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
남형도 지음 / 김영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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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형도 기자의 [제가 한번 해보았습니다. 남기자의 체헐리즘]을 읽었다. ‘아무튼, 출근’이라는 프로그램에 나온 남형도 기자의 일상을 보게 되었다. 기사를 쓰기 위해 실제로 기사 대상의 입장이 되어 하루를 보내기에 ‘체헐리즘’이라는 합성어가 딱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방송에 나온 내용은 목줄에 메인 개의 하루를 살아보는 것이었다. 실제로 1미터 밖에 안되는 목줄을 발에 채우고 영하의 날씨에 개집 근처에서 하루를 보내는 내용이었다. 누군가는 아니 뭘 그렇게까지 하면서 기사를 써야 하나라는 생각도, 사람도 아닌 동물의 입장에서 바라본다는 것 자체에 무슨 의미가 있냐는 생각도 들지 모르겠다. 하지만 저자가 목줄을 발에 걸고 보낸 하루에 대한 감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시사했다. 누군가에게는 미천해보이고 심지어 손쉬운 놀이대상이나 처분이 가능한 것으로만 여겨지는 개와 같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 대한 존중의 마음과 무언가에 묶여 있는 상황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진실하게 보여주었다. 


머니투데이에 연재되는 ‘남기자의 체헐리즘’은 이렇게 단행본으로 출간되었고, 앞으로도 이어지겠지만 그동안 그가 체험했던 내용들을 어서 빨리 읽어보고 싶었다. 책에 소개된 내용들은 우리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특정한 대상에 대한 내용들도 있었고, 아니 어떻게 이런 체험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신박하고 참신한 아이디어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저자가 얼마나 진심으로 체험 대상들의 삶을 살아보려고 노력하는지 그가  전해주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특히나 저자가 관심을 갖고 주의깊게 선택한 대상들은 대부분 사회적 약자가 아닌가 싶다. 우리가 거리를 거닐다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쉽게 마주치는 사회적 약자들을 바라보면 가슴 한 구석이 쓰리게 느껴지며 연민의 마음이 들다가도 쉬이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곤 한다. 마음이 불편하고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고 내가 어떻게 해 줄 수 있는게 없지 않느냐고 스스로를 합리화하곤 했다. 


저자의 글 중에 ‘폐지 165킬로그램 주워 1만 원 벌었다’라는 내용을 보고 고구마 한 덩어리를 생으로 삼킨 것처럼 가슴이 먹먹해졌다. 운전을 하다보면 리어카에 산처럼 박스를 싣고 좁은 도로를 거북이처럼 끌고 가는 연로한 분들을 가끔 마주치게 된다. 어서 빨리 저 신호를 받아서 가야되는데, 운전대만 잡으면 급변하는 신경질적인 태도로 힘겹게 리어카를 끌고가는 분들을 째려보기도 했었다. 가끔은 아이고 저러다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란 걱정도, 택배를 받을 때마다 박스를 뜯으며 아무렇게나 분리수거함에 내던졌던 기억들도 떠올랐다. 그런데 남기자가 소개한 최진철 씨는 하루종일 박스를 모아 팔아도 만원 남짓 벌게 된다고 한다. 그렇게 폐지를 모아 팔게 되는 이들은 어쩌다가 그런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궁금해지기 마련인데, 그가 무슨 잘못을 해서 아니면 억세게 운이 나빠서도 아니었다. 오래전 잘나가던 중식 주방장이었던 이가 일하다 쓰러저 병을 얻게 되고 몸에 장애가 생겨 하던 일을 못하게 되니 이렇게라도 일을 하여 자식들을 키우게 된 것이다. 저자가 폐지 수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허기가 져서 분식집 메뉴판을 보다가 떡볶이 2인분에 김밥 한 줄이면 최진철 씨가 하루종일 번 돈이 사라질 것이라고. “그리고 이런 물음이 잔상처럼 남았다. 진정 괜찮은 걸까, 이들의 삶이 말이다.(146)”


읽는 내내 잔상처럼 아른거리는 폐지 줍는 이들에 대한 내용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는데, 에필로그를 읽으며 나 또한 큰 위로를 받게 되었다. 


“그해 겨울, 토요일 새벽에 눈이 번쩍 떠졌다.

시계를 보니 새벽 6시 15분이었다.

눈을 비비고 졸음을 애써 쫓았다.

그리고 내 기사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폐지를 함께 주웠던 최진철 씨 기사였다. 

치아 상태가 많이 안 좋아 식사도 잘 못 하는 

그의 모습이 두고두고 마음에 걸렸다. 

