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미쳐 있는 - 실비아 플라스에서 리베카 솔닛까지, 미국 여성 작가들과 페미니즘의 상상력
샌드라 길버트.수전 구바 지음, 류경희 옮김 / 북하우스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다락방의 미친 여자>에서 다루어진 내용 이후 1950년대 페미니스트의 태동부터 1960년대 페미니스트들의 항쟁 시기, 1970년대를 거쳐 1980~90년대 페미니스트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의 각성, 21세기 현재에 이르기까지 서술한다. 여성 작가 및 예술가들 중에서도 북미 지역에 집중하고 있으며, 여전히 미쳐있는 상태인 지금, 페미니즘의 기저를 이루는 문화사를 논한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와는 다르게 문학 작가만을 다루지 않는다. 문학뿐 아니라 고전 및 대중 예술 분야, 저널리스트, 다큐멘터리 작가, 사회운동가, 페미니스트 등 다방면에서 활동한 여성들의 문헌과 이력도 서술한다.   





 
(중략)  



케이트 밀릿의 <성 정치학>의 핵심 주장은 남성과 여성의 관계가 여성이라는 종을 종속시키는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형성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1970년대 페미니즘의 본질을 말해준다. 1960년대의 운동이 여성을 위한 성 해방론자들의 투쟁이었다면, 1970년대 말과 그 이후의 운동은 '여성'들을 위한 페미니스트들의 싸움이 되었다.


밀릿에 의하면 군사, 정치, 금융 등 여러 분야에서 여성을 남성의 독점 행위에 굴복시키는 제도가 보편화되었다고 강조하는데, 이런 구조를 지속시키는 데 필요한 남성적 특성과 여성적 특성을 만들어내는 제도가 바로 가족이라고 짚는다. 가족(엄밀히 말하면 가족제도)가 해부학적 성과 구분되는 심리학적 젠더 역할을 만들어낸다는 것. 생존을 위해 자신을 부양하는 사람에게 의존하며 사는 여성들을 자기들끼기 서로 적대하는 관계에 놓이게끔 만든다. 아버지를 신과 같은 위치에 놓고 문제 발생 원인의 책임을 여성에게 지우며 그들을 남성의 통제하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의 내면화' 과정이 가족을 통해 성취된다고 분석하는 것이다.   


(중략)


젠더, 인종, 동성애 편견 문제를 언급한 로레인 핸스베리와 오드리 로드, 페미니스트들에게 흑인의 권리가 곧 여성의 권리라고 알리려 노력한 토니 모리슨. 이들을 보면서 페미니즘, 즉 여성주의 시각으로 차별적 사회 문제(식민지주의, 인종주의, 성소수 및 동성애, 장애)를 접근할 때 근본적 해법에 훨씬 더 근접할 수 있다는 정희진 님의 말이 떠올랐다.



<다락방의 미친 여자>부터 이 책에 이르기까지 길고 긴 이야기를 읽으면서 느꼈던 점은 여성들의 투쟁은 아주 오래 전부터 시작됐고,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라는 것이다. N. K. 제미신, 퍼트리샤 록우드, 리베카 솔닛의 등장, 그리고 흰색 옷을 입고 페미니즘 운동 한가운데에 서 있는 수많은 여성들. 나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21세기 페미니즘 운동은 퀴어, 다국적주의, 트랜스 이슈와 인종 차별에 대한 항의 시위, 환경 운동, 미투 운동 등을 모두 아우른다. 성性 역시 양분화되어 있지 않고, 민권과 생명권 등 추구해야할 가치들이 복잡하게 맞물려있는 작금에, 위에서 언급했던 우리가 왜 여성주의 시각에서 세상을 봐야하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현대사에서 페미니스트의 역사를 알 수 있는 책을 추천하라면 이 책을 추천한다. 북미라는 지역적 한계가 있지만, 특히 계보를 알고 싶다면 쉽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빛의 시대, 중세 - 폭력과 아름다움, 문명과 종교가 교차하던 중세 이야기
매슈 게이브리얼.데이비드 M. 페리 지음, 박수철 옮김 / 까치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중세 유럽을 연구하는 역사가 두 명이 공저한 책으로서 조금 다른 각도에서 이 시대 들여다보고 중세에 대한 고정관념과 이해하는 방식을 해체하고자 한다. 그들이 들려주려는 이야기는 중세가 '암흑시대'였다는 수 세기에 걸친 신화에서 벗어나 있으며, 시각을 바꾸어 소외된 사람들에게 집중하고 또 다른 세계를 볼 수 있음을 전한다. 


