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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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영 작가의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읽었다. 술술 잘 읽히고, 중간에 빵빵 터져주시고, 갑작스럽게 삶에 대해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충만한 이번 에세이는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휴식이라는 공간에 머문 듯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대도시의 사랑법] 이후 공중파와 케이블에서도 종종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책을 통해서 만나는게 제일 반갑다. 언제부터인가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번져 혹시나 나도 이미 일에 치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것조차 모르고 지내온 것은 아닐까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그와 짝을 이루는 말처럼 느껴지는 ‘워크홀릭’이라는 말이 먼저 퍼졌었다. 세상에 노는 것보다 일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냐마는, 마냥 일평생 놀면서만 지낼 수도 없기에 우리 삶에는 일과 휴식의 균형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워라벨’이라는 말도 더불어 유행하고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세대와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목표는 휴식은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휴식이라는 말은 그저 새로운 노동을 위한 잠시의 쉼에 불과했고 여가를 즐긴다는 말은 일부 여유로운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맹목적인 노동의 시대를 지나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노동 만큼이나 휴식의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순도 100퍼센트의 완벽한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자연스러워진 재택 근무와도 같은 형태로 인하여 휴가를 간다고 해도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저자도 이미 이야기의 서두와 말미에서 친구 K와의 대화에서 드러났듯이 하나의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조차도 노트북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대체 하루라도 공부 안한 날이 있기는 하냐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대체 하루라도 글쓰기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진 날이 있기는 하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그럼에도 쉼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고 우연과 운명을 가장한 친구들과의 만남을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추억록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부분에서 공감과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 첫 배낭 여행을 가서 미술관마다 개의 그림을 찾아내는 친구와의 추억과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친구를 따라 함께 한 시간들은 독자로 하여금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추억의 기록들을 다시 들춰내게 만들고 그 순간 함께 했던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나이가 들수록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를 때면 혹시나 그때 내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자책을 하게 된다. 어떤 인연과 만남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어져 버리고 그렇게 된 관계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자꾸만 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란 후회를 하게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참으로 더딘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아픔과 슬픔도 옅게 만들고 못보면 죽을 것 같이 가까웠던 사람의 얼굴도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에 빠져 표류하지 말라고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선물로 내려주는 것 같다. 그러한 기억들이 점처럼 쌓이고 쌓여 우리의 만남을 가느다란 실처럼 이어주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15)”


“감정의 경제성.

그것은 내가 이금희 선생님을 보면서 가장 자주 떠올렸던 키워드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모든 종류의 자극에 쉬이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삶은 지나온 과거나 먼 미래에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난간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의 괴물인 나라면 족히 몇 달을 잡고 늘어질 만한 사건이 닥쳐도 이금희 선생님은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다. 지금 좋으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러다 인연이 다 되면 또 후회 없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삶. 미움과 슬픔뿐만 아니라 후회, 비뚤어진 애착과 같은 감정들도 선생님의 사전 속에는 들어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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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근희의 행진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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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수 작가의 [젊은 근희의 행진]을 읽었다. 이 소설집에는 “미조의 시대”, “엉킨 소매”, “발 없는 새 떨어뜨리기”, “젊은 근희의 행진”, “연희동의 밤”, “나의 방광 나의 지구”, “재활하고 사랑하는”, “그는 매미를 먹었다”, “현서의 그림자”, “구제, 빈티지 혹은 구원” 이렇게 10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소설의 길이와 소재도 다양하고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공통적으로 이 시대 젊은이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뉴스에서 20만원을 빌렸는데 갚을 돈이 7억원으로 불어났다는 썸네일에 이어 급전을 빌려주고 살인적인 고리를 뜯어온 일당이 붙잡혔다는 내용을 보았다. 돈을 갚으라고 온갖 협박을 일삼는 이들은 극심한 생활고를 겪는 이들을 타깃으로 삼아 이런 일을 저지른 것이다. 처음 이 기사를 접하면 불법대부업 일당을 욕하면서도 대체 20만원의 생활비를 대부업체에서 빌린다는게 납득이 잘 되지 않는다. 몇 천 만원, 몇 백 만원도 아니고 20만원이면 당장의 생활비가 없기 때문이고, 그들이 대부업체의 사람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은 그들의 상황이 당장 굶어죽을지도 모를 정도의 급박함을 의미한다. 한국 전쟁 후의 극심한 가난에서 벗어나 선진국의 대열에 들어섰다고 하지만 어떤 협박을 받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20만원을 폭력배 같은 이들에게 빌려야만 하는 현실은 얼마나 비참한 것인가. 


