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생활
송지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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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지현 작가의 [동해 생활]을 읽었다. 다 읽고 난 첫 번째 소감은 ‘그야말로 정말 깬다’, 그리고 이어지는 소감은 ‘그야말로 부럽네’. 작년까지 1년에 한 번씩 경포대 근처를 가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여긴 정말 차가 별로 없어서 운전하기 편하겠다는 생각과 이렇게 한산한 곳에서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연이어지지만 막상 며칠 지나고 나면 나도 모르게 도시의 복잡스러움이 그리워져서 어여 집에 가야겠다는 생각만 하게 된다. 도시의 안락함에 길들여지게 되면 한적한 곳의 고요함과 심하다 싶을 정도의 거리감으로 인해 발생되는 불편함들에 적응하는 것이 쉽지 않게 된다. 하지만 송지현 작가의 동해 생활을 읽다 보면 그 적적하고 막막할 것 같은 생활이 마치 블랙홀처럼 친구들을 끌어당기는 마성의 힘이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놀랍고도 대단한 것은 9살 차이나 나는 동생과 어떻게 그렇게 친하게 지낼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그녀의 자유분방함과 깊은 외로움과 무력함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샘솟는 희망의 기운들이 곳곳에 새겨져 혼자 큭큭 웃게 만들기도 안쓰러움이 갑작스럽게 밀려오게 만들기도 했다. 

그녀의 다양한 친구들의 방문, 미리 계획하지 않고 갑작스럽게 결정해버리는 만남,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술자리와 이야기들, 그로 인해 발생되는 헤프닝들.... 아마도 동해 아파트를 방문했던 작가의 친구들은 운전을 하다가, 길을 걷다가 갑자기 큭 하고 혼자 웃음보가 터지는 귀한 추억을 한아름 안고 사는 게 아닐까 싶다. 특히나 동생이 자면서 씨익 웃는 모습을 보고 어떤 꿈을 꾸는지 궁금해 동생을 깨우고 꿈의 내용을 물어보았지만 동생은 잠이 덜깬 얼굴로 웃기 시작하고 그 모습에 저자 또한 마구 웃어대는, 시간이 흐른 후에도 그 이야기만 하면 웃음이 터지는 사랑스러운 자매들의 이야기. 이어지는 추천의 글들이 다른 책과는 다르게 마치 저자에게 답장을 보내듯이 그녀와의 인연과 동해에 다녀온 소감들을 아주 길게 써 준 것이 무엇보다도 부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그녀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아마도 송지현 작가는 분명 또 다른 따뜻한 글을 쓸 수 있으리라. 

“며칠 전에 선우정아의 앨범을 쭉 듣다가 이 가사를 듣고 무한 공감했다. 생일 같은 거 정말 아무도 모르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생일 즈음에 밀려오는 우울감은 정말 견디기 힘들다. 일 년 동안 아무것도 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대단하지도 않은 이런 일상조차 버겁게 살아가는 것이 나의 삶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버린 절망일까. 혹은, 그냥 인간은 슬픔과 함께 태어나는 존재일까.(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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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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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작가의 [중앙역]을 읽었다. 2014년 제5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으로 출간된 후 2020년 개정판으로 저자의 첫 장편소설을 접하게 되었다. 이미 [딸에 대하여], [9번의 일]을 통해 저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별한 시선을 알고 있기에 [중앙역]의 주인공들이 노숙자라는 사실은 그리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주인공인 나와 여자는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마치 우리가 외국들인들을 볼때 쉽게 구별을 못하는 것처럼, 반대로의 경우도 마찬가지이지만 장시간의 노숙으로 거친 환경에 오랜 시간 노출된 이들은 본래의 개성을 잃게 되고 비슷비슷한 외형을 형성하게 되어 마치 그들의 고유한 이름이 사라지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주인공 나는 젊은 청년으로 보인다. 중앙역 광장에 모인 이들은 주인공에게 술을 건네며 여기 있을 나이가 아니라고, 너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주인공의 가장 큰 조력자인 강팀장은 어떻게든 그를 정상적인 생활로 돌려보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나름의 배려를 한다. 하지만 그는 광장을 떠날 생각이 없다. 도대체 그가 왜 젊은 나이에 길바닥 생활을 시작했는지 알 수 없다. 노숙을 시작하는 그에게 좋은 잠자리는 이미 그 생활을 시작한 이들에게 점유된 채, 길 위에서도 약자의 모습으로 진동과 소음이 가득한 곳에 자리잡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는 곧 얼마되지 않아 젊음의 힘을 휘둘러 폭력을 행사함으로 그를 무시하던 이들이 더 이상 그를 건드릴 수 없게 만든다. 그는 이제 길에서 원하는 곳에 누울 수 있게 되었고 그때 여자를 만난다. 갑작스럽게 다가온 여자는 그가 잠든 사이에 그의 캐리어를 움쳐 달아난다. 그는 캐리어를 찾기 위해 헤메이다 결국 여자가 어느 노숙자들과 술판을 벌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캐리어를 내놓으라고 소리친다. 어쩌면 그에게 캐리어는 그가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는 마지막 연결고리였는지 모른다. 그는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 여자와 광장의 구석진 곳에서 밤을 함께 보내는 생활을 하며 여자의 곁을 떠나지 않는다. 불룩 튀어나온 여자의 배는 이미 그녀가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술을 마시며 지내온 시간으로 인하여 복수가 차고 황달이 시작된 아픈 사람임을 시사한다. 하지만 여자는 남편도 자녀도 있기에 수급자로 인정받지 못하고 병원도 가지 못한다. 어느날 여자는 갑작스럽게 사라지고 강팀장은 그녀가 요양원에 보내졌음을 알린다. 그는 여자를 기다리며 광장을 떠나지 않는다. 그리고 여자는 광장으로 돌아오고 강팀장의 배려로 그와 여자는 쪽방에서의 삶을 시작한다. 

