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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클래식 클라우드 39
김석.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 arte(아르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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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를 통해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인간’ 프로이트의 행적을 따라가는 친절한 안내서.




구스타프 말러, 반 고흐, 니체, 윤동주, 괴테, 아인슈타인 등 인류사에 족적을 남긴 인물들에 대해 깊이 알아가는 아르떼의 시리즈 '클래식 클라우드'의 39번째 주인공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국내 정신분석학 석학 김석 교수가 빈, 런던, 파리 등 정신분석학 창립자인 프로이트의 족적을 따라가는 여정이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담겨 있다.








20세기를 연 세 권의 책이 있다.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그리고 지그문트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다.


생물학, 정치/경제학, 심리학 분야에서 기존의 인간에 대한 이해를 전혀 다른 시각으로 갱신해낸 기념비적인 저작들이다.




『종의 기원』은 여전히 진화론에 있어서 성경과 같은 위치를 차지하지만, 『자본론』이나 『꿈의 해석』은 등장 당시 안겨주었던 충격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진 못하는 것 같다.




정신분석학은 발전 과정에서 신경증, 히스테리, 억압, 그리고 무의식과 같은 개념으로 범위를 넓히며 신체적 증상의 원인이 심리적 기저에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하지만 그 시작은 '꿈'이었다. 자연스럽게 프로이트 자신의 '꿈'이 주요한 해부의 대상이었다. 그 결과물이 바로 『꿈의 해석』이다. 그러나 지금은 몇 가지 기본 개념을 제외하고는 그 실효성에 대해서 의문이 제기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해서 프로이트와 그의 학문을 완전히 구시대의 유물로 치부해 버릴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다음과 같이 표현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금 프로이트를 읽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나는 이 책을 읽어나가면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았다.







김석 교수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단순히 정신분석학이나 프로이트가 주창한 '리비도',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같은 개념을 설명하는 이론서들과는 다르다.



대신, '인간' 프로이트의 행적에 보다 집중한다.



책에서도 언급되듯이, 창시자가 이토록 명확하게 알려져 있는 학문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런 연유로 '정신분석학'은 곧 프로이트이며, 프로이트가 곧 '정신분석학'처럼 여겨진다. 인간이라는 종의 기원 때부터 꿔왔을 '꿈'에 대한 진지한 분석을 시도한 것은 분명 프로이트와 정신분석학의 업적이다. 그러나 때로 정신분석학은 그 학문적 성취나 역할보다는 창시자인 프로이트의 결함 때문에 저평가를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서두에서부터 저자는 불완전하고 모순투성이인 '인간' 프로이트에 대해 솔직하게 적는다. 자신의 딸을 평생 비서로 두게 만들면서 통제하는 모습, 수제자 융과의 불화, 아들러와의 갈등, 담배에 중독되어서 구강암으로 고생하게 되는 말년 등등. 프로이트는 이를 빗대어 '찬란한 고립'이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세상과 불화하는 영혼을 가진 인간이 택할 수 있는 용기 있는 결정이라고 볼 수도 있다.




위와 같은 사실들을 종합해나가면서 책을 읽어나가자 희미한 결론 하나가 떠올랐다.


만약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결함이 없는 인간이 제시한 학문이라면, 정신분석학이 인간을 이토록 솔직하게 해부할 수 있었을까?


프로이트가 '문제적 인물'이기에 가능했던 게 아닐까?


개인적으로도 문제적인 인물에 크게 흥미를 느끼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읽어나가는 내내 그러한 생각을 지우기 어려웠다.




나아가서 이런 생각도 해보게 됐다. 우선, 이 책을 읽으면서 '정신분석학'에 대해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다음과 같다.




정신의학과 비교해 정신분석의 가장 큰 차이는 임상의 본질을 내담자가 자신의 무의식을 마주할 수 있고, 그를 통해 새로운 주체로 정립하게 도와주는 것을 본질로 삼는 점이다. 카우치(소파)는 정신분석의 원리를 반영한다. 카우치는 환자 스스로 연상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진실을 탐구하고 분석의 끝에는 스스로 분석가가 되어야 한다는 정신을 보여준다.



