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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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김민철 카피라이터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었다. 부제는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이다. 작년에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를 읽고 난 후, 습관적으로 난데 없이 어떤 음식을 먹고 나서 혼잣말로 'OO 맛이 나니까 OO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라는 내뱉곤 했다. 뭔가 재미있기도 하고, 후크송처럼 중독성이 있고. 라임이 딱 들어맞는 느낌도 들고 해서 ㅋㅋ. 최근에 저자의 새로운 에세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검색하다 이번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있다고 답하니, 돌아온 대답은 "정말 작가들은 제목부터 잘 짓는 것 같다'는 말이. 생각해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저자의 직업이 책 제목에서부터 너무나도 잘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모든 기록의 원천이 되는 저장소로 읽다: 인생의 기록, 듣다: 감정의 기록, 찍다: 눈의 기록, 배우다: 몸의 기록. 쓰다: 언어의 기록으로 구분짓어 놓았다. 책의 말미에 "나는 읽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259)"라는 한 문장으로 그녀가 어떻게 카피라이터로서의 삶을 준비해왔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문구를 예로 든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260)" 우리가 기억하고 생생히 떠올리는 추억의 모습들은 아주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마는 물줄기처럼 겨우 손바닥에 남은 한방울에 불과할지 모른다. 


몇년 전까지 책을 읽고 마치 컬렉션을 구성하는 것처럼 작가별로 책장을 꾸며여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냥 책장에 꽂아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짧은 형태의 독후감을 쓰는게 좋겠다고 결심했다. 어느덧 3년 가까이 독후감을 올리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서 어서 빨리 그 느낌들을 정리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읽는 도중에 이 부분은 나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라는 구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다시 한 번 필사하며 되새겨보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회자되었을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고 싶을 때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북스타그램을 열고 그 때 그 시절 그 책을 열독하던 나로 돌아가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한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정말로 맞는 말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마이클 커닝햄, 세월> 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 일상은 스탠드 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 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릿이 아니라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 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말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쨋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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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직숍
레이철 조이스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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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레이철 조이스의 [뮤직숍]을 읽었다. 처음 접하는 영국 작가의 책이었는데, 마치 영화 한 편이 눈앞에 펼쳐진 것처럼 등장 인물의 다음 여정이 너무나도 궁금해 책장을 넘기기를 멈출 수 없었다. 소설의 무대는 영국의 어느 작은 도시의 낙후된 유니트스트리트라는 곳이다. 이름에서도 뭔가 숨겨진 뜻이 새겨져 있듯이 언제 재개발이 될 지 모르고 시위원회로부터 오래된 건물들이 위태롭다는 경고를 받았음에도 유니트스트리트에 사는 이들은 가족보다도 더욱 친말한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비록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다 하더라도 서로의 안위를 염려하며 아주 작은 일도 공유할 수 있는 애정을 갖고 있었다. 이러한 공동체가 형성되기까지 뮤직숍의 사장인 프랭크의 공헌이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었는데, 그에게는 여느 레코드샵의 주인과는 다른 특별한 재능이 있었다. 프랭크의 뮤집숍을 방문한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있었는데, 프랭크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정성스럽게 귀담아 듣고 그들에게 필요한 음악을 적절히 선정해 주었다. 프랭크의 추천 음악을 들은 이들은 하나같이 바로 그들이 찾고 있던 음악임을 인정하게 되고 더욱 더 프랭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한다. 


소설에는 주인공인 프랭크 말고도 개성 넘치는 주변 인물들의 이야기가 소설의 완성도를 더욱 높이게 해준다. 프랭크의 뮤직숍에서 일하는 덤벙대는 청년 키트, 프랭크가 아니었던 어디선가 알콜 중독으로 삶을 마감했을지 모를 아픈 사랑의 기억을 간직한 전직 앤소니 신부, 그리고 프랭크를 짝사랑하지만 언제나 툴툴거리며 삐딱한 척 하며 문신가게를 운영하는 모드 외 여러 인물들에 대한 묘사는 어쩌면 우리가 바라는 이웃집에 사는 사람들과의 삶은 이래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쉼없이 외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프랭크에게 가장 소중하고 이야기의 핵심 인물인 일사 브로우크만은 갑자기 불현듯 별에서 떨어진 여자처럼 프랭크의 뮤직숍 앞에서 기절하게 되고, 프랭크와 일사의 러브스토리가 시작된다. 


