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2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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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은 1권보다 좀더 인문학적으로 접근하면서 여러 나라에서 벌어졌던 각각의 전쟁(분쟁)이 인류에 미친 여파와 문제점, 참혹하고 비참한 폐해,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 및 재건과 애도에 집중한다. 








군인 관점에서의 전쟁 경험은 죽음, 시신 훼손 및 시신의 도구화, 관료적 효율성에 따른 전사자 관리, 사각지대에 놓인 비전투원의 시신, 점령지 국민에 대한 가혹 행위와 전시 강간, 전략 폭격이나 핵무기로 인한 대규모 희생자 등 민간인 피해, 증언과 전쟁을 소재로 하는 문학, 반복되는 제국주의 전쟁을 통한 식민화 폭력에 대한 모순적 담론을 서술한다.  


그리고 시민이 속수무책으로 감당해야 했던 일방적인 (성)폭력과 대학살, 전쟁 피해의 참혹함을 드러낸 예술 작품들과 다른 한편에서 독재정권과 제국주의 선전에 동참했던 문화예술가, 근대 전쟁의 무기가 된 굶주림과 강간과 성 노예화, 제노사이드를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자행된 극단적이고 집단적인 (성)폭력과 공동체 분열 , (강제) 집단 이주와 대규모 난민 등에 대해 쓰고, 전쟁 이후 재향 및 상이 군인의 실태와 처우, 그들이 겪는 사회적 정체성과 혼란, 전쟁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에게 남겨진 정신적 후유증, 살아남은 자들의 증언이 갖는 역사적 가치까지 아우른다.  


ㅡ 


​19세기부터 20세기 상반기 사이에 서구에서 전쟁 폭력이 가속화되고 늘어났다는 특징이 있다. 이는 점점 더 많은 사회 주체가 전투 참여 여부에 관계없이 전쟁을 체험하게 된다는 의미이다. 기술의 발달이 영향을 미치기도 했고, 그 이상으로 전투를 넘어서 전쟁 자체가 변화했다. 


스테판 오두앵루조는 근대 전쟁의 고유한 특징이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들을 끌어들인다는 데에 있음을 짚는다. 분쟁이 국가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결정하는 쟁점으로 인식되어 적국의 모든 민간인은 전쟁의 정당한 표적이 되었다. 배고픔과 잔혹함의 경험, 장소와 시간의 경험은 모든 신체적·정신적 충격을 포함한다. 비인격화된 익명의 전쟁은 개인이 겪을 수 있는 가장 충격적인 집단 경험이다.  



인상적인 부분은 라파엘 브랑슈의 주장이다. 권력 획득의 시작이 언어 사용으로 시작되는데, 자신의 용어를 강요한다는 것은 자신의 해석을 강요하고 장기간에 걸쳐 어떤 정치적 질서를 정당화하면서 권력을 취하는 일이라고 썼다. 즉 전쟁을 어떻게 정의ㅡ지하트, 혁명, 독립전쟁, 군사 반란 등ㅡ하느냐에 따라 목적하는 바가 결정되며 집단을 묶는 데에도 용이할 것이다. 필자는 '전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전쟁의 다양한 형태와 정치적 계획에 연결된 조직적인 무장 폭력들이 발생한 서로 다른 맥락을 간과하지 않고 서술한다. 1914~1918년에 벌어진 대규모 전쟁으로 적의 국내 전선을 공습하는 일이 사실상 합법화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부터 베트남 전쟁이 종결될 때까지 민간인을 표적으로 한 폭격은 모든 주요 분쟁의 공통적인 특징이었다는 사실이 이를 확인시킨다.   


'총력전' 개념이 강화되면서 시민이 곧 군인이고, 입대에 따른 다양한 방식으로 인해 민간인과 병사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전쟁의 직접적인 경험은 더 이상 전장에 있는 군인에서 끝나지 않는다.   



