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
커트 와그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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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X가 된 트위터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가












커트 와그너의 『트위터 X』는 페이스북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SNS인 트위터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소셜플랫폼 '트위터'가 'X'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150 여명의 관계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심도있게 따라간다. 여기서 중심축은, 트위터가 '기업'으로서 겪여야 했던 내외적인 진통이다.


2006년 정식으로 출범한 트위터는 "간결성", "실시간" 등의 특징을 이용해 전세계의 사용자들을 사로잡았다. 이후 보급되기 시작한 스마트폰으로 인해 트위터는 전세계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이야기하는 소통의 창구가 되었다.









창업자 잭 도시가 올린 트위터 최초의 트윗





『트위터 X』의 1장은 대체로 트위터의 창업자 잭 도시에게 초점을 맞추며 진행된다. '잭 도시'는 일견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비슷해 보인다. 예술가적 기질이 있으며, 자유분방한 성격을 지닌 것으로 묘사된다. 또한 본인이 창업한 회사의 이사회에 의해 한 차례 밀려났다가 구원투수로 돌아왔다는 이력도 공유한다.


기본적으로 잭 도시는 『트위터 X』에서 여러 차례 강조되듯이 회사를 운영할 때, '방임주의'를 선호했다. 이는 어떤 측면에선 직원들을 신뢰하는 상사였다고 할 수도 있고, 좀 더 냉정하게 말하자면, 책임지는 걸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도시의 방식에는 장단점이 존재한다. 회의를 통한 합의를 중시한 트위터는 빠른 결정이 중요한 문제 앞에서 단호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을 해내지 못했다. 동시에, 논쟁적인 방침이나 결정을 내렸을 때, 이에 대한 비난이 직원 한 사람에게 쏠리는 것이 아니라 회사 전체에게 쏠리도록 하는 안전 장치 역할을 했다.





도시는 트위터가 사람들에게 말할 기회를 주는 서비스라며, 어떤 메시지를 확대해야 할지 결정하는 건 세상에 맡겨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플랫폼은 모든 의견과 목소리에 열려 있어야 하며, 나는 우리가 그 모든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트위터 X』, 75쪽




민주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으로서, 그리고 '언론의 창구' 역할을 하던 트위터의 CEO로서 잭 도시는 "발언의 자유"를 신봉한다. 이런 잭 도시의 신념은 크게 두 가지의 외부 요인으로 흔들린다. 첫 번째는 바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다.




1. 가장 영향력이 있는 '트위터리안', 

도널드 트럼프






『트위터 X』에서도 잘 설명되어 있듯이, 트럼프 대통령은 첫 대통령 선거 당시, 그리고 집권 1기 내내 가장 영향력이 있는 '트위터리안'이었다.





'살아 있는 댓글, 살아 있는 연결, 살아 있는 대화.'


-『트위터 X』, 54쪽




트위터의 강점은 "살아있는"이다. 『트위터 X』에서도 강조되듯이, "LIVE"다. 어떤 사안이 실시간으로 진행되는 경우, 트위터는 정보를 제일 빠르게 받아볼 수 있는 유용한 아지트였다. "아랍의 봄" 당시, 트위터는 이런 역할을 수행해냈다.


아이러니하게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 기준에서는 가장 트위터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어쨌거나 현직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 계정을 활용해 적국에 핵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위협하는 꼴을 지켜 보는 것만큼 '지금 벌어지는 일'에 잘 맞는 일은 없었다. 트럼프는 트위터의 성장에 도움이 되었을 뿐 아니라, 트위터를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고 흥미로운 서비스로 만들기도 했다.


-『트위터 X』, 100쪽





트럼프는 트위터의 헤비 유저로서 잭 도시와 트위터의 가치를 시험대에 올렸다. 발언의 자유는 어디까지 보장되어야 하는가? 극단적이고도 편향적인 주장들도 보호받을 수 있는가? 발언의 자유도는 분명 많은 사람들을 '광장(플랫폼)'으로 불러들인다. 그만큼 트위터가 지니는 플랫폼으로서의 영향력도 커지게 된다. 소셜 미디어는 현대의 아크로폴리스다. 다양한 논쟁이 실시간으로 백가쟁명하는 곳이다.




