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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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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윤이 소설가는 「되돌아오는 곰」을 통해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5년에는 단편소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를 통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같은 해 장편소설 『정전』으로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수정 작가와 더불어 근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함윤이 소설가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는 총 7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특이하게도 신춘문예 등단작인 「되돌아오는 곰」은 실려 있지 않다.



「자개장의 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 세계」


「나쁜 물」


「천사들(가제)」






「자개장의 용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개장이 이 소설의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 증조모때부터 물려받은 자개장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늘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제약은 "떠남"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끔 한다. 돌아오는 방법을 염두에 둔 채 떠나는 것은 정말로 떠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다녀옴"의 일부일 뿐.


진정으로 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버린 순간에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개장의 용도」의 말미에 이러한 의미가 엄마의 입으로 드러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아주 멀리, 쉽사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다녀오지 않고" "떠난다."



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너더러 자개장을 쓸 때는 돌아올 거리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누구한테도 이 말은 하지 않았어. 그게 나를 떠날 방법으로 쓰일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너희가 떠날까 봐.


「자개장의 용도」, 41쪽.



「구유로舊遊路」



두 번째 소설인 「구유로」에도 "걷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함께 무대를 꾸미던 동료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무작정 걷는다. 걸어서 그들에게 도착하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도대체가 걷는다는 행위가 소원 성취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오랜 시간 걷는 행위는 통증을 동반한다. 통증은 죽어감이나 문제적인 징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살아 있음을 증거하기도 한다. 국토종주, 삼보일배 등 몸을 혹사시키는 단순한 방법들은 수행의 한 방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의 신체에 고통을 가해 마음을 닦고, 그리하면 초월적인 존재가 소원을 들어줄 거라는 단순한 바람의 발로 아닐까.


「자개장의 용도」에도 걷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나'가 그렇다. 왜 이 여자들은 걸어야만 했을까?


걷는다는 건 이족 보행이 가능하게 진화했음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로워져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인류는 다른 짐승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라고 퉁쳐서 말해도 될까?

괜찮다면, 이는 곧 '진보(進步)'를 의미한다. 진보의 한자가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점과 함께 곱씹어볼 만하다.


걷는 행위는 결국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절박하게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끔 기능하는 듯하다.


나는 구유로를 생각한다. 그 집을 떠나온 날 이후로 매일 그래왔듯이, 그 마당과 복도 그리고 방 들을 떠올린다. 푸른 빛으로 일렁이던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몸을 그린다. 어깨와 배 등 가슴 그리고 무릎과 허벅지 사이까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사라의 몸은 항성과 위성이 겹치는 순간처럼 아주 잠시 드러나며, 다시는 잊히지 않는다.


「구유로」, 83쪽.



「강가/Ganga」



"강가"에는 크게 3가지 뜻이 있다.


강가, Ganga

/강가/

명사

힌두교의 하천(河川)의 신(神). 갠지스 강(Ganges 江)을 신격화(神格化)한 것임.


강-가, 江-

/강가,-까/

명사

강줄기가 육지와 잇닿은 곳. 또는, 그 부근. 강변(江邊). 하반(河畔).


강ː가, 降嫁

/강가/

명사

왕족의 딸이 신하의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



「강가/Ganga」는 이 소설집 안에서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남자를 사러 낯선 도시에 온 여자의 이야기다.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여성을 내세워 독립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낸다. 소설 속의 '나', 또는 '강가'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얼핏 남성 의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내 남성을 "사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강가'의 3번째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태도다.


이러한 독립 영화적인 특성과 더불어 고전 영화 같은 분위기도 동시에 갖고 있다. 여성과 그가 만나는 남성들의 다소 연극적인 상호작용을 보고 있노라면 70~80년대 흑백 영화의 향수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에 출간된 함윤이 작가의 『정전』이 여공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이 여공의 이야기가 이 소설이 씨앗이 되었을지 살펴보는 점도 재밌는 독법이 될 것 같다.