몇 가지 씁슬한 점은, 헤더 존스는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기아 봉쇄'를 정당화한 것에 대한 윤리적 문제가 제기됐던 점을 언급하는데, 전쟁 자체가 이미 비윤리적이고 반인륜적이며, 더하여 20세기 초에 지적한 윤리적 문제가 그 시점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는(시대에 따라 용어를 바꿔가며 변화했다는 것이 더 맞을 듯하지만) 사실이다. 


다른 하나는 미국 남북 전쟁에서 물리적으로 승리를 거둔 쪽은 북부 연방군이었지만 내전 발발의 계기가 된 갈등을 끝내지 못했고, 결국 국가적 상상력에서 승리한 것은 남부 연합군이라는 지적이다. 현재까지 그 갈등 해소가 여전히 이루어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차별과 선민의식이 잔존한다는 건 여전히 전쟁을 치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의미이기도 할 것이다.   



냉전의 종결로 평화가 아닌 저강도 전쟁 시대가 시작됐음을 말하는  레너드 스미스의 지적도 인상적이다. 소위 '테러와의 전쟁'. 필자는 국가가 비국가 무장집단이 사용하는 전술에 맞서 전쟁을 할 수 있겠냐며 독자를 향해 되묻는다. 이 대치 상태에서 평화롭게 지내는 방법이란 국가가 그 집단을 정식 국가로 인정하거나 파괴하는 것, 둘 중 하나다. 그러나 둘 다 거의 불가능하다. 전자는 집단이 거부하고, 후자는 해결할 능력이 없음이 수차례 증명됐다. 따라서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전지구적 전쟁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다.  


앙리 루소는 신체적·정신적 후유증 형태로 지속되는 전쟁 폭력, 실질적 보상 문제 , 독재 및 폭력적 정책의 종결, 애도의 경험 등을 언급하면서 직.간접적으로 잔혹한 시기에 동참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문명화 과정'을 되찾을 수 있었는지를 묻는다. 그는 전쟁에서 벗어나는 것은 고향으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을 뜻한다고 말한다. 여기에 답이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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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26
잭 케루악 지음, 이만식 옮김 / 민음사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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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삶을 찾는 두 젊은이의 이야기다. 샐 파라다이스를 1인칭 화자로 두고 있는 소설은 십대 시절부터 이미 밑바닥 인생을 경험한 거칠고 광기어린 딘 모리아티와 그를 동경하는 샐이 거의 무일푼에 가까운 여비로 미 대륙을 종횡하는 한편의 로드무비같은 작품이다. 


책임감이나 신뢰, 이타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딘 모리아티의 인생의 목표는 오직 '재미'가 전부다. 인생에 있어 진지함과는 거리가 멀고 필요하면 취하고 소용이 없어지면 버린다. 이런 딘을 샐은 '성스러운 바보'라고 부른다. 그게 바로 딘이라면서. 


그들에게는 어디로 간다는 종착지만 정해져 있을 뿐, 목적은 없다. 주유소에서 몰래 주유하고, 담배를 훔치고, 돈을 갈취하고, 외도쯤이야 예사로우며, 달리는 기차에서 뛰어내리고, 마약을 하고, 고작 40달러로 미국 일주를 하겠다는 그들. 그 와중에 샐이 사이사이 보았던 것은 산, 아름다운 해돋이, 이슬, 계곡의 풀밭, 강, 보랏빛 공기,  시시각각 변하는 황금빛 구름, 해질녘 노을이었다. 






 



모든 게 지긋지긋했다는 샐. 그는 하룻밤 같이 보내는 리타에게 인생에서 바라는 건 뭐냐고 묻는다. 그녀는 잘 모르겠다고, 그냥 웨이트리스로 일하면서 살아가려고 애쓰는 거라고 대답한다. 샐은 인간이 삶을 이렇게 슬프게 만들 때 신은 도대체 뭘하고 있었던 걸까 생각했다. 누군가 딘과 샐에게 왜 대륙 횡단 여행을 하는 건지 물었다. 그런데 딘은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샐 역시 언제 돌아갈 예정이라는 대답만 할 뿐 그 이유에 대해서는 답하지 못했다. 스스로 명확한 이유를 몰랐으니까. 불현듯, 샐과 딘은 답을 찾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답을 찾기가 두려웠던 걸까.



