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로워십 - 세상을 바꾸고 리더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힘
바바라 켈러먼 지음, 김충선.이동욱 옮김 / 더난출판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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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검찰과 경찰들 사이에 수사권에 대한 권력 싸움이 있었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갈등을 조절하려 했지만 추상같은 대통령의 뜻마저도 수사권과 관련한 경찰과 검찰간의 권력싸움을 조화롭게 조절하지 못했다. 마침내 검찰청의 검사장급 인사들 전원이 사표를 제출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검찰총장은 검사장들이 제출한 사표를 반려했다. 그리고 몇일뒤 검찰총장 자신이 사표를 제출했다. 이번에는 청와대가 검찰총장의 사표를 반려했지만 그는 결국 사표를 제출했다. 그리고 임기를 앞두고 사직한 검찰총장의 자리에는 검사장급 인사가 않았다.

 

검사라는 거대한 파워조직의 리더인 검찰총장을 따르는 검사장들이 사표를 제출한 것은 경찰과 정치권과 청와대와 국민들을 상대로 외로운 싸움을 벌이는 검찰총장에게 힘을 싫어주는 행동이었을 수 있다. 그러나 반대의 시각도 가능하다. 검사장들이 모두 사표를 제출한다는 것은, 결국 이번 검경 파워싸움의 결과가 검찰측의 시각으로 볼때 만족스럽지 않음으로서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도 있다. 대통령이 하야를 할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은 검찰총장이 사표를 냈다. 그는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조기 사직한 5번째인가 여섯번째 검찰총장이 되었다고 한다.

 

검찰총장을 보좌하고 따르는 소위 팔로워인 검사장들은 이 국면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있지 않았다. 사표를 제출하는 가장 극단적인 행동으로 검찰총장에게 힘을 싫어주었다. 검찰청 검사장급들 전원이 사표를 제출한다는 이례적인 일은, 그들 팔로워들의 행동이 국민과 국회와 청와대의 시선을 잡아 끄는 힘을 발휘했다. 경찰과의 협상에서 상당히 유리한 국면을 조성한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들의 집단행동이 반드시 검찰총장을 위한 것이라고만 생각할 수는 없다. 약간 머리회전이 빠른 사람이라면, "그렇다면 제대로 해결되지 못하면 결국은 검찰총장이 사표를 내라는 말이구면" 이라는 해석이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결국 검사장들 중 한사람이 새로운 검찰총장이 되었다.

 

이 사례에서 보듯이 실제 상황에서 리더는 이끌고 팔로워는 끌려가는 존재가 아니다. 수많은 리더쉽 강의는 리더가 이끌면 팔로워는 딸려오고, 훌륭한 리더는 팔라워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 현장에서의 역학관계는 리더와 팔로워들의 끊임없는 힘겨루기가 벌어지는 역동적인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조직에 따라서 항상 리어와 팔로워들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존재하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것 처럼, 히틀러와 나치는 합법적인 방식으로 독일의 권력을 쟁취했다. 그리고 그들은 독일 국민들 대다수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이와 같이 리더와 팔로워의 관계는 그들의 개인적인 캐릭터에 따라서, 두 세력간의 개성과 힘의 균형에 따라서, 혹은 공통의 이해관계가 존재하느냐의 유무에 따라서, 혹은 그 집단이 처한 상황과 정서에 따라서 천차만별의 형태를 가질수 있다. 얼마전 헬퍼십이라는 책을 읽고 큰 감명을 받은바가 있다. 그 책은 훌륭한 리더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훌륭한 조력자가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은 팔로워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숨쉬고 움직이고 작용하는 역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일깨워주는 책이다. 때로는 리더의 적극적인 지지자로서. 때로는 방관자로서, 때로는 리더의 등에 칼을 꼽을수 있는 존재로 살아 숨쉬는 팔로워의 모습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무척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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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의 역습 - 오만한 지식 사용이 초래하는 재앙에 대한 경고
웬델 베리 지음, 안진이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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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상을 관리할수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는 땅과 바다와 하늘에 걸쳐서 많은 미지의 세계를 발견하고, 그 영역들을 우리의 뜻에 따라서 개척해 나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우리가 발견하고 확장한 우리들의 세상은 결코 우리들의 마음대로 움직일수만은 없다. 흔히들 말하듯 우리는 우리의 영역을 땅과 바다와 하늘로 넓혀왔지만, 결코 그것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혹은 우리가 그 영역들을 정복하기는 했을지 몰라고, 결코 그 영역들을 우리들의 마음에 들게 안전하게 관리하지는 못하고 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가까운 예로 금년 여름에 우리들의 수도 서울의 강남 한가운데를 덥친 그 어마어마한 비를 생각해보라. 문명과 부의 상징이었던 서울 중에서도 강남이 한순간에 물폭탄을 맞고 그 기능을 상실할 정도가 되었다. 엄청난 자금을 퍼부어 공사중이던 4대강의 치수사업도, 강물이 우리들에게 가한 역습으로 인해 군데군데 파괴되고 추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의 힘이 무척 커진것은 틀림없는 일이지만, 아직은 인간이 모든 것을 제대로 관리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수 없다.

