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출판계도 ‘친디아’에 주목

[사진]세계 최대의 ‘책 잔치’ 인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 마련된 한국관의 모습. 이번 도서전에 한국 출판사는 모두 71개사가 참여했다.




지난 4~8일 열린 제58회 독일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은 ‘세계 최대, 최고의 국제도서전’이라는 평가에 모자람이 없었다. 도서전 사상 가장 많은 출판사가 참여했고, 도서전을 찾은 출판에이전시도 늘었다. 반면 독서 인구의 감소, 문화 다양성 위축 등 세계 출판계의 고민과 문제점들도 그대로 보여줬다. 미국·영국 등의 대형 출판사 부스는 장사진을 이뤘고, 출판의 ‘비주얼화’도 심화되는 느낌이었다.




이번 도서전에는 사상 최대인 113개국, 7,272개 출판사가 참여했고, 출판에이전시도 지난해보다 30개사가 많은 283개사가 참가했다. 17만㎡에 이르는 전시장 내 13개홀의 모든 전시공간이 다 찼다. 전시 도서도 38만2천4백66권으로 지난해(38만6백55권)보다 늘었다.




주빈국 인도를 비롯한 중국·일본 등 아시아권 출판사들의 참여가 크게 늘었다. 특히 지난해의 2배에 이르는 전시 공간을 차지한 중국은 30여개의 다양한 행사를 여는 등 대대적인 홍보에 나섰다. 6관 2층의 중국관은 관람객들로 북적댔다. 장은수 민음사 대표는 “세계 출판계들이 새로운 판로를 확보하기 위해 거대 출판 시장인 중국과 인도 등에 주목하고 있다”면서 “아시아 출판 시장의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고 있는 만큼 한국도 전략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시아권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출판 관계자와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몰린 곳은 자본과 저작권을 거머쥔 영미권의 대형출판사들이 포진한 8관이었다. 미국의 피어슨과 스콜라스틱, 영국의 펭귄과 헤칫 등의 부스 상담 테이블에는 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8관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펭귄은 칼리 피오리나 전 휴렛 패커드(HP) CEO의 회고록인 ‘Tough choices’와 영국의 스타 요리사 제이미 올리버의 책 ‘Cook with Jamie’ 등의 대형 포스터를 내걸었다. 프랑스의 갈리마르(6관), 독일의 베텔스만(3관) 등의 부스도 북적댔다. 반면 남미와 아프리카, 중동, 동구권 국가들이 모여있는 5관은 한산했다.




올해 도서전의 큰 흐름은 예년과 비슷했다. ‘묵직한’ 인문학서나 순수문예물보다는 유명인들의 자서전이나 여행·취미 등 각종 실용서들이 주목을 끌었다. 세계 3대 테너인 플라시도 도밍고의 ‘오페라의 즐거움’이라는 책의 초고가 나돌면서 화제가 됐다. 독자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외장’에 신경쓴 책이 많았고, 아동서도 여전히 강세였다. 강인숙 부에노리브로 대표는 “아동서 시장에 새롭게 진입하는 출판사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면서 “세계적인 흐름이 책을 안 읽는 쪽으로 가면서 출판사들이 아동이나 교육 등 독자층이 확실한 쪽에 집중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주최측은 도서전의 주요 주제를 ‘미래를 위한 교육’으로 정하고 ‘식자(識字) 운동’(literacy campaign)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 독서 인구 감소에 대한 고민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위르겐 부스 도서전 위원장은 “출판이 독자의 존재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교육 문제는 기본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면서 “교육은 특히 세계화와 디지털화의 시대에 개인과 사회 발전에 무척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번 도서전에는 또 출판의 디지털화를 보여주는 ‘디지털 마켓 플레이스’와 15세기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각종 필사본과 인쇄물을 볼 수 있는 ‘고서적 전시회’가 4관에서 나란히 열려 눈길을 끌었다.




