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야철신 

 

[요괴들을 놓아주세요. 이 녀석을 살리기 위해서 붙잡아 두시는 것이라면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요괴는 본래 여기에 속해있던 것이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제가 결정합니다. 또한 제 오랜 염원이 이번엔 이루어질 수도 있으니 멈출 수는 없습니다. 가라!] 

갑작스러운 움직임이 느껴졌다. 어느새 내 손에 있던 새지는 법사의 무릎에 놓여졌고, 나는 기둥에 묶였다. 이것은 모두 여인이 한 행동이다. 내가 바라보자 머리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지 않는다. 

[풀어줘!] 

몸부림을 치며 소리를 지르지만 법사는 관심을 두지 않고 다른 단지를 가져다 팔색조를 넣고 다시 염불을 외우기 시작하였다.  

종이들이 타들어간다. 연기가 모인다. 안개가 사당 안으로 들어온다.  

내 눈앞은 이제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나 요괴들의 비명이 메아리쳤다. 

[이봐! 너는 주인이 불쌍하지 않느냐! 더 이상의 살인을 하지 않게 해야한다. 나를 풀어다오! 나를 풀어줘!] 

밧줄에 묶인 손목에서 피가 흐른다. 이제 안개는 검게 물들고 있다.  

[저희 주인님을 살려주실 수 있으신가요? ] 

옆에서 작게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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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오늘..언제쯤 시작하지?] 

자리에서 일어나 식탁 앞에 앉으며 물어보니 점심 무렵 부터라고 한다. 그래서일까 안채를 나와 걸어가는데 사당 근처가 안개로 자욱하다. 이 곳만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안개가 낀 것이 꺼림칙하다. 사당은 어제와 다르게 문이 활짝 열려있었고,  법사가 단정히 앉아 염불을 외우는 중이다. 그는 나의 기척을 들었는지 뒤는 돌아보지 않은 채 낮은 목소리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지금부터 팔색조를 깨우는 제를 올릴 것입니다] 

나의 대답은 듣지 않고 두 손을 모으고 작은 소리로 중얼거리기 시작하였다. 그의 옆에는 단지를 연 채 들고 있는 여인이 조용히 서있었다. 그의 소리에 따라 제일 앞 줄의 첫 번째 종이에 불길이 솟아올라 글자가 태워지며 연기로 변하였다. 마치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단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연기. 나의 귀에는 어젯밤 꿈에서 본 요괴들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또한 그들의 원성도 들린다. 이것은 옳은 일이 아니다. 누구도 살아있는 존재를 마음대로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이 요괴라 하여도 생명이 있는 것은...그 스스로만이 권리를 가지는 것이다. 

나는 여인이 들고 있던 단지를 빼앗았다. 단지를 바닥에 던져 깨뜨린 후 바닥에 떨어진 팔색조를 안아 들었다. 단지 안에 들어갔던 연기는 쉬이익하는 소리를 내며 공중에서 사라졌다. 

[팔색조를 내려 놓으십시요. 그렇지 않으면 결박할 것입니다] 

얼굴을 찌푸린 법사는 엄한 목소리로 다그치듯 말하였다. 나는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다른 요괴들을 죽이는 것은 인륜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인륜? 이것들은 요괴일 뿐. 죽고 사는데 어떤 의미도 없습니다. 도련님은 팔색조를 살리고 싶지 않으신 겁니까? 지금 제를 올리지 않으면 이제는 하루도 살지 못할 만큼 약합니다] 

손안의 새지가 색이 희미해지고 있는 게 내 눈에도 보인다. 무엇을 선택하여도 나는 평생 후회를 할 것이다. 그러나..새지와의 인연이 여기까지라면 그것 역시 받아들여서 마음에 간직하는 편이 최선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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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그녀가 새지를 몰래 꺼내 우리 동네 근처에 놓아주는 장면이 머리 속에 들어왔다. 그녀 역시 인간의 마음을 지닌 존재다. 그 마음이 새지를 불쌍히 여기고, 주인의 악행을 가슴아파하는 것이다.  

[그 녀석은 어디 있니?]
[저 단지 안에 있습니다]
[정말로..살아나는 데 그 방법 밖에 없어?]
[저도 팔색조에 대한 것은 잘 모릅니다. 온전한 세상에서는 팔색조를 보려면 몇 천년에 한 번이라서요. 아..주인님의 기척이 느껴집니다. 빨리 돌아가십시요] 

 사당에서 급하게 나와 안 채로 돌아갔다. 이미 잠을 잘 수 있도록 모든 채비가 되어 있어 바로 자리에 누웠으나 여러 가지 생각에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새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수천, 수만의 요괴들을 죽여야 한다. 그들의 희생이 없이는 저 깊은 잠에서 깨어날 수가 없다니...그 것만이 전부라니..  

 

어둡다. 주변이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디선가 작은 소리들이 들려온다. 그것은 요괴들..흐느껴운다. 울음 소리가 점점 커진다. 그리고 그들의 검은 손들이 내 목을 조여온다.  

[으아악!] 