김석, 『지그문트 프로이트』, 17-18쪽




프로이트의 소파는 굉장히 유명하지만, 단순히 환자의 편안한 기분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래 대화형 AI의 발전으로 인하여, AI를 심리상담사, 정신과 의사와 같은 용도로 사용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AI는 하루가 다르게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기 때문인 듯하다.하지만 상담의 용도로 사용하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바로 사용자인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AI에게 상담을 받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프로이트의 소파'가 아닐까 한다. 단순히 AI에게 위로와 공감을 받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무의식과 억압적 요소를 찾아내고 이를 치유하는 것. 프로이트의 이론이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되지 못할지언정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불가해한 스스로와 더 깊은 대화를 나눠보고 싶은 사람, 숨겨져 있는 고통을 알아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여전히 프로이트는 유용한 도구가 되어줄 수 있다.  또한 저자도 책의 말미에 밝혔듯이, "아프고 연약한 나의 모습이야 말로, 나를 빛내는 아름다움의 원천"(236쪽)이므로 이는 한 번쯤은 대면해봐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에게 프로이트는 여전히 친절한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덮으며 그런 결론에 이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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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문트 프로이트 클래식 클라우드 39
김석.지크문트 프로이트 지음 / arte(아르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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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프로이트의 행적을 따라가는 친절한 안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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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개장의 용도
함윤이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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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함윤이 소설가는 「되돌아오는 곰」을 통해 202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2025년에는 단편소설 「우리의 적들이 산을 오를 때」를 통해 이상문학상 우수상, 이효석문학상 우수작품상, 2026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했다.


또한 같은 해 장편소설 『정전』으로 제31회 문학동네소설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위수정 작가와 더불어 근래 가장 뜨거운 주목을 받는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함윤이 소설가의 첫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는 총 7편의 소설이 실려있다. 특이하게도 신춘문예 등단작인 「되돌아오는 곰」은 실려 있지 않다.



「자개장의 용도」


「구유로舊遊路」


「강가/Ganga」


「수호자」


「규칙의 세계」


「나쁜 물」


「천사들(가제)」






「자개장의 용도」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자개장이 이 소설의 주요 장치로 등장한다. 증조모때부터 물려받은 자개장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특별한 물건이다. 그러나 돌아올 때는 늘 스스로의 힘으로 돌아와야 한다. 이러한 제약은 "떠남"의 의미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끔 한다. 돌아오는 방법을 염두에 둔 채 떠나는 것은 정말로 떠나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다녀옴"의 일부일 뿐.


진정으로 떠난다는 것은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과 현실성을 버린 순간에야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개장의 용도」의 말미에 이러한 의미가 엄마의 입으로 드러난다. 이 말을 듣고 '나'는 엄마가 그랬듯이 아주 멀리, 쉽사리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다녀오지 않고" "떠난다."



엄마는 말했다. 예전에 너더러 자개장을 쓸 때는 돌아올 거리를 꼭 염두에 둬야 한다고 했지. 사실 그건 거짓말이야. 돌아올 길을 생각하면 자개장을 제대로 쓸 수 없어. 오히려 그걸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자개장을 잘 쓸 수 있다. 누구한테도 이 말은 하지 않았어. 그게 나를 떠날 방법으로 쓰일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야. 누구도 빠져나올 수 없는 곳으로 너희가 떠날까 봐.


「자개장의 용도」, 41쪽.



「구유로舊遊路」



두 번째 소설인 「구유로」에도 "걷는 사람"이 등장한다. '나'는 함께 무대를 꾸미던 동료들의 무대를 보기 위해서 무작정 걷는다. 걸어서 그들에게 도착하면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질지도 모른다는 희망과 함께. 도대체가 걷는다는 행위가 소원 성취와 어떻게 관계를 맺는가.


오랜 시간 걷는 행위는 통증을 동반한다. 통증은 죽어감이나 문제적인 징후로 받아들여지기도 하지만, 때때로 살아 있음을 증거하기도 한다. 국토종주, 삼보일배 등 몸을 혹사시키는 단순한 방법들은 수행의 한 방편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나의 신체에 고통을 가해 마음을 닦고, 그리하면 초월적인 존재가 소원을 들어줄 거라는 단순한 바람의 발로 아닐까.


