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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km - 열입곱 살 미치루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다
가타카와 요코 지음, 홍성민 옮김 / 작은씨앗 / 2012년 6월
평점 :
절판
‘100km’라는 제목은 특정 숫자와 일정한 거리를 나타내는 단위로 이루어진 너무나 단순한 제목처럼 보이지만, 사실 많은 것을 내포하는 함축적인 제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거리’에 대한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1. 두 개의 물건이나 장소 따위가 공간적으로 떨어진 길이. 2. 일정한 시간 동안에 이동할 만한 공간적 간격. 3. 사람과 사람 사이에 느껴지는 간격. 보통 서로 마음을 트고 지낼 수 없다고 느끼는 감정을 이른다.‘ 라고 적혀있다.
그리고 ‘100’이라는 수는 한자의 의미 ‘일백’을 뜻하기도 하지만, ‘힘쓰다. 노력하다’는 뜻도 있다. 또한 ‘Kilometer’는 수학적으로 1 meter의 1,000배이다. ‘천배’(千倍)는 천 곱절이라는 뜻도 있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은 수량이나 정도를 이르는 말이다.
결국, ‘100km’라는 것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긴 거리를 힘쓰고 노력하여야만 도달할 수 있는 거리’가 되는 셈이다.
이 책은 끝을 알 수 없는 우리들의 장거리 인생... 즉, 그 끝은 어디인지, 언제 도착할지 늘 물음표를 던지면서도 어딘가를 향해 발을 내딛는 우리들의 모습에 대한 자화상을 그리는 듯하다.
고등학생 미치루는 삼촌의 계략에 의해 ‘100km 걷기대회’에 참여하게 되고, 걷는 도중에 기권하지 않는 이상 낮과 밤을 넘어선 30시간을 걸어야만 한다. 대회 시작 전 얼마든지 포기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병상에 누운 엄마에게 긍정적 자극을 주기 위해? 동생 사토시에게 뭔가 제대로 한 번 보여주고 싶다는 오기? 아니면 다른 이유들? 미치루 자신도 잘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무작정 걷기 위한 걸음을 내딛는다.
처음엔 이제까지 보지 못한, 낯설고 황홀한 경치를 보게 되고, 보나마나 내가 제일 먼저 탈락할거라는 부정적 생각에 사로잡힌다. 다른 참가자들의 화려한 차림새에 주눅이 들며 비교의식을 갖기도 한다. 또한, 삶의 모든 영역에서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던 엄마가 교통사고로 병상에 누운 후로 모든 일에 소극적인 사람이 된 것에 대해 의문과 이질감을 던져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걷는 중에 무나카타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인생의 연륜이 묻어나는 지혜어린 조언을 던져주는 것과 더불어 ‘홀로’에서 잠시 벗어나 ‘함께’를 배우게 된다. 체크포인트에서 만난 마사지 봉사자 아저씨, 그리고 한 소년의 격려와 도움을 받아 미치루는 82km까지 도달한다. 그곳까지 도달하는 동안 빈약하기 그지없는 체력은 바닥나고 근육은 욱신거리며 발엔 물집이 터지고 온 몸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다. 그런 와중에 예고도 없이 비는 내리고 빗물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는 물들은 뺨에 흐른다. ‘대체, 내가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 거야. 제발 더 이상은 나를 힘들게 하지 말아줘, 제발! 이미 충분히 힘들다고.’ 미치루는 숨이 넘어갈 듯 하지만 눈물은 멈추지가 않는다.
기권자들을 태우는 버스에 마음을 빼앗기기도 한다. 하지만 의도치 않게 마사지를 받고 난 후 더욱 전력투구 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하지만 또 다시 무섭고 깜깜한 밤, 고독을 확인하기도 하고 생각보다 걸어 온 길이가 짧은 것에 대해 의심을 품기도 한다.
하지만 어느덧 82km 체크포인트를 찍고 이제 막바지 과정에 다다른 미치루는 어느새 완보에 대한 믿음을 스스로에게 불어넣어 줄줄 아는 사람으로 성장해 있다. ‘나는 나를 믿어’라는 말을 처음으로 입 밖으로 내어 본 것이다. 지도는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지금 걷고 있느냐 걷고 있지 않느냐가 문제이다. 미치루는 걷는 쪽을 택했다!
100km 거리를 걷는 30시간 동안 드라마틱하게 벌어지는 미치루의 삶의 완보를 볼 수 있다. 주어진 시간에 대한 통찰, 삶의 실망스러운 것들을 견디는 법, 성숙하고 단련되어 지는 과정, 고난과 노력을 다한 뒤에 얻게 되는 자기자신의 존엄성, 그것을 통한 감동과 감격을 캐치할 수 있는 소설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