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지겨움
장수연 지음 / Lik-it(라이킷)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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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수연 님의 [내가 사랑하는 지겨움]을 읽었다. 은행나무출판사의 애호 생활 에세이 브랜드로 런칭한 Like-it의 다섯 번째 책이다. 아무튼 시리즈처럼 어떤 한 주제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삶을 이야기해주는 시리즈인듯 하다. 이번 책은 MBC 라디오 피디로 일해온 장수연 님이 라디오에 대한 예찬과 더불어 그녀가 피디로 성장하기까지의 에피소드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과 삶에서 반복될 수 밖에 없는 일상의 지루함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전해준다. 라디오에 대한 특별한 감수성을 갖고 있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것처럼 지금은 라디오가 마치 저물어가는 해의 노을처럼 은은한 빛깔만 내뿜을 뿐인 것처럼 보인다. 유투브와 같은 개인 방송의 전성시대에, 특히나 보여지는 것이 아닌, 단숨에 임팩트 강한 뭔가를 전해주는 것도 아닌 조금은 느리고 때로는 답답하게까지 느껴지는 라디오의 매력을 느끼기가 쉽지 않는 시대이다. 지금은 마치 분주한 일을 할때나, 반복된 일을 하는 BGM같은 존재로 전락해버린 상태이지만 그래도 경쾌한 시그널송과 함께 시작되는 DJ의 희망찬 격려는 고된 하루를 시작하는 이들에게 잊고 지냈던 힘의 원천을 떠올리게 해주고, 잔잔하고 때로는 슬픔이 밀려오도록 만드는 엔딩곡과 더불어 잘자라는, 오늘 하루 수고 많았다는 DJ의 인사는 쓸모없는 말과 행동으로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후회조차도 어쩔 수 없는 내 삶의 일부분이라고 인정하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그래서 나 또한 습관적으로 어플을 열고 귀를 기울이는 습관을 멈출 수 없다. 
“매일 하기 때문에 힘들고, 지겹고, 정도든다. 매일 하기 때문에 결국엔 들킨다. 매일같이 차곡차곡 만들어진 이미지, 흐름, 기세이기 때문에 바꾸기가 어렵다. 그래서 라디오가 무섭다.(38)”
“인생을 표현하는 중요한 단어 중 하나가 ‘이 와중에’가 아닐까. 상중에도 밥을 먹고 농담을 한다. 이 와중에 배가 고프고, 이 와중에 애는 보채고, 이 와중에 돈은 벌어야 하고, 저 남자는 잘 생겼고, 버스 놓칠까 봐 뛰어야 하고 ... 그렇다, 언제나.(51)”
“‘모든 사람은 나빠질 가능성을 품고 산다’는 것. 나는 정말로 이 사실이 무섭다. 누구나 언제든 내가 증오하고 경멸했던 사람들, 한심하게 여겼던 사람들처럼 될 수 있다는 걸 알아버렸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내면의 목소리에 한두 번만 눈감으면 된다. 외면은 습관처럼 익숙해질 것이고 그러다 보면 어느새 스스로 그게 맞다고 믿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늙어가는 일과 비슷하다. 아니, 그 자체가 어떻게 나이 들어 갈 것인지를 선택하는 순간들이다. 나는 내가 추하게 나이 들까 봐, 조직의 적체된 기성세대가 될까 봐 두렵다. 나빠지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부단히 자신을 성찰하지 않는 평범한 사람들이 옳지 않은 길로 들어서는 거라는 걸 안다. 트레바리의 윤수영 대표가 이런 말을 했다. {갈수록 빠르고 복잡하게 변하는 세상에서는 지속해서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 핵심은 ‘도덕적으로도 도태된다’에 있다. 지적으로 연마할 것, 선택의 순간에 숨지 말고 행동할 것. 명심하지 않으면 어느새 내가 욕하던 그 사람들처럼 돼 있을지 모를 일이다.(137)”
