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를 팝니다 - 다 아는데 왜 재밌을까 싶은 대한민국 영어 설명서(All The Korea You May Not See)
박재영 지음 / 난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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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작가의 [K를 팝니다]를 읽었다. 부제는 "다 아는데 왜 재밌을까 싶은 대한민국 영어 설명서"이다. 언제부터인지 해외여행지가 정해지면 그 나라와 관련된 여행 책자를 살펴보는 습관이 생겼다. 여행을 가기 전에 새로운 나라에 대한 정보를 얻는 것과 더불어 여행 관련 책자를 보는 것 자체가 여행의 시작인 것처럼 설레이고 재미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여행정보를 깨알같이 알려주는 여행지 설명이 지루하게 연속되는 책을 주로 살펴봤었다. 간단하고 객관적인 정보를 얻기에는 충분했지만 너무 재미가 없어서 끝까지 다 읽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 이후로는 주로 우리나라의 여행전문작가라던지, 기행문과 같은 개인적 후기를 주로 살펴보게 되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방문한 나라 사람이 직접 쓴 여행기를 읽어 본 적은 별로 없는 것 같다. 


근래에 서울의 번화가에 가면 외국인 여행객이 꽤 많이 늘었다는 생각이 들곤 했지만, 우리나라에 1년에 천만명이 넘는 관광객이 온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한류의 인기가 꽤 대단하다는 놀라움과 그렇다면 그들은 무엇을 보고 무엇을 먹기 위해 우리나라에 오는 것일까란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오는데도 우리나라 사람이 직접 쓴 외국인을 위한 영어로 쓰인 제대로 된 여행 안내서가 없다는 사실 또한 놀라웠다. 당연히 내가 해외를 갈 때 처음 접하는 천편일률적인 지역정보지와 같은 여행책자는 존재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저자의 우리나라 소개서이자 쉽게 접할 수 없는 깨알같은 개그가 접목된 주요한 정보들은 사진 한 장 게재되지 않았음에도 무척이나 재미있었다. 벽돌책처럼 600페이지가 넘는 두이지만 절반은 영어로 똑같은 내용을 번역한 것이기에 우리말로만 된 내용을 본다면 생각보다 금방 읽을 수 있은 양이다.


사실 외국인이 영어로 번역된 내용을 읽는다면 그렇게 빨리 읽지는 못할 것 같다. 저자가 예로 든 음식과 재료들을 검색하느라 아마도 시간이 배는 걸리지 않을까 싶다. 당연히 우리나라 사람이 읽게 되면 대부분의 내용은 아는 터라 술술 넘어가기는 하지만, 의외로 전혀 알지 못했던 내용들도 다수 등장하고 잘못 알고 있던 것도 꽤나 많았다. 외국인 안내가 아니더라도 짐짓 아는 척 뽐낼 수 있는 상식들도 많아서 더욱 흥미로웠다. 


외국인에게 우리나라의 좋은 곳을 보여주고 맛있는 음식을 알려주며 자랑하고 싶은 마음은 누구가 한결 같겠지만, 국뽕에 젖어들지 말고 뼈아픈 역사의 사실 또한 알려주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K팝과 K드라마와 K음식에 흥미를 갖고 우리나라를 방문한 이들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K콘텐츠의 범람과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모르겠지만 어깨가 으쓱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박재영 #K를팝니다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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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경
김화진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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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작가의 [동경]을 읽었다. 전작인 [나주에 대하여] 소설집에서 그랬듯이 김화진 작가는 사람의 감정을 읽는 데 타고난 능력이 있는 것 같다. 아주 작고 스쳐지나가는 순간이라 그 감정을 느낀 자기 자신조차도 명확히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세밀함을 누구보다고 잘 캐치해서 등장인물들의 관계성을 이어가는 데 탁월한 묘사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심각한 갈등을 읽으키는 사건이 발생되지 않아도 이야기는 이어지고 조금은 밋밋한 감이 없지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심리묘사를 따라가다보면 언젠가 나 또한 그런 감정의 상태였을 때를 저자가 적절히 설명해주는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다. 


