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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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읽었다. 하루키의 신간을 동네서점 버전으로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찾던 중에 인스타그램을 서핑하다가 자동으로 뜨는 광고그램에 ‘카페 동경 앤 책방’에 입고 되었다는 포스팅을 보고 후다닥 달려갔다. 들어가서 책이 진열되어 있는 맨 첫 공간에 하루키의 신간이 쌓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진저라떼(무지 좋아하지만 메뉴에 있는 카페가 극히 드문데)를 주문하며 책도 함께 결제했다. 표지는 역시 동네서점 에디션이 훨씬 멋지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후 이렇게 다양한 작은 서점이 생겨나고 출판사에서는 인터넷이나 대형서점이 아닌 작은 동네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매력적인 표지를 디자인하여 구매력을 상승시키는 다양한 시도가 썩 괜찮은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읽고 난 후에 컬렉션으로 진열하기에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조금은 쌀쌀한 난방이 시원치 않은 카페 동경 앤 책방에서 갓 나온 신간을 알싸한 생강의 맛을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으로 감싸주는 진저라떼를 호호 불고 마시며 첫 단편을 읽었다. 역시나 하루키는 에세이보다는 천상 소설이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가끔은 하루키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독특한 시선을 느낄 때가 간혹 있는데, 소설은 역시나 하루키다 라는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소설집에는 ‘돌베개에’, ‘크림’,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 With the Beatles’,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사육제(Carnaval)’,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일인칭 단수’ 이렇게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8개의 단편 모두 화자는 ‘나’로 하루키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비춰진다. 그리고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간혹 ‘나’의 직업이 작가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소설이면서도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든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있다보면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소설의 배경으로도 여러 곡들이 등장하기에 하루키처럼 재즈와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면 아마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들어가기에 훨씬 더 수월하리라 생각된다. 나는 재즈에도 클래식에도 그리 큰 관심이 없었기에 하루키의 작품에 나오는 곡들은 실제로 들어보지 않는다면 거의 모를 것이라는 게 매번 아쉬웠다. 이번 단편집에서 알토색스폰을 부르는 찰리 파커에 대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와 슈만의 사육제를 모티브로 한 내용이 참으로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하루키는 팝송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비틀스에 대한 기억으로 풀어낸 ‘위드 더 비틀스’의 내용은 하루키만의 소설이 갖고 있는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이 단편에서 하루키는 오래전 사귀었던 여학생과의 일화를 전해준다. 비틀스의 음반을 가슴에 두 팔로 꼭 안고 걸어가는 다시는 마주치지 못한 어떤 소녀에 대한 기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틀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해에 하루키는 처음으로 여학생과 교제를 시작했고 우연히 그 소녀를 데리러 집에 갔다가 그녀의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녀의 오빠는 유전적인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몇 시간의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증세를 고백하며 ‘나’와의 어색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녀의 오빠는 ‘나’에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톱니바퀴’의 일부를 낭독해줄 것을 부탁한다. 십팔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나’는 그녀의 오빠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옛 여자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질문: 두 번에 걸친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는 그들 인생의 어떤 요소를 상징적으로 시시하는가?(120)>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48-49)”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169)”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먼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181)”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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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소설이다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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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인생은 소설이다]를 읽었다. 1년에 한 편씩 신작을 발표하는 기욤 뮈소의 놀라운 필력과 성실함에 다시 한 번 탄복하게 된다. 물론 가독성이 높은 만큼 금방 잊히는 아쉬움이 남지만 해마다 신작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또한 기욤 뮈소의 매력인듯 하다. 옮긴이의 말에서 언급한 것처럼 작년 작품인 [작가들의 비밀스러운 삶]에서도 작가들이 등장하는 소재였는데, 올해도 소설 작가가 주인공인 마치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삽입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내용들이 전개된다. 그리고 이번 작품은 이야기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액자 구성 혹은 격자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플로라 콘웨이라는 이름의 신비주의 컨셉을 가진 작가와 그녀의 딸 캐리의 숨바꼭질로 시작된다. 플로라 콘웨이는 대중에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세 작품을 출판하고 프란츠 카프카 상을 받은 유명 작가가 된다. 그녀의 출판과 관련된 일은 모두 편집자인 팡틴이 맡아서 하기에 플로라 콘웨이는 비밀스럽게 자유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그녀의 딸과 집에서 숨바꼭질을 하던 중 캐리는 갑자기 사라지게 되고 플로라 콘웨이는 패닉에 빠져 결국은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여기까지 읽었을 때는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서는 스릴러와 추리가 예상되었다. 

