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국의 진짜 공부 - 10대를 위한 30가지 공부 이야기
강원국 지음 / 창비교육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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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받기 시작한 40분 수업은 다음 단계의 학교로 진학하며 5분씩 늘어나 수업 시간을 견디느라 애를 썼다. 60여 명이 함께하는 선생님의 일방적인 교실 수업은 인내하는 법을 먼저 가르쳐 줬다. 선생님 설명을 듣다 졸기라도 할라치면 선생님의 분필 조각은 여지없이 날아왔고 석류 알처럼 붉어진 얼굴로 수업을 받아야 했다. 당시에는 학령기 친구들이 학교를 가니 덩달아 학교를 갔고 울며 겨자 먹기로 시험 대비용 공부를 하며 요행을 바라던 시절을 거쳐 33년 남짓 중고생을 가르쳐 왔다. 배움을 통해 학생과 교사가 동반 성장하는 교학상장의 의미를 조금씩 느끼며 많은 학생들을 만나고 이별하였다.

어쭙잖은 지식과 경험으로 교단에서 가르침의 시간이 쌓일수록 부족함을 채워야 할 것들이 사방에 있음을 알아차리고 관련 도서를 읽으며 지적 호기심을 충족해 갔다. 처음에는 학생들을 잘 가르치기 위하여 책을 보기 시작했다면 이제는 앎의 영역을 확장하여 내용을 심화하는 공부로 소소한 행복을 발견하며 지낸다. 교과서만 파고 드는 책상물림에서 벗어나 세상 물정을 알기 위하여 힘쓰고, 시대적 흐름을 통찰하는 역량을 갖춰 세상과 호흡하며 나아가는 과정에 공부는 필요하다. 공부하는 습관이 배인 자기 주도형 학습자로 자기 관리를 체계화하는 방법 서른 가지를 담은 책‘진짜 공부’는 학교와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는 기계처럼 생활하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학생들과 상담을 하다 보면 공부를 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공부를 못하겠다며 탄식하면서도 바닥을 짚고 일어날 생각은 별로 안 하는 듯하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의 차이는 자기가 알고 있는 앎의 영역의 유무에 따른 메타인지의 차이에 있다. 모르는 부분이 있어 이해가 안 되는 경우에는 이해를 돕기 위한 방법을 찾아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도록 시도와 도전을 거듭해야 한다. 이해 못한 부분을 이해할 수 있다는 자기 암시의 기회를 제공하며 익히는 과정이 쌓여 나만의 곳간에 배경지식이 축적되도록 지적 호기심으로 물음을 던지고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공부하고, 공부한 것을 말하면서 배운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가는 여정 속에 공부는 앎의 기쁨으로 이어진다.

하루아침에 떠오르는 영감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영감은 기억하는 것들이 서로 융합하여 만들어진다는 말에 공감하며, 관심과 애정으로 일상을 관찰하는 자신을 그려본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어휘력을 풍부히 해야 한다는 말은 보편적인 진리처럼 자리한다. 스마트폰 상용화로 점점 활자와 멀어지는 세대의 미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글을 감상하는 능력인 문해력이 떨어져 어떤 물음을 해결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유치원 때부터 문해력 강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고 있다.

책을 읽으며 필자와 교감하고 대화하며 기억한 내용을 표현하는 공부는 호기심 충족을 위한 카이로스의 시간을 채운다. 타인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은근하고 끈기 있게 자기를 변화시켜 갈 공부를 찾는다. 실패를 두려워 말고 관심 분야에 도전하는 지적 호기심으로 책을 읽고 사색하는 가운데 내면의 힘을 강화하며 자신만의 스토리를 갖춰나갈 수 있을 것이다. 됨됨이가 훌륭한 사람으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방도를 찾고 세상 돌아가는 이치를 찾아 골몰하여 탐구하는 진짜 공부는 정해진 틀에 매이지 않을 마음에서 시작된다. 유혹의 손길이 뻗칠 때마다 마음을 다잡고 꾸준한 연습을 통해 지혜와 판단력을 발달시키는 사람으로 타인과 협력하고 연대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우리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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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이 너에게 다가오는 중 문학동네 청소년 51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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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가 내리는 운동장, 가랑비에 옷 젖는 줄도 모른 채 아이들은 공을 찬다. 열다섯인 아이들은 축구 국가대표 선수 꿈을 품고 예닐곱 살 때부터 공을 차기 시작한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축구공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상대 진영의 수비를 뚫고 골을 넣었을 때의 짜릿함을 몸으로 기억하며 행운이 함께한다면 일이 잘 풀릴 것이라는 기대를 안고 사는 아이들과는 달리 살기 위하여 운동장을 찾은 은재가 떠오른다. 살아갈수록 인생은 원하는 대로 살아지는 게 아님에 통절하면서도 이보다는 나빠질 리가 없다는 희망을 안고 살아야 할 이유를 찾는다. 미성년인 자녀를 안전하게 보육하여 건전한 사회인으로 성장할 환경을 조성하는 몫은 어른 몫일진대 어떤 책임도 지지 않은 채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가 있어 울울하다.