샐이 딘에게 그토록 끌렸던 이유는 무엇일까? 세상이 규정해 놓은 '좋은 삶', '올바른 삶'이라는 시스템에 함몰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이러한 해석조차도 내가 만든 그럴듯한 포장일 수도 있다. 그들은 그냥 그렇게 살고 싶었고,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었는지도 모른다. 샐은 길 위에서 달리며 생각한다. "내가 지금 월 하고 있는 거지? 어디로 가는 거야?"라고. 길 위가 아니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이와같은 생각을 하곤 하니까(나만 그런가?). 성별과 나이와 직업을 떠나서 자신의 인생에 대해 확신하고 사는 이가 얼마나 되겠나. 살아가며 차근차근 하나하나 해결할 밖에. 


길이 곧 삶이라고 여겼던 딘에게 있어 늙어서 부랑아가 되는 것은 두려운 일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진짜 두려움은 자유를 잃은 속박된 삶일 것이다. 다른 이들이 붤 바라든 상관하지 않고 계속 자기만의 길을 나아가는 것. 그것이야말로 딘이 진정 바라는 길이다.  


ㅡ 


무엇이 그들을 자꾸만 길 위에 서게 했을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위치, 사회 조직원으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의무, 연령에 맞춰 요구되는 규범 등 타의든 자의든 우리를 구속하는 것들은 수없이 많다. 누군들 한 번쯤은 예정없이 훌쩍 떠나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법과 관습의 틀에서 벗어나 원하는대로 자유롭게 살아보고 싶지 않을까. 그래서 아주 조금은 딘의 광기와 샐의 부유를 알 것 같기도 하고.  


지치지도 않고 도로에서 폭주하고 마리화나를 즐기고, 길 위에서 만나는 여성들과 정사를 벌이며, 동거와 이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광란의 시간을 보내는 그들에게서 사실 나는 젊음의 열정을 느끼지 못했다(내가 너무 마음을 닫고 읽으서 그럴수도 있지만). 마치 이 길이 아니면 숨을 쉬지 못하고 죽어버릴 것만 같아서 살기 위한 몸부림으로 보였다. 



여행을 좋아하고 새로운 문화를 접하는 데에 거부감이 없지만 말 잘 듣는 착한 딸로 살아온 나로서는 어떤... 감정적 한계를 느끼면서 읽었다. 두 여자에게서 네 아이를 낳고도 결국엔 문을 박차고 나가는 딘이 대단하다고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커밀을 보면서 모험을 떠나겠다고 모아놓은 돈을 다 털어서 자동차를 산 뒤 자식조차 나 몰라라하고 나가버린 사람이 만약 여자였다면 이 소설이 과연 비트감 넘치는 청춘의 방황과 폭발적인 열정을 그린 소설로 평가 받을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누군가는 그들(특히 딘)을 전쟁 직후의 혼란스러운 세태에 자유를 욕망하는 젊음의 초상이라는 말 대신 사회부적응자의 방종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아마 딘은 이러한 비난도 가치 없는 일이라며 신경쓰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겠지. "그러든지 말든지, 신경쓰지 마."라고.  


이 소설의 매력은 딘과 샐이 길 위에서 스치듯 만나는 수많은 사람들 각자의 역사와 그들 삶의 풍경, 그리고 다채로운 도시의 모습이다. 두 사람의 여정에 구글 지도를 열어놓고 따라갔는데, 그 거리가 어마무시하다. 넉넉한 여비로 편안함을 추구하며 다녀도 힘든 여정이다. 그걸 무일푼으로 해내네... . 