콘티탄티누스 1세 사망 무렵의 고대 후기부터 비잔티움과 페르시아, 예루살렘과 메카, 이슬람의 팽창, 그리고 아라비아 반도를 거쳐 중세 초기의 브리타니아, 이후 카롤루스 왕조, 광범위했던 바이킹의 흔적, 프랑크 왕국과 십자군 전쟁, 이베리아 반도(와 북아프리카)의 다문화주의, 다채로운 마법으로 장식됐던 12세기의 유럽, 제4차 십자군 원정에서 자행된 폭력과 학살, 황제와 교황의 권력 다툼, 13세기 왕권의 중심지로 부상한 파리와 가장 기독교적인 왕 루이 9세의 치세, 프란치스코회와 몽골 제국, 유럽을 비롯해 흑사병이 휨쓸고 간 14세기, 그리고 중세 시대를 관통하고 지배했던 종교를 서술한다. 







 
다른 관점과 시각을 강조하는 이 책의 시작이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갈라 플라키디아라는 여성의 서사로 시작하는 점이 인상적인데, 이 여성을 통해 대대로 로마의 멸망이 암흑시대의 시작이라는 판단이 무 자르듯 단순하지 않고 좀더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음을 지적한다. 저자는 5세기 초 내내 로마의 연속성을 구체적으로 드러낸 인물로 갈라 플라키디아를 꼽는다. 또한 유스티니아누스 1세의 아내 테오도라의 이야기를 통해 여성 권력자들에 대한 묘사와 가부장적의 질긴 힘을 읽어낼 수 있음을 얘기한다. 더하여 성적 능력을 여성의 출세와 연결하는 관행이 문학과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것에 대해 오히려 남성들이 두려움을 느꼈다는 증거라고 말하는데 이 부분 역시 남성중심의 역사관에서 드러나는 시대의 한계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아무튼 6세기 후반과 이후 바이킹까지, 당시의 제한적인 위치에도 불구하고 여성 권력자들이 가졌던 주체성은 이 책의 곳곳에서 언급된다. 그리고 '암흑시대'는 폭력적인 남자들과 순종적인 여자들의 세계, 고정관념에 부합하는 세계를 상상하지만, 사료에 주목하는(이면에 숨겨져 있는) 중세는 훨씬 더 미묘하고 복잡한 것들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벨리사리우스가 라벤나에서 황제가 될 수 있는 유혹을 물리치고, 황제와 로마 제국에 충성을 한 이유를 6세기 초 로마 세계의 정치적 현실과 권력 지형의 중심에 있다고 판단했다. 3개 대륙 출신의 사람들이 모인 콘스탄티노폴리스야말로 다양성의 측면에서도 전형적인 로마 도시다.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근거지로 통치하는 로마인들은 스스로를 결코 '비잔티움인'이라 칭하지 않았고, '로마인'으로 자처함으로써 변화가 아닌 연속성에 의의를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는 중세 내내 로마가 복수형으로 존재했다고 생각하며 전형적인 제국의 유일하고 진정한 후손을 가려내는 데에 노력을 기울이는 대신, 연관성과 정통성을 주장한 사람들의 방식과 그 동기를 분석해야함을 짚는다.  


공존은 쉽지 않고 어제나 불평등하지만, 최소한 이슬람교가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도처에서 빨리 전파될 수 있었던 비결이 되었다. 이슬람교가 도래하면서 개종을 강요하는 압력이 초래된 것은 분명하나 로마와의 지적 연속성도 잃지 않았다.   


알다시피 중세 세계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은 현대와는 완전히 달랐다. 정치가 종교였고, 종교가 정치였다. 사회 범죄들은 국왕의 사법권에 의해서 처리되어야하지만, 11세기에는 신으로부터 버림받는 처벌을 받았다. 12세기는 유럽사에서 의미심장한 세기다. 문학이 번성했고, 학교가 급성장했으며, 중앙집권 국가가 부활했다. 이 때는 십자군의 시기, 황제와 교황의 시기, 철학과 학술 논문의 시기였다(스콜라 철학이 본격적으로 번성한 시기이기도 하다).  



