 무력감이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젊은 세대는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체념이 일상화되면서 절망의 시대를 겪게 됩니다. 프리터, 은둔형 외톨이, 초식남, 무연사회, 청년들의 외침이 사라지고 묻히며 일본사회는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한국사회는 어떨까요? 많은 부분이 교차되고 있습니다. 가계부채200%는 당시 일본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습니다. 0.75명의 출산율은 거의 절망적입니다. 부동산 올인에 대한 국민정서는 극한상황을 치닫고 있습니다. 일상이 그럭저럭 흘러가는 것에 만족하는 것이 최소불행사회가 시작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요? 일본은 앞선 선진국으로 한국사회에 뚜렷한 경고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론 일본과 한국은 많은 부분에서 다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젊은 세대의 각자도생이 미래에 미치는 영향은 엄청난 파급을 미칠 것입니다. 저자는 각자도생을 넘어 연대를 주장합니다. 연대를 위해선 지금과는 다른 시각이 요구됩니다. 사회변혁이 필요한 이유입니다. 이를 위한 9가지 금기된 해법과 11가지 생존 매뉴얼을 제안합니다. 현실과 괴리되는 부분도 있지만 폐교를 활용한 시니어 대학 타운 설립은 무너져가는 지방을 살리고 상권보호 및 일자리 창출에도 꽤 의미 있는 해법이 될 수 있습니다.

 

본 책은 1985년부터 2025년까지 일본사회의 실체를 디테일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30년에 대한 실증적 이야기입니다. 저자는 한국사회의 현 주소를 포함합니다.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위기를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일본 젊은 세대가 희망마저 끊었다면 한국 젊은 세대는 영끌에 올인하고 있다는 부분입니다. 이는 각자도생에 대한 다른 관점에 불과합니다. 국가시스템은 어디까지 개인의 생존과 안정을 보장할 수 있을까요? 최소불행사회를 바라는 국민은 없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건 세계 경제전략이 빠르게 각자도생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제가 쌓여가는 한국에겐 그리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방아쇠는 언제든 당겨질 수 있습니다. 그나마 지금이 기회라면 좀 더 낳지 않을까요? 자신이 서 있는 현실이 지속가능할 것이란 생각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일본이 충분한 메시지를 보냈으리라 생각합니다. 최소불행사회, 이제 우리가 그 대답을 준비할 시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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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이크넥 - 변호사의 나라 미국과 엔지니어의 나라 중국은 어떻게 미래를 설계하는가
댄 왕 지음, 우진하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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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식 정치의 끝은 어디일까? 관세를 내세워 주변국들을 위협하는 행위가 미국이 원하는 MAGA 일까? 주변국을 위협하는 트럼프의 정치행위는 전체주의 리더 푸틴이나 시진핑을 떠오르게 한다. 절대 권력에 대한 환상, 하지만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다.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저마다 시스템을 기준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트럼프 또한 이민세대인 아버지를 통해 엄청난 부를 이루었다. 그는 평생 멘토이자 변호사인 로이 콘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다. 로이를 통해 정치적 술수와 해법을 배우며 부를 이루었고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사실적으로 트럼프뿐만이 아니라 1980년대 이후 미국정치 권력은 변호사 출신들이 장악하고 있다. 미국은 변호사의 나라다. 정치든 경제든 모든 과정은 변호사를 통해 통제되고 결정된다. 한때 제조업을 통해 세계를 이끌었던 미국, 금융과 서비스를 통해 달콤한 맛을 즐긴 부자들에게 법과 법률은 그 무엇보다 손쉬운 권력쟁취와 돈벌이 수단이 되고 있다.

 

미중대결은 세계 정치,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 중국이 세계 생산의 40%를 차지한다는 뉴스는 세계 경제의 방향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운다. 미국 제조업은 인텔과 보잉의 침체가 시작되면서 빠르게 무너져갔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가지고 있지만 마스크 만드는 공장이 없는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오죽했으면 우방국의 제조업을 자국으로 가져오라는 위협을 서슴지 않겠는가? 미국은 모든 결정이 변호사에 의해 재해석된다. 덕분에 느린 의사결정이 일반화 되었으며 의료, 복지와 같은 사회간접투자와 인프라 투자가 무척 미흡하다. 뉴욕을 비롯한 대도시는 수십 년 동안 수리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있다. 마치 겉과 속이 따로 노는 것 같은 분위기다. 미국을 선망했던 이민세대들은 바뀌지 않는 미국문화에 애정과 애증이 교차한다고 말한다. 브레이크 넥의 저자 댄 왕 역시 이민세대로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느낀 감정을 가감 없이 전달하고 있다.

