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밀밭의 파수꾼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7
J.D. 샐린저 지음, 공경희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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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D.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었다. 주인공 ‘홀든 콜필드’의 입장에서 서술되는 이야기의 전개는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의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 저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라는 문장을 떠올리게 하는 [인간 실격]의 주인공처럼, 홀든은 10대 청소년으로서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세상에 대한 많은 물음들에 과감히 대적하려 한다. 다 읽고나니 이 책을 청소년기나 아니면 20대 초반에 읽었더라면 내 삶이 조금 달라졌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나에게 당면한 고민들로 인해 홀든의 고민 따위가 나랑 무슨 상관이 있느냐며 던져버렸을지도 모르겠지만. 
펜시 고등학교 재학중 시험에 통과하지 못해 퇴학 당하게 되는 ‘홀든 콜필드’는 크리스마스 방학을 앞두고 며칠 먼저 짐을 싸고 기숙사에서 나와버린다. 짐을 싸고 나오기 전에 기숙사에 함께 머무는 이들과의 대화와 그들에 대한 묘사는 사춘기 소년의 싱그러움과 약간의 삐딱함 그럼에도 대화와 만남을 이어가는 알 수 없는 심정의 변화를 너무나도 잘 그려내고 있다. 만약 사회생활을 하고 나이가 왠만큼 들었다면 그렇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들과 영화를 보러가는 사적인 만남을 지속할 수 있었을까? 홀든은 학교에서 도망쳤음에도 은사님께 인사를 드리러 가는 예의바른 모습을 보이지만 역시나 선생님의 훈계에 지루함을 느끼며 이런 저런 핑계로 그곳에서 또 다시 도망치려 한다. 아직 미성년자임에도 바에서 술을 주문하다 나이를 물어보는 관계로 콜라 밖에 시킬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자신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여성들에게도 함께 춤을 추자며 추파를 던지면서도 홀든은 마치 그 무엇도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만 같은 위태로움을 보인다. 이번에도 학교에서 퇴학당한 것을 도저히 부모님께 말씀드릴 수 없는 두려움을 마치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고정된 틀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는 당당함으로 매꾸려 한다. 그럼에도 홀든은 집으로 돌아가는 며칠 동안 잠도 제대로 자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는 모습으로 누군가와 진지한 대화를 하고 싶어한다. 마음에 들었던 여자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려고 하고 샐리를 만나 데이트를 하지만 결국 한심한 말실수로 그녀를 화나게 만드는 순진한 구석도 있다. 
홀든의 이러한 좌충우돌식의 행보는 결국 여동생 피비를 향한 그리움으로 귀결된다. 이미 남동생이 엘리를 떠나보낸 슬픔을 알기 때문인지 피비에 대한 애정과 사랑은 홀든의 진심을 대변하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눈을 피해 몰래 집에 들어가 마지막으로 피비하고 인사를 하고 싶었던 홀든은 피비에게 퇴학당한 사실을 들키고 만다. 피비는 홀든이 아버지에게 맞아 죽을 것이라 걱정하며 반복적으로 홀든에게 대체 오빠가 하고 싶은게 진짜 뭐냐고 묻는다. 바로 이 부분에서 홀든이 학교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계속적인 반항의 행동을 한 이유가 나온다. 

“나는 늘 넓은 호밀밭에서 꼬마들이 재미있게 놀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곤 했어. 어린애들만 수천 명이 있을 뿐 주위에 어른이라고는 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난 아득한 절벽 옆에 서 있어. 내가 할 일은 아이들이 절벽으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는 거야. 애들이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는 법이니까 말이야. 그럴 때 어딘가에서 내가 나타나서는 꼬마가 떨어지지 않도록 붙잡아주는 거지. 온종일 그일만 하는 거야.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다고나 할까. 바보 같은 얘기라는 건 알고 있어. 하지만 정말 내가 되고 싶은 건 그거야. 바로 같겠지마 말이야.(229-230)”

