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뜨는 나라의 공장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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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읽었다. 벌써 30여년 전에 쓰여진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각종 공장 견학에 대한 내용이다보니 지금과는 참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일본이 이 당시에는 우리나라보다 여러 모로 발전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일본 여행 중에 맥주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래봤자 어차피 마지막에 가서 갓 나온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걸로 귀결되지만 말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을 갔을 때에는 기네스 팩토리에서 검은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래도 일본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보다 영어로 쓰여진 기네스 팩토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기네스 맥주는 마지막에 맥주잔에 쌓이는 하얀 크림이 압권인데 견학을 끝내고 마지막 맥주바에서는 생맥주 기계로 맥주를 따르는 방법을 실습해 본다. 한명씩 자신이 마실 잔을 가지고 생맥주 기계에 여느 방법처럼 앞으로 당겨 4분의 3지점까지 따르고 잔을 가만히 나둔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기계의 레버를 반대로 누르면 하얀 거품 크림만 나와 흑맥주 위를 눈쌓인 것처럼 예쁘게 덮어버린다. 내가 만든 기네스 생맥이라고 하니 뭔가 재미있고 기특하게 여겨져 얼굴이 벌개짐도 무시하고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기억이 난다. 기네스 맥주는 다른 유럽지역은 물론이고 더블린을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 마시는 것과 더블린에서 마시는 맛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철분을 꽤 많이 함유해서 임산부도 마실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서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네스 맥주는 생맥으로는 누구나 쉽게 하얀 크림 거품을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캔으로 포장하여 판매할 때 생겨났다. 다른 맥주는 캔으로 포장해서 판매해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기네스는 크림 거품이 생명이기에 일반 캔 포장으로는 그 거품이 생겨나지 않았다. 수차례의 실패 이후 기네스 생맥주는 캔 안에 질소가 들어간 구슬을 넣어 캔을 딱 하고 여는 순간 구슬에서 질소가 터져나와 생맥주때와 마찬가지로 크림 거품이 생성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인셈이다. 

하루키와 미즈마루 동행은 1986년 일본의 여러 공장들을 견학한 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체모형을 만드는 공장, 마치 신혼부부를 양산해내는 공장같은 결혼식장(일본의 결혼식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더 허례허식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요식행사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우개 공장, 경제동물이라고 표현한 소를 증식하는 공장(아마도 지금처럼 동물권이 주장되는 시기라면 이런 견학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환경오염 및 동물 학대로 심각히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라 공장식 축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도 이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렇다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장식 축산이 줄어들거나 규제를 받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에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큰 문제로 지속될 것이지 않을까 싶다.), 콤데가르송이라는 일본 옷 상표 공장, 하이테크 CD 공장(콤팩트 디스크가 나왔을 때에는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은 반응이었고, 뒤 이어 저장이 가능한 CD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별로 상용화되지 않고 가볍고 작은 USB저장 장치나 아예 클라우드로 변모되어가니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 본문에서 커다란 LP판을 사용하던 사람들인 손바닥만해진 CD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묻는다는 내용에서는 정말 옛날 얘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발을 만드는 아데랑스 공장(가발은 아마도 전 인류가 대머리에 대해 편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때까지 지속될 사업이 아닐까 싶다.)을 방문하여 이것 저것 살펴보며 공정에 대한 묘사를 전해준다. 하루키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더불어 미즈마루의 장난끼가 가득 담긴 삽화들을 보며 혼자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일종의 공장인 결혼식장, 혹은 ‘결혼식장’이란 이름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다름아닌 신랑 신부로 불리는 한 쌍의 남녀이며, 그 기계적 추진력은 전문적 노하우와 숙달된 서비스, 주된 부가가치는 감동(좀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서의 고양), 그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상 일반의 ‘관례, 상식, 습관’이다. 그런식으로 결혼식장에서는 오늘도 흉일만 아니면 한 회 또 한 회, ‘의식’이라는 이름의 휘황찬란한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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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그리고 한 인생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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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읽었다. 뭔가 제목부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에는 우리의 선택과 행동이 얼마나 큰 책임을 요구하는지 다시 한 번 가슴 깊이 느껴졌다. 주인공 앙투안은 자신의 고향인 보발을 싫어하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가 12살 때 옆집 6살짜리 꼬마아이를 우발적으로 죽였기 때문이다. 앙투안은 이웃집 꼬마 레미네 집에서 키우던 개에게 많은 위로를 받고 있었는데, 그 개가 어떤 차에 치여 죽어가자 레미의 아버지가 엽총으로 쏴서 죽이는 모습을 보게 된다. 앙투안은 너무나도 큰 충격을 받고 슬픔에 빠져 어쩔 줄 몰라하며 그가 만든 아지트가 있는 생퇴스타슈 숲으로 간다. 그곳에서 울고 있던 앙투안은 레미가 자신의 아지트로 온 것을 보고 갑자기 분노가 솟아올라 막대기로 레미의 관자놀이를 때려 죽게 만든다. 앙투안은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지만 이미 레미는 숨을 쉬지 않는다. 레미의 시신을 어디론가 숨기기 위해 갈팡질팡하던 앙투안은 쓰러진 나무에 가려진 구덩이에 레미를 던져놓고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레미가 사라지자 부모들은 공황상태에 빠지고 작은 마을은 급속도로 분주해진다. 마을 사람들과 군경들은 레미를 찾기 위한 수색대를 조직하고 레미를 마지막으로 본 앙투안에게 아는 게 있는지 묻는다. 앙투안은 얼떨결에 거짓말을 하게 되고 그들이 레미의 시신을 찾고 앙투안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어 자신을 체포하러 올지 모른다는 망상에 빠져 괴로워한다. 연못에 빠졌을지 모른다는 가정으로 연못 수색이 이루어지고 다음날은 숲을 수색하자고 결정된다. 숲에 들어간다면 분명 레미가 발견될 것이라는 두려움에 빠진 앙투안은 약장을 뒤져 한꺼번에 입어 넣어 죽고자 한다. 하지만 앙투안은 고열과 복통에 시달리다 깨어나게 된다. 앙투안의 어머니 쿠르탱 부인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왕진 의사에게 부탁하여 입원시키지 않는다. 깨어난 앙투안은 디욀라푸아 박사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듣게 된다. “만일 내가 널 입원시켰다면 일은 다른 식으로 진행됐을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니? 하지만 지금 이렇게 된 상황에서는,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바로 그것 때문에 내가 온 거야.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든. 그러니까, 만일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넌 날 찾으면 된다고, 날 부르면 된다고 네게 말해 주려고 말이야. 언제든지 부르면 돼. 자, 그거야. 불러서 내게 얘기하면 돼. 언제든지.(159)” 그리고 숲을 수색하려고 예정되어있던 날 엄청난 폭풍과 폭우로 보발 사람들은 수해를 입게 되고 숲은 쓰러진 나무로 뒤엉키게 된다. 

