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러구트 꿈 백화점 -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이미예 지음 / 팩토리나인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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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었다. 서점에 갈 때마다 항상 판매대의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에 뒷편을 펼쳐보고 출판된지 1년도 안 되었는데 400쇄가 넘었다는 서지정보를 보고 대체 무슨 내용이기에 이렇게 인기가 높은 것일까 궁금함을 참을 수 없었다. 지금 영화와 드라마의 주요소재로 등장하는 판타지물이기에 인기상승에 한 몫을 했겠지만 어찌보면 이 책을 읽는 많은 이들이 꿈에라서도 위로를 받기를 원할만큼 무엇인가 불만족스럽고 고통스러운 삶을 감내해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었다. 


이야기의 배경은 잠든 사람들이 꿈을 구입할 수 있는 백화점이 있는 특별한 거리이다. 이곳에는 잠옷을 입은 사람들이 즐비하게 거리를 누비며 오늘 밤에는 또 달디단 낮잠에도 원하는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라며 꿈 백화점에 들어간다. 주인공 페니는 꿈에도 그리던 달러구트의 꿈 백화점에 지원을 하고 면접을 거쳐 드디어 신입직원이 된다. 신입사원 페니는 1층 프런트부터 5층에 이르기까지 각 층을 담당하고 있는 개성만점의 매니저들을 만나고 1층에서 일하고 싶은 포부를 피력하여 달러구트와 웨더 아주머니와 함께 일하기 시작한다. 


달러구트가 운영하는 꿈 백화점의 직원들과 주인공 페니가 백화점 일에 적응해 나가는 구도를 토대로 꿈에 관련된 에피소드의 작은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특히 페니를 비롯한 직원들과 꿈 제작자들의 이름은 모두 외국 사람처럼 보이지만 꿈을 꾸는 실제 현실의 주인공들은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을 갖고 등장한다. 꿈 백화점이 있는 곳은 어떤 특정한 나라라기 보다는 우리가 현실에서 볼수 없는 저 너머의 세상이라는 가정하에 우리는 잠결에 꿈 백화점을 방문하여 그날 꿀 꿈을 선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에서 나오는 것처럼 보통 사람들은 반복된 꿈을 꾸거나 특정한 사람이 나오는 꿈을 꾸게 되면 혹시나 내 무의식의 발로에서 그런 꿈을 꾸게 된 것은 아닐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꿈에 대한 정신분석학의 이론은 차지하더라도 꿈에 대한 사람들의 해석은 각양각색이다. 


특히나 이야기의 발미에 나온 도제 꿈 제작자가 만든 죽은 사람들이 나오는 꿈은 뻔한 내용이 이어질 것을 알면서도 저절로 눈물이 맺히는 그리움과 아련함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가족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보낸 사람들이 꿈에서 그리던 사람을 만나고 깨어 한참을 울었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고 했다. 얼마나 많이 보고 싶었을까? 얼마나 많이 그리웠을까? 언젠가는 누구나 맞이할 수 밖에 없는 이 세상에서의 이별을 그렇게 꿈으로나마 위로받을 수 있음을, 그 꿈은 정말로 나를 위로하기 위해서 보내준 것은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저는 꿈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이 질문을 떠올려요. '사람은 왜 잠을 자고 꿈을 꾸는가?' 그건 바로, 모든 사람은 불완전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어리석기 때문이에요. 첫 번째 제자처럼 앞만 보고 사는 사람이든, 두 번째 제자처럼 과거에만 연연하는 사람이든, 누구나 정말로 중요한 것을 놓치기 쉽죠. 그렇기 때문에 시간의 신은 세 번째 제자에게 잠든 시간을 맡겨서 그들을 돕게 한 거예요. 왜, 푹 자는 것만으로도 어제의 근심이 눈 녹듯 사라지고, 오늘을 살아갈 힘이 생길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거예요. 꿈을 꾸지 않고 푹 자든, 여기 이 백화점에서 파는 좋은 꿈을 꾸든, 저마다 잠든 시간을 이용해서 어제를 정리하고 내일을 준비할 수 있게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면 잠든 시간도 더는 쓸모없는 시간이 아니게 되죠.(31-32)"