어쩌면 방황하는 홀든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너는 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냐고?’ 질책하는 어른이 아니라, 호밀밭의 파수꾼처럼 홀든이 절벽으로 떨어지지 않게끔 그저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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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 아무튼 시리즈 30
김신회 지음 / 제철소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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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신회 작가의 [아무튼, 여름 - 내가 그리워한 건 여름이 아니라 여름의 나였다]를 읽었다. 아무튼 시리즈 30번째 책이다. 이전 작품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를 읽고 보노보노 만화책도 몇 권 봤던 기억이 난다. 보노보노가 해달이라는 동물이고 해달은 평소에 조개를 품고 다니는데, 만일 낯선 대상을 만나게 되면 조개를 내어주는데, 그 이유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주니 자신을 해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내용이 기억난다. 왠지 모르게 해달의 습성이 보노보노라는 만화의 캐릭터와 너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아무튼’은 무작정 여름을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저자의 강렬한 애정이 물씬 풍겨 나온다. 그리고 지하철에서 읽는 동안 몇 번이 큭큭 웃음이 터져 눈을 들어 남들의 눈치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마스크를 썼으니 망정이지, 중년의 남자가 작은 문고본을 들고 혼자 킥킥거리는 모습은 조금 괴상히 보이지 않았을까? 방송작가를 10년 동안 해서 그런지 저자는 뭔가 빵 터지는 포인트를 잘 아는 것 같고, 그걸 글로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내용을 옮기고 싶지만, 이야기의 전체적인 흐름에서 갑자기 터지는 내용인지라 부분적으로 보여줄 수 가 없는게 아쉽다. 
나에게 있어서 예전에 여름은 그냥 좀 부담스러운 계절이었다. 아무래도 덥다보니 옷차림은 간소해질 수 밖에 없기에 빈약한 나의 몸을 받쳐 줄 옷을 고르는게 스트레스였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름만 아니면 긴옷과 자켓 등으로 대충 커버칠 수 있을텐데, 여름엔 그럴 수 없으니 만나는 사람마다 아니 왜 그렇게 말랐어? 아니 남자가 팔뚝이 그렇게 얇아서야 어쩌나? 팔과 손을 감춰버릴 수 도 없고. 하도 많이 듣다보니 그냥 그런가보다 하는 경지에 이르긴 했지만 어릴때는 좀 많이 듣기 싫었다. 그래서 여러 번 나도 muscolso 한 삶을 살고 싶다고 푸념하곤 했었는데 ㅋㅋ 
여름에 대한 이야기를 읽다보니까 계절의 이름이 사람 이름으로도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봄이, 여름이, 가을이, 겨울이. 드라마 ‘연애의 발견’에서도 주인공의 이름이 ‘한여름’이었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장겨울’이 나온다. 그래서 겨울과 정원 커플을 응원하며 겨울의 별명은 ‘윈터가든’이 되어버리고. 

“슬픔은 대출금 같은 것이다. 애써 모른 척, 괜찮은 척해봐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그렇다고 해서 자꾸 외면하거나 도망치기만 하면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저 실컷 슬퍼하는 것으로 착실히 상환해나갈수밖에 없다.(85)”

“<내가 누군가에게 필요한 사람이라는 사실, 그게 사람을 살게 하는 것 같아.> 며칠 전에 친언니가 이런 말을 했다.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 사람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되는 것 같다고. 타인과 주고받는 애정도, 직업적인 성취도, 누군가를 도와주며 느끼는 만족감도 결국 다 ‘나는 이 세상에 필요한 사람’이라는 실감을 위한 것 같다는 언니의 말을 한동안 곱씹게 됐다.(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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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언어들 - 나를 숨 쉬게 하는
김이나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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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나 작사가의 [나를 숨 쉬게 하는 보통의 언어들]을 읽었다. 다 읽고 나니 왜 ‘나를 숨 쉬게 하는’이라는 부제가 붙었는지를, 저자에게 일상적인 단어들이 주는 의미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쉴 새 없이 들려오는 세상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만 무미건조해보이는 일상을 견딜 수 있는 찰나의 행복을 잡을 수 있음을, 그래서 뒤에 ‘보통의 언어들’이라는 제목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상당수의 사람들이 대중가요가 주는 통속성에 위로받고 공감하며 사춘기를 보내고, 나이가 들어가면서도 예전에 그 노래들을 좋아했던 열정에 향수를 느끼면서 다시금 그 노랫말을 되새겨 보는 것 같다. 내게 있어서도 어떤 노래의 전주만 나오면 그때의 감정과 상황이 마치 영화처럼 눈앞에 펼쳐지는 것 같다. 