「수호자」


「수호자」는 작중 화자가 뉴질랜드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떠나가던 함윤이의 인물들은 이제 돌아온다. 다만, 돌아온 화자는 혼자가 아니다. 귀신과 함께다. 표제작인 「자개장의 용도」와 비슷하게 환상성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며, 언뜻 퀴어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귀신과 사람은 죽음과 삶이라는 명백한 경계로 갈려진 존재들이기도 하다. 「수호자」를 기점으로 앞의 세 작품에서는 강가, 늪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던 "경계"가 추상적인 단위로 확장되기 시작된다.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름이 척추를 따라 번졌다. 여자가 말했다. 이걸 귀신이라고 부르는 건 네 자유지만, 떼어내려고는 하지 마. 무조와 똑 닮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면요? 바닥에 주먹질하는 기분으로 매일 버터기는 싫어요. 귀신이든 뭐든, 붙잡고 사는 게 너무 어려우면 어떻게 해요?


「수호자」, 152쪽.




「규칙의 세계」


「규칙의 세계」는 쉐어하우스처럼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산다는 설정에서 「구유로」와 묶어볼 수 있으며, 미신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개장의 용도」, 「수호자」의 냄새도 난다.


또한 "거울"과 "산"은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계"의 이미지가 짙게 작용한다.



「나쁜 물」


「나쁜 물」은 「천사들(가제)」와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선과 악은 얼핏 절대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가치판단은 대체로 주관적이다. 선악의 문제가 명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는 지점들은 언제나 선악이 흐릿해지는 경계에 놓여져 있을 때다. 윤리의 경계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나쁜 물」에서 '너'가 '범죄자'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었던 순간처럼. 이렇게 선의가 죄책감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천사들(가제)」


「천사들(가제)」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꾸는 꿈이 주를 이룬다. 꿈에서 친구와 내가 같이, 또 따로 알던 사람들이 두 사람이 만드는 영화 배역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등장한다. '나'는 자꾸만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가 하는데, 이처럼 이 소설에서 "경계"는 현실과 꿈의 사이로 옮겨지고 자꾸만 흐릿해진다. 마침내, 3개의 배역에 지원한 9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의 경계마저 지워버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 이모님은 자신이 옛 영화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좋은 영화들이 오래 남아 옛것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도 그런 거 만들어. 이모님은 종종 덕담처럼 말했다. 오래가는 거 말이야.너희가 죽은 후에도 길이길이 남는 거.


「천사들(가제)」, 264-265쪽.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Ganga」, 92쪽.


이처럼 함윤이의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서 "경계"는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 무언가를 가르는 기준이라기보다는 그 경계를 사이에 둔 두 공간, 두 가치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과정과 그 의미에 집중하는 듯하다.


앞의 세 작품에선 강을 건너고(강을 건너도 여전히 강 건너임에도), 늪에 빠지고, 마침내 강물에 빠진다. 중후반에 배치된 작품에 이르게 되면, 경계는 서로 다른 세계, 선과 악의 윤리, 꿈과 현실, 생과 사처럼 추상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를 위해 환상적인 요소를 마음껏 끌어들이며 적재적소에 표현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함윤이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경계선 위에서 태어났다고." 나는 이 작가가 그려놓은 다음 경계선을 쫓아서 『정전』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개장의 용도』를 덮는다.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Ganga」,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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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DNA
유응준 지음 / 모티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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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올해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업가나 사기꾼이나 매한가지긴 해.

근데 사업가가 사기꾼이랑 다른 게 딱 한 가지 있어.


시작은 허풍일지라도 끝은 아니라는 거지.



모든 성공한 기업들에는 대체로 이 말을 적용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차고에서 윈도우 개발을 시작했을 때, 제프 베조스가 인터넷으로 도서 배송을 시작했을 때,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을 매각하고 테슬라를 사들이고, 스페이스X를 창업했을 때.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정주영 회장이 갯벌 사진을 들고 그리스 선박업주 리바노스를 찾아가고, 영국 은행에 찾아갔을 때. 너무 먼 이야기인가? 김병훈 대표의 APR 사례도 있다.


그들의 비전은 남들이 보기엔 허풍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 각국 경제에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게 '기업가 정신' 아닐까.