"모두가 제 꿈을 꾸고 극한의 자유를 느꼈다는 찬사를 보낼 때, 어린 저는 자유의 불완전함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꿈에서는 걷고 뛰고 날 수 있는 저는, 꿈에서 깨어나면 그러지 못합니다. 바다를 누비는 범고래는 땅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는 바다에서 자유롭지 못하죠. 정도와 형태의 차이만 있을 뿐, 모든 생명은 제한된 자유를 누립니다.(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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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
김민철 지음 / 창비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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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카피라이터의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읽었다. 어쩌면 근래에 여행을 자유롭게 다닌 세대의 사람들은 인류가 아우 우연히 받은 선물을 누린 일부에 불과할지도 모른다는 저자의 말이 왠지 모르게 동의가 되면서도 슬프게만 느껴진다. 만일 어떤 경제적인 또는 물리적인 이유를 떠나서 다시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어딘가를 갈 수 없다면 생각보다 우리 삶이 갑갑하게 느껴질 것만 같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의 예전 기억들을 떠올리며 특별한 누군가에게 혹은 그냥 스쳐 지나간 익명에게 보내는 편지는 작금의 고통을 감내하는 모든 이들에게 절대로 그럴 일이 없을 거라고 언젠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거라는 희망의 서를 건내는 듯하다. 


70년대 이전의 세대들은 해외 어딘가로 나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에 아니 그런 2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은 너무나도 사치한 일이었기에 언감생심이라는 말로 주어진 삶에 순응하는 선택하라는 종용에 익숙했을 것이다. 그분들 덕택에 나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견문을 넓힌다는 명목하에 아무런 준비와 목적없이 그저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를 기다리는 여유로운 여행자의 코스프레를 즐기곤 했다. 하지만 몇번의 여행 끝에 모든 떠남이 나를 만족시키지는 않는다는 사실과 오히려 그 떠남의 시간이 현재에 만족하기 위한 하나의 훈련이었다는 생각에까지 이른다면 여행의 자유가 주어진 것이 마냥 편안하고 행복한 일만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매번 커다란 캐리어에 짐을 꾸려넣으며 설레여 하고 여행지에서 소소한 기념품과 선물을 구입하며 언젠가 떠올릴 그곳에 대한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저자가 여행지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과의 에피소드도 재미있고 당황스러운 기억과 예기치 못한 상황들이 해결되는 것도 인상적이지만, 무엇보다도 그녀의 글을 빛나게 해 주는 것은 역시나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언제 다시 만날지 모를 사람들이기에 그냥 무심히 지나칠수도 혹은 차갑고 무뚝뚝한 만남에 불과할수도 있는 찰나의 순간들을 고이고이 간직했다가 뒤늦은 편지의 주인공으로 소환한다. 그러한 만남이 차곡차곡 쌓여 한권의 책이 되고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당신도 그 안에 담긴 이야기의 화자가 될 수 있다고 초대한다. 아쉽고 그립고 답답하지만 견디고 기다리는 이가 편지를 받을 주인공이 될 수 있으니 조금만 더 힘내어보자고 위로해주는 듯 하다. 


"점을 선으로, 한 번의 만남을 긴 인연으로, 한 번으로 끝날 수도 있는 만남에 물을 주고 결국 꽃피우도록 하는 정성. 저에게 없는 단 하나를 꼽는다면 바로 그 정성일 거예요. 낯가림이 심하다고, 심하게 내성적이라고 아무리 변명을 해보아도 사실이 달라지는 건 아니죠. 그 핑계로 딱 한 뼘의 공간만 다른 사람들에게 내어주고 있거든요. 그 좁고 그늘진 공간에 어떻게든 뿌리를 내리는 인연들에게만 겨우 물을 주는 형편이거든요. 그 밖의 인연들은 다 가위로 싹둑싹둑 자르면서요. 제 마음대로 인연을 재단하면서요.(297-298)"


"우리, 다시 여행을 하는 거야.

