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 사건과 병원에서의 수술로 경찰들은 그가 프릭스라는 사실을 알아버렸다. 그래도 다행인건 스승님 덕분에 끌려가지 않고 집에 머문다는 점이다. 대신 하루도 거르지 않고 여러 사람들이 찾아왔다. 그들 중 일부는 연구소의 직원인 듯 프릭스의 혈액을 체취해가고 그의 입 안에서 세포를 떼어가는 등, 상당히 귀찮게 행동했다.   

 [끌려가지 않은 걸 보면, 스승님은 엄청 높은 자리에라도 계시나봐] 

프릭스는 아직도 기분이 별로인 듯, 창문가에 앉아 구름이 흘러가는 것만 바라보며 나의 말에 입을 열지 않았다. 귀찮은 이들이 모두 가버린 후라, 그는 사람으로 변해 스승님의 옷을 입고 있었다. 

[이젠 쉽게 변신하네]
[처음엔 위험할 때뿐이었는데, 이제는 아무 때나 가능해]
[오호~] 

나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옆구리를 살짝 건드리며 웃었다. 

[니가 원하던 대로 된 거 같은데, 기분이 왜 별로니?]
[내가 만약에 호랑이였다면..니가 다칠 일도 없고, 내가 이런 무력감을 느끼지 않았을 거야]
[그건..]
[위로하지 마. 비참해져] 

나는 입을 닫았다. 그에게 지금 할 수 있는 말은 내용이 무엇이든 위로 그 이상이 될 수 없다. 대신 좀 더 가까이 앉았다. 공허하고 힘없는 눈은 나를 보지 않으려는 듯 바닥으로 시선을 떨어뜨렸다. 나는 충동적으로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목숨을 구해준 용사를 위한 선물] 

그는 당황한 표정으로 침을 삼켰다. 자신의 입술을 조심스럽게 만져보더니 갑자기 나를 껴안았다. 나는 벗어나려고 하는 대신 그가 원하는 대로 품에 안겨 있었다. 기분이 나아지길 바란다는 말을 중얼거렸다. 그의 몸이 조금씩 떨려오는 게 느껴져 혹시 우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건 어떤 감동을 참지 못해 숨을 헐떡이는..그런 행동이었다. 이어 참기 어려운 뭔가를 내뱉는 듯 떨리는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넌 나의 마타야]
[뭐?] 

그의 말은 내 머릿속에서 커다란 폭탄이 되어 펑 터졌다. 당황하여 꿈틀거리자, 그는 나를 풀어준  뒤 창가에서 일어났다. 내 손을 잡아끌어 침대에 앉히고는 무릎을 꿇었다.  

[나의 주인, 나의 목숨. 당신은 내 영혼의 마타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당신에게 내 모든 걸 바치겠습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를 붙잡고는 긴 키스를 했다. 마침내 그가 떨어지자 할 말을 잃은 나는 한참동안 굳어 있었다.  

[뭐...뭐한 거야, 지금?]
[마타에게 바치는 프릭스의 맹세입니다]
[그런 말투 그만해. 그냥 평소처럼 말해]
[다른 프릭스들은 그렇게 할 거랍니다]
[다른 프릭스들이 있어? 어디?] 

그는 창 밖 숲을 가리켰지만, 내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질 않았다. 잠시 방 안에는 침묵이 흘렀다. 나를 마타라고 고백하는 그에게 어떤 말을 해야 할지 감이 오질 않았고, 그는 언제나처럼 빙글빙글 미소를 짓는 대신 기사인 양 근엄한 표정으로 내 입만 바라보았다. 

나는 한 숨을 쉰 후, 침대에서 일어났다. 

[지금처럼 소름 돋게 말하면 널 이 집에서 쫓아낼 거야. 그렇게 되면 너하고 나는 다시 볼 수 없어. 그래도 좋아?] 

황급히 고개를 흔드는 프릭스. 

[좋아. 그럼 맹세란 걸 하기 전처럼 편하게 말하고 행동해. 그럴 수 있지?]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잠시 고민을 했지만 딱히 다른 선택이 없음을 알고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앉아] 

나는 그의 손을 잡아끌어 침대에 앉혔다.   

[언제부터 안거니?]
[다른 프릭스를 만나 마타와의 교감에 대해 들었을 때]
[한참 전이네]
[응. 다만 확신이 안 들었는데, 병원에서 해준 말 덕분에..] 