엔비디아의 젠슨 황도 다르지 않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리니지 등의 열풍으로 인해 PC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1990년대 젠슨황은 한국의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엔비디아가 생산한 그래픽카드를 팔기 위해서였다.


제품을 팔기 위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발품 팔기를 마다하지 않던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이제 애플을 제치고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 되었다.


모티브에서 출간된 『엔비디아 DNA』는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 출신인 유응준이 직접 이런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성장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CPU와 GPU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 레전드 시연회




『엔비디아 DNA』에서 저자가 수차례 강조하는 지점은 젠슨 황의 유연한 판단, 그리고 변화에 대한 과감한 베팅이다. 엔비디아의 기존 주력 상품은 그래픽카드였다.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면서 팔려고 했던 제품도 그래픽카드였다. 그러나 현재의 엔비디아의 핵심 상품은 그래픽카드에 연산 기능이 더해진 GPU다.


반면 진짜 통찰을 가진 리더는 시장이 아직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숫자도, 사례도, 확신도 없다. 대신 기술의 방향성과 구조적 필연성만 존재한다. 젠슨 황은 늘 이 필연성에 베팅해 왔다.


『엔비디아 DNA』, 21쪽.



저자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본 후에야, AI 시대가 열렸음을 깨달았고 그동안 젠슨 황이 강조했던 방향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고사양 게임을 돌리기 위한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만 알려진 엔비디아가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건 3가지 사건이 있다. 비트코인 채굴 열풍, 테슬라 자율주행 시연, 생성형 AI의 등장.


이 셋 모두 고성능 GPU를 필요로 하고, 이에 맞춰 젠슨 황은 재빠르고 과감한 결정을 통해서 엔비디아를 성장시켰다. 『엔비디아 DNA』에서 특히 강조되는 젠슨 황의 2가지 사고 방식이 있다.











1. TOP 5 Things





엔비디아 회의에서 젠슨 황은 "Top 5 things"를 강조한다고 한다. 이는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한해서 당장 "집중해야 할 5가지 목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해서 몰두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당연하게도 비슷한 규모의 대기업들을 상대하는 기업이고, 두 대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모두 따지다보면 업무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공룡 기업은 필연적으로 관료제적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 DNA』에 자주 보여지는 젠슨 황의 면모는 경직된 분위기를 타파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을 독려하는 데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2. 실패를 두려워 말고 실패에서 배워라.





마찬가지로 회의에서 젠슨 황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Good. Now we know."


『엔비디아 DNA』, 90쪽



이러한 젠슨 황의 태도를 저자는 "지적 정직성"이라고 표현한다. 직원들이 실패했을 때는 문제 삼지 않지만, 그 실패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이 시작되면 젠슨 황은 질책한다고 한다. 실패에 대해 변명하기 시작한다면, 실패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없고, 실패를 두려워해 소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젠슨 황은 직원들을 질책하기보다 이제 문제를 더 정확히 알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에디슨이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작동하지 않는 1만 개의 방식을 알았을 뿐이다."라고 한 말과 겹쳐진다.


이러한 "지적 정직성"이 이 회사를 급격히 변하는 기술, 경제 상황 속에서 굳건히 자리매김한 회사로 만든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이 회사(엔비디아)는 항상 가장 먼저 성공한 기업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틀렸음을 인정한 기업이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기업이었다.


『엔비디아 DNA』, 42쪽.






하루마다 달라지는 시대





요즘의 시대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하루만에 모든 게 달라지는 시대 같다. 이란과 미국의 전쟁, 코스피의 급격한 급등, 생성형 AI들이 점점 빠르게 장악하는 인간의 영역, 현대차의 아틀라스 등등. 하루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나만 빼고 전부 변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끔 만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엔비디아, 그리고 젠슨 황이 보고 있는 더 먼 미래를 독자들에게 살며시 보여준다. 이 지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엔비디아는 숱한 격변을 성공적으로 넘어온 기업이고, 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GPU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그 자체다."