시간 속에서, 기억 속에서, 이미 네게 기억이 많잖아.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잖아. 곱씹고 싶은 얼굴도, 혀끝에 미세하게 남은 맛도, 한없이 헤매고 싶던 오전도, 더 바랄 게 없다 싶었던 오후도, 웃다 지친 밤도, 잠들도 싶지 않던 새벽도, 네 속에 다 남아 있잖아. 여행 가방이 턱턱 튕기던 돌길도, 해보다 먼저 올랐던 성곽도, 비가 오던 숲길도, 구원처럼 나타났던 찻집도, 아주 다 사라진 건 아니잖아. 그곳을 여행하는 거야. 생생하게 되살리는 거지. 좋아하는 사람이 먼저 움직일 수밖에 없어. 간절한 사람이 더 부지런해질 수밖에 없어. 여행을 좋아하는 네가, 먼저 여행을 시작하는 거야. 좋아하는 여행을 구하기 위해, 떠나는 여행이야. 가장 좋아하는 집에 앉아서 가장 멀리 떠나보자. 그러기에 딱 좋은 시간이 우리에게 도착한 거야. 문득 기억이 간절해지는 시간이 찾아오면 다 또 펜을 들자. 편지를 쓰는 거지.(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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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단경로 - 제25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강희영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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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희영 작가의 [최단경로]를 읽었다. 소설의 시작은 좀처럼 갈피를 잡기 힘들다. 어떤 이야기가 진행되는 것이고, 주인공이 누구인지,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쉽게 윤곽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래도 좀 더 인내심을 갖고 진도를 나가면 주인공 혜서와 애영의 만남이 어렴풋하게 그려진다. 혜서는 라디오방송국 피디로 매번 심야시간 프로그램만 맡아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해 아쉬워한다. 인기 있는 낮시간 프로그램을 맡았던 능력있는 재혁이 갑자기 그만두게 되어 혜서는 원하던 프로그램을 맡게 된다. 하지만 재혁의 프로그램을 이어받아 준비하던 중 아이의 옹알이를 프로그램에서 반복되는 음악 속에 숨겨 놓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재혁이 반복적으로 찾았던 웹지도 상의 지점들이 그 숨겨진 소리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혜서는 무작정 암스테르담으로 휴가를 떠난다. 


이제 또 다른 주인공 애영의 이야기이다. 애영은 재혁과 고등학생 때 교제를 하다 그만 덜컥 아이를 갖게 된다. 애영의 어머니는 재혁에게 선택할 기회를 주고 재혁은 아무말도 못한 채 돌아가라는 소리만 듣게 된다. 애영과 그녀의 어머니는 남편이 있는 암스테르담으로 떠나게 되고 그 이후에 애영이 어떻게 예술가가 되었는지는 모른다. 이야기의 전환은 암스테르담의 어느 레지던스로 옮겨지고 애영은 그곳에서 마이레라는 일본인 예술가를 만나게 된다. 그곳에서 애영은 지원금을 받아 대학에서 새로운 예술 작품을 위한 공부를 시작하지만 그녀는 안락사를 신청한 상태이다. 애영이 레지던스에 머물기 전에 잘못된 지도 어플로 인해 네비만 보고 운전하던 사람이 지도상에 보도가 나와 있는 않은 것을 모른채 질주하다 그만 애영의 아기와 어머니를 죽게 만든다. 그 이후 사고가 난 삼거리의 가로등에 애영의 아기가 애착하던 곰인형을 묶어두어 아기를 추모한다. 