모든 순간들 중에 중세의 끝이라는 자격을 완비한 것은 없다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역사에는 명확하게 구분지을 수 있는 출발점이나 종착점이 없다. 그럼에도 천 년에 이르는 역사의 한 부분을 하나의 명제로 단순화했다. 그러나 저자는 암흑, 그리고 한편으로는 빛의 시대는 인간성에 내재된 온갖 가능성을 담고 있기에 인류 역사에서 중추적인 장소이자 시간이라고 말한다. 빛의 시대 내내 사람들은 어떤 이유에서든 경계를 넘어 다녔다. 정치적.종교적.언어적.문화적 차이를 뛰어넘어 중세 시대의 모든 지역에서 나타나는 공통점은 '연속성'과 '복잡성'이다. 온갖 요소들이 담겨 있는 중세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한층 더 복잡하다.  


세상은 정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돌고 돈다. 유럽 최대의 도시 주거지들은 여러 세기에 걸쳐 정치, 경제, 농업이 발전했다. 잉여 식량과 잉여 인구가 증가했고 지역 경제들이 싹텄다. 시민들은 다양한 형태의 중첩된 공동체에 참여했고, 길드 같은 여러 기능을 겸비한 공동체들이 활동했다. 또한 이를 같이해 여러 정치 체제들이 이합집산을 반복하며 변화해갔다. 그렇다고해서 이 책은 중세 시대가 그야말로 '빛의 시대'라고만 얘기하지 않는다. 단지 '암흑시대'라고만 정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는 수많은 서사들을 통해 시각을 바꿔보자면 '빛'이 공존했던 시대였다는 것일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과연 어떤 시대라고 명명할 수 있을까? 여전한 차별과 유리 천장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등급과 계급이 존재하고, 보통의 사람은 미처 생각지도 못할 온갖 프레임들이 난무하며 부지불식간에 이를 당연하게 여기게끔 되는 현재는 암흑인가, 빛인가. 아마도 '암흑시대'는 인류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지속될 것이고, 그 안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끊임없이 '빛의 시대'로 나아가기 위한 노력일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현재의 시점에서 과거인들에 대해 서술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에 역사를 예정된 결론을 향해서 필연적으로 돌진하는 것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많음을 짚으면서 역사는 절대 그런 식으로 흘러가지 않음을 강조하는데, 이에 대해 공감하는 바다.  


개인적으로 고대에서 중세로 넘어가는 그 지점에 대한 가려운 부분들을 읽을 수 있어서 만족스러운 읽기였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광개토태왕 담덕 7 - 전쟁과 평화
엄광용 지음 / 새움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7권은 북위와 후연의 참합피전투가 있었던 395년부터 시작한다.


중국 서북에 위치한 후연과 북위의 상황, 왜국의 내부 사정과 도래인들의 실상, 당시 실크로드 동쪽의 예술문화 등을 그리고 있다. 특히 소설에서 담덕이 건축하고자 했던 요동성 7중목탑이 눈에 들어왔는데 실제로 존재했는지는 모르겠으나 자료를 찾아보니 기록과 그림으로는 남아 있는 듯하다. 당시의 왕이 광개토태왕인지는 모르겠다만.


이번에는 고구려의 내부 상황보다 중국 서북과 왜국 현황이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무엇보다 고구려와 신라의 선린관계, 백제와 가야의 선린관계, 그리고 백제와 왜국의 정략결혼 등 국제 정세가 다채롭게 그려지고,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육지에서 섬나라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의 삶이었는데, 이 부분들을 밀도있게 다룬다.  


7권에서도 여지없이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한다. 
동진의 젊은 승려 도진, 장안 출신의 동진 승려 담시, 5년째 고구려에 볼모로 잡혀있는 신라 왕실의 자제 실성, 백제 월출산 석굴에서 학문의 경지에 이른 왕인, 그의 친구이나 세속적 욕망이 앞서는 사두.  


그리고 드디어 해평의 재등장.
고구려 왕족 출신으로 역모가 실패해 왜국으로 도망친 후 그곳에서 고구려 출신들을 규합해 고마성 성주가 된 해평이 과연 복수와 야심을 이루기 위해 과거의 적이었던 백제군에 합류할지도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의 흥미로운 지점이 아닐까싶다.  


ㅡ 


사두가 학문과 무술을 연마하는 목적은 나라를 위해 크게 쓰기 위함이다. 반면 왕인은 학문으로 사람을 구하고자 하고, 그가 생각하는 사람은 나라나 종족의 경계가 없는, 이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인생들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는 소우주의 이상향을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다. 이런 그가 대륙의 꿈을 꾸는 오진과 어떤 대화를 하게 될까.  