「자개장의 용도」에도 걷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엄마'와 '나'가 그렇다. 왜 이 여자들은 걸어야만 했을까?


걷는다는 건 이족 보행이 가능하게 진화했음을 의미하며, 그로 인해 두 손이 자유로워져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고, 그래서 인류는 다른 짐승들을 제압할 수 있었다…… 라고 퉁쳐서 말해도 될까?

괜찮다면, 이는 곧 '진보(進步)'를 의미한다. 진보의 한자가 '나아가는 걸음'이라는 점과 함께 곱씹어볼 만하다.


걷는 행위는 결국 아무 데도 기댈 곳 없는 이들이 절박하게 더 나은 삶을 기대하게끔 기능하는 듯하다.


나는 구유로를 생각한다. 그 집을 떠나온 날 이후로 매일 그래왔듯이, 그 마당과 복도 그리고 방 들을 떠올린다. 푸른 빛으로 일렁이던 방 한가운데에 서 있던 몸을 그린다. 어깨와 배 등 가슴 그리고 무릎과 허벅지 사이까지 파란색으로 물들어 있다. 사라의 몸은 항성과 위성이 겹치는 순간처럼 아주 잠시 드러나며, 다시는 잊히지 않는다.


「구유로」, 83쪽.



「강가/Ganga」



"강가"에는 크게 3가지 뜻이 있다.


강가, Ganga

/강가/

명사

힌두교의 하천(河川)의 신(神). 갠지스 강(Ganges 江)을 신격화(神格化)한 것임.


강-가, 江-

/강가,-까/

명사

강줄기가 육지와 잇닿은 곳. 또는, 그 부근. 강변(江邊). 하반(河畔).


강ː가, 降嫁

/강가/

명사

왕족의 딸이 신하의 집안으로 시집가는 것.



「강가/Ganga」는 이 소설집 안에서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남자를 사러 낯선 도시에 온 여자의 이야기다. 주체성을 획득하고자 하는 여성을 내세워 독립 영화와 같은 분위기를 낸다. 소설 속의 '나', 또는 '강가'는 남성이 필요하다고 느낀다는 점에서 얼핏 남성 의존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내내 남성을 "사겠다"는 태도를 견지한다. 이는 '강가'의 3번째 의미와는 정반대되는 태도다.


이러한 독립 영화적인 특성과 더불어 고전 영화 같은 분위기도 동시에 갖고 있다. 여성과 그가 만나는 남성들의 다소 연극적인 상호작용을 보고 있노라면 70~80년대 흑백 영화의 향수를 자아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이 흥미로운 지점은 이번에 출간된 함윤이 작가의 『정전』이 여공들의 이야기기 때문이다. 이 여공의 이야기가 이 소설이 씨앗이 되었을지 살펴보는 점도 재밌는 독법이 될 것 같다.




「수호자」


「수호자」는 작중 화자가 뉴질랜드에서의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돌아오면서 시작된다. 떠나가던 함윤이의 인물들은 이제 돌아온다. 다만, 돌아온 화자는 혼자가 아니다. 귀신과 함께다. 표제작인 「자개장의 용도」와 비슷하게 환상성을 지닌 작품이기도 하며, 언뜻 퀴어적인 요소가 엿보인다.


귀신과 사람은 죽음과 삶이라는 명백한 경계로 갈려진 존재들이기도 하다. 「수호자」를 기점으로 앞의 세 작품에서는 강가, 늪처럼 물리적으로 존재하던 "경계"가 추상적인 단위로 확장되기 시작된다.


여자가 내 어깨에 손을 얹었다. 소름이 척추를 따라 번졌다. 여자가 말했다. 이걸 귀신이라고 부르는 건 네 자유지만, 떼어내려고는 하지 마. 무조와 똑 닮은 눈이 나를 응시했다.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너무 힘들면요? 바닥에 주먹질하는 기분으로 매일 버터기는 싫어요. 귀신이든 뭐든, 붙잡고 사는 게 너무 어려우면 어떻게 해요?