한편 한국관에는 11개사가 전시 공간을 마련하는 등 45개 출판사가 1,300여종의 도서를 전시했고, 26개사는 독립 부스를 설치했다. 국내 부스에선 상담을 하기 위해 국내 출판 관계자들을 찾는 각국 출판 관계자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대한출판협회 관계자는 “지난해 주빈국을 맡았던 게 한국 출판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등 많은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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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버금가는 도서관… 학생들로 가득
독서교육으로 '삼류'서 일류학교 변신 고양 덕양구 화수고
 





 ◇지난 17일 경기 화수고 도서정보실에서 이선희 사서교사와 도서부 소속 학생들이 함께 책을 읽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는 서울의 강남 못지않게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몰려 있다. 하지만 강남과 달리 이 지역의 고교는 별로 인기가 없다.
우수 학생들이 특수목적고나 자립형 사립고 등으로 빠져 나가면서 이 지역 고교의 대학 진학률이 낮아지고, 이 때문에 학부모들이 지역 고교를 외면하면서 실력 있는 학생이 유출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같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덕양구 화수고는 독서교육을 통해 우수학생들을 길러 내고 있어 주목을 받고 있다. 대부분의 학교들이 대학 진학률을 높인다는 명목 하에 독서교육을 외면하고 있지만 이 학교만큼은 ‘기본’에 충실한 교육을 통해 공교육을 되살리는 것이다.
세계 책의 날(23일)을 맞아 화수고만의 독특한 독서교육법이 무엇인지 알아본다.
◆“독서교육을 위해선 뭐든지 한다”=본관 2층에 자리한 도서정보실은 학교에서 전망과 위치가 가장 좋은 곳이다. 원래 교무실이 있던 자리였지만 독서교육 활성화를 위해 2001년 교사들을 과목별로 나눠 여러 방으로 내보내고 그 자리에 도서관을 만들었다.
위치가 좋은 만큼 학생들의 도서관 이용 또한 활발하다. 쉬는 시간 및 방과 후에는 책을 읽거나 도서 대출 또는 자료를 찾으려는 학생들로 북적인다.
해마다 100∼120권의 책을 읽는다는 이 학교 2학년 전영욱군은 “중학교에도 도서관이 있었지만 교실과 너무 멀고 책도 별로 없어서 이용한 경험이 거의 없었다”며 “하지만 화수고에 온 뒤로는 도서관 시설이 좋아 자주 찾으면서 자연스럽게 책도 많이 읽게 됐다”고 말했다.
학교는 또 학생들이 책에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신간 확보에 대단한 노력을 기울인다. 1년에 5∼6회씩 학생·학부모를 대상으로 희망도서 신청을 받으면 각 교과 부장교사로 구성된 자료선정위원회가 구입할 도서나 CD, DVD 등 자료를 선정한다. 도서는 보통 1회에 200∼300권을 구매하는데 지난달 말에도 고전이나 학습자료, 실용서 등 신간 위주로 200여권을 주문한 상태다. 이렇게 확보한 도서 수는 모두 1만7000권에 이르고 있다. 각종 시사잡지나 과학·예술잡지 등 매달 구독하는 잡지만도 30종에 달한다. 작은 대학교의 도서관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이 학교 박경호 교장은 “현재 학교 예산의 2% 정도를 도서구입비로 지출하고 있다”며 “앞으로 도서 구입비를 예산의 5% 수준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다양한 프로그램 운영=화수고는 단순히 책만 많이 갖춰 놓고서 학생들을 기다리지 않는다.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영상에 익숙한 학생들이 책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다양한 독서관련 행사를 실시하고 있다. 일회성 행사에 그치는 다른 학교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매년 도서관 대출 건수가 가장 많은 학생에게 독서왕 시상, 독서를 주제로 한 사진콘테스트, 독후감 모집 등을 진행한다.
이 가운데 가장 반응이 좋은 것은 매년 9월에 열리는 ‘20자 서평’ 행사.
이 행사는 학생들이 읽은 책의 느낌을 ‘포스트잇’에 20자 이내로 작성해 복도에 붙이는 것을 말한다. 행사를 열 때마다 학생들의 참여 열기가 대단해 복도가 수천 장의 포스트잇으로 도배되고 있다.
학생들은 친구들이 작성한 20자 서평을 보면서 책 정보를 얻으며 20자 서평을 쓴 학생들은 이를 계기로 책이 주는 의미를 다시 한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는다.
3년 전 이 행사를 처음 기획한 이선희 사서교사는 “한 TV 프로그램을 보다가 포스트잇을 이용하면 학생들이 책을 친근하게 생각하는 계기가 되겠다 싶어 행사를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진학률 상승은 덤=화수고가 본격적인 독서교육을 시작할 때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공부는 시키지 않고 도서관 만들기나 신경 쓴다”는 불만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독서교육이 완전히 정착되면서 이 같은 말은 사라졌다.
기본에 충실한 교육으로 학생들의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됐고, 진학률 또한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올해 졸업생 중 85%가 대학에 진학했으며, 이 가운데 서울대 진학생이 2명, 서울시내 대학에 합격한 학생이 80여명이다.
이 학교에 입학한 신입생의 성적이 전국 평균을 간신히 넘길 정도지만 진학률은 고양시내 20여개 학교 중 최고 수준이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화수고의 인기는 날로 높아지고 있다.
이 지역 학생들은 고교 진학 시 ‘선지원 후추첨’ 제도에 따라 학교를 배정받는데, 지난해 화수고를 지원한 학생이 정원의 160%에 달한다.
화수고는 10여년 전 개교 당시 인근 학교의 문제 학생을 주로 모집하면서 면학분위기가 어수선해 한때 ‘삼류학교’로 불렸지만 이제는 어엿한 지역 명문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는 것이다.
김성근 교감은 “실력이 좋은 학생들이 들어오기 때문에 진학률이 높은 것이 아니라 학교에서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때문에 진학률이 높은 것이라고 자부한다”며 “학생들의 수준을 올리는 데 독서교육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고양=조풍연 기자 jay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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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 한권의 소장하고 싶은 책 등장!!