혜서가 한국에서 재혁이 남긴 웹지도상의 지점들은 바로 애영과 아기가 지나간 발자취였고. 애영은 아기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재혁과의 짧은 만남을 갖게 된다. 그 만남에서 애영과 재혁의 핸드폰은 뒤바뀌게 되고 자신이 버린 아이의 죽음을 전해들은 재혁은 소리없이 사라지게 된다. 재혁이 남긴 흔적을 찾아 암스테르담에 온 혜서는 애영이 재혁의 핸드폰으로 남긴 족적들을 뒤쫓다 애영과 마주하게 된다. 재혁이 남긴 아이의 옹알리 소리는 애영의 핸드폰에서 추출한 것으로 추정되고 혜서는 재혁이 왜 그렇기 소리없이 떠났는지 알게 된다. 애영으로부터 사연을 듣게 된 혜서는 애영의 거처에서 마이레와 함께 음식을 나누며 애영을 위로하지만, 애영이 스스로 삶을 마감하려는 결심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혜서는 갑작스런 결정을 내리며 애영 곁에 머물 것을 결심한다. 혜서와 마이레의 뜻밖의 연대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로 삶을 놓아버리려는 이들에게 실낱같은 희망을 전하며 이야기는 마무리된다. 


"이 소설은 죄책감 호근 죄의식에 관한 소설로 읽혔다. 여기 한 때 목적 없는 합목적성에 이끌려, 그러니까 상징질서가 지정한 그 어떤 좌표에 최단경로로 도달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에 자기가 져야 할 책임을 외면한 남자가 있다. 그의 외면은 그녀를 불행에 빠뜨리고 그녀의 불행은 그녀의 어머니와 딸을 회복할 수 없는 불행으로 몰아넣는다. 이 불행의 연쇄들을 통해 [최단경로]른 비록 악의는 없었다 하더라도 혹은 심지어 선의의 의한 행동이었다 하더라도 책임을 져야 할 사건이 발생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그걸 외면하면 그것은 불행의 악순환으로 이어진다는 것. 그러므로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는 죄책감 혹은 죄의식을 느낀 존재-자들이 어떻게든 그 죄를 갚아 불행의 고리에 균열을 내야 한다고 말한다.-류보선(170)"


"사실 소설을 쓴다는 건 그런 것이다. 나는 그렇게 느낀다. 어떤 장면을 가공하기 위해서는 어떤 허들을 넘어야 한다. 솔직히 나는 그 과정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과 마주해야 하는 순간들이기 때문이다. 그거 지금 나를 적당히 살게 해주는 편하고 순진한 감정들에서 벗어나 심각하고 치열한 고민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매번 소설을 쓰고 나서 생각한다. 내가 이렇게까지 어떤 사안을 고민해본 적이 있었던가. 어떤 인물을 이해하려고 이렇게까지 노력해본 적이 있었던가. 나의 치부와 진심을 들여다보고 솔직하게 구는 순간이 있었던가. 없다. 일상에서는 전혀 하지 않는 일들을, 소설을 쓰면서는 한다. 그래서 소설을 쓰는 일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그건 힘들고, 부끄럽고, 신경질이 나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허들을 넘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는, 그렇게 몰입하지 않으면 장면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작가의 말 중에서(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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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 2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안 스파르 그림,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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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글라스 케네디의 [모두와 친구가 되고 싶은 오로르]를 읽었다. 작년 이맘 때 읽었던 [마음을 읽는 아이 오로르]의 두 번째 이야기이다. 자폐를 앓고 있는 소녀 오로르는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갖고 있다. 바로 사람의 눈을 보면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오로르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만 소리를 낼 수 없기에 태블릿으로 의사소통은 한다. 이번 이야기는 오로르가 학교에 들어가면서 생겨난 에피소드이다. 전편에서 오로르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으로 형상들을 놀래키며 주베 형사의 부관으로 임명되었기에 이번 편에서는 본격적으로 형사 일을 돕게 된다. 오로르가 상대방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주베 형사와 멜빌 형사 등과 조지안느 선생님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모른다. 