모든 길은 이어지고 펼쳐져 있으며, 그 길 위를 걷는 모든 사람들이 꿈을 꾸기를, 샐은 바람한다. 하긴 인생이 어디로 흘러갈지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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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세상을 바꾼 전쟁의 모든 것 1
토머스 도드먼 외 엮음, 이정은 옮김, 브뤼노 카반 기획 / 열린책들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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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주로 19세기 중반(간혹 18세기로 거슬러 올라가기도 하고)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약 200여년 동안 인류사를 변화시킨 전쟁의 역사를 통사가 아닌 미시사 측면에서 짚는다. 그 범위는 전투와 전략, 군인, 민간인, 여성과 아동, 난민, 심지어 환경까지 확대한다. 대신 브뤼노 카반은 전체 서문에서 18세기 말부터 20세기까지 세계 곳곳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전쟁을 스무 쪽에 걸쳐 연도순대로 간단하게 정리한다. 또한 어느 특정 지역이나 집단이 아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살펴본다. 이 책을 저술한 57명 필자들의 신념은, 전쟁은 총체적인 사회 현상이면서 문화적 행위라는 데 있다. 따라서 정치가, 군인, 민간인 들의 사회 및 문화적 역사, 전투인과 비전투인을 아우루는 분쟁에 깊은 의미를 부여한다. 기획자 브뤼노 카반은 이 책의 핵심은 전쟁을 치르고, 전쟁을 경험하고, 전쟁을 생각하는 방식이라고 말한다. 






 



제목에 나타났듯 군대, 국가, 산업, 경제와 금융, 세계 곳곳에서 벌어졌던 제국주의의 신화, 무기 등 전쟁과 연관된 모든 것들에 대해 썼다. 어떤 한 개념이나 논제에 대해 옳다 그르다가 아닌 다양한 접근법을 통해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읽힌다. 예를 들어 <총력전>의 개념을 리처드 오버리는 '국가의 모든 영역과 국가 활동의 모든 국면이 전쟁의 목표에 헌신하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는 데에서 그쳤다면, 카렌 하게만은 총력전의 특징을 들어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했다.  

 
1부에서 거시적으로 전쟁과 관련한 것들을 분류해서 간략하게 짚어냈다면, 2부부터는 좀더 자세하고 구체적으로 내용을 서술한다. 일례로 1부에서 다뤘던 '군대'를 2부에서는 '군인'으로 더 구체화시킨다거나 '평화주의'는 2부의 불복자와 반역자로 이어진다. 서술자가 다른 만큼 접근하는 시각도 차이가 있다. 


1부에서는 프랑스에서부터 시작한 군대(징병제)의 변천사와 각국의 사례, 군대와 정치의 관계, 20세기 중반 이후 진화된 용병의 역할, '전쟁법'이 가리키는 그 이면의 진실, 전쟁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 기술력의 전략적 사용 방법, 윤리적 논쟁이 무의미한 드론, 20세기에 들어서 달라진 전쟁 형태와 전쟁 중 국가의 역할, 전쟁에 따른 산업과 운송의 변화, 자본주의 폐해에 의한 전쟁의 악순환, 전쟁 자금 및 금융과 경제(특히 국채 문제), 사회적 성별과 참전 여성, 신념에 따른 평화의 다른 얼굴과 '평화주의', 게릴라와 혁명전쟁, 그리고 테러리즘에 대해 서술한다.  


2부에서는 병사의 진화 과정, 각 국가의 징병 제도, 근대 이후 군인의 직업화와 사회적 지위의 진화, 군대가 구축한 독자적인 정치 세력, 식민지 병사와 인종 정책, 자원병(자원 입대)의 역사, 사라진 여성 전투원의 기록, 민족 전쟁을 상징하는 유격대 파르티잔, 청소년 전투원의 역사 및 그들과 폭력의 관계까지 조목조목 짚어낸다.  