“프랑수아즈 사강 [내 최고의 추억과 더불어]- 태풍처럼, 해일처럼, 폭우처럼, 폭설처럼, 생각할 수 있는 그 모든 무지마지한 것들처럼 쏟아져내리는 시간들을 지나며, 무슨 일이 있어도 오전에는 딴짓을 하자고 다짐한다. 운동을 하고, 책을 읽고, 글을 끄적이자고. 내 일과 조금과 관련 없는 무용하고도 아름다운 문장들이 오늘의 나를 구원해주길.(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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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유성의 인연 1~2 - 전2권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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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유성의 인연 1-2]을 읽었다. 이미 2008년에 발표된 소설로 일본에서는 10부작의 드라마까지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이번에 재판본이 나오면서 읽게 되었다. 한동안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같은 감동을 주는 신작들이 없어서 아쉬웠는데, 그래도 괜찮은 만족감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술술 잘 읽혀나가는게 큰 강점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은 초등학생들인 큰형 고이치와 둘째 다이스케가 유성을 보러 몰래 집을 나서다가 막내 여동생 시즈나까지 동참하면서 벌어지는 일이다. 아쉽게도 날이 흐리고 비가 내려 유성을 보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보니, 엄마와 아빠 모두 처참하게 살해된 이후이다. 양식당을 운영하며 세 아이를 키우던 부모님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이런 끔찍한 일을 당하게 된 것일까? 이후 현장에 도착한 가시와바라와 하기무라 형사는 범인을 잡기 위해 분투하지만 결국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된다. 공소시효를 얼마 남기지 않은 14년이 지난 후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고이치와 다이스케와 시즈나는 어느덧 성인이 되어 새로운 일을 착수한다. 그들은 셋이 합심하여 부유한 이들의 돈을 뜯어내는 전문 사기꾼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일에서 손을 때기 전 마지막으로 가장 큰 작업을 하기로 한 대상은 유키나리라는 젊은 남자이다. 도가미 정이라는 큰 체인점을 운영하는 마사유키의 아들로 큰 건의 적임자였던 것이다. 시즈나는 유키나리를 유혹하여 커다란 다이아 반지를 받는 작업에 시작하지만, 유키나리가 새로 열게 된 양식당에서 하이라이스를 맛보고 너무나도 갑작스럽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왜냐하면 그 하이라이스는 바로 어릴적 아빠가 만들어준 그 하이라이스의 맛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기칠 대상이었던 유키나리는 어느덧 살인자의 아들이 아닐까 하는 추리가 시작된다. 과연 삼남매의 부모를 죽인 범인은 누구일까? 소설 속에 살인이 벌어진 장소가 양식당이고, 나중에 범인으로 추정되는 마사유키와 유키나리 부자가 운영하는 식당도 양식당이기에, 당연히 양식당은 무엇일까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양식당의 중요한 음식으로 하이라이스가 나오고 하이라이스는 범인을 잡기 위해 중요한 단서이기도 하다. 하이라이스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주 오래전에 보았던 일드 ‘런치의 여왕’이다. 한때 일드가 엄청난 인기를 구가했던 때라 그랬겠지만, 일본 사람들이 아주 환장하는 것 같은 하이라이스가 그 드라마의 소재였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데미글라스 소스가 대체 얼마나 맛있는 것이길래 저렇게 드라마까지 만들어졌을까 무척이나 궁금했었다. 그냥 오므라이스의 한 종류가 아닌가 싶었는데, 일본 사람들은 하이라이스에 대한 나름대로의 자부심이 있는 것 같다. 이에 대해서 이 소설을 번역한 분이 뒤에서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본에서 통용되는 ‘양식’이라는 명칭에 대해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양식’이라고 하면 서양에서 들어온 요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정확히 말한다면 ‘서양풍의 일본 음식’이라는 말을 줄여서 쓴 것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이 소설의 중심 소재가 된 하이라이스는 얇게 썬 쇠고기와 양파를 버터에 볶에 레드 와인, 데미글라스 소스와 함께 오래도록 끓인 것을 밥에 얹어 먹는 요리. 일본에사 독자적으로 개발한 요리법으로, 1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대표적인 ‘일본 양식’의 하나이다. 일본의 ‘양식당’에서는 하이라이스 외에도 돈가스, 민스 커틀릿, 카레라이스 같은 메뉴가 등장한다. 모두가 서양풍의 맛일 뿐, 서양에 이것에 해당되는 요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돈가스를 포크커틀릿, 하이라이스를 ‘Hashed beef with Rice(밥과 함께하는 얇게 저민 고기)’라고 하는 것은 이른바 일본어의 잔재를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고 할까. 우리나라에서 한때 ‘경양식’이라는 것이 유행하였지만, 그것과도 의미가 다르다고 생각하여 원서 그대로 ‘양식당’이라고 번역하였음을 밝혀둔다.(310)”