 

 

 

 

 

p.13 울적한 내 마음을 옛사람들의 노래로 위로해 주기도 하고, 낯선 섬나라의 파도 소리로 마을을 들뜨게 하기도 한다.

p.14 하지만 대궐에 들어간 뒤로는 이 방에서 책과 만나는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늘 아쉽기만 하다.

p.19 내가 읽은 책 속의 옛 어른들은 날마다 시간을 정해 두고 책읽기에 힘써야 한다고 하셨다. 그러나 아직 어려 시각을 익히는 일에 서툴렀기에, 나는 어떻게 시간을 정해야 할 지 몰랐다. 궁리 끝에 벽에 금을 그어 해가 지나간 자리를 표시해 두기로 했다. 내 나름대로 만들어 본 해시계였던 셈이다.

p.22 온종일 방에 들어 앉아, 혼자 실없이 웃거나 끙끙대고 외마디 소리를 지르기도 하며 책만 들여다보는 날도 많았다. 사람들은 이런 나를 보고 '간서치(看書痴)'라고 놀렸다. 어딘가 모자라는, 책만 보는 바보라는 말이다. 나는 그 소리가 싫지 않았다.

p.24 가만 생각해보니, 배고플 때뿐만이 아니었다. 추위에 떨 때, 근심 걱정에 시달려 마음이 복잡할 때, 아플 때도 책을 읽으면 그 모든 괴로움이 덜어지는 듯했다. 그럴 때마다 문득 느꼈던 책읽기의 이로움을 나는 이렇게 써 두었다.