(…)


이제 엔비디아는 더 이상 GPU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회사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단순한 하드웨어 묶음이 아니다. 지식이 흐르고, 연산이 축적되며, 시간이 압축되는 구조다. 칩을 넘어 시스템으로, 시스템을 넘어 공장으로. 엔비디아는 이렇게 스스로를 재정의해왔다.


『엔비디아 DNA』, 108쪽, 123쪽.



이 모든 변화가 모이는 지점이 바로 AI Factory 개념이다. 젠슨은 데이터센터를 더 이상 IT 인프라가 아니라, 지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정의했다. AI Factory는 GPU, 네트워크, 스토리지, 전력, 냉각,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생산라인처럼 결합된 구조이며, 여기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AI 토큰', 지능의 단위다.



『엔비디아 DNA』, 301쪽.





그래픽카드, GPU, 시스템, 피지컬 AI, AI 팩토리.


서두에 언급했듯이, 누군가는 허풍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허풍까지는 아니어도, 그게 과연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미래를 꿈꾸고 실현시키는 엔비디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엔비디아가 B Player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AI 시대에는 평균이 곧 한계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DNA』, 74쪽.


AI 시대는 이미 열렸다. 엔비디아에선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B player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기업이 더 나은 직원을 뽑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AI 시대에 오면서 평범의 기준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전 시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 받고, 그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지 못할 것이라는 자극을 주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예견했기에 젠슨 황은 오래 전부터 이런 말을 해온 듯하다.



"나는 여러분이 충분히 고통받기를 바란다."


『엔비디아 DNA』, 29쪽.



끊임없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거기서 생기는 고통을 극복하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A Player가 될 길인지도 모르겠다.


성장하는 기업을 창업하고 싶거나, 엔비디아, 젠슨 황, 또는 다가올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미래가 궁금하다면 『엔비디아 DNA』가 상세한 해설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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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하동환 지음 / 에스엠디자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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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정원 대공수사 요원 출신인 하동환의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를 읽었다.

2024년 1월 1일부로, 국정원은 그동안 해오던 대공수사 업무를 경찰로 이관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는 소를 잃은 농부가 외양간을 고치는 마음으로 쓴 책처럼 읽힌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 실린 간첩 수사의 역사는 흥미롭다.

1970~1990년대까지는 "연고선" 간첩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주로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의 혈연을 이용한 공작 방식이다. 이때 이후로 완전한 북한 출신인 "새세대 공작원"들이 등장했으며, 놀랍게도 근래까지 "자생 간첩"이 활동하다가 검거되기도 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서는 "남조선노동당 사건", "민혁당 사건", "일심회", "RO" 등 굵직한 사건들을 아우른다.


특히 내 이목을 끈 부분은, 요즘 북한의 문화교류국은 "유튜브" 댓글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스테가노그라피"라는 암호 생성기, 해독기를 사용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유튜브" 댓글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엔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서 익명의 사람들이 특정한 좌표를 주고 받는다고 의혹을 제기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드보크 좌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정원의 실체에 대해선 잘 몰라도 원훈만큼은 유명하다. (현재의 원훈은 이재명 정부에 들어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 원훈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북한의 대남공작과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해온 국정원은 국회의원들의 입법에 의해 수사권을 잃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제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입법시킨 다수당 의원들 중 많은 수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이력이 있고,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상당한 고초를 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210쪽)


하지만,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국정원은 FBI의 수사권과 CIA의 정보력을 동시에 지닌 막강한 권력기구이기도 하다. 중정이나 안기부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만 빼고는 뭐든지 가능하다."와 같은 묘사가 나오는 건 그런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압 수사의 결과물들이 축적되어 대공 수사권 폐지에 한몫했음도 부정할 순 없다.