그 말에 화가 치밀었다.   

[그 후로도 말할 기회가 있었는데 넌 하질 않았어!] 

그는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게..말하긴 해야 하는데, 말하면 혹시라도 널 잃게 될까봐..]
[그럼 지금은 왜 하는 건데?] 

내가 팔짱을 끼고 방을 왔다 갔다 하자, 그는 두 손을 들며 터져버렸다고 말했다. 그 순간 화를 주체할 수 없어져 그를 거칠게 밀어버렸다. 매트리스 위에 벌러덩 누운 프릭스는 천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나도 나를 어떻게 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사랑해] 

나는 돌처럼 딱딱히 굳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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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에서 나는 스승님의 방에 있었다. 입은 옷은 창피하지만 여전히 체육복이고, 머리도 산발인 게 호랑이와 접전을 벌인 후다. 어쩌면 병원에서 돌아오자마자 일수도 있다. 스승님은 해바라기가 활짝 그려져 있는 새파란 잠옷을 입고 다가오셨다. 내 옆에 누워 나를 말없이 바라보는 행동에 가슴이 방망이질을 시작했다.

쿵쾅쿵쾅... 

내 귀로 가득 들려오는 심장소리에 얼굴이 벌개지며 손, 발도 뜨끈뜨끈하게 달아올랐다. 뱀파이어는 냉혈인데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는 의문이 들다가, 이건 꿈인데 뭔들 불가능하겠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나서는 꿈이니까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보자는 무모한 용기를 내, 두 팔로 스승님의 목을 감쌌다. 

[넌 아름답고 총명해]
[스승님께 사랑받을 수 있을 만큼요?] 

그의 중얼거림이 너무 작아 귀에 들리지 않았지만, 아마도 긍정적인 대답이었을 거라고 믿었다. 서늘한 손이 옷 안으로 들어와 가슴을 따라 움직이면서 동시에 입술이 목을 스치며 천천히 얼굴로 올라왔다. 그의 긴 몸이 살며시 내 위로 겹쳐지고 허벅지를 쓰다듬는 손길에서 흥분이 느껴졌다. 내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는 다급한 무엇인가가 담겨 있어 나 역시 목에 감은 손을 더욱 조였다. 무엇인가 야릇한 느낌이 몸에 전해지며 심장에서부터 아릿한 통증이 시작되었다. 평소에 바래오던 상황이긴 하지만, 아직 스승님께 사랑한다는 말을 듣지 못한 상태에서는 꿈일지언정 이럴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손으로 그의 몸을 살짝 밀자 가라앉은 목소리가 거친 숨결 사이에서 들렸다.   

[싫으니?]
[아니요. 그게..] 

그의 넓은 가슴을 조심스럽게 만지며 머뭇거렸다. 스승님은 내 눈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몸을 떨어뜨렸다. 이토록 침대가 넓었던가..싶게 스승님과 나 사이에는 차가운 공간이 생겼다. 

[스승님을 좋아해요. 진작에 알고 계셨죠?] 

천장을 바라보며 고백했다. 그는 아무 말이 없었지만 게이치 않았다. 

[이건 꿈이니까 하는 말이에요. 내 꿈인데, 무슨 말을 하든 상관없잖아요]
[꿈?]
[네. 제 꿈이요. 스승님도 제가 만들어냈고, 나도 내가 만들었어요] 

고개를 옆으로 돌려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그는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좀전의 일은 계획했던 게 아니지만..어쨌든..]
[그건 내가 한 행동이지] 

스승님의 눈은 따뜻한 갈색으로 가득 덮혀 있었다. 

[좋아한다거나 사랑한다는 말..듣고 싶어요] 

그의 입술이 조금 벌어졌다. 작은 소리가 새어나오는 느낌이지만 너무 아득하고 멀어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

 

차가운 액체가 뺨에 느껴져 눈을 떴다. 이유를 알 수 없지만, 눈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눈을 몇 번 깜빡인 뒤, 손으로 훔쳐내고 상반신을 일으켰다. 

[어?] 

눈을 몇 번 비빈 후 둘러보자 이곳은 스승님의 방이고, 내가 누워 있는 침대도 스승님께 분명했다. 혹시나 싶은 마음에 이불을 들쳐 몸을 살펴보았지만 체육복은 조금의 벌어짐도 없이 단정했다. 