 

그러면 인간이 좀 더 발전된다면 어떨까. 우리가 좀더 주의하고, 좀 더 많은 노력을 가한다면 우리는 세상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을까. 짧은 시간내에 엄청나게 커지는 인류의 지식의 축적을 통해서 우리는 마침내 모든 문제를 완벽하게 제거할 수 있을까. 예를 들면 쓰나미로 인한 일본원자력 발전소의 방사능 유출이나 그와 유사한 문제, 혹은 아직까지 우리가 생각해보지는 못했지만, 장차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또 다른 재앙들에 충분히 대비하고 그것들에 대한 해결책을 만들수 있을까. 예컨데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의 인류의 발전은 어디까지 가능한 것일까.

 

이 책은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대답을 하는 책이다. 이 책이 말하는 공동체로의 회귀는 사실 한두번 언급된 내용들이 아니다. 수많은 지성들이 인류가 만들어 올린 찬란한 문명의 탑이 스스로 붕괴해 내릴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다. 수많은 석학들이 우리들이 가야 할 곳은 다시 소규모 공동체로의 회귀임을 밝히는 저서들을 내어놓고 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내용들을 잘 요약하고 정리하면서, 다른 책들이 우리에게 주장했던 것들을 무척 설득력 있게 제시하는 책이다. 공동체.... 맞은 말이긴 한데... 허황된 공상주의자들의 이상적인 주장으로 생각하던 나에게도 무척 마음에 다가오는 책이었으니 말이다.

 

공동체에서 기본적인 소비를 하고 남은 생산력이 있어야 인류의 지적인 활동을 유지할 수 있다. 우리가 공동체로 돌아가고 산업화된 농업의 상당부분을 포기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축적된 인류의 지적인 자산을 전면적으로 포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공동체적인 삶의 지혜를 회복하되, 과거의 공동체적인 사회보다 훨씬 발달된 정보를 가지고 살아갈 것이다. 우리가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서비스 부분을 상당히 포기한다면 우리는 과도한 소비와 환경의 파괴를 막고, 인간의 문명화된 삶과 이 지구가 부양할 수 있는 인간의 착취의 한계를 맞추는 노력을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먼저 지식이 우리를 언제까지나 더욱 더 우리를 자유롭게 만들어 줄 것이라는  오래된 미신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지식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잘못 생성된 관념이 우리의 뒤통수를 공격하는 그 시간이 오기전에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 낸 지식을 다시금 되돌아보며, 꼭 필요한 지식을 재구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이 책이 바로 그런 노력을 해 나가는 무척 중요한 책이라는 생각이든다. 우리가 앞으로 쌓아가야 할 지식은 바로 이런 지식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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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이정표 - 이슬람 원리주의 혁명의 실천적 지침서
사이드 쿠틉 지음, 서정민 옮김 / 평사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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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향한 외침은 언제나 척박한 풍토에서 조성된다. 시대가 암울하고 불의가 판을 칠때 뜻이 있는 사람들은 마음속에 조용하지만 뜨거운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일제 감점기의 우리들이 우국지사들이 바로 그러했었고, 권위주의 시대에 우리나라의 민주화 운동이 그러했었다. 모두가 같은 울분을 느끼지만, 그중 뛰어난 지성을 가진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지표가 되는 책을 쓰고, 시와 노래를 만든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시대를 뛰어 넘어 다른 땅 다른 시대에 비슷한 울분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전달되는 힘을 가진다.

 

잘은 모르지만 아마도 이슬람 역사를 연 모하메드 역시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인간 예수 역시 그러했을 것이고, 인간으로서의 석가모니 역시 그런 아픔을 체화하고 승화하여 꺠우침을 만든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의 가르침을 배운 사람들이 현실에서 이슬람의 가르침이 실현되지 않는 아픔을 느낀다면, 이 책의 저자인 사이드 쿠톱과 같은 생각을하고 그가 남긴 책과 같은 책을 만들지 않겠는가. 그가 느끼는 아픔이 그의 감수성을 더욱 강하게 자국하고, 그가 마주치는 현실이 더욱 암울하면 암울할수록 그가 남기는 아픔을 극복하려는 노래는 더욱 강하고 더욱 힘차게 표현될 것이리다.