저녁 때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라고 노래한 시인의 시구는 돌아갈 집을 지옥으로 여기는 이들의 아픔을 덜어주지 못한다. 일과를 마치고 고단한 몸을 붙들고 돌아갈 집이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행복해진다는 시구절과는 달리 은재의 나날은 우려가 크다. 매일 같이 폭력을 행사하는 괴물 같은 아빠를 피해 도둑처럼 복도식 아파트 창문을 떼어내고 집으로 들어가려는 은재에게 집은 휴식은커녕 마음대로 들어갈 수도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를 목격한 형수와 우영은 춥지 않은 날에도 검은 카디건을 입고 올 수밖에 없는 은재의 상황을 알았지만, 은재가 강단지게 쐐기를 박는 바람에 누구에게도 발설할 수 없었다. 공부보다는 게임을 좋아하는 단짝은 은재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었지만, 본인이 극구 원하지 않는 일을 나서서 행할 정도로 배짱이 있지는 않았다.

남편의 학대에 지쳐 집을 나간 엄마의 빈자리를 느낄 새도 없이 딸 은재는 아빠와 지내며 지옥의 불구덩이에 빠져 헤어나기 힘든 시간을 견디며 이대로 삶이 끝날 수도 있겠다고 여긴다. 은재는 아빠의 주먹‧발길질이 그녀의 영혼을 갉아먹고 기력을 빼앗아 자신을 무력하게 만들지만 그래도 아직은 살아 있다며 지옥 같은 시간을 잊기 위하여 운동장을 달린다. 한껏 달리다 굴러온 공을 차자 열 명의 선수로 경기를 뛸 수도 없는 상황인 여중 축구 감독 눈에 은재가 들어왔다. 축구 국가대표를 꿈꾸며 선수 생활을 한 감독은 유지조차 힘든 축구부를 운영하며 전전긍긍해 왔던 터라 경기를 뛸 수 있는 선수 확보가 먼저였다.

‘인생은 자주 장난질을 하고, 나는 아주 가끔 기회를 던져 준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어떤 기회가 왔는지 알지 못한다.’

한쪽 문이 닫히면 어느 한쪽 문이 열린다고 했던 것처럼 최 감독이 은재에게 건넨 동그란 축구공 열쇠고리는 지금의 가정 폭력을 끝낼 대안의 열쇠처럼 보인다. 그동안 가정 폭력의 사슬을 쉽게 끊어내지 못한 채 살아야 했던 은재는 보랏빛으로 멍든 팔다리의 흔적을 지우고 싶은 마음으로 운동장을 힘껏 내달렸다. 은재는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단말마의 고통을 견디며, 폭력의 상처를 지우고 싶은 바람에 갑갑한 밀실을 벗어나 광장을 내달렸다. 한 팀을 꾸려 선수들이 경기에 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던 최 감독에게 은재의 특별한 재능은 팀 회생으로 새롭게 도전할 계기로 작용하였다. 작은 행운을 건네고 싶은 나는 은재가 축구로 자신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싶었다.

자신감을 잃고 위축된 시간을 보내던 우영에게 지금 있는 그대로도 괜찮다며 용기를 주는 지유의 넉넉한 마음과 배려에서 깊어진 내면을 가늠한다. 우영은 부모에게서 배우지 못한 사랑을 주고받는 법을 배우며 자존감을 회복하여 갔다. 운동장에 나오지 않는 은재를 걱정하는 형수와 우영, 지유는 은재의 집을 찾아 빗장이 걸린 문을 두드려 소통하기를 바랐다. 술에 찌든 은재의 아버지는 외부의 자극에 격하게 반응하며 감금된 딸의 영역을 침범하지 말아 달라고 소리쳤다. 아버지의 폭력 행사에 속수무책으로 당하면서 학대의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살아내는 은재에게 친구들과 최 감독은 대안을 찾도록 돕는다.