반면에, 그 광장이 혐오와 분노, 나아가 폭력을 양상하는 확성기가 된다면? 이 딜레마는 시작부터 난제다. 예컨대, 도대체 어디까지가 극단적이고, 어디서부터 편향적인 발언일까? 즉, 무엇이 "지나친 발언"인가, 결정하는 건 정말로 어렵다. 100명의 사람이 있다면, 100개의 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신이 아닌 한, 이 기준을 명확하게 정의하고 밝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2.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






잭 도시를 흔든 두 번째 주체는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다. 우리에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건을 두고 소송을 벌인 행동주의 헤지펀드로 잘 알려져 있다.



https://magazine.hankyung.com/business/article/202505294376b




이들의 등장은, 잭 도시에게 트위터가 자본을 앞세우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트위터가 상장회사이기에 당연한 현상이었다. 다만 의결권 문제에 있어서 취약점이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기도 했다. 커트 와그너는 '트럼프'와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조명하는 데 많은 분량을 기꺼이 할애한다. 잭 도시가 트위터에 일론 머스크를 불러들이는 원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둘의 문제는 외견 상으론 서로 달라보이지만, 사실 하나의 문제기도 하다. 트럼프의 문제는, 트위터가 어떤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어떤 소리들을 규제해야 하는가, 하는 내부적인 문제다. 엘리엇의 문제는 상장회사의 경영권이라는 측면의 외형적인 문제다. 하지만 이 둘은 결국 하나의 근원에서 태어난 문제다. 트위터가 상장회사라는 점이다. '지나친 발언'에서 '지나침' 정도는 많은 경우에, 트위터 광고주들의 시선이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잭 도시는 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을 '알렉산더'로 '일론 머스크'를 떠올리게 된다.






3. 일론 머스크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 대통령의 뒤를 잇는 '트위터리안'이었다. 두 사람은 비슷한 면이 많았다. 트럼프는 다수의 팔로워들을 다루고, 자신의 영향력을 사용하는 방법에 탁월했다. (『트위터 X』, 71쪽) 머스크 역시 SNS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잘 이용했다. (『트위터 X』, 323쪽)


『트위터 X』의 후반부는 사실상 일론 머스크가 주인공이다. 머스크는 트위터 매입을 중단하고자 트위터 이사회와 소송까지 벌이지만, 결국 트위터를 매입한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이 소송에서 트위터의 입장에서 일론 머스크와 싸운 간부들은 머스크가 트위터의 주인이 되자마자 해고되었다는 점이다. 그들은 소송에선 이겼지만, 결국 그 소송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었다는 점이 아이러니하다.


『트위터 X』의 작가 커트 와그너는 트위터의 기존 기업 문화를 지키지 못한 머스크에 대해 다소 비판적인 관점을 견지하고 있다. X로 간판을 바꿔달고 열심히 실적을 개선하고 있지만, 아직은 일론 머스크의 목표치에 도달하기엔 갈 길이 먼 것 같다. 다만, 일론 머스크의 이전 이력으로 살펴봤을 때, 이 거래가 성공이냐 실패냐를 재단하긴 이르다. 스페이스X와 테슬라는 한 때 파산 직전까지 몰렸었지만,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가치가 높은 회사들이고, 이를 바탕으로 머스크는 세계 최고의 부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머스크는 결점으로 보일 만큼 대답하고 야심 찼다. 그는 자율주행 자동차를 만들고, 인간이 화성에 식민지를 건설할 것이라고 습관처럼 약속하는 사람이었다.


(중략)


"그냥 이상한 일들을 시도하세요. 모험하지 않으면 얻는 것도 없습니다. 지나치게 신중하게 군다면 어떻게 혁명적인 개선을 이루어내겠습니까? 혁명은 조심성으로 하는 게 아닙니다."