 

우리는 이 책에서 바로 오늘날 '이슬람 원리주의'라고 불리는 다양한 운동들이 정신적인 지향점으로 삼고 있다고 하는 이가 남긴 글을 읽을수 있다. 그의 글을 읽는 것은 단순히 그가 쓴 글을 읽는 것을 넘어서, 오늘날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없을듯한, 이슬람권의 열혈적인 사람들이 느끼고 생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이해하는데 지도와 같은 구실을 해 줄 글을 읽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내용을 통해. 그리고 책의 전반부에 역자가 잘 요약한 저자의 생애와 근대 이슬람의 변혁운동의 역사를 통해서 왜 오늘날의 이슬람 과격파들이 그런 질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지를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이슬람 세력과 미국을 대표로 하는 서방세력 사이의 끈질긴 갈등이 오늘날의 세상을 이해하는 주요한 키워드 중의 하나이지만, 아직까지 그 근본적인 원인을 파편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한 것은 물론 나의 지적인 게으름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최근 들어서 국내에서도 제법 많이 간행되기 시작한 이슬람 관련 저작들 중에서 이 책과 같이 '그들'이 생각하는 방식과 '그들'의 시각으로 바라본 세상을 직설적으로 전달하는 책이 많지 않은 것도 원인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면에서라면 이 책은 나와같은 한계를 갖고 있었을 적지 않은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주는 책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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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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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통계학적 요건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힘을 가지는 원천이다. 끊임 없이 시골에서 도시로 밀려나오는 농민공이라고 불리는 중국의 저렴한 노동자들이 전세계의 디플레이션을 이끌어낸 원동력이었다. 이제 그들 농민공의 임금이 올라가기 시작하면서 세계는 중국발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게 되었다. 미국의 펀드가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지게 된 것은 미국의 베이비 부머들이 자신들의 노후를 대비해서 축적한 막대한 연금성 자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문에 저축률이 낮은 미국에서 막대한 규모의 금융투자 자금이 조성되어 전세계의 금융시장을 헤집고 다닐 힘이 생긴 것이다. 이처럼 인구구조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큰 힘을 가진다.

 

