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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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완벽한 생애]를 읽었다. 창비 소설 Q 시리즈 작품이다. 심각한 문제를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속에서 떨쳐내고 싶지만 찰나의 순간 일뿐 지속적으로 걱정과 불안이 앞다투어 지금처럼 가만히 있어도 되는거냐고 채근질을 해댄다. 당장 일어나 뭔가를 하려 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꾸만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단죄하려는 태도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책감을 전염시킨다.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그렇게라도 자신을 학대하는 순간 찰나의 자유를 느끼기에, 그 단죄의 자유에 중독되어 나와 너의 삶을 갉아먹는다. 


윤주와 시징과 미정은 모두 이별을 맞이했지만 그 이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고통스러운 순간을 인내하게 된다. 살아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인 살갗을 벗겨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고통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그러한 고통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들의 죽음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삶을 온통 휘젓고 다닐 때 파고가 높아진 마음이 가라앉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며 다 괜찮다는 납득이 절실하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회복될 수 없다. 


미정과 함께 제주도의 제2공항 건설을 반대는 집회에 누구보다도 앞선 활동가인 보경 언니라 칭하는 중년의 여성에게 숨겨진 사연 또한 이런 고통의 순간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형태의 인재로 인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생사를 달리한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 뿐만이 아니라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된 모든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한 이들이 있다면 그에 응당한 벌을 받는 과정과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포용의 연대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어서 빨리 그 이별을 종결시키라고 명령하듯 윽박지르는 모습에 인간 존재에 대한 하염없는 섬뜩함이 밀려온다. 과연 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그렇게 쿨하게 일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윤주는 오랜시간 선우와의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여전히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채로 방송작가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미정이 머무는 제주로 떠나게 된다. 제주로 떠나면서 자신의 방을 에어비엔비에 올려 시징을 손님으로 맞이하게 되고 시징에게 의도치 않게 메모를 남기게 된다. 시징은 홍콩에서 만난 은철과의 우연한 재회를 기대하며 윤주의 방이 있는 영등포에 도착한다. 윤주와 선우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는 가난에 대한 대물림의 두려움이었다. 

“돈 걱정 없이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를 배우러 해외에 나가고 비싼 영상 제작 강의를 듣는 스터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외로웠다. 자꾸만 끈이 풀리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절대로 아이는 낳지 않을 거라고, 잘 달리고 싶고 잘 달릴 수 있는데도 패배가 결정된 경기를 물려줄 수는 없다고, 다른 선수들이 매끄럽게 달리는 동안 끈을 다시 매기 위해 수시로 주저앉아야 하는 경험을 세대에 걸쳐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비참하다고, 비참하게 이용당하는 것뿐이라고.(57-58)”

선우의 끝없는 말에 언제나 그가 혼자일 것이라 믿었지만, 윤주가 다시 취업한 독립 프로덕션의 신입 피디 제안을 위해 선우를 찾아가지만, 금속 공장에서 퇴근한 후 배가 부른 아내의 함께 장을 보고 행복하는 얼굴을 보며 윤주는 완전한 이별을 깨닫게 된다. 


윤주와 미정 그리고 시징이 이별이 이유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애써 붙잡고 있던 죄책감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말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도록 인고해온 시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보기 싫은 못난 모습을 자꾸만 투영시키는 서로의 존재가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너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전해온 포용 덕분에 윤주와 미정과 시징은 손을 흔들며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떤 미안함은 편리하다는 것을 문영이 알까. 누군가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둘레에 벽을 쌓아서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열등감을 사전에 차단하는 그런 미안함도 있다는 것을.(33-34)”

우리가 느끼는 모든 삶의 상실과 실패는 마치 누군가의 미안함을 반드시 양산해내는 것 같지만, 실상 그 상실과 실패로 인해 불완전해진 것만 같은 삶의 단면 또한 생애의 한 과정이라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151)”


“이별에도 만남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

한때 나는 시간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었다. 시간이야말로 신의 몸이며 신의 언어라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에게 간절한 방식으로 시간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차피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벗어날 수 없는 어느 시절이 무거워서, 하지만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그때에 더 머물러야 한다면… 아무리 덜어내도 비워지지 않는 마음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남아 나의 오늘을 가로막는다면… 나는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시징처럼, 윤주처럼, 그리고 미정처럼.