아름, 민아, 해든 이렇게 세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연령대로 예상되며 나이 차이는 나지만 언니와 직장 선배라는 호칭에서 벗어나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직장 동료 이상의 관계를 꿈꾼다. 셋이 아니라 둘이었다면 다분히 퀴어적인 요소로 느껴질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지만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를 바라보며 일과 개인적 성향의 연관성과 성취감을 얻고자 하는 데에서 오는 세밀한 내적 묘사는 성적 관계와는 무관한 인정과 애정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다. 여자들의 우정과 남자들의 우정은 표면적으로는 사뭇 다르게 진행되는 것 같다. 물론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여자들은 남자들에 비해 스킨십을 나누는 데 머뭇거림이 덜하고 특히나 상대가 극심한 슬픔과 고통에 처해 있을 때에는 기꺼이 어깨를 내어주고 손을 잡아주며 따뜻한 체온으로 위로해주고자 한다. 반면에 남자들은 그런 위로에 익숙하지 않다기보다는 과연 그런 위로가 도움이 될까 미리 부정적으로 단정짓는 것 같다. 막상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하면 따뜻한 위로를 받고 싶다는 것을 깨달으면서도 다음 기회가 와도 선뜻 따뜻이 안아주지 못한다. 이건 생물학적 기질의 차이일까, 아니면 사회가 만들어낸 통념에 대한 무의식적인 학습의 결과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차이가 나는 것 같지만 내면적으로는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아름과 민아와 해든의 관계처럼 남자들도 똑같이 직장 상사이자 선배인 누군가가 내게 일을 가르쳐 주었을 때때 그에게 인정받고 싶어하고 나와 비슷한 상황의 다른 누군가를 더 예뻐하면 질투가 난다. 아름처럼 매사에 불안감을 느끼며 자신의 능력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남자도, 민아처럼 사업을 잘 이끌어가며 믿을만한 직원인 아름에게 기대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사무적으로 대하는 것에 익숙한 남자도, 해든처럼 아빠에 대한 상처로 부서지고 페허가 된 곳만을 찾아다니는 겉으로만 쿨녀 같은 남자도 있다. 결국 아름과 민아와 해든의 우정에 대한 이야기는 특정한 성에 대한 우정의 묘사가 아니라 아주 약간의 차이가 있더라도 인간 사람에 대한 이야기이다. 


아름과 민아와 해든이 서로에 대한 감정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채 어쩌면 유년시절에 만난 게 아니라 성인이 되어 일로 만난 사이이기에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나이가 들어서도 누군가를 만나고 가까워지고 헤어지게 되기에 서로를 이해하고 기다려주는 게 얼마나 힘들고 중요한지 알려준다. 작가가 세 명의 주인공의 마음 속에 들어가 서로에 대한 생각을 독자들에게만 알려주듯이 어쩌면 우리 삶의 모습을 무던히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오해가 생기고 갈등이 커져 다시는 안 볼 사이가 된다 하더라도 절대 개입하지 않고 묵묵히 지켜봐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실패와 성공의 유무를 떠나 조금은 용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그 누군가에게 하소연도 하고 분노도 표출하고 뒷담화도 하며 나의 감정을 풀어놓으며 응원을 요청할 때 우리는 관계가 어그러저도 다시금 살 수 있는 힘이 나지 않을까 싶다. 


소설의 말미에 이르러 셋은 일로서만 만날 수 없고 사는 곳도 다 떨어져 있기에 함께 달리기를 하기로 약속한다. 셋이 모여서 달릴 때도 있겠지만, 그럴 수 없을 때 같은 시간에 혼자라도 달리기를 멈추지 말 것. 전력질주를 30초 밖에 못하겠다는 아름의 메시지에 연속된 'ㅋㅋㅋㅋㅋ'와 '저질'이라는 짧은 답장이 아름에게는 혼자임에도 웃을 수 있고 달리기가 아닌 이유로 가슴벅찼을 것이다. 우리는 그런 친구를 선배를 동료를 만나기를 꿈꾼다. 