“황금알을 낳는 오리 이야기가 있다. 이를테면 나는 황금알보다는 그걸 낳는 오리를 찾아 곁에 두는 사람인 셈이다. 스스로 가장 축복이라 여기는 취미 습관이다. 이런 식으로 좋아한 이후로 나는 좀처럼 무언가에 쉽게 질리지 않는다. 하나의 노래를 좋아하고 그 노래만 반복적으로 좋아하면 필연적으로 피로도가 쌓이지만, 한 사람의 작곡가가 만드는 곡들은 그렇지가 않다. 좋아하는 노래들을 나중에 알고 봤더니 다 한 사람이 만들었더라는 이야기는 나 말고도 많은 사람들의 간증이 아니던가. 나는 여전히 윤상이 만드는 음악의 어떤 부분이 정확히 나를 자극하는지는 모른다. 그러나 분명한 메커니즘은 있을 것이고, 그것을 낱낱이 파헤칠 마음은 없다. 그가 만드는 음악은 단언하건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으니 그걸로 됐다.(126-127)”

내게는 이 책에도 지질함의 대명사로 언급된 윤종신 님이 그렇다. 고등학교 겨울 방학때면 하릴없이 도서관에 출근하며 지겹도록 들었던 윤종신의 초창기 앨범은 쓸쓸함의 근원은 대체 어디에서부터 오는 것인지?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아 들어간 신문 열람실에서 또 하릴없이 삭삭 소리를 내며 신문을 넘기던 그 무료한 사람들의 표정 속에서 적지 않은 위로를 받은 데서 오는지, 아니면 그 지루하고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혼자인 나를 마주하는 시간이 단지 그때로 마감되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서 오는지 묻고 또 물었던 시절! 그렇게 나를 지금까지 위로할 수 있는 좋아하는 노래를 재생산해는 음악가들이 있다는 것은 참 다행인 것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달리는 차 안에서, 갑자기 들어간 카페에서 그 노래들이 들려오는 우연한 상황들은 슬쩍 입꼬리를 올라가게 만든다.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노랫말들에 새겨진 의미를 꼽씹던 추억이 떠올라 그러한걸 보면 쓸쓸함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 같아, 어디서 또 우연히 내 기억의 노래들이 나올까 기대하며 라디오 주파수를 맞춰본다. 