12년이 지나 앙투안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의사가 된다. 로라라는 애인도 생겼고 조금씩 레미를 죽였다는 괴로움에서 벗어난 삶을 사는 듯 했다. 앙투안은 보발의 끔찍한 기억을 잊기 위해 인도주의적 구호 단체에 참가하여 고향을 떠나 살고자 했다. 하지만 어머니 쿠르탱의 요구로 참석한 어느 파티에서 돌아오는 길에 고향의 첫사랑 에밀리와 갑작스럽게 관계를 맺게 되다. 앙투안은 로라와의 숙소로 돌아와 후회하지만 그냥 잊으려 한다. 하지만 얼마 후 에밀리가 앙투안에게 찾아 오게 되고 에밀리는 앙투안의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말한다. 설상가상으로 폭풍으로 버려졌던 생퇴스타슈 숲이 개발 된다는 뉴스가 나오고 얼마 후에 레미의 시신이 발견된다. 사랑하지 않는 에밀리와 결혼할 수 없다고 버티던 앙투안은 에밀리의 아버지가 유전자 검사를 하겠다고 하자 레미의 시신 주위에서 발견된 머리카락 유전자와 대조될까 두려워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에밀리와 결혼하게 된다. 그토록 떠나고 싶었던 고향 보발을 제발로 다시 걸어들어온 것이다. 

“아침이 될 때까지 그는 방 안을 이리저리 걸었다. 너무나도 불행했다. 그의 삶은 슬프기만 했던 그의 어린 시절이 예정해 놓은 거대한 패배일 뿐이었다. 
동이 텄을 때, 그는 자신이 에밀리와의 그 일을 통해 스스로를 심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은 교도소에서 세월을 보내는 게 아니라, 그가 미리부터 혐오해 마지않던 삶을, 그가 끔찍이 여기는 모든 것들로 이루어진 삶을 보내는 것이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 곁에서, 그가 증오하는 환경 속에서 그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평생을 보내는 것이었다.....
이게 바로 그의 형벌이었다. 그의 삶 전체를 내놓는 대가로 완전한 자유의 몸으로 죗값을 치르는 것이었다. 아침에 앙투안은 자신의 패배를 인정했다.(285)”

마지막 부분에 앙투안은 숨겨진 더 놀라운 사실을 마주하게 되는데, 아마도 이 부분은 독자마다 다른 평가를 내릴 것 같다. 어쩌면 작가는 사람마다 가슴에 품고 사는 도저히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는 추악한 자신의 모습이 떠오를 때마다 스스로를 단죄하는 삶을 선택한 이들에게 이제는 그러지 말라고 조금은 위로하고 싶은 것은 아닌가 싶다. 그래서 그런지 옮긴이는 이렇게 말한다. 