"아무래도 슬픔은 고체다. 내가 제일 많이 떠올리는 형태는 어릴 적 봤던 바이올린 활에 바르는 송진덩어리다. 슬픔은 마음 한구석에 송진 같은 고체 형태로 존재하다가 어떤 녹는점에서 녹아 흐른다. 액체가 되어 온몸으로 퍼지기도 하고 자칫하면 눈물이 되어 쏟아지기도 한다. 슬픔의 녹는점은 누군가의 한마디나 체온, 혹은 해질녘의 버스 정류장이나 혼자 멍하니 보내는 주말의 긴긴 낮일 수도 있다.(66-67)"


"어른이 된다는 것은 불완전함과 불확실함, 배제되는 느낌을 견디는 일을 의미한다.(모아 사너, 어른 이후의 어른) 그것은 아름이 품어온 마음 그대로였다. 어른이 되는 시간은 그런 걸로 잔뜩 채워져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기다리는 시간. 견디는 마음. 참는 눈빛. 삼키는 말. 모르는 척하는 시선. 아는 척하지 않고, 상대가 준 것까지만 받고, 상대가 모르게 더 받았어도 고마움을 견디고, 다른 것을 내밀고, 마침내 주고받고, 또다른 우리가 된다. 또다시, 또다시 생각하며. 그렇게 이어져오는 관계의 시간이 있었다.(196)"


#김화진 #동경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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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 - 개정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김진욱 옮김, 무라카미 요코 사진 / 문학사상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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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읽었다. 하루키의 소설은 거의 다 빠짐없이 읽고 소장하고 있는데, 간혹 이렇게 에세이는 아직도 읽어야 할 책들이 몇 권 남아 있었다. 어차피 원고의 내용은 같을 테지만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 개정판이 나오면 책을 팔기 위한 출판사의 노력이라는 생각과 더불어 겉표지나 디자인 같은 것들마저 유행과 감각이 적용된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운 옷을 입은 개정판은 마치 최신작처럼 산뜻하게 다가오고 이미 절판된 책의 표지는 왠지 모르게 구리다. ㅋㅋ


무라카미 하루키를 최애 작가 중의 한 명으로 생각하면서도 '소확행'이라는 줄임말의 유래였다는 사실을 몰랐다. 386세대에서 X세대로 그리고 지금의 MZ세대로 시간은 흘러가며 행복에 대한 가치관의 변화가 생겨났다. 근래에 유행어처럼 번진 '소확행'이라는 말에는 기성 세대의 성공에 대한 무리한 욕심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이라 치면, 하루키는 나이로 따지면 지금은 할아버지 연배이지만 이 책을 쓴 시기가 무려 30년 전이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어쩌면 일본의 거품 경제가 사그러들기 시작하며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은연 중에 알려주고 싶은 하루키의 깨달음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어쨌거나 이번 에세이를 쓸 당시의 하루키는 꽤나 활력이 넘치는 젊은이 같은 느낌이 팍팍 다가온다. 그리고 간간히 전해주듯이 캠브리지에 머무는 동안 태엽 감는 새 장편의 초고를 끝내며 무엇을 했는지,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는지 담백하게 전해주어 더욱 좋았다. 


하루키를 좋아하는 독자라며 다 알고 있듯이 하루키는 굉장히 성실한 작가이다. 책에도 나와 있듯이 보통 사람들이 대작을 쓰는 작가라 하면 의례히 엄청나게 불규칙적인 생활 습관이나 밤낮이 바뀐 생활패턴 또는 헤비스모커나 알코릭 중의 하나일 것이라는 이상한 선입견이 있다. 인간의 내부를 깊이 있게 파고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자기 학대는 당연한 것이 아니냐는 빈정거림도 담겨 있는 듯 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아주 젊을 때가 아니고서는 그런 악습관을 가지고 하루키처럼 많은 책을 쓰기란 불가능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온 몸을 굴리는 육체 노동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 않은 에너지가 소비된다. 무엇인가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바탕이 되어야 하고 엉덩이를 의자에 붙이고 장시간 이야기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당연히 허리가 튼튼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70대를 넘긴 하루키가 500페이지에 달하는 신작 소설을 쓸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건강 관리에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인 것인지 알 수 있는 지표이다. 


