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00엔 보관가게
오야마 준코 지음, 이소담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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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잔하면서 마음을 사로잡는 따뜻함이 느껴지는 소소한 이야기에 빠져 행복한 시간을 안겨주는 오야마 준코의 '하루 100엔 보관가게'... 일본 독자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은 작품으로 쓸쓸한 듯 차분한 이야기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책이다.


하루 100엔 보관가게는 한때는 전통가게였지만 지금은 하루에 100엔만 주면 어떤 물건이든지 맡아준다. 주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다. 100엔 보관가게를 처음 문을 열게 된 사연이 예사롭지 않다.


단 2주 만 물건을 맡긴다는 남자가 맡긴 물건은 예사롭지 않다. 남자가 떠나고 사흘 후 남자의 이름은 생각지도 못하게 뉴스를 통해서 듣게 되며 물건을 본의 아니게 맡게 된 남자는 '하루 100엔 보관가게'를 열게 된다. 차마 처분하지 못한 의문의 남자가 맡긴 물건을 찾으러 온 여자에게 주인 남자는 소년을 통해 맡긴 이제는 주인 남자 것이 된 가방을 준다.

 

 

 

부부가 헤어지면 상처를 받는 것은 자식이다. 자신을 위해 애쓰는 엄마에 대한 마음과 어리기에 좋은 것을 갖고 싶은 마음... 소년은 자신의 마음을 빼앗은 자전거를 포기해고 낡은 자전거를 타게 되는 사연이 애잔하게 다가오는 '선물 받은 물빛 자전거를 접수합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남다르다. 허나 너무 많은 돈은 때로는 부자간의 정을 시험대에 올려놓는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한 남자가 맡긴 물건을 다룬 '상자에 담긴 소중한 기억을 접수합니다', 100엔 보관가게의 주인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잠시 가게를 지킨? 남자가 100엔 보관가게를 찾은 여자가 물건을 교환한다. 주인 남자의 소중한 물건과 친구에게 자랑스럽게 말한 결혼생활의 진실이 담겨진 봉투.... 살짝 으스스한 분위기를 느꼈던 '서류에 적힌 슬픔을 접수합니다', 오래 전 집을 나간 어머니, 뒤이어 아버지가 떠나고 오래도록 혼자 살며 100엔 보관가게를 운영하며 지내는 주인 남자 기리시마 도오루가 생전 처음으로 떨리는 여성을 만난다. 도오루가 생전 처음 한 실수를 할 정도로 마음을 빼앗긴 '책 속에 담긴 죄책감을 접수합니다'까지 사람들이 100엔 보관가게에 맡긴 물건들은 각자의 사연을 담고 있다. 누구나 있을 법한 소소하지만 인간적인 이야기들이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는 책이다.

 

 

 

 

100엔 보관가게 같은 곳이 우리 주변에 있다면 나 역시도 맡기고 싶은 물건이 있다. 버리지도 못하고 갖고 있지만 때로는 버리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은 추억의 물건... 단골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종종 이용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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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제 불능 - 인간과 기계의 미래 생태계
케빈 켈리 지음, 이충호.임지원 옮김, 이인식 감수 / 김영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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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생명의 힘을 창조된 기계에 불어넣으면 우리는 기계들을 제어할 힘을

잃어버리게 된다. 기계들은 야생성을 획득하고, 또한 야생에 수반되는 의외성을

띠게 된다. 이것이 바로 모든 신들이 마주하는 딜레마이다.

-케니 켈러-


미래 사회는 인간이 더 많은 영역을 확보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반드시 기계.. 로봇이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을 것이다. 여기에 반대 의견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미래 사회를 다룬 영화, 책 등을 통해 우리가 아니 내가 바라보는 세계는 로봇에게 지배당할 수 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살짝 두려움을 갖게 되는 면이 있다. 인간의 힘(두뇌)으로 로봇을 제어하는 세계는 밝지 않다. 미래 사회... 생태계를 인간과 로봇이 어떤 식으로 만들어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케빈 켈러의  '통제 불능'... 과학, 미래, 기계, 생태계 등 평소에 다소 어렵고 난해하다고 느낀 분야의 이야기지만 미래 사회의 모습을 그려보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란 생각이 든다.