가난해도 밥은 먹어야 살지 않겠는가.

매일 1만 원 벌이라 치과 치료는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댓글로 치과 치료를 도와줄 사람을 찾았다.

며칠에 걸쳐 메일 200여 통이 쏟아졌다.

그를 돕고 싶다고 했다.

편의점 야간 알바라 넉넉지 않지만 보태겠다고,

고등학생이라 용돈은 적지만 나누겠다고, 

기초생활수급자라 그 힘듦을 누구보다 잘 안다면서, 

며칠 뒤 최진철 씨에게 전화가 왔다.

그는 울고 있었다. 

계좌에 모인 금액이 700만 원이라고 했다.

2년간 매일 폐지를 주워야 모을 수 있는 돈이었다.

치과 치료를 무료로 해주겠다는 의사도 있었다.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는 그 말만 반복하며, 

수화기 너머에서 꺽꺽 울었다.

별로 한 게 없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뜨거운 게 목구멍에서 눈으로 차올랐다.


우리 삶이 그런 것 같다. 

완벽하지 않아도 

조금은 서툴더라도

온기 어린 공감과 작은 위로 덕에 

툭툭 털고 일어나 다시 살아나게 된다.

다가올 또 다른 하루가 고단할지라도 

다시 잘 살고 싶게 만드는 것도 

그 작은 것들의 힘이다.(333-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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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결혼생활
임경선 지음 / 토스트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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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경선 작가의 [평범한 결혼생활]을 읽었다. 임경선 작가만의 색깔과 매력이 듬뿍 묻어나는 글로 저자의 결혼생활을 담백하게 그려내고 있다. 연애기간이 무척이나 짧았던 것에 반해 벌써 20년이나 지나버린 결혼생활을 그린 표현들은 비록 저자 자신이 무척이나 시니컬하고 언제든 남편을 떠날 수 있을 것처럼 쿨하게 말하지만 남편에 대한 깊은 사랑과 신뢰가 곳곳에 심겨 있어 이 글을 읽는 누구라도 질투를 불러일으키지 않을까 싶다. 


저자가 말했듯이 이 세상에 연애와 결혼에 대한 책들은 넘쳐날 정도로 많지만, 그 어느 커플도 다른 이들의 조언에 끌려다닐 필요성을 못 느낄 정도로 그들의 사랑에 대한 원대한 자신감을 뿜뿜 내뿜고 있다. 하지만 살아본 사람들이 왜들 그렇게 다양한 각도와 시선으로 결혼생활에 대한 조언들을 내뱉고 있는지 역시나 살아봐야 알게 된다고 저자 또한 말하고 있다. 특히나 시대의 흐름과 더불어 다양한 형태로 변화된 연인관계와 결혼생활에 대한 적절한 비교는 학문적 성찰이나 논쟁보다도 훨씬 더 강력한 공감대를 형성시켜준다. 우리가 왜 이렇게 자신과 다른 사람을 만나 한평생 살아가는 문화가 형성되었는지,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열려진 만남을 추구하더라도 결정적인 순간에 특정한 누군가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은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그렇게 나와는 다른 또 다른 개별적 주체와의 만남은 서서히 나를 성장시키고 시간이 흐른 후 지난 시간들을 돌아봤을 때 남겨진 나의 발자취들은 어느 순간 내 삶을 너무나도 철저하게 평가내리고 있다. 그 순간 부끄럽지 않을 수 있도록, 그리고 그 뒤안길을 바라본 이후 더욱 열정적으로 내 삶의 주인일수 있도록 지금 자신이 만나는 사람과의 시간에 충실하고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저자가 안내해주는 것만 같다. 


작가와 남편 스스로가 어느 누가 자신들의 결혼생활을 보고 배움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며 겸손함을 내비치지만, 임경선 작가가 보여준 너무나도 솔직하다못해 이런 것 까지 얘기해도 괜찮을까 싶은 현실적인 이야기들은 오히려 많은 순간 자기 자신조차 속이려했던 시간들은 을 반성하게 만든다. 그렇기에 책의 제목인 [평범한 결혼생활]은 아마도 모든 남녀가 꿈꾸는 가장 이상적인 결혼생활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 결혼생활이란 무엇보다 '나와 안 맞는 사람과 사는 일'이다. 생활 패턴, 식성, 취향, 습관과 버릇, 더위와 추위에 대한 민감한 정도, 여행 방식, 하물며 성적 기호에 이르기까지 '어쩌면 이렇게 나와 다를 수 있지?'를 발견하는 나날이었다. 나중에 이 질문은 점차 '이토록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어째서 이렇게 오래 살 수가 있지?'로 변해갔지만.(8)"