이번 책에서 보스톤 마라톤을 완주한 내용이 두 번이나 나오는데, 달리기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운동이라고 할 수 있지만 42,195km를 달린다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가 아닐까 싶다. 마라톤에 대한 정보를 조금이라도 접하게 되면 그 긴 장거리를 달리다 보면 발이 부어서 런닝화는 평소보다 큰 사이즈를 신어야 한다거나 남자의 경우 맨 몸에 셔츠만 입고 달리게 되면 꼭지 부분이 헐게 되는 아픔도 겪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키는 어떤 중요한 예식을 치루는 것처럼 마라톤을 준비하고 즐긴다. 부서질 것 같은 극한의 육체적 소모를 겪은 후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처럼 행복한 게 없다는 저자의 말은 우리 삶에서 진짜 행복은 그 누가 억지로 가져다 줄 수 없는 영역임을 명확히 드러내고 있다. 


여느 하루키의 에세이보다 아내와의 일화도 많이 등장해서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조금이 해소되는 기분이었다. 무엇보다도 재미있었던 내용은 하루키의 자동차를 누가 훔쳐간 부분이었다. 그야 당연히 일본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미국에서는 아마도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 생각되는데, 하루키가 머물렀던 마을에서는 좀처럼 없던 일이기에 이웃들도 많이 놀라는 장면이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도난된 차량은 바퀴가 다 빠진 채 휠도 망가진 상태이고, 보험사 직원은 중요한 서류를 잃어버리기도 당당하니 그야말로 빡치지 않을 재간이 있을까나 싶었다. 외국에 살다보면 그렇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자신의 언어 실력을 한탄하게 된다. 그 어이없는 보험사 직원이 인종차별을 한 건지, 아니면 원래 그렇게 무능력한 건지, 하루키의 영어 실력이 확실히 따질 정도에서 조금 모자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럴 때는 정말 모국어로 성질을 부리지 못하는 게 서럽기만 하다. 내가 잘하는 모국어로 대차게 쌍욕을 퍼부어야 속이 시원할텐데 말이다. 


마지막으로 여러번 등장하는 이웃집 고양이 고타로 또는 제임스에 대한 이야기는 하루키가 고양이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 다시 한번 알 수 있는 계기였다. 그냥 길고양이인줄 알았던 제임스는 같은 집의 또 다른 세입자가 키우는 고양이었고 한 동안 고타로가 보이지 않아서 걱정되었던 하루키가 집 주인에게 물어보자 다른 세입자가 이사가면서 데리고 갔다는 말에 놀라는 장면 또한 소소한 재미를 주었다. 그리고 하루키가 아주 오래전에 결혼하기 전부터 키웠던 고양이에 대한 소회는 마치 한 편의 아주 짧은 소설 같았다. 그런 경험을 누구나 하기는 힘들 것 같다는, 정말 소설가로서의 삶이 하루키에게 운명처럼 주어진 것은 아닌지 생각되는 고양이와의 영험한 추억담이었다. 


'이렇게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란 일상 속에서 내가 잘하는 것을 충실히 해내기 위해서 많고 긴 시간을 인내해야 한다는 자명한 사실을 재미있고 유쾌한 에피소드로 엮어낸 저자의 탁월함에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된다. 