노령화가 상상이상의 속도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지금 우리들에게 가장 큰 화두가 되고 있는 유럽의 그리스 재정위기의 속사정은 그리스의 노령화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나기에는 나라 사정이 좋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인들이 국가로 부터 수령하는 과도한 복지혜택을 줄이는데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해소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정부로 부터 복지 혜택을 받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리스의 연금수령자들이다. 즉 그리스의 인구구조상 노인들의 비율이 높고, 그 노인들의 주요 수입원인 연금을 줄일수가 없기 때문에 그리스의 재정위기가 해결되지가 않는 주요 원인인 것이다. 만약 그리스의 노인들의 비중이 지금보다 훨씬 적자면 그리스는 훨씬 더 가볍게 지금의 위기를 탈피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을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되고 있는 국가이다. 노령화가 진행된다는 것은 단순히 그 나라의 인구구성에서 노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인들이 노후를 대배해 저축한 자금들이 급속이 소진되기 시작한다는 뜻이고, 또 활발히 경제활동을 하면서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세금을 낼 사람들의 비율이 줄어들기 시작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한 나이가 든 사람들을 수발한 젊은 사람들의 수가 줄어들어서, 국가내에 연령비에 따른 적절한 노동인구의 수급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고, 활발한 경제활동을 하는 중산층의 수가 줄어들어 국가내에서 규모의 경제가 이루어질 수 없어, 산업생산에 차질이 생길수도 있는 등 우리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다양한 문제들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다. 지금 바로 우리들의 옆 나라인 일본에서 노령화로 인한 각종 문제가 생기고 있지만, 일본도 아직은 노령화로 인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초기단계이고, 우리나라의 노령화 속도가 일본보다도 훨씬 더 빠르다는 것을 생각하면 노령화 문제는 우리들 대부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 '회색쇼크'가 좋은 이유는 이렇게 우리에게 빠르게 다가오고 있으나, 아직은 우리가 그 중간에 서보지 못한 '노령화라는 현상'의 중심으로 우리를 데려다 준다는 점에 있다. '노령화가 진행되면 이러이러할 것이다' 가 아니라. '노령화가 심각하게 진행된 특정한 사회의 한 부분을 노령화라는 관점하에서 잘 관찰해보았더니 그 현황이 이러이러하더라'라는 현황과 보고를 담고 있는 책이기 때문이다. 예측과 현황에 대한 보고의 차이점은 엄청나다. 그 엄청난 만큼이 이 책이 노령화 사회를 예측하는 다른 책들과의 차이점이다. 이 책은 '아마도 앞으로는...' 이 아니라, '실제 노령화가 진행된 특정한 지역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라는 생동감이 넘치는 무척 리얼한 노령화사회의 모습을 우리들 앞에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대단한 착상을 한 저자의 능력에 우선 큰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리고 그 번쩍이는 아이디어를 단순한 아이디어의 차원에서 그치고 만 것이 아니라, 치밀한 사례 수집을 통해서 잘 편집을 한 그 수많은 노력에도 갈채롤 보내고 싶다. 또 하나 이 책에서 빠뜨릴수 없는 큰 장점이 있다. 문장이 너무나 수려하다는 것이다. 두툼해보이는 책을 읽을때 처음에 느껴지는 부담감이 책을 읽다보면 언젠가 입가에 미소를 띄게 만드는 놀라운 문장력에 흡족하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나도 늙어갈 것이고, 나도 언젠가는 노인이 될 것인데, 노인들의 삶에 대한 책을 읽으면서도 유머스러운 웃음을 품게되고, 그렇게 노인으로 또 하루를 달려가고 있는 나 자신을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 나오는 문장중 하나를 인용하고 싶다. "하루를 산다는 것은 하루만큼 더 죽음에 가까이 다가 갔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하루를 더 산다는 것은 탄생으로 부터 죽음까지의 거리가 하루만큼 더 길어졌다는 뜻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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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르트르와 카뮈 - 우정과 투쟁
로널드 애런슨 지음, 변광배.김용석 옮김 / 연암서가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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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샤르트르와 카뮈라는 두 사람을 다 좋아한다. 그러나 내가 좋아한다는 그 두사람에 관해서 얼마나 아는 것이 적었는가라는 점을 나는 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부터 절실하게 느끼지 않을수가 없었다. 카뮈라는 걸출한 소설가. 샤르트르라는 위대한 철학자. 막연히 이렇게만 알고 있던 나에게, 레지스탕스로서,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 열혈적인 운동가로서, 언론인으로서 활동하던 두 사람의 모습을 알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뿐만 아니라 막연히 실존주의 소설가로 알고 있던 카뮈의 철학자로서의 모습을 알게 되고, 막연히 실존주의 철학자로만 알고 있던 샤르트르의 소설가로서의 모습을 알게 된 것도 또 다른 놀라움이 아닐수 없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 철학입문에서나 배울법한 실존주의에 대한 피상적인 지식 이상을 경험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우리나라의 현대문학에서 나오는 '실존주의의 세례를 받은 세대'에 대한 이해조차도 내가 알고 있던 그런 피상적인 이해의 수준에 머무를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 책은 카뮈와 샤르트르 두 사람의 전기적인 삶에 대한 평가이기도 하지만, 이 책이 견지하는 내용은 그 두사람이 자신이 살아가던 시대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반응을 했는가에 관해서, 두사람이 서로 상대방의 시대에 대한 반응에 대해서 또 어떻게 반응했는가에 대해서 미세한 현미경을 들이대고 자세히 살피는 책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이 지난 과거에 대해 어떻게 이런 두터운 책을 쓸 정도로 철저한 연구를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탄성이 나오지 않을수가 없지만. 그토록 긴 시간이 지나고도 이런 세세한 연구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자료들이 남겨져 있었다는 것도 참 부러운 일이 아닐수가 없을 것 같다. 문외한이라 자신있게 말할수는 없지만, 아마도 우리나라의 해방직후에 필명을 날리던 문인들에 관한 연구를 한다면 이 책만큼 풍부한 내용을 가진 연구가 가능할까? 하는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또 하나 이 두사람을 다루는 내용이 나에게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카뮈와 샤르트르라는 두 사람이 비록 내가 그들의 저작을 많이 접하지 못했고,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두 사람에 대해서 막연하게 안다고 생각하던 것이 사실은 형편없었지만, 레지스탕스기를 거쳐서 동서 냉전이 시작될때부터 일이나기 시작한 생각의 갈등이 우리나라 문단이나 우리나라의 지식인들이 경험한 그 갈등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지 때문이다.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조건하에 처한 우리나라에 특수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에 대한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지식인들 사이게 존재할 수 밖에 없었던 문학과 철학적 입장의 갈등, 그리고 그런 갈등으로 인해 실제적인 삶과의 관계에서 가질 수 밖에 없었던 팽팽한 긴장이 이 두 프랑스의 거장에게서도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 참 독특한 경험이었다.

 

이 두 천재들의 우정과 교감 그리고 갈등과 대립은 전 세계의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질만한 큰 관심사이기도 하겠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특수한 상황에 놓인 지식인들에게는 더욱 많은 관심을 끌수 밖에 없는 사안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드라마틱하게 바뀌어가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라는 특정한 역사적인 조건하에서의 각자의 선택과 갈등. 그리고 그들의 선택의 차이에서 벌어지는 신념과 우정의 괴리. 그런 아픔들이 시대와 삶과 마찰하면서 울려나는 파열음. 그리고 그것을 우리의 상황에 대입해보면서 느끼는 특유의 경험들. 그런것들이 이 책이 문학과 실존주의와 문학과 삶의 갈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우리나라의 모든 독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이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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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09-22 23:53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