"로맨틱한 사랑이라는 게 그렇다. 애정을 느끼는 상대와 함께 맛있는 음식을 먹거나, 마주 보며 부드럽게 대화를 나누거나, 재미있는 영화를 보러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즐거운 것이다. 하지만 그 사람에게 푹 빠진 열정의 시절에는 맛있는 것을 먹다가도, 속닥속닥 이야기를 하다가도, 영화를 보다가도, 사실은 한시바삐 침대로 끌고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여타 사사롭게 흐뭇하고 즐거운일들은 그저 침대에서 알몸이 되는 순간을 조금이라도 늦추면서 상대를 달뜨게 만드는 '전희'에 불과하다. 대게 처음엔 아닌 척, 같이 잠을 자는 것 외의 모든 것들을 함께해보면서 분위기를 살피다가, 불꽃이 튀면 같이 잠을 자는 것이 알파와 오메가인 밀월의 시절을 보내게 된다. 그러다가 그 종점을 찍게 되면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간다. 뜨겁던 열정은 또다시 함께 '다른 것들'을 즐기는 일에 두루 배분된다. 연애할 당시엔 그 과정에서 이별한 가능성도 높아진다.(76-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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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 - 패션 컨설턴트가 30년 동안 들여다본 이탈리아의 속살
장명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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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명숙 님의 [바다에서는 베르사체를 입고 도시에서는 아르마니를 입는다]를 읽었다. 얼마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밀라논나’라는 유튜버로 나온 저자의 이야기를 듣다가 10여년 전에 나온 책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책이 처음 출판된 당시 나 또한 이탈리아에서 지내고 있었기에, 그 때 읽었더라면 하는 아쉬움과 더불어 잊고 있었던 그 당시의 정황들이 떠올라 지금도 어디선가 나와 동시대의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고군분투하며 삶의 족적을 차근차근 남기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30년 동안, 이제는 어느덧 40년이 되었겠지만 저자가 이탈리아를 오가며 유명 백화점의 바이어이자 무대 의상 디자이너로서의 커리어를 쌓기까지의 과정을 뽐내기 보다는 친근한 이모가 이탈리아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듯이 정감있게 과거 유럽 사회를 제패했던 이탈리아 사람들의 역시와 문화를 들려준다. 저자의 글을 읽으며 새삼스럽게 우리나라가 정말로 급발진하듯이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저자가 유학을 떠났던 1970년대만 하더라도 유학을 가기 위해서는 시험을 보고 국가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다니, 그것도 반공교육까지 정말 지금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간난 아기를 떼어 놓고 원하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 먼 나라 생소한 곳으로 떠나야 했을 신혼 부부의 모습이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저자가 책에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유학 초창기에 느꼈을 설움과 그리움은 말해 무엇하겠는가. 

책 전체의 분위기가 마치 이탈리아 어느 도시의 축제 현장을 옮겨놓은 것처럼 생동감이 넘치고 당장이라도 밀라노의 어느 바에서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은 착각마저 불러일으킨다. 저자가 소개하는 이름만 대면 옷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법한 유명 상표들 또한 대부분 디자이너의 이름을 따서 생겨났고 그 디자이너의 숨겨진 이야기들을 간간히 전해주는 것 또한 이탈리아의 새로운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다. 이탈리아에서 남자가 스키니진을 입어도 아무렇지도 않고 슈트 마저 몸에 딱 붙게 입어 맵시를 드러내고자 했다면, 영국을 여행할 때 현지 유학생에게 들은 얘기로는 영국에서는 남자들이 옷에 신경을 별로 쓰지 않는데 가장 큰 이유가 이탈리아에서처럼 몸에 붙는 옷을 입게 되면 대부분 동성애자로 보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어쩐지 이제는 그런 말도 다 옛말이 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행의 흐름은 점점 빨라지고 다양해지고 있다. 

그럼에도 저자의 글을 읽으며 말이 통하지 않고 문화적 차이가 심할지라도 세상 어디든지 다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하다는 것이다. 먹는 음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를 뿐 사람들은 모두 정에 굶주려 하고 친구를 만들기를 원하며 사랑할 준비가 되어 있다. 단지 내가 마음을 열기만 한다면 말이다. 