캐리의 행방을 찾을 실마리 조차 얻지 못한 플로라 콘웨이는 절망스러워하며 자신의 삶을 이렇게 망가뜨린 현실을 저주하며 머리에 총구를 들이댄다. 그리고 장면은 갑작스럽게 로맹 오조르스키라는 또 다른 작가가 화자로 등장한다. 로맹은 19개의 베스트셀러는 쓴 유명 작가이지만 현실은 아내 알민이 철투철미하게 준비한 시나리오에 배신 당해 폭언과 정신 이상자로 낙인 찍혀 아들 테오에 대한 양육권도 빼앗긴 비참한 상태이다. 로맹은 어떻게 하면 지금의 비참한 상황을 벗어나 테오와의 삶을 지속해 나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던 차에 플로라가 총구를 머리에 겨둔 장면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파리에서 뉴욕으로 이동한 로맹. 기욤 뮈소의 소설이 언제나 그렇듯이 시간과 공간을 이동하는 판타지 요소가 삽입되어 있다. 물리적인 이동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로맹이라는 소설가가 플로라가 등장하는 소설을 구상하던 도중 스토리에 깊이 몰입하여 생겨난 환각과도 같은 상상의 모습일 수도 있다. 플로라는 로맹에게 딸 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종용하지만 로맹은 작가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끝내버릴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며 플로라의 청을 거절하고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로맹은 알민이 테오를 데리고 미국으로 가려고 하자 테오를 볼 수 있게 해다라고 부탁한다. 하지만 알민은 로맹의 부탁을 거절하고 기차 파업으로 일정이 엉망이 되자 보드카에 약물을 과다 복용하여 쇼크를 일으키게 된다. 쓰러져 있는 알민을 발견한 로맹은 자신을 쓰레기로 만든 알민이 이대로 죽게 내버려 된다면 모든 것을 되돌려 놓을 수 있고 아들 테오의 양육원을 되찾을 수 있다는 유혹에 빠진다.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가려는 로맹에게 플로라가 갑작스럽게 등장하여 알민을 구할 것을 요구한다. 로맹은 알민을 구하기를 거부하지만 플로라의 집요한 요구에 만일 알민을 구하게 된다면 캐리를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플로라의 픽션 세계에서로 돌아가 플로라는 팡틴이 고통 속에서 위대한 작품을 만들 것이라는 기대로 자신의 딸을 납치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팡틴을 고문하며 어서 캐리를 숨겨둔 곳을 밝히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팡틴의 입에서 나온 진실은 이미 6개월 전에 캐리가 7층 아파트에서 숨바꼭질을 하다가 낙상하여 죽었음을 알린다. 너무나 큰 충격에 빠졌던 플로라는 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캐리가 어딘가에 납치되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렇게 로맹이 자신의 상황을 적용한 플로라가 나오는 소설을 구상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후의 이야기는 또 다른 반전이 펼쳐진다. 11년 후의 시간이 흘러 로맹의 아들 테오는 청년으로 성장했고 로맹은 갑작스럽게 심장 발작을 일으키며 쓰러지고 로맹의 숨겨진 이야기가 드러난다. 과연 로맹과 팡틴의 비밀은 무엇일까?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글쓰기에 대해 말하길 ‘아주 특별한 삶의 방식’이라고 했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는 한술 더 떠 ‘소설은 쾌감을 맛보기 위해 시작해 자신의 악습을 중심으로 삶을 재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98)”

“삶으로 돌아오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한층 더 열정적으로 삶을 받아들이도록 돕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책들은 과연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헨리 밀러(294)”

“머릿속에서 플라톤의 동굴 우화가 떠올랐다.