담덕이 굳이 태백산 적송을 가져다가 요동성 산 중턱에 7중목탑을 세우려는 뜻은 개국한 조선이 몇 개의 나라로 나뉘어져 있으니 민족이 하나로 일어나기 위해 우리 민족의 성산인 태백산의 적송에 영험함을 부여해 민족의 긍지를 보여준다는 목적을 가진다. 요즘, 너무 어수선하다. 이렇게 하루가 멀다하고 흉악범죄가 보도되는 일이 있었던가? 거기에 폭우, 폭염, 태풍 등 자연재해가 인재로 변질돼 이게 무슨 일인가싶다. 이럴 때 혜안을 내보겠다는 노력이라도 보여주면 좋겠는데... 누가?  


초부거사는 왕인에게 왜국왕을 설득하라고 부탁한다. 섬나라를 대동세상으로 만들자는 것을 누누이 강조하여 응신의 대륙에 대한 욕망을 제지시켜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러나 이를 어쩝니까. 그 야욕은 21세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초부거사가 말하는 학문의 궁극적인 지향점은, 단지 안다는 것을 넘어서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학문의 궁극적 목표가 있다.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앎은 허접한 쓰레기일 뿐이며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줄 수 있도록, 그 앎을 실천에 옮겨야만 참다운 지혜가 되는 것이다. 원론적이고 식상한 말이겠지만, 그래도 나는 누가 이런 말들을 진정성 있게 해주면 좋겠다. 



8권에는 새롭게 등장한 숙신족 정벌과 왜구 및 가야와의 전투가 예상된다.
그런데 모르면 모를까 한 번을 이기지 못할 싸움에 전전긍긍하는 아신왕이 안타깝기는 하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풀꽃
후쿠나가 다케히코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일본 전후 시대를 대표하는 작가들ㅡ가와바타 야스나리(젊은 작가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자이 오사무, 미시마 유키오, 아베 코보 등ㅡ의 작품을 읽다보면 비슷한 선상에 있는 감정선들이 목격된다. 1954년에 쓰여진 이 소설 역시 패전 이후 피폐해진 젊은이들의 고독,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에 대한 집요한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진다.  


소설은 네 개의 장章으로 이루어져 있고, 1인칭 시점으로 화자인 시인 '나'가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각 장마다 시오미의 죽음, 그가 남긴 두 권의 노트에 담긴 내용, 그리고 화자 '나'가 시오미의 글을 읽은 후의 얘기가 담겨 있다.  
 







요양원에서 보여지는 서른 살 시오미는 삶에 대해 관심이 없어 보인다. 마치 죽어도 그만, 살아도 그만인 것처럼. 시오미는 예술가로서의 생명력과 삶에 대한 열망을 갖고 있는 '나'가 존경스럽다고 말한다. 자기에게 있어서 인생이란 미래가 없는 그저 하루하루를 끝내고 죽음을 기다리는 게 전부인, 과거에 머물러 있는 진짜 삶이 아니라면서 살아있음이란, 내면의 모든 것이 전부 다 불타올라 넘쳐흐를 것만 같은 것인데 자신은 그런 황홀감을 못 느끼고 있으니 죽은 거나 매한가지라는 것이다.  


입원 환자 7백 명이 병원을 나가는 길은 병이 나아서 정문으로 나가든지 죽어서 영안실로 가든지 둘 중 하나인 요양원에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궁금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는 도대체 어떤 삶의 이력을 가지고 있기에 죽음 앞에서 이토록 초연할 수 있을까.  


ㅡ 


플라톤에 푹 빠져 있는 열여덟 살 시오미는 사랑에 의해서만 인간은 지상의 고독에서 이데아의 세계로 날아오를 수 있다고 믿는 사랑지상주의자다. 후배 후지키를 향한 동성애적 감정, 사랑을 잃은 상실, 그리고 한 여인을 향한 진실한 사랑. 그러나 그의 사랑은 늘 일방적이다. 보통의 평범한 사람이 수용하기에는 어려운 순수와 경외를 향한 그의 사랑은 때때로 부담스럽다.  


시오미는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살 수 있는지, 덧없이 지나가는 인생은 어떻게 해야 진정으로 자각하며 붙잡을 수 있는지 알고 싶었고, 쏟아져내리는 절망과 분노와 허탈과 체념 사이를 방황했다. 시오미의 불안을 이루고 있었던 것은 죽음의 공포보다 삶에 대한 불만이었다. 시오미가 영장을 받고 느꼈던 두려움은 자신의 죽음보다 누군가를 죽여야한다는 점이었다. 사랑하고 있을 때만이 살아있음을 느끼는 그가, 사랑을 거부당하고 이와는 정반대적인 폭력의 가해자가 되어야하는 상황에 몰렸을 때 숨은 쉬고 있으나 더 이상 살아있는 존재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야말로 시오미는 부유하는 영혼의 소유자였다. 