“언제부턴가 우리는 서양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패션 하우스의 제품에 ‘명품’이라는 단어를 붙여 부르고 있다. 자기 이름이 있는 제품은 다 명품이련만, 이젠 그 말에 특별한 뜻이 뒤따른다. 우선 비싼 제품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을 소유한 사람의 사회적인 위치와 안목을 드러내는 고급품이라는 것. 이것이 명품에 대한 공감대인 것 같다. 개인적으로 정의를 내리자면, 이러한 인식 외에 사회적으로도 공헌한, 나아가 의생활 역사의 변천에 기여한 제품이라야 진정한 의미의 명품이 아닐까 한다.(38)”

“돈이 있으나 없으나 똑같다는 말은, 아무리 좋은 옷이나 보석으로 치장을 해도 젊음이 사라졌으니 빛 또한 사라졌다는 얘기 아닐까? 하지만 사람에게서 빛을 발하는 건 좋은 옷이나 보석이 아니다. 어떻게 살아왔고 어떻게 살고 있는지, 즉 삶의 자세에서 빛이 우러난다. 자식의 양육과 출가 등 인생의 과제를 마친 후, 다른 이들을 위해 돈과 시간을 쓰면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분들. 그분들을 보며 멋있게 늙어가는 법을 배운다.(2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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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김혼비.박태하 지음 / 민음사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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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혼비, 박태하 작가의 [전국축제자랑]을 읽었다. 부제는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이다. 전국노래자랑을 연상시키는 제목을 보고 우리나라에 이렇게 축제가 많다고? 라는 호기심이 생겼다. 열두 곳의 축제를 소개하고 있는데, ‘충남 예산 의좋은형제축제’, ‘전남 영암 영암왕인문화축제’, ‘전남 나주 영산포홍어축제’, ‘경남 의령 의병제전’, ‘경남 밀양 밀양아리랑대축제’, ‘충북 음성 음성품바축제’, ‘강원 강릉 강릉단오제’, ‘충북 청주 젓가락페스티벌’, ‘전북 완주 완주와일드푸드축제’, ‘강원 양양 양양연어축제’, ‘전남 보성 벌교꼬막축제’, ‘경남 산청 지리산산청곶감축제’ 등이다. 이렇게 제목만으로도 스펙타클한 축제들이 전국에서 펄쳐졌는데 난 한 군데도 가본 적이 없다니, 대체 뭘 하고 살아온 것인지란 급 자아반성의 시간이 밀려온다. 

여러가지 그럴듯하기도 너무나도 생소하기도 하고 아니 이런 축제는 대체 왜 라는 의문이 저절로 생기는 다양한 축제들을 생동감있게 전해주기 위해서인지 김혼비, 박태하 부부 작가는 감칠맛 넘치는 글재주를 넘치도록 보여주며 혼자서 킥킥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해 주었다. 지역적 특색을 살리는 축제도, 역사적 연관성을 영혼까지 끌어모아 얼토당토 되지도 않는 인연을 만들어낸듯한 축제의 면모도, 쇠퇴되어가는 지방 소도시의 불씨를 되살리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지역 관, 구 관련 축제 진행자들의 애틋하 모습도 대도시의 각박한 삶에 익숙해진 시간들을 돌아보게 만들어준다. 이 모든 전국의 축제들이 각각의 목적 달성을 위해 또는 단 며칠간의 축제로나마 지역민들의 단합과 유희를 위한 시간일지라도, 저자가 말했듯이 사람들이 전혀 신경쓰지 않을 것 같고 전혀 알지도 못하는 곳에서도 묵묵히 지역만의 색깔이 담긴 이야기들을 나누는 시간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김하나 작가의 추천사처럼 난생처음 단오를 쇠고 곶감을 주문해서 먹고 싶게 만든다. 경험해보지 못한 축제임에도 왠지 모르게 묘하고도 아주 오래전에 나의 DNA에 새겨져 있기라도 한 것처럼 을씨연스러운 축제 천막 부스에서 사람들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의 묵묵한 기다림도, 축제의 장에서는 모두가 일가친척이라도 된 것처럼 이것저것 맛보라고 초대하는 이들의 모습도 막연히 그려진다. 그럼에도 연어축제에서 신랄하게 비판했던 모습에 이어지는 산천어축제에 대한 지적은 우리가 그동안 얼마나 순간적인 유희를 위해서 살아있는 것들을 하찮게 대해왔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니까 개막식이라는 이름하에 국민의례를 하고, 시장이나 군수, 도지사, 국회의원을 비롯한 조직위원장청년회장조합장각종유관기관장 이런 장 저런 장 각종 장장장장 등의 소개와 인사말을 긴 시간에 걸쳐 듣고, 우리 축제는 이래서 짱 저래서 짱 각종 짱짱짱짱 등의 자화자찬을 들은 다음, 트로트나 전통 공연 같은 짱자라짜라장짱 축하 무대를 감상하는 일련의 과정이 아예 없다는 말이다.(141)”