"결국 구두쇠가 아니냐는 말을 들을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는 않다. 생활 속에서 개인적인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크든 작든 철저한 자기 규제 같은 것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꾹 참고 격렬하게 운동을 한 뒤에 마시는 시원한 맥주 같은 것이다. '그래, 바로 이 맛이야!' 하고 혼자 눈을 감고 자기도 모르는 새 중얼거리는 것 같은 즐거움, 그건 누가 뭐래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의 참된 맛이다. 그리고 그러한 '작지만 확실한 행복'이 없는 인생은 메마른 사막에 지나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136)"     


#무라카미하루키 #이렇게작지만확실한행복 #문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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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준비의 기술
박재영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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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영 작가의 [여행준비의 기술]을 읽었다. 세상에 읽어야 할 책들이 얼마나 많은지, 그리고 아직 알지 못하는 글을 잘쓰는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지 새삼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좀 더 일찍 이 책을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지만, 코로나로 인해 안식년의 해외체류 계획이 망가진 시점에 읽었더라면 아마도 코로나를 더욱 원망하며 한탄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나마 위안을 얻는다. 여행을 그렇게 즐기지 않는 것 같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여행계획을 짜기 시작하면 설렘이 밀려오며 촘촘한 시간표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여행도 어찌보면 개인적 성향과 관련이 있어 좋아하는 스타일도 여러가지고 교통과 숙박과 식당에 대한 개취도 각양각색이라 동행하는 이의 의견도 배려해야 하는 조금은 피곤한 시간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막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장소에서 예기치 못한 경험을 기대케 하는 여행은 이런 자잘한 걱정들을 뒤로 밀어둔채 불도저처럼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평소보다 과감한 지출을 강행하며 배우의 유행어처럼 "진행시켜"를 연발한다. 


특히나 해외여행에 대한 경험담은 무슨 배틀이 벌어진 것처럼 자신이 다녀온 곳의 진귀함을 드러내고 싶은 뻐김으로 점철되어 과장되거나 무용한 정보를 산발시키기도 한다. 청자는 아니꼬우면서도 내심 부러움을 감출 수 없어서 내가 다녀온 여행지를 떠올려 보지만 딱히 주목받을 만한 곳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면 갑자기 인생의 패배자가 된 것 같은 씁쓸함이 밀려와 '여행 그 따위거 개나 줘버려'라는 염세주의의 늪에 빠져들기도 한다. 뭐 아무려면 어떠하겠는가, 나도 언젠가는 근사한 곳에 가서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여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여행계획이나 짜면 어떨까? 이런 긍정적 마인드를 야기시킨 저자의 글에서도 가끔씩 '이거 자랑질이 너무 심한거 아닙니까?'라는 반발심이 불끈 솟아오른다.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내가 인솔해서 가야하는 여행에서부터 마치 여행사처럼 시간표를 짜며 동선을 예상하여 방문지와 식당의 거리를 계산했던 것 같다. 국내여행이라면 뭐 그 정도야 그렇게 어렵지 않고 돌발상황에도 충분히 대처가 가능하겠지만, 해외여행에서는 그야말로 멘붕이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지 않을까 싶다. 몇 년 전에 친구와 친구 친형내외를 모시고 나름 가이드와 같은 형태로 로마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철두철미한 계획표를 세우고 매 끼니 식사 장소와 기차표 예매, 투어 예약까지 빈틈없이 준비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황당하게도 안전의 안전을 생각하고 숙소 예약을 맡긴 여행사에서 펑크를 낸 것이다. 밤 늦은 시각에 숙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려고 하는데, 우리를 마주한 직원의 표정이 뭔가 심상치 않았다. 한 눈에도 이 시간에 올 손님이 없는데 라는 의아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이름을 말하고 숙소 예약을 했다는 말에 한참이나 검색을 하던 직원은 그런 기록이 없다며 확인을 해달라고 했다. 머리속이 하얗게 되어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어떻게 벌어질 수가 있는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혼자였다면 뭐 어디든 다른 숙소를 찾아 툴툴거리며 갔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 없는 상황이었다. 


다행스럽게 출국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여행사의 현지 직원의 연락처를 받아왔기에 급한 마음에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눌렀다. 연락을 받은 현지 직원은 그럴리가 없다며 잠시 기다리라고 했고 나의 친구와 형님 내와는 불안한 눈빛으로 하지만 괜찮을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얼마 후에 그 직원 분이 직접 호텔로 와 주었고 도대체 어디서 누가 실수를 한 것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다행스럽게 다른 호텔로 숙소를 잡아주었다. 내가 원한 위치가 아니라 동선이 조금 꼬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첫날부터 노숙을 하지 않은게 얼마나 다행인지 저절로 하느님께 감사라는 말이 나왔다. 여행 내내 그리고 다녀와서도 왜 숙소에 돈을 아끼느라 그런 곳을 예약을 했을까란 후회와 더불어 누군가의 귀한 여행을 이끈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깨달은 귀중한 경험이었다. 