「수호자」, 152쪽.




「규칙의 세계」


「규칙의 세계」는 쉐어하우스처럼 여러 사람이 한 곳에 모여산다는 설정에서 「구유로」와 묶어볼 수 있으며, 미신이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핵심 기능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자개장의 용도」, 「수호자」의 냄새도 난다.


또한 "거울"과 "산"은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로 넘어갈 수 있는 통로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경계"의 이미지가 짙게 작용한다.



「나쁜 물」


「나쁜 물」은 「천사들(가제)」와 함께 이 단편집에서 가장 인상적인 작품이었다. 선과 악은 얼핏 절대적이며 객관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 가치판단은 대체로 주관적이다. 선악의 문제가 명확할 때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는 지점들은 언제나 선악이 흐릿해지는 경계에 놓여져 있을 때다. 윤리의 경계라고 말해볼 수 있을까. 이를테면, 「나쁜 물」에서 '너'가 '범죄자'에게는 '좋은 사람'이 되었던 순간처럼. 이렇게 선의가 죄책감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 이 소설의 미덕이라고 볼 수 있다.


「천사들(가제)」


「천사들(가제)」은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기차 안에서 꾸는 꿈이 주를 이룬다. 꿈에서 친구와 내가 같이, 또 따로 알던 사람들이 두 사람이 만드는 영화 배역의 오디션을 보기 위해 등장한다. '나'는 자꾸만 꿈에서 깼다가 다시 잠에 들었다가 하는데, 이처럼 이 소설에서 "경계"는 현실과 꿈의 사이로 옮겨지고 자꾸만 흐릿해진다. 마침내, 3개의 배역에 지원한 9명의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사람들 사이의 경계마저 지워버리려고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목 이모님은 자신이 옛 영화들만 좋아하는 게 아니라고, 좋은 영화들이 오래 남아 옛것이 되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도 그런 거 만들어. 이모님은 종종 덕담처럼 말했다. 오래가는 거 말이야.너희가 죽은 후에도 길이길이 남는 거.


「천사들(가제)」, 264-265쪽.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Ganga」, 92쪽.


이처럼 함윤이의 소설집 『자개장의 용도』에서 "경계"는 여러 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경계가 가지는 본질적인 의미, 무언가를 가르는 기준이라기보다는 그 경계를 사이에 둔 두 공간, 두 가치를 이리 저리 옮겨다니는 과정과 그 의미에 집중하는 듯하다.


앞의 세 작품에선 강을 건너고(강을 건너도 여전히 강 건너임에도), 늪에 빠지고, 마침내 강물에 빠진다. 중후반에 배치된 작품에 이르게 되면, 경계는 서로 다른 세계, 선과 악의 윤리, 꿈과 현실, 생과 사처럼 추상적인 영역으로까지 확장된다. 이를 위해 환상적인 요소를 마음껏 끌어들이며 적재적소에 표현한다. 그리고 그 위에서 경계를 넘는다는 의미를 집중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말해볼 수 있을까. 함윤이가 그려낸 인물들은 모두 "경계선 위에서 태어났다고." 나는 이 작가가 그려놓은 다음 경계선을 쫓아서 『정전』을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자개장의 용도』를 덮는다.






G a n g a.

글자들은 잘 지은 집처럼 견고해 보인다. 입속으로 또 한 번 발음한다. 강가 - 이 단어는 보통 강줄기와 육지가 맞닿는 부분을 의미한다. 강과 땅 모두의 가장자리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다.



「강가/Ganga」, 9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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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비디아 DNA
유응준 지음 / 모티브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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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작성된 리뷰입니다.













올해 2월 공개된 넷플릭스 시리즈 <레이디 두아>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사업가나 사기꾼이나 매한가지긴 해.

근데 사업가가 사기꾼이랑 다른 게 딱 한 가지 있어.


시작은 허풍일지라도 끝은 아니라는 거지.



