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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죄의 궤적 1~2 - 전2권
오쿠다 히데오 지음, 송태욱 옮김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오쿠다 히데오의 [죄의 궤적 1-2]을 읽었다. 그동안 저자의 이름을 많이 들어왔지만 작품은 처음 접하게 되었는데 명성 그대로 베스트셀러가 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기존에 읽었던 추리나 범죄물의 형태와는 다르게 범인을 추정하고 구속하는 과정이 아주 자세히 묘사되어 있는데 그 내용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 무척 놀랍다. 실제로 일본에서 1963년도에 있었던 어린이 유괴 사건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상당히 많은 경찰들이 등장하지만 주요 인물의 이름만 기억한다면 이야기의 흐름을 쫓아가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삿포로에 가본 사람은 알겠지만 일본은 우리나라에 비해 상당히 크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섬나라이고 4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기에 면적이 그렇게 크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홋카이도 섬 하나가 우리나라 남한의 3분의 2정도에 해당된다고 하니, 교통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했던 시대에는 홋카이도의 주민과 오키나와의 주민은 거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홋카이도에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직항편이 신설되고 교통비가 상대적으로 내려가면서 홋카이도는 여름에는 시원한 곳으로 겨울에는 눈을 보러 가는 관광지가 되었다. 위도상 상당히 우리나라의 북한보다 높은 지역이 많기에 한 여름에 가도 그다지 덥지 않다. 이야기의 시작은 홋카이도의 최북단 왓카나이시에서 소설의 배경이 되는 전후 10년 배를 타고 3시간은 가야 도착하는 레분토 섬에서부터이다.
1956년도 전까지만 해도 청어잡이가 만연했던 레분토 지역은 그 이후로 씨가 말라 다시마를 거둬올려 말리는 작업이 한창이다. 소설의 주인공인 우노 간지는 물장사를 하는 어머니와 계부 밑에서 불운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간지는 계부의 폭력으로 자해공갈 사고를 당해 순간 기절하거나 기억을 잃는 장애를 갖게 된다. 이후 간지는 바보라는 소리를 들으며 빈집털이를 하다 레분토에서 다시마를 거둬들이는 어부일을 하게 된다. 간지는 이웃한 동네의 빈집털이를 해서 모아놓은 장물을 동료에게 걸리게 되고 얍샵한 동료의 꾐에 넘어가 다시마 일을 시키는 주인 집의 털어 레분토를 떠나 도쿄로 가려고 한다. 하지만 간지는 기름이 떨어진 배에서 바다 한가운데 놓이게 되고 구사일생으로 해안가에 도착하게 된다. 이후 빈집털이를 통해 여비를 마련하고 도쿄로 오게 되어 전시계상의 집을 털다가 전시계상의 살인의 혐의를 받게 된다.
악역에 간지라면 그에 대적하는 선인의 역할은 오치아이라는 엘리트 대졸 형사이다. 일본도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전후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서인지, 형사들 사이에도 대학물을 먹은 사람은 눈엣가시로 여겨지는 듯 하다. 오치아이는 그러한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성실하고 집요하게 범인을 추적해 나간다. 오치아이의 수사에는 많은 유능한 선배 형사들이 등장하는데 오바와 닐은 풍부함 경험을 바탕으로 범인의 범주를 줄여나간다.
그 외에 이야기의 한 축에는 미키코 라는 산야의 여관을 운영하는 딸이 등장한다. 그런데 여기서 미키코의 아버지는 재일교포 1세대로 제주도에서 일본으로 넘어간 인물로 그려진다. 그리고 미키코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은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당한 배경이 그려진다. 미키코는 산야를 중심으로 한 좌익 단체와 경찰 및 야쿠자의 세계에 둘러싸여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지 않은 온전한 세계관을 지키려고 한다. 미키코의 철없는 동생은 야쿠자 똘마니가 되어 간지를 만나게 되고 천성이 착해서인지 간지를 지켜주려다 엉뚱한 일을 겪기도 한다.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러 경찰에 붙잡힌 간지는 요시오 어린이의 유괴와 애인이었던 여인의 살해를 부정하려 하지만 결국은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범죄 현장을 재현하는 과정에서 탈출하여 계부를 죽이려 삿포로로 간다. 이를 알게 된 오치아이와 다른 형사들이 간지를 다시 붙잡게 되는 과정은 소설이 아니라 눈 앞에서 영화가 그대로 펼쳐지는 것처럼 긴장감 넘치게 잘 묘사되어 있다. 바로 눈 앞에서 간지가 엄지 손가락을 빼서 수갑을 풀고 숨이 멋을듯 헐떡이며 도망치는 모습이 그려진다. 하지만 간지가 오바와의 심문에서 자신의 불우한 유년시절을 떠올리며 하는 말은 죄를 지은 사람이 흔히 하는 자기 변명에 불과할 수도 있겠지만, 책의 제목이 [죄의 궤적]이라는 것을 상기해 볼때, 간지의 말은 어느 누군가의 죄에 대한 책임은 오로지 그 한 사람에게 있는 것만이 아니라 죄를 지은 사람을 사이코다 소시오패스라고 규정지으며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으로 치부해버렸던 우리 모두의 책임이 아닌가 싶다.
"- 예, 그래도. 적어도 태어날 때부터 바보는 아니었다는 것을 아는 것만으로도 뭔가 구원받았다고 할까... 그리고 나는 어렸을 때 충분히 지독한 일을 당했고, 그렇다면 무슨 짓을 해도 다소는 용서받지 않을까 하는....
-그럴 리 없잖아. 도둑을 만난 사람은 남의 물건을 훔쳐도 용서받는 거야?
-그런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이유는 있어요.
-그런 게 이유가 돼?
-오바 씨는 몰라요. 나쁜 짓이라는 건 연결되어 있어요. 내가 훔치는 것은 내 탓만이 아니에요. 나를 만든 것은 아방이와 오마이니까요.(2권 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