ㅡ 


흥미로웠던 점은 '죽일 수 있는 권한'이었다. 여기에 적용되는 것이 정당방위 개념이다. 양차 세계 대전 당시 참전한 모든 강대국이 정당방위라는 자기 합리화를 주장했다. 혁명전쟁이든 국가 해방 전쟁이든 최종 목적이 무력 사용을 정당화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는 뒤에 나오는 자원병과 묘하게 맥락이 이어지는데, 자원병 복무의 역사를 쓴다는 것은 신화에 버금하는 역사, 그리고 상대적으로 와해된 역사를 이야기함과 동시에 전쟁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에 대한 것일 수 있다.  


그리고 '소년병'이라는 명칭에 있어서 우리가 간과하고 있었던 부분을 지적한 점도 유의미했다. 글을 쓴 마농 피뇨는 강압적인 메커니즘을 과소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이 단서 역시 유럽중심주의 입장에 있어야 설득력이 있는 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에 전쟁 욕망은 20세기 이전처럼 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 


포로 부분에 이르면 전쟁이 얼마나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그리고 여러 측면에서 얼마나 비효율적인지 알 수 있다. 1권 막마지에는 편지에 대한 내용이 나오는데, 병사들이 전쟁터에서 편지를 읽는 잠시 정지된 순간을 '문명으로 귀환하는 시간'이라고 표현했다. 전쟁이 무엇인지를 잘 나타내주는 문구가 아닐 수 없다.  


에르베 마쥐렐은 우리 대부분에게 전쟁은 더 이상 영광스럽지 않고, 예전처럼 욕망의 대상이 되기를 멈추었다고 썼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를 생각해보면 그의 말에 동의하지만, 문득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이에 대한 저변의 의식을 과거로 회기시키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시몬 베유의 '인간이 전쟁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이 인간을 지배한다'는 주장도 기억에 남는다. 



2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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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의 유혹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23
엘리자베스 폰 아르님 지음, 이리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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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우리가 딱 한 번 우리끼리 멀리 가서 좀 쉬겠다는데 그게 그렇게 잘못된 건가요? 



지중해 연안의 중세 이탈리아식 작은 성에서 4월 한 달을 보낼 기회를 준다는 <타임스>에 실린 광고를 보게 된 로티 윌킨스 부인은 <타임스>를 유심히 보고 있는 다른 여성 로즈 아버스넛 부인 역시 그 광고를 읽고 있다고 직감한다. 두 여성은 산 살바토레에 가고 싶은 욕망이 꿈틀거리지만 결정적으로 비용이 부족하다. 그들은 추가로 두 명의 멤버를 모집하고, 번거로운 여러 결정들을 빠르게 해결한 뒤 각자 이탈리아로 향한다. 마침내 산 살바토레에서 만난 네 명의 여성 로티, 로즈, 피셔 부인, 캐럴라인. 그들의 좌충우돌 한 달 살이가 시작된다. 마법과 사랑의 섬 산 살바토레에서.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박완서 선생의 소설로 시작해서 셰익스피어의 희극으로 끝나는 유쾌한 소동극' 이라고 하겠다. 산 살바토레로 향하게 된 이유가 제각각이듯 인물의 캐릭터 역시 뚜렷하게 구별되는 이 소설은 도입부에서 1920년대 여성들이 가부장제 사회의 관례에 따른 여성의 미덕에 갇혔던 모습들을 보여주다가 중반 이후 내용상 분위기가 급변한다.  