그들은 과거를 그저 사라지는 시간으로 두지 않았다. 과거를 외면하는 방법으로 현재를 훼손하지도 않았다. 현재도 과거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생애를 충실하게 살아냈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과거를 돌보면서 현재를 지켜내는 사람. 함부로 끝내지 않고 떠밀리듯 시작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나의 생애를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 - 최진영 발문 중에서(159-160)”


#조해진 #완벽한생애 #창비 #소설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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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서수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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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를 읽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입국심사". "캠벨타운 임대주택", "골드러시", "졸업 여행", "헬로 차이나", "한국인의 밤", "외출 금지", "배영" 이렇게 8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얼마 전 읽은 문지혁 작가의 소설집이 미국 유학생과 이민자들을 배경으로 했다면, 서수진 작가의 소설집은 호주를 배경으로 한 이민자들이 이야기가 여러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미국과 호주라는 거대한 땅덩어리를 가진 영어가 공용어인 곳이 두 나라에게 아마도 가장 많은 교민과 유학생이 거주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가본 적은 없지만 두 나라에서 한동안 머물다 온 동료들이 있기에 그곳의 이야기를 자주 듣곧 했다. 전해들은 얘기들로는 각 나라의 특성이 명확히 그려지지 않기에 장점을 들을 때는 '아 그래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가고 싶어 하는구나'라고 공감하게 되고, 인종차별과도 같은 어이없는 일들의 예를 들을 때면 '대체 그런 나라에서 어떻게 살까'라는 막연한 분노가 치밀어 오르기도 한다. 


단정적일수 있겠지만 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과 서수진 작가의 [골드러시]를 읽고 보니 미국에는 유학을, 호주에는 워킹홀리데이의 비율이 높은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유학이든 워홀이든 일정기간이 지나면 비자발급에 브레이크가 걸리고 한국으로 돌아올 게 아니라면 결국은 영주권과 시민권을 획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사안이 될 것이다. 외국에서 비자 갱신을 위한 서류 준비와 발급 과정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그게 얼마나 지난하고 짜증나는 일인지. 비자 발급 관공서 직원의 갑질과 행여라도 책 잡힐까 두려워 온갖 공손한 태도를 유지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거치다 보면 비자 연장이 수락된 날 마치 엄청난 시험을 통과한 것처럼 파티라도 벌여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이런 경험이 없는 분들은 일부 잘사는 나라들의 횡포라 단정지으며 우리나라는 절대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국뽕에 사로잡혀 있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비자를 연장하려는 제3세계 국가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우리나라의 비자발급 기관도 더하면 더했지 절대로 친절하거나 인격적인 대우가 이뤄지는 공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전쟁과 정치불안이 지속되다보니 곳곳에서 자국을 탈출하여 보다 안전한 곳에서 정착하고자 하는 난민이 속출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북한 덕분에(?) 육로가 차단되어 불법밀입국자의 비율이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지만, 배를 타고 밀입국하거나 워홀비자로 입국하여 자취를 감취는 불법체류자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뉴스를 본 적이 있다. 정확한 통계는 모르겠지만 이미 우리나라의 농업 및 제조업 분야에서 외국인 노동자 없이는 수지타산을 맞추기가 불가능할 정도라고 한다.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에서 이주민 노동자들과의 삶은 불가피하고 더욱 잘 공존할 수 있는 사회적 합의의 분위기가 필요한데, 안타깝게도 우리가 미국이나 호주에서 받았던 인종차별을 대물림하듯 제3세계 사람들에 대한 적대적 시선이 팽배한 것 같다. 더군다나 몇 년 전에 제주도에 머물던 예맨 난민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도 놀랍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난민으로 인정하는 데에 동의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중에 '사람 사는 곳 어딜가나 마찬가지라고, 혹은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 지내보면 괜찮다'고 한다. 우리가 한민족이라고 순순혈통인 것처럼 떠벌였지만 막상 유전자 검사를 해보면 심지어 저 멀리 유럽과 남미의 피가 섞인 경우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결국 인종, 언어, 문화 등이 다른 것은 각자의 자리에서 적응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과 수단일 뿐 그것이 한 사람의 존재를 부정하는 가치판단의 기준의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시각적인 정보를 통해 가장 많은 판단기준을 설정하는 인간의 편협한 뇌기능은 특히나 우리날에서는 피부색으로 적대와 호의를 순식가에 갈라치게 만든다. 