저자의 단편을 해설하는 소유정 평론가는 여러 단편들의 주제로 부각된 주거와 고용의 불안에 대해서 강조한다. 죽와 고용은 쉽게 말해 의식주에 해당되는 말이다. 우리 사회가 이제는 1차적인 욕구에서 벗어나 2차, 3차적인 욕구를 원할 만큼 변화되었다는 말을 들은 게 벌써 십수년 전인데, 여전히 1차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불안에 떠는 사람들이 너무나도 많다. 이러한 불안에 대한 스트레스는 “나의 방광, 나의 지구”에서 나온 것처럼 과민성 방광 증세를 가중시켜 급기야 회의 중에 실례를 하게 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성인용 기저귀를 차야 하는 수모를 발생시킨다. “그는 매미를 먹었다”의 주인공인 식당 주인은 제육 덮밥과 불고기 덮밥 밖에 할 줄 모르는데 부동산 김사장의 비아냥 거림을 참아야 하고 오지 않는 손님을 기다리다 지쳐 매미 울음 소리를 내며 답답함을 견디려 한다. 결국 제목처럼 매미를 집어 삼키고 팔을 흔들며 날기를 고대하는 모습은 어찌나 처량한지, 매미를 먹은 것 따위는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일처럼 여겨지고 만다. 


“미조의 시대”에서도 무책임한 오빠를 대신해 엄마와의 주거지를 결정해야만 하는 주인공의 상황은 난감하기 그지 없다. 돈이 되고 팔리는 웹툰을 위해서 토할 것 같은 기분을 매일 느끼며 그림을 그리는 수영 언니의 생존력을 닮고 싶지 않지만, 창문을 열었을 때 걸어가는 사람의 발에 얼굴을 차일 것 같은 곳에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언니의 충고를 들어야만 한다. 얼마나 더 잔인해지고 독해져야 이 세상에서 떳떳하게 살 수 있는 것일까? 그냥 좀 나약하고 여린 사람들은 무심히 짓밟힌 루저로 살아가는 게 당연하고 스스로가 못났기 때문이라는 자책 속에 괴로워하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게 수순이 되어버린 현실…. 저자의 단편 속 주인공들의 불안을 조장시키는 이 사회의 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몸부림치지만 돌아오는 건 현실감 없는 자아에 대한 비판과 단두대처럼 목을 조여오는 생존의 위기 뿐이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 속 등장 인물들이 차라리 저자의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판타지 주인공이라면 좋겠지만, 너무나도 현실적이라서 오늘도 내가 지나친 이들 중의 하나 일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모른척, 못 본척, 어쩔 수 없다는 생각으로 지나치며 살아가도 되는 걸까? 


“사람들은 그러지. 한국은 의료 서비스가 좋은 나라라고. 뭐든 신속하고, 돈만 주면 어떤 검사든지 다 받을 수 있다고. 해외에서 의료 관광도 오는 나라잖아. 솜씨 좋고, 싸다고. 그런데 언니, 그건 의료인이 희생하고 있다는 뜻이야. 우리가 희생해서 사람들이 좋은 서비스를 누리는 거야. 그렇게 생각해본 적 있어?

없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나 같은 비의료인은 더욱 정확하고 빠른 의료 서비스를 원한다. 비급여진료가 대폭 줄어들길 원한다. 건강보험료가 더 낮아지길 원한다. 의사가 더 친절해지길 원한다. 간호사가 주사를 안 아프게 놓아주길 원한다. 24시간 원할 때 언제든지 신속하게 의료 서비스를 받길 원한다. 그런데 사영아, 너는 그런 일을 해서 돈 많이 벌거 아니야. 코로나 시국에 잘릴 걱정도 없을 거 아니야. 나는 그렇게 말하고 싶은 걸 참았다. 사영의 고통에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보다 사영은 나의 고통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을까, 그런 이기적인 생각만 들었다.(105-106)”


“부동산 매수학이라는 교과목이 있어야 한다. 적어도 중등 교육 과정부터 가르쳐야 한다. 고등 교육 과정에선 대출금을 이용한 지렛대 원리를 가르치고, 대학 교육 과정에선 임장을 다닐 때의 팁을 가르쳐야 한다. 대놓고 부동산 공화국이 되는 게 낫다. 대놓고 속물이 되는 편이 낫다. 그러면 적어도 그녀처럼 부동산 투기를 부도덕한 시선으로 바라보다 하루아침에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차라리 다 같이 속물이 되잔 말이야!(225)”