여기까지보면 넘치고 차는 러브스토리의 전형적인 전개처럼 여겨지지만 그들이 사랑을 이루어가는 과정은 뭔가 색다르다. 바로 프랭크와 일사의 만남에는 음악이라는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고, 바로 그 장애물이 사랑을 완성시키는 열쇠이기도 했다.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88년도에 우리나라 음반 시장은 가격이 조금 비싼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두 종류였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 이후에 점차 CD가 양산되면서 LP판과 카세트 테이프 모두 사양길을 걷게 되었지만, 지금은 어느덧 CD도 찾아보기 힘들어져 대부분 음원사이트를 통해서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곤 한다. 이제는 어느 장치에 저장을 해서 음악을 듣기 보다는 언제든 원할 때 음악을 선택해서 듣고 대신 사용료를 지불하는 것으로 대체되었다. 근래에 들어서는 레트로라는 복고 문화가 다시 주목을 받으며 어딘가 먼지를 한 참 뒤집어 쓰고 있었을 LP판의 음악을 틀어주는 전문적인 카페들이 종종 생겨나고 있다. 


뮤집숍이 망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도 LP판만을 고집했던 프랭크는 LP판을 턴테이블에 올려 바늘을 내려놓고 음악이 나올 때까지의 침묵을 중요시했다. 마치 존 케이지가 4분 33초 동안 아무런 연주도 하지 않고 무대를 채웠던 것처럼 음악과 음악 사이의 침묵 그리고 LP판에서 음악이 재생되기까지 칙칙, 삑삑 거리는 소리까지 CD처럼 사용이 편리한 것에서는 결코 찾을 수 없는 무엇인가를 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LP판을 케이스에서 꺼내 표면에 지문이 묻지 않도로 정성스럽게 끄트머리를 잡고 턴테이블에 조심스럽게 놓고 바늘을 올리는 수고로움은 어쩌면 우리가 관계를 맺고 사랑을 해나가는데에 가장 필수적인 요소가 아닌가 싶다. 프랭크는 어린 시절의 상처에 대한 두려움을 결국은 일사가 21년 간 준비한 헨델의 '할렐루야' 플래시몹으로 극복하게 되고 그들은 또 다른 손님들을 위로할 수 있는 새로운 뮤직숍을 운영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게 된다. 


"나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음악이 좋아요. 엘피판을 들으려면 제법 번거로운 과정이 있죠. 편리성만 따지다면 시디가 최고일 거예요. 엘피판은 반드시 손으로 들고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의도치 않게 흠집이 나 판이 튀기도 해요. 엘피판은 세심하게 신경 써주어야 하고 깊고 그윽한 음질로 보답하죠. 우리의 삶에 음악이 없다면 얼마나 삭막할까요. 삶을 축보해주는 음악을 들으려면 기꺼이 그 정도 수고쯤은 감수해야죠.(82)"


"음악이 모드에게 말했다. '견디기 힘들 만큼 고통스러웠지?' 그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떨쳐버리기에는 너무나 잔인한 일이었지. 어쩌면 앞으로도 아물지 않은 상처 때문에 고통을 받게 될 수도 있을 거야. 슬픔이 밀려올 때마다 이 음악을 들어. 음악이 너의 마음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를 어루만져줄 거야. 네 옆에는 언제나 음악이 있어. 모드, 움츠려들지 말고 힘을 내.(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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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무사 -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
요조 (Yozoh) 지음 / 북노마드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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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조 작가의 [오늘도, 무사]를 읽었다. 부제는 ‘조금씩, 다르게, 살아가기’이다. 2년 전에 [아무튼, 떡볶이]를 읽고 요조 작가의 매력을 듬뿍 느꼈었는데, 그 보다 더 전에 출간되었던 [오늘도, 무사]를 이제서야 읽게 되었다. 사실 [아무튼, 떡볶이]를 읽기 전에는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모습이 더욱 익숙했다. 그런데 저자의 책도 읽고 ‘책, 이게 뭐라고’의 팟캐스트 진행자였다는 것을 알고 더군다나 독립서점의 어엿한 사장님이라는 것에 놀람 더하기 경외의 느낌마저 들었다. 한편으로는 저자의 작지 않은 인지도가 책을 출판하고 워크삽을 진행하는 데에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내지 않았을까 생각되며 그것 또한 저자가 쌓아놓은 인생의 업적이기에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진다. 