문지혁 작가가 추천사에 "이민자가 꼭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이주한 사람만을 부르는 말은 아닐 것이다. 살면서 우리는 계속해서 어딘가를 떠나 새로운 곳에 도착하고, 그곳의 언어를 배우고 환경에 적응하며, 결국에는 떠나온 곳을 그리워하게 마련이므로, 따라서 서수진의 소설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국의 인물들은 단순한 디아스포라의 일원이 아니라 지금-여기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뒷표지)"라고 말한 것처럼 우리가 미국이나 호주처럼 먼 곳으로 이주하여 사는 경험을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우리는 살아가면서 학교와 직장 등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지나온 시간을 반추하고 그리워하기도 몸서치기도 한다. 그런면에서 서수진 작가의 단편 속의 주인공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민자로서의 삶에 적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으며, 행여나 좌절감에 휩싸여 모든 것을 내려놓고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순간적인 충동이 무한한 해결책이 아님을 일깨워준다. 우리는 어디에서든지 새로운 이민자의 삶을 지속할 뿐이니까 말이다. 


#서수진 #골드러시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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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편의점 -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
유철현 지음 / 돌베개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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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철현 님의 [어쩌다 편의점]을 읽었다. 부제는 “전지적 홍보맨 시점 편의점 이야기”이다. 제목은 아무튼 시리즈 같기도 하고, TV프로그램 어쩌다 사장 짝퉁같기도 했는데, 읽다보니 놀람의 연속이었다. 아니 회사에서 아무리 홍보글을 자주 썼을거라 예상해도 이렇게 전문작가 빰치게 글을 잘 써도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깨알같은 개그와 시대의 흐름을 적절히 읽어내는 통찰력 또한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들었다. 특히나 테니스 선수 나달의 루틴을 예로 든 부분에서는 카페에서 읽다가 혼자 미친사람처럼 큭큭 거릴 수 밖에 없었다. 차라리 혼자 집에서 읽었다면 그렇게 많이 웃지 않았을수도 있었을텐데, 책을 읽다가 소리내서 웃은 게 얼마만인지 모를 정도로 웃음이 터지며 갑자기 무안함이 밀려오고 혼자 실실 쪼개고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 그만 웃어야 된다고 생각하니 더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아마도 저자분이 평소에 정말 많이 꽤나 웃기는 분이 아닐까 싶다. 


사실 학생 때에는 편의점을 곧잘 가곤 했었는데, 근래에 들어서는 정말 가뭄에 콩나듯 가서 저자가 열거한 내용 중에 처음 접하는 부분도 많았다. 저자의 직장은 아마도 ‘나의 해방일지’에서 이민기 배우가 분한 극중 직업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드라마를 보면서 아 편의점을 관리하는 회사의 직원들이 이렇게 직접 매장마다 나와서 점주들과의 관계를 맺는구나 싶었는데, 책에서도 편의점 기업에 입사한 저자의 일을 소개하는 부분에서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타벅스 본사에 입사한 정직원도 한 동안 매장에서 직접 커피를 만들고 손님 응대하는 일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 신기하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편의점 본사 직원도 각 매장에서 점원으로서의 경험을 갖추어야 한다는 내용이 나와 어느 곳이든 손님을 응대하며 판매 수익을 얻는 회사들은 유사한 정책을 갖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포스기를 다룰 줄도 모르면서 매장 관리를 한다는게 어불성설이기는 하니 말이다. 