경찰서에 가정 폭력 신고를 하였을 때,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던 경찰들은 멍 자국이 가득한 은재의 신체를 보며 아버지 말만 듣고 간단한 집안 문제를 치부했던 점을 뉘우쳤다. 사안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아 괴물에게 힘을 실어준 것은 아닌지 돌아보며 가정 폭력이 가정에서 해결될 문제가 아님을 알아차린다. 은재는 괴물 같은 아버지 곁을 나와 운동장 옆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아버지의 발길질을 감내하며 온몸이 무너져 내리는 고통과 늘 맞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덜었다. 한때 잘 지내던 친구가 사이가 멀어지면서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까지 폭로당한 뒤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은재에게 마음의 손길을 먼저 건네 행운을 선물한 친구들이 있기에 지옥의 굴레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아버지의 반대와 횡포에 접었던 육상 선수의 꿈은 새로운 꿈의 씨앗을 움틔워 운동장을 달리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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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공부가 재미있어지는 순간 (50만 부 기념 우리들 에디션) - 공부에 지친 청소년들을 위한 힐링 에세이
박성혁 지음 / 다산북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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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이 논밭으로 둘러싸인 면소재지에 위치한 중고등학교에 근무한 지 34년째이다. 십대들과 주로 생활하다 보니 공부 관련 대화를 많이 나누며 지낸다. 어떻게 하면 성적을 올릴 수 있을지 골몰하는 학생들은 시험을 앞두고 족집게 처방을 바라며 공부가 안 된다고 상담을 요청한다. 공부가 안 되는 여러 이유를 들어 힘들다고 푸념하는 아이를 보며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것부터 챙겨 시작해보자고 해도 시큰둥한 눈치다. 요행을 바라며 쉽게 좋은 결과를 얻으려는 학생들은 몰입하여 학습하는 일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열다섯까지 잉여 활동으로 시간을 허비한 저자는 속수무책으로 떠밀려가는 지난시간을 돌아보며 중학교 2학년 생활을 성찰한다. 지금껏 자신의 인생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보낸 시간을 돌이켜 스스로를 존중하며 성장하는 삶을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였다. 별반 다를 게 없는 크로노스의 시간에 밀려 생각 없이 살다 학창시절이 끝나 버린다면 한 번뿐인 인생에 낭패라는 생각이 들었던 듯하다.

  ‘心不在焉이면 視而不見이며 聽而不聞하며 食而不知其味니라.’

   마음이 없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고 먹어도 그 맛을 모른다는 대학의 문장처럼 공부는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는 말에 공감한다. 마음을 다잡고 목표를 실현하였을 때의 쾌감을 맛본 사람이라면 공부의 진미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저자는 전라도 벽촌에서 나고 자라 학습 환경이 제대로 조성되지 않은 상황에서 만난 체육 선생님은 학생에 대한 믿음으로 용기를 북돋워주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학업에 매진할 수 있었던 너를 믿는다.’는 한마디는 동사형 꿈을 꾸면서 성장할 수 있는 동기를 부여하였다. 자신을 막아서는 한계의 벽은 스스로 규정짓는 만큼 나의 경쟁자는 바로 자신임을 인지하고 나의 성장을 위하여 현실에 안주하려는 자신과 타협하지 않았다. 기초가 부족하여 초등학교 문제지부터 풀며 학습을 위한 잠재력을 키워 온 저자는 지금 해야 할 일부터 챙겼다. 오늘의 결과는 내가 만든 것임을 자각하고 마음을 다지고 키우며 딴 데로 잡념이 생기지 않도록 마음을 질끈 동여매고 공부하였다.