#이서수 #젊은근희의 행진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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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수 - 장류진 소설집
장류진 지음 / 창비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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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류진 작가의 [연수]를 읽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연수”, “펀펀 페스티벌”, “공모”, “라이딩 크루”, “동계올림픽”, “미라와 라라” 이렇게 6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작품 하나 지루함 없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고, 이야기가 끝나갈 때에는 아쉬움과 더불어 마치 다음 회가 기약된 것처럼 몹시 궁금해졌다. ‘연수’와 ‘펀펀 페스티벌’은 다른 작품집에서 이미 읽었던 터라 재독하며 그때와 다른 감상을 기대하게 되었고, 나머지 단편들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공모”에서 등장한 천의 얼굴이라는 이름의 회식 장소는 화자인 ‘나’가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팀장이었던 김부장과의 연결 고리가 시작된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 청탁이라는 부정적인 일은 지금에 이르러 무척이나 큰 사회적 이슈를 갖게 되었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남몰래 진행되고 있을 것이다. 원래 있었던 사자성어처럼 통용되는 내로남불이라는 말처럼 내가 누군가의 부정한 청탁에 의해서 낙오되었다면 불같이 화를 내며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겠지만, 막상 내 자식이나 나와 꽤 관계가 깊은 누군가의 취업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에게 부탁을 할 수 있다면 한 번 쯤은 넌지시 말을 꺼내보고 싶지 않을까? 팀장인 김부장을 비롯한 화자가 팀장이 되기 이전의 회식 문화는 항상 그래왔듯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음주를 통해 단합을 강조하는 형태였다. 술에 대한 개인적인 취향과는 무관하게 화자 또한 직장생활이라는 이름으로 고통의 시간을 견디어 냈다. 특히나 천의 얼굴은 딱히 음식이나 분위기가 탁월하지 못함에도 김부장을 비롯한 남자 직원들의 야릇한 시선을 자아내는 천사장의 오목한 음영으로 인해서인지 화자의 직장 회식 장소로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하지만 화자가 팀장이 되고 나서 팀의 회식은 천의 얼굴에서 2차를 하는 천편일률적인 형태에서 벗어나 와인바를 가서 분위기를 즐긴다던지, 영화를 보거나 볼링을 치는 식으로 변해갔고 천의 얼굴이 회식 장소에서 제외된 것은 화자의 의도도 어느 정도 담겨 있었다. 시간이 흘러 화자를 팀장으로 앉힌 김부장이었던 김상무가 다짜고짜 화자에게 갑작스런 인사 청탁을 하게 된다. 화자는 알만한 사람이 이런 부탁을 하는 것에 화가 나 못 들은 것으로 하겠다며 완강히 거부하자 김상무는 결국 청탁의 대상이 천사장 딸임을 고백하며 천사장이 암에 걸렸다고, 그게 다 모질게 천의 얼굴을 외면한 화자의 탓도 있다고 질타한다. 아니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리일까 분노 게이지는 더욱 올라가지만 화자는 김이사가 간곡히 내미는 입사서류를 외면하지 못한다. 자리로 돌아와 고민하는 도중 개인 트레이닝을 받던 트레이너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한 할머니 회원이 숍을 확장하는데 삼천만원의 자금을 융통해주었다는 이야기. 화자가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누군가를 무상으로 도와주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김상무의 청탁을 들어주기로 결심하며 살펴본 천사장의 딸의 이력서와 면접을 통해 만나본 결과 정말로 만나기 힘든 똑부러지게 마음에 드는 사람임을 알게 된다. 차라리 정식으로 절차를 밟아 지원을 했더라도 충분히 뽑히고도 남았을 재원이었는데, 김상무의 청탁으로 혼란스러워지 마음을 다잡고자 수년 만에 천의 얼굴을 들르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 남겨둔 서류 봉투를 찾기 위해 다시 그곳을 방문했을 때, 천사장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김상무의 뒷모습을 보게 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김상무와 천사장은 내연관계였을까? 화자가 의심했던 것처럼 천사장의 딸은 혹시나 김상무의 혼외자가 아니었을까? 란 드라마 클리세에 단골 메뉴인 소재들이 떠오르다가도, 어쩌면 김상무는 진심으로 천사장을 좋은 친구로 여기고 병에 걸린 그녀가 안타까워 슬픔에 빠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 본다. 


