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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밤의 모든 것
백수린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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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을 애도하는, 봄밤의 모든 것





소설가 백수린의 『봄밤의 모든 것』을 읽었다. 작년 봄에 나오자마자 사두고는, 결국 일년이나 지나 올해 봄이 끝나기 전에야 다 읽을 수 있었다. 『봄밤의 모든 것』은 총 7편의 단편소설들이 묶여 있다.




· 「아주 환한 날들」

· 「빛이 다가올 때」

· 「봄밤의 우리」

· 「흰 눈과 개」

· 「호우豪雨」

· 「눈이 내리네」

·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면서 앤드루 포터의 작품을 읽는 것 같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실제로 앤드루 포터의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한국어판에는 백수린 작가의 추천사가 적혀 있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백수린 작가가 앤드루 포터에게 받은 영향이 작품 전반에 스며 있는 듯하다. 특히나 3인칭 서술로 진행되는 작품에서 이렇게 질문이 돌출되는 작법은 영미 문학의 냄새를 짙게 만든다. (비슷한 느낌을 주는 작가로는 손보미 작가가 있다. 손보미 작가는 줄표/대시(-)를 자주 사용한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는 자신에게 누군가의 완전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일의 기쁨과 두려움을 처음으로 알게 해준 개가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을 다시 기억해냈다. 아, 다들 이 부재를 어떻게 견디는 거지?

「봄밤의 우리」, 95쪽



딸에게 결혼을 아주 잘했다고 말하면, 세상이 무너지기라도 한단 말인가?

「흰 눈과 개」, 129쪽



누구나 다 안다고? 대체 누가 다 안다는 말인가?

「흰 눈과 개」, 133쪽




『봄밤의 모든 것』을 읽으며 느낀 것은 백수린 작가의 섬세한 시선이 드러나는 문체였다. 근래에는 다양한 시도를 하는 작가나 작품들이 있지만, 소설은 서사 문학이다. 『봄밤의 모든 것』은 특이하게도 서사성이 강하다는 느낌을 주진 않는다. 소설 속 인물들이 겪는 사건 역시도 지극히 평범해서 "사건"이라 하기도 어렵다는 인상을 줄 정도다. 하지만 이를 상쇄해 작품을 끝까지 읽게 만드는 힘은 백수린 작가가 포착하는 감정의 단면과 이를 표현해내는 문장이다.



책을 읽으면서 소희가 느꼈던 것은 비밀스러운 기쁨이었다. 책을 펼치면 만나게 되는 세계는 상상 속에서 실재했고, 소희는 자신이 겪는 고독과 괴로움이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호우豪雨」, 150-151쪽


그 시절 소희의 마음 속에서는 무엇인가 대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열망과 누구의 눈에도 띄고 싶지 않다는 바람이 하루에도 몇 번씩 충돌했다. 낯선 세계로 모험을 떠나고픈 욕망과 아무 데도 갈 엄두를 내지 못하며 주저하는 기질이 날마다 엎치락뒤치락하며 전쟁을 벌였다.

「호우豪雨」, 151쪽


주변부로 조금씩 밀려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조차 다혜의 마음 속에는 어쩌면 사실은 대단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있었다.

「눈이 내리네」, 182쪽


스물이었던 다혜에게 당시 스물일곱 살이던 준우는 까마득한 어른 같아 보였는데, 그건 그때 다혜가 이십대 후반까지의 삶만을 상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눈이 내리네」, 191쪽


다혜는 그 당시 관계가 끝났음을 자신이 그토록 받아들이지 못하고 시간을 끈 건 틀림없이 미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끝에 대한 두려움. 사랑을 다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하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제 다혜는 아는데, 당시 이별을 계속 유예했던 건 무엇보다 젊고 예뻤던 시절의 자신을 그가 상기시켰기 때문이었다.

「눈이 내리네」, 198쪽


어둠 속에서 친구의 숨소리가 전에 없이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그리고 동시에 우리가 이만큼이나 가깝게 앉아 있었다는 사실을 그리워할 날이 올거라는, 이 순간으로 되돌아오고 싶지만 절대로 그러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할 날이 오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39쪽



이처럼 삶의 여정 속에서 문득 느끼고 지나가는 감정들에 주목한 문장들을 읽어나가며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그런 경험들은 이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비밀스러운 기쁨"을 주었다.


소설집 후반에 실린 세 편의 단편 소설, 「호우豪雨」, 「눈이 내리네」, 「그것은 무엇이었을까?」는 연작 소설이다. 대학교 동기들인 "소희", "다혜", "상아"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이런 연작 작품들을 읽는 재미 중 하나는 각각 독립적인 작품이 어떻게 서로 다른 작품과 연계되는지 찾아보는 일일 것이다. 각 작품의 화자가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사실만으로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런 점들은 작품의 혈연 관계를 더욱 짙게 만들어준다.


「눈이 내리네」의 화자 다혜는 「그것은 무엇이었을까?」에서 술에 취해 울먹인다. 그리고 자신의 발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는데, 이는 「눈이 내리네」에서 만났던 애인이 자신에게 남겼던 강렬한 기억 중 하나가 은연중에 영향을 끼친 듯하다.


차가운 발을 두손으로 감싸 쥐며 "작은 새 두 마리 같아"라고 말한다는 사실은.

-「눈이 내리네」, 195쪽


"이거 봐라, 나 발 진짜 못생겼지?" (…) "내 발 진짜 아빠 발이랑 똑같거든. 근데 우리 아빠는 새끼발가락 하나가 없다? 옛날에 교통사고를 당해서 그렇다는데, 어렸을 때는 맨날 나한테 악어가 물어 가서 한 개가 없다고 그랬어. 나는 그걸 또 오랫동안 믿었어."


-「그것은 무엇이었을까?」, 228쪽



또한 노련한 작가는 독자를 애태울 줄도 아는 것 같다. 이 작품집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이었던 순간은 「흰 눈과 개」에 있다. "아버지"가 카페에서 늘 보던 개의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되는 순간. 작가는 그 "진실"이 무엇인지를 바로 말해주지 않는다. 독자는 도대체 무엇을 보았길래 냉랭하던 딸을 불러서 같이 보려고 하나? 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리고 마침내 마지막 장면에서 잠시 지연시켜놓았던 진실을 보여준다. 이는 「호우」에서도 노인의 죽음에 대해서 곧장 말하지 않고 조금 지나 알려주는 것으로 재현된다.




* * *





사랑만큼 인류의 역사상 오래된 이야깃거리는 없을 것이다. 불멸의 고전 속에도 사랑은 등장하거니와 지금도 무수히 쏟아지는 문학과 노래, 영화에는 사랑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자리잡고 있다. 사랑과 상실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러므로 상실과 애도 역시 무수한 변주를 겪으며 예술가들의 절망스럽게 사랑스러운 뮤즈가 되어왔다.


『봄밤의 모든 것』은 상실을 애도하는 소설로 읽힌다. 소설 속 인물들에겐 모두 당면하거나 충분히 지나왔다고 여긴 상실이 있다. 그것은 처치 곤란한 동반자였던 앵무새나, 개로 표상되기도 한다. 할머니거나, 토끼거나, 이모할머니거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난 아이거나,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나눠가졌던 소중한 시절이거나. 소설 속 인물들은 제각기의 방법으로 이 상실을 껴안고 살고, 애도하면서 견딘다.


우리는 그런 소중한 봄과 같은 시간들이 곁을 스쳐지나갈 때는 미처 자각하지 못한다. 우리는 섣불리 그 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버린다. 그래서 무심코 이런 말을 내뱉고 마는 것이다.