“원죄(숲속에서 앙투안이 어린 레미를 쳐 죽이는 광경은 카인이 아벨을 쳐 죽이는 그것과 겹쳐지지 않는가?)에 의해 종말(폭풍과 홍수 등의 종말론적 분위기)과 심판이 예정되어 있는 운명은 그러나 어떤 초월적 존재의 개입에 의해 구원을 받기 때문이다. 바로 그를 구해 준 어머니와 닥터 디욀라푸아(그의 이름 디욀라푸아 Dieulafoy는 <하느님-믿음>이라는 뜻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여기서 정체를 굳이 밝히지 않는 또 한 사람이 이 신의 숭고한 체현들이며, 이 의인들 덕분에 앙투안은 이 먼지 날리는 타락한 소읍에서 이 어리석고도 가려한 중생들 틈에서 그나마 작은 선행들을 하며 소금 같은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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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반려병 -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 아무튼 시리즈 35
강이람 지음 / 제철소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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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이람 님의 [아무튼, 반려병]을 읽었다. 부제는 “‘또 아파?’라는 말을 들었다. 오늘도”이다. 아무튼 시리즈 35번째 책이다. 반려자라는 말은 흔히 들어왔지만, 반려병이라는 말은 어쩌면 이번 아무튼 시리즈에서 처음 들어본 것 같다. 저자는 어릴때부터 일생을 골골거리며 살아온 덕분에(?) 작은 아픔과 병을 수반해온 삶에 대한 일종의 달관함이 엿보일 정도로 자신과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대해 심도있게 고찰한 것 같다. 읽는 내내 아이고 정말 고생이 많았겠네 라는 안타까움과 그럼에도 자녀를 낳고 직장 생활을 해내는 저자의 강단이 놀랍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이렇게 전국의 골골이들이 감동할 만한 아무튼 시리즈까지 내놓았으니 그녀의 반려병은 더 이상 그녀를 힘들게 하는 무엇이 아니라 그녀를 이렇게 힘차게 살게 해준 원동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 

아무리 튼튼하고 건강해보이는 사람도 중병을 얻어 한 순간에 몸이 쇠약해지기도 하고, 외소하고 허약한 체질을 타고나 잔병을 달고 살아도 오래 살기도 한다.  몸이 아프다는 것은 타인이 똑같이 그 고통을 느낄 수 없기에 때로는 이 세상에 나 홀로 남겨졌다는 지독한 고독감을 안겨주기도 한다. 그래서 택시를 타고 고통을 견뎌내기 위해 오만상을 찌푸리며 응급실로 달려가는 시간은 마치 어떤 중대한 심판을 앞둔 죄인의 심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저자의 말처럼 나이가 들어 가까운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서로가 얼마나 더 많이 아프고 급작스러웠는지 배틀을 벌이기도 한다. 나중에 승부가 갈린다 하더라도 대체 뭘 이런걸 그렇게 장황하게 떠들어댄 것인가 허탈한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말이다. 그렇게라도 내가 홀로 힘겹게 보낸 시간을 뒤늦게나마 보상받고 싶기 때문에 침을 튀겨가며 몇 배의 과장을 보태 아픔에서 벗어난 시간을 장황하게 떠들어대는 것이다.

많은 부분에서 저자의 말에 공감이 되고 또한 웃지 말아야 할텐데 도저히 웃음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소재들을 솔직하고 가감없이 묘사함이 매력적이었다. 그리고 자녀를 낳고 보니 그때서야 부모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게 되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너무나도 절절히 다가왔다. 언니도 마찬가지로 골골이 인생을 살아가다보니 노심초사 딸들을 보살피느라 여념이 없는 아버지의 사랑도 애틋하게 다가왔다. 그럼에도 저자의 엄마가 보내준 메시지에 대한 감상은 눈물을 핑 돌게 만든다. 

“언젠가 이른 아침에 엄마에게서 긴 문자가 왔다. 