-『트위터 X』, 377~378쪽







https://news.ikbc.co.kr/article/view/kbc202512130008





일론 머스크가 트위터 매입 협상에서 발을 빼려고 할 때, 공개적으로 발표한 문제는 '봇 이용률'이었다. 일론 머스크는 트위터에 사람이 아닌 봇들이 너무 많아서, 광고주들에게든, 이용자들에게든 매력이 없어진다고 주장했다. 트위터에 들어왔을 때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선언했지만, 근래의 트위터에는 점점 더 많은 봇들이 보이는 듯하다. 물론, AI의 급격한 발전이 끼친 영향도 없진 않을 것이지만, 머스크가 우려했던 것처럼, 요즘에는 사람끼리의 대화보다는 봇과의 대화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 * *





『트위터 X』는 이처럼 '잭 도시', '트럼프', '일론 머스크'를 거치면서 트위터의 역사를 훑어간다. 트위터를 비롯한 소셜 플랫폼은 '언론'인가, 하는 근원적인 물음을 독자에게 제시한다. 이 문제에서 시작된 질문은 결국 언론의 기업적 측면을 고찰하게 만든다. 언론은, 그리고 소셜 플랫폼은 대체로 광고 수입에 의존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광고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뜻이며, 이는 보이지 않는 일종의 통제가 작용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이 태생적인 딜레마를 깊이 있게 통찰한 책이 바로 『트위터 X』라고 할 수 있다.



트위터의 사용자, 언론의 역할에 관심이 있는 사람, 일론 머스크와 같은 기업인에 흥미가 있는 사람, 기업의 내부 의사결정, 외부 커뮤니케이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커트 와그너의 『트위터 X』는 아주 흥미로운 책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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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터 X - 트위터를 둘러싼 440억 달러의 싸움
커트 와그너 지음, 강동혁 옮김 / 문학동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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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가 된 트위터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는지를 설명하는 흥미로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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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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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영국의 위대한 소설가로 꼽히는 줄리언 반스의 신작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읽었다.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했다. 이후 한국에 소개되는 줄리언 반스의 소설 제목은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를 따라,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로 제목의 결을 맞추고 있다.



줄리언 반스는 초기작인 『플로베르의 앵무새』에서 시작했던 '픽션, 논픽션, 자서전이 합쳐진' 하이브리드 형식을 다시 한 번 빌려와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썼다.



*  *  *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의 첫 장을 펼친 독자는 예상치 못한 당혹감을 마주하게 될 수도 있다. 소설이라기보다 흡사 뇌과학서나 심리학 개론서를 펼친 듯한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1장은 인간의 기억에 대한 깊이감 있는 고찰을 담고 있다.


불수의 자전적 기억(IAM: involuntary autobiographical memory), HSAM 등등의 전문 용어와 읽기 난해하기로 정평이 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들렌'이 출몰한다. 이 장을 읽어나가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기억에 대한 기억'에 압도당한 모습을 그린 것 같기도 하다.



한 철학자 친구가 나에게 지적한 대로 뇌는 자신이 처리하고 지나가는 모든 것을 일일이 우리에게 알려줄 수가 없다. 그러면 우리는 압도당할 것이다. 너무 많은 정보에 파묻혀, 우리는 바들바들 떨며 훌쩍거리는 동물이 되고 말 것이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36~37쪽.





줄리언 반스가 밝혔듯이,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설을 써온 40년이 넘는 여정을 함께해 준 독자들을 향한 '작별인사'다. 이를 드러내듯이, 소설의 마지막 장은 애틋함과 섭섭함을 동시에 느끼게 만든다. 이 책의 마지막 문장에 이르서야, 나는 1장의 의미를 겨우 헤아릴 수 있었다. 


1장에는 줄리언 반스가 왜 이토록 아름답지만 쓸쓸한 작별 인사를 준비해야 했는지 그 이유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인내심을 갖고 이 난해한 첫 관문을 통과해야만 작가가 설계한 이야기의 본질에 닿을 수 있다. 1장의 의미는 이 책을 다 읽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의 전체적인 뼈대는 '스티븐'과 '진',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줄리언 반스'의 이야기다. 대학 동기였던 세 사람은, 줄리언 반스를 통해서 친해졌고 연인이 되었다. 하지만 졸업할 무렵, 헤어졌고 오랜 시간이 흘러 재회하게 되면서 소설은 본궤도에 오른다.