“라이딩 크루”는 다 읽고 나서야 첫 부분에 등장한 자매와 할머니의 경악한 반응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무슨 촬영이나 실험으로 오해할 만한, 그리고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란 의구심을 품을 만한 결말이 독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라이딩 크루를 운영하는 화자는 여타의 동호회와는 차별화된 형태로 순수한 라이딩을 즐기는 모임을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처음의 의도와는 다르게 여 크루들에게 관심을 받고 리더로서 라이딩을 진행할 때 느껴지는 만족감에 도취해 새로운 크루를 모집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었다. 현재 자신과 호감을 나눈 여 크루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새로운 크루 중에 더 마음에 드는 이가 나타나지 않을까 고대하던 찰나에 화자에게 온 DM은 화자의 망상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너무나 큰 기대에 눈이 가려졌던 것일까? 여자인줄 알았던 새로운 크루가 남자임을 알게 되지만, 이미 호감을 표현했던 터라 긴 머리의 남 크루를 받아들이게 된다. 다음 정모에서 처음 등장한 뉴 페이스는 이미 여성 크루들의 관심을 독차지하기 충분할 만큼 매력적이었고, 화자는 그동안 받았던 관심에서 벗어나자 묘한 질투심을 느끼며 새로운 크루를 견제하기 시작한다. 마치 종족 유지를 위해 거칠게 머리를 들이받는 거친 짐승의 본능처럼 화자는 여 크루들의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기 위해 무모한 시도를 하게 된다. 초보자인 남자 크루가 나가 떨어질게 뻔한 아이유 고개를 라이딩하자고 제안한다. 라이딩에 있어서는 자신이 우월함을 돋보이고 싶어 시작한 코스에서 막상 새로운 남 크루가 독보적으로 앞서나가게 된다. 당황한 화자는 아주 비겁한 방법으로 남 크루를 넘어뜨리고 그가 전동기가 달린 자전거를 타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는 그의 비겁함을 만천하에 알리겠다는 자만심에 빠져 새로운 크루를 몰아세우지만, 화자의 질타에 맞선 새 크루의 논리도 만만치 않다. 결국 그들은 서로의 자존심을 포기할 수 없어 급기야 모든 조건에 제외된 상태에서 경주를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첫 부분에 등장한 이들이 지켜본 경악할만한 장면이다. 하기야 밤이라 해도 멀쩡한 남자 둘이 허물을 벗듯 알몸으로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한다는 게 보편적인 일은 결코 아니니 말이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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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이미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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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14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었다. 수록작에는 이미상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 김멜라 ‘제 꿈 꾸세요’, 성혜령 ‘버섯 농장’, 이서수 ‘젊은 근희의 행진’, 정선임 ‘요카타’, 함윤이 ‘자개장의 용도’, 현호정 ‘연필 샌드위치’ 이렇게 일곱 작품이다. 이번에 수록된 작품에는 처음 듣는 이름의 작가들이 여러 명 있었고, 몽환적인 세상을 헤매는 것처럼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 내용들도 있었다. 그리고 한 동안 핫한 주제였던 젠더에 대한 소재들이 다소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이야기의 다양성은 더욱 확대된 것 같아 낯설음을 반가워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록된 작품들에 대한 공통된 느낌은 한 마디로 대체 어떻게 이런 이야기들을 상상해 낼 수 있을까란 경탄이다. 다소 자신의 자전적인 경험도 녹아들어가 있겠지만 1도 염두해두지 않았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마치 원래 있었던 사람의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어 그대로 진행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흘러간다는 것은 기적처럼 느껴진다. 아마도 내가 한 순간에 읽고 지나친 내용을 위해서 그 몇 십배, 몇 백배의 노력을 기울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싶다. 


대상을 받은 ‘모래 고모와 목경과 무경의 모험’에서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목경과 무경의 부모가 육아에 지쳐 권태기가 왔다는 내용이었다. 내리사랑이라고 하지만 부모들도 분명히 자녀를 돌보고 키우는 데 지치는 순간이 있기 마련이고, 자녀를 낳아 키우기 전의 자유로웠던 때를 그리워하며 열정을 갖고 아이를 돌볼 때에는 엄격히 제한했던 것들을 즐기도록 방관할 수 있다는 사실. 때가 되면 다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자식을 아끼는 부모의 모습으로 돌아오겠지만 말이다. 그 절묘한 타이밍에 혼자인 고모가 목경과 무경을 돌보며 부모 이상의 관계를 맺게 되는 내용이 이어진다. 그리고 쌀, 보리도 되지 못한 모래인 고모가 목경과 무경을 데리고 사냥을 떠나 총을 잃어버리게 되고 그곳에서 두 남자를 만나 희롱 비슷한 놀림을 받으며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 목경과는 다르게 조용했던 무경은 고모가 잃어버린 총을 찾게 되고 목경이 동경했던 고모는 무경에게 딸의 칭호를 내리게 된다. 그리고 무경의 말은 섬뜩하리 만큼 성숙하며 송곳같이 폐부를 찌른다. 고모가 할 수 있지만 하기 싫은 일을 대신 하게 되었다는 말. 마치 논리의 3단 논법 같은 대답을 어린 목경은 이해할 수 없지만 고모를 언니에게 빼앗겼다는 사실만은 확실해졌다. 