변호사로서 사회적으로 평판이 높고 오로지 성공만 좇는 남편에게 있어서 가정 내 자신의 존재가 오로지 '행복한 가정'의 전시용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로티는 외롭고 어디에 갇혀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도덕이 행복의 기준인 로즈 아버스넛은 남편이 외설적인 회고록으로 돈벌이를 하는 것을 그만두기를 바라지만 이 문제로 갈등을 겪다가 결국 남편과의 사이가 벌어져 서로 외면하는 처지에 이른다. 그럼에도 로즈는 늘 남편의 관심과 사랑이 그립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부유한 귀족 집안의 딸로서 어릴 때부터 뭇사람들에게 칭송을 습관적으로 받아온 캐럴라인은 소위 과잉보호 속에서 성장했다. 정해진 길 외에 다른 삶을 상상할 수 없다는 낙담, 주변에 넘치는 허위와 가식에서 벗어나고픈 일념으로 산 살바토레에 왔다. 그야말로 '꼰대'의 전형을 보여주는 피셔 부인은 혼자 조용히 고독을 누리기 위해 산 살바토레에 왔지만, 사실 그녀는 많이 외롭다.  



1922년에 첫 출간한 이 소설은 지금의 독자가 읽기에 여러 작품이 연상될 만큼 잔잔하면서도 다양한 매력이 넘친다. 이탈리아어를 모르는 로즈와 로티가 마중나온 이탈리아 청년에게 겁을 집어먹거나 혹은 혼자 있고 싶어서 모르는 사람들과 이탈리아까지 왔는데 일하는 이탈리아인들이 잠시도 쉬지않고 번갈아가며 왔다갔다 하면서 끊임없이 조잘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통에 짜증이 치미는 캐럴라인, 자신의 권위가 전혀 통하지 않는 세 여자에게 혼자 분해서 동동거리는 피셔 부인, 멜러시의 목욕탕 폭발 사건, 멜러시의 변화된 모습을 보면서 그의 속내도 모른 채 산 살바토레의 마법이 남편에게도 통했다고 믿는 로티의 미소, 로즈에게 호감을 보이다가 캐럴라인을 본 순간 한눈에 반해 정신 못차리는 토마스 등 동상이몽인 것만같은 이들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연이어 그려져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에서는 몇 가지 변화의 계기가 되는 우연, 가벼운 장난, 농담 등의 장치나 등장인물의 감정이 급변하는 모습은 마치 요정이 쏜 사랑의 작대기가 꽂힌 것처럼 의아할 정도인데, 이는 로티의 말대로 산 살바토레 자체가 마법을 부린다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소설은 시작과는 다르게 로맨틱 코미디의 요소를 골고루 갖추고 있어서 독자들에게는 유쾌한 시간을 선사한다.


나이와 살아온 환경이 다르며, 무엇보다 네 여성은 필요에 의해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다. 상대에 대한 선입견을 갖은 채 각자의 목적만 이루면 그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굳이 타인을 배려하고 이해할 노력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여기저기에서 삐걱거린다. 그때 이들의 심리적 구심점 역할을 하는 인물이 로티다. 천성적으로 쾌활하고 밝은 그녀는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력이 뛰어나고 특히 통찰력이 예사롭지 않다(사실 산 살바토레에 도착한 후 가장 반전이 큰 캐릭터이다). 캐럴라인은 로티를 가리켜 '자유롭지만 친밀한' 사람이라고 표현하는데, 참 적절하다는 생각이다.   


ㅡ 


9월 독서모임 선정도서였는데, 멤버들의 평도 아주 좋았다. 특히 읽는 동안 소설 속 그들과 너무 행복했다고.  


우선 등장인물 톺아보기를 통해 보여지는 것 너머 그들 네 여성을 비롯한 당시 여성들의 삶과 고민에 대해 얘기하고, 각자 자신이 어떤 인물에 가까운지를 말했는데 가장 많은 사람은 아무래도 로즈와 로티였다(아무도 자기가 피셔 부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더라는!).  


소설 이후 산 살바토레에서 돌아와 마법이 끝난 일상에서의 그들이 이전과는 다른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지, 아니면 이 한 달 동안 마법의 힘이 적게나마 영향을 미쳤을지에 대해 나누면서 환경의 변화 혹은 여행을 통해 변화된 일상이 있었는지의 경험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 달이라는 시간, 산 살바토레라는 장소. 
우리에게도 그런 마법이 주어지기를 기대하며 독서모임을 마쳤다.



