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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11월
평점 :
무라카미 하루키의 [일인칭 단수]를 읽었다. 하루키의 신간을 동네서점 버전으로 어디서 살 수 있을까 찾던 중에 인스타그램을 서핑하다가 자동으로 뜨는 광고그램에 ‘카페 동경 앤 책방’에 입고 되었다는 포스팅을 보고 후다닥 달려갔다. 들어가서 책이 진열되어 있는 맨 첫 공간에 하루키의 신간이 쌓여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진저라떼(무지 좋아하지만 메뉴에 있는 카페가 극히 드문데)를 주문하며 책도 함께 결제했다. 표지는 역시 동네서점 에디션이 훨씬 멋지다. 도서정가제가 시행된 후 이렇게 다양한 작은 서점이 생겨나고 출판사에서는 인터넷이나 대형서점이 아닌 작은 동네 서점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매력적인 표지를 디자인하여 구매력을 상승시키는 다양한 시도가 썩 괜찮은 것 같다. 어찌되었든 읽고 난 후에 컬렉션으로 진열하기에도 괜찮으니까 말이다.
조금은 쌀쌀한 난방이 시원치 않은 카페 동경 앤 책방에서 갓 나온 신간을 알싸한 생강의 맛을 우유 거품의 부드러움으로 감싸주는 진저라떼를 호호 불고 마시며 첫 단편을 읽었다. 역시나 하루키는 에세이보다는 천상 소설이다. 에세이를 읽다보면 가끔은 하루키가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만큼 독특한 시선을 느낄 때가 간혹 있는데, 소설은 역시나 하루키다 라는 ‘인정’을 할 수 밖에 없다. 이번 소설집에는 ‘돌베개에’, ‘크림’, ‘찰리 파커 플레이즈 보사노바’, ‘위드 더 비틀스 With the Beatles’, ‘야쿠르트 스왈로스 시집’, ‘사육제(Carnaval)’,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일인칭 단수’ 이렇게 8편의 단편 소설이 실려 있다. 8개의 단편 모두 화자는 ‘나’로 하루키의 자전적인 이야기처럼 비춰진다. 그리고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지만 간혹 ‘나’의 직업이 작가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는 소설이면서도 에세이 같은 느낌도 든다.
하루키의 작품을 읽고 있다보면 재즈와 클래식에 대한 이야기가 상당히 많이 나온다. 소설의 배경으로도 여러 곡들이 등장하기에 하루키처럼 재즈와 클래식에 조예가 깊다면 아마 그의 작품을 이해하고 들어가기에 훨씬 더 수월하리라 생각된다. 나는 재즈에도 클래식에도 그리 큰 관심이 없었기에 하루키의 작품에 나오는 곡들은 실제로 들어보지 않는다면 거의 모를 것이라는 게 매번 아쉬웠다. 이번 단편집에서 알토색스폰을 부르는 찰리 파커에 대한 판타지 같은 이야기와 슈만의 사육제를 모티브로 한 내용이 참으로 신선했다.
무엇보다도 하루키는 팝송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비틀스에 대한 기억으로 풀어낸 ‘위드 더 비틀스’의 내용은 하루키만의 소설이 갖고 있는 특징을 가장 잘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이 단편에서 하루키는 오래전 사귀었던 여학생과의 일화를 전해준다. 비틀스의 음반을 가슴에 두 팔로 꼭 안고 걸어가는 다시는 마주치지 못한 어떤 소녀에 대한 기억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비틀스가 엄청난 인기를 누렸던 해에 하루키는 처음으로 여학생과 교제를 시작했고 우연히 그 소녀를 데리러 집에 갔다가 그녀의 오빠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그녀의 오빠는 유전적인 영향으로 갑작스럽게 몇 시간의 기억이 사라져 버리는 증세를 고백하며 ‘나’와의 어색한 대화를 이어간다. 그녀의 오빠는 ‘나’에게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톱니바퀴’의 일부를 낭독해줄 것을 부탁한다. 십팔 년이 지난 후 우연히 ‘나’는 그녀의 오빠와 다시 만나게 된다. 그리고 충격적인 옛 여자친구의 죽음을 전해 듣게 된다. 소설의 말미에 이런 질문이 나온다. <질문: 두 번에 걸친 두 사람의 만남과 대화는 그들 인생의 어떤 요소를 상징적으로 시시하는가?(120)>
“우리 인생에는 가끔 그런 일이 일어나. 설명이 안 되고 이치에도 맞지 않는, 그렇지만 마음만은 지독히 흐트러지는 사건이. 그런 때는 아무 생각 말고, 고민도 하지 말고, 그저 눈을 감고 지나가게 두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커다란 파도 밑을 빠져나갈 때처럼.(48-49)”
“우린 누구나 많건 적건 가면을 쓰고 살아가. 가면을 전혀 쓰지 않고 이 치열한 세상을 살아가기란 도저히 불가능하니까. 악령의 가면 밑에는 천사의 민낯이 있고, 천사의 가면 밑에는 악령의 민낯이 있어. 어느 한쪽만 있을 수는 없어. 그게 우리야. 그게 카니발이고. 그리고 슈만은 사람들의 그런 여러 얼굴을 동시에 볼 줄 알았어-가면과 민낯 양쪽을. 왜냐하면 스스로 영혼을 깊이 분열시킨 인간이었으니까. 가면과 민낯의 숨막히는 틈새에서 살던 사람이니까.(169)”
“그것들은 사사로운 내 인생에서 일어난 한 쌍의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는다. 지금 와서 보면 약간 길을 돌아간 정도의 에피소드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 해도 내 인생은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기억들은 어느 날, 아마도 멀고 먼 통로를 지나, 내가 있는 곳을 찾아온다. 그리고 내 마음을 신기할 정도로 강하게 뒤흔든다. 숲의 나뭇잎을 휘감아올리고, 억새밭을 한꺼번에 눕혀버리고, 집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지나가는 가을 끄트머리의 밤바람처럼.(181)”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 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그것 또한 우리에게 귀중한 열원이 됩니다. 만약 그런 열원이 없다면 사람의 마음은 풀 한 포기 없는 혹한의 황야가 되고 말겠지요. 그 대지에는 온종일 해가 비치지 않고, 안녕이라는 풀꽃도, 희망이라는 수목도 자라지 않겠지요.(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