‘버섯 농장’에는 기진이 진화의 부탁으로 사기를 친 진화의 전 남친의 후배의 아버지가 있는 요양원으로 향하며 시작된다. 그리고 기진과 진화는 서로의 부모를 혐오하는 공통점으로 친해졌지만 기진과 진화의 경제적 사정은 전혀 달랐다. 그래서 기진의 부모가 교통사고로 한 순간에 돌아가셨음에도 진화와의 사회적 출발과 관점은 달랐다. 진화는 오랜만에 만난 기진에게 전 남친의 후배가 벌인 사기행각을 설명하며 어째서 그 후배의 아버지를 만나러 가는지 설명한다. 요양원에서 마주한 후배의 아버지는 자신도 아들과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성인이 될 때까지 양육시켰는데 그 이후에 벌어진 일에 대해서도 아비라는 이름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어서 자신 또한 어머니를 돌보고 위해서 부인과도 이혼을 해야 했고 남겨진 돈으로 비싼 요양원의 비용을 산술적으로 계산하여 알려준다. 후배의 아버지의 뻔뻔한 말에 대응하지 못한 진화는 후배가 사기 친 돈을 돌려달라는 말을 하지 못한 채 후배의 아버지의 차를 뒤쫓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돈을 받으러 가는 진화가 사간 참외를 먹으며 상상치도 못했던 사건이 벌어진다. 진화는 정말 어떤 의도를 갖고 후배의 아버지를 만나러 간 것일까?


‘젊은 근희의 행진’은 관종에 대한 새로운 시선이 주목된다. 문희는 성소수자로 강하와의 알콩달콩한 삶을 기대하지만, 엄마가 늙으막에 더 이상 셋집에서 살 수 없다며 덜컥 빈지하방을 매수하고 세입자의 계약이 1년이나 남아 있어 문희의 집에 함께 살게 된다. 어릴때부터 제맘대로 하고 싶은 것만 해온 동생은 절대로 엄마랑 같이 살 수 없다며 문희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만 같아 얄밉기만 하다. 한동안 근희와 연락을 안하던 문희는 엄마의 재촉으로 근희에게 전화하지만 통화가 되지 않는다. 급기야 우려하는 마음으로 근희의 원룸에 들어가보니 근희는 핸드폰도 나둔채 어디론가 사라졌고 근희의 폰을 통해서 동생이 신종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벗방은 아니지만 응근히 몸매를 드러내는 북튜버를 직업으로 선택한 동생이 못마땅했던 문희는 근희를 관종이라고 치부하며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상대라 생각한다. 문희 몰래 근희와 연락해온 강하는 문희에게 손편지를 써서 연락해보자고 권유하고 근희의 답장을 전해준다. 엄마가 근희에게 보내는 편지를 엿보고 근희가 보내온 답장을 읽으며 문희는 동생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려 노력한다. 이 작품에 대한 강화길 작가의 심사평 중에 문희가 근희를 이해하기까지의 어려움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 세상에 가족만큼 가까운 사이는 없지만, 또 가족만큼 서호를 모르는 관계도 없다. 게다가 상대의 새로운 모습, 내가 모르는 훌륭한 모습은 인정하기 싫어한다. 그건 그 사람을 판단해온 나의 오랜 괸점을 파괴해야만 가능하니까, 이 소설은 그 파괴에 대한 이야기다.(335)”


‘요카타’라는 일본어의 뜻은 다행이다 라는 말이다. 요카타 할머니로 불리는 서연화 할머니는 100세를 맞이하여 새해 첫날 관공서의 방문을 받아 사진도 찍고 지역 신문사에 소개되며 시장에서 화제의 인물이 되었다. 덩달아 어느 라디오의 전화 인터뷰에도 섭외를 받아 요카타 할머니를 담당한 지역 사회복지사 진의 코칭을 받으며 대답을 준비하고 있다. 사실 요카타 할머니는 이름부터 나이까지 아기때 죽은 언니의 신분을 갖고 살아왔다. 자신은 이름도 없이 자라다 언니가 죽자 언니의 역사를 되물림한 요카타 할머니는 인터뷰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도 그러한 진실을 전해주지 않는다. 이 소설에서 특히나 인상적이었던 부분이 바로 이렇게 한국전쟁과 일제강점기를 보낸  백 살의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삶을 온전히 사실대로 전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복지사 진의 질문에 에둘러 답하며 내용을 각색한다. 그 이유를 강화길 작가가 이렇게 설명한다. 