그렇다면 순수 청년 후지키는 어떤가. 그는 스스로를 아무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여기며 자신에게 자격이 없기 때문에 시오미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 자신은 누구도 사랑할 수 없고 사랑을 하지 못하는 인간이라고, 그런 책임을 진다는 것이 두렵다고 자조한다. 후지키는 심지어 부모의 사랑조차 보답하지 못할 것 같아 부담스럽고 힘에 겹다고, 자신을 사랑하는 누군가의 진지한 감정도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스스로 누군가를 선택해 사랑하는 건 생각할 수도 없으니 혼자 있기만을 바란다. 이렇다보니 사랑 자체를 부정하지 말라는 시오미의 간곡한 부탁 역시 후지키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다.  



사는 것이 노력이고 의무인 요양원에서 많은 사람들이 차례차례 죽어가는 것을 목도하는 시오미. 요양원에서 죽어가는 환자들은 전부 젊은이다. 그들이 경험한 것은 전쟁과 가난과 질병 뿐이다. 시오미와 더불어 함께 생각해본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어떤 청춘 시절을 보냈을까, 그들은 그 청춘을 즐길 수 있었을까, 그리고 삶의 기쁨을 알았을까.


시오미는, 인간은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끝없이 더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어내고, 대의 명분을 내세워 대량 학살을 용인한다고 말하며 이것이 과연 문명인가, 저주인가, 묻는다. 인간의 지혜가 살상 무기를 고안해내고 전쟁을 위해 사용된다면 그런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더 이상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없는 세상에서의 삶이 의미가 있는가. 도대체 이 모순의 끝이 있기는 한 걸까. 



군국주의 시대에 감수성이 예민하고 예술과 인간성의 가치를 잃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은 한심하고 무용한 존재였을 것이다. 개개인의 다름이나 개성 따위는 인정하지 않는, 강인한 남성성을 우선하는 시국에 하나의 이념만 좇으며 살상의 가해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 갈 곳을 잃은 이들에게 전쟁터의 총알만큼이나 쏟아져 내렸을 자괴감과 상실감의 무게는 상당했을테고, 무엇보다 그에게는 더 이상 사랑이 남아있지 않았다. 사랑이 없으면 전부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시오미가 향할 곳은 오직 한 곳 뿐이었으리라. 


소설 초반에 화자 '나'는 자신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시오미 시게시, 오로지 이 인물을 소개하기 위해서임을 밝힌다. 아마도 이는 시오미뿐 아니라 전쟁과 패전 후 소리없이 살다가 떠나간 청춘들을 기억해달라는 애상곡이 아닐런지. 


문득 지금 이 시각을 살고 있는 청춘들, 그들은 어떤 꿈을 꾸고 있으며 어떻게 기억되기를 바랄까...... . 그리고 나는 시오미와 후지키의 나이였을 때 무엇을 향해 달리고 있었던가. 어쩌면 한 방향으로 달려야만 하는 현재의 청춘들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을지도 모를 일이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격정과 신비 을유세계문학전집 128
르네 샤르 지음, 심재중 옮김 / 을유문화사 / 202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책은 르네 샤르의 1938년부터 1947년까지 쓴 시와 글들을 실었다. 이브 베르제의 1967년판 서문을 찬찬히 읽다보니 르네 샤르가 어떤 사람인지 먼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1907년에 태어나 1939년 서른두 살에 포병 부대에 소집되어 1940년 5월까지 알자스 지방에서 복무. 1941년 항독 레지스탕스 운동가들과 접촉한 후 1942년에 지하 레지스탕스 운동에 본격 가담하여 '알렉상드르'라는 가명으로 활동. 1944년 팔 골절로 부당을 당하고 알제리의 알제로 전출되어 약 한 달 동안 연락장교로 활동. 이것이 책에 실린 글들이 쓰여진 시기에 시인의 주요 이력이다.  






1939년 9월 3일의 시 <꾀꼬리>는 제2차 세계대전 발발에 대한 시인의 심경을 그대로 나타낸다.  