실질적으로 통진당 사건, 이태원 참사 시위 지시문 등을 살펴볼 때, 북한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의견대로 이러한 북한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선 국정원이 대공 수사를 맡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앞서 언급한 강압 수사나, 저자가 책에서 고백했듯이 잘못된 정보를 재판에 사용했던 문제 등은 국정원의 자승자박이었다. 따라서 이 수사권을 국정원에게 돌려주되,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이 마련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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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극히 사적인 일본 - 전 아사히신문 기자가 솔직하게 말하는 요즘 일본 지구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나리카와 아야 지음 / 틈새책방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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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이웃나라, 가깝지만 또 먼 나라, 일본



『지극히 사적인 일본』의 저자 나리카와 아야는 오사카 태생이다. <아사히신문>에서 기자로 근무하면서 일본 곳곳으로 파견을 나가서 근무하면서 일본의 여러 모습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두 차례 유학을 와 한국 문화에도 친숙한 편이다. 근래에는 한국의 방송에 출연하는 등 한국와 일본 양국을 오가면서 한국에는 일본을, 일본에는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틈새책방이라는 곳에서 출간되었는데, "지극히 사적인" 시리즈를 밀고 있는 듯하다. 우리나라 방송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는 이탈리아의 알베르토, 러시아의 일리야, 영국의 피터 번트가 각각 『지극히 사적인 이탈리아』, 『지극히 사적인 러시아』, 『지극히 사적인 영국』을 집필했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는 전체적으로 통통 튀는 문체로 구성되어 있다. 통번역도 할 수 있는 저자의 역량 덕분에, 번역체 느낌보다는 저자 고유의 언어가 살아 있는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을 읽는 내내, 한국말을 정말 잘하는 일본인 친구가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전반적으로 한국과 일본의 문화를 비교한다. 당연하게도 그 무엇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종종 인터넷에서 한국은 "서일본", 일본은 "동조선"이라고 부를 때가 있다. 대체로 서로의 안 좋은 사회적 문화나 특성에서 공통점을 발견했을 때 사용한다. 그만큼 한국과 일본은 비슷한 점이 많은 이웃나라다. 북한이나 중국, 대만과 함께 서로에게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도 하며, 안 좋은 역사로도 묶여 있는 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비슷하다고 생각했지만, 정말 다르다는 점을 새롭게 배울 수 있었다. 일본에 관심이 많아서 대체로 알고 있는 이야기도 많았지만, 이런 지점은 정말로 양쪽 문화를 깊숙이 체화하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려줄 수 없는 내용 같았다. 호칭의 문제는 한국 사람도 헷갈리는 경우가 많은데, 서로 다른 문화권이라면 더 헷갈리기 마련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 사람 중에 '씨'와 '상(さん)'을 같다고 생각해서 쓰는 사람이 많은데 씨보다 상이 훨씬 쓸 수 있는 범위가 넓다. 상은 총리에게도, 사장님에게도, 후배에게도 쓸 수 있다. 한국에서 직원이 김 사장님을 "김 씨"라고 부르면 실례가 되겠지만, 일본에서는 직원이 다나카 사장님을 "다나카상"이라고 불러도 괜찮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92쪽


또한 일본에는 "2세대 대출"이라는 게 있다고 한다. 한국에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생소한 개념이라 신기했다.



친척 중에 크게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큰아버지 집 벽에 금이 갔다. 단독 주택이었는데 지진 몇 년 후에 '2세대 대출'을 받아 다시 집을 지었다. 큰아버지가 정년퇴직 때까지 갚고 그다음에 이어서 장남이 갚는 대출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13쪽



"유도리"라는 말이 양국에서 가지는 뉘앙스 차이도 재밌었다. 유도리는 한국어에 남아 있는 일본어의 잔재라고 한다. 한국에서 "유도리 있게 하자.", "저 사람은 유도리가 없다."라고 하면, "융통성 있게 하자.", "저 사람은 융통성이 없고 꽉 막혔다."라는 의미를 가진다. 물론, 이는 일본어의 원래 의미인 "여유"와도 의미는 대략적으로 통하긴 한다. "여유 있게 일을 하자.", "저 사람은 여유가 없다." 정도로 표현해도 말의 뉘앙스는 알아들을 수 있다. 정확한 의미는 "융통성"이 맞다.