‘동굴에 오래도록 갇혀 있어 왜곡된 관념의 포로가 된 인간은 촛불을 켰을 때 동굴 벽에 그려지는 그림자를 진실이라고 믿는다.’
플라톤이 묘사한 인간들, 즉 어두운 동굴 깊숙한 곳에 갇혀 사는 포로들처럼 나 역시 내 아파트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기만적인 햇빛이 집 안 곳곳에 그려놓은 그림자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전체가 아닌 일부, 편린, 메아리. 
그래, 그거야. 나는 눈 뜬 장님이었어.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의도적으로 나를 집 안에 가두고 왜곡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도록 통제하고 있는 거야. 현실은 내가 늘 바라보고 있는 그림자와는 분명 다른데, 나는 지금껏 허상을 진실이라고 믿고 있었던 거야. 이제부터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허상의 베일을 벗기고 진실을 바라보아야만 해.(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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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 띵 시리즈 6
고수리 지음 / 세미콜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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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수리 작가의 [고등어: 엄마를 생각하면 마음이 바다처럼 짰다]를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6번째 책이다. 먹는 것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20대 초반에는 이런 생각까지 했었다. 어서 빨리 과학이 발달해서 알약 하나만 먹어도 살 수 있는 시대가 오면 좋겠다고 말이다. 그때에는 아마도 억지로 많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줘야하는 경우가 많아서 스트레스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런 말도 안되는 기대를 했었는지 모르겠다. 과연 살기 위해서 먹는건지, 먹기 위해서 사는건지 헷갈릴 때가 있는데 나이가 들어갈수록 그런 우선순위는 중요치 않고 사람에게 사람이 필요한 것처럼 먹는 것은 우리 삶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우선순위에 들어간다는 생각이 든다.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차원의 문제만이 아니라 특정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은 우리 내면의 깊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저자의 집밥에 대한 그리움 예찬은 어린 시절 할머니가 해주셨던 고등이 구이에서 시작하여 입덧으로 힘들어 할 때 엄마가 해준 시금치된장국으로 인해 몇 달 만에 밥다운 밥을 먹었다는 고백에서 절정에 달한다. 남자와 여자를 이분법적으로 구별하여 단정지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 할머니에서 엄마 딸에게 이르기까지의 집밥에 대한 애정과 그리움을 접하다보면 여성이 가진 엄마로서의 정체성은 어쩌면 단순히 9개월 동안 태어날 아기를 배는 것만으로 국한된 것이 아닌 태어난 후에도 젖을 먹이며 아기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를 정성스레 넣어주며 자라난 것이 아닐까 싶다. 젖을 먹는 아기를 보며 엄마들은 아마도 제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피붙이가 쪽쪽 젖을 빠는 모습에 삶의 기운을 얻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남자들은 어쩔 수 없이 덜 성장할 수 밖에 없는 한계성을 지닌 것인지, 때로는 밥을 때려 먹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음식에 대한 폭력을 행사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타고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길은 어쩌면 스스로 밥을 지어 먹으며 누군가를 먹이기 위해 소비된 시간과 정성을 헤아려보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렇게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비용을 지불해서가 아니라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는 누군가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음을. 그렇기 때문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어야할 의무가 있음을 깨달을 때야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후로도 나는 자주 부엌에 서서 밥을 먹었다. 아이 둘 홀로 육아하며 나까지 챙기기에는 시간과 체력이 버거웠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번씩은 나를 위해 따뜻한 국을 끓여보고 고등어도 구워보았다. 집이 좁고 혼자 밥 먹는다고 불평하기에, 누군가 나의 수고를 알아주길 바라기에, 누가 해주는 밥이 그립다고 슬퍼하기에, 먹고사는 일상은 하루하루가 반복. 지겹고 지루했다. 먹고 돌아서면 또 배고프고. 밥을 지어 먹이고 먹으며 다시 힘을 내야 했다. 놀랍게도 살아가는 일의 절반은 밥을 지어 먹는 일이라는 걸 아이들 키우면서 깨달았다. 그러니 제대로 힘내서 살아가려면 나 스스로를 잘 챙기는 수밖에.(91)”

“겨우 한 끼 만들어 먹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한지. 누군가를 위해 요리하고 같이 나눠 먹는 일이 얼마나 행복한지. 따뜻한 집밥 한 끼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보살피는 사랑이더라. 엄마. 나는 비로소 나 자신도,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된 것 같아. 