 

 

책장을 처음 여는 순간부터 케빈 켈리는 책에 담고자 하는 바를 알려준다. 서로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도 알고 보면 복잡성 과학에서 보면 같은 특성을 가지고 있다.

 

태어난 것들과 만들어진 것들, 즉 자연물과 인공물이 하나가 되어가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기계들은 점점 생물학적 속성을 띠어가고 생물은 점점 공학적 속성을 띠어간다.             -p16-


인간은 편리함을 위해 기계를 개발했다. 기계들은 단순 소모품에서 벗어나 이제는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까지 등장할 정도다. 인간이 만들어지만 인공지능 로봇은 인간에게 큰 도움을 주고 있고 로봇의 역할은 갈수록 커지며 인간과 같은 감정까지 공유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어간다. 살짝 두려움이 느껴지는 면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실생활 깊은 곳까지 인간과 로봇은 떼레야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기에 이르렀기에 미래 사회는 더욱 인간과 로봇의 공생의 중요성이 커진다.

 

수많은 벌들은 여왕벌에 의해 통치에 의해서가 벌떼 전체의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그들은 복잡하게 밀집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벌떼보다 인간은 더 복잡하고 조밀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으며 개인의 힘으로는 예상, 이해, 통제, 자각조차 할 수 없다.

 

개미와 비슷한 로봇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낸 로드닉 브룩스... 우리는 뛰어난 대용량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을 만드는 과학자들이 더 열심일 거란 생각이 들지만 브룩스는 다르다. 똑똑한 천재 로봇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단순무식한 많은 수의 개미떼와 같은 로봇을 만드는 것이 더 유용하다고 말한다. 그의 생각에 관심을 보인 NASA을 보이고 실제로 그는 '개미만큼이나 멍청하지만 개미처럼 흥미로운 로봇'을 만들어낸다. 그가 고안해 낸 로봇들은 분산 제어 구조를 가지고 있다. 상위 층이 하위 층을 통제하는 포섭구조를 가지고 있고 실제로 국가를 기계에 비교하며 국가도 건설할 수 있다고 말한다. 소련을 예로 들어 설명하는 부분을 통해 인간의 뇌를 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이끌어 준다.

 

'생각하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고 행동하는 것은 생각하는 것이다.'..........."움직임 없이는 생명도 없다."   -P111-

 

인간, 생태계, 로봇, 생물은 계속해서 성장해 왔고 앞으로도 성장해 나갈 것이다. 원래 살던 주인인 원주민들이 자연을 그대로 두고 바라보는 방식을 백인들이 침범해서 전부 없애는 과정에서 생태계는 위협을 받았다. 원래대로 복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인간은 더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해 반복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캘리포니아, 칠레, 호주는 똑같은 합성 생태계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합성 생태계를 만드는 이유는 하나다. 원래 존재하던 동식물 대신에 인간에게 제공될 소를 키우기 위해서다. 위의 세 곳 말고도 세계 여러 곳에서 더 많은 합성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생물권 창조 원리'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신이 되는 아홉가지 법칙>

 

신이기에 가능하다고 일들이 있다. 신이 될 수는 없지만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는 것은 결국 엄청난 일이다. 아홉 가지 법칙은 인간이 생활하는 사회 곳곳에서 적용되고 있다.

 

 

결코 쉽게 읽히는 책도 이해가 쉽게 되는 책이라고도 말하지 못하겠다. 그러나 기존에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다양한 분야에서 인간과 기계, 생태계를 들여다 볼 수 있어 무척이나 흥미롭다 유익하다. 광범위하게 담고 있는 책이라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지만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다양한 분야의 인물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미래의 모습을 떠올려 보게 된다. 미래 사회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고 책을 읽다보면 순간순간 놀라게 될 것이다. 평소에 관심 없는 분야에 대한 관심도를 끌어 올리며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제어를 포기하라. 그러면 우리는 인공적으로 새로운 세계들과 꿈꾸지 못한 풍요로움을 진화시킬 수 있다. 진화하도록 그냥 내버려두라. 그러면 활짝 꽃을 피울 것이다.            -p606-


문화는 우리의 신체를 따르는 반면, 신체는 문화를 따른다. 문화가 없다면, 인간은 인간 고유의 능력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p696-