[일어났어?] 

방문이 열리며 스승님이 파카글라스를 들고 들어오셨다.  

[그 옷..언제 입으신거에요?]
[옷? 어제부터. 왜?] 

스승님은 꿈에서 본 해바라기 무늬의 새파란 잠옷을 입고 계셨다. 걸을 때마다 얇은 린넨 잠옷이 흔들리며 튼튼한 몸의 윤곽을 보여주었다. 아직도 식지 않았는지, 꿈에서의 열정이 생각나 재빨리 고개를 숙이며 파카글라스를 건네받아 몇 모금 마셨다. 급하게 들이킨 탓에 유난히 거북한 속을 달래려 숨을 몰아쉈다.  

[저는 왜 여기서 잤죠? 제 방이 없나요?]
[니가 찾아왔잖니]
[제가요? 저기..어제 혹시..] 

스승님은 말없이 웃으시며 옷 갈아입으라는 말을 남기고 방을 나갔다. 나는 침을 꿀꺽 삼켰다. 꿈이라고 생각한 게 꿈이 아닐 수도 있다면, 어처구니없는 타이밍에 고백을 했다. 멍한 느낌으로 침대를 내려와 새로 만들어진 내 방으로 가면서 몇 번을 되풀이해 어제의 상황을 되집었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방문을 여는데 두통이 몰려왔다. 삼차신경통이 시작되는 게 틀림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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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바다 2010-10-22 09: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신없이 읽었는데..더 이상 없네요..
이 글 정말 재밌어요..은근 박진감도있고 긴장도되고 조바심도 생기고..
작가님의 글은 뭐랄까..참 친근해요..소재가 영 생소한데도..그 전의 글 때문인지..
이런 멋진 가을날은 영주 부석사쪽으로가 빛고운 사과를 한상자 가득 사오고도 싶네요..


최현진 2010-10-23 10:39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뵙습니다..지금 한창 사과를 따는 철이라 곳곳이 붉은 사과들이에요.
 

 

 

[좀 어때?]
[제법 살만해. 내 옆구리에 구멍 안 났냐?]
[주먹이 들어갈 만큼 큰 거 하나 있어] 

스승님은 우리 둘이 이야기 할 수 있게 자리를 비켜주셨다. 사실, 고양이 상태라 그의 앞발을 잡고 머릿속으로 생각을 나누고 있어 굳이 나갈 필요는 없었다. 문 뒤로 사라지는 모습을 잠시 쳐다보다가 그에게로 고개를 돌리니 미소와 함께 나를 환영해주었다. 그는 상상했던 거 보다 더 처참했다. 작은 몸통엔 붕대를 많이 감아 미이라 같아 보였고, 코엔 산소 호흡기를, 앞발엔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있어 성한 구석이 전혀 없었지만, 그는 씩씩하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농담을 건냈다.  

[몇 명만 잡히고 대장은 도망갔어]
[분명히 복수하러 올 테니, 이젠 그 집으로 돌아가면 안되겠다]
[응. 스승님이 너 수술할 동안에 이사할 수 있게 처리하셨어]
[날 이곳에 데려온 것도 그 사람이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머릿속으로 그의 한숨이 들렸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왜 그러냐고 물었다.
 

[내가 형편없다 싶어서..]
[아니야. 이번엔 니가 주의를 끌어줘서 살았잖아. 나 벌써 두 번이나 너에게 목숨을 빚졌어. 그건 스승님도 못하신 일이야]
 

그래도 그는 기뻐하지 않았다. 나는 불편한 분위기를 바꾸고 싶어 마타에 대해 말을 꺼냈다.
 

[도서관에 갔던 건 찾았어?]
[아니. 자료가 전혀 없었어]
 

그는 흐릿해진 푸른 눈을 느리게 떳다 감았다. 
 

[스승님에게 물어봤는데..기분 나쁘지 않으면 마타가 뭔지 말해줄게]
[뭔데?]

그가 관심을 보이자 나는 의자를 가져와 침대 옆에 앉았다.

