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평점 :
[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수록작에는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김멜라 ‘제 꿈 꾸세요’, 성혜령 ‘버섯 농장’,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정선임 ‘요카타’,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이렇게 일곱 작품이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에는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들이 여러 명 있었고, 몽환적인 세상을 헤매는 것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 핫한 주제였던 젠더에 대한 소재들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다양성은 더욱 확대된 것 같아 낯설음을 반가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록된 작품들에 대한 공통된 느낌은 한 마디로 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상상해 낼 수 있을까란 경탄이다. 다소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도 녹아들어가 있겠지만 1도 염두해두지 않았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마치 원래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 그대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흘러간다는 것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한 순간에 읽고 지나친 내용을 위해서 그 몇 십배, 몇 백배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상을 받은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목경과 무경의 부모가 육아에 지쳐 권태기가 왔다는 내용이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부모들도 분명히 자녀를 돌보고 키우는 데 지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자녀를 낳아 키우기 전의 자유로웠던 때를 그리워하며 열정을 갖고 아이를 돌볼 때에는 엄격히 제한했던 것들을 즐기도록 방관할 수 있다는 사실. 때가 되면 다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혼자인 고모가 목경과 무경을 돌보며 부모 이상의 관계를 맺게 되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쌀, 보리도 되지 못한 모래인 고모가 목경과 무경을 데리고 사냥을 떠나 총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곳에서 두 남자를 만나 희롱 비슷한 놀림을 받으며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목경과는 다르게 조용했던 무경은 고모가 잃어버린 총을 찾게 되고 목경이 동경했던 고모는 무경에게 딸의 칭호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무경의 말은 섬뜩하리 만큼 성숙하며 송곳같이 폐부를 찌른다. 고모가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하게 되었다는 말. 마치 논리의 3단 논법 같은 대답을 어린 목경은 이해할 수 없지만 고모를 언니에게 빼앗겼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버섯 농장’에는 기진이 진화의 부탁으로 사기를 친 진화의 전 남친의 후배의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기진과 진화는 서로의 부모를 혐오하는 공통점으로 친해졌지만 기진과 진화의 경제적 사정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기진의 부모가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돌아가셨음에도 진화와의 사회적 출발과 관점은 달랐다. 진화는 오랜만에 만난 기진에게 전 남친의 후배가 벌인 사기행각을 설명하며 어째서 그 후배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지 설명한다. 요양원에서 마주한 후배의 아버지는 자신도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시켰는데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아비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서 자신 또한 어머니를 돌보고 위해서 부인과도 이혼을 해야 했고 남겨진 돈으로 비싼 요양원의 비용을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알려준다. 후배의 아버지의 뻔뻔한 말에 대응하지 못한 진화는 후배가 사기 친 돈을 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후배의 아버지의 차를 뒤쫓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돈을 받으러 가는 진화가 사간 참외를 먹으며 상상치도 못했던 사건이 벌어진다. 진화는 정말 어떤 의도를 갖고 후배의 아버지를 만나러 간 것일까?
‘젊은 근희의 행진’은 관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주목된다. 문희는 성소수자로 강하와의 알콩달콩한 삶을 기대하지만, 엄마가 늙으막에 더 이상 셋집에서 살 수 없다며 덜컥 빈지하방을 매수하고 세입자의 계약이 1년이나 남아 있어 문희의 집에 함께 살게 된다. 어릴때부터 제맘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해온 동생은 절대로 엄마랑 같이 살 수 없다며 문희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만 같아 얄밉기만 하다. 한동안 근희와 연락을 안하던 문희는 엄마의 재촉으로 근희에게 전화하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 급기야 우려하는 마음으로 근희의 원룸에 들어가보니 근희는 핸드폰도 나둔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근희의 폰을 통해서 동생이 신종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벗방은 아니지만 응근히 몸매를 드러내는 북튜버를 직업으로 선택한 동생이 못마땅했던 문희는 근희를 관종이라고 치부하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상대라 생각한다. 문희 몰래 근희와 연락해온 강하는 문희에게 손편지를 써서 연락해보자고 권유하고 근희의 답장을 전해준다. 엄마가 근희에게 보내는 편지를 엿보고 근희가 보내온 답장을 읽으며 문희는 동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 작품에 대한 강화길 작가의 심사평 중에 문희가 근희를 이해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세상에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지만, 또 가족만큼 서호를 모르는 관계도 없다. 게다가 상대의 새로운 모습, 내가 모르는 훌륭한 모습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건 그 사람을 판단해온 나의 오랜 괸점을 파괴해야만 가능하니까, 이 소설은 그 파괴에 대한 이야기다.(335)”
‘요카타’라는 일본어의 뜻은 다행이다 라는 말이다. 요카타 할머니로 불리는 서연화 할머니는 100세를 맞이하여 새해 첫날 관공서의 방문을 받아 사진도 찍고 지역 신문사에 소개되며 시장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덩달아 어느 라디오의 전화 인터뷰에도 섭외를 받아 요카타 할머니를 담당한 지역 사회복지사 진의 코칭을 받으며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요카타 할머니는 이름부터 나이까지 아기때 죽은 언니의 신분을 갖고 살아왔다. 자신은 이름도 없이 자라다 언니가 죽자 언니의 역사를 되물림한 요카타 할머니는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도 그러한 진실을 전해주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이렇게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를 보낸 백 살의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온전히 사실대로 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사 진의 질문에 에둘러 답하며 내용을 각색한다. 그 이유를 강화길 작가가 이렇게 설명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흔한 서사의 주인공으로 남는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경험을 애써 감춘다. 하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바로 그 부정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속내를 간직하는 것. 그렇게 진실은 그녀만의 것으로 남는다(‘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세상 속에서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건, 어쩌면 홀로 간직하는 비밀인지도 모르겠다).(336)”
신형철 평론가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작가는 서연화의 눈꺼풀 안쪽까지를 들여다보며 그의 진실을 함께 지켜낸다. 너무도 긴 시간과 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어서 다른 말로 바꿔 쓸 수조차도 없는 한 단어 ‘요카타’로 귀결되는 그런 진실을. E. M. 포스터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말하는 다른 인간을 만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딱 그런 소설이다.(345)”
‘자개장의 용도’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옷장을 연상시키는 자개장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옷장에 들어가서 눈을 감고 힘을 주며 집중을 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만, 소설 속에서의 자개장은 원하는 곳을 떠올리면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돌아올 때는 자개장의 힘을 빌릴 수 없다. 그래서 4대에 걸쳐 여성들에게 대물림되는 자개장의 용도를 알려줄 때는 항상 돌아올 때를 염두해두고 원하는 장소를 떠올려야 한다는 주의를 받게 된다. 아직은 엄마에게 자개장을 물려받지 못한 큰 딸인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에게 자개장을 빌리게 된다. 편도 교통비를 아끼는 목적으로 빌려온 자개장이지만, ‘나’는 엄마의 독촉에도 집에 가지 않는다. 자개장 덕분에 애인 비슷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을 찰나에 ‘나’는 자개장이 가진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려다 그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후 정우는 말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돌아올 것을 대비하여 떠나야 한다는 염려의 말을 뒤집게 된다. 바로 엄마에게 가장 멀리 떠난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통해서. 엄마는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을 가진 타클라마칸사막에 갔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개장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돌아올 길을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히려 멀리 떠나야먄 제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진실을 주인공 또한 돌아올 길을 생각하지 않고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2023제14회젊은작가상수상작품집 #이미상 #김멜라 #성혜령 #이서수 #정선임 #함윤이 #현호정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