7-8년 전인거 같은데, 1월 말에 제주도에 엄청나게 많은 눈이 내려서 며칠 동안 비행기가 뜨지 못한 적이 있었다. 당시 뉴스 보도에는 결항의 연속으로 결국 불륜이 발각되기도 하는 웃지 못할 에피스도들이 전해지고 있었다. 그때에 나는 후쿠오카 여행 중이었다. 들은 얘기로는 후쿠오카에 이렇게 많은 눈이 내린 게 몇십년 만에 처음이라고 그야말로 도시 전체가 난리가 난 상태였다. 원래 일정대로라면 후쿠오카에서 벳푸까지 전용버스로 2시간 반에서 3시간이면 충분히 도착한다고 했는데,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고속도로는 아예 폐쇄가 되었고 국도로만 거의 40키로 이하의 속도로 달려 무려 8시간만에 도착하게 되었다. 계획했던 일정은 다 무너졌지만, 눈길을 천천히 달리는 버스는 나름대로의 운치와 멋이 있어 일행들 중에 불평을 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때 일본의 편의점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게 눈이 왔음에도 예약한 버스 기사님이 포기하지 않고 우리를 데려다 주기 위해 운행을 지속했는데, 대신 1시간에 무조건 15분 정도의 정차 시간을 갖았고 그 장소는 바로 편의점 주차장이었다. 


아니 편의점 주차장들이 뭐 그리 쓸데없이 넓은지, 아님 공용주차장 옆에 편의점이 있는 것인지 항상 편의점 앞에 주차를 하고 용변을 해결하고 먹을거리를 주섬주섬 사서 다시 차에 오르곤 했다. 1시간 마다 정차할 것이라 공지했기에 화장실을 가는 것에 대한 두려움도 사라져 일행들은 편의점에서 쉴세없이 팩에 담긴 사케를 사가지고 와서 마시다 잠들기의 반복이었다. 아마도 그래서 불만이 사라지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였을지도… 아무튼 그때 일본이 왜 편의점 왕국이라 불리는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저자의 글을 읽기 전까지는 편의점이 늘어나는 이유가 점점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빨리빨리 해결하는 것에 익숙해지고 조금이라도 더 편의와 편리를 중시하는 데 있다고 생각해서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다. 더군다나 개인중심주의의 일본문화가 우리나라에서도 편의점을 중심으로 확대되는 것이 아닌가란 막연한 생각도 가지고 있었다. 시장과 동네슈퍼가 사라지고 대형마트와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편의점들이 거의 모든 지역을 망라하는 것 또한 각박한 세상에 추진력을 달아주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와 흐름은 걷잡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이 또한 젖어들 수 밖에 없는 문화의 일부인 것 같다. 특히나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학생들과 직장인들에게 편의점은 하나의 도피처이자 구원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나라 밖에 없다는 +1 판매는 너무나도 매력적이라 막상 그 문구를 보고 나서는 구매를 멈출 수 없다는 사실, 또한 편의점 커피가 생각보다 맛있고 진하다는 사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병원에 있는 편의점은 단순히 편의점이 아니라 환자와 보호자 모두에게 급하게 필요한 용품과 잠깐의 쉼을 갖게 해주는 안식처라는 사실이 편의점을 킹인정케 만든다. 


“먹고 사는 일은 그렇게 심오한 겨를이 없는 그 외의 더 무수한 심오함으로 점철된 불가피한 관성과 반복이었다.(40)”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은 마음은 왜 이렇게 항상 초라하고 힘겨울까? ~~ 재선이에게 바나나맛우유는 긴 기다림을 견디게 해주는 진통제 같은 것이었고, 나에게는 친구의 부재를 선명하게 인화하는 현상액 같은 것이었다.(57)”


“‘어떤 인간’으로 인식된다는 건 한 사람의 사회적 캐릭터를 말하는 것이다. 더 넓게는 그 사람의 인생을 포괄하는 것이고 더 깊게는 그 사람의 가치를 대변한다. 그 ‘어떤’은 대개 성격, 직업, 소속, 취미, 관심, 가치관 등에 의해 결정된다. 그게 무엇이 되었건 세상의 수많은 것들 중 한 가지 대상을 마음에 품는다는 것, 뜨겁게 몰입한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삶의 전부가 된다는 것은 실로 대단한 일이다. 그 ‘어떤 인간’이라는 타이틀은 지나온 날들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앞으로 우리 인생의 나침반과도 같기에 소중하고 거룩하게 여겨야 한다.(202-203)”