죽음의 고통을 느끼다가 눈을 번쩍 떠보니 어느새 아침이다. 하늘이 흐려 비가 내릴 것 같다. 바람도 제법 쎄게 불어 나뭇가지들이 끊임없이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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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야철신 

 

여인의 생각들이 머릿속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소스라치게 놀라 몸을 떨다가 눈을 감았다. 내 머리 속의 검은 화면에 과거의 모습이 펼쳐졌다. 그것은 법사의 모습이었다. 법사가 종이들을 향해 무엇인가를 중얼거리자 하나씩 타오르기 시작하였다. 종이의 글자가 사라지면서 하얀 연기가 뿜어져 올라왔다. 공중에서 휘돌며 메아리치듯 움직이던 연기는 바닥에 놓인 단지로 들어갔다. 그렇게 한 개씩 한 개씩 모두 불태워져 생긴 연기가 단지 안에 가득차자 종이로 입구를 봉하고 글씨를 썼다.  

그리고 다시 화면이 바뀌어 단지 중에 하나가 들썩이다가 종이가 뜯어지며 새지가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제야 어떻게 새지가 이 세상에 온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마지막으로 법사가 새지의 다리에 상처를 내는 모습이 상세히 나타났다. 

[도련님이 가져오신 팔색조는 여러 번의 실패 속에 겨우 태어난 한 마리였습니다. 그러나 주인님이 기대하신 것과는 달리 아무 것도 하지 못하여 광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럼 법사는 그 녀석을 어쩌할 셈이었나?]
[아직 깨어나지 않은 또 팔색조 새끼를 위해 사멸시킬 예정이었습니다] 

현기증이 난다. 새지가 그럴 운명이었다니..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새지가 그 토록 돌아오고 싶어하지 않던 곳으로 내가 다시 데려왔으니 앞이 캄캄하다. 

[너도 이름을 봉인당한 것이냐?]
[저는 본래 이름이 없었던 존재. 죽어가고 있을 때 주인님께서 구해주셨습니다]
[왜..이 모든 사실을 나에게 말해주니? 이것은 너의 주인을 배반하는 일인데..] 

그녀는 잠시 나의 눈을 바라보았다. 

[본래 요괴란 동료의 개념이 없습니다. 각자의 삶을 사는 존재들이니까요. 제게는 주인님을 배반하면서까지 그들을 구해주어야하는 의무는 없으나...이만큼의 세월을 살다보니 무엇이 도리인지를 알게되었습니다. 저는 주인님이 더 이상 무익한 살상을 하시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이러한 일을 계속하시는 것은 요괴들의 원한을 깊게 하는 일. 주인님의 신변에 위험이 생길까 걱정됩니다. 또한 팔색조를 데려오실 때 도련님의 눈을 보았습니다] 

[혹시..네가 그 녀석을 놓아주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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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세히 이야기 해봐]
[그러니까.. 그녀석이 잡혀간 거 같아요]

나는 아까 그 장소로 뛰어가면서 대략의 이야기를 했다.

[프릭스니까..혼자 도망칠 수 있을 텐데..]
[알고 계셨어요?]

소스라치게 놀라 자리에 멈춰 섰다. 스승님 역시 멈쳤지만 표정은 아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응]
[근데..왜 아는 척 안하셨어요?]
[남자친구라고 하니까]
[아..그게..그러니까..]
[거짓말인 거 알아]
[도대체 스승님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꿰뚫고 계신건가요?]

나는 다시 뛰면서 물었다. 운동을 별로 안하는 나는 허리를 잡고 뛰지만, 그는 여유롭게 숨을 내쉈다. 일절 대답을 안 하는 모습에, 집에 들여놓고 내 방 바닥에서 재운 것도 다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풀밭에 들어설 무렵 살짝 물어보았다.

[집에서 재운 것도요?]
[그래]
[와!!! 혹시 천리안을 가지셨나봐요!]
[너는..정말..]

스승님은 킁킁 하는 소리를 잠시 낸 뒤 내가 발견했던 장소로 다가가느라 말을 멈췄다. 그는 벤치와 나무 사이에 쭈그리고 앉아 흙을 집은 뒤 냄새를 맡았다. 스승님의 옆에서 말없이 기다리려니 어디선가 피 냄새가 약하게 느껴졌다. 고개를 돌려 뚝방 쪽을 보았다. 풀밭 너머로 자전거 길이 있고 그 옆에 두 팔을 벌리면 닿을 정도의 거리에 한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비스듬한 뚝길이 나있다. 그것을 사람들은 뚝방이라고 불렀다. 스승님은 흙을 버린 후 일어나 풀밭을 벗어났다. 자전거 길을 가로지르는 모습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한 게 틀림없었다.

[피 냄새나죠? 혹시..프릭스의..건가요?]
[잘 맡아봐라. 너에게 익숙한 건지]

숨을 잠시 멈춘 뒤, 폐 안에 남아있는 공기를 모두 밖으로 내보냈다. 이제 내 가슴은 진공 상태가 되었고 곧 피 냄새를 가득 빨아들였다.

[이건 사람의 피에요!]

프릭스의 피가 아님을 알자 마음이 놓였다. 그가 살아있을 가능성이 높아졌으니까. 풀밭에서 대각선으로 이어진 뚝방 길 중간에 피가 묻어 있었다. 어른 주먹 크기 정도로 거뭇거뭇하게 물들어있는 게 흘린 지 오래되지 않았다. 시간이 꽤 지났다면 이만큼 피의 향이 남아있을 수 없다. 스승님은 손가락으로 피를 찍어 입에 넣었다. 나도 따라 쿡 찍어 먹었다. 약간 시큼한 게 독이 느껴졌다. 동시에 허기도 목구멍으로 올라왔지만, 뱀파이어의 독이 섞인 피만은 먹기 싫어 꾹 참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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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레스 2010-09-17 1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인공이 계속 배가 고파서 그런지, 읽는 사람도 허기가 지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