한국에서는 '유도리'를 '융통성'이라는 뜻으로 사용하는데, 원래 '여유'를 뜻하는 일본어 발음은 '유토리'에 가깝다. 일본에서는 1987년부터 2004년에 태어난 세대를 '유토리 세대'라고 부른다. (…) 유토리(여유)가 있는 학교 생활을 보낼 수 있게 한 것이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03쪽



일본만의 고유한 놀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었는데, 술게임이다. '기쿠노하나'라는 놀이라고 하는데, 술자리 인원에 맞게 술잔을 뒤집어 놓는다. 그 중 하나에는 '국화'를 숨겨놓는다. (상상해보자면 그러고나서 아마도 야바위 게임을 하듯이 잔을 마구 섞지 않을까?) 그때부터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잔을 뒤집는다. 국화가 있는 잔을 뒤집은 사람이 그때까지 뒤집어진 잔만큼의 술을 마셔야 한다고 한다. 저자의 말처럼 정말로 "어떻게든 마시게 하겠다는 의지가 충만한 음주문화"다. (77쪽)



「여성 천황의 가능성」이라는 꼭지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일본에선 역대 8명의 여성 천황이 있었다고 한다. (물론, 천황의 계보는 과거로 갈수록 정확한 편은 아니긴 하다.) 그러나 메이지 유신에 의해 공포된 '일본국 헌법', 그리고 미군정 시절 반포된 '일본국 헌법'에 의거한 '황실 전범'에서는 남성의 세습만을 인정한다.


지금 나루히토 천황에게는 딸밖에 없어서 만약 나루히토 천황이 자리에서 물러나면, 동생인 왕세제가 물려 받거나, 왕세제도 고령인 점을 감안하여, 승계 2순위인 왕세제의 아들이 물려받을 수도 있다고 한다.


이 책이 쓰여진 건 2025년 여름인데, 그 이후 2025년 10월에 사상 처음으로 여성인 '다카이치 사나에'가 취임했다. 게다가 2026년 2월에는 의회를 해산하고 개헌 의석수까지 확보할 만큼 강력한 지지를 받고 있다. 이번에 새로이 취임하면서 '황실기본법'도 고치겠다고 하는데, 근대화 이후 사상 첫 여성 총황이 탄생하게 될지도 귀추가 주목된다. '평화 헌법'이 얼만큼 고쳐질지를 예의주시하면서 같이 관심을 갖고 챙겨볼 만한 사안인 것 같다.



「외면하는 가해의 역사」 꼭지도 흥미로웠다. 우리는 피해자의 입장이어서 더 흥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전체적으로 중립적인 관점에서 쓰여졌다. 어느 한 쪽을 일방적으로 편들지도 않고, 나리카와 아야 개인이 한일 양쪽에서 불편한 점은 솔직하게 말하고, 좋았던 점 역시 솔직하게 적었다. 하지만 회색 지대에 선다는 것은 언제나 양쪽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다. '적이 없다면 친구도 없다'는 말을 생각해본다면, 중립의 어려움을 조금은 짐작할 수 있다.


나리카와 아야는 일본에서 개봉한 한국 뮤지컬 영화 <영웅>의 팜플렛에 글을 기고했다고 한다. 이때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이라는 문구를 편집자가 수정을 요청했다. (363쪽) 저자의 말대로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건 역사적 사실"이다. 그러한 가해의 역사를 불편하게 여기고 숨기려는 모습이 일부 일본인들에게 보일 때마다 독일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특히 (한국의) 연예인들은 10대부터 활동하는 경우가 많아 대부분 대학에 안 가는데, 한국은 연예인도 대부분 대졸인 상황을 보면 일본인 입장에서는 신기한 일이다. 확실히 한국이 일본보다 학력 사회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 322쪽


이 부분에는 사족을 달고 싶었다. 이 해석에서는 중요한 변수 하나를 빼먹은 것 같다. 바로 군대다. 물론 한국이 일본보다 대학 진학율이 높고, 연예인들도 대학에 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요새는 10대 때부터 활동하는 아이돌 가수나 배우들은 대학에 가지 않는 경우도 많아졌다. 그렇지만, 이건 여자의 경우다. 남자 연예인의 경우에는 크게 학업에 뜻이 없더라도 대부분 대학에 진학한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으면 한창 활동해야 할 시기에 영장이 날라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징병제에 낯선 저자가 간과할 수 있는 부분인 것 같다.