"너는 한 번도 없어?" 그가 물었다.


"한 번도 뭘?"


"돌이키려 한 적."


"있지, 한 두번. 마누라가 죽은 뒤에. 어쩌면 세 번."


"그래서?"


"늘 나쁜 생각이었어. 아니, 그건 진실이 아니군. 한 번은 좋은 생각이었고, 한 번은 그럴 뻔했고, 한 번은 나쁜 생각이었어."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114~115쪽.






노련한 이야기꾼인 줄리언 반스는 독자로 하여금 궁금하게 만든다. 과연 관계를 돌이키려는 시도가 '좋은 생각'이었을지, '그럴 뻔했을지', 아니면 '나쁜 생각'이었을지.


분명 두 연인은 이 중에 하나의 결말을 맞이하게 되지만,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다 읽고나면 그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소설이 뻔하디 뻔한 연애소설은 아닌 까닭이다. 오히려 작가가 평생을 통해 길어 올린 삶의 진실을 건네는 고백에 가깝다. 특히 상실에 대한 다음 문장은 오래도록 곱씹게 된다.





모든 죽음은 2차 피해를 준다. 죽어가는 사람은 곧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반면, 슬픔에 시달리는 사람은 앞으로 긴 세월 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된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94쪽.




일본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 역시 『나란 무엇인가』(21세기북스)에서 '상실의 2차 피해'를 '분인(分人)의 죽음'으로 설명한 바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일은 왜 그토록 고통스러운가. 그를 통해 생성된 나의 분인까지 잃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의 죽음과 함께 그 앞에서만 가능했던 나의 분인의 삶도 끝난다. 이제 다시는 그를 볼 수 없고 다시는 그때의 나로 살 수 없다." 




그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있지만 그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녀의 비극은 사랑을 할 수는 없는데 그녀가 주고자 하는 것이 사랑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182쪽.




모든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종종 인간관계에 지칠 때마다 되새기는 생각이 있다. 내가 누군가를 아끼는 온도와 누군가가 나를 아끼는 온도는 다르다는 것. 비극은 거기서 시작한다고. 줄리언 반스는 그 사실을 아름답게 빚어 한 편 소설로 썼다.



*  *  *









작가가 생전 마지막으로 남기는 작품을 유작이라고 한다. 대체로 소설가들은 무엇이 자신의 마지막 작품임을 공공연히 말하지 않는다. 단호하게 절필을 선언한 김승옥 작가가 예외적인 사례다.


'유작'을 대신하는 '작별 인사'라는 말은 어쩔 수 없이 쓸쓸함을 품고 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를 읽는 내내, 소설이 작별인사가 될 수 있는가, 어떤 형식이 작별 인사에 어울릴까를 생각해보게 된다. 이 질문은 이 소설의 제목은 무엇을 뜻하는가, 하는 의문과 결합된다. 



1장을 읽어나가면서, (당연하게도) '떠난 것'이 기억이라고 막연히 추측했다. 4장까지 읽어나가면서도 감을 잡기 어려웠다. 마침내 5장에 이르러서야 좀 더 구체적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글을 발표한 지 44년이 지나니 내가 나 자신을 반복하기 시작하고, 똑같은 낡은 비유와 밈으로 돌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좋아하는 말을 되풀이하고, 심지어 (실제로는 아니기를 바라지만) 내 우스개마저 반복한다는 느낌, 또는 생생한 두려움도 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247쪽.




떠남은 대개 도착에 이른다. 물론 한 번도 항구를 떠난 적이 없던 저 프랑스의 시적 몽상가들을 보면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역, 버스 터미널, 공항에서 우리는 출발과 도착 알림판을 본다. 우리는 가고, 우리는 도착하고, 우리는 귀환에 나서고, 다시 집에 다다른다. 우리는 그런 타성을 가지고 산다. 하지만 그런 궤도는 더 크고 더 모순된 구조 안에 놓여 있다. 우리 삶에서는 도착이 먼저 오고 떠남은 마지막에 온다. 도착으로 이어지지 않는 떠남이지만.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215쪽.




