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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원동 브라더스 - 2013년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 수상작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3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김호연 작가의 [망원동 브라더스]를 읽었다. [파우스터]로 시작된 저자와의 만남이 [불편한 편의점] 시리즈에 이어 초기작까지 이르게 되었다. 역시나 저자의 소설은 잘 읽히고 재미있고 감동적이며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긴다. 어찌보면 [불편한 편의점]의 프리퀼 버전 같은 [망원동 브라더스]는 실제로 보면 얼마나 찌질해 보일지 감당하기 힘든 4명의 남자가 나온다. 이야기의 화자인 오영준은 잡지 만화 연재로 우수상을 받으며 멋지게 데뷔했지만 그 이후로 이렇다할 작품을 만들지 못했고 잡지 만화의 쇠락과 더불어 그의 삶 또한 궁핍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소설이 2013년에 나왔으니 아마도 당시 즈음부터 망원동에 핫플레이스가 많이 생겨나고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곳이 되지 않았나 싶다. 아무튼 사는 동네가 핫해졌다고 해서 주인공이 갑자기 여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니, 영준은 4층 8평짜리 옥탑방에 머물며 근근히 살아가고 있었다. 영준의 최대적은 슈퍼할아버지, 갑자기 나타나 이것 저것 참견하며 월세의 압박을 주는 빌런이다. 영준에게 어느 날 예전 출판업계의 부장이었던 김부장에게 연락이 오고 그는 캐나다에 아내와 딸을 남겨둔 채 홀로 귀국하여 영준에게 빌붙기 시작한다. 옥탑방에서의 더부살이라니 혼자 지내기도 비좁은 공간에 중년의 배나온 아저씨가 들어와 같이 지내겠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요즘 우리나라의 핫플레이스 곳곳에 때아닌 옥상, 좀 있어보이게 루프탑이라는 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예전같으면 죽은 공간이거나 간이 창고로 쓰일 만한 곳을 그럴듯하게 꾸미고 좌석을 놓으니 전망도 좋고 햇살과 노을을 감상할 수 있어서 많이 이들이 루프탑을 선호하고 있다. 사실 루프탑 이전에도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마당이나 물가에 평상을 놓고 둘러 앉아 음식을 나눠먹곤 했다. 하지만 그렇게 상에 둘러앉는 것은 요즘 세대에는 맞지 않고 유럽 여행을 다녀온 많은 이들이 야외 테이블에서 술과 음식을 즐긴 경험을 이어가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먼지 풀풀 날리는 길거리에도 테이블이 놓인 음식점을 간간히 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루프탑은 마치 산토리니의 어느 언덕에 있는 파랗고 하얀 식당의 옥상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손님을 불러 모으게 되었다. 하지만 어쩌다 한 번 그렇게 루프탑에서 밥을 먹는 것은 그럴듯 하지만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오지기 추운 루프탑에서 산다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지 않을까? 근래에는 에스프레소바도 많이 생겨서 이탈리아식의 커피를 파는 곳에 가보니 루프탑을 개방한다고 해서 커피를 들고 비상계단을 위태롭게 올라 자리를 잡았다.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근사한 분위기를 상상했는데, 어디선가 TV 소리가 지속적으로 들려왔다. 누가 스마트폰으로 방송을 보는 것인가 둘러보니, 루프탑과 옆 옥탑방 사이가 인조 대나무로 가려져 있어서 몰랐는데, 건너편 옥탑방에 사는 누군가가 보고 있는 TV 소리였던 것이다. 순간적으로 그 옥탑방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보게 되었다. 아 매일 이렇게 옆 건물 카페에서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들이 쉴세없이 떠들며 소음을 일으킬텐데, 옥탑방에 거주하던 사람은 얼마나 황당하고 지겨울까 라는 오지랖 넓은 걱정이 밀려왔다.