답답한 일상에 지쳐갈 때, 누군가 긴 여행을 다녀와서 무용담을 늘어놓을 때, 휴가철이라 다들 어디론가 떠날 때, 나도 가고 싶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을 때 여행기를 뒤적거린다. 이번 저자의 책처럼 여행을 즐기는 사람의 소회를 읽기만 해도 어느 정도 여행에 대한 욕구가 해소되는 것 같다. 어차피 시간과 돈이 허락된다고 해도 도저히 갈 수 없을 것만 같은 여행지도 어느 여행가의 책으로 대체해도 충분한 만족감을 얻기도 한다. 반갑게도 내가 다녀온 곳을 소개하는 여행가의 글을 볼 때면 그날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하고, 아 내가 사람들이 쉽게 갈 수 없는 곳을 다녀왔구나라는 뿌뜻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나 거의 여행전문가 같은 저자가 소개한 장소와 식당은 내가 가본 곳이 거의 없어서 우와 세상에 정말 가볼 곳이 무궁무진하구라는 감탄이 터져나왔다. 그런데 저자가 아직 못 가본 곳 중의 7곳 장소 중의 하나인 영국의 레이크 디스티릭트 공원이 내가 오래 전에 가본 곳이라서 깜짝 놀랐다. 그때는 그냥 막연히 아 정말 공원이 아름답고 좋구나라는 느낌이었는데, 그곳이 사람들이 가고 싶어하는 곳 중의 하나였다니. 조금 놀랍고 나는 그때 친구 덕분에 복받는 거였구라나는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영원히 끝날 것 같지 않던 지루한 팬더믹 사태가 마무리되고 이제는 거의 예전과 다른 없이 자유로운 여행을 즐길 수 있는 때가 돌아와 지난 주말 인천공항 하루 출입국자가 12만명에 달한다는 뉴스를 볼 때면 나도 언제일지 모를 여행 출발의 날을 위해 사부작사부작 여행준비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진짜 가보지 않아도, 진짜 먹어보지 않아도 대리만족할 수 있는 기회는 넘쳐나기에 옹졸하게 다른 이의 여행 추억을 비꼬지 말고 도움이 될 정보로 귀담아 듣는 아량을 갖도록 해야겠다. 


#박재영 #여행준비의기술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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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
이미리내 지음, 정해영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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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리내 작가의 [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읽었다. 얼마 전 문보영 작가의 아이오와 작가 레지던시에서 지냈던 내용이 담긴 [삶의 반대편에 들판이 있다면]을 읽으며 엑소포닉(exophoix: 이중 언어자)이라는 말을 처음 접하게 되었다. 여러 가지 다양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긴 호흡이 필요한 소설과 같은 글을 써야 할 때면 당연히 자신에게 가장 편한 언어인 모국어를 선택할 것이다. 의외로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로 글을 쓰는 작가들이 있었고 이름이 알려진 유명한 작가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대부분 알파벳을 쓰는 유럽어를 사용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에 언어의 유사성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20대까지 자란 사람이 성인이 되어 영어로 소설을 쓴다니, 그 사실만으로도 놀라웠고 작품을 읽고 나니 감탄과 감동은 배가 되었다. 