어제 저녁 뉴스를 통해 페이스북 CEO 마크 주커버그가 올해 목표가 가정용 인공지능 로봇을 만드는 일이라고 한다. 가까운 미래에는 인간이 하고 있는 많은 일들을 로봇이 더 많이 대체해서 하고 있을 것이다. 인간은 원하는 것 만큼 통제하고 싶어한다. 앞으로 우리곁에 있을 기계는 더 높은 인공지능이 탑재되어 자신의 존재를 인간과 가깝게 여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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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분의 일
기노시타 한타 지음, 김혜영 옮김 / 오후세시 / 201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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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모르던 작가를 만나는 일은 늘 즐겁다. 나름 독자층을 가지고 있는 기노시타 한타의 작품을 처음 만났다. '삼분의 일'는 큰돈이 당장 필요한 어리버리한 세 명의 남자가 은행 강도를 벌이는 이야기가 흥미롭다.


계획에도 없던 살인을 저질렀지만 여하튼 2억 엔이나 되는 큰돈을 은행에서 훔친 세 남자 슈, 겐, 고지마는 '카바쿠라 허니버니'로 피신 한다. 사람의 마음이란 게 똥 싸러 갈 때와 누고 날 때 다르다고 셋이서 똑같이 나누자고 했던 약속을 뒤로 하고 더 많은 돈을 차지하기 위해 다소 어리숙한 웨이터 고지마의 몫을 줄이기로 한다. 문제는 고지마가 한 번 욱하면 물불 안 가리는 성격이란 것이다. 슈와 겐의 생각과는 달리 도리어 고지마의 위협에 무릎을 끊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는데...


세 명의 은행강도가 어떤 식으로 돈을 나눌지도 궁금하지만 이들을 바라보는 유령이 된 마리아란 여인의 시선이 스토리의 재미를 더해준다. 마리아 역시 은행 강도 사건의 계획단계부터 깊숙하게 개입된 인물이지만 초반에 죽음을 맞아 세 남자의 움직임과 주변상황을 지켜보며 그들을 관찰한다.


스토리가 진행될수록 곳곳에서 배신이 난무한다. 서로가 처한 상황이 최악이다 보니 그들은 돈을 포기할 수도 그렇다고 목숨을 내놓을 수도 없다. 살아서 돈을 가져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부분 조연에 불과하다. 몇 사람이 만들어 놓은 게임 안에서 자신이 주인공이라 발버둥치지만 알고 보면 모든 상황을 지켜보며 수를 읽고 자신들의 뜻대로 만들려는 사람이 있다. 악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 지휘하는 게임에서 졸로 움직여야 하는 것이 무엇보다 그들을 옥죄인다.


돈 앞에서 믿음이 끊어지며 각자 돈을 차지하고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인간의 추악함이 반전의 반전이 계속해서 일어나며 개인이 가진 진실이 들어나며 누가 돈을 차지할까? 흥미롭다. 천만 관객을 넘은 '도둑들'과 비교해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 인물 개개인이 가진 캐릭터도 강하고 스토리도 좋다. '카바쿠라 허니버니'란 한정된 공간에 모여 있는 인물들로 인해 다소 단조롭게 끝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된다.


새해가 되면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중에 혹시 하는 마음에 넣게 되는 것이 로또 당첨이다. 일확천금을 노린 세 남자의 기상천외한 완전범죄... 그들의 운과 성공을 빌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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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관의 살인
손선영 지음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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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너무나 좋아하는 장르의 책들은 거의 외국 작가의 작품들이다. 아무래도 우리나라 장르소설은 아직은 약하다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다. 간혹 재밌게 읽은 작품도 만나긴 하지만 그럴 경우는 드물어 아쉬움을 늘 가지고 있다.  


'십자관의 살인'은 아야츠지 유키토의 '십각관의 살인'을 오마주한 손선영 작가의 책이다. 손선영 작가의 책을 두 권 읽고서 나름 좋았기에 십자관의 살인에 대해 기대감을 안고 읽기 시작했는데 다 읽고 난 지금의 느낌은 생각보다 괜찮다는 것이다.


