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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
김종성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3년 3월
평점 :
몇 해 전 방송된 KBS 특별기획드라마 ‘추노’는 조선이 청나라에 굴욕적인 항복을 했던 병자호란 이후, 백성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가슴 아프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팩션형 드라마다. 훈련원 판관으로 소현세자의 측근이던 태하(오지호 분)는 세자의 죽음과 함께 노비로 추락했다가 기회를 틈타 도주한다. 이야기는 추노꾼인 대길(장혁 분)이 거액의 약속을 받고 그를 잡으러 떠나고, 얼마 안가 이 둘이 친구가 되면서 시작된다. 대길이 태하를 애증 섞인 말투로 “어이! 노비”라고 부를 때, 태하는 이렇게 답한다. “세상에 매어 있는 것들은 다 노비야.”
이 책은 문화재청 헤리티지채널사업단의 자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역사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 김종성 박사가 ‘잡일이나 하는 하인’ 정도로 인식된 노비 열여덟 명의 삶을 소개하고, 각각의 노비와 관련된 개별 쟁점, 즉 노비의 개념, 기원, 결혼, 직업, 사회적 지위, 유형, 의무, 법률관계, 재산, 자녀, 면천, 저항 등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또한 양반과 평민으로 나뉘어 엄격한 신분제도에 복종하며 살아야 했던 당시에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한 숱한 노비들의 삶과 애환을 들려주며, 모진 괴로움을 견디다 못해 도망가는 노비들을 전문적으로 잡아들이는 ‘추노꾼’의 무자비한 활약도 함께 보여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상하는 노비는 마당을 쓸거나, 주인에게 굽실대거나, 혹은 툭하면 얻어 맞는 양반의 소유물이다. 조선은 아예 법으로 “노비는 벼슬길에 나갈 수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농업ㆍ공업ㆍ상업ㆍ병사에 지나지 않는다”고 못박았을 정도로 신분제에 있어선 엄격했다. 하지만 조선 사회에서 노비는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지금으로 말하면 자영업자나 고용 노동자처럼 서민이나 마찬가지라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조선시대에는 전체 인구에서 최소 30퍼센트 이상이 노비 신분”이었으며 “노비가 그 시대의 일반인이었다”(p.7쪽)라고 말한다. 스스로 생계를 해결한 양인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자영업자에 가깝다면, 노비는 고용 노동자에 가깝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고로 노비를 알아야, 조선시대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말한다.
조선시대 노비는 크게 세가지 경로를 통해 공급되었는데, 전쟁에서 붙잡힌 포로, 중범죄를 지은 죄인,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가 그 대상이었다. 조선에서는 중국과 달리 한번 노비가 되면 신분은 대를 이어가며 지속됐다. 대개 주인집에 공물을 바치거나 부역을 했는데, 주인과 함께 살며 이 의무를 수행한 노비를 솔거노비, 따로 살며 제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노비를 외거노비라 불렀다. 관청에 속한 관노비, 개인이 주인인 사노비로 나뉜다.
노비들 중에는 학문이 깊어 선비들로부터 존경을 받은 노비 문인 박인수, 노비라는 굴레를 벗고 중앙정부 관료로 활약하는 반석평과 김의동, 양반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노비 시인 백대붕과 유희경 등 구체적 인물 이야기도 무척 흥미롭다. 또한 재산으로 한성 최고의 기생 ‘성산월’을 차지한 이름 모를 공노비 같은 사례도 있다. 이를 통해 공물을 주인에게 바치거나 부역하면, 노비도 공부할 수 있고, 사유재산을 가질 수도 있었다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일부 노비들 중에는 재산을 축적하여 부자의 반열에 올라선 이들이 있었다. 조선 태종 대에 의흥삼군부의 좌군에 속한 공노비였던 불정은 실록에 기록될 정도로 ‘부자 노비’였다. 저자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도 노비가 되었다고 하며, 1천 명의 부하를 거느린 ‘대기업 이사급’ 노비, 남편을 과거에 합격시킨 여종 등 다양한 삶을 살았던 노비의 이야기도 들려준다.