“누가 굳이 뭐라 하지 않아도 사람은 누구나 자기혐오의 순간을 겪는다. 못나고 부족한 것들이 크게만 보이는, 멘탈 면역력이 바닥을 치는 어느 밤. 악플 잠복균은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올라온다. ‘어쩌면 그 사람 말이 맞을지 몰라’로 시작되는 자기의심은 대단한 속도로 혐오까지 달려간다. 자존감이 낮아지는 외로운 시간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악플은 그 얄궂은 시간 속에서만큼은 논리력을 갖는다. 나를 상대하는 검사가 끝없이 들이미는 증거처럼, 언제 본 건지 기억도 안 나는 아픈 말들이 나를 찌르고 또 찌른다. 이는 우리가 누군가에게 듣는 일방적인 비난과도 마찬가지일테다. 비난을 듣고 나면 처음에 분개하고 방어하지만, 마음이 약해지는 날에 자꾸 스스로에게 화살을 쏘게 되는 비난의 말들이 있다.(6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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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의 맛 문학동네 청소년 48
조남주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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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귤의 맛]을 읽었다. 청소년 문학 시리즈의 하나로 중학생 4명의 소녀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다윤, 소란, 해인, 은지 이렇게 4명은 현대 도시 청소년들의 평범하고도 지독히 외로울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노출된 채 어떻게 굳게 닫혀진 마음을 서로에게 열어갈 수 있는지 보여준다. 입시제도, 학원 문화 그리고 변함없는 가족들의 갈등을 소재로 삼아 친구란 무엇인지, 단순히 어린 시절에 재미있게 놀 수 있는 단순한 동료로만 끝나는 것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최근 종영한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도 99학번 5명이 절친으로 나온다. 의대에서 만난 이들이 같은 병원에서 일하며 힘들고 어려운 고민들을 공유하고 소소히 일상을 나누며 밴드로 하나되는 모습은 그야말로 너무나 이상적으로 보인다. 그 드라마를 보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대학병원의 교사이며 의사라는 자리가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수준 높은 능력이 아니라, 이어받을 엄청난 유산이 아니라, 언제든 어디서든 함께 밥을 먹어줄 친구들이 있다는 사실말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다윤, 소란, 해인, 은지는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지만 영화동아리를 통해서 나름 친분을 갖게 되고, 제주도 3박 4일의 여행을 통해서 나중에 고등학교도 꼭 같은 곳에 가자는 약속을 하고 만다.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다윤이는 학교에서 외고를 보내려고 하고, 해인의 부모는 이모의 집 주소로 위장전입을 하여 자사고에 보내려고 하는 등 각자의 사정으로 모두가 다 같은 고등학교에 갈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이르러 그들은 마치 각자가 원하던 것을 포기하고 단지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같은 고등학교를 지원한 것처럼 보였으나, 소란은 사실 그들 모두가 각자의 이유와 사정으로 한 곳에 모인 것 뿐이라는 냉정한 결론을 내리게 된다. 그럼에도 제주도에서 “기대하지 않아서, 예상하지 않아서, 계획하지 않아서.(161)”라는 다윤의 말처럼 마트에서 사는 귤보다 감귤 체험장에 따서 먹은 귤이 그렇게 맛있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비록 우리의 만남이 아무런 기대, 예상, 계획이 없었음에도 이토록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 나를 만들어 왔음을 부정할 수 없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반짝 반짝 작은별의 가사가 “How I wonder what you are. 네가 있어서 얼마나 놀라운지, 너희들이 있어서 얼마나 놀라운지(205)”라며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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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너리 푸드 : 오늘도 초록 띵 시리즈 3
한은형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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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은형 작가의 [그리너리 푸드: 오늘도 초록]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3번째 책이다. 이번 음식의 주제는 초록을 연상시키는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초록빛을 띠는 채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닌 초록이라는 말에 담긴 싱그러움을 부르는 음식재료와 음식의 이야기이다. 읽다보니 한은형 작가는 허브 매니아라서 그런지 아마도 향신료가 가득한 음식도 거침없이 잘 먹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사실 먹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향신료가 들어간 근동 지역의 음식들은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왠지 이번 책을 읽다보면 나도 전세계 어디를 가서도 초록을 느끼게 해주는 음식들은 마구마구 잘 먹을 것 같은 마법을 부릴 것만 같은 만용을 부려보고 싶어졌다. 특히나 작가가 프랑스 파리에서 처음 맛 보았다는 ‘스테이크 타르타르’는 과연 어떤 맛일지 몹시 궁금해졌다. 우리나라 육회와 비슷하다고 하는데, 8월의 파리 40도에 육박하는 무더위 속에서도 “민트와 쿠민의 조화가 기가 막혔고, 레몬의 산이 고기의 결을 조밀하게 바꿨음에 놀랐다. 그리고 고기의 결 사이로 다진 케이퍼의 맛과 샬롯의 새침함도 슬며시 드러났다. 이건 뭐랄까.... 내가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음식이었다. 허브의 존재감이 가득한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날고기마저 이렇게 상큼할 수 있나 싶고.(85)” 라는 평을 내놓는다면 분명 맛있지 않을까? 또 한 가지 ‘바냐 카우다(bagna càuda)’이다. “온갖 익히지 않은 야채를 갈색 소스에 찍어 먹는 음식이다. 바냐 카우다는 이탈리아어로 뜨거운 그릇 혹은 뜨거운 소스를 뜻하는 말이라고 한다. 생야채를 찍어 먹는 게 뭘 그리 특별하겠어 싶을 수도 있겠는데, 나한테는 어느 음식보다 특별했다. 안초비와 마늘, 올리브 오일이 들어갔을 것으로 짐작되는 녹진한 연갈색 소스에 찍어 먹는 생야채는 내가 아는 야채가 아니었다. 바냐 카우다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방 요리라고 한다.(192-193: 청담동 ‘콩부인’)”