오늘은잠에서깨었는데
기분이참좋았어너희들
이내게와준것이얼마나
감사한지너희들많이사
랑한다오늘도좋은하루
보내거라늘건강챙기고
차조심하고문단속잘하
고밥거르지말고

돋보기안경을 쓰고, 독수리 타법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 이 문자 속에 딸들의 안녕을 기도했을 엄마의 새벽이 오롯이 담겨 있다. 단 한 칸의 띄어쓰기도 허락하지 않을 만큼 빈틈없는 간절함이 그대로 전해져 오늘도 다짐해본다. 건강 챙기고 차 조심하고 문단속 잘하고 밥 거르지 말자고.(135-136)”

“동료: 커피 드시게요?
나: 이제 설사도 좀 멎고 괜찮지 않을까요?
동료: 음, 설사할 때 커피는요.... ‘내가 커피를 먹어도 되나?’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을 때에야 비로소 먹는 거예요.
나: !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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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 × 기억하는 인간 EBS 지식채널e 시리즈
지식채널ⓔ 제작팀 지음 / EBS BOOKS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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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채널e 제작팀의 [지식채널 x 기억하는 인간]을 읽었다. 강의를 위해서 종종 지식채널e의 내용을 보여주고 했었는데, 기억에 대한 내용을 따로 글로 편집한 책을 만나게 되어 반가웠다. 사실 이런 방대한 양의 자료를 조사해서 편집하기 까지는 상당히 많은 수고가 필요하다. 더군다나 검색은 편해졌지만 신빙성과 사실 유무에 대한 판단도 쉽지 않은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공개를 위해서는 객관적인 검토가 필수적이다. 여러 가지 많은 주제들이 실려 있지만 100년 안에 일어났던 굵직한 사건들에 대한 기억을 재생시킨다. 나치에 의한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참혹한 실상과 비참한 죽음 이후 생존자들의 트라우마까지의 기록에서부터 시작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결코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기억들을 소환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 우리나라 왕조 역사와 관련된 영화들이 많이 개봉되었다. 재미와 흥행을 위해서 가끔은 역사가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지만 영상과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부활한 과거의 심오한 사건들은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단지 과거의 역사는 과거의 일로만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도 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일깨워준다. 특히나 지금보다 역사를 기록하는 수단이 현저히 열악했던 상황에서 과연 남겨진 기록을 100% 믿을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구심도 생겨난다. 때로는 누군가가 과오를 감추기 위해서 회칠한 벽화처럼 진실을 가려놓은 것은 아닐까란 의문.

전세계가 웹으로 연결된 첨단 시대를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완벽한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아니다. 위키피디아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집단 지성의 힘으로 엄청난 지식정보를 순식간에 검색할 수 있는 지식의 바다를 얻게 되었지만, 여전히 권력의 개입으로 불리한 정보들을 삭제하려는 시도와 가짜 뉴스의 생산으로 혼란이 가중되는 문제점은 여전히 큰 과제로 남아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게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을 남길 수 있는 문화가 발전해왔다는 사실은 비단 유명인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왔던 전기와 자서전이 일반 개개인의 기록물로 남겨질 수 있고, 그 기록물들이 모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춰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 것이라는 변화가 반갑기만 하다. 우리의 육신은 채 100년도 안되 사그러들테지만 누군가 애써 남겨둔 기록들은 앞으로 살아갈 이들에게 디딤돌이 되어 다시금 희망을 엿볼 수 있는 힘이 되리라 믿는다. 

“앞으로 우리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유해하고 정확하지 않은 정보는 차단하고, 자신에게 필요하고 신뢰할 만한 정보를 빠르게 찾아 적절히 활용하며 나아가 창조적으로 생산할 수 있는 능력이다.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바로 이런 능력을 길러준다.(74)”

“처음 프로젝트 대해 들었을 때 나는 이 기획이 완전히 미쳤다고 생각했어요.-데이비드 미첼

‘미래도서관’ 노르웨이의 공공예술 프로젝트로 기획되었다. 2014년부터 매년 한 명의 작가에게 한 편의 미공개 원고를 받아 오슬로 공공도서관 침묵의 방에 봉인, 2114년 미리 심어둔 가문비나무 1,000그루를 베어 100편의 원고를 한꺼번에 출판하는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는 살아 숨 쉬는 유기적인 작품이다.-케이트 패터슨(미래도서관 프로젝트 기획자, 스코틀랜드 예술가)

2014년 마거릿 애트우드(캐나다 작가)
2015년 데이비드 미첼(영국 소설가)
2016년 숀(아이슬란드 작가)
2017년 엘리프 샤팍(터키 소설가)
2018년 한강(한국 소설가, 아시아 최초 선정 작가)