아이들 챙긴다고 서서 혼자 밥 먹는 나에게 화를 낸 엄마의 마음, 고향에 내려가면 늦잠 자는 나를 깨우지 않는 엄마의 마음, 엄마 있을 때만이라도 좀 쉬라며 부엌엔 오지도 못하게 등 떠미는 엄마의 마음, 새벽 어시장에 나가 귀하고 신선한 것들 양손 가득 사 오는 엄마의 마음, 집에 돌아가는 나에게 꽁꽁싸맨 보따리를 쥐여주는 엄마의 마음... 엄마가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다는 걸 알아. 그러니 엄마, 나도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키울게. 그리고 나를 지킬게. 밥 잘 챙겨 먹고 든든한 밥심으로 잘 살아볼 거야.(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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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 - 소유의 문법
최윤 외 지음 / 생각정거장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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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 문학상 수상작품집 2020]을 읽었다. 대상 수상작으로 최윤 [소유의 문법]이 우수작품상으로 김금희 [기괴의 탄생], 박민정 [신세이다이 가옥], 박상영 [동경 너머 하와이], 신주희 [햄의 기원], 최진영 [유진]이 실려 있고, 기수상작가 자선작으로 장은진 [가벼운 점심]이 수록되어 있다. 여느 문학상 작품집 보다 한 편, 한 편이 가진 독특한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힘을 가진 훌륭한 작품들이었다. 특히 이미 작년에 대상 수상으로 자선작이 수록된 장은진 작가의 [가벼운 점심]은 항상 부정적인 시선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던 아버지의 외도를 이해하게 된 아들의 10년을 담아내 적지 않은 여운을 남겼다. 

누군가 그랬다. 하늘이 더 가까운 곳에 살게 되면 날씨에 따라 더욱 기분이 좌우되는 것 같다고.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칠흙같은 어둠과 커다란 통 유리창으로 보이는 흔들리는 억새들의 춤사위를 보면서 자연이 가진 치유의 힘과 무한함에 쉼없이 감탄하다가도 어느새 여지없이 홀로 그 광경을 바라봐야만 하는 현실에 울컥 외로움이 밀쳐 올라오곤 한다. 어차피 함께 있을 때에도 동일한 시간을 보냈음에도 모두가 떠나버린 끝자락이 남긴 을씨년스러움은 비단 흐린 날의 기운만은 아닌듯 싶다. [소유의 문법]에서 자신을 잘 알지 못하는 은사가 어떻게 알게되었는지 자폐증을 앓고 있는 딸과 지낼 수 있도록 산중의 집을 맡기게 된다. 갑작스럽게 고성을 지르는 딸 동아의 증세는 산중의 집에 살면서 조금씩 나아지는듯 하고 동아의 아빠는 시간이 지나며 산중 마을 사람들과 교류를 하게 되고, 마을 사람들은 은사를 몰아내기 위해 은사의 집을 거주하고 있는 아마도 동아의 아빠처럼 은사와 지인이었을 P의 소유권으로 이전시키려는 무모한 시도를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결국 마을 사람들의 이기적으로 무모한 시도는 엄청난 폭우와 산사태로 무마되어버리지만, 아빠를 무사히 폭우 속에서 살려낸 동아의 고성은 아마도 우리가 결코 소유할 수 없는 것을 끊임없이 욕구하는 집착에 대한 호소였을지 모른다. 