"우리가 몇 번의 봄을 더 함께 볼 수 있을까?"

「봄밤의 우리」, 94쪽


인생은 가혹하게도 봄이 영원할 것이라 믿어버리게 된 직후에 봄을 빼앗는다. 그리하여, 소설 속 어떤 인물들은 이런 생각도 하는 것이리라. 내가 먼저 겪은 봄의 상실을 내 자식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미 숱한 봄을 잃어본 아버지와 그 봄을 만져도 보고 잃어도 보고 싶었던 딸은, 끝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8년이라는 긴 시간을 단절된 채로 지낸다.


"헤어지는 게 얼마나 괴로운지 아니까."

딸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대수롭지 않은 말투로 덧붙였다.

"그렇지만 사실 전 제가 직접 겪어보고 알고 싶었어요."

「흰 눈과 개」, 128쪽


하지만 앞서 언급했던 것처럼, 다리가 한 쪽 없는 개가 뿜어내는 생명력을 보면서 이 부녀는 화해에 이른다. 이 대목에서 아버지는 이런 생각을 갖게 된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산 사람만이 사랑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사랑을 주는 법에 대해 오래 생각해본 사람뿐일지도 모른다고.

「흰 눈과 개」, 140쪽



모든 상실은 고통스럽다. 그래서 우리에겐 1~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한 걸지도 모른다. 조선에서도 그러했듯이 많은 문명에서 삼년에 걸친 장례가 문화가 발견되는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인간이 사랑하는 이의 고통을 완전히 씻어내는 데 필요한 시간이 3년 정도라는 뜻일 것이다. 그만큼 상실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각자만의 봄밤이 필요하다. 찬란하게 빛나는 봄, 생명이 움트는 봄의 낮을 보내고, 세상이 쓸쓸하게 젖어드는 봄밤. 다가오는 여름과는 무관하다는 듯이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그 봄밤은 우리를 상실에서 구원한다.


그리고 다음날이 찾아오면, 다시 찾아올 다른 봄을 기대하는 것. 상실의 고통을 알고 있음에도 다시 누군가에게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우리에게 봄밤이 필요한 이유인지도 모른다.




* * *




한 가지 의문스러웠던 옥의 티는 「눈이 내리네」에 있다. 이모 할머니는 글을 모른다고 밝혀지고, 생의 마지막에 다와가서 한글을 배운다. 그런데 그런 이모할머니가 어떻게 메시지를 남길 수 있었을까? 설정 구멍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선해하자면, (음성) 메시지인 것 같기도 하다.


"이모할머니한테 늦는다고 말 안 하고 나왔더니 메시지를 벌써 일곱 개나 남기셨어."

「눈이 내리네」, 184-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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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성 환상 극장 안전가옥 FIC-PICK 10
최지원 외 지음 / 안전가옥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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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세요, 환상적인 경성에






'다이쇼 로망'이라는 말이 있다.


다이쇼 로망(大正ロマン、大正浪漫)은 일본에서 다이쇼 시대(1912~1926)의 낭만주의 사조를 뜻한다.


일본에서 다이쇼 시대는 메이지 유신 이후 팽창한 국세가 안정기에 접어들던 시기로, 군국주의로 인해 사회 분위기가 경직되고 대공황과 중일전쟁·태평양 전쟁의 영향으로 살기가 팍팍했던 쇼와 시대 초기의 1930년대~1940년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는 살기 좋은 시대였다.때문에 일본인들에게는 이 시대에 대한 향수가 남아 있으며, 다이쇼 시대를 배경으로 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살린 창작물들도 많이 나오는데 이를 다이쇼 로망이라고 한다. 유럽의 벨 에포크, 빅토리아 시대와 비슷한 느낌이다. 국가적으로 위세를 떨쳤다는 것과 문화적으로 융성했다는 이유로 현대에는 곧잘 미화되지만, 실상은 유럽과 마찬가지로 식민지에 대한 수탈로 이룬 번영이었다는 점과 하층민들의 삶은 궁핍했다는 점 등에서 비슷하다.


- 나무위키, 다이쇼 로망 항목 중



위 설명에도 언급되듯이, '벨 에포크', '빅토리아 시대'와 같은 향수를 주는 시대이다. 이때를 배경으로 한 작품을 특히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있기도 하다. 한국에서는 비슷한 시기를 '경성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다이쇼 로망'처럼 명확한 장르로서 규정되기보다는 투여서 부르는 정도인 것 같다. 근래에 이 시기를 그린 작품 중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은 김은숙 작가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다.



개인적으로 일제강점기에 깊은 흥미를 느낀다. 그때에 태어났다고 한들, 내가 독립운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나는 타고난 겁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기의 이야기를 접하고 분개하거나 같이 가슴을 졸이는 일에는 자신이 있다.


『경성 환상 극장』은 특이한 앤솔로지 단편집이다. 최지원, 전효원, 장아미, 김이삭, 한켠, 이 다섯명의 작가들이 모여서 각자 작품을 쓰는데, 그 작품들이 일종의 연작처럼 이어진다. 크게 세 가지 지점을 공유하는데, 시간대로는 '식민지 시기 경성'이라는 점, 공간대로는 경성의 <카르멘>을 상영하는 "환상극장"이라는 점, 그리고 소설의 주제가 모두 사랑, 로맨스라는 점이다.


각각의 단편은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최지원, 「경성의 카르멘」


전효원, 「좋아하는 척」


장아미, 「무대 뒤에서」


김이삭, 「사랑의 큐피드」


한켠,「빛으로 빛으로」



이 작품의 서두에 수록된 「경성의 카르멘」은 이후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나오는 <카르멘>의 대본을 쓴 작가에 대한 이야기다. <카르멘>은 원래 프로스페르 메리메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조르주 비제의 오페라다. 전세계에서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과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와 더불어 극장에 가장 많이 올려지는 레퍼토리다. 이번에 조금 찾아보았는데, 생각보다 익숙한 곡들이 이 오페라에 많이 포함되어 있었다. <투우사의 노래>, <하바네로>, <서곡> 등이 그러했다.



* * *



『경성 환상 극장』 내에서는 오페라 <카르멘>을 연극으로 올린다. 그러기 위해선 대본의 수정이 필요한데, 이 수정을 맡은 작가에 대한 이야기가 「경성의 카르멘」이다.


이어지는 전효원 작가의 「좋아하는 척」은 조연 배우와 연극의 투자자를 조명한다. 『니자이나리』에서도 느껴졌듯이 대화를 생동감 있게 잘 쓰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장아미 작가의 「무대 뒤에서」는 <카르멘>을 공연하는 극단 '유월회'의 의상을 담당하는 '보헤미안' 사장과 무대 배경을 그리는 인물의 이야기다.


김이삭 작가의 「사랑의 큐피드」는 환상극장 매표소 직원과 베일에 쌓인 신비로운 인물인 극장주가 주인공인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켠 작가의 「빛이여 빛이여」는 환상극장의 초연 공연에서 벌어졌던 10년 전 일을 다루고 있다. 그 공연에서 '카르멘' 역을 맡았던 여주인공과 무대 조명 담당자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유일하게 과거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도 하지만, 앞선 작품들과 다르게 희곡의 형태를 띠고 있다. 작중의 주요 배경으로 설정된 장소가 '환상극장'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재밌게 다가온다.