    바람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날 집을 짓는 새들처럼 치열한 태도로 뚝심 있게 목표를 향해 정진한 저자는 나의 힘으로 자신의 성장을 도모하는 일에 주력하였다. 배움과 성장을 통해 세상을 살아갈 힘을 기르며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오늘 집중함으로써 학습 효능을 드높였다. 몰입하여 공부하다 보면 어느새 질적인 발전은 덤으로 올 것이라는 믿음은 공부를 하면 할수록 능력이 붙는 선순환 경험을 쌓게 하였다. 남과 비교하며 조건에 주목하기보다는 어제의 나와 비교하며 오늘 나의 성장을 위하여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상하며 실천하는 가운데 값진 열매를 선물처럼 올 것이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없듯이 공부를 하다 보면 정체기가 있어 스스로 한계를 지을 때가 있다. 조건을 따지며 안 되는 이유를 찾아 불평불만을 늘어놓으며 나태한 자신을 합리화하기 전 조각 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어야 한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좋은 습관으로 다져진 카이로스의 시간은 마음을 온전히 다함으로써 증진으로 이어질 수 있다. 꿈을 실현하려는 절실함으로 뚝심 있게 자신이 걸어가야 할 길을 묵묵히 걸어 온 저자는 목표를 달성하였다. 이름 있는 대학, 인기 있는 학과에 동시 합격한 사실보다는 황무지 같은 공간에서 예쁜 꽃을 피워낸 노력의 결정은 마음에서부터 출발했음을 극명히 드러낸다.


   책을 읽고 마무리할 때 한 학생이 떠오른다. 노역으로 고단한 삶을 사는 아버지와 함께 생활하던 학생은 중학교 때까지는 또래들과 어울려 놀러 다니느라 공부를 하지 않아 공부법을 잘 몰랐다. 고등학교 들어와서야 깨달은 학생은 마음을 다잡고 공부하여 서울 소재의 이름 있는 대학교 상경계열에 입학하였다. 1때 중2 수학문제집을 들고 처음부터 끝까지 풀기를 반복하더니 고3때에는 수리 영력 1등급을 받았다. 이 학생 역시 마음을 다지고 키우며 마음이 도망가지 않도록 붙잡아 둘 궁리를 하며 뚝심 있게 공부하여 CEO로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싶다는 꿈을 펴고 있으리라. 자각에서 나온 마음은 어떤 욕망에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자신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 투지를 심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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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열림원 세계문학 1
헤르만 헤세 지음, 김연신 옮김 / 열림원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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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속에서 솟아 나오려는 것을 누르며 살아온 시간들이 다양한 얼굴로 늘어선다. 집안 살림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아동기를 보내며 해야 할 일이 많은 집을 뛰쳐나가고 싶을 때가 있었지만 가족을 위하여 밥을 짓고 빨래를 하며 보냈다. 조금만 참고 지내다 보면 후미진 부엌에서 매캐한 연기와 함께 보낸 시절을 보상받으리라 여기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실질적인 가장으로 생계를 도맡은 어머니를 대신하여 부엌살림을 도우며 할머니를 봉양하는 일은 맏딸이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그 시절 동네 언니 집에서 빌린 데미안 소설 속 주인공은 뭐 그리도 생각이 많은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춘기가 뭔지도 모르고 지난시절에 만난 싱클레어는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치기어린 투정을 부리는 것처럼 비춰졌다.

   40년이 흘러 중2학생들과 만나 함께 데미안을 읽으며 그 시절 이해하지 못하였던 싱클레어의 행동이 조금씩 가슴에 와 닿는다. 따스한 가정에서 착하게 살아가던 싱클레어는 저지르지도 않은 도둑질을 거짓으로 말한 탓에 크로머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면서 헤어나기 힘든 시련에 부딪혔다. 어느 날 싱클레어 앞에 나타난 데미안은 독심술 같은 지혜로운 판단으로 시련에 빠진 크로머를 구해준다. 이를 계기로 싱클레어는 크로머의 예속에서 벗어나 두려움을 극복하여 일상의 균형을 찾고 안정에 이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정결함과 안온함이 가득한 가정에 기대어 살던 싱클레어에게 데미안과의 만남은 기존의 틀을 깨고, 관념의 성을 파괴하며 오직 나 자신에게 이르기 위한 걸음을 떼게 하였다. 허용된 밝은 세계에서는 은폐해야 하는 원시적 충동을 느낄 때마다 자신 속에 살고 있는 내적 욕구를 보아야 했다. 밝은 세계의 이면에 존재하는 어둠의 세계를 인식한 싱클레어는 금기된 성적 욕망, 비현실적으로 들리는 교리 공부 등으로 내면이 내는 소리에 귀 기울였다. 한편, 데미안은 성서 이야기를 달리 해석하여 싱클레어에게 다른 세계를 들려주며 관점을 달리 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데미안은 싱클레어가 허용된 것과 금지된 것을 통찰하여 스스로 판단을 내릴 수 있기를 바라며 생각지 못한 세계를 경험하게 이끌었다.