 

미국이 변호사들에 의해 좌우된다면 중국은 공학자들에 의해 권력이 유지되고 있다. 시진핑 3기 내각은 전부 공학자 출신들이며 이들은 시진핑 주도아래 강한 결집력을 보이며 과학강국을 꿈꾸고 있다. 베이징은 모든 과정을 기획하고 설계하며 지시한다. 중국정부는 모든 것을 숫자로 파악한다. 결과가 우선적이며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이는 철저히 공학적인 계산이 깔려있으며 개인을 집단화하는 사회공학을 연상시킨다. 실질적으로 중국은 인구조절을 통해 사회공학을 실현한 적이 있다. 인구파악조차 쉽지 않았던 마오쩌둥은 쑹젠의 한자녀 정책을 옹호하면서 희대의 인구조절 막을 올리게 된다. 당시 여성은 인간으로서의 취급은 물론 당국의 인구정책에 대한 최대의 희생양이 되었다. 인구조절은 40년간 지속되었고 지금까지 중국인들의 가슴에 커다란 상처를 남겨주었다. 그런데 시진핑은 2023년 연설에서 여성의 역할을 강조하며 결혼과 출산문화를 이끌어야한다고 주장했다. 선형적인 인구론에 대한 비판도 만만치 않지만 인구를 생산요소로 보는 공학적 시각이 여전히 중국을 지배하고 있다.

 

본 책은 기존에 느낄 수 없었던 미중간의 스토리를 디테일하게 파헤친다. 언론이나 미디어에서 다루기 힘든 정치적 진실을 과감히 드러내고 저자가 직접 경험한 중국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묘사한다. 저자는 기자로서 코로나 19 기간 동안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경험했던 중국식 통제방식을 디테일하게 서술한다. 지옥 같은 경험이었다. 모든 것이 통제되었고 갈등과 분노가 증폭되었으며 무엇 하나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짓눌렀다. 무엇보다 스스로에 대한 혐오와 국가에 대한 분노가 앞을 가렸다. 하지만 수많은 중국인들은 목소리조차 내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들에 미칠 영향력을 두려워했고 실질적으로 다수의 시민과 인사들이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 그들은 대항할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모든 것은 정부의 통제 하에 존재가 가능했다. 전체주의 국가의 감시와 통제가 공학적 계산과 합의될시 개인의 의미가 어떻게 퇴색될 수 있는지 저자는 그 모든 과정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도 중국도 부정적인 것만 있지 않다. 미국은 이미 최첨단 과학기술을 중심으로 천문학적인 달러를 풀며 세계경제를 리드하고 있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패권을 준비 중이다. 저자는 중국의 민낯을 이야기하면서 중국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도시 선전을 빼놓지 않는다. 선전은 중국의 실리콘벨리다. 애플과 테슬라의 생산 공장이 있고 수백 개의 제조업체가 상시 대기하며 새로운 이슈를 선택하고 순식간에 물건을 양산한다. 그야말로 제조의 천국이다. 이는 중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생산기지이자 중국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준비하는 제조생태계의 실체다. 저자는 미국의 압박이 중국의 굴기를 일으켰다고 말한다. 브레이크 넥은 미국과 중국이 서로에게 부족한 부분을 채워 더 나은 미래를 양분하자는 결론을 내린다. 1인 소득 1만 달러에 가까운 미국인이 2000달러에 인생을 거는 제조업에 뛰어들 수 있을까? 미국과 중국은 이미 가는 길이 다르다. 미중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이해해야한다. 한국은 무엇을 준비할 수 있을까? 세계는 이미 전쟁 중이고 그들이 지닌 최고의 무기로 서로에게 자신을 강요하고 있다. 트럼프도 시진핑도 결말을 알 수 없는 싸움을 지속하고 있지만 결국 성공의 열매는 소수에게 고통은 다수에게 돌아간다는 진실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브레이크 넥은 우리가 알던 진실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준다. 저자의 탁월한 분석과 날카로운 비판을 통해 미중의 실체를 직접 체험하길 기대한다.

 

 

- 이 리뷰는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직접 읽고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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