#유철현 #어쩌다편의점 #돌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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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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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을 읽었다. 이미 두 편의 한국어 시리즈로 미국 유학생으로서의 경험담이 녹아들어간 내용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일었던 터라 이번 소설집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에는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고잉 홈', '핑크 팰리스 러브', '크리스마스 캐러셀',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나이트호크스', '뜰 안의 별', '우리들의 파이널 컷' 이렇게 9편의 단편이 실려 잇다. 문지혁 작가님의 소설은 거의 모든 작품들이 단숨에 몰입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가독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특히나 단편 소설의 경우 장편과는 다르게 장황한 묘사나 설명이 축약된 경우가 많아 첫머리에는 어떤 상황인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유학생이라는 공통된 분모가 있어서 그런지 주인공이 계속 바뀌어도 마치 하나의 커다란 하숙집에 소속된 이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미국은 물리적으로 10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나라이지만, 한국 전쟁에서 큰 덕을 입어서 그런지 가끔은 맹목적인 동경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전세계를 통틀어서 미국 만큼 학비가 비싼 나라도 없을텐데,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따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정착하기를 원한다. 하루걸러 총기난사 사건이 보도되는 곳이지만 마치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위협적인 곳으로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상 가서 살고 있으면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명백한 사실 한 가지는 미국 사회는 분명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원래 미국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백인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오래된 인종 차별이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백인들은 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외모만 아시안 사람일뿐 그 백인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음에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영어에 대한 거의 신앙적인 추앙심을 갖고 있기에, 미국에서 학위를 따와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어떤 절대자를 만난 것처럼 우러러 보기 마련이다. 


학력에 대한 그리고 영어와 미국 사회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동경은 막상 그곳에서 유학과 이민 생활을 하는 이들의 경험담을 듣게 되면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번 소설집에 나온 유학생들의 이야기만 해도 한국에 머물렀다면 상위 지식층이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이 유학이라는 선택을 통해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하루 하루를 견딜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묘사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학을 다녀온 이들을 무조건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자신은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선택을 과감히 결정하여 꽤 오랜시간 버티고 버텨 원하던  바를 이루고 온 것에 대한 존중과 질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소설집에 나온 주인공들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언어에 대한 고충을 그다지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오해와 멸시에서 오는 자괴감의 원인이 되어 종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지만, 몹시 진부한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학생으로서 다양한 인간군상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이번 단편들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결국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는 절대적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그 만남이 때로는 범상치 않은 깨달음을 주기에 나도 모르게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특히나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나이트호크스’의 주인공들은 자국이 아닌 타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당한 거주자로서의 자격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급격히 달라지는 현실의 타격감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유학을 간다고 하면 막연히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공부를 하기 위한 모든 제반사항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타지에 발을 딛고 마주하는 현실은 재벌집 자식이 아닌 바에야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었음에도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과도한 해석과 반응이 첨가되어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색깔의 감정에 휩싸여 과연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고뇌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록 낯선 곳이지만 새롭게 정착하려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유학과 이민은 살아온 터전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나라는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단숨에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심어놓는 것만 같다. 


“사실 비겁함은 어느 순간부터 화제의 감정에서 배제되어왔다. 정체도 전체도 알 수 없는 거대한 도시에서 타인에게 결정권이 있는 취약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비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누구나 다 비겁하기 때문에 누구도 타인의 비겁함을 문제 삼지 않고, 그러느라 자신의 비겁함마저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비겁함을 사회의 ‘관심 감정’에서 누락한 결과 우리는 내면이 붕괴하기 전에 파괴의 조짐을 예견할 수 있는 중요한 징후를 놓쳐버린 꼴이 됐다. 마음이라는 벽에 금이 가기 전, 우리 일상에는 환멸이라는 징후가 나타난다. 기대와 환상이 있던 자리엔 괴롭고 공허한 심정이 놓인다. 비겁함은 괴롭고 공허한 심정의 길목이다.-박혜진 해설 중(297)”


“이별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을 무성의하게 취급하는 인생은 많이 봤다. 우선은 나부터도 그 비겁한 이별의 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으며 에밀리의 태도에 반복적으로 놀랐다. 인간은 혼자가 되는 순간보다 ‘다시’ 혼자가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에밀리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연출하고 기어이 그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된다. 다시 혼자가 되어보겠다는 결심과 그 이행은 이별의 순간에 대한 가장 성실한 반복이자 다가온 만남에 대한 가장 온전한 환대이다. 에밀리가 용기 있게 반복한 이별의 이야기를 듣고 에밀리를 찾아다니던 ‘나’의 마음에도 작고 희미한 볕이 든다.-박혜진 해설 중(312)”