책의 원문 제목을 확인했을 때, 사소한 의문이 있었다. 원문 제목은 'Departure(s)'다. 그저 출발, 떠남 정도를 의미할 뿐이다. 위의 문장에도 나오는 '공항'이 가장 먼저 떠올랐다. 그 의문은 위 대목에 이르서야 해소되었다. 



삶을 도착으로 시작해, 떠남으로 끝나는 과정으로 본 줄리언 반스는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 인사를 건넨 것이다. 인생을 소풍에 비유했던 시인처럼. 그러니 이 소설은 인생의 황혼기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잔잔한 위로가 될 것이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 천상병, 「소풍」





작중 '진'의 입을 통해 줄리언 반스는 스스로를 '어쩔 도리가 없는 X 같은 소설가(117쪽)'라고 자조한다. 하지만 책을 덮으면서,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줄리언 반스만이 쓸 수 있는, 독자를 위한 우아하고 아름다운 작별 인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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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줄리언 반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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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반스가 건네는 아름다고 우아한 작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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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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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만이 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문학동네



소설가 김혜진의 10번째 소설 『오직 그녀의 것』을 읽었다. 『오직 그녀의 것』은 주인공 '홍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다. 소설 말미에도 석주가 스스로 복기하듯이, "극적인 사건도, 놀라운 반전도 없는 서사. 개성도 매력도 없는 주인공이 완성해 나가고 있는 그 스토리"(263쪽)에 가깝다. 소설 전반을 훑어봐도, 그나마 드라마틱하고 극적이라고 할 수 있는 사건은 "결혼을 포기하는 지점" 정도만 꼽을 수 있다. (이것도 그저 물 흐르듯이 흘러가다보니 사실 그렇게 인상적인 사건이라는 느낌은 주지 못한다.) 


이러한 지점에서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를 연상시킨다.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은 세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고. 『스토너』를 읽어보지 않은 사람, 『스토너』를 읽었지만 좋아하지 않는 사람, 『스토너』를 읽고 인생책으로 꼽는 사람. 세상의 모든 책이 다 그렇겠지만, 『스토너』, 그리고 『오직 그녀의 것』과 같은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책은 이런 호불호가 더 극명하게 갈리는 듯하다.


남들이 보기엔 의미도 없어보이고, 그다지 중요해보이지 않은 일에 두 소설의 주인공, 스토너와 석주는 강하게 매료된다. 그리고 끝내 한 번뿐인 삶을 그 일에 내던진다. 이들의 여정을 지켜보는 독자는 혼란에 빠진다. 이게 그럴 만한 일인가? 동의하는 사람은 주저없이 그 인물을 사랑하고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스토너』를 인생책으로 꼽는다. 하지만 끝끝내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은 그 책을 그저 지루한 책으로 여기게 된다.



김혜진 작가의 소설 『오직 그녀의 것』은 추천사에도 언급되어 있듯이, <응답하라 1988>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다. 홍석주가 처음 편집일을 시작한 시기가 90년 대 어간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한 인물의 20대부터 60대까지 장장 40 여년을 차분히 조망해간다는 점에서 <폭싹 속았수다>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석주는 소심하고 자신을 드러내기를 좋아하지 않는 인물이다. 삶을 통틀어, 그녀답지 않은 행동을 할 때가 있는데, 그 첫시작이 '소설 창작수업'을 청강한 일이었다. 인기 수업인지라 들을 수 없게 되었는데, 석주는 무작정 교수를 찾아가 청강을 부탁한다. 처음에 거절했던 교수도 이내 석주에게서 무언가를 느낀 듯이 청강을 허락한다. 석주는 교수(를 비롯한 다른 선배 편집자들)의 호의가 어디에서 기인했는지를 소설 말미에 깨닫는다. 이 수업이 종강하고 석주는 교수에게서 책을 한 권 받는다. 그리고 이 때 느낀 감정은 석주의 인생 항로를 완전히 바꾸어버린다. 