“생각건대, 돌연한 사건으로 혈육을 잃은 유족, 그래도 어떻든 살아가야 하는 유족의 아픔은 이만큼 따스하고 부드럽고 그립고 다정하게 감싸주는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고서는 치유되지 못하는 것이리라. 끔찍한 사건의 피해자에게 무심코 던져지는 편견이나 무관심에 대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인지 이 소설을 통해 다시금 생각하는 기회가 되기를 작가는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번역가의 말 (308)”
지금의 우리에게도 그런 사랑이 간절히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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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바다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해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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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먼 바다]를 읽었다. 작년 작품 [해리]에 느꼈던 아쉬움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지 않았나 싶다. 어찌보면 작가들이 한 번쯤은 소재로 삼고 싶어했을 법한 ‘첫사랑’에 대한 이야기이다. 오래전 국민 드라마라 할 수 있을 만큼 어머어마한 시청률이 나온 제목도 ‘첫사랑’이었다. 몇년 전 간호대 강의 도중에, 한 학기 내내 ‘사랑’에 대한 분석을 하고 있으니 그럴만도 했겠지만, 전혀 말랑말랑하지 않은 철학적 논의를 거듭하던 순간, 누군가 손을 들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질문인가?’ 반가운 마음에 말해보라고 했더니, ‘첫사랑 얘기 해주세요.’ 였다. 강의를 퉁치고 싶은 간악한 간계에 넘어가 줄까 하다가 정신차리고 아무렇지 않은 듯 설명을 이어갔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이미호 로사가 미국에서 40년 만에 첫사랑과 다시 만나, 40년간 마음에 품었던 질문을 고뇌하며 시작된다. 미호는 성당 고등부 활동을 하면서 사제를 지망하는 신학생 요셉에게 첫 눈에 반하고 만다. 요셉 또한 미호를 좋아하게 되지만, 미호는 가난한 사제가 되겠다는 열망이 강한 요셉을 하느님에게 양보하기로 결심한다. 미호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대학교수였던 아버지가 독재정권을 비판하다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직장도 잃은 채 집에서 무기력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미호의 엄마는 남편의 그런 모습을 도저히 견디지 못하고 모른 척 살아가며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결국 미호의 아버지는 고문 후유증인지 병을 앓다가 죽게 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진 미호는 아버지의 지인들의 도움으로 독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지독한 가난과의 사투를 벌이게 된다. 미호는 독일로 떠난 후 요셉에게 수차례 편지를 보냈지만 답장을 받을 수 없었고 유학 도중 아이를 갖게 된다. 40년이 지난 후 우연히 요셉의 소식을 듣게 되었고, 페이스북을 통해서 연락을 주고 받아 미국에서 만남을 재회하게 된다. 미호의 동료 교수들은 미국 연수 기간 동안 각자의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을 토로하고 미호는 연수 후 만나게 될 요셉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특별한 반전도 놀라운 사건도 없이 잔잔하게 진행된 이야기이지만, 살기 위해서 잊을 수 밖에 없었던 소중한 추억들에 대한 그리움의 가치를 재발견하게 해 준다. 