『경성 환상 극장』이 동시기를 다루는 작품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다. 앞서 언급했던 <미스터션샤인>이 독립운동을 서사의 큰 축으로 삼아 이야기와 주제가 진행된다면, 『경성 환상 극장』은 그렇지는 않다. 그렇다고 해서 독립 운동 같은 거대 담론은 완전히 배제하고 사랑과 같은 이야기에 집중한 것은 아니다. 『경성 환상 극장』에도 (의열단을 모티프로 한 것처럼 보이는) '열혈단'이라는 무장 투쟁 단체가 등장하고 이들의 이야기가 단편들 곳곳에 흩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래도 중심 주제가 '사랑'이다보니, 식민지 경성의 시대상 같은 것에 조금 더 집중이 된 느낌이었다.


또한 구성적으로 5편의 작품들이 다른 작품의 꼬리를 물고 있는 구조라 흥미로웠다.

예를 들어, 「좋아하는 척」에서 보헤미안 의상실에서 일하는 환희가 요새 자주 안 보인다는 언급이 나오는데, 그동안 환희가 무엇을 했는지는 「무대 위에서」에서 밝혀진다. 또한 「무대 위에서」에서는 티켓걸 란주가 <카르멘> 상영 직전 준비 기간동안 출근을 하지 않는다고 언급되는데, 그동안 란주가 무엇을 했는지는 「사랑의 큐피드」에서 밝혀진다.

이런 식으로 앞 작품의 떡밥이 뒷 작품에서 해소되는 부분을 찾아보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시간대가 서로 겹치고 벌어지고 하다보니, 「경성의 카르멘」의 말미에 죽음을 맞은 정호진이 「좋아하는 척」에서는 살아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이 지점은 세계관을 맞물리던 작업 중에 미처 확인하지 못한 옥의 티인듯 하다. (이후 이어지는 「사랑의 큐피드」(214쪽)에는 정호진의 죽음이 드러나있다.)



"이런 시대에 생각 없이 살면 총 맞아야지."


-『경성 환상 극장』, 277쪽



처음 접해보는 연작 형식의 엔솔로지 작품집이라 서로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재미가 있었다. 다만 「무대 위에서」는 읽기가 조금 어려웠는데, 아무래도 적은 분량에 다양한 인물들의 서사와 감정을 담으려다보니 인물들의 심정을 모두 공감하기 어려웠다. 더 긴 분량이었다면 더 매력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싶었다.




"이런 시대에 생각 없이 살면 총 맞아야지." - P2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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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안전가옥 오리지널 47
전효원 지음 / 안전가옥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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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비가시적인 것들의 가시화





전효원 작가의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읽었다. 마장동 축산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처음인지라 흥미로웠다. 전효원 작가의 소개 문구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잘 벼려낸 칼을 쓰는 직업을 갖고 있으며, 손에서 칼을 내려놓은 동안에는 글을 쓴다." 그래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에 묻어 있는 마장동 축산 시장의 생생한 현장이나, 도축 과정의 면밀한 묘사를 통해 짐작하건대, 아마도 전효원 작가가 축산시장에서 일하리라 생각했다.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과연 그랬다. 현업자가 아니고서야 나오기 어려운 핍진성이었다. 또한 작품에서도 언급되듯이 같은 마장동 축산 시장 내에서 차별이 존재한다는 점(육류, 내장, 기름, 칼갈이 등의 일종의 계급 구조)은 내부자가 아니면 알기 어려운 점이다.



"그랬다니깐용. 백인들 사이에서 차별당한 거야 말할 것도 없고요. 한국에서도 클래식 음악 쪽에 워낙 쟁쟁한 집안 애들이 많잖아요. 저야 옛날 말로 백정 딸내미고요. 게다가 사실 마장동 시장 내에서도 내장은 약간 그런 게 있거든요. 치란도 그렇지 않아요? 마장동이라고 하면 한우 등심, 갈비, 아니면 삼겹살 같은 고기류를 떠올리지 곱창이나 대창을 먼저 생각하진 않죠. 내장류는 공식 명칭이 부산물이에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93쪽



상상의 나래를 좀 더 펼쳐보자면, 아마도 개인적으로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내의 민수 삼촌이라는 인물이 작가 본인의 자캐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사실 처음에 이름을 들었을 때는 남성일거라고 생각 못했다. 그래서 내가 그린 이미지 속의 작가는 이두박근이 매력적인, 도축 칼을 잘 쓰는 여성이었다……. 또한 내 생각보다도 나이가 좀 있으셔서 놀라웠다. 



* * *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재밌다. 처음부터 끝까지 막힘없이 읽어나갔다.


이 작품을 이끌어가는 핵심 동력은 다름 아닌 주인공 "부응옥란"이다. 유약해 보이는 남편을 만나 결혼하게 되어 아이를 낳고, 김제에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시어머니와 맹랑한 딸을 키우는 베트남 여자. 뽀글머리와 꽃무늬 옷을 고수하지만, 한국어 실력과 발음만큼은 송혜교를 똑닮은 시골 여자. 평소에 범죄 드라마를 즐겨 보며, 자신은 이미 한국 국적을 취득했으나 다른 이주 노동자들이 어려움에 처하면 물불 안 가리고 달려드는 무대포 성격까지 지녔다. 근래에 읽었던 작품에 등장한 인물들 중 이처럼 입체적인 인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마장동 축산시장에서 내장을 취급하는 사장의 딸 "김유정"이 중국인 이주 노동자이자 자신의 애인인 "문소평"을 찾아달라고 "부응옥란"을 찾아오면서 본격적으로 궤도에 오른다.



등장 인물이 한 명씩 차례대로 용의선상에 올랐다가 의혹이 벗겨지거나 강화되는 전형적인 추리극의 형식을 띤다. 제목인 "니자이나리"는 "당신은 어디에 있습니까?"라는 뜻이라고 한다. 제목과 표지, 작중 배경은 어쩐지 영화 <범죄도시>를 떠올리게끔 한다. 이에 대해 소설 내에서도 자조적으로 언급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 작품을 이끌어나가는 인물들의 강렬한 캐릭터성 때문에 이런 부분이 얼마간 중화된다. (다만, 이 점이 나에게는 다소 아쉬웠는데, 나는 제목이나 소재만 보고는 <범죄도시>처럼 좀 더 어둡고 딥한 범죄극을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부응옥란은 평소엔 한국말에 능통하지만, 불리할 땐 한국말을 모르는 척 굴기도 할 정도로 능청맞고 유쾌하다. 김유정 역시 "넹"과 같은 애교 섞인 말투를 구사하며 분위기를 둥글게 만든다. 게다가 속담과 사자성어를 좋아하는 정재훈의 캐릭터성도 눈에 띈다. 



하지만 아쉬운 점도 남는다. 우선 부응옥란의 강렬한 캐릭터성이 사건 전개의 개연성에 집중도를 떨어뜨린다. 부응옥란은 작중 내내 결코 당황하거나 놀라지 않는다. 마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참전용사의 아우라를 지닌다. 억척스럽다는 전반부 묘사에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체를 발견하고 나서도 지극히 덤덤해서 의아하다. 그것도 연속으로 두 번이나 발견하게 되는데 말이다. 그런 반응은 직업적으로 시신을 자주 보게 되는 인물에게나 어울릴 법하다.