인생에 있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데에는 사랑만한 게 없다. 캐럴라인은 허위의 사랑에서 벗어나려고 산 살바토레로 왔는데 그곳에 있는 모두가 각자 다른 사랑의 단계를 거치고 있었다. 아마도 현실의 우리 역시, 색채와 형태가 다른 각자만의 사랑의 단계를 거치는 중일지도.  







※ 출판서 독서모임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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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염병 일지 열린책들 세계문학 285
다니엘 디포 지음, 서정은 옮김 / 열린책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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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1664년 9월부터 약 1년여의 전염병 기간 동안에 벌어졌던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이 기록은 전염병 사태를 두고 어떠한 대안이나 개인적인 생각을 서술하지 않고, 심지어 화자 자신의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는다(기껏해야 한두 줄로 슬프다, 끔찍하다 정도). 개인적 묵상이나 소신은 다른 이에게 쓸모가 없는 것이라고 말하며 대부분 공개하지 않는다고 명시한다. 드러난 상황과 화자가 경험하고 본 것들을 사실 그대로 적어나갈 뿐이다. 전염병에 의한 사명자 수 집계, 페스트 창궐에 따른 사회 현상, 정부 및 공공 기관의 대처, 의료진의 노고와 헌신, 새로운 법령 제정, 정부의 법률 시행에 따른 시민들의 반응, 시스템의 오류와 부작용, 전염병 시기의 산업 실태, 대규모 실업난, 생계 절벽, 전염병 기간 동안의 일상 생활 풍경 등을 여러 사례와 더불어 표와 목록으로 나타내 서술한다.  







작가는 화자의 입장이 되어 유성같은 천체 현상이 전염병, 화재, 전쟁 등의 전조나 예언으로 보았고 미신과 그에 따른 터무니없는 망상이 사람들을 더 공포로 몰아넣는 것에 대해 비판하는 한편, 앞서 자신의 피난 여부를 두고 고민하는 과정에서 신에게 의탁하는 것이나 비아냥대는 남자에게 페스트가 하느님의 벌이자 신의 섭리라고 말하는 모습, 그리고 끊임없이 신의 자비와 신을 향한 섬김을 확신하는 태도는 과학적 접근에서 벗어난 그의 한계를 나타낸다(아니면 17세기라는 시대의 한계일 수도 있을테고). 


하지만 책을 읽다보니 신에게 기대는 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인류애이자 사랑이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가혹한 시대에 신조차 없다면 어떻게 견딜 수 있었겠나. 무엇보다 당시로서는 새로운 약이나 치료법이 발견되지 않았으니 전염병의 종식 자체가 신을 증거하는 것이었을테다. 



전염병을 악용해 도둑, 사기꾼, 협잡꾼 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활개를 친다. 전염병에 대한 공포는 거짓말쟁이들의 처방에 기대는 것이 어리석은 짓임을 알면서도 그 두려움으로 인해 기행을 거듭하는 지경에 이르게 한다.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비록 의무에 따른 행위일지라도 헌신적으로 해야할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화자는 이에 대한 많은 에피소드를 나열하는데, 작가는 이들에게 크게 서사를 부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망자 수를 나타내는 표처럼 그저 보여지는 사실을 적어내려가기만 한다. 어쩌면, 감시 하에 격리되어 있는 병든 아내와 자식을 만나지 못하고, 거짓 소문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며, 때때로 부모가 자식을,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가장 근본적인 연민조차 사라진 이 시기에 살아가고 죽는 것에 무슨 서사가 필요있겠느냐고 말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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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위기 상황 대처에 관련한 관리직 임명과 전염병에 관련한 법령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환자 고지 - 감염자 격리 - 환기 소독 - 주택 봉쇄 - 이동 금지 - 격리 병원 운영 - 시체 매장', '부랑자 관리 - 공연 및 연회 금지 - 술집 영업 제한', 이외에도 외출 및 접촉 자제, 비상 식량 및 생필품 비축, 소독제를 넣은 향수 구비 및 휴대 등 감염병에 따른 사회 시스템 작동은 기술과 방식의 차이일뿐 17세기나 21세기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 시대에도 가난한 사회적 약자들은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되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누군가의 죽음에 대부분 무덤덤해진다는 점이다. 