“누군가 그랬었다. 인간은 모든 것에 적응한다고. 환경과 고단함과 슬픔 어쩌면 매질까지도.(153)”
“만일 우리에게 영혼이 있다면 육체가 치명상을 입고 죽어가도 영혼만은 조금도 다치지 않아서 자신이 깃들어 있던 집을 마지막으로 깨끗이 정돈하고, 자신에게 가장 어울리는 상태로 매만지고 떠났다는 말일까? 마침 품격 있는 집 주인이 이사를 가기 전, 그 집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것처럼?(173)”
“결국 추억이라는 것은 상대가 아니라 그 상대를 대했던 자기 자신의 옛 자세를 반추하는 것일까.(208)”
“돌아보니까, 아픈 것도 인생이야. 사람이 상처를 겪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라는 것을 겪는다고 하고 그게 맞지만, 외상 후 성장도 있어. 엄청난 고통을 겪으면 우리는 가끔 성장한단다. 상처가 나쁘기만 하다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거지. 피하지 마. 피하지만 않으면 돼. 우린 마치 서핑을 하는 것처럼 그 파도를 넘어 더 먼 바다로 나갈 수 있게 되는 거야. 다만 그 사이에 날이 가고 밤이 오고 침묵이 있고 수다가 있고 그런 거야.(250-251)”
“No day shall erase you from the memory of time.(그 시간의 기억에서 당신을 지우는 날은 오지 않을 것이다.) -버질(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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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
아오야마 미나미 지음, 양지연 옮김 / 사계절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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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오야마 미나미의 [60, 외국어 하기 딱 좋은 나이]를 읽었다. 요즘 오랜만에 인강으로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던 터라 그런지 제목이 더 마음에 와 닿았다. 예순이 넘어서도 그 먼 멕시코까지 가서 홈스테이를 하며 스페인어를 공부하는데, 난 아직 한창이구나 싶은 동기부여를 받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말이다. 저자는 일본에서 영문학을 번역하는 일을 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다 안식년을 맞아 1년간 멕시코로 어학연수를 다녀온 내용을 소개한다. 생각보다 스페인어 단어와 문법에 대한 내용들이 자세하게 나온다. 그도 그럴수 밖에 없는 게, 어학원을 다니며 만난 에피소드이니 당연히 스페인어에 대한 이야기는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리고 더불어 멕시코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역사와 독재 정권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스페인이 멕시코를 정복하면서 잘 알려지지 않은 엄청난 킬링 필드의 역사에 놀람을 금치 못하는 저자에게 문뜩, 일본부터 사과하고 글을 쓰지 라는 반감이 일기도 했다. 이 책을 보니 멕시코에 한 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저자가 소개한 tequila와 비슷한 mezcal이란 술은 agave(용설란)으로 만든 것이라고 해서, 용설란이 무엇인가 찾아보니 아주 오래 전에 읽었던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에 나오는 선인장과 유사해 보였다. 용설란의 연관 검색어로 에네켄, 애니깽 이라고 나오는데,  김영하 작가가 말한 검은 꽃인 에네켄은 용설란의 한 종류라고 한다. 일제 치하에서 아무것도 모른 채 타국으로의 이주를 희망한 이들이 멕시코에 도착해서 에네켄(밧줄의 주요 재료)을 자르고 나르는 고된 노동의 삶을 그렸던 모습이 떠오른다. 그러고보니 멕시코가 우리나라와 아주 무관한 곳이 아니었던 것이다. 어학연수에 대한 내용을 보니 당연히 내가 verona에서 지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저자도 함께 공부하며 만났던 학생들에 대한 설명을 했는데, 나와 가장 오랜 시간 어학원을 다닌 친구들은 둘 다 일본 학생들이었다. 내가 다닌 학원은 나처럼 오랜 시간 문법과 회화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는 학생들보다는 2주에서 4주간 정도 여행 겸 어학을 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많은 유럽인들이 휴가 기간에 오전에는 어학 수업을 듣고 오후에는 그 지역을 여행한다는 사실을 알고 그들의 여유가 조금 부럽기도 했다. 아무튼 이렇게 짧은 기간 동안만 지내다 가는 뜨내기들이 대부분이기에 그들과 친교를 나누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와 비슷하게 길게 어학 공부를 할 일본인 학생을 만나게 되었다. 한 명은 Makiko라는 이름의 여학생과 다른 한 명은 Yasuhiro라는 이름의 남학생이었다. Makiko는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치면 한국외대 이태리어학과를 다니다 온 수재였기에, 작문을 꽤나 잘해 언제나 나를 기죽게 만들었다. Yasuhiro가 정말 특이한 친구였는데, 그가 이태리어를 배우러 오게 된 이유는 나는 정말 처음 들어보는 Federico Fellini의 영화를 보고 너무나도 감명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Yasu와 친해지고 수업의 회화 중에 들었던 내용에 의하면 지난 몇 년 간 슈퍼마켓에서 벌은 돈을 이 어학연수 기간에 올인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얼마나 활발한 성격이었던지 선생님이 바뀔 때마다 Yasu는 항상 관심대상이었고, 그에 반해 나는 항상 그를 옆에서 지켜보며 말이 늘지 않아 스트레스가 더욱 쌓여만 갔던 기억이 난다. 내가 로마로 내려갈 때가 되어 Yasu가 홈스테이 하는 집에서 조촐한 송별회를 하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어쩌다 독도 얘기까지 하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짧은 회화실력으로 그런 무거운 주제는 왜 꺼냈는지 모르겠지만, 일본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다. 