읽는 내내 도대체 왜, 무엇 때문에 그와 여자는 역 주변을 떠나지 못하고 한대잠을 자며 몸과 마음이 망가져 가는 것을 허락한 것일까? 란 물음이 쉴세없이 밀려왔다. 해피엔딩을 바라는 마음으로 주인공이라도 정신을 차리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랬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그냥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지나가면 눈쌀을 찌푸리고 그들이 풍기는 악취로 인해 숨을 참고 코를 틀어 막으면서도 그냥 그들이 이제 그렇게 인생을 허비하지 말고 정신을 차리기를 바랬다. 한여름의 뜨거운 열기를 참기 힘들어하면서도,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찬바람의 기운을 느끼고 올 겨울을 어떻게 버틸것인지 두려워하면서도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숨막히고 아무도 오지 않는 쪽방보다 밤새 눈을 괴롭히는 불빛과 소음이 있더라도 넓디 넓은 광장으로 돌아간다. 그와 여자가 그렇게 노숙의 삶을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은 이유는 어쩌면 이미 그들과 이쪽 편의 사람들 사이에는 깊은 구렁텅이가 놓여 있어 도저히 그 간극을 좁힐 수 없기 때문은 아닐까? 그리고 그들이 이쪽 편으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더 깊게 구렁텅이를 파내는 이들은 바로 내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 여자가 했던 그 말은 맞다. 우리가 나누었던 건 사랑이 아니라 버리고 다 버려도 끈질기게 남아 있는 본능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뭔가를 먹고 배설하는 것처럼 숨쉬는 동안에는 버릴 수 없는 동물적이고 생리적인 욕구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 본능과 욕구는 사랑이라고 말할 수 없나.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닌가. 차창을 떠가는 싯누런 강물 위로 내 얼굴이 잠긴다.(166)”

“누군가에게는 삶이 끔찍하지 않을 수도 있을까.
나는 되묻고 싶어진다. 삶이 이토록 끔찍한 건 어쩌면 당연한 게 아니냐고 되묻고 싶다. 그러면서 나는 이런 생각도 한다. 정말 끔찍한 건 삶이 아니라 죽지 않고 꾸역꾸역 견디고 있는 스스로를 지켜보는 것이라고. 내가 얼마나 더 구차해지고 비참해질 수 있을까, 생각하는 것보다 끔찍한 것은 없다고 중얼거린다.(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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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식 자취 요리 :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 띵 시리즈 4
이재호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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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호 님의 [프랑스식 자취 요리: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4번째 책이다. 곧 의사선생님이 되실 분이 프랑스로 요리 유학까지 다녀와서 이렇게 글까지 잘 써도 되는거야? 라는 반문이 나올만큼 술술 잘도 넘어가게 요리를 잘 하는 만큼 맛깔나게 글을 쓴 것 같다. 아무리 의대를 다니다 유급을 당했다고 해도 그렇지 갑자기 프랑스로 건너가 요리를 공부할 결심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냥 학교를 졸업한게 아니라 최우수상을 받을 만큼 요리 공부도 열심히 했다면 분명 저자에게는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재능이 있었을 것이다. 재능에 좋아하는 열정까지 더해졌으니 말해서 무엇하리. 요즘은 아마도 자취를 하며 스스로를 먹이는 일에 열중하고 또 사랑하는 사람들의 입에 들어가는 것에도 큰 기쁨을 누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저자가 말하듯이 프랑스 요리가 이탈리아 요리보다 비싸서 그런지 프랑스 요리하면 특이하고 비싸지 않을까란 선입견이 생긴다. 이탈리아 음식인 피자와 파스타는 너무나도 보편적이 되어버려서 나이 드신 분들도 파스타를 아무렇지 않게 드신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파스타를 못 먹는 남자들이 꽤나 있었는데 말이다. 주변에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쉽게 볼 수 있지만 프랑스 레스토랑은 찾기 힘든 것도 프랑스 음식을 접하기 어려운 이유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책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주로 탄수화물 위주이고 프랑스 음식이 단백질과 지방 위주라는 것을 보고 프랑스 음식에 길들여지는 것이 건강에는 더 좋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입에는 탄수화물이 큰 즐거움을 주니 큰일인 것이다. 