황혼요양원에서 생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 묵미란 이라는 이름의 할머니는 일종의 자서전과 같은 부고를 작성해주겠다는 봉사자와의 만남을 통해서 묵은 이야기를 꺼내게 된다. 묵 할머니가 머무는 A구역은 치매 환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기에 할머니의 방 배정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란 화자의 의심은 묵 할머니와 같은 방을 쓰는 송 할머니의 사연을 회귀하며 충분한 납득을 시킨다. 어쩌면 묵 할머니의 회상이 아주 어린 시절부터 차례차례 진행되었다면 더욱 손쉽게 이야기를 따라갈 수 있었을텐데, 여덟 가지 인생의 각 쳅터가 시간의 흐름과는 무관하게 진행되어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기까지 시간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앞뒤가 뒤섞인 배치 때문인지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마치 흐릿하게만 보이던 묵 할머니의 삶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름 없는 여자로 살아간 여덟 가지 인생이지만, 묵미란 할머니에게는 미희의 어머니로서 비현실적인 남편을 북한에서 재회한 용말이라는 이름, 그리고 영어 이름 데버라, 그리고 용말로서의 삶을 선택하지 이전에 힘없고 나약하게 당할 수 밖에 없이 강요된 이름 간요 라는 이름이 있었다. 한 가지 이름으로만 한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은 아주 간단하게 당신의 원래 이름이 뭐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주인공처럼 마치 시대를 분활하여 살아오고 그때마다 다른 이름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면 진짜 이름을 뭐라고 대답할 수 있을까? 심지어 남파 공작원으로 파주의 수풀 속에서 기거하며 미친 여자 노릇을 할 때 그녀에게는 이름이라는 것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으니 이름 없는 여자의 인생이라는 제목이 더욱 그럴듯하게 다가온다. 


우리나라 현대사의 가장 비극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제강점기 치하의 강제노역과 수탈 그리고 위안부의 상처는 아직도 현재진행중이다. 그러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배고픔에 지친 양민들은 좌우 이념의 빗발치는 총칼에 이리저리 끌려다니가 비참한 죽음을 맞이했다. 묵미란 할머니는 한 사람이 겪기도 힘든 이러한 엄청나고 비극적인 사건들을 관통하며 다행스럽게도 그녀의 영혼만은 여전히 건재하여 용말의 남편을 만나게 해준다. 취업을 시켜준다거나 일본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거나 하는 사탕발림으로 끌려간 10대 소녀들 뿐만 아니라 용말과 미자처럼 그냥 장보러 나왔다가 납치된 그 수를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소녀들이 태평양 전쟁이 치뤄지는 동남아시아의 어딘가에 내동댕이쳐져 일본군의 소모품으로 허비된다. 그 끔찍한 순간을 대체 어떻게 버텨낼 수 있었을까? 인도네시아 스마랑에서 기적적으로 살아간 묵 할머니는 남한으로 돌아와 끼니를 때우기 위해 소년 행세를 하게 되고 부산에서 미군을 상대로 소일거리라도 얻을 요량으로 구걸을 하다가 몽키하우스라는 곳에서 머물게 된다. 


전쟁이 벌어지면 전세계 어디서나 유사한 전쟁범죄가 벌어지게 되는데, 당연히 가장 나약한 존재인 여성과 노인과 아이들이 위협의 첫 번째 대상이 되기 마련이다. 폭력과 탈취와 강간이 난무하며 마치 전쟁이라는 상황이 인간의 가장 기초적인 윤리마저 제거해버린 것처럼 군인들은 폭주한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두려움 때문인지 스스로 인간이기를 포기한 이들은 내일을 생각하지 않고 충동과 욕구에 집중하며 수많은 사람들은 영혼을 짓밟는다. 하지만 그동안 몽키하우스처럼 미군들을 위한 위안소가 있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다. 심지어 자국민들마저 그곳에 끌려온 여자들이 조국을 위해서 봉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니, 지금의 사대주의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끔찍한 사건을 연속적으로 견뎌낸 주인공은 스마랑에서 자신과 자매처럼 닮았던 용말의 이야기를 떠올리며 북한으로 돌아가 용말의 남편을 찾아낸다. 불운과 불행이 겹쳐 지독히도 고통스러웠던 주인공의 삶에 비록 가짜 행세라 할지라도 주인공에게 드디어 행복의 여명이 서서히 비춰지는 것처럼 따스하게 느껴졌다. 북한과 관련된 내용이 담긴 책을 읽다보면 자주 언급되는 것이 90년대 초반에 있었던 고난의 행군 시기이다. 북한 주민의 4분의 1이 아사했던 지독한 굶주림의 시기에 부모에게 버려지거나 부모가 죽고 남게 된 어린 아이들을 꽃제비라고 불린다는 것을 오래전에 들었었다. 그 당시의 실상을 담은 영상이나 사진들을 쉽게 볼 수 없기에 우리는 그저 막연하게 셀 수 없이 많은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었었다는 것을 숫자상으로만 헤아릴 뿐이다. 용말이 지켜보았던 실상처럼 어차피 굶어 죽을 바에는 압록강을 건너다 총살을 당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탈북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사실 지금 우리나라에서 탈북자들에 대한 일반적인 시선은 그렇게 좋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니 어쩌면 좋고 나쁘고를 떠나 그냥 관심이 없는 것 같다. 탈북자들은 좀처럼 표나지 않기가 어려운 북한 사투리로 인해 정체성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게 되고, 각박한 도시 생활에 허덕이는 남한 사람들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여력이 없는 편이다. 하지만 탈북자들이 어떤 심정으로 알몸으로 차가운 강물을 건넜는지, 중국에서 공안에게 발각되어 강제송환되지 않기 위해서 스스로 성매매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급박한 처지를 알게 된다면, 지금 우리사회에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게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 싶다. 