“그녀는 사람들에게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않는다. 대신,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흔한 서사의 주인공으로 남는다. 그런 방식으로 자신만의 경험을 애써 감춘다. 하지만 독자는 알 수 있다. 바로 그 부정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의 역사를 기억하는 방식이라는 것을. 사실과 다르게 말하고, 속내를 간직하는 것. 그렇게 진실은 그녀만의 것으로 남는다(‘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인 세상 속에서 사람을 가장 사람답게 만드는 건, 어쩌면 홀로 간직하는 비밀인지도 모르겠다).(336)”

신형철 평론가는 이런 말을 덧붙인다. 

“작가는 서연화의 눈꺼풀 안쪽까지를 들여다보며 그의 진실을 함께 지켜낸다. 너무도 긴 시간과 많은 감정이 응축돼 있어서 다른 말로 바꿔 쓸 수조차도 없는 한 단어 ‘요카타’로 귀결되는 그런 진실을. E. M. 포스터는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진실하게 말하지 않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말하는 다른 인간을 만나고 싶어 소설을 읽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딱 그런 소설이다.(345)”


‘자개장의 용도’는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 여행을 가능케 하는 옷장을 연상시키는 자개장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옷장에 들어가서 눈을 감고 힘을 주며 집중을 하면 과거로 돌아갈 수 있지만, 소설 속에서의 자개장은 원하는 곳을 떠올리면 그곳으로 이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다만 돌아올 때는 자개장의 힘을 빌릴 수 없다. 그래서 4대에 걸쳐 여성들에게 대물림되는 자개장의 용도를 알려줄 때는 항상 돌아올 때를 염두해두고 원하는 장소를 떠올려야 한다는 주의를 받게 된다. 아직은 엄마에게 자개장을 물려받지 못한 큰 딸인 ‘나’는 서울로 대학을 가면서 엄마에게 자개장을 빌리게 된다. 편도 교통비를 아끼는 목적으로 빌려온 자개장이지만, ‘나’는 엄마의 독촉에도 집에 가지 않는다. 자개장 덕분에 애인 비슷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고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을 찰나에 ‘나’는 자개장이 가진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려다 그만 거짓말을 하게 된다. 이후 정우는 말도 없이 사라지고, ‘나’는 돌아올 것을 대비하여 떠나야 한다는 염려의 말을 뒤집게 된다. 바로 엄마에게 가장 멀리 떠난 곳이 어디냐는 질문을 통해서. 엄마는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뜻을 가진 타클라마칸사막에 갔었다는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개장을 제대로 쓰기 위해서는 돌아올 길을 전혀 개의치 않아야만 제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오히려 멀리 떠나야먄 제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진실을 주인공 또한 돌아올 길을 생각하지 않고 떠나고 나서야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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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슬픔의 거울 오르부아르 3부작 3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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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르 르메트르의 [우리 슬픔의 거울]을 읽었다. 3년 전 어떤 책을 통해서 피에르 르메트르의 [사흘, 그리고 한 인생]을 알게 되었다. 놀라운 흡입력과 인간의 내면에 대한 깊은 통찰이 느껴져, 바로 저자의 다른 소설을 탐닉하게 되었다. 이어서 [오르부아르]와 [화재의 색]을 연달아 읽고 나자 오히려 너무 빨리 읽어버린 것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정도로 아쉬웠다. 언제쯤 저자의 신간이 나올까 오매불망 기다리던 차에 드디어 <참화의 아이들>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하는 [우리 슬픔의 거울] 출간 소식을 듣게 되었다. 전작을 읽었을 때도 느꼈던 부분이지만, 대체 이렇게 장대한 스케일의 이야기를 풀어나가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간을 공들여 치밀히 준비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세계사를 공부했다고 해도 또한 제1차, 제2차 세계대전이 우리나라에도 큰 영향을 끼쳤음에도 단순히 결코 반복되어서는 안 되는 지나온 역사로만 여겨왔었다. 설마 21세기에 이토록 문명화된 사회에서 끔찍한 전쟁이 다시 벌어지지는 않겠지라는 안일에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가,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것처럼 벌써 1년 째 우크라이나 전쟁이 지속되고 있다. 전쟁의 초반기에는 뉴스에서 우크라이나의 피해 상황을 어느 정도 실시간으로 보도해주곤 했는데, 요즘은 일부러 인터넷을 통해 업뎃되는 내용을 찾아보지 않는 이상은 자세한 진행 상황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새로운 뉴스를 접하기 힘들어졌다. 어차피 저 먼 나라 이야기니까 라는 식의 피부에 와닿지 않는 거리감은 우크라이나 국민들이 겪고 있는 전쟁의 참상을 외면하게 만들고, 그러거나 말거나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한국전쟁을 겪었고 비극의 틈바구니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생이별을 했으며, 그 참극의 사연을 가진 주인공들이 현재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가 먼 타국의 이야기라 해서 전쟁에 무심하다면 우리는 한국전쟁이 가져온 고통에 슬퍼할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번 작품의 시작에는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주말에 카페에서 일하는 루이즈, 전쟁의 포화 속에서 두려움에 떨지만 군의관의 천식 진단으로 죽음과 폭력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음에도 고집스레 주어진 군인의 책무를 다하려는 하사 가브리엘과 권모술수로 위장하여 온갖 교묘한 방법으로 이득을 취하는 깡패같은 병사 라울 랑그라드, 그리고 마치 디카프리오가 주연이었던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의 주인공처럼 아무런 자격도 없지만 현하지변의 말솜씨로 변호사, 선생님, 파일럿, 대변인 그리고 가톨릭 사제에 이르기까지 변신을 감행하며 사기를 치는 데지레, 마지막으로 소설의 중간에 등장하는 헌병대원 페르낭 상사의 이야기가 순차적으로 반복되며 진행된다. 처음 루이즈와 가브리엘, 라울과 데지레의 이야기가 펼쳐질 때만 해도 전쟁의 참상은 그렇게 노골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루이즈는 고약한 심보를 가진 카페 주인 쥘 씨의 가게에서 서빙을 하다가 수년 간 같은 자리에 앉아 머물다 가는 나이든 의사에게 기이한 부탁을 받게 된다. 혹시나 매춘을 시도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되는 의사의 제안은 단지 루이즈에게 옷을 벗어달라는 것이다. 루이즈는 내키지 않지만 무엇에 홀린 듯 의사의 제안을 받아들여 한 호텔 방에서 옷을 벗게 되고 그 순간 의사는 준비해 온 총으로 자살한다. 극도의 충격에 혼비백산된 루이즈는 피갑철한 알몸으로 거리에 뛰쳐나와 사람들의 주목을 받다 실신하여 병원에 실려간다.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루이즈는 의사의 아내를 만나게 되고 소식을 듣게 된 쥘 씨를 통해서 숨겨진 기구한 사연의 실마리를 잡게 된다. 루이즈가 기억하는 엄마 벨몽 부인은 극심한 우울증을 앓아 무기력하게 삶을 마감했는데, 초등 교사가 될 수 있었던 엄마가 자살한 의사의 하녀로 자원하게 된 것은 벨몽 부인과 의사가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기 때문이었고 그로 인해 아내가 있던 의사의 집에서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를 빼앗기며 삶의 의지를 소멸시켜 버린 것이 원인이었다. 