혹시나 말다툼이 생겨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Yasu도 Makiko도 그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거의 없다고 하며 대부분의 일본 사람들은 무관심하다고 말해 조금 허탈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는데, 그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일본 사람의 과달라하라 어학연수기를 읽으니 그때 생각이 많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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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 2019 제43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김초엽 지음 / 허블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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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을 읽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작가이고, SF관련 소설이라 장르문학이구나 싶어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소설집임에도 불구하고 꽤 오랜 시간 인기가 있었다. 실패하지 않기 위해 서점에서 책 제목의 단편을 읽어보았다. 집중된 장르소설이라기 보다는 과학적 소재를 적절히 다룬 사람에 대한 이야기였다. 특히나 저자가 화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전문적인 과학적 용어들이 많이 나온다. 저자의 말에서 우주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따로 공부도 했다고 하니, 아직 다가오지 않은 언젠가 다가올 수도 있는 아니 전혀 불가능한 소재일지라도 그 안에 인간이 있고, 또한 저자와 평론가가 지적했듯이 아무리 과학이 발달해서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편리한 시대가 온다 할지라도, 여전히 존재할 법한 차별, 억압, 소외, 고통은 여전히 존재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특히나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라는 단편에서는 인간배아의 디자인으로 완벽한 인간 존재를 만들어 내려한다. 완벽한 개조인의 마을인 유토피아의 행성과 그렇지 못한 비개조인이 있는 디스토피아의 세계가 공존하게 되고, 개조인들의 마을에서 성인이 된 이들은 비개조인이 머무는 지구로 순례를 떠나게 된다. 그런데 그들은 부조리가 가득하고 불합리안 디스토피아 지구에 머물며 자기들의 고향 행성에 돌아가지 않는다. 그 이유를 평론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마을이 유토피아라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 물음은 장애를 비장애로, 디스토피아를 유토피아로, 불완전함을 완전함으로 간편하게 뒤집는 대신 오히려 그 이분법적인 항들의 관계를 사유하게 된다. 마을의 아이들이 서로 사랑에 빠지지 않고 낭만적 감성도 성애도 없는 이유를 고민하며 지구로 떠나는 데이지는 어쩌면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진정한 유토피아란 신체적인 결함이 말끔하게 소거된 세상도, 그렇다고 장애를 가진 사람들만을 격리해놓은 세상도 아닐지 모른다고. 오히려 장애와 더불어 차별을, 사랑과 더불어 배제를, 완벽함과 더불어 고통을 함께 붙잡고 고민하는 세상일지 모른다고. 어쩌면 폐기해야 할 것은 소수자들의 신체적 결함이나 질병 그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극복해야 할 것으로 규정하는 정상성 걔념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고 말이다.(328-329”
그 외에도 ‘스펙트럼’에서 희진이 마주한 태양계 바깥 행성의 루이라는 외계 지성 생명체와의 만남은 참으로 신선했다. 루이는 3-5년 밖에 살지 못하지만, 희진과의 만남을 끊임없이 기록했고, 희진은 루이의 언어를 이해하려고 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이유가 인간처럼 음성으로 언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색채를 단위로 삼는 언언체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도저히 인간의 눈으로는 구별할 수 없는 너무나도 다양하고 세밀한 색채의 차이.
‘감정의 물성’은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물건들에 우리가 느끼는 감정을 대입시킨다. 그래서 어느 문구 회사는 몇 년 후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을 위로하거나 분출 시킬 수 있는 감정의 물성이라는 물건이 대박을 치게 된다. 주인공은 대체 그런게 말이 되냐고 사람들이 감정의 물성을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한 가지 더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기쁨이나 행복과도 같은 감정의 물성을 사는 것은 그럴듯 하지만, 우울체 제품을 대체 왜 사는 것이냐고 반문한다. 어쩌면 사람들은 우울, 분노, 공포와 같은 감정을 직접 보고 손으로 만져보아 자신의 상태를 인정하고 극복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관내분실’에서는 지민의 엄마가 죽은지 3년 후에 엄마의 영혼이 담긴 마인드가 보관된 도서관과 같은 곳에서 생겨난 일이다. 미래에는 더 이상 매장도, 납골도 하지 않고 죽은 사람의 영혼을 데이터화 해서 남겨진 가족과 지인들이 만나고자 할 때 가는 도서관과 같은 곳이 생겨난다고 가정한다. 시대가 바뀌며 인간의 죽음에 대한 시선도 많이 변화되고 있지만 사후에 대한 두려움은 여전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아쉬움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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