[가벼운 점심]에서 아버지는 10년 만에 할아버지의 장례 때문에 고국에 돌아오게 된다. 아들은 왜 그렇게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버린 것이 아닌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것인지 알지 못한 채 어느 덧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애인과 결혼을 앞둔 상태이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의 장례식에서 홀로 3일간 울음을 참지 못하는 역할을 맡은 것처럼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않은 채 우는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가는 아버지를 배웅하며 아들은 아버지와 햄버거 집에서 마지막 정찬을 하게 된다. 고기를 잘 소화하지 못해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던 아버지가 아무렇지 않은 듯 햄버거를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아들은 아버지가 갑작스럽게 떠난 이유를 묻게 된다.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기 때문에, 어머니를 사랑하지 않는 20년을 버티다 결국은 그렇게 떠날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를 10년 전이라면 아마도 이해할 수 없었을 테지만, 이렇듯 가벼운 점심을 먹으며 어느덧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아들은 조심스럽게 아버지의 생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직 뚜렷한 형태를 갖추지 않은 아기는, 커다란 점의 형태로 흑회색 부채꼴 안에 떠 있었다. 아기는 작은 잠수함 혹은우주 캡슐 안에 담긴 것처럼 보였다. 아기를 감싸고 있는 어두운 바탕은 거칠게 폭풍우 치는 바다 같기도 하고, 신비한 우주의 어딘가를 찍은 사진 같기도 했다. 어쩌면 저 작은 ‘한 점’에게 그곳은 망망한 바다이기도 우주이기도 할 것이다. 흑회색의 거친 질감 때문인지 처음 윤주가 사진을 보여주었을 때 아기가 몹시 외로워 보인다고 느꼈다. 아무도 없고, 아무도 다가갈 수 없는 어두운 곳에 갇혀 혼자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지내는 ‘한 점’ 사람의 외로움. 사람은 시작부터가 외롭구나. 절대 고독과 암흑 속에서 살아가는 거구나. 그러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고 윤주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래야만날 수 있어, 라고 말해 주었다. 윤주의 말대로 녀석이 그걸 견디며 자라는 중이란 생각이 들었을 때는 눈물이 웃음으로 바뀌었다. 녀석은 거친 바다와 우주를 제 영역으로 만들어 가며 나와의 거리를 조금씩 좁히고 있는 것이었다. 모두가 그렇게 생겨나는 것이고, 그렇게 생겨났던 것이다.(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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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뜨는 나라의 공장 무라카미 하루키 에세이 걸작선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문학동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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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해 뜨는 나라의 공장]을 읽었다. 벌써 30여년 전에 쓰여진 내용이기도 하거니와 각종 공장 견학에 대한 내용이다보니 지금과는 참 많은 것이 달라졌구나라는 생각과 더불어 일본이 이 당시에는 우리나라보다 여러 모로 발전해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도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많은지 모르겠지만 일본 여행 중에 맥주 공장 견학 프로그램이 많이 들어가 있는 것 같다. 그래봤자 어차피 마지막에 가서 갓 나온 시원한 맥주 한잔을 마시는 걸로 귀결되지만 말이다. 아일랜드 더블린을 갔을 때에는 기네스 팩토리에서 검은 맥주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다. 입장료가 생각보다 비쌌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래도 일본에서의 이해할 수 없는 일본어보다 영어로 쓰여진 기네스 팩토리가 더 인상적이었다. 