쥘 씨를 통해 기막힌 사연을 듣게 된 루이즈는 자신에게 이복 동생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복 동생의 흔적을 찾아 헤매다 그의 이름이 라울이라는 것에 다다르게 된다. 루이즈의 이복 동생이 라울이라는 사실이 밝혀지기 전에 진행된 이야기는 소심하고 유약하지만 고난을 정면으로 받아들이는 가브리엘을 괴롭히는 라울의 모습이 그려진다. 전시상황이라는 특수한 정황을 차치하더라도 양아치같은 라울의 행동은 비난받기에 충분했지만, 생존을 위한 피치못할 적응의 한 단면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가브리엘과 라울이 독일군의 공격을 받아 후퇴하던 와중에 가브리엘의 용맹한 모습에 탄복한 라울이 전과 다르게 가브리엘을 바라보기 시작했고, 아직은 얄팍한 라울의 꼬드김으로 전열에서 이탈한 그들은 곧바로 다른 부대에 발각되어 탈취범으로 수감되고 만다. 이후 독일군이 파리 가까이에 진군한다는 소식으로 인해 가브리엘과 라울을 비롯한 각종 범죄로 수감된 이들은 남쪽으로 이감 명령을 받게 된다. 전시에 형편없는 감시 인력으로 천 명이나 되는 수용자들을 탈주나 폭동 없이 이동시킨다는 것이 가능할까? 수용자들이 이감될 장소에 도착하자 그곳에서는 도저히 그들을 수용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고 그 수많은 수용자들을 먹이고 재우고 용변을 해결할 곳이 없는 진퇴양난의 상황에 빠지게 된다. 