오로르는 학교에 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을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이지만 막상 학교에서 만난 아이들은 말을 못하고 태블릿으로 대화를 하는 오로르를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급기야 오로르를 괴롭히려는 아이들이 생겨나게 되지만 오로르는 기죽지 않고 지혜롭게 그 상황을 헤쳐나간다.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듯 학교 폭력에 대한 소재가 등장한다. 특히나 요즘은 SNS를 통해 일방적인 비방과 치부를 들추는 언어로 뒤에 숨어 누군가에게 폭력을 행사하곤 한다. 소셜 네트워크의 장점 중의 하나인 파급력이 엄청나기에 예민한 감수성을 지닌 청소년 시기에 이런 일을 당하게 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야말로 아노미 상태가 되어버린다. 사이버 폭력과 맞물려 신체적인 폭력과 갈취까지 이어진다면 너무나도 안타까운 극단적 선택의 상황까지 내몰리는 현상을 목도하게 된다. 


왕따나 따돌림은 아주 오래전부터 있어왔지만 점점 조직적이고 예리해지는 이러한 학교 폭력 사태에 대해서 부모들고 선생님들도 뚜렷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니, 그저 내 아이가 희생자가 가해자가 되지 않기를 바라고 바랄 뿐이다. 어쩌면 지금의 부모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학교 폭력의 희생자가 되지 않고 학교를 졸업하기만 해도 다행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오로르 이야기에서 특히나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설정은 바로 '참깨세상'과 '힘든세상'의 오고감이다. 오로르는 마음이 답답해질 때면 태블릿의 별을 그리고 '참깨세상'으로 가서 친구 오브를 만난다. '참깨세상'은 마치 유토피아처럼 부정적이거나 우울함은 1도 없이 오로지 진실과 사랑만이 가득한 곳이다. 오로르는 친구 오브에게 답답한 마음을 토로하며 위로를 받고 '힘든세상'으로 돌아온다. '참깨세상'에서 오로르는 태블릿을 이용하지 않고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 저자는 아마도 오로르가 '힘든세상'에서 말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어떤 신체적인 장애보다도 오로르를 바라보는 보통 사람들의 편견과 선입견이 더욱 큰 장애로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오로르는 마음을 읽는 특별한 능력으로 자신을 괴롭히던 아나이스 친구를 구하게 되고 부관으로서의 능력도 인정받게 된다. 이번 책에도 조안 스파르의 그림이 더해져 오로르의 귀여움이 더욱 부각되었고 등장인물들도 더욱 생동감있게 다가왔다. 단순한 내용이지만 그 안에 인생을 바라보는 시선과 사람을 대하는 진실한 태도가 담겨 있기에 청소년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어떤 사람들은 남다른 사람을 보면 불편하다고 말해. 자기들이 생각하는 '정상'의 개념에 맞지 않는 걸 보는 게 싫은 거야. 그런데 '정상'이라는 건 존재하지 않아. 집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특별해 보이는 걸 억누르려고 '정상'이라는 개념을 스스로한테 강요하는 것뿐이야.(47)"


"한 사람의 인생이라는 이야기는 그 사람의 삶에 들어오고 나가는 사람들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하루아침에 모든 게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이, 모든 모험이, 자기 인생이라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306)"


더글라스 케네디가 전해주는 마지막 구절은 정현종 시인의 <방문객>에 나오는 구절(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과 너무나도 일맥상통하여 깨달음을 얻은 이들은 시대와 지역과 초월하여 같은 결론을 얻는다는 것을 알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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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요일의 기록 -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
김민철 지음 / 북라이프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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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철 카피라이터의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었다. 부제는 '10년차 카피라이터가 붙잡은 삶의 순간들'이다. 작년에 [치즈: 치즈 맛이 나니까 치즈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를 읽고 난 후, 습관적으로 난데 없이 어떤 음식을 먹고 나서 혼잣말로 'OO 맛이 나니까 OO 맛이 난다고 했을 뿐인데'라는 내뱉곤 했다. 뭔가 재미있기도 하고, 후크송처럼 중독성이 있고. 라임이 딱 들어맞는 느낌도 들고 해서 ㅋㅋ. 최근에 저자의 새로운 에세이 [우리는 우리를 잊지 못하고]를 검색하다 이번 책을 먼저 읽고 싶어졌다. 