창을 통과한 햇살이 푸르스름한 표지의 한 부분을 환하게 비추었다.



(중략)



추운 날씨였지만 한기를 느낄 수 없었다. 쌀쌀한 겨울의 정오 속에서 꺼지지 않는 어떤 강력한 온기를 손에 쥔 사람은 자신 하나뿐인 것 같았다.


25~27쪽




외부의 풍경을 묘사함으로써 인물의 내면을 은근히 드러내는 기법은 현대 소설이라는 형식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직접적인 감정 표현에서 벗어나 은유적으로 인물을 보여줄 수 있는 세련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모든 전위가 시간이 흐르면 그 빛이 퇴색하듯이, 이제는 다양한 도구 중 하나로 여겨질 뿐이다. 하지만 김혜진 작가는 이 소설에서 그 도구를 가장 중요한 주인공의 대변자로 삼은 듯하다. '햇살'은 홍석주의 인생 전반에 걸쳐 등장하면서, 석주가 겪는 희로애락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를테면, 이런 구절들.




횡단보도 신호를 기다리다가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 그러면 오층짜리 건물이 햇살을 받아 은빛으로 빛났다. 건물이 스스로 빛을 뿜어내는 듯한 그 찰나의 모습은 석주가 한 시간 남짓 걸리는 출근길에 꽤 적응한 뒤에도, 회사생활에 제법 익숙해진 뒤에도 처음 보는 것처럼 놀라운 데가 있었다.


39쪽.




식사를 시작할 떄엔 오기서의 검은 구두를 환하게 덮고 있던 햇살이 미세하게 거리 쪽으로 물러나고 있었다.


56쪽.




날이 개는 모양인지 가느다란 햇살이 책상 끄트머리에 걸려 있었다.


66쪽.




창을 통과한 햇살이 그의 구부정한 뒷모습 위로 쏟아지고 있었다.


97쪽.




두 사람은 애매한 말들을 주고받다 아무런 소득 없이 카페를 나왔다. 오후의 강한 햇살이 두 사람 발밑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127쪽.



화창했던 날씨는 흐려졌고 오후가 되자 급격히 어두워졌다.


247쪽.




그녀는 창을 통과한 햇살이 조금씩 책상 안쪽으로 밀려드는 것을 지켜보는 중이었다. 이윽고 햇살이 그녀가 검토중인 원고 뭉치의 모서리를 환하게 만들었다.


264쪽.



소설은 애써 석주와 거리를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저 그녀를 관찰하는 카메라 렌즈가 되겠다는 듯이. '그녀'라는 호칭이 주는 다소 딱딱한 뉘앙스와 작가가 서술하는 석주의 내면은 어느 정도 정제된 언어와 표현들이다. 직접적이거나 절절하게 와닿지 않는다. 이 거리감이 소설 전반의 고요하고 잔잔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거리감과 더불어 일견 평평해 보이는 서사는 때때로 독자로 하여금 몰입감을 느끼기 어렵게 만든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석주라는 주어를 지워버린다면, 편집자의 에세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김혜진 작가는 '햇살'에게 더 큰 역할을 부여한 것처럼 보인다. 석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모든 걸 다 말해주는 것보다 햇살이 석주의 감정과 생각을 더 내밀하게 대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석주가 연애에서 삐걱거릴 때 그동안 자주 등장하던 햇살에 대한 묘사는 소거되어 있다. 그 연애의 결말을 암시하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사람이 있고, 그저 인생이 흘러 가는대로 사는 사람이 있다. 마음 가짐의 문제라고 치부해버리기엔 인생은 너무 복잡하다. 인생을 긍정하는 정도의 차이쯤이라고 적어보고 싶다. 우리 앞에 놓은 삶은 석주처럼 오직 자신의 것을 획득해 내는 여정인지도 모른다. 



대단할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그 여정은 오직 석주에게 속한 것이었고 그녀만의 것이었다.


264쪽.