2014년 말에 도서정가제가 시작된다는 기사에 솔직히 더 이상 책을 대폭 할인 받아 살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나마 인터넷 서점에서는 10% 정도 할인을 받을 수 있지만, 일반 서점에서는 거의 정가로 구매해야 하기에 더욱 그랬다. 외국에서 살때 그렇게 비싼 돈으로 전공 책을 구입했으면서도 제 나라에 와서는 왜 그리 인색하게 굴었는지 지금은 부끄럽기만 한 기억이다. 그런데 도서정가제가 정착된 후 눈에 띄는 변화를 볼 수 있었다. 바로 독립서점들의 부흥(르네상스)이라고 할 만큼 대형 서점을 제외하고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작은 서점들이 하나 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출판된 작품들이 시간이 지나고도 정당한 가치로 대우받을 수 있다는 사실은 지적재산권의 인정에 대한 새로운 변화였다. 특히나 제주도에 머무는 동안 종종 방문했던 '소리소문'과 같은 작은 서점들이 없었다면 한적한 곳에서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 머물고 있는 장면을 결코 볼 수 없었을 것이다. 특히나 책을 좋아하고 아끼는 이들이라면 독립서점에서만 구입할 수 있는 독립서점 에디션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소장할 수 있는 그런 표지가 아니라 마치 나만을 위해 작은 서점이 준비해 놓은 것 같은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제주에 머무는 장소가 서쪽이었기에 주로 그 근방의 카페와 서점을 찾아가보곤 했다. 제주를 떠날 날 무렵 '소리소문'의 사장님이 큰 수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한 달 동안 문을 닫고 새해에 만나자는 인사를 남긴 것을 인스타그램을 통해 보게 되었다.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한 달 후 수술을 잘 마치고 다시 책방을 열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니 뭔가 마음이 뿌듯하면서 아마도 책방을 들른 많은 이들이 사장님이 쾌유를 한마음으로 기원하지 않았을까 싶다. 동쪽에 요조님이 운영하는 책방이 있다고 알기는 했는데, 차마 연예인을 구경하러 가는 것처럼 보일까 싶어 주저했었는데 다음에 제주를 방문하게 된다면 요조님이 신간을 들고 가서 사인을 받는 용기를 내볼까 한다. 

“‘대체로 우리는 비슷비슷한 하루를 살아간다’는 말은 사실 그렇게 대단한 말은 아니다. 그러나 한곳에 고정된 채 오고 가는 사람들을 반복적으로 관찰하다보니, 혼자 생각하면서 깨닫는 것과 실질적으로 조망하며 아는 것과는 굉장히 다른 느낌이다. 머리로 알게 되는 것과 몸으로 알게 되는 것의 차이라고 해야 할까. 아무튼 나는 책방에서 한결같이 움직이는 사람들의 흐름을 지켜보면서 자연스럽게 ‘남들과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일체의 욕심을 버렸다.(134)”

“책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정말 아름다운 일이 맞다. 그러나 자신이 책을 많이 읽으므로 남들보다 나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어서 빨리 그 생각으로부터 멀리 달아나야 한다. 그건 틀렸다. 책은 인생의 유일한 묘약은 아니다. 책을 많이 읽는 한심한 바보 멍청이들도 되게 많다(나도 그런 사람인 것 같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책은 좋은 것이다. 독서는 나를 더 나은 사람이 되게 하고 아름답게 한다. 그것만 조용히 혼자 알고 있으면 된다.(174-175)”

