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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 투발루에서 알래스카까지 지구온난화의 최전선을 가다
마크 라이너스 지음, 이한중 옮김 / 돌베개 / 2006년 8월
평점 :
절판
이 책에 대한 나의 입장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단어가 될까 생각해 보았다. 지난 1년 가량 동안 접한 환경관련 책들의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서 조어를 해보았다. 온정적 지지주의자.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환경운동에 대한 내 입장을 요약한 단어이다. 그 유명한 책 '회의적 환경주의자' , 그리고 얼마전에 국내에서 출간된 비판적 환경주의자 식의 단어를 따서 만들어 본 단어이다.
사실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책은 '허풍도 심하시네, 사막에 펭귄이'라는 책이다. 다소 조악하게 쓰여진 이 책은 사실은 가장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막에 펭귄' 이리는 책은 과학적인 책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자료들을 동원해 과거에도 기상이변이라는 말들이 항상 존재해 왔다는 추론을 가능하게 하는데는 성공했다.
심해지는 황사, 격렬한 폭풍우,,, 이 책에서 온난화의 근거로 드는 많은 현상들이 온실가스의 본격적인 배출이 이루어지기 전인 주기적으로 지구를 찾아오기 훨씬 전인 1000년 전부터 존재했다는 기록들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구온난화에 대해 가지고 있는 믿음의 근거들 중 적어도 일부는 무력화시키는데 성공한 것이다. 물론 이 책도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고 있다는 점 자체를 부인하지는 않는다.
작년에 읽은 책중 지구과학에 대해 많은 공부가 된 책 중 하나는 '우리는 지금 빙하기에 살고 있다' 이다. 이 책은 온난화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중립적이다. 단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는 수백 수십만년 단위로 크고 작은 빙하기와 온난기 간빙기라는 주기를 겪고 있고, 그에 따라 빙하가 생성되고 녹기를 반복한다는 덤덤한 이야기를 한다. 그래서 우리가 바라보는 지리적 특성들 중 상당수가 그런 빙하의 잔해물로 생성된 것이라는 말만한다. 마지막 딱 한 페이지에서, "이런 지식이 오늘날의 기후 문제를 보는 시각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라고만 한다.
현재 기온이 오르고는 있다. 그러나 그 온도 상승 현상이 화석연료의 급격한 사용 이후에 기인한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온도상승기의 현상일지 모른다. 17세기에도 지금과 비슷한 온도 상상 현상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즉 화석연료와 지구 온난화 와의 연관성을 증명할 근거가 아직은 부족하다. 사막화 현상으로 인한 황사가 나타나는 것이 온난화의 증거라고 주장한다면, 인류문명이 나타나기도 전에 비옥하던 삼림지구에 사하라 사막이 생긴 이유를 설명할 방법이 없다.
'사막에 펭귄이' 라는 책은 지구의 이산화탄소 순환에 대해 언급한다. 우리는 산업화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대해 언급하지만, 지구가 품고 있는 이산화탄소 총량은 화석연료 연소량보다 훨씬 크고, 그 대부분은 대기가 아니라 물속에, 그리고 암석의 형태로 지각속으로 흡수되어 들어간다고 설명한다. 물론 더 많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가능성이 인정되는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친 책은 최근 간행된 '쿤/포퍼 논쟁'이다. 쿤이란 학자의 패러다임 이론을 뒤늦게 접한 것은 나에게 상당한 감명을 주었다. 그래서 온난화라는 핫 이슈라는 것도 결국은 쿤식의 과학의 패러다임화 현상으로 이해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과학은 일단 하나의 트랜드가 잡히기 시작하면, 그 트랜드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보다는, 그 트랜드에 따른 어법으로 현상들을 더 조밀하게 설명하려는 노력이 진행된다. 마침내 그 트랜드(패러다임)으로 설명이 불가능한 일들이 쌓이게 되면, 그제야 비로소 그동안 축적된 설명불가능한 일들을 설명할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는 노력이 일어나게 된다.
석유회사들의 반 환경운동은 안타깝다. 그것은 명백한 자본의 이기적 논리이다. 그러나 자본의 전횡이 밉다고 해서, 반 석유회사적 담론을 정확한 과학적 추론으로 믿는 것도 어리석은 일일수도 있다. 나는 근본적으로 환경주의자이다. 우리의 모태이자 '아직은' 유일한' 요람인 지구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에 나도 상당한 관심이 있다. 이 주제에 관한 내 모든 독서는 그런 관심의 표현이다.
그러나 아직은 환경론자들의 주장이 '과학적'이라고 할만한 근거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나는 나 자신에게 '회의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빙하기의 순환이 분명히 존재하겠지만, 또 화석연료의 소모가 반드시 온난화의 주범이라고 할 근거는 부족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는 화석연료의 과도한 사용이 최소한 자연적인 지구환경의 순환에 일정한 영향을 줄 것으로 추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이성은 말한다. 아직은 근거가 부족하다. 그래서 좀 더 철저히 고뇌해야 한다.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같은 강력한 조치를 발동하기에는 아직은 근거가 부족하다. 좀 더 철저한 근거가 나와야만 비로소 인류는 반 환경이익 집단의 거부를 억누르고 구체적인 행동계획을 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어반복적인 감정적 내용만을 K아내는 것보단는, 보다 정밀한 과학적 논리를 근거로 한 환경담론이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그것이 나 자신을 온정적 지지주의자라고 부르는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