언젠가 상대에게 도달할 것이라 믿고 편지를 병에 담아 강에 띄우는 것 같았다.-엘리프 샤팍

거기 아직 내가 쓴 것을 읽을 인간들이 살아남아 있을 것이라는 불확실한 가능성을 믿어야 한다.-한강

매년 봄 오슬로 외곽의 숲에서 열리는 원고 전달식은 새로 태어난 이야기의 환영식이자 읽을 수 없는 이야기의 송별식이다.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나 다시 태어날 것을 믿으며 긴 침묵에 빠져드는 이야기.(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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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노볼 (양장)
박소영 지음 / 창비 / 2020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박소영 작가의 [스노볼]을 읽었다. [아몬드]와 견줄 만큼의 이야기가 펼쳐진다는 광고문구에 급히 가까운 서점으로 달려가 아직 박스도 풀지 않았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 기다려 구매했다. 읽는 내내 여러 가지 유명했던 영화들을 오마주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는게 조금 아쉬웠지만 가독성은 좋았다. 주인공 천초밤은 영하 41도의 추위를 견디며 스노볼 바깥에서 살아간다. 발전소에서 일하며 언젠가는 스노볼의 디렉터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살아간다. 스노볼에는 액터와 디렉터가 살아갈 수 있는데 하루종일 방송되는 액터들의 일상은 드라마로 편집되어 스노볼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 방송된다. 단, 디렉터를 제외한 액터들은 자신들이 나온 드라마를 볼 수 없기에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액터들의 사생활을 모른다. 어찌보면 추위가 없는 안락한 스노볼 안의 삶을 사는 대신에 자신의 사생활을 팔아넘겨야만 하는 계약이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스노볼과 바깥의 전혀 다른 삶의 터전이 생겨버린 것을 소설에서는 전쟁 문명으로 드러낸다. 어떤 과정을 통해서 그렇게 나뉘어진 것인지 자세히 묘사하지 않지만 이미 공상 과학 영화를 통해 충분히 예상해 볼 수 있는 시나리오이다. 스노볼 안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영화 트루먼쇼를 자연스레 떠올리게 한다. 트루먼쇼의 주인공 짐 캐리를 제외한 모든 스텝들이 방송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차이점이 있다. 스노볼의 액터들은 안락한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시청률을 유지해야 하고 살인까지 마다하지 않게 된다. 

천초밤은 어느날 자신의 롤모델 차설을 만나게 되고, 초밤을 닮은 가장 핫한 액터 고해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에 그 역할을 대신해 달라는 권고를 받는다. 스노볼의 삶을 꿈꾸던 초밤은 차설의 권유를 받아들이고 스노볼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가짜 고해리의 삶을 연기하며 차츰 차설의 비밀에 다가서게 된다. 스노볼이라는 시스템을 만든 이본가의 후계자 이본회를 만나며 초밤의 의구심은 더해간다. 초밤은 죽은 고해리와 닮은 사람을 병원에서 만나게 되고 갑작스럽게 차향의 집에 갇히게 된다. 초밤은 차설의 동생 차향을 통해 자신이 우연히 고해리와 닮은 도플갱어가 아니라 차설 디렉터에 의해 주도면밀하게 만들어진 복제인간임이 드러난다. 초밤을 비롯한 시내, 소명, 새린은 모두 고해리를 탄생시키기 위해 같은 난자와 정자를 비밀리에 주입시킨 것이었다. 이후 조금은 황당무계한 이들의 스노볼 방송국 탈취 장면이 전개되고, 모두가 똑같은 외모를 가진 네 명의 고해리를 생방송에 내보내며 차설 디렉터의 만행을 고발한다. 

스노볼의 가상의 세계이고, 추위와 더위가 없는 안락한 삶이 보장된 곳이지만 그곳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속일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액터들의 삶이 어찌보면 그냥 가공의 이야기만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우리도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곳을 놓치게 될까봐 전전긍긍하며 살고 있다. 마치 지금 내가 가지고 있고 누리고 있는 것을 하나라도 놓치게 되면 바로 불행이 찾아올까봐 겁내며 더욱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런데 초밤이 스노볼에 머물기 위해 가짜 고해리가 되려는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의 행동에 책임을 지겠다는 선택을 한 것처럼, 우리도 비록 영하 41도의 야생의 세계에 몸이 놓인다 할지라도 가식적인 내가 아닌 진실한 나를 마주하게 되는 선택을 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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