#문지혁 #고잉홈 #문학과지성사 #GOING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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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 M 위픽
김유담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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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담 작가의 [스페이스 M]을 읽었다. 위즈덤하우스 위픽 시리즈 작품이다. 표지에는 “열심히 벌어 멀쩡한 집이라도 한 채 마련하고 싶은”이라고 쓰여 있어, 거주 불안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주인공인 가사도우미 연순은 걸그룹 출신의 배우 신지유의 집에서 일한다. 우연한 계기로 신지유는 환경보호에 앞장서는 인물로 대중들에게 호감을 주었고, 일약 스타로 발돋움하게 된다. 하지만 실상은 연순이 치우고 정리하여 신지유의 집을 광채나는 깔끔한 집으로 유지했기 때문이다. 연순은 이런 어이없는 상황에 코웃음이 나지만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그저 열심히 청소를 하고 분리수거 및 신지유의 에코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가담해야만 한다. 하지만 연순에게도 고충이 있었으니, 신지유와 동거하다시피하는 곱상한 얼굴의 백수 남친이 집안을 난장판으로 어질러 놓거나 청소하고 정리해 할 일이 두배로 늘어난다는 사실이다. 소설의 말미에 드러나지만 신지유가 만나는 남자들은 하나같이 곱상한 얼굴을 갖고 있지만 게으르고 무능력한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연순에게는 남편을 암으로 떠난보낸 후 청소일과 식당일 등으로 악착같이 키워낸 딸 하나가 있다. 하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성실히 공부해서 간호대를 졸업했지만, 딸의 꿈은 가방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는 간호사를 그만두고 가죽시장의 공방에서 가방디자인을 배우며, 신지유의 흉을 보는 엄마에게 신지유처럼 살고 싶다며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세상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연순이 딸이 한 달 째 연락이 닿지 않아 전전긍긍 하는 동안에 불쑥 신지유처럼 예쁘게 낳아주지도 못하고, 넉넉한 형편에 하고 싶은 할 수 있도록 뒷바라지 해주지 못한 것에 몹시도 미안한 마음을 갖게 된다. 신지유가 한량같은 놈팽이를 내치고 방이 3개인 한강변이 보이는 좋은 아파트로 이사한 후에는 한 평생 이렇게 마음에 드는 집 하나 같지 못하고 2시간 가까이 출퇴근 시간이 걸리는 자신의 삶이 처량하게만 느껴진다. 신지유가 일정으로 집을 비운 날이면 어두워진 강변을 바라보며 믹스커피 한 잔을 마시는 것이 연순에게는 하나의 사치처럼 느껴지는 일상이 이어진다. 