게다가 최종전 국면에 이르러 누군가에 의해 냉동창고로 나가게 되는데, 나는 이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부응옥란 정도로 똑똑한 사람이라면, 용의선상에 오른 인물이 위험한 장소에서 단 둘이 보자는데 아무런 대비도 없이 나갈 리 없다. 아무리 억세고 똑똑하다고 하더라도 어쨌든 여성이고, 그녀를 불러낸 인물 역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전사가 있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정재훈의 캐릭터에 대해서도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정재훈이 용의선상에 오르게 되는 이유는, 그가 갑작스럽게 부응옥란과 김유정을 돕지 못하게 됐기 때문인데, 추후에라도 그때 왜 그랬는지는 밝혀졌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정재훈이 누명을 벗는 장면은 어딘지 모르게 얼렁뚱땅 지나가는 장면이다. 다소 클리셰적인 사연을 들려주는 것만으로도 부응옥란이 그를 용의선상에서 제외하는 건 다소 논리적이지 못하다. (물론, 직후에 리본 아줌마가 증언을 해준 덕에 혐의를 벗기는 하지만 그 전에 이미 사연을 듣고 부응옥란은 정재훈을 좋은 사람이라고 판단하고 용의 선상에서 배제해버렸다.)



또한 결말의 진범을 잡는 부분도 의문이다. 


"진범을 진범으로 확정지을 수 있는 증거가 나왔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소설 안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부응옥란이 녹음하고 있는 줄 알고 있던 진범은 범행을 자백하지도 않았다. 부응옥란이나 김유정이 가지고 있는 증거라곤 다잉 메세지나 심증 뿐이다. 다잉 메세지는 그다지 위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이연화 사건이 다른 사람의 범행으로 마무리된 걸 보면, 진범이 DNA를 남길 정도로 어수룩한 것 같지도 않다. 이 결말은 충격적이긴 했지만, 꼭 그만큼 현실성이 없었다. 작품의 배경이 되는 마장동 축산시장에 대한 생생한 묘사만큼이나 작품의 중심축인 사건의 해결에 좀 더 심혈을 기울였으면 어떨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나아가 작품 전체에 작가의 목소리가 너무 큰 것 같다는 느낌도 들었다. 작가는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통해서 이주 노동자들이 처한 실태에 대해서 고발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그 주제를 전달하기 위해서 소설을 쓴 것이다. 하지만 종종 그 욕구가 소설이라는 외형을 튀어나가려고 하는 지점들이 존재했다. 그때마다 내가 지금 소설을 읽는 것인지, 아니면 르포르타주를 읽는 건지 헷갈리기도 했다.



"사실? 이주민들에게 사실이라는 단어만큼 큰 함정도 없답니다.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 누명을 벗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특권인 줄 모르죠? 사실이 사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상상하기도 어려울 거야. 뭐, 아가씨는 해외 생활을 오래 해서 사회 분위기를 더 모를 것 같긴 하지만."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41쪽


물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은 전효원 작가의 첫 장편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런 아쉬운 점들이 보이는 것 같다.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이게 이 작품 전체를 폄하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게다가 전부 충분히 개선될 수 있는 지점처럼 보여진다. (고백하건대, 나는 읽은 책에 대해선 전부 서평을 작성하진 않는다. 정말로 형편이 없거나 쓸 말이 없는 작품은 리뷰를 안 쓴다. 아니, 못 쓴다.) 



어쨌든,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을 막 덮은 내 손엔 『경성 환상 극장』이 있다. 이건 경성이라는 소재에 끌려서 샀는데, 공교롭게도 이 작품집 안에도 전효원 작가의 글이 있다. 전효원 작가의 다음 글을 읽으러 가기 위해 이만 리뷰를 마친다.



도대체 왜인지 몰라도 진심이란 건 당사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서 들었을 때 더욱 강하게 마음을 뒤흔든다.


『니자이나리, 찾지 않는 이름들』, 13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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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과 돌멩이 - 2026년 제49회 이상문학상 작품집 이상문학상 작품집
위수정 외 지음 / 다산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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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제49회를 맞이한 <이상문학상>의 대상은 위수정 작가에게 돌아갔다. 역대 최초로 수상자 전원이 여성이라고 한다. 이번 작품집을 살펴보면서 가장 흥미로웠던 점은 예심 심사위원에 해방촌 독립서점 <고요서사>의 주인인 차경희 씨가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문학사상사에서 다산책방으로 상의 운영권이 넘어온 이후로 여러가지 다양한 실험을 하고 있는 듯하다. 개인적으론 수상작들과 일반 독자 사이의 괴리감을 줄이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짐작해본다. 


- 위수정, 「눈과 돌멩이」


대상을 수상한 위수정 작가의 「눈과 돌멩이」는 여러모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귀신이 없는 집」과 닮아있다. <젊은작가상> 수상 소감에도 적었듯이 하나의 일본 설화에서 뻗어나온 두 소설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요"라는 이름을 쓰는 등장인물이 두 소설에 모두 등장하고, 두 사람은 모두 크로스드레서(CD)이다. 그 설화에 기반한 작품을 한 편 더 쓰고 싶다고 밝히기도 했다.


「귀신이 없는 집」과의 이런 교차점을 제외하고도 「눈과 돌멩이」는 김지연 작가의 등단작인 「작정기」를 떠올리기 한다. 「작정기」 역시 여행을 함께 준비했던 친구가 갑작스러운 사고를 당해서 혼자 일본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는 이야기다. 「눈과 돌멩이」 역시 수진이 주도했지만 차마 이루어지지 못했던 여행이 재한과 유미가 수진의 뼛가루를 뿌려주는 일종의 애도 여행으로 전환된다.


또한 작년에 <김승옥 문학상>을 수상한 최은미 작가의 「김춘영」을 얼마간 떠올리게도 한다. 눈으로 인하여 산에서 고립이 되어, 재한과 유미는 결국 CD인 코요의 집에 하룻밤 머물게 되는 설정에서 그러하다. 눈으로 온통 둘러싸인 산에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웃음을 동반하지만 쓸쓸하다. 


난 곱게 늙고 싶다.


유미는 피식 웃고는 말했다. 꼭 늙어라, 곱게.


- 「눈과 돌멩이」, 46쪽


"꼭 늙으라"는 당부는 "죽지 말고 오래 살라"는 의미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귀신이 없는 집」을 읽을 때도 위수정 작가가 쓰는 대사가 기억에 남았는데 이 작품에서도 그런 점이 눈에 들어온다. 


​근데 나, 열나는 거 같아. 수형이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내 이마를 짚었다. 그러네. 추운데 땀 흘려서 그런가 보다. 그런데 아이스크림은 왜 먹냐. 약 먹자. 수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약이 없어.

사 오면 되지.

아니야, 그냥 앉아 있어. 기분이 좋거든. 몽롱한 게. 


- 위수정, 「아무도」


개인적으로 위수정 작가의 「아무도」를 인상적으로 읽었는데, 「눈과 돌멩이」에서도 이와 유사한 감각이 소설에서 드러난다. 「눈과 돌멩이」 속 재한은 비행기를 타고와 폭설 속 산행이 주는 피로, 전날밤 잠을 자지 못한 노곤함, 거기에 맥주가 주는 노곤함이 더해진 상태로 하루를 마감한다. 이렇듯 신체의 감각이 중력을 잃어 현실 감각이 떠다니는 듯한 상태는 「아무도」의 화자에게서도 발견된다. 



세계가 나뉘는 데 한 발짝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재한은 이해했다. 


(…)


재한은 망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모든 것을 망가뜨릴 수 있다. 끝낼 수 있다. 수진도 이런 마음이었을까.


「눈과 돌멩이」, 45~46쪽


소설을 읽는 동안,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도대체 "수진"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독자는 알기 어렵다. 이 점은 소설 속 인물인 재한과 유미에게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이 여정은 먼저 떠난 이에 대한 이해를 구하는 남겨진 자들의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애도를 하기 위하여서는 그 애도가 누구를 향한 것인지, 그리고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부터 전제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 김혜진, 「관종들」



김혜진 작가의 미덕은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순간들에서 소설적인 순간을 건져 올려내는 거라고 말해도 될까? <김승옥문학상>을 수상했던 「빈티지 엽서」나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 그리고 「관종들」은 우리 주변의 흔히 있을 법한 이야기다. 