“한때 향수병을 앓았다. 2016년 여름, 베를린에서였다. 내가 베를린에 간 것은 7월이었는데 간 지 열흘도 안 되어 향수병에 걸렸다. 향수병이 어떤 것인지 모르겠고, 내 증상이 보편적인 향수병과 얼마나 합치하는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향수병이었다고 주장하고 싶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토록 눕고만 싶고, 그토록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런데, 최근에 내가 걸렸던 병의 이름이 따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SAD. Seasonal Affective Disorder, 계절성 정서 장애. 겨울 우울증이라고도 불린다. 겨울에 주로 걸리는 일종의 정신 질환으로, 그 증상이 내가 앓았던 것과 정확히 일치했다. 북해의 영향을 받아 사무치는 바람이 불었던 베를린의 7월을, 내 마음은 겨울로 인식했던 것이다. 그러자 몸도 7월의 베를린을 겨울로 느꼈다.(57)”

이 부분을 읽었을 때 그럼 혹시 나도 그때 그래서? 2008년 6월 중순 베로나에서의 4개월차를 보내며 처음으로 주말에 혼자 당일치기 여행을 가게 되었다. 어학원 수업 시간에 나왔던 파도바에 있는 Giotto의 작품 ‘Cappella degli Scrovegni’를 보기 위해서였다. 숙소에서 나올 때만 해도 날이 화창했기에 얇은 면티 하나만 입고 기차를 탔다. 그런데 1시간 후 파도바에 도착했을 때에는 갑자기 장때비가 내려 바지와 신발이 다 젖었다. 갑자기 덜덜 떨리는 추위를 느끼며 숙소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언제 다시 그 작품을 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젖은 몸으로 지오토의 작품이 그려진 작은 경당을 20분간 감상하고 나왔다. 작품 보존을 위해서 그 이상은 머물수도 없었다. 온통 ‘blu blu tutto blu’ 라고 외치던 어학원 선생님의 말 때문이었는지, 비를 맞아서였는지 그 유명한 파도파의 안토니오 대성당도 둘러보지 않고 다시 기차를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다행히 감기에 걸리지는 않았지만 갑자기 모든게 하기 싫어졌다. 어학 공부도, 입에 맞지 않는 서양음식도, 코쟁이들도 다 꼴배기 싫었다. 일주일 후에 모든 걸 때려치고 한국으로 돌아가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고 온갖 난리를 피우다 다행히 그 향수병은 조금은 어이없는 대화로 치유받았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6월의 이탈리아는 정말 아름답다. 오늘도 초록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말이다. 그런데 이미 조금씩 향수병에 점령당해가던 나의 몸과 마음이 홀로 떠난 첫 여행에서 맞은 비로 심각한 추위로 돌변한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계절성 정서 장애라는 말에 affective라는 단어가 쓰였다는 것은 분명 우리가 끊임없이 필요로 하는 것은 또 다른 인간에 대한 열렬한 애정이 아닐까 싶다. 그 무한한 애정의 원천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가 사랑해야 하는 이유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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