기네스 맥주는 마지막에 맥주잔에 쌓이는 하얀 크림이 압권인데 견학을 끝내고 마지막 맥주바에서는 생맥주 기계로 맥주를 따르는 방법을 실습해 본다. 한명씩 자신이 마실 잔을 가지고 생맥주 기계에 여느 방법처럼 앞으로 당겨 4분의 3지점까지 따르고 잔을 가만히 나둔다. 시간이 조금 흐른 후에 기계의 레버를 반대로 누르면 하얀 거품 크림만 나와 흑맥주 위를 눈쌓인 것처럼 예쁘게 덮어버린다. 내가 만든 기네스 생맥이라고 하니 뭔가 재미있고 기특하게 여겨져 얼굴이 벌개짐도 무시하고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킨 기억이 난다. 기네스 맥주는 다른 유럽지역은 물론이고 더블린을 제외한 다른 도시에서 마시는 것과 더블린에서 마시는 맛의 차이가 상당히 크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철분을 꽤 많이 함유해서 임산부도 마실 수 있다고 하는데 그건 서양인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닐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기네스 맥주는 생맥으로는 누구나 쉽게 하얀 크림 거품을 만들 수 있지만 문제는 캔으로 포장하여 판매할 때 생겨났다. 다른 맥주는 캔으로 포장해서 판매해도 큰 차이가 없었지만 기네스는 크림 거품이 생명이기에 일반 캔 포장으로는 그 거품이 생겨나지 않았다. 수차례의 실패 이후 기네스 생맥주는 캔 안에 질소가 들어간 구슬을 넣어 캔을 딱 하고 여는 순간 구슬에서 질소가 터져나와 생맥주때와 마찬가지로 크림 거품이 생성되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신의 한 수 인셈이다. 

하루키와 미즈마루 동행은 1986년 일본의 여러 공장들을 견학한 후의 이야기를 전한다. 인체모형을 만드는 공장, 마치 신혼부부를 양산해내는 공장같은 결혼식장(일본의 결혼식 문화는 우리나라보다 더 허례허식이 심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요식행사가 많이 들어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우개 공장, 경제동물이라고 표현한 소를 증식하는 공장(아마도 지금처럼 동물권이 주장되는 시기라면 이런 견학은 좀처럼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았을까 싶다. 지금 환경오염 및 동물 학대로 심각히 문제가 되는 것 중의 하나라 공장식 축산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일본도 이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긴 그렇다고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장식 축산이 줄어들거나 규제를 받는 것으로 보이지도 않기에 이것은 전세계적으로 큰 문제로 지속될 것이지 않을까 싶다.), 콤데가르송이라는 일본 옷 상표 공장, 하이테크 CD 공장(콤팩트 디스크가 나왔을 때에는 그야말로 혁명과도 같은 반응이었고, 뒤 이어 저장이 가능한 CD는 여러모로 쓸모가 있어 좋았다. 그런데 이제는 그마저도 별로 상용화되지 않고 가볍고 작은 USB저장 장치나 아예 클라우드로 변모되어가니 앞으로는 또 어떤 변화가 다가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아무튼 본문에서 커다란 LP판을 사용하던 사람들인 손바닥만해진 CD를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묻는다는 내용에서는 정말 옛날 얘기를 읽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가발을 만드는 아데랑스 공장(가발은 아마도 전 인류가 대머리에 대해 편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날이 올때까지 지속될 사업이 아닐까 싶다.)을 방문하여 이것 저것 살펴보며 공정에 대한 묘사를 전해준다. 하루키의 생동감 넘치는 묘사와 더불어 미즈마루의 장난끼가 가득 담긴 삽화들을 보며 혼자 키득키득 웃게 만드는 부분이 많았다. 

“일종의 공장인 결혼식장, 혹은 ‘결혼식장’이란 이름의 공장에서 사용하는 원료는 다름아닌 신랑 신부로 불리는 한 쌍의 남녀이며, 그 기계적 추진력은 전문적 노하우와 숙달된 서비스, 주된 부가가치는 감동(좀더 소극적으로 표현하면 정서의 고양), 그 수요를 뒷받침하는 것은 세상 일반의 ‘관례, 상식, 습관’이다. 그런식으로 결혼식장에서는 오늘도 흉일만 아니면 한 회 또 한 회, ‘의식’이라는 이름의 휘황찬란한 상품이 생산되고 있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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