꾀꼬리가 여명의 수도에 들어왔다.
그 노래의 칼날이 우울한 침상을 가두었다.
모든 것이 영원히 끝난다.
/ '꾀꼬리' 전문 




1938년에서 1944년에 쓰인 글들에는 유독 '현존'을 언급한 시구가 많다. 이외에도 여러 의미의 상징적 어휘들이 등장하는데 전반적으로 맥락을 살펴보면 '존재성'과 연관이 있다. 특히 에바드네를 비롯한 여성(소녀, 누이, 등)에게 상징성을 부여한 시구들이 눈에 띄는데, 여러 부분에서 표현된 바로는 사랑과 연민의 대상이자 기대고 싶은 의지처, 그리고 희망과 이상향을 상징하는 의미로 읽혀졌다. 


'엄격한 분할'이라는 연작시(그냥 메모인듯도 하고)를 통해 시의의 내면과 시인이 된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이중에서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는 부분은 명증성에 대해 서술한 41번이다.  


'시인의 내면에는 두 개의 명증성이 있다. 첫 번째 명증성은 외적 현실이 가용할 수 있는 다양한 형식들을 통해 단번에 그 모든 의미를 드러낸다. 이 명증성이 깊이 파들어 가는 경우는 드물고, 그저 관여적일 뿐이다. 두 번째 명증성, 시들지도 않고 꺼지지도 않는 명증성은 한 편의 시 속에 끼워 넣어져 있고, 시인에게 깃드는 강력하고 기이한 신들의 명령과 주석을 전한다. 이 명증성의 헤게모니는 빈사적賓辭的이다. 언표되는 순간, 엄청난 공간을 점유한다.' (p92) 


ㅡ 


시인 본인은 <히프노스 단장>의 메모들이 자신의 의무를 자각하고, 자신이 갖는 효력에 신중하며, 자유를 예비해줌과 동시에 그 모든 걸 위해 대가를 치를 각오가 되어 있는 휴머니즘의 저항의 기록이라고 밝힌다. 


시인은 인간이 일생동안 겪어나가는 고난, 그로인해 생기는 상처와 고통이 전혀 무용한 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들이 결국 자신의 삶의 방향을 가리키고 그 끝에는 어떤 형태로든 과실果實로써 드러날 것이라면서. 


그가 민간인을 보호하기 위해 동지가 적군의 총에 처형 당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쓴 글. 작정만하면 구할 수 있었지만,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마을을 무사하게 지켜야한다는 이유로 그는 사격 신호를 내리지 않았다. 이때 가졌던 자괴감과 분노, 그리고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고통에 대한 이 짧은 글은 그의 고뇌가 온전히 전해진다. 이후에 쓴 글 또한 함께 저항하는 동지를 향한 애정, 평범한 이들의 경이로운 희생에 대한 존경 들이 담겨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오는 단상들. 행운이라고 여겼던 아름다운 유년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그러한 시절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에서 오는 고독. 그럼에도 지나간 과거의 회한에 머물지 말기를, 그는 자신에게도, 타자에게도 당부한다. 측량이 가능한 깊이의 절망은 극복 가능한 운명이니 굴레에서 벗어나라고, 미래는 희망과 소망으로 채워지기를, 그리하여 인간의 품격을 찾아가기를 그는 간절히 바람한다. 


차라리 자신을 박살 내서 완전히 죽게 해 달라는 그의 울부짖음이, 그의 사랑을 기억하지 못하는 연인의 망각이, 나는 역설적으로 모두의 삶을 향하고 있다고 느껴졌다. 


ㅡ 


이 책을 읽을 때 절반 이상을 낭독했다(물론 혼자 있을 때). 대부분의 시가 그렇기는 하지만 눈으로 읽고 다시 소리내어 읽을 때 머릿속에 들어오는 정도가 유독 큰 글들이었다(반면 윤동주 시인의 글들은 낭독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그의 시는 눈으로만 읽어야 담아진다).   


실린 글들은 대부분 시인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며 긴박하게 시간을 쪼개어 썼을 글이다. 산문시, 메모 등 형식에 대한 구애없이 자유롭다. 그의 글에서는 뜨거운 열정과 분노, 희망에 대한 갈구, 생명과 삶, 그리고 자유에 대한 무한한 사랑과 헌신이 느껴지며, 심지어 때때로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마치 토막글 같은 이 글들은 어떤 전쟁소설 이상으로 독자에게 감흥을 일으킨다. 예전에 시인 이육사, 김광균,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들을 읽을 때 느꼈던 그 감정들이 떠올랐다. 절망의 끝에서 써내려간 열망의 글들을, 읽어보기를 추천한다. 




※ 출판사 지원도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