[프릭스를 지배하는 사람이래. 몸과 마음 모두를. 대단하지?]
[그리고?]
[프릭스는 마타를 위해서라면 목숨도 바친다고 하던데..그래서 마타와 프릭스는 몸과 마음이 모두 연결되어 있데]
 

콜록콜록...
고양이 상태라 우리처럼 콜록거리는 소리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느낌의 재채기를 여러 번 했다. 몸의 상태도 좋지 않은지, 눈이 흐려지는 것 같았다.
 

[나중에 이야기하고 그만 쉬는 게 좋겠다. 의사 말이 이대로만 좋아지면 며칠 안에 퇴원 할 수 있데]
[응. 좀 자야겠어]
[그래]

나는 그의 앞발을 살짝 토닥인 후 일어났다. 회복실문을 열고 나가면서 뒤돌아보니 그는 눈을 감고 잠에 빠진 것처럼 가만히 있었다. 나는 머릿속으로 다시 한 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병원을 나왔더니 초승달이 높이 떠있었다. 스승님은 차에 기대어 하늘을 올려다보시는 중인데, 오똑한 콧날과 갸름한 목선이 반짝거렸다. 나는 계단에서 멍하니 쳐다보다가 뒤에서 나온 누군가와 부딛혀 넘어질 뻔 했다. 스승님이 재빠르게 다가와 내 몸을 잡아주시며 웃으셨다.
 

[왜요?]
[너다워서..]
[치! 저 이래봬도 오늘 호랑이를 죽였다고요]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 손을 잡고 차로 갔다. 조수석에 앉아 운전하는 모습을 힐끔거리다가 무릎 위에 올려놓은 손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조금 전에 스승님이 먼저 손을 잡아주셔서 두근거렸다.

[프릭스하고 너..텔레파시가 통한다고 했었지?]
[네]

운전을 시작한 이래 한마디도 안 하던 스승님이 갑자기 물어보셨다.

[얼마나 멀리까지 가능하니?]
[음..집에서 도서관 정도인가..아니면 집에서 경찰서..하여간 그 걸 넘어서는 해본 적이 없어요]
[다른 프릭스와도 텔레파시가 되고 있니?]
[네?]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어서 되물었지만, 스승님은 정면만 응시한 채 뭔가 생각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피곤이 몰려와 의자에 푹 기댔다. 차의 부드러운 움직임을 따라 몸이 흔들리다보니 수마의 파도에 실려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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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까 나를 공격하고 괴롭힌 이들이 도망간 나를 쫏아왔다가 호랑이와의 싸움에 숨죽이고 있었던 듯했다. 나는 주의를 끌기 위해 날카로운 소리를 질렀다. 그들과 마침내 눈이 마주치자 있는 힘껏 땅을 박차고 날아올라 쓰러져 있는 프릭스 앞에 착지했다. 얼핏보니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와 고여 있는 게 세게 부딪히면서 다친 게 틀림없었다. 프릭스가 흘린 피도 먹고 싶다는 생각에 덜덜 떨리는 손을 억지로 참으며 제일 앞에 선 뱀파이어에게 달려들었다. 지금 나는 뱀파이어가 된 이래 가장 많은 피를 섭취하여 근육이 아플만큼 부풀어 올라 있었고, 파워도 점프도 막강한 상태라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다. 그의 몸통을 잡아 나무쪽으로 던지자 쿵 소리가 나며 땅이 흘들릴 만큼 세게 부딛혔다. 5-6명이 동시에 달려드는데, 누군가 그 안으로 파고들어와 그들을 무자비하게 목을 비틀고 집어던졌다. 나에게 덤빈 갈색 머리 뱀파이어를 상대하며 쳐다보니 바로 스승님이었다.
 

[딴 데 정신 팔지 말아!]
 

내 등에 주먹이 내리 꼿히는 느낌에 아슬아슬하게 피하자, 스승님의 벼락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에 고개를 세게 털어 정신을 바짝 차리고 갈색 머리 뱀파이어와 원을 그리며 빙글 빙글 돌았다. 서로에게 위협적인 소리를 내며 공격할 찬스를 찾는데 그가 갑자기 거꾸로 점프를 하며 숲 속으로 들어갔다. 쫏아가려고 몸을 돌릴 때, 스승님이 따라가지 말라고 명령했다. 숨을 씩씩 내쉬며 그를 바라보니 손에 프릭스가 들려있었다.
 

