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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타일
김금희 지음 / 창비 / 2022년 11월
평점 :
김금희 작가의 [크리스마스 타일]을 읽었다. “은하의 밤”, “데이, 이브닝, 나이트”, “월계동 옥주”, “하바나 눈사람 클럽”, “첫눈으로”, “당신 개 좀 안아봐도 될까요”, “크리스마스에는” 이렇게 7편이 단편이 실린 연작소설집이다. 연작소설의 특징처럼 각 단편의 주인공의 주변인물로 등장한 조연들이 다른 단편에서는 주인공으로 나오는 마치 우리 인생을 한쪽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명징한 사실을 다시 한 번 각성시켜준다. 특히나 모든 이야기가 크리스마스라는 북반부의 겨울을 보내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맞이하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즌을 소재로 하고 있기에 뭔가 아쉽기도 서운하기도 정리도 해야 하기도 떠나보내야 하기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이 떠오르게도 한다.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도 크리스마스는 뭔가 축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조금은 설레기도 하지만 도저히 그 축제의 한자락에도 마음을 기입할 여유가 없는 이들에게는 도리어 우울과 짜증을 자아내기도 하는 딜레마의 시기이기도 할 것이다.
“내 어릴적 친구들과 함께 한 시간들은 항상 내맘속에 남았는데~~”라는 노랫말로 시작하는 이승환의 ‘크리스마스에는’이라는 노래는 마치 오래된 장독에서 진귀한 맛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시원적 장맛의 기원처럼, 내게 있어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면 없어서는 안될 백뮤직이 되었다. 어릴때부터 성당을 다녀서 그런지 크리스마스는 곧 성탄절이고, 성탄절을 맞이하기 위해서는 밤늦게까지 평소보다 두 배 이상 긴 미사를 참여해야 하고, 그 긴 미사 이전에 주일학교 아이들의 재롱잔치가 있어 몇 주 전부터 성당에서 살다시피 연습에 매진해야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학생이 되고 나서는 대놓고 외박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날이었다. 성탄절 밤미사가 끝나고 나면 집으로 돌아갈 버스가 끊기고 자연스레 성당에서 걸어갈 수 있는 친구네 집에서 올나이트를 할 수 있었다. "Raro Unus, Nunquam Duo, Semper Tres"라는 라틴어 격언을 ‘Semper Duo, Raro tres’로 바꾸어 항상 붙어 다니던 죽마고우와 잦은 이사로 매번 함께하지 못했던 또 다른 친구까지 셋이 밤을 지새우며 추억을 쌓곤 했다.
벌써 1년이 되어가는데, 작년 이맘때 연락이 끊겼던 그 다른 친구가 어찌어찌하여 나의 연락을 기다리는 일이 있었다. 그 친구의 이름을 듣는 순간 혹시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십몇 년 만에 연결된 통화는 내 목소리를 듣자마자 울음을 토하며 어머니의 부음을 전하며 멀지만 빈소에 꼭 와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했다. 휑덩그렁한 빈소를 보니 나와 연락이 되지 않았던 긴 시간 동안의 고독이 느껴지 더욱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오랫만의 해후치고는 짧은 인사와 근황을 나누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그 때 그 시절 항상 함께 했지만 지금은 잘 연락하지 않는 죽마고우에게 부고를 전했다. 내일이면 항상 밤을 세우던 크리스마스 전날이기에 더욱 아련한 기분이 들었다. 부고가 아니었다면 이렇데 다시 연결되어 얼굴을 마주하고 그간의 삶을 전해들을 수 있었을까? 그 때 그 시절 그렇게 1년에 하루라도 밤을 지세우며 별로 쓰잘머리 없는 얘기를 지쳐 잠들때까지 나눌 수 있었던 누군가가 있었기에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사춘기의 격한 감정의 파고를 어느 정도 잠재울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작업을 해나가면서 성당에 나가 주일을 보내기 시작했다. 아마 이 도시에서 가장 규모가 작을 동네 성당에는 내가 그간 한번도 보지 못한 수의 노인들이 앉아 있었다. 그분들의 나직한 기도와 읊조림과 느린 발걸음 속에서 계절을 보내는 동안 때로 나는 너무 젊게 느껴졌고 때로 마치 백지처럼 삶에 대해, 인간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생각을 갖게 됐다. 그렇게 세상에 대해 채워나가야 할 아주 많은 수의 조각들을 알게 된 것이 다행스럽다.(308)"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마지막 두 단편을 묶은 소제목인 '하늘 높은 데서는'이라는 구절은 대영광송의 첫 기도말에서 착안하지 않았을까 싶다. 겨울에 필요한 마음을 되짚어보는 작가의 인사말처럼 눈이 내리고 손발이 꽁꽁 얼어붙고 어깨가 움추러드는 찬바람이 몰아치는 계절의 변화는 언젠가 맞이하게 될 생과 사의 종착점을 연상하게 만든다. '언젠가 나에게도 그런 시간이 다가올텐데' 라는 찰나의 고민은 분주한 일상 덕분에 연기처럼 흩어지지만, 어디선가 들려온 타인의 부고와 덕분에 피어오르는 더는 마주할 수 없는 그리운 사람과의 추억으로 인해 그동안 악착같이 손에 쥐려했던 모든 것들의 부질없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쉽게 가 닿을 수 없는 그 '하늘 높은 곳에는'는 지금은 온갖 자잘한 이유를 대며 해소하지 못한 아주 작은 갈등과 잘못과 실수까지도 상세히 소명하며 화해할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이다.
"현우는 집에 가면 환자를 돌봐야 한다며 내내 커피를 고집했다. 나는 아버지가 아픈가. 하고 생각했다. 아니면 그 당시 수원에서 간호사로 일한다는 누나가. 환자가 집안에 있는 건 슬픈 일이고 자기 자신의 삶에 근저당이 잡히는 셈이었다. 죽음이라는 채무자가 언제 들이닥쳐 일상을 뒤흔들지 몰랐다. 그게 자신의 죽음이라면 의식이 꺼졌을 때 자연스레 종료되겠지만, 타인이라면 영원히 끝나지 않는 채무 상태에 놓이게 된다. 기억이 있으니까, 타인에 대한 기억이 영원히 갚을 수 없는 채무로, 우리를 조여온다. 수년 전 엄마를 떠나보내며 느낀 것이었다.(2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