그렇다면, 무엇이 석주만의 것이었을까. 다 읽고나서 든 생각은 이렇다. 오직 햇살만이 그녀의 것이었다. 햇살이 석주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감정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등장하는 점에서 유추해볼 수 있지만, 햇살이 가지는 속성 때문이기도 하다. 햇살은 손에 쥘 수 없다, 당연하게도. 그리고 그다지 의식하지 않는다면 평소엔 잘 느끼기도 어렵다. 또한 누군가가 명확히 소유한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게다가 같은 햇살을 보고도 어떤 사람은 눈이 부셔서 짜증이 난다고 말할 것이고, 다른 이는 따뜻해서 사랑스럽다고 말할 것이다. 



주어를 한 번 바꿔볼까. 햇살에서 문학으로. 


문학은 누군가가 명확히 소유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울 것이고, 같은 작품을 읽고도 서로 상반되는 해석을 내놓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결국, 석주는 그 햇살 같은 문학을 사랑했던 게 아닐까. 석주가 아래와 같은 사랑을 준 대상은 그 누구도 아닌 문학이었다. 



세상보다 늦되고, 허무해보이기까지 하고, 자꾸 마음을 다치게 만들지만, 그럼에도 그 언저리에라도 있고 싶은 것. 그럼에도 그 곁에 머물고 싶어지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니면 뭐라 말할 수 있을까.




석주가 아는 사랑은 문학을 통해 배운 것이어서 비현실적이고 불완전했다. 그녀는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전복시킬 수 있음을 알았지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 알지 못했다. 사랑은 그것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선택적으로 주어지는 특권 같았고, 허구의 형식 안에서만 존재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 같기도 했다.


144쪽.


그 무렵 석주는 자신의 취향을 조심스레 점검하기 시작했다. 규한과 비교하면 자신이 애정하는 글들은 어딘가 구태의연하고 무미건조해 보였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는 무관하게 늘 같은 자리에 머무는 듯했고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듯했다. 이런 고민이 조바심이 되고, 불안으로 번질 때도 있었다.


168쪽.


좋아하는 게 이렇게 무섭습니다. 밉고 싫고 그만두고 싶어도 꾸역꾸역해나가게 되거든요.예전에 제 사수가 그러더군요. 뭘 좋아한다는 게 원래 그런 거라고. 더 좋아하고 많이 좋아할수록 마음 다칠 일이 많다고.


253~254쪽.




출판과 관련된 소설이다 보니 몇몇 현상을 포착한 문장들이 재미있었다. 




어떤 독자들은 좀 늦게 오기도 해요.


132쪽.



저자의 손을 떠난 책은, 독자들의 내면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다시 쓰이고 완성되어가는 듯했다.


187쪽




또한 작중 등장하는 에세이집 『내 마음의 지도를 따라』는 TV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언급하자 판매부수가 훌쩍 뛰는데, 인플루언서의 입김이 큰 영향력을 끼치는 작금의 출판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끔 한다. 장편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문장들이 매끄럽고 정갈해서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점 역시 큰 장점이다. 



다만 아쉬운 점도 없지 않다. 출판계가 지나온 역사에 정통한 이들이라면, 그다지 개의치 않을 수 있겠으나 일반 독자들에게는 '시간대'에 대한 감을 잡기가 어려워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졌다. 작중 저자 안정묵은 故 마광수 작가를 떠올리게 하는데, 이러한 일은 거진 2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물론, 한 편의 소설에서 한 사람의 40여 년의 여정을 담아내다보니 그랬을 거라 짐작은 하지만, 시간대가 너무 훅훅 넘어가 작중 인물이 속한 시간대가 어디인지 짐작하기 어려웠다. 또한 종종 어느 대목은 너무 에세이 같기도 해서 소설을 읽는 것인지 에세이를 읽는 것인지 아쉬움을 느끼기도 했다. 소설을 읽는 것과 에세이를 읽는 것은 독자가 바라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평소에 오타에 대해서 사람이 하는 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넘어가는데, 어쩐지 교정교열로 사회에 발을 디딘 주인공이 등장하는 소설에서 오타를 발견하게 되니 더 눈에 띄는 기분이었다.



골목 안쪽에 차리한 두번째 가게 (1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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