게다가 김혜진 작가의 소설들은 술술 읽힌다. 사람들은 종종 "가독성"에 대하여 한 가지 오해를 하는 경우가 있다. 너무 쉽고 뻔하게 쓰여진 거 아니냐는. 기실 그건 문장이 담고 있는 서사에 달려 있는 문제다. 문장 자체만 놓고 보았을 때, 술술 읽히게 쓴다는 건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쉬운 문장 같은데도 문장의 호흡이나 구성, 단어선택 등에 있어서 독자의 "읽기"를 방해하는 작품들이 더 많다. (물론, 실험적이거나 전위적인 작품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해야만 한다.)



그러나 자신만만함은 잦아들고 다시금 미심쩍은 마음이 올라오고 있었다.

자신이 유별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 문제는 바로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


「관종들」, 141쪽



「관종들」의 주인공들은 아이러니하다. 그들이 "관종"이라는 멸칭을 얻게 된 이유가 그렇다. 그저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좋은 "정해"와 고치는 것이 좋은 "영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실한 사회구성원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들이 타인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길 원해서, 주목 받는 걸 즐겨서 이웃을 불편하게 만드는 걸까? 오히려 정반대의 이유 아닐까. 타인에게, 사회에 너무 많은 "관심"을 가져서. 그들에게도 나름대로 항변의 이유는 마련되어 있다. 자신들의 소홀함으로 인하여 영구적인 장애를 얻은 딸에 대한 죄책감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죄의식이 그들이 자꾸만 눈에 보이는 사소한 불의에 대해 눈감지 못하게 만든다. 이는 일견 어린 자식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던 자신들에 대한 분노와 원망을 애꿎은 주변 사람들에게 전가시키고, 사소한 공동체 윤리를 지키지 않는 이웃들에게 투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잘못된 곳을 향하는 원망은 결국 주변인들 입에서 "관종"이라는 소리가 절로 나오게 하며, 친언니인 정미마저도 정해를 나무라게 만든다.


정해야, 다른 사람들 심기를 건드리면 좋아? 다른 사람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좀 나아?


「관종들」, 152쪽


 이에 대하여 정해도 항변을 하지만, 그 항변은 어쩐지 자신을 향해 되돌아오는 것처럼 들린다.



원래 손가락질하는 건 쉬워. 언니처럼 말하는 건 쉬운 일이라고. 무슨 일이든 터지고 나서 후회하면 무슨 소용이야! 안 그래?


「관종들」, 153쪽


이 대목에서 정해와 영기의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것이 딸 호정에 대한 무거운 죄책감이고, 그들이 여전히 후회라는 지옥 속에 살고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그리하여 그들은 "관종들"이라는 모멸적인 호칭 속에서도 타인에 대한 관심을 거두기를 포기하지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것이 그들이 비가역적인 장애를 얻은 딸에게 할 수 있는 "사과"이므로.



- 성혜령, 「대부호」



성혜령 작가의 「대부호」는 수상작품집 중에서 제일 좋았던 작품이다. 이전의 작품집 『버섯농장』을 읽을 때에는 그저 하드보일드적이거나, 불길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즐겨 쓰는 작가로 기억했다. 「대부호」는 이전 작품들과는 조금 결이 다르게 읽혔다.



12·3 비상계엄은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상 두 번째로 대통령의 탄핵이 이루어졌으며, 이로 인하여 정권이 바뀌었고, 사회는 여전히 극단적인 사상을 지지하는 집단으로 나누어 싸우기를 멈추지 않는다.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승옥 문학상>을 수상한 최진영 작가의 「돌아오는 밤」이나, 이희주 작가의 「사랑, 기억하고 있습니까」, 길란 작가의 「법의 아름다움」은 그 당시의 혼란상을 직접적으로 반영하고 있다. 넓게 보면 성해나 작가의 「스무드」 역시 이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부호」 역시 이른 바 '반탄 진영'에 열려한 지지를 보내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다. 오빠도 나어린 채로 죽고, 아빠도 돌연 사망했을 때, 세상에는 엄마와 '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에 엄마는 광화문 집회에 나갔다가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온다.


나는 내심 엄마가 깨닫기를 바랐다. 몸이 아플 때 의지할 사람이 이제 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을. 그게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도.

(…)

나는 아주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고 싶었다. 오빠가 죽은 뒤에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나라를, 우리 가족만 조용히, 아니, 요란히 무너지고 있는 이 폐허를, 나도 한 번쯤은 버리고 싶었다.


「대부호」, 183쪽



요양이 필요한 엄마를 보살피면서 '나'는 격조했던 시간이 빚어낸 엄마의 변화가 낯설다. '나'는 오랫동안 한국을 떠나 외국 기업에 취직하는 걸 목표로 삼아왔다. 하지만 그게 성사된다면 엄마를 홀로 한국에 둬야 한다는 사실이 부채의식처럼 발목을 붙잡았다. 그러나 엄마와의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그 부채의식마저 털어버린다. 오빠의 죽음을 덮는 데 일조한 정치 세력을 지지하는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런 사람들을 지지할 수 있느냐고 묻는 '나'에게 엄마는 반문한다.



떠나고 싶은 게 이 나라야, 나야? 아니면 너야?


-「대부호」, 190쪽


번번이 최종 합격에 실패하던 본사 관리직 자리에 마침내 합격한 나는 이제 미련 없이 떠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렇게 결심을 세웠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또다시 '나'의 결정을 흔들어놓는다. 자신의 자취방으로 돌아가려는 '나'의 캐리어는 도무지 닫히지 않는다. 



나는 캐리어를 주먹으로, 발로 내리쳤다. 왜, 안 닫히냐고, 왜. 엄마가 인기척도 없이 내 방에 들어와서 캐리어 위에 앉았다. 엄마의 무게로 캐리어가 겨우 맞물렸다. 나는 재빠르게 지퍼를 채웠다.


-「대부호」, 195쪽


말없이 들어와서 앉는 장면도, 그리고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재빠르게 지퍼를 채우는 것도, 가족이 겪는 갈등과 해소의 구조를 경제적으로 그려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는 왜 '반탄 세력'을 옹호하는지 고백한다.



뭔가 바꾼다고 말하는 사람들, 엄마는 꼴보기 싫더라. 노동자, 인권, 그런 말 하는 사람들, 진짜 싫어. 바꿀 수 있었으면, 우리 현식이가 안 죽어도 됐잖아. 그런 생각 하면 엄마는 살 수가 없어.