소설에서는 각종 범죄를 들어 윤리적 문제를 지적한다. 감염의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위로 약탈하고, 환자를 상대로 강도와 살인 행각을 벌인다. 인간이 가져야할 최소한의 도덕도 무시한 채 치안이 불안정한 시기를 노려 폭력과 야만과 탐욕을 드러낸다.  


사실 이보다 더 눈에 띄는 점은 소설 속에서 안전을 권리로 내세운 피난민과 안전을 의무로 내세운 순경의 대치처럼 각자의 입장에서 내세운 권리와 의무가 관점에 따라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개인에 대한 연민과 공동체의 안전, 어디에 무게를 두겠는가(물론 위에 썼다시피 작가는 이러한 지점에서도 개인의 소견이나 고민을 피력하지 않는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감염자가 자신의 상태를 알고도 비감염자들에게 접근하는 것은 의도적 살인이라고 규정함과 동시에 이와 관련한 소문들은 무증상 감염자들에 의해 와전된 것이라고 짐작하면서 화자가 인간이 갖춰야할 최소한의 도덕성에 희망을 갖고 있음을 나타내는데, 과학적 검사 없이 무증상 감염에 대해 생각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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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는 르포에 가깝다는 평을 받는 이 작품은 전염병 시기의 영국 사회와 인간들의 면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우리가 얼마전 겪은 팬데믹 시기에 소설이나 영화에서 있을 법한 일을 실제로 겪었다면, 이 소설은 허구라는 장치를 이옹해 실제화했다.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관찰자이자 기록자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화자는 삭막할 정도로 제3자의 입장에서 기록한다. 그의 초점은 인간과 교회(신앙), 도시와 사회에 맞춰져 있다. 삶과 죽음의 방식, 가족에 대한 사랑, 타인을 향한 연민과 애도, 탐욕과 이기, 혼란의 시기에 묵묵이 제자리를 지키는 사람들, 그리고 결국에는 신을 찾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존재하는 참혹해진 도시에서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바라본다.  



화자는 여러 헛소문에 대해 단호히 부정하면서 런던은 정부의 철저한 관리하에 모든일이 처리되고, 시 전체와 외곽에서는 치안과 질서가 놀랍도록 유지되고 있으며, 전염병 시기를 감안할 때 전 세계의 도시들의 본보기가 될 정도로 통치가 잘 유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격리나 봉쇄 등 시민권을 유린한 행위는 비상시기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조치였음을 짚으며 행정관들을 비롯해 시체를 옮기고 매장하는 일을 하는 사람에 이르기까지 전염병 사태에 관련해 여러 분야에서 업무를 맡았던 이들의 노고를 열거하며 치하한다. 


화자는 자신이 남기는 글을 그의 행동의 기록으로 보기보다는 후대 사람들이 같은 시련에 직면했을 때 비슷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에서 지침이 되기를 희망한다고 썼다. 이런 당부를 썼다는 것은 작가가 앞서 쓴 이유로 런던 시에 대한 자부심이 상당했음을 알 수 있다.    



대니얼 디포가 영국 리얼리즘의 시작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를 확인하는 소설이다. 서술하는 자가 가능한 한 감정을 자제하고 객관적으로 써내려가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읽는 입장에서도 이 기록들을 비교적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었다. 시종일관 감정에 크게 휘둘리지 않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의 글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회 안에서 사라지지 않는 반목과 갈등, 가난한 민간인의 죽음에 갖는 안타까움과 인류에 대한 희망, 그리고 결국엔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마침내 '살아남았다'는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교차하는 여러 감정과 의미가 담겨있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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