모든 성공한 기업들에는 대체로 이 말을 적용할 수 있다. 빌 게이츠가 차고에서 윈도우 개발을 시작했을 때, 제프 베조스가 인터넷으로 도서 배송을 시작했을 때, 일론 머스크가 페이팔을 매각하고 테슬라를 사들이고, 스페이스X를 창업했을 때.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을 때, 정주영 회장이 갯벌 사진을 들고 그리스 선박업주 리바노스를 찾아가고, 영국 은행에 찾아갔을 때. 너무 먼 이야기인가? 김병훈 대표의 APR 사례도 있다.


그들의 비전은 남들이 보기엔 허풍에 가까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어떤가.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일론 머스크, 정주영 회장, 이병철 회장 등 각국 경제에는 물론, 세계 경제에도 막강한 영향을 끼치는 인물들이 되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 남들 눈에는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비전을 현실화시키는 게 '기업가 정신' 아닐까.


엔비디아의 젠슨 황도 다르지 않다.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리니지 등의 열풍으로 인해 PC방이 우후죽순으로 생기던 1990년대 젠슨황은 한국의 용산전자상가를 찾았다. 엔비디아가 생산한 그래픽카드를 팔기 위해서였다.


제품을 팔기 위해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 발품 팔기를 마다하지 않던 젠슨 황의 엔비디아는 이제 애플을 제치고 전세계 시가총액 1위의 기업이 되었다.


모티브에서 출간된 『엔비디아 DNA』는 엔비디아 코리아 지사장 출신인 유응준이 직접 이런 엔비디아의 폭발적인 성장을 내부자의 시선으로 담아낸 책이다.




CPU와 GPU 차이를 명확히 보여준 레전드 시연회




『엔비디아 DNA』에서 저자가 수차례 강조하는 지점은 젠슨 황의 유연한 판단, 그리고 변화에 대한 과감한 베팅이다. 엔비디아의 기존 주력 상품은 그래픽카드였다. 용산전자상가를 돌아다니면서 팔려고 했던 제품도 그래픽카드였다. 그러나 현재의 엔비디아의 핵심 상품은 그래픽카드에 연산 기능이 더해진 GPU다.


반면 진짜 통찰을 가진 리더는 시장이 아직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간다. 그곳에는 숫자도, 사례도, 확신도 없다. 대신 기술의 방향성과 구조적 필연성만 존재한다. 젠슨 황은 늘 이 필연성에 베팅해 왔다.


『엔비디아 DNA』, 21쪽.



저자는 2016년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국을 본 후에야, AI 시대가 열렸음을 깨달았고 그동안 젠슨 황이 강조했던 방향성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고 밝힌다.


고사양 게임을 돌리기 위한 부품을 만드는 회사로만 알려진 엔비디아가 세계의 이목을 끌게 된 건 3가지 사건이 있다. 비트코인 채굴 열풍, 테슬라 자율주행 시연, 생성형 AI의 등장.


이 셋 모두 고성능 GPU를 필요로 하고, 이에 맞춰 젠슨 황은 재빠르고 과감한 결정을 통해서 엔비디아를 성장시켰다. 『엔비디아 DNA』에서 특히 강조되는 젠슨 황의 2가지 사고 방식이 있다.











1. TOP 5 Things





엔비디아 회의에서 젠슨 황은 "Top 5 things"를 강조한다고 한다. 이는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에 한해서 당장 "집중해야 할 5가지 목표"를 선정하고 이에 대해서 몰두하는 것이다. 엔비디아는 당연하게도 비슷한 규모의 대기업들을 상대하는 기업이고, 두 대기업 간의 이해관계를 모두 따지다보면 업무는 지연될 수밖에 없다. 내부적으로도 마찬가지다. 공룡 기업은 필연적으로 관료제적 문제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엔비디아 DNA』에 자주 보여지는 젠슨 황의 면모는 경직된 분위기를 타파하고, 업무를 효율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직원들을 독려하는 데 열중하는 것처럼 보인다.





2. 실패를 두려워 말고 실패에서 배워라.





마찬가지로 회의에서 젠슨 황은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한다고 저자는 밝힌다.