p.33 "일 년 내내 맹씨와 좌씨으 책을 읽어 봐야 우리가 도대체 무엇을 구할 수 있겠는가? 제 식솔의 굶주림 하나 구제할 수 없는 것을." "그렇지요. 당장에 팔아 한때의 굶주림을 면한 우리가 차라리 현명하지요. 맹자와 좌씨도 잘했다고 할 것입니다." 그는 기꺼이 맞장구쳐 주었다. 얼굴을 마주보녀 껄걸 웃기는 했지만, 웃음 뒤의 쓸쓸한 뒤끝을 우리는 완전히 지우지는 못했다. 과연그랬을까. 자신들의 오랜 사색의 결과물을, 양식과 바꾸어 배를 채운 우리의행동을 맹자와좌씨는 잘했다고 할 것인가.

p.43 정작 나와 동갑은 유득공의 숙부 유련이었으나, 가슴속의 이야기를 다 터놓을 만큼 허물없는 벗으로 지낸 이는 나보다 일곱 살 아래인 유득공이었다.

p.51 책 속에는 또 사람의 목소리가 있다. 세상살이와 사람살이에 대한 깨우침을 주는 나지막한 목소리가 있고, 그늘진 신세를 한탄하는 울적한 목소리도있다.

p.63  사람들은 박제가의 됨됨이가 글러 먹었다고 했다. 도무지 위아래도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잘못된 것을 보면 누구에게나 누을 부라리며 따지고 들고, 자신이 옳다고 여기면 생각을 굽히는 법이 없었다. 언젠가 그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나는 위아래를 알아야 한다는 말이 정말 싫습니다. 예의를 지키라는 이야기 같지만 결국은 집안이나 신분, 벼슬의 높고 낮음에 따라 고개를 들고 숙이는것을 정하라는 게 아닙니까? 옳고 그름에 따라 고개를 들고 숙여야지, 어찌 그 사람의 껍데기만 보고 고개를 숙이겠습니까?"

p.85 우리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위로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일 것이다. 함께 흥분하여 소리 높여 잘잘못을 따지거나, 우스갯소리로 울적한 마음을 한번 비틀어 밖으로 날려 보내는 것.
유득공은 주로 두 번째 방식을 썼다. 그의 성격이 워낙, 안 되는 일에 연연해 하기보다는 털어버리기를 좋아해서도 그렇고, 도무지 웃음기라고는 없는 우리 얼굴이 잠시나마 피어나는 것을 보고 싶어서도 그랬을 것이다.

"유득공의 마음속에는 우물 하나가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근심 걱정도 한 번 담갔다 하면 사뿐하게 걸러져 밝은 웃음으로 올라오게 하는 우물 말입니다."

p.88 유득공은 그때 일을 생각하니 다시 목이 메는지 한동안 잠자코 있다가 입을 열었다.
"이왕 엎질러진 것, 어쩌겠느냐? 너무 걱정하지 마라. 이렇게 말씀하셨지요."
이튿날 어머니는 바느질을 맡긴 지을 찾아가 사실대로 이야기하고, 옷감만큼의 대가를 바느질삯으로 갚기로 했다. 그때는 물론 , 그 뒤에도 그 일로 유득공을 나무라거나 꾸짖지 않으셨다 한다.

p.117 '자신을 보호하는 강력한 힘이 있다면 이에 맞서는 싸움이 벌어질 일은 없을 것이다. 저 날렵한 동작과 함성 앞에, 감히 누가 어설프게 칼을 뽑아 덤벼들겠는가.'

p.122 그는 이런저런 포부를 들려주었다. 그저 우리들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차근차근 준비를 해 나가다 보니 정작 자신은 그리 정말적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p.125 九書 - 책을 읽는 讀書, 책을 보는 看書, 책을 간직하는 藏書,
                  책의 내용을 뽑아 옮겨 쓰는 抄書, 책을 바로 잡는 校書,
                  책을 비평하는 評書 , 책을 쓰는 著書, 책을 빌리는 借書,
                  책을 햇볕에 쬐고 바람을 쏘이는 曝書를 말한다.    