가브리엘과 라울이 페르낭이 속한 부대원들의 통솔하에 남쪽으로 이감되는 동안, 루이즈는 쥘 씨와 함께 이복동생을 찾아 나서게 된다. 1940년이 배경이기에 피난길에 오른 수많은 파리 시민들은 자동차, 마차, 수레, 자전거가 뒤엉킨 채 공포와 두려움에 휩싸여 걷고 있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 소설의 가장 특징적이고 독보적인 부분이 기나긴 피난민들의 행렬을 묘사한 내용이 아닐까 싶다. 전쟁이란 살생 무기로 서로를 죽이고 원하는 것을 얻는 것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시간 사람들이 쌓아놓은 삶의 현장을 처참하게 무너뜨리는 것이다. 루이즈가 쥘 씨와 만난 수많은 피난민들의 행렬에서, 그리고 독일군의 폭격으로 사람들이 숨지고 가족에게서 떨어져 나간 쌍둥이와 어린 아기(나중에 루이즈가 마들렌이라고 이름을 붙이는)를 돌보게 될 때 순식간에 걸인으로 전락되는 루이즈의 상황을 통해서 우크라이나 전쟁을 너무 단순하게 생각했다는 후회와 자책이 밀려왔다. 러시아군의 폭격으로 고향을 떠난 수많은 이들이 폴란드의 국경을 넘어서는 장면들이 많이 보도되었는데, 시간이 이렇게 흘러 소설 속에 묘사된 일이 또 다시 반복되고 있다니 정말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무너지고 부서진 삶의 자리는 가장 1차원적인 인간의 행위들을 불능케 만들고 그로 인해 제대로 된 영양을 섭취하지 못하는 인간은 또 다시 쉽게 병에 노출된다. ‘vulnerable’ 이라는 단어가 그야말로 인간의 본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싶다. 


루이즈와 라울의 여정이 진행되는 중간에 데지레의 기막힌 변장술은 소설의 감초와도 같은 역할을 맡는다. 지금처럼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에 독일군의 진격으로 공포에 휩싸인 파리 시민들은 연합군이 얼마나 적절히 대응하고 있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데지레는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갑자기 연합군의 전시 상황을 시시각각 공표하는 독보적인 공보관의 위치에 오르고 엄청난 말빨로 청중을 휘어잡는다. 사실 데지레는 이미 연합군이 독일군을 대항할 수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렀고 얼마 후 파리마저 점령당하게 될 것을 짐작하면서도 불안에 떠는 기자와 시민들에게 연합군이 독일군을 잘 상대하고 있기에 걱정하지 말라는 호언장담을 하게 된다. 그가 얼마나 유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는지, 그리고 데지레의 말이 사실이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그의 발표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하지만 데지레의 가짜 역할은 언제든 빈틈이 있기 마련이고 그의 이력에 의아함을 느낀 이들이 의심어린 눈초리를 기울이자 순식간에 사라져 다시는 나타나지 않는다. 데지레는 신출귀몰하는 모습으로 갑자기 사제 복장인 수단을 입고 베로 예배당에서 프랑스 사람만이 아닌 다국적의 피난민들을 돌보며 가장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엉뚱하면서도 그야말로 기막힌 재능을 타고난 데지레의 베로 예배당은 이 소설의 주인공을 한데로 모으는 최종착역이 되고, 그들이 죽음과의 사투를 벌이며 천신만고 끝에 베로 예배당에서 마주하게 될 때 모든 갈등은 한 순간에 해소되는 듯한 클라이막스에 도달하게 된다. 전쟁은 순식간에 너무나도 많은 이들을 굶주림에 빠지게 만들고 생존의 위협을 느낀 이들이 서로를 배려하기 보다는 약탈과 폭력이 난무하는 원시시대로의 회귀를 가져오지만, 청소부와의 협력으로 소각될 뻔한 엄청난 돈을 빼돌린 페르낭이 기지를 발휘하여 수용자 천여명이 아사하지 않도록 먹거리를 사들인 일이나 데지레와 같은 사기꾼이 위급한 상황에서 자기 것을 내놓지 못하는 이들을 설복하도록 만들었기에 피난민들의 공동체가 형성되는 기적같은 일들도 생겨나게 된다. 어찌보면 전쟁과 같은 재난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극도의 이기주의자로 만들지만, 단 한 명의 헌신적인 사람으로 인해 상황은 완전히 전복되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계기와 이유가 어떻든 같에 루이즈, 가브리엘, 라울, 페르낭, 데지레는 참혹한 상황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서로를 지키기 위해 연대했기에 후대의 사람들에게 지난 시간을 돌아볼 수 있는 위대한 거울을 선물로 남겨준 것이다. 지난 역사의 거울로 자신의 민낯을 돌아보지 않는 이에게는 희망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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