“우리가 아는 세계, 아니 상상할 수 있는 세계의 바깥에서 생각보다 수많은 취향과 노력이 질서를 이루어 이 세계를 떠받치고 있다. 우리 또한 누군가들이 아는 세계의 바깥이겠지.(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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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엔딩 (양장)
김려령 외 지음 / 창비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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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엔딩]을 읽었다. 김려령 “언니의 무게”, 배미주 “초보 조사관 분투기”, 이현 “보통의 꿈”, 김중미 “나는 농부 김광수다”, 손원평 “상상 속의 남자”, 구병모 “초원조의 아이에게”, 이희영 “모니터”, 백온유 “서브” 이렇게 8명의 기성 작가들의 후속편 혹은 프리퀼에 해당되는 이야기 모음이다. 작가들의 전작을 읽었다면 더욱 이해가 잘 되고 이야기의 흐름을 금방 따라잡을 수 있다. 마치 전작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실제로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인 것처럼 어디선가 작가들이 그들의 삶을 엿보고 있다가 독자들에게 그들의 새로운 삶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만 같다. 어차피 ‘두 번째 엔딩’이라는 제목으로 모아진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공들도 전작의 소설들과 연관성이 있다하더라도 다 창조된 인물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고 있다보면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곤 한다. 짧은 시간 안에 이야기를 전개해야 하기에 중요한 사건들만 나열되고 극적 긴장감을 야기시키는 대사들이 주를 이루지만 주인공들이 갈등을 사건을 겪는 시간 이외에 그들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아마도 어떤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일상적인 면을 영화와 드라마에 내보낸다면 무척이나 지루하고 도대체 이런 걸 왜 편집하지 않았느냐고 시청자의 입장에서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소설 또한 마찬가지여서 주인공들의 내면 묘사와 정황들이 드라마와 소설보다 더욱 세밀하고 농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하더라도 그들의 모든 일상들을 구구절절이 늘어놓지는 않는다. 그랬다가는 아마 벽돌책 정도가 아니라 수백, 수천권의 전질로도 부족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지난 장편 소설을 읽고 남겨진 여운을 채워주기라도 하듯이 짧은 단편 소설들은 소설 속 주인공들의 숨겨진 일상을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작가들이 창조해 낸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내가 모르는 곳 어딘가에서 나처럼 묵묵히 일상을 살아내고 있지는 않을까란 막연한 상상을 해본다. 


“- 아니, 그런 답 말고... 형, 나 그동안 형한테 한 번도 물은 적 없어. 그럴 용기가 없었거든. 근데 알아야겠어. 알고 싶어. 만약... 만약 그날로 다시 돌아가면 어떻게 할 거야? 

이미 눈물이 차오르는 걸 느끼면서도 나는 고집부리듯이 물었다. 오늘만큼은 끝까지 답을 듣고 싶었다. 그 아이에게 내주지 못한 답을 나도 알아내고 싶었다. 형은 쓰게 웃었다. 

-있잖아, 이미 일어나 버린 일에 만약이란 건 없어. 그건 책임지지 못할 꿈을 꾸는 거나 마찬가지야. 하지만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지. 어떻게 하든 누군가는 아프게 된다고. 

형이 나를 바라봤다. 

-반대로 말하면 누군가는 기쁘게 되는 거야. (184-185)”


우리 삶에 벌어질 수 밖에 없는 불행한 일들이 있다면, 그 불행의 결과로 떠맡아야할 엄청난 삶의 부채를 타인을 대신하여 짊어지고 갈 자신이 있는지? 그러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나의 불행으로 타인이 기뻐할 수 만 있다면 나는 과연 심장이 바라는 용기 있는 선택을 할 수 있을 것인지? 손원평 작가는 침대 위에 누워 몇 마디 말도 하기 힘든 삶을 선택한 형의 모습을 통해 증오와 분노에 가득찬 동생이 결국은 형의 선택으로 살아난 소녀가 누구가의 생명을 살리는 모습을 바라보게 만든다. 우리 삶은 이렇게 돌고 돌아 나와 너에게 연결될 수 밖에 없는 것은 아닌지..


“그의 마음속에는 이시아가, 시와의 마음속에는 벽안인이, 흉터처럼 남아 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가끔씩 오래된 흉터가 비바람에 쑤시거나 꿈틀거릴 때 그것을 어루만지는 공조자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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