-「대부호」, 196쪽


작품 뒤에 달려 있는 대담에서 성혜령 작가는 '엄마'의 입을 빌려 너무 쉽게 이야기해주는 장면이 아닌가 고민했다는데, 나 같이 미욱한 독자에게는 이 장면이 더 크게 와닿았다. 사실 나 역시 '반탄 집회'에 참여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이해하기 어려웠는데, 이 장면을 읽고는 저 수많은 이들 중에는 이런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소설이 지금 시대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물음은 사실상 "무엇을 할 수 있는가"로 왜소해졌다. 앞으로도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소설이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불가해한 타인을 이해하는 일"이다. 나에게 「대부호」는 그런 이해의 지평에 가닿은 소설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 이민진, 「겨울의 윤리」/ 정이현, 「실패담 크루」/ 함윤이「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



이민진 작가는 이번에 처음 이름을 들어보았다. 심사평에 의하면, 「겨울의 윤리」가 「눈과 돌멩이」와 막판까지 대상의 자리를 놓고 겨뤘던 작품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주인공 '해진'이 "과거"를 버리는 이야기다. 그 과거에는 자기 자신도 있으며, 자신을 버린 어른들도 포함된다. 이런 과거를 "해진"이라 이름 붙여주고 타인처럼 대하는 서술 구조가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정이현 작가의 「실패담 크루」는 계간지에 실렸을 때 읽었는데, 그때도 재밌게 읽혔다. 김혜진 작가의 경우처럼 정이현 작가도 작품 활동을 오래한 연륜이 있는 작가인데, 이들을 보면서 소설은 이렇게 써야하는 구나, 배우게 된다. 실패담을 풀어내는 데 완벽하게 실패하여 오히려 성공하는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윤이 작가의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는 <젊은작가상> 수상집에서 읽었기 때문에 따로 읽지 않았다. 



모든 작품들 역시 수상할 이유가 있는 좋은 작품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다만 한 가지 우려스러운 부분은 남성 작가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지금 남성 작가를 위한 쿼터제를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그러고 싶은 마음도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한국 문학을 읽는 "남성" 독자가 극히 드물다는 점에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읽는 사람이 쓰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면,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의 대부분이 "여성"이기에 쓰는 사람도 여성이 더 많은 건 당연하게도 보인다. 다만, 한국 문학이 남성의 이야기까지 포괄할 수 있으려면, 좋은 남성 작가들도 더 많이 등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음 수상 작품집에선 남성 작가들의 이름을 볼 수 있기를 고대하며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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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합격, 계급 - 장강명 르포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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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문단의 과거, 현재, 미래





소설가 장강명도 좋고, 방송에 나오는 장강명도 좋지만, 에세이스트 장강명은 독특한 매력이 있다.


칼로 무를 자르듯이 명쾌하게 분류할 순 없지만, 개인적으로 느껴온 바 소설가의 에세이는 의외로 시를 닮는다. 반대로 시인의 에세이는 소설적인 경우가 많다. 나는 이러한 서로 상반된 경향성을 발견할 때마다, 서로가 평소에 쓰지 않는 장르에서 자연 발생하는 갈증이 아닌가 짐작한다.


그러나 장강명의 에세이는 그의 소설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첫 르포인 『당선, 합격, 계급』에서도 밝혔듯이 기자로서의 글쓰기가 몸에 배어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소설도 건조하고 냉정한 문체로 이루어져 있고, 그의 르포르타주 역시 직관적이고 사실을 전달하고 주장을 펼치는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강명 작가를 딱 한 번 직접 본 적이 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북토크에서였다. 아마도 2015년의 가을, 강남이었던 것 같다. 이때 나는 그 자리에서 구입한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에 사인을 받으며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그때 당시 문단에서는 신경숙 표절 사태와 성비 사건으로 인하여 '문단 권력' 논쟁이 한참 진행 중이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출판사 문학동네에서는 계간 <문학동네>를 통해 <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라는 제목으로 좌담을 열었다. 김도언, 손아람, 이기호, 장강명, 신형철(사회)이 참여한 좌담에서 장강명 작가는 그맘때쯤 황금가지에서 발간된 『이웃집 슈퍼히어로』라는 책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 엔솔로지에는 진산, dcdc, 좌백, 김수륜, 김이환, 이수현, 듀나, 김보영, 이서영 작가 등이 참여했다. 개중 좌백 작가가 쓴 「편복협 대 옥나찰」이 오래 기억에 남는데, 슈퍼맨과 배트맨을 음차하여 이름을 바꾸고 무협 세계관으로 쓴 작품이다.


계간 <문학동네>의 좌담도 읽었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도 읽었던 나는 북토크 후 사인을 받는 자리에서 장강명 작가에게 질문을 했다. 대충 이런 질문이었다.


"<문학동네> 좌담에서 『이웃집 슈퍼히어로』 후속작이 나오면 참여하고 싶다고 하셨는데, 언제쯤 나올까요?"


장강명 작가는 신기하다는 듯이 웃으며 대답했다.


"제 주변에 계간지랑 『이웃집 슈퍼히어로』를 같이 읽는 사람은 못 봤는데 신기하네요."


계간지는 주로 문단 문학에 관심이 많은 독자들이 읽고,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장르소설 애호가들이 읽을 법한 책이어서 그런 것이리라. 계간지의 경우에 학부 시절 교수님께서 계간지 하나는 구독해야 한다고 하셔서 구독했던 것이다. 『이웃집 슈퍼히어로』는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사서 읽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리고 장강명 작가가 정작 내 질문에 해준 대답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이 문답 외에도 이 북토크는 『당선, 합격, 계급』과도 관련이 있다. 북토크에서 장강명 작가는 "등단 제도에 관한 르포를 쓰고 있다"고 말하며 설문지를 돌렸다. 그렇다. 나도 『당선, 합격, 계급』에 나오는 몇 개의 항목에 응답을 제공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이 책을 샀다.


하지만 그즈음, 나는 문학 자체에 냉담한 편이었고 그래서였는지 등단 제도에 대한 관심도 많이 없었다. 산다 해도 읽지는 않을 것 같았다. 다만, 장강명 작가의 책이라는 이유로 구매했다. 왜냐하면, 그 북토크에서 사서 읽었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한동안 장강명 작가의 신작은 일단 다 구매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면, 『당선, 합격, 계급』에서 지적하는 간판효과다. 장강명이라는 이름만으로 일단 샀으니까.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장강명 작가가 쓴 모든 책을 구매하진 못했는데, 일단 문학에 흥미를 잃었기도 하거니와 장강명 작가는 게으른 나에겐 대단한 '하드워커'였다. 사둔 책을 읽기도 전에 신간 알림이 왔다.)


* * *


한국 소설만 놓고 보았을 때, 2015년은 "장강명의 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표백』으로 2011년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한 후, 2015년에만 『열광금지, 에바로드』로 수림문학상을, 『댓글부대』로 4·3평화문학상을,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으로 문학동네작가상을 수상했다. "또 장강명이야?" 라는 반응과 "진짜 대단하다."라는 반응이 동시에 튀어나왔다.


나는 이중 『열광금지, 에바로드』를 제외하고는 다 읽어봤다. 『표백』은 그저 그랬고, 『댓글부대』는 재밌었다. 그래서 영화도 봤는데 영화는 실망스러웠다. (원작을 읽을 때, 흑막 회장이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는 장면이 가장 강렬해서 영화를 볼 때도 이 장면을 어떻게 연출했을까 기대했는데 안 나왔다. 애당초 각색이 많이 되기도 했다.)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은 인생작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장강명 작가의 전체적인 작품 성향에서 가장 동떨어져있는 작품이라는 생각도 한다.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에서 "간판"이 주는 효과, 그리고 간판이 만들어내는 "성"을 비판하는 데 많은 분량을 할애한다. 하지만, 사람들이 『당선, 합격, 계급』을 읽을 때도 일종의 간판 효과가 작용했다고 본다. 장강명 작가가 신문 기자 출신이라는 점에서 일차적인 신뢰가 있을 것이고, 나아가 유수의 문학상을 거머쥔 당사자이기에 독자들이나 취재원들이 더 신뢰를 가졌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당선, 합격, 계급』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을 취재하여 문제의 원인을 추적해나갈 수 있었다고 보인다.