요즘은 어떤 책을 읽고 있느냐는 질문에 지금은 [모든 요일의 기록]을 읽고 있다고 답하니, 돌아온 대답은 "정말 작가들은 제목부터 잘 짓는 것 같다'는 말이. 생각해보니 카피라이터라는 저자의 직업이 책 제목에서부터 너무나도 잘 드러난 것이 아닌가 싶다. 저자의 모든 기록의 원천이 되는 저장소로 읽다: 인생의 기록, 듣다: 감정의 기록, 찍다: 눈의 기록, 배우다: 몸의 기록. 쓰다: 언어의 기록으로 구분짓어 놓았다. 책의 말미에 "나는 읽고서 쓰고, 보고서 쓰고, 듣고서 쓰고, 경험하고서 쓴다(259)"라는 한 문장으로 그녀가 어떻게 카피라이터로서의 삶을 준비해왔고 살아가는지 보여준다.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나오는 문구를 예로 든 것처럼,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도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260)" 우리가 기억하고 생생히 떠올리는 추억의 모습들은 아주 단편적이고 지엽적인 부분에 불과한 것일지도,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고 마는 물줄기처럼 겨우 손바닥에 남은 한방울에 불과할지 모른다. 


몇년 전까지 책을 읽고 마치 컬렉션을 구성하는 것처럼 작가별로 책장을 꾸며여겠다는 계획을 세웠었다. 그런데 몇 번의 이사를 거치며,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번 읽은 책을 다시 펼쳐보는 일이 극히 드물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그냥 책장에 꽂아두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서 책을 읽고 나면 바로 책의 내용을 정리하는 짧은 형태의 독후감을 쓰는게 좋겠다고 결심했다. 어느덧 3년 가까이 독후감을 올리는게 습관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책을 읽고 나서 어서 빨리 그 느낌들을 정리해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읽는 도중에 이 부분은 나라면 이렇게 쓰지 않았을까라는 구상도 해보게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상 깊었던 구절들을 다시 한 번 필사하며 되새겨보려고 한다. 시간이 흘러 예전에 읽었던 책들이 회자되었을 때 그리고 누군가에게 책을 권하고 싶을 때 내용을 떠올리기 위해 북스타그램을 열고 그 때 그 시절 그 책을 열독하던 나로 돌아가본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가 말한 '일상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정말로 맞는 말이다. 


"<자신에게 맡겨진 시간 안에서, 일상적인 세계의 일상적인 업무에 불후의 생명력을 불어넣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인물에게는, 진실이 어울리지 않는다.-마이클 커닝햄, 세월> 그렇다면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 그 일상은 바람이 살랑 부는 노천카페에서의 커피가 아닌, 한낮 줄을 서서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회사 앞 식당의 점심 속에 있다. 그 일상은 스탠드 불 하나 켜놓고 밤새워 쓰는 글이 아니라 창백한 형광등 빛 아래에서 작성하는 문서 안에 있고, 잘 포장된 초콜릿이 아니라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사는 껌 속에 있다. 보고 싶은 책보다는 봐야만 하는 서류 더미에 더 많이 할애된 일상, 좋아하는 사람과의 친말한 소통보다는 의무적으로 만나야만 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더 많이 소모되는 일상, 갓 갈아낸 자몽주스보다는 믹스커피에 더 친숙함을 느끼는 것이 어쨋거나 일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일상을 살아가야만 한다.(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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