[빨리 병원에 데려가 치료해야한다]
 

피가 잔뜩 묻은 채 기절한 프릭스가 눈에 들어오자 파괴와 공격의 기질들이 얼음에 밖힌 것처럼 확 사그라졌다. 
 

[여긴..어떻게 아셨어요?]
[경찰들과 함께 너희 뒤를 따라왔어]
 

다른 경찰들이 들 것을 가져왔다. 사람이 누울 정도로 큰 들 것에 작은 고양이가 누우니 더 가슴이 무너졌다. 그가 길고 검은 구급차에 실리자, 나도 같이 올라탔다. 그 안에 있던 뱀파이어 한 명이 내려야 한다고 말했지만, 내가 거칠게 이를 드러내며 공격할 의사를 비치자 뒤로 물러나며 자리를 내주었다. 내 옆에는 스승님이 앉았다. 우리 차가 출발할 때, 쓰러져 있던 다른 뱀파이어를 태운 호송차가 따라오는 걸 볼 수 있었다.
 

*************** 

 

[수술은 잘 된 건가요?]
[응. 다행이 내장이 다치지 않아서 회복이 빠를 거라고 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뱀파이어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수술실에 들어간 프릭스는 1시간 뒤에 회복실로 옮겨졌다. 그동안 나는 피가 가득 묻은 옷을 태운 뒤, 스승님이 가져다준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전부 잡았어요?]
[우리가 갔을 때는 창고에 두세 명 밖에 없었다]
 

내가 상대하던 갈색 머리 뱀파이어는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고 하시며 호랑이를 누가 처리했는지 물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제가요]
 

스승님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한 걸음 성장했구나]
 

어떻게 한거냐고 묻는 대신 부드럽게 머리를 쓰다듬어주셨다. 나는 눈을 감고 그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절대적인 믿음이 느껴지는 지금, 뱀파이어가 된 게 자랑스러웠다.
 

[앞으론 운동 열심히 할께요]
 

주변을 살펴보자 특별히 우리를 주시하는 눈길이 없어, 재빨리 스승님의 뺨에 뽀뽀했다. 무슨 뜻이냐는 표정을 보고는 도와주셔서 고맙다는 인사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는 걸 보다가 갑자기 생각난 질문을 들이밀었다.
 

[스승님..혹시 마타라는 말 들어보셨어요?]
[왜?]
 

그의 어깨가 살짝 굳는 느낌이 들었지만, 확실하지는 않아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프릭스가 그거 때문에 도서관에 간다고 나갔었거든요. 서재에 있는 책들은 다 뒤져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어요]
[마타는 프릭스의 영혼을 통제할 수 있는 인물을 의미한다]
[아..그렇구나]
 

우리가 앉아 있는 곳은 중환자실과 수술실 건너편이라 이렇게 스승님의 어깨에 기대어 앉아 있는 동안에도 수많은 뱀파이어 의사와 간호사, 보호자들이 지나갔다. 그들의 힘들고 지친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스승님과 함께 있어 기댈 수 있음에 감사해졌다. 
 

[프릭스에게 마타는 목숨을 바칠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은 몸과 마음이 서로 연결된다고 알려져 있다]
[대신 죽을 수도 있다는..그런 뜻이에요?]
 