주인공은 도일, 아가사란 예명을 쓰는 남녀라고 볼 수 있다. 예명에서 보듯이 그들이 좋아하는 분야의 책이 무엇인지 감지가 될 것이다. 두 사람은 의기투합하여 연희대학 추리소설연구회를 이끌어 오고 있다. 4년이란 시간 동안 사랑했던 연인 관계였던 두 사람이 아가사의 심리적 상태로 인해 헤어지고 이제는 좋은 동료로 지낸다. 새로운 연인 도로시 역시도 추리소설연구회 회원으로 두 여자에 대한 명확한 자신의 입장을 밝힌 적은 없지만 현재는 도로시를 사랑한다.


막강한 부를 가진 게임업체 상속녀인 아가사의 경제적 도움으로 추리소설연구회 회원들과 모리스 교수까지 함께 3박 4일로 '살인 엠티'란 이름으로 섬 반구도로 추리여행을 떠난다. 아가사는 추리 게임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머더 키트를 나누어주며 한 가지 것을 사용하면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장치를 두며 추리게임을 시작한다. 헌데 즐겁자고 한 추리게임이 실제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 커피를 마신 청산가리에 의해 동료가 죽자 모두들 경악하고 마는데...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다 아는 도일, 아가사, 도로시, 심농, 마플, 김전일, 코난, 모리스... 이름을 예명으로 사용한다는 것 자체부터 호기심을 자극한다. 예명 뒤에 숨은 그들의 실체는 무엇이며, 누가 무슨 이유로 살인을 저지르는지 궁금해진다. 여기에 납치 되어 있는 한 사람... 자신이 남자라고 믿었지만 여자인 그는 누구이며 그가 생명의 위험을 느끼게 되는 검은 실체의 비밀은...


책에 나온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작가 미야베 미유키, 히기시노 게이고의 작품을 나도 좋아한다. 미미여사의 작품이야 지금도 무한 애정을 갖고 있으며 예전만큼의 재미는 덜하지만 히가시노 게이고의 사회성 짙은 작품은 호불호가 갈릴 때가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책이 나오면 찾게 되는 작가다. 두 작가와 달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추리작가하면 명확하게 떠오르는 사람이 아직 없다. 나름 재밌게 읽은 작품도 있지만 드문 일이라... 손선영 작가의 이번 작품 난 나름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에 혹시 하는 생각을 했던 결말과 아주 어긋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려는 작가라 늘 기대가 된다.

진실은 여러 얼굴을 가졌어. 그래서 하나의 진실이라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얼굴을 드러내곤 하지.   -p64-


아무리 곱해도 곱할 수가 없어 주저하게 된다네.

반대로, 나누려고 하면 그렇잖아. 답은 하나라고.

그렇다고 더하거나 빼려고 하지 마. 똑같이.

열다섯 범만 바꾸어봐. 답은 이미 정해져 있으니까.                       -p1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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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의 도서관 - 황경신의 이야기노트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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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 열한 시, 반짝반짝 변주곡 등을 통해 깊은 인상을 남긴 황경신 작가의 신작 '국경의 도서관'은 '초콜릿 우체국'의 두 번째 이야기다. 황경신 작가의 책은 나름 여러 권 읽었는데 초콜릿 우체국은 읽지 못하고 '국경의 도서관'을 접했지만 서른아홉 편의 이야기들은 책장을 술술 넘어가는 독특한 매력을 느끼게 해준다.


한 편 한 편이 다 인상 깊지만 그 중에서 몇 편을 이야기는 책을 덮고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첫 번째 이야기 '바나나 리브즈'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 대신 해주는 직업을 가진 여자가 아무 조건을 내 놓지 않은 감독의 부탁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비행기 안에서 오래전 잠깐 여행에서 만난 여자가 자신의 아이를 낳고 기른 아이가 벌써 열두 살이나 된 남자를 만나며 이야기를 나눈다. 화자는 의뢰인으로부터 여행지의 느낌을 단어로 말해 해주기로 했는데  감독은 자신이 원한 컨셉트를 잡았다며 화자에게 자유로이 여행을 권한다. 다른 사람의 여행을 대신 해준다는 직업이 흥미롭게 느껴졌으며 아닌 밤중에 홍두깨처럼 갑자기 자신도 모르던 열두 살 아들이 있다는 남자의 이야기에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삶도 있구나 싶다.