하지만 딸 하나가 연락이 닿지 않아 걱정이 되는 마음에 찾아간 자취방 앞에서 하나를 찾는 경찰을 만나게 되고, 엄마 연순은 딸이 가짜 명품 가방을 만드는 공방에서 일한 혐의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해듣게 된다. 여전히 연락이 닿지 않는, 혹시나 어디서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닐까 걱정만 커져가는 차에 연순은 신지유의 새로운 남친인 이선호의 방을 정리하다가 하나의 이력서를 발견하게 된다. 연순은 공유 공간 스타트업을 하는 이선호가 대체 자신의 딸과 어떻게 아는 사이인지 추궁하다, 이선호가 만든 놀라운 공간을 방문하게 된다. 여기까지는 우리 주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실재의 가능성이 담긴 이야기이지만, 연순이 미니어처 랜드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일들이 펼쳐지게 된다. 연순은 홍채 인식과 지문 인식까지 거쳐 강남 한폭판에 있는 비밀스러운 건물에 들어간 후 안내 직원의 인도로 캡슐 안에 들어가 이상한 약을 먹고 10분의 1로 몸이 작아진다. 몸이 작아진 연순은 작아진 사람들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오피스텔과도 같은 주거지에 들어갈 수 있게 되고, 그곳은 연순을 비롯한 많은 도시인들이 꿈꾸던 바람이 살랑살랑 부는 깨끗한 거리를 산책할 수 있는 아파트 단지 같은 곳이었다. 연순은 그곳에서 연락이 닿지 않던 딸 하나를 만나게 되고, 하나는 우연한 계기로 그곳에 들어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며 미니어처 랜드의 30평 가량의 집에서 여유로운 삶을 즐기고 있었다. 하나는 그곳에서 공방이 묻을 닫기 전에 가져온 좋은 가죽 재료로 자신만의 가방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기에, 연순은 하나의 꿈을 이제라도 뒷받침 하겠다는 마음으로 그곳에 함께 머물며 신지유의 가사도우미를 지속하게 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약을 먹고 본래의 몸으로 돌아왔다가 다시금 작아지는 과정이 아무런 이상이 없는 것인지 걱정되기 시작하고, 더군다나 비밀유지가 필수적인 이러한 특수한 공간에 들어온 입주과정이 너무나도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는 사실 또한 의심스러워진다. 신지유의 거짓된 에코프로젝트의 일환인 한정판 에코백이 당근 마트에서 10만원이 넘게 거래된다는 사실을 알게된 연순은 딸에게 그 에코백을 팔아 용돈이라도 쓰라고 건네고, 하나는 에코백을 조금더 비싸게 팔기 위해 미니어처로 만든 명품백을 함께 팔려고 올렸다가 하나가 만든 미니어처 명품백이 주목을 받게 된다. 어떤 사람이 그 미니어처 명품가방을 키우는 강아지가 매도록 올린 사진이 화제가 되었고, 하나에게 또 다른 가방을 주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다. 하나는 미니어처 랜드의 삶을 마감하고 현실로 돌아가려고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다 자신이 그곳에 입주하게 된 경위를 설명하다 이선호 대표를 의심하게 된다.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 


너무나도 현실적인 주거 문제로 시작된 연순과 딸 하나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되었다가, 미니어처 랜드가 나오는 장면부터는 진짜 이런 곳이 생긴다면 어떨까라는 상상이 지속되었다. 비싼 소고기를 한근만 사도 몸이 작아지면 한 가족이 며칠 동안 먹을 수도 있고, 거의 대부분의 식재료를 조금만 소비해도 되기에 엄청 효율적일 것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제3인류]라는 소설에서 인류가 멸망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6분의 1크기로 작아지는 것이었고, 아주 오래전에는 현재 인간 보다 6배가 큰 인류가 존재했었다는 증거를 빙하속에서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가정을 토대로 현재의 인류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6배 작은 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에마슈라는 소형인간을 만들어낸다. 이후에는 에마슈를 동일한 인간 존재로 인정할 것인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와 사건들이 소설의 주요 내용이다. 이선호 대표가 만들어낸 서울 시내 가장 번화한 곳에 있는 공유 스페이스는 원래의 면적으로는 아주 소수의 사람들만 비싼 월세를 감당하며 살 수 있겠지만, 10분의 1로 축소된 사람들은 거의 모든 제반비용 역시 10분의 1 수준으로 감당하기만 하면 되기에 그동안 감히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곳에서 편안히 출퇴근을 하며 일상을 영위할 수 있었다. 저자가 소설 속에서 만들어낸 미니어처 랜드인 스페이스 M이라는 특별한 공간은 어쩌면 우리 모두가 꿈꾸는 세계의 단면이 아닐까 싶어 현실로 돌아온 연순과 하나의 마음처럼 허름한 연립주택과 자취방이 더욱 씁쓸하게만 느껴진다. 


“사람들이 살고 싶어 하는 아파트 단지의 조경을 많이 참고했어요. 이곳에 들어와 사는 사람들에게 최대한 쾌적한 환경을 제공해주고 싶었거든요. 코딱지만 한 방에서 겨우 웅크리고 자다가 깨서 출근하는 삶이 아니라 거실과 방, 화장실이 분리돼 있고 집 앞에 산책로와 조깅 코스도 마련돼 있는 그런 주거 환경이요. 그러게 꼭 대단한 부자들만 누릴 수 있는 사치가 아니길 바랐고요. 어떠세요?(99)”


#김유담 #스페이스M #위즈덤하우스 #위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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