"Good. Now we know."


『엔비디아 DNA』, 90쪽



이러한 젠슨 황의 태도를 저자는 "지적 정직성"이라고 표현한다. 직원들이 실패했을 때는 문제 삼지 않지만, 그 실패에 대한 구구절절한 변명이 시작되면 젠슨 황은 질책한다고 한다. 실패에 대해 변명하기 시작한다면, 실패에서 무언가 의미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 낼 수 없고, 실패를 두려워해 소극적으로 업무에 임할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들었다.


어떤 프로젝트가 실패했을 때, 젠슨 황은 직원들을 질책하기보다 이제 문제를 더 정확히 알았다고 말한다. 이는 마치 에디슨이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작동하지 않는 1만 개의 방식을 알았을 뿐이다."라고 한 말과 겹쳐진다.


이러한 "지적 정직성"이 이 회사를 급격히 변하는 기술, 경제 상황 속에서 굳건히 자리매김한 회사로 만든 것이 아닐까 짐작하게 된다.



이 회사(엔비디아)는 항상 가장 먼저 성공한 기업이었던 적은 없었다. 그러나 가장 먼저 틀렸음을 인정한 기업이었고, 그래서 가장 먼저 방향을 바꿀 수 있었던 기업이었다.


『엔비디아 DNA』, 42쪽.






하루마다 달라지는 시대





요즘의 시대는 과장을 조금 보태자면, 하루만에 모든 게 달라지는 시대 같다. 이란과 미국의 전쟁, 코스피의 급격한 급등, 생성형 AI들이 점점 빠르게 장악하는 인간의 영역, 현대차의 아틀라스 등등. 하루만 관심을 갖지 않으면, 나만 빼고 전부 변한 것 같다는 착각이 들게끔 만든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저자는 엔비디아, 그리고 젠슨 황이 보고 있는 더 먼 미래를 독자들에게 살며시 보여준다. 이 지점은 상당히 흥미롭다. 앞서 언급했듯이, 엔비디아는 숱한 격변을 성공적으로 넘어온 기업이고, 이 변화의 최전선에서 진두지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GPU가 아니라 데이터센터 그 자체다."


(…)


이제 엔비디아는 더 이상 GPU 회사가 아니다. 그들은 시스템을 설계하는 회사다. 그리고 그 시스템은 단순한 하드웨어 묶음이 아니다. 지식이 흐르고, 연산이 축적되며, 시간이 압축되는 구조다. 칩을 넘어 시스템으로, 시스템을 넘어 공장으로. 엔비디아는 이렇게 스스로를 재정의해왔다.


『엔비디아 DNA』, 108쪽, 123쪽.



이 모든 변화가 모이는 지점이 바로 AI Factory 개념이다. 젠슨은 데이터센터를 더 이상 IT 인프라가 아니라, 지능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정의했다. AI Factory는 GPU, 네트워크, 스토리지, 전력, 냉각, 소프트웨어가 하나의 생산라인처럼 결합된 구조이며, 여기서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AI 토큰', 지능의 단위다.



『엔비디아 DNA』, 301쪽.





그래픽카드, GPU, 시스템, 피지컬 AI, AI 팩토리.


서두에 언급했듯이, 누군가는 허풍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허풍까지는 아니어도, 그게 과연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그래서였는지, 이 책을 읽는 내내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미래를 꿈꾸고 실현시키는 엔비디아에 대한 기대감이 더 커졌다.



동시에 이 책을 읽으면서 스스로에 대한 경각심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이를테면, 이런 대목이다.



엔비디아가 B Player를 허용하지 않는 이유는 단순하다. AI 시대에는 평균이 곧 한계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 DNA』, 74쪽.


AI 시대는 이미 열렸다. 엔비디아에선 평균적인 능력을 가진 B player를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모든 기업이 더 나은 직원을 뽑으려고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AI 시대에 오면서 평범의 기준이 높아졌음을 의미한다. 이전 시대보다 더 높은 기준을 요구 받고, 그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되지 못할 것이라는 자극을 주는 대목이었다.