“나를 포함해 작은 동네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대부분 이런 아날로그가 주는 ‘옹기종기의 힘’을 가장 우위에 놓을 것이다. 월세도, 인건비도, 공과금도, 책장도, 바닥도, 천장도, 조명도, 진열된 책들도, 엽서도, 천 가방들도 그런 마음으로 준비할 것이다. 그 옹기종기함을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느끼고 싶어 할 것이다. 그게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손님들도 너무 좋아하며 공간의 사진을 담기 바쁘고, 덕분에 자신들의 하루가 의미있고 행복했다고 말하며, 이런 공간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있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렇다면 이 공간들이 없어지지 않고 오래오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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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 : 내가 사랑하는 빨강 띵 시리즈 8
허윤선 지음 / 세미콜론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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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윤선 에디터의 [훠궈: 내가 사랑하는 빨강]을 읽었다. 세미콜론 띵 시리즈 8번째 책이다. 훠궈를 처음 먹었던 기억을 떠올리니 무려 16년 전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도 생각보다 꽤 앞서 훠궈를 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홍대 근처의 어느 훠궈 전문점이었는데, 당시에는 마라가 뭔지도 모를 때였다. 그냥 중국식 샤브샤브라는 것만 듣고 가서 보니 둥그런 냄비에 가운데 물결처럼 흐르는 칸막이가 있어서 신기하고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에는 홍탕, 다른 쪽에는 백탕을 끓이며 평소 샤브샤브를 먹듯이 고기와 야채와 해물을 넣고 익는 족족 집어서 먹었던 기억이 난다. 평소 매운 맛을 즐기지 않는터라 홍탕의 넘실거리는 기운이 너무나도 강렬해 섣불리 젓가락을 내밀지 못했는데, 용기를 내어 한 점 집어 맛보니 생각보다 많이 맵지 않고 백탕과는 다른 화끈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로 훠궈를 즐길 일이 별로 없었고, 홍대 얘기가 나오면 제일 먼저 그 훠궈집이 떠오르곤 했다. 


요즘엔 그야말로 마라의 전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밀집 상가 지역에는 반드시 마라탕집을 지나치게 된다. 특히나 매운 맛에 대한 열광이 지나칠 정도로, 때로는 익명의 사람들의 위장이 걱정될 정도로 인기가 대단하기에 마라탕에 대한 관심은 당연한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매운맛은 맛이 아니라 통감이라고 하던데, 매운 음식을 먹고 땀이 나거나 열이 나는 순간 스트레스를 해소시키는 호르몬이 나온다고 하니, 매운 음식을 먹고 스트레를 푼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것은 아닌것 같다. 아무튼 저자의 훠궈 사랑은 정말로 대단해서 담낭 제거 수술을 한 직후에도, 홍콩의 훠궈집을 지도 없이도 찾아내는 정도라고 하니 책 제목을 [내가 사랑하는 빨강]이라고 짓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하게 보인다. 근래에는 훠궈 전문점을 가본 적이 없기에 우리나라에 이렇게 다양한 훠궈 체인점이 있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저자가 소개하는 훠궈를 먹는 방식에 대한 설명을 보니 그동안 아무 생각없이 한 번에 채소를 다 때려 넣었던 지난 날이 떠올랐다. 펄펄 끓는 홍탕, 백탕에 오랜 시간 잠수했던 채소들은 당연히 본연의 맛을 잃고 바닥에 가라앉은 채 누군가 어서 집어 가기를 기다리겠지만, 이미 풀죽은 채소들은 누군가의 선택을 받았다 하더라도 앞접시에 머물며 버려지기 일쑤였다. 그렇기에 저자가 소개한 훠궈 전문점은 언젠가 한 번 가서 책에 나온 매니저들이 만들어준 소스에 홍탕의 기운을 입은 탱탱한 채소를 찍어 맛보고 싶다. 빨간 맛을 괜히 아이돌이 노래한 게 아니었던 것이다. 


"맹장도 약간의 기능은 한다는 이론이 있을 정도인데, 쓸개는 분명한 역할이 있다. 물론 의학적 관점에서 쓸개는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살 수 있는 기관이다. 만약 여러분의 담낭에 문제가 생긴다면 의사들은 고민할 것도 없이 바로 떼어버리자고 할 것이다. 담낭 따위 없어도 생명에 문제가 없다니 그 점은 다행스럽지만 쓸개가 없으면 간에서 만든 담즙을 보관해둘 수가 없다. 그래서 담낭을 제거한 많은 사람들이 소화불량에 시달린다. 기름기가 많은 음식을 먹으면 '폭풍 설사'가 예정된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84)" 