스승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회복실 문 앞에서 간호사가 우리를 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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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고양이의 가장 큰 장점은 낙법이다.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엄청난 고도에서 떨어진 게 아닌 이상 공중에서 몸을 돌려 안전하게 착지한다. 그러나 지금 상황은 그가 당황하여 갑자기 떨어졌고, 아래에는 호랑이가 버티고 있으니 그가 죽는 건 시간문제였다. 나는 앞으로야 어찌되든 호랑이의 입 속으로 그가 들어가기 전에 받아내기 위해, 바닥으로 점프했다. 공중에서 흙바닥까지 몇 초면 도착하기 때문에 호랑이의 입과 프릭스의 낙하 속도를 확인하며 내가 착지할 위치를 잡았다. 내 앞으로 호랑이가 입을 벌리며 달려왔고, 두 손으로 프릭스를 잡자마자 건너편 숲 속으로 던졌다. 이제는 내가 살아야 할 차례라, 호랑이의 거대한 입을 피해 몸을 옆으로 굴렸다. 뱀파이어가 낼 수 있는 속도는 1초에 40 미터까지 가능하지만, 그것은 타고났다기 보다는 지속적인 경험과 몸이 단련 됐을 때 가능한 일이다. 나는 운동을 싫어하고, 도움을 받는데 익숙하니 그런 속도를 낸다면 기적이다. 결국 호랑이는 나무에 몸을 부딪친 후 도망치려고 바로 일어서는 나에게 달려들었다. 긴 발톱 여러 개가 포크처럼 등에 꽂히자, 나는 몸을 비틀며 비명을 질렀다. 완벽하게 등을 꽤 뚫지는 못했지만, 움직임을 통제할 수 있을 만큼 들어간 발톱 사이로 피가 흘러내렸다. 호랑이의 표호가 숲 속에 쩌렁쩌렁 울릴 무렵, 나는 이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내 몸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손에 묻혀 핥았다. 호랑이의 다른 앞발이 내 어깨부터 나머지 팔 쪽으로 긁어내려가는 게 느껴지지만 고통은 피의 섭취로 상당히 줄어들었다. 그만큼 내가 흘린 피가 많아졌지만, 나는 단 한 번만 힘을 낼 수 있다면 호랑이를 물리치고 내 목숨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아득해지는 정신을 추수리려 몸을 곧추 세우는데 호랑이가 갑자기 날뛰었다. 동시에 발톱이 박힌 내 등도 같이 털썩거리며 이리저리 움직여 피를 핥던 손이 바닥에 거칠게 쓸렸다. 고개를 돌려 호랑이를 올려다보았을 때, 내 눈에 들어온 건 다시 돌아온  프릭스였다. 그가 호랑이의 귀를 물고 매달려 있었다. 

 

[그만하고 도망가!]

내 말이 들리지 않는 지, 아니면 듣지 않기로 했는지 여전히 귀를 문 채 호랑이의 얼굴을 마구 긁었다. 호랑이는 나머지 앞발로 그를 떼어내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작고 보잘 것 없는 프릭스를 앞발로 쳐서 날려보냈다. 나는 온 몸의 근육을 타오르게 해 그 반동으로 발톱이 밖으로 밀려나가도록 힘을 주었다. 내 몸이 마침내 호랑이에게서 벗어났을 때, 프릭스는 이미 나무 정면에 부딪혀 정신을 잃고 쓰러진 뒤였다. 그 모습이 눈에 들어오자 화가 치밀어 호랑이에게 달려들었다. 무시무시한 앞니들이 어깨에 박혀도 아프지 않았다. 두 개의 거대한 앞발을 들어 허리와 다리를 내리찍어도 두려움 없이 호랑이의 배를 공격했다. 다른 곳은 털로 덥히거나 발로 공격을 막을 수 있어도 분홍색 살이 드러난 배는 빈틈이 보였다. 내 이가 마침내 배를 물어뜯어 살점들이 떨어지자, 호랑이는 나를 떼어내려 몸을 이리저리 굴렸다. 내 다리가 공격을 받아 너덜너덜한 게 느껴지지만, 호랑이의 상처에서 뿜어져 나오는 피가 입으로 들어오다 보니 재생이 동시에 이루어졌다. 두 손으로 호랑이의 상처를 헤집으며 내장이 보일만큼 깊고 넓게 상처를 벌리자 호랑이는 공격을 포기하고 흙바닥에 무너졌다. 나는 멈추지 않고 호랑이의 피를 마셨다. 재생에 필요한 양은 이미 채웠지만, 이 피는 마셔도 된다는 정당성을 스스로 인식하며 호랑이의 숨이 끊어질 때까지 깨끗하게 비웠다. 입에 묻은 피를 대충 닦은 후에야, 프릭스를 봐야한다는 생각이 들어 쓰러져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몇 걸음 걸었을 때, 그가 있는 쪽으로 다른 뱀파이어들이 슬금슬금 다가오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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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읽기 2010-10-02 2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작가의 상상력이 어디까지일까.. 잠시 생각해 보다 갑니다..

최현진 2010-10-03 16:05   좋아요 0 | URL
오랜만이에요..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추워집니다. 감기 조심하세요.

세레스 2010-10-04 00: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으와... 여린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는데, 호랑이와 싸워 이겼네요. +ㅁ+

최현진 2010-10-05 20:45   좋아요 0 | URL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인공은...결국 주인공답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