이러한 변화를 예견했기에 젠슨 황은 오래 전부터 이런 말을 해온 듯하다.



"나는 여러분이 충분히 고통받기를 바란다."


『엔비디아 DNA』, 29쪽.



끊임없이 어려운 문제에 부딪히고, 거기서 생기는 고통을 극복하는 것만이 새로운 시대의 경쟁 속에서 살아남는 A Player가 될 길인지도 모르겠다.


성장하는 기업을 창업하고 싶거나, 엔비디아, 젠슨 황, 또는 다가올 AI가 주도하는 새로운 미래가 궁금하다면 『엔비디아 DNA』가 상세한 해설서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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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하동환 지음 / 에스엠디자인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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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국정원 대공수사 요원 출신인 하동환의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를 읽었다.

2024년 1월 1일부로, 국정원은 그동안 해오던 대공수사 업무를 경찰로 이관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는 소를 잃은 농부가 외양간을 고치는 마음으로 쓴 책처럼 읽힌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 실린 간첩 수사의 역사는 흥미롭다.

1970~1990년대까지는 "연고선" 간첩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주로 한국전쟁 당시 헤어진 가족의 혈연을 이용한 공작 방식이다. 이때 이후로 완전한 북한 출신인 "새세대 공작원"들이 등장했으며, 놀랍게도 근래까지 "자생 간첩"이 활동하다가 검거되기도 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에서는 "남조선노동당 사건", "민혁당 사건", "일심회", "RO" 등 굵직한 사건들을 아우른다.


특히 내 이목을 끈 부분은, 요즘 북한의 문화교류국은 "유튜브" 댓글을 이용하기도 한다는 점이다. 또한 "스테가노그라피"라는 암호 생성기, 해독기를 사용한다는 점 역시 인상적이었다. "유튜브" 댓글 부분을 읽으면서 예전엔 "네이버 지식인"을 통해서 익명의 사람들이 특정한 좌표를 주고 받는다고 의혹을 제기한 글을 본 적이 있었는데, 다시 찾아보니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드보크 좌표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우리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



국정원의 실체에 대해선 잘 몰라도 원훈만큼은 유명하다. (현재의 원훈은 이재명 정부에 들어서 "정보는 국력이다"로 교체되었다고 한다.) 이 원훈처럼, 우리가 모르는 곳에서 끊임없이 북한의 대남공작과 치열하게 싸움을 전개해온 국정원은 국회의원들의 입법에 의해 수사권을 잃었다. 여러모로 생각해볼 거리를 던져주는 문제다. 저자가 주장하듯이 '국정원 대공수사권 폐지'를 입법시킨 다수당 의원들 중 많은 수가 국가보안법에 저촉된 이력이 있고, 국정원의 전신인 안기부에서 상당한 고초를 치렀기 때문일 수도 있다. (『우리가 몰랐던 간첩 잡는 이야기』, 210쪽)


하지만, 저자가 언급했다시피, 국정원은 FBI의 수사권과 CIA의 정보력을 동시에 지닌 막강한 권력기구이기도 하다. 중정이나 안기부에 대해 말할 때,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 "남자를 여자로 바꾸는 것만 빼고는 뭐든지 가능하다."와 같은 묘사가 나오는 건 그런 면모를 더욱 부각시킨다.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된 강압 수사의 결과물들이 축적되어 대공 수사권 폐지에 한몫했음도 부정할 순 없다.


실질적으로 통진당 사건, 이태원 참사 시위 지시문 등을 살펴볼 때, 북한은 여전히 우리나라에 실제적인 위협을 가하고 있다. 나 역시 저자의 의견대로 이러한 북한의 야욕을 저지하기 위해선 국정원이 대공 수사를 맡아야 한다고 본다. 다만, 앞서 언급한 강압 수사나, 저자가 책에서 고백했듯이 잘못된 정보를 재판에 사용했던 문제 등은 국정원의 자승자박이었다. 따라서 이 수사권을 국정원에게 돌려주되, 무소불위의 권한을 주기보다는 효율적으로 쓸 수 있는 방안을 정치권이 마련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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