저자의 말에서 소설에서 언급된 사건들은 대부분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고 했는데, 읽는 내내 이건 실제로 벌어진 사건이 아닐 수 없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저자가 사료를 바탕으로 했던, 실존 인물의 경험담을 토대로 했던 묵 할머니가 마주한 사건들은 도저히 인간이 상상해 낼 수 없는 범주에 머물러 있다. 인간이 어디까지 악해질 수 있는지, 어디까지 폐인이 될 수 있는지 격동기의 시대를 살아온 이들이 직접 온 몸으로 보고 느꼈기에 가능한 서사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는 두 번 다시 이런 유사한 형태의 비참한 사건들이 일어나서는 안되기에 우리는 아픔을 견뎌내며 묵 할머니의 회고록을 천천히 꼽씹어봐야 한다. 


"첫눈에 시작된 사랑은 아니었다. 조금씩 쌓은 유대감이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것과 같았다. 배우면 배울수록 점점 더 몰입하는 기분을 느끼고 점점 더 즐기게 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것처럼, 많은 연습과 인내가 필요하다. 자장가를 흥얼거릴 때마다, 아이가 골을 부려서 달래줄 때마다, 이유식을 한 숟갈 떠 넣어줄 때마다 -아이가 삼키건 뱉건- 사랑이 안에서 조금씩 자라난다. 그 보상은 나를 깜짝 놀라게 했다. 너의 입에서 처음 나온 엄마라는 말, 네가 나를 그려서 선물로 준 '내 최고의 동무'라는 제목의 막대 인간 그림, 갑작스러운 숨 막히는 포옹, 특별한 이유 없이 잠자리에서 졸린 목소리로 건네는 사랑해라는 말. 살아오면서 나는 그토록 취약하면서도 그토록 무방비한 상태로 조건 없이 사랑하고 신뢰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196)"


"제이슨은 말했어요. 따뜻한 눈물과 천사 같은 미소, 구조센터나 유니세프 광고에서 우리가 보는 그런 이미지들은 할리우드 배우들이나 고작 1년에 한 번 아프리가 고아원을 찾는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하루도 빠짐없이 죽음과 학대와 질병을 봐야 하는 실제 일꾼과 구조원들은 눈물을 흘리는 데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여유가 없다. 날마다 먹이와 포옹과 생존을 원하는 수백 개의 작은 눈들이 자신만을 바라보고 있다. 최대한 많은 생명을 구하고 돌보기 위해서는 로봇처럼 기계적이어야 한다. 감정을 보일 수가 없고, 모든 개들에게 사랑을 보일 수는 없다. 모두를 사랑하는 건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리고 소수를 사랑하는 것은 나머지를 모두 포기하는 것을 뜻한다고 했죠.(30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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