p.127  새로운 책을 구해 책상 위에 올려 놓으면 나는 늘 가슴이 두근거린다. 책장을 펼치면 바람결에 와삭거리는 아득한 풀밭이 그 속에는 들어 있을 것만 같다. 서늘한 풀냄새를 가슴깊이 들이마시며 나는 가보지 않은 길, 내발자국으로 인해 새로워지는 길을 떠나려 한다.

p.132  글귀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싶으면, 이서구는 주저없이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전하가 강의하실 때도 마찬가지였다. 기다란 얼굴에, 조금도 어려워하거나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끝까지 할 이야기를 다하였다.강의 도중 오고 가는 이야기들을 옆에서 빠뜨림없이 기록하면서, 거침없는 그의 목소리에 나는 나지막이 혼자 감탄하였다.
나는 늘, 삶이 주는 무게에 짓눌려 가슴까지 차오른 말도 한번 더 굴려야 하는 자신이 답답하였다. 무엇을 하든 어디에 있든 주저하지 않는 이서구는 당당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나는 솔직히 그가 부러웠다.

p.136  이서구는 특히 경제에 밝았다.조정에 들어와 나라의 재정을 맡아보는 호조에서 일할 때는 여러가지 복잡한 문제들을 순조롭게 처리하여, 호조의 관리들이 이서구를 다른데로 보내기 싫어할 정도였다. 원칙에 따라 빈틈없이 일을 처리하여 못마땅하게 여기는 사람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기다른 얼굴에는 이렇다 할 표정이 없었다. 사람들이 이런저런 뒷소리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p.141 스승의 한 마디로 머릿소게 엉킨 매듭 하나만이라도 풀리면, 그 다음은 술술 나아갈 것 같았다. 몹시 애태운 끝에 그 문제가 풀리기라도 하면, 또 그런대로 스승 생각이 간절히 났다. 내가 생각한 것을 스승께 말씀드리고, 확인받고 격려받고 싶어서였다. 아, 나에게도 스승이 계신다면.

p.144 "우리가 밟고 있는 땅,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네. 세상은 드넓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거대한 자연에도 저마다의 법칙이 있지. 자기 자신에대해 잘 알려면,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네." 담헌 선생이 이렇게 말씀하시면 연암 선생도 옆에서 거드셨다. "그러자면 이제까지 지니고 있던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게야. 특히 우리는작은 나라에 산다고 해서 너무 스스로를 낮추어 보는 버릇이 있어. 큰 나라의 눈으로만 세상을 보려 하지. 하지만우리는 조선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게나. 조선 사람의 눈으로, 조선사람에게 이로운 것을 배워야 할 것이야."

p.174  장기판은 옛 중국의 한나라와 초나라의 싸움터를 그대로 축소한 것이다. 그러니 병졸은 물론 수레와 말, 대포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해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코끼리의 등장은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레車'야 장기판 위에서도 거침없이 일직선으로 내달리겠고,
'대포包'야 포신을걸쳐 놓아야 하기에 뭔가를 넘어서 날아가겠고,
'말馬'이야 무릎 관절이 구부러져야 빨리 달리니 한 번은 방향을 틀어 나아가겠고,
'병졸'들이야 물러서지는 못하니 그저 걸음씩 앞으로 옆으로 맨 몸으로 움직일 뿐이다.
그런데 장기판 위의 '코끼리象'는 어째서 그처럼 성큼성큼 넓게 움직이는 걸까?

p.176 이렇게 코끼리를 처음 본 사람들처럼, 선생은 모든 것을 자신이 알고 있는 것만을 중심으로 보려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평소에도 선생은 나와 벗들에게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자네들이 눈과 귀를 그대로 믿지 말게. 눈에 얼핏 보이고 귀에 언뜻 들린다고 해서, 모두 사물의 본모습은 아니라에."
선생이 탓하는 것은 사람들의 눈과 귀가 아니었다. 눈과 귀야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사람의 머리에 전해주는 감각 기관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를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이다.