   내면의 선악 사이에서 고뇌하던 싱클레어는 꿈 속 영상을 그림으로 그렸다. 내면의 욕구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자신을 규정하던 세계를 떨쳐냈다. 그는 문장에 새겨진 새와 한눈에 반한 베아트리체를 그리며 내면의 유혹을 달래려 하였다. 쾌락적 욕구를 이기지 못한 채 거리로 나가 금지된 영역의 유희를 탐할 때도 있지만 그는 베아트리체를 그리면서 조금씩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아 갔다. 싱클레어가 그린 베아트리체의 초상화는 데미안을 닮았던 만큼 그가 데미안을 향한 동경과 그리움은 커 보인다.

   알을 깨고 나온 새끼 새처럼 싱클레어는 관념의 틀에 안주하지 않고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자기 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정신적으로 성장하며 감정의 기복을 넘어 자신을 객관화하며 오롯한 나로 살아가는 데에는 인생의 스승이 자리한다. 자식이 잘못을 고백하였을 때, 자식을 토닥이며 위로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주는 어머니는 에바 부인으로 나타난다. 싱클레어에게 선한 영향을 준 데미안 못지않게 데미안의 어머니는 자애로운 어머니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발견케 한다. 성장 과정에서 겪는 시련을 감내하고 극복하여 환골탈태한 싱클레어에게 데미안은 기존의 질서에 안주하는 삶을 배격하며 진정한 자아를 찾는 길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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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언어학자의 문맹 체류기
백승주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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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외국인들이 방송 프로그램에 자주 등장한다. 살아온 환경과 문화적 영향과는 달리 한국어를 평범한 우리보다 더 잘하는 외국인을 볼 때면 언어습득을 관장하는 뇌가 발달한 모양이라며 감탄하였다. 저자는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치는 언어교육학자이자 사회언어학자로 생활하다 중국 상해로 1년간 교환교수를 떠나면서 중국어를 배우지 않고 외국인으로 살고자 하였다. 무모한 도전으로 보이는 결심을 하고 상해에 도착하여 모든 것이 익숙지 않은 생활의 후일담을 진솔하게 전한다.


   자발적인 문맹으로 현지에서 겪는 불편함을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공간에서 겪을 수 있는 일화를 소개하며 현지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인다. 두 번째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관찰해보겠다는 야심으로 문맹인 채 현지에 어렵게 다가서는 모습에서 친근함을 찾는다. 짧은 영어로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을 때 답답함은 늘어나 지금껏 뭘 하고 살았는지 회의할 때가 떠오르기 때문이다. 인터넷과 공유 경제가 발달한 중국에서는 말하지 않으면 그냥 주어지는 기본 값이 있어 원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해야 했다.


   중국 대학 아침 수업에서 학생들은 음식을 먹으며 수업을 듣는데 이들은 한국어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중국 음식을 나누며 문화를 배우는 시간으로 채워간다. 상하이 푸단대학교 운동장을 무모하게 달리고 얻은 깨달음은 느리지만 오래 달릴 수 있다는 생각으로 조용히 대학 운동장을 찾아 달리며 상해에서의 삶을 달래는 듯하다. 대학이나 박물관, 서민들이 사는 스쿠먼 주택가에도 경비원이 많은 현실은 지키려는 경계가 많아서인지도 모르겠다.


   해독하기 힘든 공간, 알 수 없는 길을 찾아 떠나는 여행처럼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경우는 드물다. 공항에 내렸을 때 낯선 풍경과 함께 훅 끼치는 텁텁한 공기는 이방인으로 첫발을 딛는 순간 고립감을 더한다. 낯 설고 물 선 땅에서 말까지 잘 통하지 않으니 마음을 읽어주길 바라는 간절함으로 행선지로 향하는 버스를 용케 타고 관광을 떠나 흡족함을 선물 받았던 경험을 떠올리며 여정대로 걷지 않은 중국 여행기를 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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