수시로 여행 가방을 싸는 여자와 그런 여자를 기다리는 남자의 이야기 '너무 많은 구두 너무 많은 계단'... 여자의 가방 안에 구두가 다섯 켤레나 담겨 있는 이야기를 듣는다. 남자는 여자를 위해서 의자를 ⁠만들어 여행에서 돌아오면 여자가 쉴 수 있게 해주는 두 사람만의 사랑의 방식을 풀어 놓은 이야기가 흥미롭다. 떠나도 항상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행복하다기에...

셰익스피어의 비극 '로미오와 줄리엣'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헌데 로미오와의 영원한 사랑을 위해 로렌스 신부의 도움으로 잠시나마 죽음의 묘약을 먹고 잠들어 있으려고 했던 줄리엣이 유언장을 남긴 '줄리엣의 유언'... 무엇보다 이제 겨우 열네 살을 맞는 사랑에 빠진 줄리엣의 모습이 상상이 간다. 불안감에 휩싸여 약을 먹으려는 그때 혹시나 잘못되어 죽는다는 전제로 유언장을 작성하게 되는데 이 내용은 그 나이와 줄리엣이 처한 상황과 심정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어 인상 깊다.


불멸의 작가 괴테의 대표작품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서 베르테르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지만 그가 죽으며 깊은 상처를 갖게 된 로테의 심정을 담은 '베르테르의 순정에 대한 로테의 입장'⁠을 읽으며 한 사람의 사랑을 받는 것이 좋은 것만이 아니라 사랑이란 것이 서로 원할 때 느끼는 감정이어야 함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된다. 베르테르의 죽음 후 로테와 남편은 틈이 벌어진다. 베르테르의 아기를 임신한 B양과 찾아와 함께 살게 되면서 다른 사람의 눈에는 다소 어색해 보이는 가족의 모습을 갖는다. B양이 아이를 낳고 베르테르란 이름을 붙이며 사랑을 쏟으며 진짜 행복이란 것을 느끼며 산다. B과가 로테가 마지막 의식과 같은 베르테르의 편지를 없애는 과정에서 남편과 베르테르가 돌아온다. 무엇보다 로테가 자신의 삶에 대한 짧지만 진솔하며 진정한 사랑의 본질을 무엇인지 이야기 하는 대목에 공감이 간다. 


이외에도 사람의 마음을 딱 한 번이지만 살 수 있다면 난 어떤 마음을 살까? 생각해 보게 만들었던 '마음을 사다', 헤르만 헤세의 자전적 소설 '데미안'을 낼 때 필명인 에밀 싱클레어의 초대를 받은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무거운 꽃' , 간절히 경매에서 상자 하나를 낙찰 받고 싶었던 여자의 소망을 다룬 '죄송하지만 주문은 취소할게요', 책의 제목이자 마지막 이야기인 '⁠국경의 도서관'은 매년 11월 11일 밤 11시에 열리는 낭독의 밤에 이미 오래 전에 죽은 셰익스피어가 나온다는 살짝 섬뜩하면서 진짜로 이런 일이 일어나는 도서관이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하나하나의 단편이 가진 이야기는 색다르고 매력적이다.


멋진 책이다. 밤 열한 시를 읽으며 빠져들어 단숨에 읽었던 느낌을 '국경의 도서관'을 읽으며 다시 확인하게 되는 책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작품, 문인, 음악가, 인물들을 다른 시선으로 풀어 놓는 이야기는 흥미로움을 떠나 좀 더 긴 중장편 소설로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별은 커피 한 잔을 마시는 일과 같아. 너무 성급하게 마시면 마음을 데고, 너무 천천히 마시면 이미 식어버린 마음에서 쓴맛이 나. 이별을 잘 견딜 수 있는 방법 같은 건 없어. 하지만 겁먹을 필요도 없어. 지금 네가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그 마음을 다하면, 시가니 흐른 후에도 향기는 남는 거니까.   -p182-


⁠지금은 갖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지금 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지금 만나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 지금 이 순간에만 반짝이는 것, 그대가 망설이는 사이에 지나가버리는 것, 영영 돌이킬 수 없는, 그런 것. 그건 어쩌면 앞으로도 영원히 하지 않을 말.                                 -p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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