올해 8개월 간 생애 첫 자취를 하며 혼밥을 물리도록 해봤다. 밥이야 전기밥솥이 해 주니 그리 걱정할 것은 없지만, 문제는 반찬이었다. 처음에는 예전처럼 먹기 위해 밥과 국을 꼭 준비했다. 그런데 준비한 국을 다 먹으려다보니 반찬을 잘 먹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어느날 부터인가 아예 국을 준비하지 않기로 했다. 역시나 국이나 찌개가 없으니 반찬에 집중할 수 있었다. ‘전동’식사, 전날과 동일한 반찬의 식사라는 나만의 줄임말로 대체 며칠까지 같은 반찬으로 먹으면 지겨워질까가 아니라 이 반찬으로 며칠까지 맛나게 먹을 수 있을까란 시도도 해보고, 무엇보다도 가사 노동이 얼마나 지겹고 힘든 일의 반복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이런 걸 평생 해오신 어머니의 노고를 감히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듯 하다. 사람이 먹기 위해 사는 것인지, 살기 위해 먹는 것인지 그때 그때 다르기는 하지만 사람에게 먹는 것은 정말로 중요한 것 같다. 음식을 통해서 관계를 맺고 대화를 나누고 또 사랑을 전한다. 응어리진 마음이 음식을 통해서 사르르 풀리기도 하고 때로는 음식으로 화가 나기도 한다. ‘언제 밥 한 번 먹자’라는 형식적인 인사나 ‘꼭 식사대접하고 싶습니다’라는 간곡한 감사의 인사는 결국 우리가 음식을 통해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닐까? 

“수많은 순간과 선택의 연속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었다. 살아보니 무엇이든 좋기만 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없었다. 심지어 좋다고 생각했던 것도 시간이 지나고 보면 그렇게 좋지는 않았거나, 나쁘다고 생각했던 일도 뭐 그리 나쁜 일이 아니기도 했다. 수없이 무너져도 다시 일어나고 버티고 나아가려는 내가 좋다. 앞으로 또 어떤 일이 닥치든 나 자신을 방치하고 미워하기보다 아끼고 사랑해줄 것이다. 적당한 하루에 만족하고 소소한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야지. 매 순간 모쪼록 최선이었으면 하는 마음으로.(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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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 가을 2020 소설 보다
서장원.신종원.우다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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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보다: 가을 2020]을 읽었다. 수록작으로는 서장원 작가의 [이 인용 게임], 신종원 작가의 [멜로디 웹 텍스처], 우다영 작가의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이렇게 세 단편이다. [이 인용 게임]에서 화자인 ‘나’는 헤어진 연인 노영과 친구처럼 다시 만나고 있다. 노영의 어머니는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자 곧바로 요양원에 수속을 받고 들어가게 된다. 자식에게 부담을 지우려 하지 않는 부모의 배려일 수도 있겠으나, 노영이 오지 않는 시간이 길어지면 어머니는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노영을 기다린다. 화자는 노영과 호주에서 만나 알게 되었고 한국으로 돌아와 사랑을 시작하고 종결한다. 그들에게 호주에서 있었던 어떤 한 사건이 노영의 죽은 오빠 준영과의 일을 떠올리게 만든다. 노영은 워킹홀리데이를 위해 머물던 숙소에서 보증금을 받지 못하고 나오게 되자, 홧김에 주인 아주머니의 아들의 일기장을 훔쳐온다. 시간이 많이 흘렀는데, 어느 날 호주에서 일기장을 돌려달라는 연락을 받게 된다. 노영은 화자에게 그 일기장을 혹시 갖고 있냐고 물으며 오래전 병을 앓다 죽은 오빠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어린 나이에 중병을 앓게 되자 노영의 부모님은 만사를 재치고 아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게 되고 노영은 부모님의 관심에서 배제된 채 유년시절을 보내게 된다. 특히나 아픈 아들이 보드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되자, 노영의 엄마는 온갖 종류의 보드 게임을 공부하며 아들과 이 인용 게임을 하게 된다. 화자가 왜 같이 하지 않았냐고 묻자, 보드 게임은 주로 이 인용이거나 아니면 다 인용으로 셋이서 할 수 있는 게임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오빠가 죽은 후 노영은 보드 게임을 중고 거래로 팔아 하고 싶었던 일을, 사고 싶었던 것을 산다. 그리고 화자는 노영이 남기고 간 패트릭의 일기장을 아주머니에게 돌려 주려 했으나, 그녀의 인종차별적인 발언으로 일기장을 맥도날드 쓰레기통에 남은 감자를 버리기 전에 버렸다고 고백한다. 전쟁에 참가해 전역을 앞두고 죽음을 맞이한 패트릭의 일기장과 중병을 앓다가 죽은 오빠 준영이 좋아했던 보드 게임은 그들 어머니의 사랑의 매개체였지만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기억나게 하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언제나 영혼의 본질을 정보라고 보았다. 그 사람이 알고 있고 기억하고 있는 정보가 곧 그 사람을 이루는 모든 것이며 죽은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남아 재생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정보의 형태가 영혼이라고 생각했다. 
언니는 영혼을 명제 혹은 일종의 법칙이라고 해석했다. 사람을 그 사람으로 만드는 단순하고 우아한 공식이 분명히 존재하며 그 공식으로 우주 어디에서나 영혼을 재생할 수 있다고 믿었다.(104)”