사람들은 대부분 자신이 느끼고 싶은대로, 생각하고 싶은 대로 사물을 받아들인다.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싶은 것, 인정하고 싶은 것을 미리 정해 두고, 그 밖의 것은 물리치고 거부한다. 그러한 마음에 기초다되는 것은 역시 지난날에 보고 싶은 대로 보고, 듣고 싶은 대로 들은 자신만의 감각이나 경험이다. 이것이 바로 선입견(先入見)이다.

선입견에 사로 잡힌 사람들은, 음식은 손이나 기껏해야 입으로 집는 것이며,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모두 다리여만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리하여 이제까지 보지 못한 새로운 동물인 코끼리에 대해서는 전혀 알 수 없게 된다.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비좁은 틀에 거대한 코끼리의 몸을 구겨 넣으려는 우스꽝스러운 일이 벌어지기도 한다.

비단 코끼리에 대한 것뿐이겠는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난날의 선입견에 갇혀 있으면 새로운 변화를 거부하게 된다. 세상은 늘 이대로 계속되어야 하고 학문도 옛사람의문장을 그대로외우는 것이 제일이라여기게 된다.
선입견을 버리라는 선생의 말씀에, 나와 벗들이 벅찬 마음으로 따른 것은 당연했다.우리들이야말로 이 세상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고루한 선입견의 가장 크 피해자가 아니었던가.

p.240 그러고 보면 옛 성현들의 말씀이 담겨있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도, 결국 한 나라를 편안하게 다스려 백성들의 살림을 살 찌우고 사람으로서 아름다운 품위를 유지하며 살아가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던가. 나와 벗들은 책에서 보고 듣고 배우고 생각한 것을, 백성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최선을 다해 실천하고자 했다. 위로는 대궐의 임금님부터 아래로는 작은 지방의 수령에 이르기까지, 우리들이 시대는 그렇게 새로운 물결이 일렁이고 있었다.

p.244 아이들의 얼굴은, 그 무렵의 우리보다 한결 밝았다. 스무 살 이전의우리는, 헤어날 길 없는 그늘진 신세에 절망하기도 하고, 때로는 반항하기도 하였다. 어쩌다 떠오른 웃음 오래가지 않았고, 서로 한 자리에 모여 있어도 쓸쓸함이 아주 가시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 한 자리에 모여 있는 우리 아이들이 웃음은 환했고, 앞날도 그만큼 열려 있었다. 날마다 책에 파묻혀 있는 아버지들을 보아서 그런지, 저마다 글공부도 열심이었다.

p.249  시간을 나눈다는 것은, 반드시 얼굴을 마주 대하고 있는 사람들끼리만 할 수 있는 아니다. 옛사람들로부터 나는, 그들의 시간을 나누어받기도 한다.
어떻게 그런 일을 겪을 수 있었을까. 나라면 그 순산 이런 마음이었을텐데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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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베리상 (Newbery Awards)

- 칼데콧 상과 함께 미국의 가장 권위 있는 아동문학상

: 해마다 미국 아동문학 발전에 가장 크게 이바지한 작가에게 주는 아동문학상.

: 주최기관 - 미국도서관협회

: 주최시기 - 매년 초에 시상식1년 전에 출판된 작품 중에서 선정

: 뉴 베리 - 18세기 영국의 서적상인 뉴베리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를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

: 대상 - 소설, 시집, 논픽션 등
         - 미국시민이나 미국에 거주하는 사람의 작품에 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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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34~

너무나 많은 이들을 통해 너무나 다양한 모습으로 끊임없이 변주되어 온 사랑이라는이름. 언제, 어떤 모습으로 놓이든 사랑, 그것은 참으로 신비하며 위대한 경험이기 때문이지요.지금, 바로 이 시간에도 사랑으로 인해 눈물 짓고 사랑으로 인해 가슴 떨려하는 누군가가 우리 주변에는 있을 터입니다.