『당선, 합격, 계급』에서 장강명 작가는 90년대 이후 생겨난 "장편소설공모전"을 중심으로 우리나라의 등단 제도를 고찰한다. 이를 위해 고려시대, 조선시대에 있었던 과거 제도부터 시작하여 현재 대기업들의 공채 시스템, 그리고 로스쿨 문제 등을 취재한다. 모든 제도에는 명과 암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공채 제도는 제너럴리스트를 뽑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반대로 스페셜리스트를 뽑는 데는 제약이 생긴다. 문제는 "장편소설공모전"이 대상으로 하는 소설가, 넓은 의미의 예술가는 엘리트들이자 스페셜리스트 기질이 크다는 것이다.

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


『당선, 합격, 계급』, 48쪽


장편소설공모전의 경우, 등단을 꿈꾸는 작가에는 당선과 동시에 상금과 함께 단행본 출간의 기회가 주어진다. (신춘문예나 문예지 신인상은 단편소설을 대상으로 하기에 단행본이 나오려면 청탁을 2~3년은 꾸준히 받아야 한다.) 출판사의 경우, 양질의 원고들을 확보할 수 있으며, 문학상이라는 타이틀을 바탕으로 마케팅 포인트를 잡을 수 있다. 독자의 경우, 수없이 많은 책들 중에서 문학상 수상작이라는 간판이 주는 권위에 안심하고 책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대표적인 문학상을 운영하는 출판사 대표들의 신념도 인상적이었다. "오늘의 작가상"을 운영하는 민음사의 창업주 고 박맹호 회장은 "작가들이 돈을 벌어야 한다."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오늘의 작가상"을 제정한 70년대 당시에는 책의 판매가 외판원들을 통해 "전집"을 위주로 돌아갔기 때문에 작가들이 단행본을 낼 기회가 마땅치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단행본을 낼 수 있는 상을 제정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이문열 작가의 대표작인 『사람의 아들』이 세상에 나왔다.


문학동네의 창업주 강태형 전 대표는 "작가들이 장편을 써야한다"고 생각했고, 이에 장편소설 공모전을 열었다고 한다. 이 공모전에서 수상한 김영하, 은희경, 박민규, 천명관 작가는 한국 문학에 굵직한 족적을 남겼다.




장강명 작가는 한겨레문학상와 수림문학상 심사를 맡은 경험도 『당선, 합격, 계급』에 가감없이 적었다. 독자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대목은 문학상 접수 마감일 취재 풍경을 보지 못한 것이었다. 작가 스스로도 그날 풍경이 흥미롭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한겨레출판사 측에서 심사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다. (166쪽)


또한 본심 심사는 너무나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고도 밝혔다. 심사위원들이 제각각의 문학적 취향과 문학관을 가지고 있고, 그렇기 때문에 합의에 이르는 것이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러한 대목들은 지망생들이 우려하는 형평성, 공정성, 문단 카르텔 등에 대한 우려를 일정 부분 씻어주기도 한다.


그러나 대놓고 드러난 차별은 없더라도, 보이지 않는 차별은 존재하는 듯하다.


심지어 어느 매체를 통해 어떤 방식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느냐, 거기에 대한 영향도 큰 것 같거든요. 똑같이 문예지 신인문학상 출신이라도 어떤 문예지냐를 따지는.


『당선, 합격, 계급』, 213쪽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 있었던 일인데, 등단 작가들하고 나란히 원고를 게재했는데 다른 사람은 다 '소설가'라고 쓰는데 저는 '작가'라고 적더라고요. 작가가 비하의 의미는 아닌데, 당하는 입장에서는 왜 나만 표기가 '작가'라고 돼 있나, 싶죠. '너는 정식 소설가가 아니다' 라는 말을 드는 기분? 2등 시민인 것 같은 느낌도 들고. (소설가 정세랑)


『당선, 합격, 계급』, 279쪽



지금은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도 된 『보건교사 안은영』을 쓴 정세랑 작가 역시 "창비장편소설상"을 받기 전에는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인지 몰라도 여전히 대다수의 지망생들은 문학상이라는 문단이 주는 합격증을 받고 싶어한다. 자신이 쓰고자 하는 문학에 대한 소신을 잠시 꺾어두고서라도 일단 합격하고 생각하자는 마음으로 "공모전용" 소설을 쓴다.


개인적으로는 지금 활발히 활동하는 작가 중에도 이런 식으로 등단작과 그 이후에 쓰는 작품의 결이 확연히 다른 작가들이 있다고 생각한다.



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


『당선, 합격, 계급』, 223쪽


그렇다고 해서 등단제를 폐지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어떤 지망생이나 독자들은 투고 제도가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가 준 환상일지도 모른다. 이 작품의 원고가 수차례 반려되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는데, 출간하게 된 계기에 대해선 『당선, 합격, 계급』에서 처음 알게 되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당선, 합격, 계급』, 135쪽



이런 경우를 본다면, 투고 작품의 희망인 <해리포터 시리즈> 역시도 출간에 엄청난 운이 개입했음을 알 수 있다. 투고는 해당 작품을 읽은 편집자 한 명에게 전적으로 작품의 운명을 맡기는 셈이지만, 공모전은 같은 작품을 여러 명의 심사위원들이 논의할 여지가 있다는 점이 좀 더 나을 수도 있다. 게다가 한국에서는 투고 작품으로 성공한 작품을 찾아보기 어려운데, 『82년생 김지영』 말고는 잘 알려진 것이 없다.



* * *



한동안 독자, 출판사, 작가 모두에게 좋은 제도였던 "장편소설공모전"은 유일한 기회의 장이 되어버림으로써 부작용을 낳았다. 지망생은 물론이거니와 기성 작가들도 "장편소설공모전"에 도전한다. 근래 "장편소설 공모전"을 통해 등단한 신인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상금과 단행본이 주는 매력에 신인, 기성 작가들은 계속 지원하게 되고, 출판사는 관성적으로 문학상을 유지한다.


물론 이는 장편소설공모전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이를테면, 대표적인 단편소설 문학상인 <젊은작가상>의 경우, 근 몇 년동안 이게 정말 수상작이 맞느냐는 비판도 무수히 들어왔다. 한국 문학을 읽는 독자들과 한국 문학을 만드는 출판사의 온도 차가 있다는 뜻이다.


현재 남들이 선망하는 간판을 부여하는 기관은 몇몇 문학 출판사들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취향 공동체로 간주한다. 비슷한 '문단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인들이 동인을 이루고, 자신들의 가치에 맞는 신인을 발굴하며 알리는 행위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비평 행위는 매우 치열하게, 공정하게 이뤄진다고 강조한다.

반명 상당수 작가 지망생과 독자들은 이들을 취향 공동체가 아니라 일종의 인증 기관으로 바라본다. 여기에서 괴리가 발생한다. '이 작품도 충분히 훌륭한데 너희는 왜 인정하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터져나온다.

'내가 보기에는 별로 재미없는데……'라는 취향 공동체 구성원다운 변명은 종종 오만하다거나 시야가 좁다는 반발을 산다.


『당선, 합격, 계급』, 298쪽



이 대목을 읽으면서 "문학과지성사"가 생각났다. 문학과지성사는 김현, 김치수 등을 중심으로 시작된 문학 동인에서 출발한 출판사다. 그래서 그런지, 문학과지성사는 여전히 이런 스탠스를 강하게 유지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게 잘못됐다고는 보지 않는다. 문학과 언어의 전위성, 실험 정신을 강조하는 출판사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꾸준히 기존의 문학 질서와 대립하고, 이를 갱신하여 새 지평을 여는 혁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떠올린 건, 이런 경험이다. 신종원 작가와 김채원 작가의 소설을 읽으며 나는 "아, 이건 문학과지성사 스타일인데?"하고 느꼈다. 그리고 출판사를 확인했더니 신종원 작가의 『전자시대의 아리아』와 김채원 작가의 『서울 오아시스』는 모두 문학과지성사에서 펴낸 책들이었다. 그래서 꼭 그와 마찬가지로 올해 출간될 예정이라는 김기태 작가의 신작 장편이 문학과지성사에서 나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어, 정말? 상상이 잘 안되는데." 싶기도 했다.