“감정과 기억에 관해서도 저는 곧잘 확신하지 못하거든요. 내 감정은 단일한 내가 만들어낸 감정이 아니고, 내 기억은 온전히 나에게서 비롯된 기억이 아니에요. 우리는 다른 사람의 기분에, 표정에, 사연에 감정 이입하고 내 것이 아닌 슬픔을, 기쁨을, 분노를, 공포를, 때로는 거의 유사한 고통을 취할 수 있어요. 또한 전대 인류가 축적한 지식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역사와 윤리와 미학을 공유하며,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생각에 동조되고, 그들의 말과 기억에 의해 믿음, 편견, 혐오에 빠지기 쉬우며, 때론 누군가의 추억이 고스란히 나의 추억이 되기도 해요. 리베카 솔닛은 사람은 모두 식인을 통해 살아간다고 말했는데, 여기서 식인은 살과 피가 아니라 타인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부분의 취함을 의미하잖아요. 저는 이 말에 정말 동의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먹고 서로에게 먹히다는 것. 뒤섞이고 있다는 것. 모두가 유기적으로 연결된 하나의 숲이라는 것. 무수한 전생이 축적되어 서로를 구분할 수 없게 된 영혼들은 여기서 시작되었어요. 저는 그들이 어떤 존재에 포함된 작은 세포이며 자신의 이름과 기능을 까맣게 모르는 채로 죽을 때까지 서로를 돕고 서로를 공경하는 하나의 몸이 아닐까 상상했어요.-저자와의 인터뷰 중에서 (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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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마포구 사람인데요?
다니엘 브라이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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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브라이트의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를 읽었다. ‘단앤조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인 영국 아찌가 우리 말로 책까지 냈다니 실로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저자의 유튜브 채널은 본 적이 없는데, 중간에 등장하는 ‘영국남자’는 우연히 본적이 있어 다시 살펴보니 구독자 수가 어마어마했다. ‘단앤조엘’의 채널도 조만간 더 유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2012년에 한국에 처음 왔다고 하는데 십년도 안되어 이렇게 한국말을 잘한다니 믿기지 않을 정도이다. 한국인 아내를 두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한국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그의 열정이 이렇게 일취월장한 실력을 뽐내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싶다. 유튜브 채널을 스크롤 하다보면 의외로 외국인들이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며 여러가지 테마로 방송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상대적으로 우리나라가 이제 경제적으로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서게 되었구나 라는 실감이 들기도 하고, 그들의 눈에 비춰진 우리는 어떤 모습일까 궁금하기도 하다. 

‘단엔조엘’을 본 적은 없지만, 책에 나온 걸로 봐서 단은 상당히 먹방도 잘 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보이고, 한국 음식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한국 재래시장에 대한 특별한 관심과 그곳에서 처음 만난 어르신들과의 자연스러운 대화와 음주는 단의 열려있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 같다. 넘쳐나는 유튜버들 중에서 구독자에게 어필하기 위해서는 그들 채널만의 유니크함이 분명 있어야 할텐데, 단은 저서에서 그 특별함을 사람들의 이야기에서 찾는다. 저명한 이들과 이미 셀럽이 된 이들 말고 특이한 직종을 가진 무명의 주인공들을 섭외하여 그들만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을 컨셉으로 삼는 것 같다. 기존의 유명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시대에서 보통 일반 사람들 각각의 이야기에 포커스를 맞추고 그 안에서 의미를 찾아낸다면 소모적인 삶을 사는 것처럼 위축된 이들에게 적지 않은 위로와 감동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덕분에 유튜버란 직업에 대해 조금 더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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