바로 그 사랑이 이루어지고 난 다음의 모습은 과연 어떨까요? 김빠지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결혼을 하고, 바가지 긁고 토닥거리며 사는, 그저 그런 일상으로 접어들게 됩니다. 그래서일까요? 세상의 많은 사랑 이야기들은 늘 '결혼해서 행복하게 잘 살았다'로 성급히 끝나버리곤 합니다. 사랑을 이루고 난 이후에는 별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없기 때문이겠지요.

그렇지만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은 경우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루어지지 않은 사랑은 이루어진 사랑보다 더 아름답기 때문이겠지요. **그런가? 꼭 그렇진 않은것 같은데...이루어지지 않은 아픈 사랑이 왜 이루어진 사랑보다 아름다울 수 있다는 건지 잘 모르겠네.. 그러니까 우리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부인이나 남편얘기 말고, 가슴 아프게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첫사랑 얘기를 졸라 대는 것입니다.

<운영전의 결말> - 좀 멋있게 얘기하자면, 궁녀와 젊은 유생의 불가능한 사랑을 위해 현실을 왜곡하지 않고, 현실의 완강한 장벽에 몸을 던지는 쪽으로 문제를 몰고 갔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 소설을 이해하는 지름길은 주인공들이 부딪친 그 엄청난 현실의 장벽과 그 장벽을 드러내기 위해 택했던 비극적인 사랑 안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운영은 자신에게 주어진 금지를 명심하고 있었건만 김진사를 향한 운영의 사랑은 금지의 선을 넘어 흐르는 것이었지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운영의 사랑은 시대의 질서를 결국은 뛰어넘지 못하고 맙니다. 처음에는 적극적으로 운영을 도와주던 궁녀 자란이 사태가 심각해지자 때를 기다리라고 운영을 말리는 모습이나, 김진사의 도망치자는 권유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자결이라는 길을 선택하는 운영의 모습에서 우리는 중세적 규범의 굴레에 굴복하고 만 사랑의 비극성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죽음이 슬프게도 하지만, 바로 그것 때문에 <운영전>은 소설적 진실성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중세적 이념과 신분적 제약에 걸려 쓰러지는 주인공의 비극적인 모습을 형상화 함으로써 중세적 질서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운영전을 조선시대 한문소설의 백미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지요.

안평대군의 운영에 대한 사랑 : 안평의 금지는 제도가 아니라 윤리 쪽에서 오는 것입니다. 운영을 어린시절 입궁하여 안평대군의 부인을 어머니처럼 여기고 있었고, 부인은 운영을 친자식처럼 사랑했습니다. 따라서 운영에게 안평은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지요. 안평의 행위를 제약하는 이런 금지는 안평이 지닌 윤리 의식의 결과입니다.물론 이 윤리 의식은 안평대군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중세사회의 윤리 규범이 빚어낸 것이기도 했습니다.

김진사는 이미 한번 특에게 속아 운영의 재물을 모두 빼앗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진사는 자신의 노비를 처벌할 아무런 힘이 없는 인물처럼 그려져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런 짓을 한 노비를 아무런 계기 없이 용서하고는 운영의 명복을 빌러 달라고 부탁하면서 시주미 40석을 맡기기까지 하지요. 독자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낼 만큼 김진사는철저히 노비에 의존적입니다.

 

<운영전을 읽고 나서 나도 이야기꾼!>

3. 운영과 김진사의 만남을 도와주던 자란은, 그들의 사랑이 막다른 곳에 이르자 운영에게 자중할 것을 충고합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운영과 자란의 생각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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