『지극히 사적인 일본』은 한국에 사는 일본인 친구와 대화를 하는 기분이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 전화를 하거나, 아니면 카페에서, 이자카야에서 만나서 일본에 대해서, 한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죽 듣는 기분이었다. '먼나라 이웃나라'라는 호칭이 딱 맞는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일상적이고 가볍게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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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섯 농장
성혜령 지음 / 창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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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청객을 조심하라







『버섯 농장』은 소설가 성혜령의 첫 단편소설집입니다. 「윤 소 정」으로 2021년 창비신인소설상을 통해 등단한 성혜령은, 「버섯 농장」으로 젊은작가상을 받았습니다. 또한 2024년에는 「간병인」으로 이상문학상 우수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수상 이력만으로도 문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버섯 농장』의 표지는 울창한 수림 한 가운데에서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듯한 그림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색감과 소설의 분위기 탓인지, 열려 있는 하늘에 대한 개방감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 여기서 도망칠 곳은 바로 위 하늘밖에 없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리고 그건 실현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결국 도망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절망적인 암시를 주는 그림 같습니다.



책을 설명하는 문구 중 눈에 띄는 것은 ‘하드보일드’입니다. 익숙하지 않아서 조금 찾아보았습니다.



문학 장르 혹은 스타일. 영어로 hard-boiled. 일본에서는 비정파(非情派)라고 번역한다. 비슷한 단어로 느와르가 있다.


원래는 '(계란이) 완숙되는'이라는 의미의 형용사이지만 '비정·냉혹'이라는 의미의 문학용어로 변했다. 사전에서는 자연주의적인, 또는 폭력적인 테마나 사건을 감정이 들어가지 않은 냉혹한 자세로 또는 도덕적 판단을 전면적으로 거부한 비개인적인 시점에서 묘사하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쉽게 말해 비극적인 사건을 건조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묘사하는 작품을 하드보일드라고 부른다. 자극적인 갈등, 감정묘사가 없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몰타의 매〉를 쓴 대실 해밋,〈빅 슬립〉과 〈기나긴 이별〉을 쓴 레이먼드 챈들러,〈움직이는 표적〉을 쓴 로스 맥도널드를 크게 하드보일드 추리소설 작가의 대표격으로 꼽을 수 있다. 또는 마이크 해머 시리즈의 미키 스필레인도 있다. - 출처: 나무위키





책을 읽기 전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되기도 했지만, 다 읽고 나서 느낀 인상은 ‘하드보일드’의 설명에 부합했습니다. 『버섯 농장』에 묶여 있는 소설들에서는 비극적이거나 고통스러운 상황이 전개되는데 그에 따르는 감정의 묘사는 극도로 제한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괴로울 정도로 건조함을 느끼게 됩니다. 결말에 이를 때까지 한 겹씩 쌓이는 부조리와 불가해함은 끝내 해결되지 못한 채 불길함을 자아냅니다.





인상적인 소설들은 크게 3편이었습니다.



「사태」


「주말부부」


「마구간에서 하룻밤」



이 세 편의 단편소설은 하나의 원형을 공유하고 있는 듯합니다. ‘도무지 떠날 생각이 없는 불청객’들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그들은 한결같이 초대받지도 않은 채 집에 들어옵니다. 그리고 마치 자신의 사정을 망각한 채, 그곳의 주인인마냥 떠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불청객과 함께 낯선 장소에서 고립되는 형식은 불편을 넘어서서 꽤나 공포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소설들에서는 우리가 가장 안락함을 느껴야 할 집도 그런 장소로 변할 수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 편 한 편 읽고 나면, 도대체 불편함과 불길함이라는 인상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마지막 소설까지 다 읽고 나서야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불청객을 조심하라, 그리고 가장 난처하고 불쾌한 불청객은 우리 자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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