일정 부분 한국 소설을 읽어온 독자들에게는 각 출판사가 추구하는 문학적 지향성에 대한 얼개는 있을 것이다. 예외적인 작품들이 튀어나올 수 있다곤 해도, 그 얼개가 그다지 틀린 것 같지도 않다.


독자들의 문예운동은 공모전을 포함해 우리 문학계의 기존 시스템으로는 발견할 수 없거나 묻히기 쉬운 작가들을 일반 독자의 눈높이에서 찾아내고 응원하는 운동이다. 독자들은 늘 그런 일을 해 오긴 했지만, 그 힘을 더 키우고 좀 더 효과적으로 영향력이 발휘되게 활동을 조직하자는 게 나의 제안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아직 모르겠다. 이 책이 나온 뒤 논의가 이어져, 시스템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체계적이고 안정적인 장치들에 대한 아이디어가 나오길 기대한다. 뼈대가 되는 것은 '독자의 언어'와 데이터베이스다. 독자들이 출판인이나 평론가와는 다른 주체적인 관점으로 작품에 가치를 부여하고 의견을 나눠야 한다. 그런 토론 내용을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먼 곳에서도 찾아볼 수 있어야 한다.


『당선, 합격, 계급』, 374쪽



장강명 작가는 『당선, 합격, 계급』의 후반부를 통해, 독자들에게 희망을 거는 것처럼 보인다. 출판사, 혹은 문단이 만들어낸 성을 무너뜨리기 위해선 독자들의 역할이 요구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이 쉽게 별점을 남기고 평가를 하는 영화처럼 독자들이 서로 책에 대한 평가를 활발히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영화와 마찬가지로 책은 직접 경험해보지 않는다면 명확한 평가를 내리기 어려운 "경험재"이기 때문이다.


문단도 명확한 형체가 없는 상상의 공동체에 가깝긴 하지만, 독자는 그보다 더 하다. 출판사 입장에선 1,000권도 안 팔릴 거라고 예측했던 책이 증쇄를 거듭하기도 하며, 호응을 얻을 줄 알았던 작품이 1쇄도 다 못 팔 수도 있다. 영화의 관람객들도 마찬가지다. 박찬욱 감독이 <헤어질 결심>이 흥행할 것이라고 자신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장강명 작가는 독자들이 자신이 읽은 책에 대한 활발하게 평을 남기고 그 데이터를 축적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다보면, 독자들의 니즈를 생산자/공급자인 출판사 측에서 파악하기 용이해질 것이고, 다른 독자들 역시 자신이 미처 몰랐던, 또는 알았어도 쉽게 손이 나가지 않던 책을 무람없이 접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현재에는 주로 트위터(X)의 독서계, 그리고 디시인사이드 독서 갤러리에서 주로 이런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


(…)


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


『당선, 합격, 계급』, 330-331쪽




장강명 작가는 "님들이 좀 알아서 해보셈"이라고 말하고 무책임하게 손을 털지 않았다. 이 책이 나온 뒤 장강명 작가는 아내와 함께 <그믐>이라는 커뮤니티를 직접 출범했다. 독자들이 모여서 함께 책을 읽고 평을 나누는 사이트다. 사이트가 생겼을 때부터 몇 번 들어가 보았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책을 같이 읽는다는 행위가 어색해 잘 이용해보지는 못했다.


2017년에 이 책이 나온 이후로 햇수로 10년이 흘렀다. 슬프게도 이 책을 읽는 2026년의 상황도 이 책이 묘사하는 2016~2017년과 그다지 다른 것 같지는 않다. 여전히 소설가 지망생들은 문예지나 신춘문예에 매달린다.


그 사이에 한국 문학의 변화 중 두드러지는 현상을 꼽아 보자면, 우선 독자와 쓰는 사람이 여성 비중이 커졌다는 점이다. 올해 이상문학상이나 젊은작가상만 해도 전원이 여성 작가다. 냉정하게 장강명 작가 이후로 대형 신인 작가 중에 남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나마 김기태 작가가 분전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내가 모든 작가들이 발표하는 소설을 샅샅히 찾아 읽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죄송하다.)


그리고 쓰는 사람이 읽는 사람보다 많아졌다는 생각이 든다는 점이다. 이는 어쩌면 AI의 발전으로 인한 착시 현상일 수도 있다. 또한 성해나 작가의 『혼모노』 같은 베스트셀러는 40만 부나 팔리는 걸 보면, 아직은 읽는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소설을 쓰는 사람이 절대 40만 명이나 될 리는 없으니까.


현재 장강명 작가는 2023년에 출간했던 『소설가라는 이상한 직업』의 후속편을 작업하고 있다. 그 연재분을 알라딘이 운영하는 투비컨티뉴드에 올리고 있다. 생각날 때마다 챙겨보는데 흥미롭다. 역시 장강명 작가는 에세이를 잘 쓴다.


혹여나 장강명 작가가 여력이 된다면, 『당선, 합격, 계급』에도 후속편을 써주길 바란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그 사이에 꽤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전에 이미 사둔 『먼저 온 미래』를 읽어야겠다고 다짐한다. 또 미루다 보면, 『당선, 합격, 계급』처럼 10년 뒤에 읽을지도 모른다…….

장편소설공모전이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생긴 이유는, 그게 여러 영역의 이해관계자들에게 모두 좋은 제도였기 때문이다. 적어도 초창기에는 말이다. - P48

심사평에는 만날 "신인다운 패기를 보고 뽑았다." 이렇게 적혀 있는데 저희는 그거 보고 비웃거든요. 이게 무슨 신인다운 패기야, 하면서. ‘젊고 새로운 감각‘ 그런 말들도요. 제가 젊어서 젊은 대로 쓰면 되는 게 아니라 ‘어른들이 이걸 보면 젊다고 생각하겠지?‘ 그런 걸 써야 등단하게 되는 거 같아요. - P223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어린이용 소설로는 지나치게 길었다. 대사가 너무 적고 지문은 너무 많았다. 아이들은 점점 더 책을 안 읽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즈음 아동문학 트렌드는 따돌림 문제 등을 다루는 현실적인 책이었는데,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은 완전 딴판이었다. 그러면 블룸즈버리 출판사는 왜 조앤 롤링과 계약을 맺었을까? 신생출판사라 아동문학 출간 경험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담당 편집자는 그냥 원고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 P1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읽을까 말까‘라고 망설이는 사람에게 유용한 정보를 주는가, 라는 관점에서 볼 때 한국 서평 문화는 여러 가지로 아쉬운 점이 많다. 그 내용을 들여다봐도 그렇다.
우선 문학평론가들의 글은 일반 독자에게 대개 도움이 안 된다. 일단 너무 어렵고, 쉽게 찾을 수도 없다. 다루는 폭도 좁아서, 대체로 문단문학 작품으로 영역이 한정돼 있다. 그나마도 썩 솔직하지 않다.
(…)
또 나는 언론 서평 역시 별로 솔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새로 나온 한국 소설에 대한 악평을 신문에서 본 일이 있는지?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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