"나는 마음의 추위도 제법 탄다. 겨우 어린애였을 때도 나는 마음이 줄곧 추웠다. 왜 그렇게 허구한 날 마음이 쓸쓸하고 추웠는지 모르겠다. 빨리 어른이 되길 갈망했지만 되어서도 그랬다. 친구도 연인도 있었지만 하하호호 떠드는 시간이 끝나면 어김없이 마음이 추웠다. 붐비는 거리에 나만 혼자 서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게 외로움인 줄 알았다. 외로움은 사람을 만나면 되는 줄 알았고, 나의 외로움을 없애줄 사람이 나타나리라고 생각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게 되었다. 나는 외로웠던 게 아니라 고독함을 느꼈던 것이라는 걸. 돌아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의 쓸쓸함, 변해가는 것들에 대한 애석감일 때도 있었다.(1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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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
송경화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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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경화 기자의 [고도일보 송가을인데요]를 읽었다. 현직 기자가 취재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기에 더욱 실감나고 기자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는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 처음에는 어떤 큰 사건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이 등장해서 실마리가 하나씩 풀려나가는 것은 아닐까 궁금했는데, 여러가지 사건들이 단편처럼 엮어져 있어 다양한 사건들을 접할 수 있었다. 아마도 저자가 실제로 취재하며 겪었던 사건들을 모티브로 하지 않았을까라는 추측과 더불어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가지 문제들에 쉽게 몰입할 수 있도록 등장인물과 사건이 펼쳐진 정황들이 깔끔하게 묘사되어 있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언론에 대한 불신이 점점 커져가고 있기에 각 개개인이 엄청난 양의 정보와 기사들을 나름대로 선별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중요시 되어가고 있다. 마치 정보의 바다에서 바늘처럼 날까롭게 정의를 부르짖을 올바른 잣대를 찾는 것처럼 우리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가짜 뉴스들이 판을 치고 있다. 누군가는 재미로, 누군가는 경제적 이득을 취하기 위해, 누군가는 권력 연장을 위해 실제 벌어진 일에 대한 해석이 너무나도 상이해 독자의 입장에서는 혼란스럽기 그지 없을 때가 많다. 이번 작품을 읽으면서 분명 우리나라의 많은 기자들 중에 주인공 송가을 기자처럼 진실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된다. 진실을 전한다는 것은 결국 어떤 한 사람을 구하는 길이고, 그로 인해 맺혔던 한이나 억울함이 해소되어 결국은 사람을 이해하는 길로 귀결되기에 기자의 일은 우리시대에 더욱 숭고한 일이 아닌가 싶다. 


하루에도 수십번 씩 스마트폰으로 각종 신규 이슈들을 손쉽게 접하는 시대에 살면서도 정작 가까운 사람의 안부를 묻는 것에는 주저하게 되는 익명의 웹문화에 길들여지지 않도록 부단히 몸부림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늘도 가짜 뉴스에 열광하며 누군가를 지옥에 보낼지 모른다. 앞으로도 인간 삶에는 끊임없는 사건 사고들이 넘쳐나겠지만 그럼에도 혀를 차는 안타깝고 슬픈 기사만이 아니라 옹졸하고 편협해진 나의 마음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따뜻한 기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소설은 1부 경찰팀, 2부 법조팀, 3부 탐사보도팀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특히 3부에 나온 내용들이 좋았다. '미국에서 만난 탈북 청년'은 탈북자들이 우리나라가 아닌 제3국을 선택한 이유에 대한 고민과 어디서든 그들이 자리를 잡기를 바라며 탈북자들에 대한 우리나라의 비딱한 시선을 반성하게 해주었다. 비슷한 내용의 '북한 여공'에서는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해왔던 탈북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바라보게 해 주었다. 


"제가 왜 탈북을 해야 하나요? 우리 집은 평양이고, 우리 가족들은 모두 다 거기에 있고, 그곳이 저의 조국인데요? 왜 떠나야 한다는 것인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아, 가난하고 살기 어렵다는 생각 때문에? 우리 조국이 부귀하지 못해 먹고살기가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런데 남조선이라고 다들 살기 좋고 행복한가요? 그것도 아니라고들 하던데요.

말문이 막혔다. 전혀 생각지 못한 답변이었다. 북한 사람이라면 응당 탈북을 하고 싶어 하고 남한이든 미국이든 다른 나라로 떠나 자유를 얻고 싶어 할 거라고 생각했다.(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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