다시 소설로 돌아와 영준은 김부장과의 어이없는 동거가 시작된지 얼마되지 않아 일거리를 찾기 위해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K 선배의 딸 돌잔치에 가서 만화를 그려 데뷔하도록 해준 싸부를 만나게 된다. 싸부는 한때 만화계에서 꽤나 유명했던 스토리텔러였지만 이제는 퇴물에 불과하고 돌잔치에 난동을 부리는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영준은 싸부와의 2차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얼떨결에 망원동 옥탑방에 사는 것을 알리게 되고, 마치 싸부와 10년만의 재회는 영준의 옥탑방에 김부장 말고도 또 다른 동거인이 생길 것임을 암시한다. 아니나 다를까 어느 날 영준과 김부장은 옥탑방에 올라오는 계단에 죽은 사람처럼 엎어져 있는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중년 남자를 발견하게 되고, 그렇게 아내와의 불화로 집을 나온 싸부는 영준의 비좁은 방에 얹혀살게 된다. 이쯤 되면 슈퍼할아버지가 나타나 영준과 김부장과 싸부에게 불호령을 내리며 월세를 비롯한 각종 공과금에 대한 엄포를 내리는데, 김부장과는 다르게 싸부는 굽실거리지 않고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슈퍼할아버지를 멘붕에 빠지게 만든다. 이렇게 3명의 브라더스로 끝나는 것인가 싶을 때, 영준의 학교 후배였던 삼척동자가 옥탑방 근처 고시원에서 지내다가 새로 생긴 마트에서 이목을 끌기 위해 벌인 분식 먹기 대회에서 영준과 재회하게 되고, 그 대회에 참가했던 김부장은 아쉽게 삼척동자에게 패하며 옥탑방에는 4명의 빈대, 바퀴벌레 들이 머물게 된다. 이쯤되면 이게 가능한 일인가 싶기도 하고, 진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때에는 세든 방 하나에 5식구 이상이 산 이들도 많았으니 안될 것도 없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지, 도저히 안될 것 같은 상황에서도 생존을 이어가니 말이다.
영준의 옥탑방에 빈대 붙은 김부장, 싸부, 삼척동자는 각자의 삶을 영위하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한다. 김부장은 군산식 콩나물해장국을 필두로 음식점을 개업하게 되고 싸부는 결국 아내와 이혼하고 무기력해지지만 분식 먹기 이벤트에 참가했던 이웃집 아줌마를 흠모하며 기운을 내기 시작한다. 삼척동자는 비록 9급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지만 그동안 말하지 못했던 가정사를 토로하고 영준의 위로를 받으며 힘을 내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 영준은 옥탑방에 얹혀 사는 이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새로운 월세방을 알아보다가 드디어 운명의 짝을 만나게 된다. 영준과 알바의 신 선화는 서로를 알아가며 사랑에 빠지고 영준의 옥탑방에서 김부장, 싸부, 삼척동자도 만나게 된다. 평범한 이들이 일상을 영위하고자 부단히 애쓰지만 때로는 강제로 루저가 된 듯한 실의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런지 읽다보면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고 주변의 누군가가 떠오르기도 한다. 십년 밖에 안된 소설이지만 워낙 세태의 속도가 빠르다보니 지금과는 조금 다른 그때의 문화적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한다.
“일에도 삶에도 마감이 필요하다. 마감.
내가 마감을 잘 지키는 만화가가 된 것은 마감이 스스로 작품을 그려나가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억지 같지만 진짜로 마감이 되면 알 수 없는 집중력이 솟아올라 어떻게든 원고를 끝내게 만든다. 학창 시절 시험 기간 때의 벼락치기 같다. 그때의 집중력. 그게 마감이란 놈이고, 그놈이 결국 스스로를 완성한다.
반드시 작가만 마감이 필요한 게 아니다. 직장인에게 퇴직해야 할 때가 있고, 자영업자에겐 영업을 접을 때가 있고, 연인에게는 이별의 때가 있고, 군인에게는 제대가 있다. 그게 마감이다. 인생의 어느 순간에 스스로 묶어야 하는 매듭 같은 거.(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